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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24 회


제 3 장

4


선희는 공무실의 자기 책상에서 고기비늘같은 엷은 구름이 널린 하늘을 내다보며 소란스러운 가슴을 가까스로 달래고있었다.

소식통인 제도공아주머니한테서 소문을 듣고 좀전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상하리만큼 태연한 목소리를 들었다.

(뭐 남편이 당에 도전했다구?)

그 녀자는 전투가 시작된 후 남편이 증산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애쓰던 가지가지의 일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라 너무 억울해서 견딜수 없었다.

《글쎄 일이 이렇게 되니까 전에는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가만있던 사람들이 별의별 소리를 다 한다지 않아요?》

《소식통》이 이렇게 말했을 때 선희는 그 《별의별 소리》라는 내용이 무엇인가고 묻고싶었지만 혹시 더 험한 대답이 나올것만 같아 묻지 못했다.

현장에 나갔던 실장이 제자리에 와앉으며 선희에게 말을 건넸다.

《집에 들어가지 않구 왜 그렇게 앉아있소? 래일부터는 숱한 일이 매달리겠는데 집일도 좀 돌봐야 할게 아니요?》

선희가 그사이 밤을 새워가며 완성한 고철압착기의 설계가 높은 평가를 받고 래일부터 그 부분품제작에 들어가게 된것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

《이제 오며 보자니까 기사동무에 대한 속보가 대문짝만 하게 나붙었습니다.》

실장은 마치 자기가 한 일처럼 기뻐서 떠들었지만 선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퇴근차비를 했다.

선희가 방금 공무실을 나서는데 문화회관 관장이 저편에서 뒤쫓아 달려오며 소리쳤다.

《은하동무 보지 못했습니까?》

《직장에 없어요? 낮교대겠는데.》

《직장에도 없고 합숙에도 없습니다. 글쎄 제대군인들을 위한 환영공연시간이 가까와오는데 어디 갔는지 알수가 있어야지요.》

관장은 얼굴에 내돋은 땀을 훔치며 군소리를 하다가 회관쪽으로 달려가버렸다.

운동장에서는 배구경기가 한창이다. 배구장옆에는 지나가던 화물자동차가 멎어섰는데 응원군들은 차의 적재함우에까지 올라가 응원을 한다. 오늘 련맹전에는 운수과에서 출전한것이다. 상대는 변속기직장이다. 변속기에서는 기대공처녀들이 커다란 종이나팔을 만들어가지고 나와 응원을 한다.

매 팀의 선수들속에는 단위책임자나 부책임자가 선수로 끼워야 한다는 경기규칙에 의해서 출전한 책임자선수들의 《훌륭한 기교》가 웃음판을 만들고있었던것이다. 변속기직장이 쳐넣기차례가 되자 변속기처녀들은 나팔을 입에 붙이고 《하나, 둘, 셋》하고 함성을 올리며 응원을 했는데 앞으로 날아가라고 친 공이 앞으로가 아니라 뒤에서 응원하고있는 처녀들의 머리우에 떨어져 폭소가 터졌다.

《얘, 빨리. 백화점에 가자니까.》

《백화점엔 왜?》

응원군들속에서 키큰 처녀가 통통한 처녀의 팔을 잡아당기며 빠져나와 선희의 앞에 섰다.

《최신형 모세타가 나왔대.》

《돈이 있어야지. 지난달엔 상금을 못타서 계획이 다 틀어졌다.》

《나한테 있어. 근데 얘, 기사장동지때문에 계획도 못하구 상금도 못타게 되였다는게 사실일가?》

《알지도 못하는 소리 그만둬.》

《아니야, 그게 사실인가봐. 아까 직장사무실에 갔다가 들으니까 내놓구 기사장의 공명주의가 어쩌구저쩌구 하지 않겠니.》

《넌 맹꽁이같이 그런 뒤소리하는걸 보고 가만있었니?》

선희는 처녀들한테 저도모르게 울분을 터칠것만 같아서 아래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퇴근길에 오른 공장사람들이 널린 큰길을 피해서 유축길에 들어섰다.

