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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회


제 3 장

8


남의 비판을 속에 꼬깃꼬깃 간직해두는 성미가 아닌 강봉학이였지만 자기때문에 기사장이 부에 가서 호된 비판을 받았다는 국장의 말이 명치에 맺혀 내려가지 않아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직장안을 빙빙 돌아다니였다. 그는 벌써 아침부터 기사장을 만나 회의과정을 알고싶었지만 리진오앞에 나설 면목이 없어서 찾아가지 못했다.

언제부터 이 강봉학이 공장의 짐으로 되였는가.

생각할수록 서글픈 일이였다.

어느 녀석인가 호랑이직장장은 《전시대의 유물》이라고 했다는 말이 생각났고 도표판앞에서 시라소니라고들 주고받던 말들도 새삼스럽게 들려왔다. 그래서 강봉학은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직장안팎을 발이 나가는대로 걷고 또 걸었다.

(나는 그렇다치고 뭐 우리 기사장이 상급당에 도전했다구?)

자기 생각에 잠겨 맥을 놓고 걷던 강봉학은 도전이라는 말이 떠오르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대관절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데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렝이가 나가는지 모르고 말하는가?)

분을 삭이지 못한 그는 목형문제때문에 모형직장에 갔다가 키꺽다리직장장이 《내 기사장이 그런 경을 칠줄 알았다니까.》하고 싱거운 소리를 했을 때 그의 멱살을 거머쥐여 주위사람들을 아연케 하였다.

그는 기사장이 정말 그런 비판을 받았는지 알아보지 않고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어서 전화통을 안고앉아 그를 찾았다. 그러나 기사장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송수화기를 놓을 때 박철산당비서가 방에 들어왔다. 주강직장사업을 도와주려고 현장에서 로동자들과 담화를 하다가 온 당비서였는데 강봉학은 여차하면 달려들어 실력행사를 할것 같이 눈에 독이 올라서 말했다.

《일을 하자고 애쓰는 기사장에게 도전이요, 법이요 하고 위협했다니 이건 언어도단이 아니요?》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던 박철산당비서는 창가에서 팔을 엇바꾸어 그러안고 쇠물을 주입하는것을 이윽토록 내다보다가 대답하였다.

《하여간 지난달에 우리가 계획을 하지 못한건 사실이 아닙니까?》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사람을 마구 두들겨패는 법이 어디 있소?》

강봉학은 당비서가 한가한 대답을 하는것이 비위를 건드려 맞받아 소리쳤다.

《도대체 기사장이란 사람은 종일 어디서 무얼 하우?》

박철산당비서는 대답대신에 직장장에게 담배불을 빌려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래, 기사장은 어떻게 할 작정이랍디까?》

《아직 모르겠습니다.》

《모르다니요? 그 사람이 당위원회에 찾아오지도 않는단 말이요? 어려운 때일수록 당위원회에 의거할 생각을 해야지 왜 혼자 끙끙 앓고있는가 말이요. 난 그걸 보고만 있는 당비서동지의 처사도 모르겠수다.》

《그냥 내버려두시우. 생각이 많을겁니다.》

《생각만 하면 뭘하우, 일을 내밀어야지.》

《기사장도 당위원회에 찾아오고싶겠지요. 사람이 그리울테니까요. 허지만 그는 찾아오고싶은걸 참고 찾아오지 않을겝니다.》

《나는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수다.》

박철산당비서는 한참 담배를 빨다가 생각이 깊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어제와 오늘 기사장의 생활을 주의깊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여느날처럼 제시간에 참모회의를 소집했구 직장에 나가 걸린 고리도 푸느라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또 신입생들을 위한 환영공연에 가서는 제대군인들 틈에 끼워앉아 떠들썩하게 웃기도 했습니다. 어느모로 보나 누가 보나 기사장은 전과 다름이 없는 보통 로동일을 보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랬겠지요.》

《그렇습니다. 기사장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의 이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시련을 이겨내며 정상적인 로동일을 보냈습니다. 그 정상적인 로동일속에는 얼마나 괴로운 비정상적인 생활이 숨어있습니까. 그는 정상적인 사업을 다 하고는 밤을 거의 밝혀가며 또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해보려고 직장들의 야간생산조직과 생산지휘정형을 료해하고있습니다.》

(아무렴, 그가 호락호락 꺾어질 사람이라구?!)

강봉학은 속으로 외웠다.

《직장장동지는 기사장이 왜 당위원회에 찾아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나무라운 소리를 했지만 그건 나에게도 해야 할 말입니다. 내가 먼저 진오동무를 찾아가서 도움을 줄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와 마주앉아야 빈 위안의 말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나 역시 그렇군.) 하고 강봉학은 자기가 기사장을 만나려고 찾은 일을 회상하며 생각하였다.

