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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 회


제 3 장

5


부의 회의에 참가하였던 한정빈은 이틀후 아침에 차에서 내렸다. 출근시간이 지난 조용한 공장지구의 거리에서는 한 로인이 록지에서 잠자리를 잡겠다고 발뒤축을 들고 걷고있는 어린것을 한가로이 바라보고있었다.

립체다리를 지나 공장이 가까와오자 한정빈은 부의 회의에서 기사장이 초라한 꼴로 서서 비판을 받던 일이 눈앞에 떠올라서 걸음이 떠지였다.

고무공장에서 전화로 리진오와 만날 시간을 기다리던 그는 뜻밖에 급히 부에 올라오라는 지시를 받았고 전혀 준비없이 회의에 참가하였다. 수많은 회의에 참가해보았고 또 큰 회의에서 비판도 받아본 그였지만 그렇게 옹색한 자세로 모임에 참가해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얼굴을 쳐들지 못하고 리진오에게 총동원전투를 조직하도록 설복하지 못하겠으면 강압적으로라도 그렇게 하도록 했어야 하는건데 하고 자신을 꾸짖고 또 꾸짖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도 그렇고 자기도 이렇게 옹색한 처지에 빠지지 않았을것이다.

공장에 들어선 한정빈은 먼저 당위원회를 찾아갔다.

《미안하네. 우리때문에 자네까지 비판을 받았겠지?》

박철산이 반갑게 맞아주는것이 고마왔다.

《우린 사상전을 벌리기 시작했네.》

박철산의 말처럼 아닌게아니라 공장은 들끓기 시작했다. 사상전의 조직사업때문에 당위원회 일군들이 꼬리를 물고 당비서를 찾아와서 그와 긴 이야기를 할수 없었다.

공장 한복판에 있는 속보판에는 자리가 모자라게 연방 속보가 나붙기 시작하였고 소학교가창대들이 공장이 들썩하게 노래를 부르며 직장들을 찾아다니였다.

지금 종합지령실을 향해서 걷고있는 한정빈은 공장풍경이 마음에 흐뭇하였지만 한편 리진오를 만날 생각을 하니 속이 좋지 않았다.

(내 맘도 편안치 않다는걸 알겠지.)

그는 문득 자기의 제의대로 부에서 리진오의 새 주조법을 기계공장들에 일반화하기로 한 일이 떠올랐다. 그 소식은 필경 리진오에게 침울한 생활을 메꾸는데 도움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 복닥거리던 종합지령실의 사무실은 조용하였다. 유리로 칸칸을 막은 저쪽 부문별 지령실들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릴뿐이였다.

계획지령장의 말에 의하면 기사장은 어제아침처럼 오늘도 간밤의 생산형편을 료해하고 해당한 지시를 주고는 현장에 나갔다는것이다.

《기사장동무가 아무말도 없었소?》

혹시 리진오가 모든 력량을 직접 생산부문에 총동원하기 위한 계획을 짜라고 지시하지 않았는가 해서 물었다.

《특별한 지시가 없었습니다.》

(자신과 싸우고있겠지.)

한정빈은 이런 생각을 하며 생산형편을 료해하기 시작했는데 어제밤부터 생산이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우에서 소재문제만 풀어주면 일정계획에 접근할수 있단 말이겠소?》

한정빈은 이번에 평양에서 내려올 때 소재지원이 요구되면 서슴없이 통보하라고 하던 부부장의 말을 념두에 두며 계획지령장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소재입니다. 소재만 선행되고 가공직장들을 조금 더 밀어주기만 하면 일이 풀릴것 같습니다.》

《됐소. 계획지령장동무, 오늘중으로 전투를 조직할 계획을 세우시오.》

《…》

이 문제를 둘러싸고 기사장과 국장사이에 벌어지고있는 일들을 잘 아는 계획지령장은 눈이 둥그래졌다.

《가능한 모든 설비들에 현행생산과제를 물리구 긴급과제가 없는 기사들까지도 모두 현장을 지원하는것으로 예견하우. 소재문제는 긴급대책을 세우겠소.》

《알겠습니다.》

기계적으로 대답한 계획지령장은 잠시후 자기 대답에 놀라서 국장에게 물었다.