아빠트아래 뜰에서 놀던 인철이가 어머니의 들가방을 받아들고 계단을 따라 오르며 《집에 은하아지미 와있어.》하고 큰 변이나 난것처럼 일러바친다.

《은하아지미? 언제부터?》

《아까부터.》

은하는 방안이 아니라 베란다에 나가 먼산을 쳐다보고있었다. 무엇때문에 공연에 가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측은해보이는 모습이였다. 관장이 찾아헤매더라고 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야기할게 있으면 공연이 끝난 다음에 오지 왜…》

은하는 말을 가로채며 짜증냈다.

《나 없으면 공연 못하나 뭐?》

《공연이 놀음놀인줄 아니?》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르든 알든 행사야 치르고봐야 할게 아니야?》

《날더러 어떻게 노래를 부르라는거예요?》

발끈 성을 내며 쳐다보는 은하의 눈에는 눈물이 가랑가랑 고였다. 친언니처럼 알고 투정을 부린다.

가뜩이나 마음이 산란한 선희는 눈물을 보자 반사적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녀자는 은하의 흩어진 머리칼을 눌러주며 말했다.

《방에 들어가자. 여기서 떠들면 아래웃집에서 다 듣는단다.》

잠시후 방에 들어온 은하는 두번세번 물은 다음에야 김기룡의 어머니가 약혼문제때문에 온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니까 기룡동무가 어머니와 함께 떠났다는거니?》하고 선희가 물었다.

《몰라요.》

《기룡동무 만나봤니?》

《안 만났어요.》

《원 참 애두, 소문만 듣고 그렇게 앵돌아지다니?》

선희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자기 역시 부에서 남편이 비판을 받았다는 소문만 듣고 가슴을 조이며 하루를 보낸 일을 회상하며 책상가에 가서 송수화기를 들었다.

《주강직장을 좀 주어요.》

김기룡이를 찾아서 사실여부를 확인해보고싶은데 밤늦게까지 휴계실에서 로개조를 위해서 골을 싸매고있던 그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는것이다.

《기사동지, 난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김기룡이를 찾는 소리를 긴장해서 듣고있던 은하가 말했다.

《무슨 부탁?》

《기사장동지가 전날 내 휴가신청을 취소시켰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 말이 은하의 귀에 들어가면 어쩌나 하고 근심했던 선희여서 긴장해서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난 휴가를 받아야겠어요.》

《받으려무나. 응당 받을수 있는 휴간데 뭐라느냐?》

《기사장동지가 어떻게 생각하시겠는지…》

《평양에 가보려구?》

《국장동지도 빨리 가보라구 해서…》

《그럼 가야지.》

선희가 얼른 저녁을 지어먹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웃방에 올라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은하는 앉은뱅이책상에 다가앉았다.

인철이는 혹시 뭐가 있는가 해서 어머니의 들가방을 뒤지더니 가방속에 있던것을 책상우에 벌려놓고 어덴가에 나가버렸다. 은하는 그속에서 연필화를 집어들었다.

리진오의 맏형이 락동강도하전투에서 영웅적인 위훈을 세우고있는 화폭을 형상한 그림이였다.

그의 형이 전사한 날이 오면 평화시절에 찍은 고인의 사진을 책상우에 놓고 온 가족이 모여앉아 추모하군 하였는데 전사한 날 쓰려고 선희가 그 사진을 김기룡이에게 주어 이런 연필화를 그려달라고 했던것이다.

옷을 갈아입은 선희는 부엌에 내려갔다. 이런 때면 늘 은하가 먼저 팔소매를 걷어올리며 《내가 실습을 하겠어요.》하고 나서군 하였는데 오늘은 가마에 쌀을 안쳐놓고 다시 방에 들어올 때까지 그냥 그 자리에서 연필화를 들여다보고있었다.

《누가 그렸는지 알지? 그의 필치까지 알면서 왜 그의 마음은 모르니? 래일 내가 알아는 보겠지만 넌 너무 옹졸해.》

《그의 어머니가 온거야 사실 아니예요?》

《나이찬 아들 장가때문에 왔다는데 흔히 있을수 있는 일이지 왜 그걸 가지구 고시랑거리는거냐?》

《흔히 있는 일이라구요?》 은하는 빈정댔다.

