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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 회


제 3 장

11


박철산당비서는 시당에 갔다가 뒤늦게 리재협로인을 찾아갔다. 로인이 온갖 시름을 놓고 고르롭게 숨을 쉬며 잠이 든것을 보고야 마음이 놓여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로동자들이 뜨락에 들어서서 진오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더니 이윽고 뜨락은 조용해졌다.

박철산은 진오의 어머니가 방안에 들어왔지만 그린듯이 앉아서 잠자는 로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그는 오늘에야 로인의 얼굴이 전후에 작업반장사업을 하던 때의 얼굴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는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채양 가운데가 꺾어진 작업모를 꾹 눌러쓰고 허리띠에 세면수건을 달아매고 다니던 작업반장시절의 결패있던 얼굴은 륜곽만 남았다. 세월이란 이렇게 무자비한것인가?

50전후의 리재협작업반장은 젊은 사람처럼 얼굴과 온몸에 단단한 살이 붙어있었는데 눈은 우묵하게 패이고 광대뼈가 두드러진 얼굴에는 살가죽만 늘어졌다. 마치도 어느 고약한 놈이 마음좋은 로인한테서 젊음을 빼앗아간것처럼 분했다. 영원히 젊음을 보존해서 공장사람들의 앞장에 서주었으면 하는 그였다. 로인이 지금도 옛 그대로 남아있다면 증산투쟁에서 어려운 모퉁이를 막아주었을것이며 공장이 지금과 같은 진통을 겪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박철산에게는 로인이 단순한 옛 작업반장이 아니라 로동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준 은사였고 당을 어떻게 받드는것이 로동계급인가 하는것을 가르쳐준 혁명의 선배였다.

제대군인 박철산은 리재협의 제관작업반에 배치되여 일하기 시작하였다.

전쟁후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강냉이는 밭곡식의 왕이라는 구호를 제시하시였는데 그 구호가 당보에 발표된 다음날이였다.

리재협반장은 소학교학생들이 쓰는 작은 공책을 뒤주머니에다 찌르고있다가 무엇인가 생각이 떠오르면 꽁다리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그 며칠후부터 반장은 저녁마다 일이 끝나면 직장의 한쪽구석에 남아서 무엇인가 뚝딱거리군 하였다. 반장이 무엇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호기심많은 박철산이 작업반장에게 늘어붙어서 무엇을 만드는가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리재협작업반장은 그를 흘끔 쳐다보았을뿐 다른 사람들이 물어볼 때처럼 《아무것도 아니야.》하는 한마디뿐이였다.

《허참, 만드시면서 아무것도 아니라니요?》

박철산은 사람대접을 해주지 않는것 같아서 모욕을 느끼고 부르튼 소리를 했다. 그러나 반장은 여전히 같은 대답이였다.

《아무것도 아니라는데두 그래.》

박철산은 무엇을 만드는지 궁금해서 견딜수 없었지만 반장은 더는 대척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도 반장의 자물쇠같은 입은 열리지 않았다.

며칠후였다. 작업반장은 박철산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집요하게 관심을 가지고있는데 마음이 끌렸던지 드디여 입을 열고 상대를 해주었다.

《여보게, 날 좀 도와주겠나?》

《도와드리구말구요.》

박철산은 무슨 큰 희망이나 이루어진듯이 기뻐했다. 반장은 주위를 돌아보고나서 비밀이라도 이야기하듯이 귀속말을 했다.

《난 지금 강냉이탈곡기를 만들고있어.》

잔뜩 호기심이 동했던 박철산은 하는 일이 고작 그것이였는가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리고말았다. 그도그럴것이 공장에서는 그때 벼탈곡기를 전문적으로 만들고있었는데 벼탈곡기를 더 많이 만들어낼 연구를 한다면 몰라도 공장의 생산지표에도 없는 강냉이탈곡기를 만든다니 웃음이 나가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작업반장은 웃고있는 박철산을 못마땅하게 노려보더니 그의 머리를 쥐여지르며 나무랐다.