《기사장동지하구 토론한 다음에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가요?》

한정빈은 그렇게 하는것이 옳다는것을 잘 알고있었지만 지난달에도 기사장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양보하다가 결국 그를 막다른 골목에 밀어넣었다는 생각이 떠올라 자기 지시를 고집하였다.

《기사장동무가 지시한 후에 계획을 짜기 시작하면 아까운 시간을 잃을것 같아 하는 말이요. 전투승리는 계획을 얼마나 동원적으로 세우는가에 달려있다는걸 명심하고 세우시오.》

한정빈은 현장에 나가 소재형편을 알아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사장동무 만나면 내가 기다리더라고 일러주우. 주물직장을 거쳐 주강직장에 가있겠소.》

종합지령실은 가공조립종합현장의 한가운데 위치하고있어서 지령실을 나서면 각종 절삭기대가 바다처럼 펼쳐진다.

몇해전에 공장을 새로 건설할 때 뜨락또르생산의 전체 가공공정과 조립공정들이 흐름식을 이루게 하려고 이 거창한 종합현장을 지었다. 수많은 가공직장들과 조립직장들이 하나의 지붕밑에 들어가있는 이 종합현장은 축구경기장을 두개 만들고도 남으리만큼 넓었다.

한정빈은 이 웅장한 현장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가벼운 흥분을 안고 기대사이의 길을 걷고있었다.

끝이 아득한 건물안에 각종 공작기계들이 들어차서 기계바다를 이루고 현장한복판에 《천리마》호뜨락또르와 《풍년》호뜨락또르의 총조립흐름선이 출하장쪽으로 쭉 뻗었다. 두 흐름선 량쪽에 각각 기관, 변속, 차체의 가공직장들이 배치되여있어서 조립흐름선이 서서히 이동함에 따라 각 직장에서 흐름식으로 생산된 부분품들이 조립되여 점차 뜨락또르의 형체를 갖추게 된다. 현장에는 각종 절삭기대로 이루어진 흐름선들이 집채처럼 크지만 날씬해보이는 기대로 련결된 자동흐름선들이 규모있게 배치되여있고 그 현장의 공중으로 압축공기며 가스와 증기를 보내는 배관들 그리고 소재를 나르는 삭도들이 조화로운 기하학적선을 그리며 건너갔다.

도처에 일계획을 완수한 작업반들의 로력적성과를 축하하는 속보들이 나붙고 기동예술선동대원들이 불어대는 나팔소리가 기대소음사이로 반주처럼 들려온다.

식료품차들이 현장에 들어와 구석구석에 매점들을 펴놓았지만 기대공들은 거기에 눈을 팔지 않았다.

한가한 자동흐름선의 조종공처녀들만이 지나가는 국장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한정빈은 그들에게 눈인사로 답례하면서 소재를 넣어주는 쇠통들을 잊지 않고 살펴보았다. 배가 부른 소재통은 별반 보이지 않았다. 특히 주강소재를 넣어주어야 할 소재통은 대체로 훌쭉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래도 부부장에게 소재지원을 긴급히 요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기계바다를 나섰다.

주강직장실태를 빨리 알아보려고 구내길에 나선 한정빈은 2공무직장의 현장건물이 보이자 이번 출장길에 은하의 어머니를 만나고 온 생각이 나서 그 이야기를 은하에게 하려고 공무직장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그가 직장마당에 들어서는데 은하가 마침 사무실에서 나왔다.

《국장동지, 언제 오셨나요?》하고 은하는 반기며 그를 사무실앞에 놓인 의자가 있는쪽으로 이끌었다. 사무실안에서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떠들어대고있었던것이다.

《어머니편지 받았어요. 갑자기 오셨다 떠나서 변변히 대접도 못했다구 쓰셨더군요.》

《가본다가본다 하면서 내 걸음이 늦었지.》

사무실안에서 오선달직장장이 떠들썩 고아대며 전화를 거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 직맹부위원장동무, 우리 2공무가 무엇이 모자라서 경쟁에서 졌다는거요? 이건 사람을 우습게 알아도 푼수가 있지 그런 법이 어데 있소?》

《늘 저렇게 떠드느냐?》

한정빈이 눈짓으로 사무실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성격이 그런걸요.》

오선달직장장은 약이 올라 소리치고있었다.

