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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 회


제 3 장

12


몇개 직장의 야간생산지휘정형을 더 료해한 리진오가 지친 몸으로 종합청사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날이 잡힌지 이슥하였다.

부에서 비판을 받고 돌아온 후 지난 사흘동안 이렇게 밤과 낮이 따로 없이 일했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고 더우기 눈에 모래가 들어간듯 깔깔하고 아파서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데 아직 료해한 자료들을 종합하고 분석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기술혁신과 함께 생산지휘, 특히 야간생산지휘를 바로잡는 문제가 생산을 높은 수준으로 정상화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지 않는다면 그는 아마도 련일 이런 강행군을 하지 못했을것이다.

자기 방에 들어선 리진오는 엄습하는 졸음을 쫓으려고 창문을 열고 찬바람을 맞았다.

이른밤에 짙게 깔렸던 물안개가 걷히여 공장구내며 거리가 선명히 내다보였다. 아빠트들은 모두 불이 꺼지고 가로등만이 인적없는 거리에 점점이 널렸다.

어두운 거리아래쪽으로 보이는 대동강물이 달빛에 반사되여 은근히 빛나고있었다.

언제 보나 유정한 대동강이다.

형이 도하전투를 벌린 락동강의 첫 새벽도 저렇게 유정하게 보였을가? 아마도 형은 전투를 앞두고 이 대동강을 그렸을것이다. 여름이면 발가벗고 강물에 뛰여든 나에게 헤염을 배워주던 다정한 형, 가을이면 저 대동강물이 띠를 펼쳐놓은듯이 내려다보이는 서학산에 올라가 다람쥐를 잡아주던 그 인자한 형! … 그것은 서글프고 서글픈 추억이였다.

그리운 형은 어데 갔는가? 왜 형은 나의 곁에 없는가?

형은 명령을 집행하기 전에는 쓰러질 권리가 없다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중기의 압철을 눌렀다는데 나는 왜 일을 시작하자마자 불안에 싸여 자기 신념을 의심했던가? 비렬한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신념에 대한 의심은 비렬한 행동을 할수 있는 근원을 항시적으로 가지고있다는 표시가 아닌가.

그의 사색은 별찌처럼 균형에서 벗어나 충격적인 당비서의 자기비판의 이야기를 더듬다가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미쳤다.

어서 공장에 나가보라고 입술도 움직이지 못하고 이르던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 원망의 빛이 담긴 그 흐릿한 눈빛 그리고 그 눈주위며 이마와 볼에 요사이 갑자기 늘어난듯 한 주름이며… 큰형이 전사한 통지서를 받고도 그 충격을 꿋꿋이 이겨낸 아버지였다. 그런데 누구때문에? … 그리고 왜? … 저러시다가 아버지가 혹시?

리진오는 한꺼번에 습격하는 질문을 피해서 책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조금만 더!)

그는 자신을 격려하며 지난 사흘밤 료해한 각 직장의 야간생산조직지휘정형에 대한 자료들을 종합하고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아니, 조금만 더… 렴치없는 졸음같으니!)

이 자료에 근거하여 생산지휘에서 새로운 변혁을 일으키기 위한 직장장들의 모임을 소집할 계획이였다.

문짬으로 새벽랭기가 스며들어서 그는 옷걸이에서 솜옷을 벗겨 어깨에 걸치였다. 등은 훈훈해졌지만 손이 시리여 한참 손을 무릎사이에 넣고 비비고나서 분석한 내용을 적어내려갔다.

아직 한시간은 더 일을 계속하여야 할텐데 그는 도저히 견디여낼수 없어서 잠시 휴식할 생각으로 안락의자에 옮겨앉았다.

(어, 이렇게 편안한걸…)

그는 다리를 주욱 펴고 팔걸이에 손을 아무렇게나 내맡기며 속으로 외웠다.

최후통첩의 마감날은 지나갔다. 부에서 립장을 표명하라는 독촉의 전화가 올줄로 알았는데 무소식이다. 전화를 걸겠으면 걸라지, 회의때 이미 내 립장을 표명하지 않았는가?!

