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4 회


제 4 장

2


기사장이 회의를 끝내고 자기 사무실에 돌아오자 급한 문제들을 협의하려고 직장장들이 우르르 따라들어왔다.

《주강에 나가봐야겠는데 야단났군.》

리진오는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김기룡에게 회의가 끝나면 곧 나갈테니 준비가 되는대로 먼저 시험생산을 시작하라고 일렀던것이다.

하는수없이 직장장들과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전화종소리가 다급히 울리였다.

《일이 제대로 안됐수다.》

수화기에서 강봉학직장장의 맥빠진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됐단 말입니까?》

그는 빨리 실패의 륜곽이라도 알려고 물었는데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수화기에서는 강봉학직장장대신 국장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폭파될번 했단 말이요. 동문 도대체 뭘하고있소?》

직장장이 전화를 받는것을 국장이 옆에서 듣다가 송수화기를 빼앗아서 이야기하는것 같다.

회의가 예상외로 길어졌다고 대답하자 국장은 회의만 하고있으면 뜨락또르가 나오는가고 소리쳤다. 리진오는 국장이 그런 비판을 하는걸 보니 급한 고비는 지나갔든가 아니면 그리 큰 사고는 아닌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저, 직장장동지를 좀 바꿔주십시오.》

《바꾸고 어쩌구 할새 있소? 빨리 나오란 말이요.》

《나가겠습니다. 급히 할 말이 있어서…》

그렇게 말했는데도 한정빈국장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는 너무나 의외의 일이여서 전류가 끊어진 송수화기를 한참 들고있었다. 모욕을 느끼기보다 가슴이 아팠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와 국장과는 반목이 계속되는것으로 알고있지만 보이지 않는 다정한 선이 여전히 둘사이를 든든히 련결시켜주고있었는데 전류단절되는 소리는 마침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선마저 끊어져버리는 소리로 들렸던것이다.

잠시후 자신을 수습한 그는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시험생산은 쇠물도 뽑아보지 못하고 시작하자마자 실패했다고 한다. 김기룡이며 전기로공들은 어느 구석에 박혀있는지 보이지 않고 《좌상》전기로공만이 여기저기 널린 도구들을 정돈하고있었다. 해체한 로곁에서는 회의가 끝나는 길로 달려온 주태섭부기사장이 도면을 들고 로를 주의깊게 살핀다.

《치명적인건가요?》

《별로 큰건 아닌것 같습니다.》

리진오는 부기사장과 대책을 토론하려다가 휴계실앞에서 한정빈국장이 강봉학직장장에게 큰소리를 치고있어서 그리로 갔다.

《직장장동진 대체 무슨 타산이 있어서 로를 모험에 맡기는겁니까?》

강봉학직장장은 국장이 몰아주고있지만 대척을 하지 않고 담배연기를 피워올리고있었다.

《나는 직장장동지가 이 노릇을 반대하고있는줄 알았는데 도대체 무슨 꾀임수에 넘어가 이 지경을 만들어놓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수다.》

《뭐, 내가 꼬임수에 넘어가요?》

강봉학직장장이 비수같이 번뜩이는 눈을 흡뜨고 험악한 기상으로 맞서자 한정빈국장은 군입을 다시다가 사정조로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어련히 알아하겠는데 왜 직장장동지가 나서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는지 정말 답답하지 않습니까? 큰소리나 치면 일이 되는 그런 때인줄 아시우?》

늙은 직장장이 모욕을 참느라고 주름투성이의 볼에 경련이 일어나는것을 본 리진오는 참을수 없어서 사이에 나섰다.

《전기로공들이 보고있지 않습니까?》

그는 국장을 휴계실에 안내하며 말을 이었다.

《직장장동지를 모욕하지 말고 저에게 책임을 물어주십시오.》

《내가 모욕했다구?》

《옆에서 듣기 거북했습니다.》

《난 요구했을뿐이요.》

《제가 국장동지에게 그렇게 말하면 모욕이 아니라 요구로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때 로의 보수를 위해서 현장을 돌아보던 오선달직장장이 휴계실에 들어와 국장에게 말했다.

《옹근 하루는 걸려야 보수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동무 정신이 있소? 안되오. 오늘중으로 고쳐놓소.》

한정빈국장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지만 오선달직장장은 밖을 내다보며 두덜거렸다.

《그렇게는 안됩니다.》

오선달직장장의 뒤를 따라 도면을 접으며 휴계실에 들어온 주태섭부기사장이 그 대답이 귀에 거슬려 참견했다.