2공무직장장은 보조부문 직장장들간의 경쟁에서 늘 앞장서군 하여 순회우승기가 벌써 1년이상 오선달직장장이 앉은 뒤벽에 걸려있었는데 지난달 경쟁에서 뜻밖에 첫자리를 빼앗기게 되였다. 직장직맹위원장에게서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오선달은 하늘이 낮다고 펄펄 뛰며 당장 직맹위원회에 달려갈 차비를 하는것을 옆에서들 말려서 전화로 이렇게 고아대고있는것이다.

《여보 직맹부위원장동무, 글쎄 당신입으로 우리 2공무가 보조부문중에서 로동시간이 단연 최고라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요? 뭐요?… 혁명과업 내놓고 경쟁에서 무얼 본단 말이요? 우리가 소재직장들의 예방보수사업을 잘못해서 떨어졌다구요? 말같지 않은 소리 그만두오. 듣기 싫소, 기사장동무가 제기해서 경쟁등수가 뒤집힌걸 누가 모르는줄 아오? 어디서 들었는가구? 내 귀구멍은 답답해서 뚫어놓은 창구멍인줄 아오? 여보 부위원장동무, 대관절 기사장은 제 코나 씻지 왜 산제밥에 메뚜기 뛰여들듯 직맹사업에까지 끼여들어 감놓아라 배놓아라 하는거요? 여보 기사장동무에게 제발 오지랖 넓게 굴지 말라구 하우… 뭐요? 말같지도 않은 소리 그만두우. 주강직장의 설비사고들을 왜 우리 직장이 다 책임져야 한다는거요? 연방 사고가 나는데 예비부속이 대동강의 물처럼 흔한들 당해낼것 같소?…》

《인정머리없는 사람이로군.》

한정빈은 곤궁에 빠진 기사장을 몰아세우는데 분개해서 중얼거렸다.

《넌 2교대냐?》하고 그는 일어서며 물었다.

《아니예요. 첫 교대 끝나고 나무심기에 나가는 길이예요.》

《나무심기? 이 바쁜 때 나무를 심어?》

은하는 국장이 놀라는것이 이상해서 상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일 다 하구 심는걸요.》

그제야 오선달직장장은 국장이 온것을 알아차리고 다급히 마당에 나왔다.

《언제 오셨습니까. 어서 방에 들어가십시다.》

대머리들이 모두 그렇게 하듯이 숱이 많지 않은 머리칼을 풀로 붙인듯이 머리에 빗어붙인 오선달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오동무 머리에도 이젠 흰서리가 내리는구만.》

《흘러가는 세월에 실려 남은것은 이것뿐이랍니다. 국장동지한테 욕을 먹으며 일하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7년세월이 흐르지 않았습니까.》

《벌써 그렇게 되였던가?》

7년전 지금의 새 공장을 지을 때 한정빈은 전국의 기계공장들에서 만든 설비들을 설치하는 사업을 지도했는데 그때 그는 오선달과 함께 일했던것이다. 오선달은 한정빈의 아래서 일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지만 신세도 많이 졌다. 오선달은 그때 중앙신문에 자기의 커다란 사진과 함께 긴 소개기사가 난것이 이 한정빈이 주선해준 결과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그후 그는 《우리 일군들의 행운은 아래사람의 하정을 알아주는 책임일군을 만나는데 있다네.》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의 생활철학을 이야기했었다.

《하여간 소문없이 마른일 진일 다 하면서도 빛이 나지 않는것이 공무사업이지.》

《그런 하정 누가 알아준답니까?》

《누가 알아주고말고 해서 일하는건 아니지.》

《어서 방에 좀…》

《여기도 좋소. 근데 왜 그렇게 고함을 치오? 옆에 있는 사람 귀청 떨어지지 않겠소.》

《분해서 견딜수가 있어야지요.》하고 호소하던 오선달직장장은 국장의 얼굴에서 동정의 빛이 없는것을 보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내 듣기에는 직맹에서 옳게 평가한것 같은데 왜 상관도 없는 기사장을 모욕하는거요?》

한정빈은 그를 건너다보며 꾸짖었다.

《혹시 기사장이 사업상 결함이 있더라도 처음으로 큰일을 맡아서 하는데 도와주는 립장에 서야지 상급에 대해서 그러면 쓰오? 특히 기사장은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잖소.》

잠시후 한정빈은 은하와 함께 구내보도에 나섰다.

