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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회


제 3 장

6


외래자합숙에서 저녁을 먹은 한정빈은 기사장과 생산을 추켜세울 대책을 토론하기로 약속한 종합지령실을 향해 떠났다. 추워질것 같던 날씨는 다시 풀리며 봄날처럼 푸근해졌다. 그러나 그는 몸살이 올 징조인지 강봉학직장장의 변덕때문에 속이 좋지 않아 그런지 으시시해서 몸을 옹송그리고 걸었다.

로력지원을 거절한 강봉학직장장의 고집은 전혀 리해가 되지 않는 고집이였다. 그의 고집은 늙은이의 망녕이라고 치고 지금 한정빈이 불만스러운것은 강봉학직장장에 대한 박철산당비서의 태도였다. 늙은이를 직장장의 직위에서 교관의 자리에 옮겨앉게 하면 본인에게도 좋고 직장사업을 추켜세우는데도 좋고 다 좋겠는데 왜 그것을 반대하는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당비서는 강봉학직장장의 삶은 공장과 련결되여있고 공장생활은 곧 그의 삶이라고 그 조동을 반대하였는데 한정빈도 그것을 모르는바가 아니였다. 그것을 잘 알기때문에 그의 삶이 끝까지 빛나도록 도와주자는것이였다. 사람의 삶이란 최후를 깨끗하게 장식하여야 지나온 모든 삶이 빛나기마련인데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직장장을 그냥 그 자리에 두어서 그가 어떻게 자기 로동의 말년을 빛나게 장식할수 있겠는가?

종합지령실은 조용했다. 언제나 분주하게 부문별 지령원에게 오가며 생산을 맞물려주던 계획지령장이 맥을 놓고 앉았다가 놀라서 후닥닥 일어났다.

《기사장동무 아직 못 만났소?》

언제나 표정이 변하지 않던 계획지령장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떠돌았다. 그는 잠시 갑자르다가 대답했다.

《좀전에 나가셨습니다.》

《내가 기다린다는 이야기했소?》

《말했습니다.》

《어디로 갔소?》

《모르겠는데요.》

한정빈은 책상우에 쭉쭉 찢은 종이장이 널린것을 이상히 생각하며 물었다.

《계획 다 세웠소?》

《…》

계획지령장은 대답대신에 째진 종이장들을 다급히 그러모았다.

한정빈은 종이쪼각에서 《지원단위》, 《동원인원》 등의 글자들을 보았다. 아마도 그 계획서의 초안일것이라고 생각하며 말하였다.

《정리됐으면 빨리 보여주오.》

한참 갑자르던 계획지령장은 유리칸막이 저편에서 어느 지령원이 다급히 찾는 소리가 들리자 례의도 지키지 않고 얼른 그리로 가버렸다.

그사이 한정빈은 종이쪼각에 쓴 글자들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그것은 그 계획서였다. 초안이라면 어지럽든가 란필이겠는데 활자를 방불케 하는 종합통계원의 글씨로 정서한것이다.

《계획지령장동무!》

한정빈은 종이장을 든채 칸막이 저편에 대고 소리쳤다. 그의 손에 든 종이장이 가늘게 떨렸다.

《왜 계획서를 보여주지 않소?》

계획지령장은 그사이 마음의 준비를 한듯 여느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기사장동지가 다르게 지시했습니다.》

《다르게 지시했다구?》

한정빈은 종이쪼각을 그에게 내흔들며 웨쳤다.

《이렇게 지시했소?》

계획지령장은 난처해서 한참 갑자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시 만들랍니까? 초안은 가지고있습니다.》

《그럼 내가 그 사람을 모욕하란 말이요?》

한정빈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 창가에 갔다.

한정빈에겐 지금 기계바다의 각이한 금속성의 동음이며 칸막이 저편의 지령원들의 고함소리대신에 그 옛날 어린 리진오가 옷자락을 잡고 《나 밤나무 털어줘.》하고 조르던 목소리며 《정말 새도 셈을 셀수 있다니까요.》하고 우기던 그 고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자기 옷을 잡아당기던 손으로 계획서를 찢었고 새가 셈을 센다고 손을 꼽던 바로 그 손으로 찢은 종이를 내던졌으려니 생각하니 또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단쇠를 찬물에 넣은것처럼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기사장이 나타나면 외래자합숙에 보내오!》

이렇게 말하고 밖에 나온 한정빈은 합숙이 아니라 당위원회가 있는 종합청사로 향했다.

(될대로 되라지!)

박철산은 상급당에서 신호를 받았다면서 왜 기사장이 저러는것을 보고만 있는가?

(물에 물탄 사람같으니!)

방은 비여있었다. 종합지도원의 말에 의하면 현장에 나갔다고 한다.

《찾아볼가요?》

《아니, 그냥 두시오. 차차 만나겠소.》

한정빈은 주태섭부기사장을 찾아 5층에 올라갔다. 그에게라도 화풀이를 하면 혹시 속이 진정되겠는지 모르겠는데 그 방 역시 비여있었다.