《로동계급의 머리가 그렇게도 돌아가지 않아?》

결국 실없는 웃음탓에 열흘동안 공들인것이 다 틀어지고말았다. 박철산은 강냉이탈곡기를 만들든 무엇을 만들든 도와줄 생각으로 웃통을 벗었는데 반장은 뜻밖에 알던 정 보던 정 없이 싹 잘라 대답했다.

《그런 머리 가지고는 날 돕지 못해. 물러가라구, 어서 물러가.》

박철산은 그 다음날도 역시 반장의 곁에 범접할수 없었다. 생각다 못해 며칠후 그는 맥주를 한병 뒤주머니에 찌르고 반장네 집에 갔다.

밤이였다.

멀리서 도드락도드락 다듬이소리가 들려왔다.

《강냉이탈곡기때문에 왔단 말이지? 내 찾아올줄 알았어!》

반장은 즐겨하지 않는 맥주를 앞에 놓고 이렇게 되뇌이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이봐 철산이, 생각해보라구. 어버이수령님께서 강냉이는 밭곡식의 왕이라는 구호를 제시해주시지 않았나. 그러니 이제 온 나라 밭에서는 강냉이농사를 짓게 될거란 말이야.》

《아마 그렇게 되겠지요.》

박철산이 이렇게 대답하자 반장은 며칠전처럼 그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소리쳤다.

《아마 그렇게 되겠지가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되네. 어느분의 가르치심이라구 그렇게 떨떨한 소리를 하는가? 난 자네가 속이 단단한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헛뺑뺑이야. 그렇게 생각하는것부터가 아직 로동계급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란 말이야.》

박철산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예, 그렇게 됩니다.》하고 고쳐 대답했다.

그제야 반장은 안색이 밝아지며 상대를 했다.

《그렇게 강냉이를 많이 심으면 탈곡이 문제로 될거란 말이야. 로력도 바른데 강냉이알을 손으로 뜯을수는 없잖나. 자, 어서 임자도 들라구. 이봐 철산이, 그러니 이젠 왜 우리가 벼탈곡기만 아니라 강냉이탈곡기도 만들어야 하겠는지 알겠지. 자, 어서 쭉 마시고 래일부터 손잡고 해보세.》

박철산은 공장지휘부에 들어앉아있던 종파나부랭이가 국가과제나 더하지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리재협로인에게 압력을 가하던 일이 지금도 눈앞에 선했다.

만약에 그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그 모욕과 수모를 견디여내지 못했을것이며 당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차리는 리재협로인이 아니였더라면 그때 강냉이탈곡기는 태여나지 못했을것이다.

지난날을 더듬던 박철산은 잠자는 로인의 곁에서 물러났다.

《기사장은 왔댔는가요?》

《저녁때 온걸 령감이 공장에 나가보라구 보냈다우.》

얼마후 박철산은 뜨락에 내려와 살구나무우에 올라앉은 달을 한참 바라보다가 차씨에게 말했다.

《제가 공장에 나가서 기사장을 들여보내겠습니다.》

메질을 하고 강봉학과 헤여진 리진오는 그 시각에 2주물에 가있었다. 그는 직장장과 마주앉아 야간생산지휘정형을 료해하다가 당비서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에서 박철산당비서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아침에 아무때고 편리한 시간에 당위원회에 와달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 사과의 말부터 하였다.

《약속을 어겨서 안됐습니다. 이제 곧 당위원회에 가겠습니다.》

《허허… 난 식당에 있는데 당위원회에 가면 어떡허우?》

당비서의 걸걸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어서 와서 저녁이나 먹읍시다. 기다리겠소.》

《먼저 하십시오. 곧 가겠습니다.》

《혼자 먹을 재미야 있소? 기사장이 입맛을 젖히고있다구 록두지짐을 부쳤구려. 덕분에 나도 잘 먹게 됐소. 벌써 23시가 지났소. 어서 오시오.》

밖에 나오자 리진오는 갑자기 허기증을 느끼였다. 초저녁에 아버지한테 달려갔을 때 어머니가 아무데서나 한술 들고 나가라는것을 그냥 나와버렸던것이다.