공장변두리 사처에서 나무심기가 한창이다.

자동차와 뜨락또르들이 나무를 실어와서 나무들을 부리느라고 사람들이 붙어서 법석댔다.

처녀들은 심은 나무에 물을 주느라 절반 달리며 물을 퍼나른다. 그래서 아래도리들이 후줄근히 젖었다.

(허참, 저 아까운 로력을 생산에 투입하지. 정말 한심하군.)

한정빈은 쓴 입맛을 다시다가 은하가 후문쪽으로 가려고 하자 걸음을 늦추며 이야기했다.

《내 평양에서 너에게 전화한것처럼 평양에 가볼 차비를 해라. 보금이가 여러모로 알아보고있으니까 인차 소식이 올게다.》

《알겠어요. 근데 저…》하고 은하는 갑자르다가 용기를 내여 얼굴을 쳐들었다.

《기사장동지문제가 어떻게 되나요?》

《넌 그걸 어떻게 아니?》

《소문이 자자한걸요.》

《이제 다 바로 될게다.》

《우리 기사장동지가 상급당에 도전한다구까지 비판되였다던데 절대 그럴수 없어요. 우리 로동자들이 보증할수 있어요. 그리고 또 국장동지도 직접 목격하시지 않았나요?》

한정빈은 대담한 은하의 어조에 놀라 처녀를 한참 쳐다보았다.

(허긴 저 애 아버지도 인정이 있으면서도 대담했지.)

그는 때아니게 전우의 생각을 하며 그 애 아버지를 대신하는 심정으로 타일렀다.

《생활이란 네가 생각하듯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야.》

《하여간 별일 없겠지요?》

《허허, 별일은 무슨 별일? 어서 가보기나 해라.》

한정빈은 빨간 머리수건을 날리며 달려가는 은하를 한참 바라보다가 주강직장으로 향했다.

주강직장 주변에서는 전기로공들과 조형공들이 이제야 구뎅이를 파고있는데 담밖에서는 은하네 2공무직장 로동자들이 하얗게 널려 나무를 심고있었다.

한정빈이 보기에는 나무심기를 한다기보다 야유회에 나온것 같은 풍경이다. 한편에서는 손풍금수가 타는 노래곡조에 맞추어 음정이 각이한 목소리들이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삽을 박고 서서 이야기판을 벌려놓고 왁작 떠들어대다가 허리가 꺾어지게 웃어댄다. 2공무직장 아래켠에서는 어느 직장에서 나왔는지 꽹과리소리에 흥겨운 새납소리까지 어울려 들려온다.

하늘에는 연한 감빛노을이 비끼였다.

(생산에서도 저렇게 기세가 올라야겠는데…)

한정빈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강봉학직장장이 서있는 담벽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하던 강봉학직장장은 국장을 알아보자 반갑게 소리치며 가까이 왔다.

《언제 돌아왔소?》

《아침에 왔습니다.》 한정빈은 웃음판이 벌어진 작업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한가하구만요.》

《한가한게 뭐요. 우리 직장이 나무심기에서 맨 꼴찌라구 방송에서 불구 속보에 나구 견딜수가 있어야지요.》

《누가 발기했습니까?》

《기사장이 내몬다우.》

《기사장이요?》

한정빈은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눈이 둥그래서 되물었다.

《사람들은 이제야 공장에 뿌리내릴 사람이 제자리에 앉았다고들 한다우.》

한정빈은 리진오도 이제 일솜씨를 보이면 오래지 않아 새로운 직무를 맡고 떠나게 되리라고 생각하며 로동자들의 소박한 념원을 웃음으로 넘겨버렸다.

《자고로 집을 새로 지으면 뒤따라 뜨락에 과일나무를 심는 법인데 보시우. 우리 공장은 맨몸뚱이가 아니요. 그래도 국장이랑 당비서랑 그 옛날에 저 백양나무를 심어놓았으니 여름에 매미소리도 듣는다우.》

한정빈은 직장장이 가리키는 주강직장옆과 뒤쪽으로 높이 솟아 조용히 설레이는 백양나무를 감회깊게 바라보았다. 제대된 후 박철산이랑 함께 심은 나무였다. 그때는 여기에 같이 자라고있었다. 나무심기사업을 지도하던 직맹위원장이 직장건물주위에 나무를 심으라고 하는것을 앞으로 공장이 커질것이고 공원도 큼직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우기고 건물에서 멀찍이 떨어진데다가 심었다. 그런데 그새 공장이 어찌나 커졌는지 공원이 들어앉을 자리도 없어지게 되였다.