《왜 안된다구 그러우. 랭각수계통의 고장뿐인데.》

《허참, 그럼 그렇게 빨리 보수할수 있는 사람에게 시키십시오.》

《그러면 되오? 일이 되도록 해야지.》

한정빈국장이 듣다 못해 소리쳤다.

《군소리말구 직장력량을 총동원하오. 들었소?》

《해보긴 하겠습니다만…》

《무슨 대답본때가 그렇소?!》

오선달은 국장의 눈에 불이 철철 흐르는것을 보고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방안은 조용해졌지만 누구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려 하지 않았다. 한정빈국장은 뒤짐을 지고 창가에서 용해장을 내다보고있었는데 뒤짐을 진 오른쪽손가락들이 잠시도 쉬임없이 움직이고있다. 주태섭부기사장은 책상을 마주하고앉아 례의 그 비로도로 안경알을 닦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국장은 몸을 돌리며 말을 건넸다.

《그러니까 다시 시험생산을 계속하겠단 말이요?》

그것은 기사장에게 묻는 말이였는데 뜻밖에 주태섭부기사장이 얼굴을 들며 대답했다.

《이젠 담보할수 있습니다.》

한정빈국장의 아연해진 시선은 부기사장의 태연한 시선이며 기사장의 안도의 시선과 연방 부딪치더니 분노의 빛으로 변했다.

《부기사장동무, 그럼 이번 시험생산은 담보가 없이 했단 말이요?》

주태섭부기사장은 따져묻는 말에 개의치 않고 천천히 비로도를 접고 또 접어서 작은 시계주머니속에 찔렀다. 그리고 더는 다른것을 할 일이 없게 되자 손을 깍지껴서 앞상에 올려놓고 어데라없이 한참 초점이 흐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국장동지, 너무 근심마십시오. 전기로공들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는것을 알면서 시험생산을 시작했는데 안될리가 있겠습니까?》

여유있는 침착한 대답이였다.

《생명을 걸고 모험하는걸 구경하란 말이요?》

《구경하는 립장에 서면 모험으로 생각되지요. 근심마십시오. 사고는 나지 않을겁니다.》

주태섭부기사장은 제가 하고싶은 말은 다 하였고 또 일을 계속해야겠다는듯 설계도면을 피적거리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방안에는 리진오와 국장 둘이 남았다. 견디여내기 어려운, 숨도 쉬기 가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리진오는 분노가 아니라 번민이 비낀 국장의 꺼먼 얼굴을 보기가 민망하여 외면해버렸다.

《이보우, 진오동무.》

한정빈국장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좀 터놓고 이야기합시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난 동무를 만나는것이 괴롭고 커다란 정신적부담으로 되는구만. 그렇다고 만나지 않을수도 없구. 둘사이를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졸렬하고 옹졸한 나라는 인간이 원망스러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우. 사실 나에게는 동무가 기사장이기 전에 내 친구의 다정한 동생이구 내 어깨에 매달려 투정을 부리던 그 리진오였단 말이요. 그러한 동무와 언쟁하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지는구만.》

국장한테서 여러번 비판도 받았고 욕도 먹은 리진오였지만 이렇게 살을 도려내듯 하는 아픈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처음이였다. 맥이 진한듯 허리에 손을 짚은, 흰머리가 보이는 국장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그는 눈앞이 흐려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전사한 형이 생각났고 제대군인시절의 한정빈형님이 그리웠다.

한정빈과 박철산은 큰형을 대신하는 리진오의 생활의 한부분이였다.

제대군인 한정빈과 박철산의 이야기를 통하여 리진오는 인민군용사들이 피를 뿌린 락동강의 물빛을 보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국에 대한 사랑의 무게를 느끼게 되였고 원쑤를 증오하는 법을 배운 리진오였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추억에 그늘이 지게 한다는것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엮어진 어린시절의 자기 삶을 모욕하는것이고 그리운 형의 영상을 흐리게 하는것이였다.