그가 식당에 들어서자 탁자에 놓인 화보를 뒤적이던 박철산당비서가 주방에 대고 《기다리던 사람 왔수다.》하고 명랑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가 앉기가 바쁘게 말했다.

《내 이제 집에 갔다가 어머니가 주는 맥주를 마시고 왔소.》

박철산당비서는 지나가는 말처럼 대수롭지 않게 하였지만 리진오는 아버지의 병세대신에 그렇게 말해주는것이 오히려 고마왔다.

《당비서동진 왜 아직 식사를 안했습니까?》

《글쎄 모르겠소. 그렇게 됐구만.》

박철산당비서는 이렇게 넘기고 그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집에 가볼걸 그랬소. 기사장이 옆에 있으면 어머니에게 힘이 될게 아니요.》

《내가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

《그러지 말구 식사하구 가도록 하라구.》

후문에 달아매놓은 확성기에서 독창과 기악합주로 편곡한 새 영화의 주제가가 은은히 들려온다.


포연이 흐르는 산과 들 넘어

달려온 싸움의 길 그 얼마였던가


노래장단에 맞추어 손가락끝으로 식탁을 가볍게 두드리던 박철산당비서는 식당아주머니가 록두지짐을 들고들어오는것을 받으며 필요이상의 큰소리로 말했다.

《그 냄새 구수하다. 자, 어서 들자구. 지짐이란 따끈할 때 먹어야 먹을 맛이 있는거요.》

한참 밥을 먹던 박철산당비서가 갑자기 생각난듯이 기쁜 얼굴로 이야기를 건넸다.

《낮에 부기사장이 그러던데 선희동무의 압착기가 성능이 대단할거라구 하더군. 이제 주강이 허리를 펴게 될게요.》

《예비야 도처에 널려있지요. 뭐 예비가 없어서 생산을 끌어올리지 못합니까?》

박철산은 그가 밥알을 한알두알 세듯 입에 떠넣는것을 보며 말했다.

《자, 우리 밥먹을 때나 일에서 해방되여봅시다. 푹푹 떠넣어야지 그래가지고 무슨 기운으로 일하겠소.》

얼마후 그들은 천천히 공장구내를 걷고있었다. 계절을 거슬러 대동강에서 피여오른 물안개가 공장구내에 퍼지여 가로등이 조는듯 몽롱하게 보였다.

리진오는 당비서의 걸음이 떠지는것을 알아차리고 그의 거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습도가 높아질 때마다 박철산당비서는 전쟁때 전선에서 다친 다리가 아파나서 고생을 한다.

《말쨉니까?》

《이놈의 다리도 바쁜 대목을 아는 모양이요.》

《좀 쉬십시오.》

《어디 공장이 쉬게 하오? 기사장은 끼니도 잊고있는데.》

박철산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진통을 참다가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솔직히 말씀해주십시오.》

리진오는 열기띤 목소리로 말했다.

《당비서동진 내가 증산전투를 이끌어나갈수 있다구 생각하십니까?》

《…》

박철산당비서는 흥분한 그를 관찰하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난 부에서 위협할 때에도 내 신념을 견지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경우든 나는 내 생각을 굽히지 않을겁니다. 그러나 생산정상화가 생산장성의 담보라는것은 세련된 령도예술을 전제로 하는겁니다.》

자동차가 지나가며 전조등으로 부채형그림자를 그렸다.