《침침한 방에 들어가느니 여기에 앉읍시다.》하고 강봉학직장장이 권했다.

《참, 회의에서 우리 기사장이 비판을 받았다구들 하던데 사실이요?》

《그렇게 됐습니다.》

《듣자니까 되게 맞았다더군.》

강봉학직장장의 눈에 갑자기 분노의 불이 일었다.

《우리 공장이 비판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건 비판이 아니라 중상이요. 어느 량반이 그런 소리를 하는지 우리는 접수가 안되외다.》

그 말에 한정빈은 방금전 은하가 로동계급이 보증한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좋은 령감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변함이 없어. 령감이 속은 옛 그대로인데 어째서 직장일은 춰세우지 못하는가?)

그들이 앉은데로 김기룡교대장이 가까이 오다가 이야기를 방해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주춤 멎어섰다. 그의 뒤에는 몸이 우람찬 청년이 서있었다.

강봉학직장장은 국장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사이에 기룡의 그늘에 서있는 청년을 흘끔 쳐다보고 《교대장은 왜 저녀석을 그림자처럼 달고다니우?》하고 곱지 않은 어조로 물었다.

강봉학직장장은 아침에 기룡이가 찾아와서 저 청년에게 휴가를 주자고 제기하는것을 그 자리에서 잘라버렸던것이다.

김기룡이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뒤지며 말했다.

《알고보니 사정이 딱하게 되였습니다. 직장장동지, 얼핏 집에 갔다오게 합시다.》

《교대장은 지금 로력이 얼마나 긴장한지 몰라서 그런 소릴 하우?》

강봉학직장장은 귀바퀴에 꽂았던 담배를 물고 성냥을 켜며 정확하지 못한 발음으로 말했다.

김기룡은 주머니에서 모서리가 해진 봉투를 꺼냈다.

《이 편지를 보십시오. 꼭 보내주어야 할것 같습니다. 집에 사정이 생겼는데 어머니가 아들이 보고싶다고 썼습니다.》

직장장은 편지를 든 김기룡의 손을 밀어버리였다.

《난 그런 편지에 다시는 속지 않겠어.》

한정빈은 미소를 지었다.

얼마전에 농촌에서 새로 입직한 한 청년이 집에 가고싶은데 직장장이 승인해주지 않으니까 그런 연극을 꾸몄다가 탄로가 되여 직장장에게 혼이 났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던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더러 속을 때도 있지 뭘 그렇게 가슴에 품고계십니까?》

《그런 훈계 듣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아. 대관절 임자는 왜 내게 강요하는가? 주강소재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욕을 먹으면서까지 선심을 쓰자는건가?》

강봉학직장장이 이렇게 떠드는 사이에 한정빈은 그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어린 학생의 연필글씨로 또박또박 박아썼다. 아마도 어머니를 대신해서 이웃집 아이가 써준것 같다.

멀리에서 기적소리만 들려와도 아들생각이 난다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한정빈은 편지를 읽고나서 그것을 직장장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읽어보십시오. 아무래도 집에 보내주어야 할것 같구만요.》

《한 녀석을 보내면 다른 녀석도 보내야 한단 말이요.》

한정빈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지난날에는 관료주의자요, 독단주의자요 하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인정이 뚝뚝 흐르던 강봉학이였다.

그는 불현듯 전후 어느 가을날 강봉학이 산꿀을 얻으려고 서학산에 올라갔던 일이 회상되였다. 합숙에 누워있는 한 청년에게 산꿀이 좋다는 소리를 들은 그는 산에 올라가 무작정 벌집을 쑤시다가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벌의 집단적습격을 받아 눈이 부어가지고 돌아왔었다.

그 청년은 꿀은 못마셨지만 다음날부터 병을 털고 일어났는데 직장사람들은 직장장의 정성이 청년을 일으켜세웠다고들 하였다.

