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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 회


제 4 장

3


《여보, 제발 우리 둘공무 열처리 좀 빨리 해주우. 주강직장령감네가 시험생산을 하다가 로를 구워먹을번 했는데 그 바가지를 우리가 뒤집어쓰고 이 단련을 받지 않소.》

평양으로 떠나기 전에 직장장에게 할 말도 있고 통계원을 만나 미흡한 수속을 해야 할 일도 있고 하여 직장에 나온 은하는 사무실에 들어서려다가 직장장이 전화를 받는 소리에 놀라 문앞에서 잠시 멎어섰다.

《여보, 제발 우리것부터 먼저 해주우. 오늘밤안으로 로를 가동시키지 못하면 벼락이 떨어질거요. 그럼 내 머리에 몇오리 남은 머리칼까지 다 빠지게 될텐데 도와주우.》

(큰 사고일가?)

은하는 온몸에서 기운이 빠지는것을 느끼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김기룡의 어머니가 선보러 가자고 아들에게 왔다는 이야기가 떠오르자 그 실패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기술혁신이란 실패를 거듭하다가야 성공하는건데 뭐.… 벌써 평양으로 떠날걸 그랬어. 그랬으면 실패요 무어요 하는 소리 듣지 않는건데…)

한정빈국장은 평양에서 소식이 왔다고 빨리 극장의 보금이를 만나라고 하였는데 은하는 공장이 들끓기 시작하자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 차일피일하였다. 이런 판에 김기룡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의 어머니의 출현은 공장을 떠나지 못하게 하던 도덕적의무에서 해방시켜주었던것이다.

은하는 직장장의 떠들썩한 소리가 숙어지자 사무실에 들어갔다.

뜻밖에 선희기사가 긴 걸상끝에 앉아있었다. 직장장과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화가 와서 중단된듯 긴장한 녀기사는 은하가 옆문으로 들어갔는데도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은하는 자리를 피할가 하다가 통계원을 빨리 만날 일이 있어서 용기를 내여 구석의자를 차지하였다.

《전 벌써 세번째 옵니다.》

선희기사의 말소리는 낮았으나 그 말속에는 가시가 들어있었다.

《그래 우리 직장이 기어이 고철압착기의 부분품가공을 맡아야겠단 말인가요?》

선희기사가 고철압착기의 설계를 발기해나섰을 때 설비부기사장은 그것을 적극 지지하여 그 부분품가공을 대상설비를 전문으로 맡아 가공하는 자동화직장에 맡기지 않고 자기네 보조부문 직장들에서 예비를 탐구하여 가공하여 조립하겠다고 결의했었다. 최근에 선희기사가 설계를 완성하자 보조부문 직장들에서는 부기사장의 호소대로 군소리없이 그 가공을 안아맡았는데 유독 이 오선달직장장만은 로력이 긴장해서 그 분공을 수행하지 못하겠다고 발딱 나가자빠져서 그 조립까지 책임진 선희기사는 자기 말대로 세번씩이나 여기에 온것이다.

《설비부기사장동지가 직장장동지에게 다시 이야기하셨다던데 정말 못하겠다는거예요?》

선희기사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으나 그 어조는 더욱 날카로와졌다.

《아니, 누가 언제 못하겠다구 했소?》

오선달직장장은 얼굴을 들며 화를 냈다. 앞에 있는 전등불에 그의 벗어진 대머리가 번들거린다.

《우리도 남들처럼 하겠수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거기에 무슨 조건이람?) 은하는 속으로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오선달직장장은 비스듬히 돌아앉으며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이였다. 담배연기가 퍼지는 흰 벽에는 경쟁우승기가 걸렸던 흔적이 볼꼴없이 드러나보였다.

《하여간 주강직장사고부터 수습해야겠수다.》

《언제까지 걸릴가요?》

《글쎄요.》

(왜 대답이 저렇게 뜨뜨미지근할가?)

은하는 듣기가 안타까와 자기네 직장장을 할긋이 흘겨보았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런데 조건이란 뭔가요?》

《앞으로 예비부속이 부족해서 제때에 설비를 가동시키지 못할 때 우린 책임을 질수 없다는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가공을 맡지 못하겠다는 말이군요?》

《재삼 강조합니다. 나는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하고 오선달직장장은 녀기사를 맞받아보며 대답했다.

《우리 직장이 설비의 예방보수를 제때에 하지 못한다고 동네북처럼 두드려맞고있는걸 기사동무도 잘 알지 않습니까?》

은하는 선희기사의 안색이 하얗게 되자 참지 못하고 총알처럼 내쏘았다.