《직장장동지는 그의 고민을 리해하고 상급의 처사에 분개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직장장동지는 어제와 오늘 그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지금 우리에게는 위안이나 분개가 필요한것이 아니라 그것을 혁신으로 전환시키는것이 필요한것입니다.》

박철산당비서가 돌아간 후 강봉학은 우리안에 갇힌 호랑이처럼 안절부절하며 왜 나는 분노하는데 그쳤는가 하고 자신에게 물었다. 행동이 없는 분노는 눅거리인정에 지나지 않으며 항심이 없는 격분은 감정의 변덕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이래서 시라소니라고들 하는 모양이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인간이니까 아래사람들한테서 수모를 받고 국장한테서 모욕을 당하지. 그래 싸지 싸!)

강봉학은 자신을 한바탕 꾸짖었는데도 속이 내려가지 않는다.

창턱에 놓은 국화가 시들어서 잎이 축 처지였다. 통계원처녀가 얻어다가 놓은 화분인데 그는 언제 자기가 물을 주어보았던가 하고 더듬어보았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놈은 남의 손을 바라고 사는거니까 시든다치구 사람이야 왜 시들겠는가? 시들지 말구 있다가 명이 되면 떨어져버려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화분에 물을 주던 그는 불현듯 생각이 떠올라 물을 흘리며 옆사무실문을 열었다.

《통계원동무, 로장을 불러주우.》

《어느 로장 말인가요?》

《김기룡이지 누구겠소. 빨리 부르라구!》

무슨 급한 일이 제기된줄로 알고 달려온 김기룡이 문을 열기가 바쁘게 강봉학이 소리쳤다.

《도면수정 다했소? 기사장동무가 의견을 주었다던데 다 고쳤는가 말이요?》

《이젠 거반…》

영문을 모르는 김기룡은 땀을 훔치며 어물어물 대답하였다.

《거반 됐으면 나 좀 보자구.》

《정리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 지금 당장 봐야겠네.》

강봉학은 손바닥을 내들며 말했다.

《어지럽습니다.》

《어지럽겠지. 벌써 몇번 뜯어고쳤는데 깨끗하겠는가? 뜯어볼수만 있으면 돼. 기사장이 수표했나?》

《아니, 아직…》

강봉학직장장은 요행 자기의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여 도면을 완성할수 있게 되였다고 마음이 놓여 말했다.

《도면에는 내가 먼저 도장을 찍어야 해. 알겠나? 왜 그러구 앉았어, 빨리 도면을 가져오라는데.》

얼마후 그가 도면을 가져오자 강봉학은 통계원에게 누가 찾아도 없다고 말하라고 이르고 사무실안에서 열쇠를 잠그었다.

도면을 검토하고있는 강봉학의 얼굴에는 직선과 곡선이 복잡하게 뒤엉킨 도면처럼 복잡한 표정의 파동이 지나갔다. 밝아졌다가는 갑자기 긴장해지고 긴장해졌다가는 이윽고 따뜻한 미소가 피여나던 그의 얼굴은 대리석조각상같이 랭랭하게 굳어졌다.

전번에 기룡이가 보아달라던 도면은 아직도 서류함속에 있는데 그때의 도면과 새 도면사이에는 비약이 가로놓여있다. 불과 얼마사이에 김기룡은 몰라보게 자랐는데 나는 그 낡은 도면처럼 그전날의 강봉학이 그대로이다.

(망할 녀석, 입이 붙었댔나?)

그는 김기룡이 당위원회에 찾아가서 이 강봉학이를 기술신비주의자이고 보수주의자라고 호소했더라면 자기가 비판을 받고 벌써 정신을 차렸을것이 아닌가싶어 그렇게 귀먹은 욕을 했다.

(내 눈에 안개가 끼였어. 보통안개가 아니라 진한 안개가 끼였어.)

얼마후 그는 김기룡이를 불렀다.

《어서 들어오게. 두드리기나 새나!》

김기룡은 흰 방열모를 구겨쥐고 직장장앞에 앉았다.

《왜 여태 이 도면을 끼고있었어?》

강봉학은 방금전까지 자책하던 사람같지 않게 꾸짖었다.

김기룡은 그의 고함소리를 어떻게 해석했으면 좋을지 몰라 대답을 못했다.

《이젠 다 된건데 빨리 시험생산을 해야지. 근데 왜 늦장을 부려? 내가 반대할가봐? 내가 반대하면 밀어제끼고라도 해야지! 사나이가 그런 담력도 없어? 못난이같으니!》

한참 떠들던 강봉학은 담배를 그의 앞에 밀어놓으며 부산스럽게 성냥을 켰다.