그런 강봉학이였기에 그의 호령소리도, 관료주의도 그의 인정속에 녹아버리고 《호랑이작업반장》, 《호랑이직공장》 등의 애칭만 남았었다.

한정빈은 시대의 기슭으로 밀려나간 직장장이라고 서글픈 눈매로 바라보다가 김기룡이에게 청년을 데리고가라고 눈짓을 했다.

청년들이 물러간 후 한정빈은 진심으로 권고했다.

《글쎄, 휴가는 못 준다쳐도 왜 힘 안드는 편지야 보지 못하겠습니까?》

《편지 보면 승인해야 하지 않소.》

한정빈은 그 대답속에서 그 옛날의 강봉학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웃어버리고말았다.

이윽고 한정빈은 새달의 소재생산형편을 물었다.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외다.》

강봉학직장장은 자기 직장의 결함을 감추지 않고 로력의 가동정형이며 중요설비들의 보수정형에 이르기까지 터놓고 이야기했다. 형편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여야 국장이 사업을 옳게 도와줄수 있다고 생각하는 강봉학이였다. 그는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담밖의 작업장에서 양푼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 이야기를 방해하면 더욱 높은 청으로 말을 계속하였다.

직장장은 계속해서 주강소재생산능력을 늘이기 위해서 김기룡이와 박기사가 진행하고있는 연구사업정형에 대해서도 아는껏 이야기했다.

직장장의 이야기를 다 들은 한정빈은 몇글자씩 적던 작은 수첩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새 정말 수고했습니다.》

《수고요? 어디 애쓴 보람이 있소?》

《어쨌든 지난달 초보다 소재생산이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말도 마시오. 오히려 지난달보다 소재단련을 더 받고있수다.》

전투가 시작된 후 가공과 조립부문에서 속도가 빨라졌으니까 그럴것이였다.

《직장장동지, 그러니까 지금 형편에서도 로력지원만 주면 소재생산을 늘일수 있는 가능성은 있겠구만요.》

《…》

강봉학직장장은 대답이 없었다.

《곧 로력지원을 조직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한정빈은 늙은 직장장의 얼굴에 소태를 씹은듯 한 표정이 그려진것을 발견하자 그 자리에 굳어졌다.

《우린 지원을 받지 않겠수다.》

강봉학직장장은 돌아앉으며 대꾸했다.

《아니, 지원이 필요없다니요? 이제 방금 로력이 더 있으면 소재생산이 올라갈거라구 하지 않았습니까?》

《난 로력이 딸린다구 했지 로력을 요구하지는 않았수다.》

《허허, 왜 그렇게 엇나갑니까?》

한정빈은 그 마음을 십분 리해할만 하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니, 내가 뭘 엇나간단 말이요?》

강봉학직장장은 진한 눈섭을 치켜올리며 따져물었다.

《그래, 정말 로력지원이 필요없단 말입니까? 너무 고집을 쓰지 마십시오.》

《고집이 아니라 난 그렇게 결심했수다.》하고 강봉학직장장은 단호하게 선포했다.

《너무 옹졸하게 생각하누만요. 전달에 기사장이 로력지원을 요구한걸 주지 않았다구 속에 품고있는것 같은데 당적립장에서 생각해야지요.》

《내참, 안 먹겠다는 떡 왜 자꾸 입에 틀어막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소.》

직장장의 대답을 늙은이의 변덕으로 여기고 인내성있게 해설하던 한정빈은 버럭 화를 냈다.

《직장장동진 왜 아직 정신을 못차립니까? 기사장한테 법적책임문제까지 제기됐는데 도대체 그게 누구때문인가요?》

《뭐 법적책임이요?》

《기사장이 비맞은 장닭같은 꼴이 되여 돌아온걸 못 봤습니까? 제발 고집을 부리지 마시우.》

《…》

강봉학직장장은 눈에서 불꽃을 철철 흘리면서도 입을 열지 못하고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째서 지원로력을 거절합니까?》

《나는 지금의 로력과 설비로 생산을 정상화하자는 당위원회결정에 손을 들었수다.》

《지난달에 체험해보고도 고집합니까?》

《아직 그 결정이 잘못되였다구 수정하지 않았수다.》

(이젠 창발성까지 없어졌군.)

한정빈은 강봉학직장장의 고집을 잘 알기에 더 말하지 않고 풀밭에서 일어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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