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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27 회


제 3 장

7


기계바다에 있는 변속함본체자동흐름선이 말썽을 일으킨다는 소리를 듣고 도와주러 왔던 리재협로인은 현장휴계실에서 한정빈이 하는 말을 듣다가 분개해서 소리쳤다.

《아니, 그 녀석이 자네한테 맞섰다구?》

갓 절삭한 소재의 표면같이 얼굴이 창백해진 로인은 심장의 동통을 느끼고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요즈음 환절기가 되여 심장이 몹시 좋지 않아 병원에서는 다문 얼마라도 입원치료를 받아야겠다고 권고하는것을 뿌리치고 공장에 나오는 로인이였다.

한정빈은 로인의 안색이 변하는것을 보고 서둘러 자기 말을 정정하였다.

《뭐 젊은 혈기니까 그럴수 있다구? 젊든 늙든 공장의 기사장인데 만사에 신중하고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지 제가 알면 무얼 얼마나 안다구 웃사람에게 맞서느냐 말이요.》

로인은 힘껏 소리쳤으나 숨이 차고 기운이 진해서 가는 목소리로 되고말았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달계획을 못해서 속이 부글부글 끓던 로인이였다.

지배인이 있어가지고 계획을 하지 못했으면 혹시 이렇게 속이 타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결국 고장은 그 녀석에게 있겠는데 무엇이 고장인지 몰라서 벙어리 랭가슴 앓듯 혼자 묵새겨왔었다.

(이 녀석, 일이 저때문에 되지 않는데 남에게 화풀이를 해? 도와주러 온 그에게 배은망덕도 분수가 있지, 빌어먹을 녀석같으니. 아이는 낳아버리고 태만 키웠어.)

《글쎄 저보구야 아무 소리 한들 뭐랍니까?》

한정빈은 담배를 허파깊이 들이빨고나서 말을 이었다.

《지난달은 그렇게 되였다치고 새달에라도 그런 수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는데 참…》

리재협로인은 불편한 자리에 앉은듯 몇번이나 자리를 고쳐앉았다. 그의 입에서는 신음같은 가는 소리가 새여나왔다. 속이 답답해서 언제나 단정히 입고다니던 작업복의 웃단추를 헤쳐놓았다.

로인은 어느쪽의 주장이 옳은것인지 아리숭하였지만 그가 명확히 알고있는것은 계획은 당에서 준 과업이며 그렇기때문에 무조건 수행하여야 한다는것이다. 그런데 당에서 준 과업을 어기다니 그게 될법이나 한 일인가? 앞으로 봉창한다구? 그건 앞으로의 일이고 이달은 이달이지, 당에서 준 과업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 가리지 말고 언제나 에누리없이 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로인은 울화가 치밀어 일어나려고 무릎을 짚으려는데 가슴이 지지눌리우는것 같고 눈앞에 무수한 반디불이 일어서 도로 주저앉았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한정빈은 놀라서 화닥닥 일어났다.

로인은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며 날씨가 나빠지면 숨이 좀 차군 한다고 했다.

《자넨 바쁘겠는데 어서 가보라구.》

《여기 좀 계십시오.》

한정빈이 병원 구급과에 알리려고 밖으로 달려나간 사이에 리재협로인은 천천히 일어서서 휴계실을 나섰다. 그러나 기계바다후문까지 와서는 더 걸을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기둥을 짚었다.

《할아버지, 앉으세요.》

나들문을 지키고있던 근무성원처녀가 얼른 의자를 들고와서 권했다.

《후유- 덜된 녀석같으니.》

《네? 할아버지, 이제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 내 혼자소리다.》

시원한 바깥공기를 마시니 정신이 드는것 같았다. 그렇지만 오늘은 일과대로 공장안을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집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하필 왜 오늘 몸이 이럴고?)

맏아들이 전사한 날이다. 밤에는 모름지기 강봉학이가 《아주머니, 나 술마시러 왔수다.》하고 떠들썩하며 뜨락에 들어설것이고 동네친구들도 잊지 않고 몇이 나타날것이다.

리재협로인은 정문근방에까지 왔다.

그 정문 안쪽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현지지도사적비가 오가는 사람들이 볼수 있게 세워져있다.

로인은 그 현지지도사적비앞에서 한참 머물러 서있었다.

이젠 시력이 약해져서 글자들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로인은 거기에 어떤 교시가 모셔져있는지 지어 몇줄로 되여있는것까지 잘 알고있었다.