《이걸 주태섭부기사장과 토의해봤나?》

《부기사장덕분에 이만큼 된겁니다.》

《그래?! 그 동갑이가 소매걷고 나서면 무섭게 일을 제끼지.》

강봉학의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자, 이젠 거반 다 됐으니 무조건 이번주에 완성해서 생산에 도입하자구.》

《아직 손을 좀더 대야 합니다.》

《아니야, 이번주엔 무조건 도입해야 돼! 기사장이 누구때문에 그 창피를 당하고 돌아왔는지 알아? 우리때문이란 말이야. 우리 주강때문이야.》

《그래도 며칠만 더…》

《왜 또 며칠이야.》

《여기 말입니다. 이 랭각수공급계통이 미타합니다. 그런데 어디 좋은 생각이 떠올라야지요.》

《바쁜 땐 생각도 빨리 떠올라야지. 정신을 여기다 쏟아부으면 좋은 궁리가 떠올라. 자네가 늘 은하생각을 하니까 그 처녀에게는 좋은 궁리가 떠올라 이야기해줄수 있지 않았나.》

《허참, 그건 무슨 말씀인가요?》

김기룡은 놀라서 반문했다.

《내 선희기사한테 다 들었어. 자네가 그 처녀에게 기능공양성사업에서 앞장서라구 귀띔해주었다구 하더군. 그게 얼마나 좋은 생각인가!》

《내가요?》

영진이가 은하에게 말을 날라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것을 김기룡은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시치미를 떼지 않아도 좋아. 은하가 그렇게 말했다는데 뭘 그래, 흐흐… 난 그런줄 모르고 자네가 그 처녀때문에 골을 앓고있는줄만 알았지.》

김기룡은 전혀 갈피를 잡을수 없는 말이지만 어쨌든 은하와 관계되는 말이기에 더 캐여묻지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되여 담배를 꺼냈다.

《여보게, 그렇게 숨박곡질하지 말구 이번 설날엔 잔치를 하세. 그놈의 처년지 사랑인지 하는것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일 그르치겠어.》

《허참, 직장장동지두.》

《허허… 신식련애란 까다롭기도 하군. 하여간 내 자네 어머니한테 그렇게 편지쓰겠어. 그 문제는 그렇게 락착짓구 모든 정신을 여기다 쏟아붓게. 이 도면 오늘밤 내가 좀 봐두 괜찮지?》

주태섭부기사장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였다.

강봉학직장장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도면을 접어서 안주머니에 찌르고 일어서더니 김기룡이보다 먼저 자기 사무실을 나서서 종합청사로 향했다.

강봉학이 정문가까이에 이르렀는데 은하가 절반 달리며 맞받아온다.

바람을 안고오는 처녀는 달린옷이 몸에 붙어 몸매가 더욱 날씬해보인다.

(기룡이녀석이 저 몸매에 반한 모양이군.)

강봉학은 빨리 주태섭을 만나고싶었지만 기룡이 생각이 나서 처녀의 앞을 막아섰다.

《은하동무, 잘 만났소.》

《왜 그러시나요?》

은하는 땀을 훔치며 물었다.

《내 좀 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저기 가서 좀 앉자구.》

《전 이야기할새가 없어요.》

《그럼 여기서 이야기하지.》

《아이참! 바쁘다는데두요.》

《난 한마디면 돼. 듣자니까 동무와 우리 기룡이와의 사이가 복잡하게 됐더군. 노루 제 방귀소리에 놀란다더니 이봐, 기룡이네 어머니가 온 다음에 도는 소문은 헛나발이야, 알겠나? 날 믿으라구. 기룡이는 그 처녀가 누군지도 모르고 또 알려고도 안해. 그런걸 가지구 공연히…》

《그런 념려는 안해주셔도 돼요.》

찬서리가 돋은 대답이였다.

《그래, 이 강봉학이를 못 믿겠다는건가?》

《전 바빠요.》

《어느 놈인지 지껄인 녀석 알기만 하면 내 그 녀석의 정갱이를 분질러놓을테야. 우리 기룡이는 백화점에 가서 상품 고르듯 선보러 다닐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은 비록 쇠장대를 잡고있고 기사는 아니지만 예술가란 말이야. 그런 말 믿으면 동무가 그를 모욕하는거야. 일언이페지하구 빨리 잔치나 할 준비를 하라구.》

《아이참, 비키세요.》은하는 약이 올라 나직이 소리쳤다.

《난 급해요. 교관아바이 실신하신것 알려야 해요.》

《뭐, 교관이?》

《선희기사동지에게 알려야 해요.》

《아니, 그 형님이 왜 쓰러진단 말이요, 엉?》

은하는 벌써 저만큼 달려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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