…갑자기 2천대의 뜨락또르군단이 들에서, 산판에서 장쾌한 동음을 울리며 달린다.

《열두삼천리벌에 아직도 낟알이 그냥 널렸단 말이요!》

부에서 비판받고 돌아온 날 판매과장에게 뜨락또르를 빨리 달라고 배정표를 내흔들던 바로 그 사람의 웨침소리가 들렸다.

《념려말라는데 왜 이렇게 떠드는거요?》

난데없이 맞받아 호령하는것은 강봉학직장장이였는데 지금의 그가 아니라 첫 뜨락또르를 만들 때의 젊은 강봉학의 얼굴이였다.

증기가 오느라고 배관에서 딱딱- 하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그는 놀라서 정신을 차렸다.

잠시 휴식한다는것이 두어시간 실히 자버렸다. 창밖은 벌써 훤하였다.

(아차, 늦었군!)

그는 부랴부랴 세면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로동자들은 벌써 거리에 떨쳐나섰을는지 모른다. 당위원회에서는 2천대증산고지점령에로 종업원들을 사상동원하기 위하여 직장단위로 출근을 조직한것이다.

공장을 나선 리진오는 아버지병세가 걱정되여 신사택쪽으로 향했다. 새벽의 서리찬 공기는 가슴이 얼얼하도록 시원하게 느껴졌다.

공장의 방송선전차가 거리와 사택마을을 누벼지나며 《뜨락또르공장 전투원들이여…》하고 격조높이 구호를 웨치다가 노래를 보낸다.

뜨락에 들어선 그는 아버지가 아직 잠들고있으면 방해가 될것 같아 부엌문을 열었다.

《어떻게 이 새벽에 왔니?》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아버진 괜찮다. 어서 들어가라. 출근한다고 새벽조반을 했다. 영진이녀석은 벌써 한술 퍼먹고 달려나가구… 그런데 왜 얼굴이 부석부석하냐? 조반은 먹었느냐?》

그가 사이문을 열자 리재협로인은 흐릿한 눈으로 아들을 쳐다보았다.

《어떠신가요?》

《오늘같은 날에는 일군들이 먼저 나가야 한다.》

부자는 동문서답을 했지만 감정으로 이어지는 대화였다.

리진오는 아버지가 이야기한 그 말속에 증산전투의 그 어떤 승리의 비결이라도 있는듯 한 예감을 느끼고 방에 앉지도 않고 다시 밖에 나갔다.

그가 지름길로 질러 큰길에 나섰을 때 저앞에서 영진이가 웬 처녀와 함께 걷고있었다. 말투로 보아 동창생같은데 나란히 서서 걷기가 멋적었던지 사이를 두고 걸으며 이야기하고있었다.

《동문 왜 이렇게 빨리 나가?》하고 영진이가 물었다.

《동문 왜 빨리 나가?》

처녀는 얼굴을 갸웃이 돌리며 되물었다.

《체, 앵무새같군.》

《남의 이름 묻기 전에 제 이름 먼저 대는것이 도덕인걸 모르나 뭐?》

《도덕을 다 찾구, 달라졌는데?》

《전 걸음새까지 달라지구두!》

처녀는 조금도 양보가 없다.

《달라졌다면 전기로공의 걸음걸이로 됐겠지.》하고 영진이는 전기로공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난 구호선창대에 뽑혔어. 빨리 가서 다른 동무들과 련습을 해야 돼. 근데 동무는 왜 이렇게 빨리 가?》

《나도 분공받았어.》

《무슨 분공?》

《빨리 나오라는 분공.》

리진오는 웃음이 나는것을 겨우 참았다. 그들을 따라앞서고싶었으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그대로 따라걸었다.

이 집 저 집에서 수도물소리, 아이들 깨우는 소리, 확성기에서 나오는 노래소리…

그런 소리와는 등지고 어느 중년로동자는 뜨락에 심은 배추밭에서 이미 소용이 없는 실오리같은 잡초를 뽑고있다.