로인은 그 교시속에 아들이 처한 형편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말씀이 없겠는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이윽고 리재협로인은 현지지도사적비옆의 정문으로 통하는 도로에 락엽이 몇잎 굴고있어서 마당비를 얻어가지고 나와 슬슬 쓸기 시작하였다.

처녀가 뒤미처 따라나와 로인에게 비를 달라고 졸랐다.

《제가 쓸겠다니까요. 여긴 우리 담당구역이예요.》

리재협로인은 담당구역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려서 《여기는 쓰는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야.》하고 타일렀다.

처녀는 하는수없이 구경을 할수밖에 없었다.

로인이 마당을 절반이나 쓸었을 때 기사장이 종합청사쪽으로 가다가 멎어섰다.

《왜 아직 안 들어가시나요?》

허리를 툭툭 두드리던 리재협로인은 아무소리없이 아들에게 비자루를 넘겨주었다. 아들 역시 말없이 아버지가 넘겨주는 비를 잡았다.

처녀가 로인곁으로 와서 흘겨보며 귀속말로 나무랐다.

《참, 아바이도. 바쁘신 기사장동지보구 쓸라고 할건 뭐예요?》

《아무리 바빠도 여기 쓸 짬이야 없을라구?》

기사장은 비자루에 걸리는것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현지지도사적비앞으로 수걱수걱 쓸어나갔다. 비자루를 댄 길에는 부채형의 비자루자리가 퍼져갔다.

얼마 못가서 기사장은 처녀에게 비를 빼앗기고말았다.

《저녁은 먹었느냐?》

《이제 먹겠어요.》

아버지와 아들은 묵묵히 걷기 시작하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느 쪽인지 모르게 두루거리로 인사를 했다. 리재협로인은 사람의 왕래가 드문 뒤길로 아들을 이끌었다.

《저 현지지도사적비에 어떤 교시가 모셔져있는지 너두 알지?》

로인은 국장에게 온당치 못한 태도를 취한 아들을 꾸짖으려고 하였는데 예견치 않은 말을 하였다.

리진오는 아버지의 안색이 좋지 않은것을 발견하고 《아버지, 병원에서 하라는대로 료양소에 가시도록 하십시오.》하고 권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제 할 말을 계속하였다.

《공장안은 궁전과 같이 꾸리고 공장밖은 공원과 같이 거두어야 한다고 가르치신걸 아느냐 말이다.》

《알고있어요.》

리진오는 아버지의 날카로와진 신경을 건드릴가봐 공손히 대답했다.

《알고나 있으면 뭘해? 현장의 천정은 거미줄투성이고 유리창들은 먼지가 올라 해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버지두 참.》

《그런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거냐?》하고 리재협로인은 엄하게 꾸짖었다.

《그게 어디 겨를이 있고 없고 하며 가려서 할 일이냐? 그러니까 너두 남의 눈에 띄우구 소문이 날 일이나 골라서 할 생각이란 말이지?》

《알겠어요. 아버지, 어서 집에 가십시오.》

《사람은 바쁘고 어려운 때 보아야 그 사람의 본심을 아는거다.》

로인은 자동화요소직장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아들에게 저기에 좀 들리자고 말했다. 아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로인은 그것을 듣지 못했는지 혹은 대답하고싶지 않았는지 아무소리없이 직장장실에 들어섰다.

종합지령실과 통화하던 직장장은 로인을 보자 서둘러 송수화기를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랜만인걸요. 어떻게 여길 다 오셨습니까?》

리재협로인은 힘이 진해서 긴 걸상에 털썩 주저앉으며 급한 일이 없으면 방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직장장은 로인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여느때없이 침울한 로인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고있었다.

《내 여기서 이야기 좀 하려네.》

직장장은 문밖에 기사장이 가까이 오는것을 보고야 로인의 말을 리해하고 저쪽구석에서 생활비를 계산하던 통계원의 등을 건드리고 손시늉으로 어서 자리를 내라고 했다.

잠시후 방안에는 아버지와 아들 둘이 남았다.

현장에서 모터 회전하는 소리며 바이트를 먹이는 소리가 단조롭게 들려온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다리고있었지만 늙은 아버지는 현장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나들문유리에 이마를 대고 고르롭게 가동하는 기대들을 물끄러미 내다보고있었다.