《왜 이야기를 그치우?》

《다 아시는걸 새삼스럽게 이야기해서 뭣합니까?》

《내가 뭘 안다고 그러우? 령도능력타령 말이요?》

왕래하는 자동차들이 여러번 부채형의 그림자를 그린 후 박철산당비서가 자책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계획미달에 대한 책임추궁은 동무가 아니라 내가 받아야 했소.》

《내가 그런 동정이나 기다리고있는줄 압니까?》

《내가 언제 동무에게 겉치레로 이야기한적이 있소?》

《사태를 그렇게 감상적으로 평가해서 나나 당비서동지에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입니까?》

《진오동문 왜 나를 당비서라고만 생각하오? 난 당비서이기 전에 보통당원이고 또 지난날 수다한 돌격전투에 참가하였던 제관공이였다는걸 왜 동무는 생각하지 못하오? 그런 나였기에 나도 처음에는 동무의 구상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했었단 말이요.》

당일군이 말하는것은 항상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교양되고 박철산은 제관공시절부터 당에서 요구하는 일에 언제나 앞장섰다는것을 잘 아는 리진오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새삼스럽게 당비서를 쳐다보았다.

《확신이 없었을뿐아니라 계획미달에 대한 불명예가 차례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소.》

박철산은 마치 남을 나무라는듯이 목청을 높여 말하다가 뚝 그치고 담배에 불을 붙이였다. 자기 속생각을 터놓고 생각해보니 그것은 너무나 저급한것이고 또한 그속에는 너무나 큰 문제가 스며있는것 같아 얼굴이 뜨겁고 가슴이 답답해서 이야기를 계속할수 없었던것이다. 애로와 난관에 겁을 먹거나 책임을 회피하는것은 패배주의의 속성이다.

그는 담배연기를 날리며 자기가 언제부터 그런 저급한 생각을 하게 되였던가 하고 더듬어보았다. 가렬처절했던 락동강전투때에도, 준엄했던 첫 뜨락또르를 만드는 전투때에도 전투를 앞에 놓고 흥정을 하지 않았고 더우기 책임모면따위생각은 전혀 해본적이 없었다. 오직 강을 건느고 뜨락또르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였다. 아마도 좋은 조건에서 일하는데 습관되여 불리한 조건에 부딪치자 놀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였을것이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되기마련이니까 지난날을 잊을수도 있다. 그러나 당비서인 자기만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정신상태가 변하지 말았어야 할것이다. 당비서인 자기의 립장이 명백했더라면 낡은 생산경험에 물젖어있는 직장장들의 관점을 바로잡기 위한 투쟁을 벌렸을것이며 결국 생산정상화는 응당한 생활력을 나타내기 시작했을것이다.

그는 모두숨을 치쉬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난달계획을 미달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말을 동무는 외교적인 소리라고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요. 나는 이미 상급당에 그 문제에 대해서 자기 비판을 했소.… 사람이 자신을 안다는것은 정말 힘든 일이구만, 정말 힘든 일이요. 나자신을 좀더 빨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하려던 리진오는 그의 얼굴이 너무 엄숙해서 그만두고 자기 이야기를 했다.

《저 역시 자기자신과 싸웠습니다.》

리진오는 당비서가 눈에 띄게 발을 저는것을 발견하고 말했다.

《내 어깨에 의지하십시오.》

《젠장, 날은 왜 이렇게 변덕스러운지 모르겠소. 내절로 걷겠소. 저기 로동자들이 오지 않소.》

《보면 뭐랍니까?》

《안 보이는것이 더 좋지. 허참, 현대의학의 성과가 어떻구 소란스럽게 떠들지만 내 다리는 그것을 비웃으며 여전히 이렇게 말썽이라니까. 동무가 어렸을 때 아버지 점심 들고나왔다가 내 다리 두드려주군 하던 일 생각나오?》

《생각나지 않구요. 사람들이 다 지나갔는데 어서 의지하십시오.》

박철산은 그가 말하는대로 몸을 의지하고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때 우리는 힘내기로 일을 했지. 먼지속에서 조형을 했구, 두드려서 제관품을 만들구, 손바닥으로 연마하구, 정말 어려운 때였소. 그때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높은데 올라섰소? 로동하는 도구도, 로동하는 방법도 다 달라졌소. 그러니 공장관리와 생산지휘에서도 질적비약이 일어나야 하겠는데 그걸 누가 담당해야겠소?》

리진오는 더는 아무 대꾸도 못했다. 이윽고 박철산이 다리가 아파나서 걸음을 멈추자 어느 전투때 부상을 당했는가고 물었다.