《예분동무, 동무네 직장은 어디에 모여?》

영진이가 모자채양을 약간 들어올리며 물었다.

《립체다리옆에.》

《그 먼데? 그러니까 꼴찌에 섰구만.》

《동무넨 어디야?》

《우리 야금로동자들이야 응당 정문앞이지.》

《그 알량한 주강직장 사람들을 왜 앞장에 세우는지 모르겠어.》

《알량한 주강직장이라구?》

영진이는 거드름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우리 주강이 공장의 핵이니까 앞장에 세우는거지.》

《나같으면 창피해서라도 주강자랑 못하겠어.》

《뭐라구?》

《주강소재때문에 공장이 전진하지 못하는걸 동무는 몰라?》

예분이는 자기 직장을 꼴찌라고 한데 대한 보복으로 약을 올렸다.

영진이는 한참 갑자르다가 대답했다.

《이제 두고봐, 모두들 희뜩 눈이 뒤집힐 변혁이 일어나지 않나 두고보란 말야.》

《변혁? 변혁이 아니라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거라던데?》

《뭐이 어쨌다구?… 동문 왜 남을 모욕하는거야?》

영진이가 무서운 기상으로 가까이 가자 예분이는 슬슬 피하며 대답했다.

《모두들 그러던데 뭐.》

《그건 중상이야, 중상!》

《사실인데 왜 중상이라구 해? 언제 소재를 제때에 보장해준적이 있어? 〈호랑이직장장〉이 〈시라소니직장장〉으로 되여서 그렇다던데…》

《뭐, 시라소니?》

영진이는 약이 올라 소리쳤다.

《그런 소리 첨 들어? 소문이 자자해. 시라소니로 되여 직장장사업을 인차 그만두게 된다구들 하더라니까.》

《동문 도대체 그따위 비방중상 누구한테서 들었어? 엉, 누구한테서 들었냐 말이야?》

(종내 소문이 퍼졌군.)

리진오는 국장이 그런 소리를 자꾸 외우던것을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그때 마침 마주오던 사람이 기사장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바람에 예분이는 기겁을 하며 냅다 달려가버렸다.

《기침이라두 좀 하지 않구.》

영진이가 삼촌을 흘겨보며 두덜거렸다.

《그게 누구냐?》하고 리진오가 물었다.

《동창생이예요. 오선달직장장동지의…》

리진오는 예분이가 자기 아버지한테서 해임소문을 들었으리라고 짐작했다. 소문이 저렇게 퍼졌으니까 강봉학직장장의 귀에까지 들어갔을는지 모른다. 호랑이기상을 가진 직장장이지만 그 역시 인간이니까 커다란 충격을 받을것이다. 공장의 금후운명이 주강소재생산에 크게 달려있는 지금 그것은 참으로 큰 타격이다.

《삼촌!》

영진이가 명상에 잠긴 리진오의 얼굴을 살피다가 물었다.

《무슨 생각해요?》

《생각은 무슨 생각. 빨리 가자!》

《삼촌은 새달에도 계획 못할가봐 걱정하지요? 다 알아요. 그러나 걱정말아요. 우리 전기로공들은 비상한 결심을 하고있어요.》

어른스러운 어조였다. 리진오는 조카가 이미 당당한 로동자로 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건넸다.

《야 영진아, 하나 묻자.》

《뭔데요?》

영진이는 자기가 기사장의 이야기상대로 된것이 자랑스러워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쳐다본다.

《너 2천대증산과제를 수행하는데 두가지 방도가 있다는걸 알고있지?》

《잘은 모르지만 알고있어요.》

《하나는 도처에서 기술혁신을 벌리고 로동생산능률을 높이여 생산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하자는거구 또 하나는 보조부문과 간접부문의 력량까지 직접 생산에 들이밀어 인해전술로 하자는건데 네 생각엔 어느쪽이 옳은것 같니?》

《당에서 하라는대로 해야지 않나요?》

《당에선 생산을 높은 수준으로 정상화하라고 호소하고있다. 그런데 내가 생산지휘를 잘하지 못해서 정상화방법으로 증산계획을 할수 있는 방도를 못 찾고있다. 인해전술을 쓰면 목표를 점령할 가능성은 있는데 귀중한 설비들이 망가지게 되고 사람들이 녹아난다.》

《참, 삼촌도. 그런데 그걸 왜 물어요?》

영진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거기에 의견들이 있어서 그러지.》

《거기에 무슨 의견들이 있구 생각할것이 있나요. 응당 당에서 하라는대로 해야지요!》

리진오는 말보다 먼저 조카의 잔등을 철썩 갈겼다.