그가 시험제작직장 직공장으로 사업하면서 첫 뜨락또르를 조립하던 현장이였다.

리재협은 어린 진오가 들고온 저녁밥을 먹군 하던 소형프레스가 놓인 자리를 이윽토록 바라보고있었다. 저녁밥을 제때에 먹지 못해서 애가 거기서 잠들군 하던것이 그 몇번이였던가. 저 직장나들문은 그때도 저렇게 넓었겠는데 조립한 뜨락또르가 전진하지 못하고 후진하는것은 저 문이 좁은 탓이라고 생각했지. 거꾸로 조립한 치차를 바로 맞춘 후 뜨락또르가 저 문으로 빠져나갈 때 저 애는 누구보다도 먼저 날쌔게 그 뜨락또르에 달라붙어 쏟아지는 꽃보라로 밤송이같던 머리를 장식하였었지.

회상에서 깨여난 리재협로인은 아들에게 나직이 물었다.

《네가 밥을 들고 여기 나왔다가 저기서 수령님을 만나뵈온 일이 기억나겠지?》

《…》

리진오는 아버지가 왜 새삼스럽게 그 잊지 못할 날을 상기시키는지 몰라 아무 대답도 못하고 아버지의 구부정한 뒤모습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너의 작은형은 전후복구건설을 하느라고 일때문에 공부를 못했고 너의 큰형은 전쟁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전사했으니 너만은 형들이 못한 몫까지 공부를 시키자고 말씀하셨다.》

리진오는 아버지가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기둥에 의지하는것을 눈치채고 다급히 가까이 갔다.

《아버지, 왜 그러십니까? 어서 병원에 가십시다.》

리재협로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날카로운 눈초리로 아들을 쏘아보았다.

《뚱딴지같은 소리 말고 들어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너만은 형들이 못한 공부를 시키자고 말씀하시였다. 알겠니?》

《알아요. 아버지, 좀 앉으십시오.》

《뭐, 알아? 아는 녀석이 일을 그본새루 해?》

극도로 흥분한 리재협로인은 또다시 눈앞이 아찔하고 숨이 막히는것 같아 이야기를 계속할수 없었다. 그는 아들에게 그런 너이기에 다른 사람은 일에서 실수가 있어도 괜찮지만 너만은 백번중에서 한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싶었다. 네가 실수를 하면 우리 수령님께서 사람을 잘못 평가하시고 큰일을 맡기신것으로 된다고 아들의 가슴에 쪼아박아주고싶은데 말이 나가지 않았다.

로인의 얼굴은 파랗게 되였다.

《아버지, 진정하십시오.》

리진오는 아버지의 안색이 심상치 않아 겁이 나서 일어섰다. 그는 무슨 말인가 더 하려고 하였으나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 엄격해서 입을 열지 못했다. 평소에는 말이 없다가도 일단 성이 나면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성미라는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아들이였다.

이윽고 리재협로인은 몇번 길게 숨을 치쉬고내쉬고 하다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 너에게 사람은 다 올려다보고 일은 다 내려다보라구 귀가 아프도록 이야기했지. 그런데 왜 사람들을 내려다보느냐? 듣자니까 국장까지도 내려다본다더구나. 도대체 누가 사람을 내려다보라구 가르쳐주었느냐, 누가 가르쳐주었어? 그리구 내려다보라는 일은 올려다만 본다지? 당에서 우리 공장이 2천대증산과제를 능히 할수 있으리라고 믿고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까마득하게 올려다보이느냐? 틀려먹었다. 일하는 본때가 틀려먹었어! 너도 알지 않느냐. 우리 공장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맨주먹으로 뜨락또르를 만들어낸 사람들이고 그들의 아들딸들이다. 그런 사람들이니까 앞에서 잘 이끌어만 준다면 이 좋은 공장에서 증산과제를 수행하지 못할수 없어!》

리재협로인은 더 많은것을 이야기하고싶었으나 이렇게 서있다가는 실수를 할것 같아 시원한 밖에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걸음이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아들이 놀라 아버지를 부축하려 하자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털어버리고 말했다.

《난 내 발로 걷겠다. 너도 네 발로 걸어라.》

리재협로인은 정신을 차리고 걸었다. 정문을 어떻게 지났는지 몰랐다. 거리에 나선 로인은 눈앞이 어찔해서 가로등기둥에 의지했다가는 걷고 그렇게 의지했다가는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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