《이보우 진오동무, 사람의 관찰에는 편차가 있기마련이고 사람의 판단에는 착오가 있군 한단 말이요. 너무 우기지 마오. 자기에 대한 과신은 자기에 대한 불신보다 더 해로운 때가 있는 법이요. 제발 우기지 마오. 나는 국장으로서가 아니라 동무에게는 경험을 소유한 사람의 도덕적의무로부터 내 견해를 재삼 강요한다는걸 잊지 마오.》

그다음 국장이 무엇인가 몇마디 더 하였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리진오는 기억이 삭막하였고 또 국장이 언제 휴계실에서 나갔는지도 몰랐다. 그는 자기의 태도가 국장으로 하여금 아래사람인 자기에게 사정하도록 난처한 처지에 몰아넣었다고 스스로를 꾸짖었고 또 꾸짖었다. 그러나 잠시후 그는 그 태도가 무엇이 나쁜지, 구체적으로 자기가 잘못한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무턱대고 꾸짖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꾸짖어야 한다는것은 인간적인 의리가 요구한것이고 리성은 자기의 결심을 추호도 양보하지 말것을 명령하고있었다.

(왜 한정빈국장은 나의 견해에 착오가 있다는것을 납득시켜주지 못하고 이렇게 괴롭히는가?)

《자, 우리도 이젠 저녁이나 먹읍시다.》

방에 들어선 주태섭부기사장은 리진오의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너무 생각하지 마시오. 일을 하느라면 별일이 다 있답니다.》

리진오는 부기사장을 따라 용해장에 나가며 물었다.

《기룡동무네들은 모두 어디 갔습니까?》

《식사를 하라구 보냈습니다.》

잠시후 그들은 구내식당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이른 봄날같이 아늑한 저녁이였다.

주태섭부기사장은 김기룡의 설계에서 리진오가 미처 간파하지 못한 약점들을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주태섭부기사장은 다음번 시험생산에서는 틀림없이 성공할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기에 흥분해서 이야기한다기보다 기사장의 복잡한 마음을 덜어주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있었다. 그러나 로기사의 고마운 이야기도 리진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지 못했다.

그들이 걷는 앞에서 공장유치원 아이가 장난감화물자동차에 커다란 나무토막을 싣고 끈을 매여 끌고온다. 공장에 들어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손바닥만 한 적재함우에 실린 한메터가 넘는 큰 나무토막은 《운전사》가 몇걸음 끌자 땅에 떨어져버렸다. 쭈그리고앉아서 연구하던 《운전사》는 나무를 옆으로가 아니라 앞뒤로 길게 싣고 자기 허리띠를 풀어 적재함에 그 나무토막을 동여맸다. 그러자 《화물자동차》는 흔들흔들하기는 하였지만 화물을 떨구지 않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나어린 《운전사》는 한손으로는 끈을 끌고 한손은 흘러내리는 바지를 움켜쥐였다.

주태섭부기사장은 큰소리로 웃었다. 요즈음 그렇게 명랑하게 웃는 얼굴을 처음 본다.

《어린것이 얼마나 의사스럽습니까!》

리진오도 따라웃었다.

뒤에서 지게차가 굴러와서 방해군에게 경적을 울리며 멎어섰지만 유치원생은 자기도 화물자동차를 끌고있다는 배심으로 길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서 비켜라!》

지게차운전공처녀가 이렇게 고함치고 다시 경적을 울리자 주태섭부기사장이 《화물자동차》운전사의 편역을 들어주었다.

《동무가 피해주는것이 좋을것 같군. 보우, 작은 차에 얼마나 큰짐을 실었소?》

그러나 지게차뒤에 화물자동차가 꼬리를 물고 멎어서는 바람에 지게차는 어쩔수 없게 되였다.

주태섭부기사장은 어린 운전사와 같이 끈을 잡고 천천히 길을 내주었다. 어린 운전사는 마지못해 할아버지같은 부기사장을 따라가면서도 자존심이 상한듯이 운전공처녀를 흘끔흘끔 쳐다본다.

《이 녀석 뭘 봐? 어서 가라. 어머니가 기다리겠다.》

주태섭부기사장은 이렇게 이르고 털이 군데군데 빠진 비로도로 안경알을 문대기 시작하였다. 안경알을 닦는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사색하며 사색하는것을 도와주는 촉매제의 역할을 수행하며 기계적인 운동을 하고있었다.

생활의 률조를 허물어버리고 《구경하는 립장에 서면 모험으로 생각된다》는 신념의 구조물을 세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안경알을 닦으며 사색하였겠는가?

잠시후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주태섭부기사장이 먼저 이야기를 건네였다.

《올해 날씨는 정말 변덕스럽구만요. 꼭 봄날 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러다간 저 서학산에 진달래가 또 피겠습니다.》

주태섭은 허리에 손을 짚으며 대답했다.

《필수도 있지요. 생활의 률조를 역행하는 현상이 어디 그뿐인가요?!》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