《락동강도하전투때요.》

《내가 왜 그걸 모를가요?》

리진오는 어렸을 때 제대되여 돌아온 박철산과 한정빈에게 짬만 있으면 전투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던것이다.

《내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게지.》

박철산은 락동강전투이야기를 꺼내면 어린 진오가 자기 형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것 같아서 그것을 입밖에 내지 않았던것이다.

…그날따라 락동강에는 파도가 일어 숙어지지 않았다.

몇척 안되는 매생이에는 박격포와 탄약을 실었다. 허허벌판이여서 떼목을 무을 통나무가 있을리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모두 신변기재를 리용하여 헤염쳐 건너야 했다. 사람들은 헤염쳐 건는다쳐도 중기관총이 문제였다. 병사들은 불탄 집에서 얻은 나무토막을 모아 떼목을 무었지만 나무들이 변변치 못해서 기관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지혜는 그것을 극복할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고야말았다. 온 소대의 물통과 밥통을 밀페해서 떼목주위에 달아맸다. 마침내 기관총을 실은 떼목은 물우에 떴다.

중기관총수인 진오의 형 진규는 부사수와 함께 그 떼목을 밀며 강을 도하하기 시작했다. 부대는 물안개가 피여나기 시작한 이른밤에 은밀히 물에 들어섰지만 미구에 발견되여 놈들의 총포탄이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널름거리는 뱀의 혀같은 놈들의 탐조등빛이 가로세로 강물을 비치였다. 그 불빛에 총포탄이 강물에 꽂히여 무수한 물기둥을 이룬 모양이 흡사 소나기가 쏟아지는것 같아보였다. 많은 병사들이 총탄에 맞아 물속에서 다시 솟구쳐오르지 못하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떼목우에 놓인 중기관총이 세찬 보복의 불을 뿜기 시작했다. 기관총수 진규가 대안의 화력을 자기에게 유도하여 전우들의 도하를 엄호하려고 떼목에 기여올라 압철을 누른것이다.

기관총수가 떼목에 오르자 그 주위에서 헤염쳐나가던 병사들이 떼목을 어깨에 받치여 기관총이 물에 잠기지 않게 하였다.

진규가 예견한것처럼 탐조등도 화력도 중기관총으로 집중되여 떼목을 어깨에 받치고 헤염치던 병사들이 하나둘 물에 잠기여버렸다.

적탄이 진규의 목과 왼쪽어깨를 뚫었고 파편이 팔의 살점을 뜯어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였고 의식이 몽롱해졌지만 그는 중기를 가슴에서 놓지 않았다. 떼목이 대안에 닿은 다음에야 병사들은 의식을 잃고 떼목우에 쓰러진 진규를 발견하였다. …

가렬처절한 전투가 있은 때부터 30년이 가까와오지만 박철산은 의식을 잃은 진규를 부여안고 눈물을 뿌리던 그 밤이 어제일처럼 선히 눈앞에 떠올랐다.

그는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한참 슴벅거리다가 말했다.

《그때 도하명령을 받은 우리 병사들은 그 누구도 도하기재가 없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구 도하를 못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 나도 역시 그랬소. 오직 명령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였다니까. 그랬던 내가 증산전투명령을 받고는 왜 그 수행여부를 의심했는지 모르겠소. 정말 모를 일이야.》

리진오는 회오에 잠긴 목소리가 듣기 거북하여 권했다.

《그 이야긴 그만두십시오.》

《그것이 나 혼자의 일로 그치는 문제라면 크게 생각하지 않겠소. 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이 먼데 신들메를 풀어헤치고 사는지 모르겠단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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