《왜 우리 직장만 못하겠다구 하시나요?》

오선달직장장은 눈이 둥그래서 은하를 쳐다보았다. 노래 잘 부르고 웃음이 헤픈 은하로만 알았지 이렇게 다기찬 처녀인줄 몰랐던것이다.

《아니, 도대체 동문 어째서 뛰여드는거요?》

《우리 직장 명예문제인데 왜 제가 상관없어요?》

《은하, 그만둬!》하고 선희가 만류했다.

《버르장머리없이 날뛰지 마오.》하고 오선달직장장은 도끼눈을 하고 소리쳤다.

《제가 버르장머리없이 굴었다면 사죄하겠어요. 그대신 직장장동진 그 조건이요 뭐요 하는 말을 취소하세요.》

《뭐, 취소하라구? 왜 동문 산제밥에 메뚜기처럼 뛰여들어 분주탕을 피우는거야? 그럼 동무가 비판을 받을텐가?》

선희기사는 인내성있게 듣다 못해 일어서며 단호한 목소리로 격한 마음을 내려누르고 말했다.

《좋아요. 그렇게 알고 가겠어요. 더는 오지 않겠어요.》

은하는 녀기사를 따라 나가려다가 분기를 참지 못하고 직장장에게 한걸음 다가서며 웨쳤다.

《어쩜 그럴수 있어요?!》

《뭐가 어떻다는거야? 엉? 동문 우리 직장 비판받는것 듣지 못해?》

《그 부분품가공을 제가 맡겠어요.》

《동무가?》

《제 혼자 힘들면 처녀들에게 호소하겠어요.》

《아니, 평양엔 가지 않구?》

《제가 평양에 가든 안가든 무슨 상관이예요?》

《뭐라구?》

오선달직장장은 약이 올랐으나 직장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자기가 한 말때문에 말문이 막히여 군입을 다시였다.

《아니, 동문 도대체 이 일에 무슨 상관이 있어서 자기 장래문제와 바꾸려는거요?》

《제 장래문제는 제가 걱정하겠어요.》

은하는 사람을 쐬운 벌처럼 잉 하고 밖에 나와버렸다. 그리고 직장장에게 선언한대로 일을 시작하려고 휴계실에 들어갔다.

은하는 작업복을 입기 전에 새로 지어입은 선홍색의 나뉜옷을 거울에 비쳐보았다. 급히 지었는데도 몸에 꼭 맞는다. 언제인가 김기룡이 선홍색옷이 매혹적으로 보이더라고 하던 말이 떠올라 긴숨을 내쉬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현장에 나간 은하는 압착기부속들의 가공을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교대부직장장을 찾았다. 부직장장은 이미 돌아간줄 알았던 선희기사와 후라이스곁에서 이야기하고있었다.

《제가 래일아침부터 기대를 잡겠어요.》

은하가 그들의 곁으로 갔을 때 선희기사가 하는 말이였다.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겠습니다. 모름지기 직장장동진 일에 몰리니까 그랬을겁니다.》

《하여간 난 차비하고 오겠어요.》

은하는 이렇게 말하는 선희기사한테 달려가 팔을 잡아당기였다.

《기사동지, 근심말아요. 내가 책임지고 하겠어요.》

《네가?》

《봐요. 작업복입고 나오지 않았어요.》

방긋 웃으며 팔을 벌려보인 은하는 녀기사의 팔을 끼고 현장나들문옆에 있는 긴걸상쪽으로 잡아 이끌었다.

밝은 달이 종합보이라굴뚝옆에 떴다.

의자등받이에 옆으로 기대인 은하는 턱을 손으로 받치고 밝은 달을 내다보았다. 뜻밖에 결심을 내린것이 경솔한것 같기도 했고 잘한 일 같기도 했다. 생활이란 참 이상했다. 왜 이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걸가?

주강직장 부직장장이 급히 현장에 나타나더니 교대직장장과 무어라고 목소리를 높이였다.

《큰 사고가 아닌지 모르겠군요.》하고 은하는 김기룡을 생각하며 혼자소리를 했다.

《큰일은 없었대.》

선희기사는 처녀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또다시 시험하겠지요?》

《뒤일 생각하면 큰일 못해.》하고 선희는 불안이 깃든 은하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그후 기룡동무 만났니?》

《아니요.》

《그가 널 찾아다니던데?》

《만나고싶지 않아요.》

이렇게 대답한 은하는 인차 그것이 자존심이 강요하는 본의아닌 대답이라는것을 깨닫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사람에게는 왜 이런 자존심이라는 거치장스러운것이 있어가지고 마음을 괴롭히는지 모를 일이였다.