《그렇단 말이지?》

《허참, 당에서 하라는대로 해서 안되여본적이 있나요?》

《없지. 없구말구!》

리진오는 환희에 차서 부르짖었다.

왜 그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이 사흘동안 가슴을 앓았던가?!

…대렬이 정문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당에 보고드린 2천대증산과제를 기어이 수행하고야말 결의를 안고 출근하는 로동자들을 축하하려고 시안의 일군들, 가족들 그리고 학생들이 정문에서부터 립체다리까지 늘어섰다.

출근대렬의 맨 앞장에서는 주강직장의 수백명 대렬이 보무당당히 걷고있었다. 그 대렬의 앞에는 《주강직장》이란 표식판을 든 강봉학직장장이 섰다.

길 좌우켠에서 꽃보라를 뿌리고 노래를 부르며 환영하였고 영진이네 구호대원들의 선창에 따라 소재생산을 선행해서 2천대증산고지를 기어이 점령하자고 웨치는 우렁찬 목소리가 대렬속에서 연방 터져나왔지만 강봉학직장장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얼굴로 묵묵히 걷고있었다.

《지금 출근대렬의 선두에는 주강직장 전투원들이 섰습니다.》

대렬이 정문에 접근하자 방송선전차에서 방송원이 격조높이 웨쳐대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이달안으로 반드시 2천대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돌파구를 열어제낌으로써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의 보고를 드리기 위한 불같은 결의가 어려있습니다. 그 대렬의 선두에는 지금으로부터 20년전 11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으로 기관본체조형에서 성공하여 첫 뜨락또르의 동음을 울리게 한 강봉학직장장이 앞장서고있습니다.》

기동예술선동대처녀들이 달려나가 혁신자들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강봉학직장장앞에 간 처녀는 《온 공장이 직장장동지를 쳐다보고있어요.》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강봉학직장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안다, 알아!》

출근대렬에 박수를 보내던 리진오는 박철산당비서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조금전에 예분이한테서 들은 해임이야기를 꺼내려다가 또다시 함성이 터지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공무전투원동무들!》 방송선전차에서 방송원이 웨치였다.

《설비의 만부하, 만가동에 커다란 예비가 있다. 예방보수체계를 철저히 세우고 3개월분의 예비부속품을 마련하여 2천대증산전투에서 단 한건의 사고도 없게 하라!》

오선달직장장은 《2공무직장》이라는, 유독 크게 만든 표식판을 자기가 아니라 청년들 둘이서 들게 하고 그 앞장에서 대머리를 번쩍거리며 걷고있었다.

그는 딱 바라진 어깨를 더 제낄래야 제낄수 없으리만큼 폈다. 기동예술선동대처녀들이 꽃목걸이를 걸어주자 그것을 인차 벗어서 뒤따라오는 상고머리부직장장에게 걸어주었다. 그 겸손한 소행에 감탄한 기동예술선동대원들이 우르르 달려나가 직장장을 목말에 태웠다. 직장장을 목말에 태우기는 처음이다.

출근자들에게 끊임없이 박수를 보내던 박철산당비서는 보조부문대렬이 지나가고 잠시 생긴 공간에 리진오에게 물었다.

《사흘이 됐는데 부에 보고했소?》

《아니요.》

《오늘이라도 일찍 보고하오. 그래도 상급의 지신데 그러면 되겠소?》

《이야기를 시작하면 흥분을 억제하지 못할것 같아 그럽니다.》

간접부문의 대렬이 정문에 들어서자 다시 환영소리가 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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