《어디 갔소?》

그는 기술계획실의 녀기사에게 물었다.

《글쎄요? 좀전까지 계시댔는데.》

천천히 계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자기를 고의적으로 피하지나 않는가 하는 환각에 사로잡혀 못 견디게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국장동지, 왜 거기 서계십니까?》

복도를 지나가던 리진오가 이렇게 불러서야 한정빈은 자기가 계단의 창문가에 놓인 기형적인 선인장을 바라보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제 방에 들어가십시다.》

예상외로 천연스러운 어조였다.

(망할 친구같으니, 그래도 나를 만나겠다구?)

기사장실은 훈훈하였지만 한정빈은 몸이 으시시해서 늘 입고다니는 털잠바의 옷깃을 세웠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리진오를 쳐다보면 무분별한 말이 쏟아져나올것 같아서 쏘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전등갓에 의해서 명암이 선명하게 두 부분으로 갈라진 흰벽에 눈을 주었다. 같은 흰벽이지만 한쪽은 흰색으로 보이지 않았다. 볼빛때문이라는것을 알면서도 그는 왜 같은 벽이 달리 보이는가 생각하고있었다. 한시간전의 한정빈과 지금의 한정빈은 너무나 차이가 있는 한사람이다. 동정하던 나와 분노한 나, 저 사람은 왜 나를 둘로 만들어놓았는가?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행동하는가?

《전 아까 지령실에 갔댔습니다.》하고 리진오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가 그렇게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혹시 한정빈은 자제력을 잃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래, 동무가 날 그렇게 모욕해야 하오? 리진오가 한정빈을 그렇게 모욕해야 하는가 말이요.》

그는 격해서 이야기를 계속하지 못했다. 하기는 어떤 말로도 가슴을 휩쓰는 분노를 표시할수 없었던것이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의자끝에 간신히 앉은 리진오는 담배를 꺼내며 사죄하였다.

《그 저급한 행동은 나에 대한 모욕이기 전에 동무인격에 대한 모욕이요.》

리진오는 얼굴을 돌리고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자기 형이나 아버지앞에서처럼 행동하고있는것을 발견한 한정빈은 분노의 불길이 점차 숙어지기 시작했다.

검실검실한 눈이며 고집스러워보이는 입이며 그것은 어릴적부터 보아오던 눈에 익은 얼굴이였는데 어찌보면 전혀 생소한 얼굴같기도 하였다. 필경 흘러간 세월이 가져다준것만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인가 그 얼굴에 첨가되여있는듯싶었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였는지…》

리진오는 손을 앞상에 올려놓으며 마치 누구에게 화를 내듯 말했다. 한정빈은 오히려 거꾸로 그가 화를 내는것이 유정한 그 무엇인가를 불러일으키여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이보라구, 웃사람이 이르는것을 듣는것처럼이라도 하라구. 회의에서 어떻게 취급합디까? 내 언젠가 우리 경제사업은 결과를 놓고 평가한다고 하지 않았소? 동무처럼 배짱놀음을 하다가는 목이 열개라도 당해내지 못하겠소.》

《제 문제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뭐, 동무가 책임지겠다구? 그러니까 난 옆에서 구경이나 하고있으란 말이로군. 이보우 진오, 국장은 모욕해도 한정빈은 모욕하지 말아야지.》

《더는 말씀 말아주십시오.》 리진오는 사정하는 어조로 말했다.

《저는 지금 자신을 간신히 지탱하고있습니다. 저의 결심은 이미 부의 회의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나도 동무와 함께 증산계획여부를 책임지고있다는걸 잊지 않는것이 좋겠소.》

《책임지신다면 뜨락또르대수와 함께 그것을 만드는 과정까지도 책임지는 립장에 서주십시오.》

리진오는 누가 이야기하는것을 방해하려고 하는듯 서둘러 단숨에 이렇게 말했다.

한정빈은 흥분한 자신을 억제하려고 한참 방안을 거닐다가 말했다.

《동문 나의 당적량심을 의심하는구만. 터놓고 말하기요. 당적량심이란 무어요? 그의 최고표현은 당정책집행에 대한 무조건성이 아니요.》

《알고있습니다. 허지만 그건 당적량심의 한측면이지요.》하고 리진오는 얼굴을 쳐들고 대답했다.

《정책집행과정에서도 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내 견해는 공명주의의 표현이라는거요?》

한정빈은 끝까지 자신을 억제하고 차근차근 타일러 그의 리성이 옳게 판단하게 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고 책상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오핸 무슨 말라빠진 오해요?!》

《섭섭합니다. 정말 섭섭합니다!》 리진오 역시 울분에 차서 소리쳤다. 《저는 회의때 제 견해를 끝까지 고집하였기에 국장동지가 제 견해에 동의는 표시하지 않더라도 리해는 해주시리라고 믿었습니다.》

《리해하기때문에 하는 말이요. 후회하지 않도록 처신하는것이 좋겠소.》

한정빈은 힘이 진한 목소리로 타이르고 기사장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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