선희기사는 어제 김기룡이를 만났던 이야기를 꺼냈다. 속을 울렁거리게 하는 이야기였지만 역시 그 자존심이라는것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소식이라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

《네가 발을 땅에 붙이지 못하고있는것 같다구 걱정하더라.》

《그게 다예요?》

은하는 실망해서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은하가 바란것은 걱정이나 훈시가 아니라 뜨거운 심장의 호소였다. 그의 어머니가 왔다간 후 자기로도 어쩔수 없게 가슴을 휩쓰는 불안과 실망의 선풍을 잠재울수 있는 사랑이 그리웠던것이다.

《너 못난 생각하지 말아라. 너도 그가 지금 시험생산문제때문에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있으리라는걸 짐작할수 있지 않니. 너는 네 싸늘한 태도가 그의 시험생산에 방해를 놀고있다는 생각을 못해봤니?》

《내가요?》

은하는 그 말이 진실이기를 바라며 소리없이 웃었다.

《난 모르겠어요. 정말 난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우리 생활은 왜 이렇게 복잡할가요?》

《모르긴 뭐가 몰라? 생활이란 아름다운거란다. 네가 뭣때문에 이렇게 다시 작업복을 입었니? 기룡동무때문이구 기룡동무도 함께 살아숨쉬고있는 우리 생활때문이지. 생활을 귀중히 여겨라. 생활이 있어 사랑이 있구 사랑이 모여 생활을 이룬단다.》

《정말 난 모르겠어요. 언제가면 그걸 다 알가요.》

은하는 밝은 목소리로 나직이 탄성을 질렀다.

잠시후 자리에서 일어선 은하는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 집에서 인철이가 기다리겠는데 왜 그렇게 멍청히 앉아있느냐고 선희기사의 팔을 잡아당기였다.

《안심하고 돌아가요. 어서요.》

그렇게 재촉하던 은하는 갑자기 그자리에 굳어져 밖을 내다본다. 선희는 은하가 바라보는 창밖에 눈을 주었지만 밝은 달과 창고가 보일뿐이였다.

《버드나무그늘 봐요.》

선희는 그제야 김기룡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그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은하 아니고는 누구도 인차 알아보지 못했을것이다.

《근데 왜 그렇게 서있니? 어서 나가봐.》

《만나고싶으면 들어오겠지요 뭐.》

은하는 김기룡이 지난날 자기의 초상을 그리기 위해서 몰래 창가에서 현장을 들여다보던 일을 회상하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는 그때처럼 안을 들여다보며 찾을 기회를 기다리고있을것이다.

잠시후 은하는 습관적으로 작업복매무시를 고치고 밖에 나갔다. 달빛이 대낮처럼 환하게 뜨락에 깔렸다.

《어떻게 오셨어요?》

은하는 버드나무그늘에 들어서며 말을 건네였다.

《난 떠난줄로 알았댔소.》

김기룡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비껴있었다.

은하는 잠시 이야기를 기다리다가 자기는 일을 하다가 왔노라고 했다.

《근데 왜 날 피했소?》

《만나고싶지 않아서요.》

《거짓말 마오.》

《난 거짓말할줄 몰라요.》

《자신을 속이며 스스로도 괴롭게 만들고 남도 괴롭힐건 뭐요?》

《내가 괴로와요? 무엇때문에요?》

《그렇게 태연한체 자신을 위장하여야 하는 그 마음때문이겠지.》

《아이참!》

은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웃음이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수 있는 편리한 물건이였다.

달빛이 높은 창고의 량면을 어둠과 빛의 두 부분으로 선명히 갈라놓고있었다.

《난 동무의 믿음이 그렇게 종이장처럼 얄팍한것인줄을 몰랐댔소.》

김기룡은 흥분을 가까스로 가라앉힌 불안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뜬소문 한마디에 허물어지는 믿음이였다는걸 몰랐단 말이요.》

《믿음을 요구하자면 믿음을 표시해야지요! 난 동무의 어머니가 무엇때문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요.》

《난 그걸 미리 안줄 아오?》김기룡은 버럭 화를 냈다.

《하여간 난 동무의 목소리를 하루라도 듣지 않고는 견딜수 없소.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자존심을 지키는 그 얼굴을 보지 않고 살수 없단 말이요!》

달빛이 담긴 은하의 눈에는 행복한 미소가 피여났다.

《젠장, 우린 다툴것도 없으면서 왜 자존심의 경쟁을 하고있는지 모르겠소.》

《다툴것은 없지만 서로 리해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될수밖에 없지요.》

《서로가 아니라 나란 말이겠지? 허허, 나라구 합시다. 내가 동무의 무엇을 리해하란 말이요? 리해하기 전에 동무의 모든것을 사랑하는데…》

직장쪽에서 사람들 몇이 이쪽으로 접근해와서 그들은 이야기를 계속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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