《모자간에 미리 약혼이야기가 있어서 왔겠지요. 그런데도 그는 나에게 그런 소린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믿음이 없이 어떻게 사랑이 있을수 있어요?》

《믿음이 없다구?》선희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어버렸다.

《아마도 기룡동무가 너에게 우리 어머니는 며느리감 얻으려 사방에 줄을 놓고있다고 얘기하면 네 성미에 발끈해서 돌아섰을게다. 넌 기룡동무보고 믿음이 어떻다느니 하지만 난 그렇게 신의가 있고 의리가 있는 청년은 처음 본다.》

《그런 이야긴 그만둬요.》

《원- 속이 넓은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바늘구멍이로구나.》

《바늘구멍은 그 동무예요. 그는 내가 예술을 하겠다는것조차 리해하려 하지 않아요.》

《암통한 소리 말어. 나두 다 들었다. 언제 그가 예술을 하겠다는걸 마다하더냐? 예술에 대한 너의 태도를 근심했지.》

《태도요? 별소리 다 듣겠네.》하고 은하는 코웃음을 쳤다.

《예술이란 남의 힘을 빌려서 하는것이 아니라 스스로 탐구하는거라구 하더라. 그 말에도 일리가 있는것 같애.》

《그 동문 예술을 저혼자 다 아는것 같군요.》

선희는 더 타이를 말도 고르지 못했고 또 남편일 걱정에 지지눌려 더 이야기할 생각도 없어서 부엌에 내려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일어서니. 기왕 늦은걸 밥이나 먹구 가렴.》

은하는 그제야 선희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것을 알아차리고 가마를 행주로 훔치는 그의 팔을 잡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따져물었다.

《아니, 뭐 기사장동지가 상급에 도전했다구요? 도대체 누가 그래요? 누가 그런 악담을 퍼붓던가 말예요.》

은하는 펄펄 뛰였다.

《그건 사람을 모해하는 중상이예요. 중상이구말구요! 그래 기사동지는 그런 소리 곧이듣고 속을 태워요? 기사동진 청맹과니예요.》

한참 떠들던 은하는 간다온다 소리없이 부엌에서 나가버렸다.

(정말 내가 청맹과니야.)

선희는 은하의 마음이 고마와 보도에 나선 처녀를 바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딴데 정신을 팔다가 저녁밥을 태워버렸다.

인철이는 오랜만에 가마치가 생겼다고 빠드득빠드득 깨물며 텔레비죤앞에 앉아있더니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선희가 아들의 궁둥이를 툭툭 두드리며 바로 눕히고있을 때 리진오가 들어왔다. 저녁상을 서둘러 차린 선희는 찬이 너무 초라한것 같아서 잠시 생각하다가 상에 맥주병을 받쳐들고 방에 들어왔다.

《이게 다예요.》

선희는 맥주를 따르며 미리 침을 놓았다.

《이젠 매일 저녁 집에 와서 밥을 먹어야겠는걸.…》

남편의 롱담이 오히려 선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 롱담을 할수 있는 안색이 아니였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창문을 잡아흔들며 불어대고있었다.

뜨개감을 들고 앉은 선희는 남편이 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낼것 같아서 긴장해서 기다리고있었다. 사태의 진상을 빨리 상세하게 알고싶기도 하였고 한편 아늑한 이 저녁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듣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기도 하였다.

얼마후 선희가 상을 들고 부엌에 내려가 아침끼니차비를 해놓고 방에 들어와보니 남편은 연필화를 들고있었다.

《모습이 비슷해요? 기룡동무가 더 다듬어야겠다는걸 그냥 들고왔어요.》

선희는 뒤에서 남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말을 이었다.

《래일 아버님에게 그림을 갖다드리겠어요.》

바깥에서 바람이 가로수가지에 감기여 우는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우리 형님이 어떻게 락동강을 건넜는가 보우. 형님은 놈들의 총포탄을 자기에게 집중시키고 또 전우들의 도하를 엄호하려고 떼목에 중기를 앉히고 놈들을 갈겨대며 강을 건넜소. 그는 놈들의 총탄이 목과 어깨를 뚫고나갔고 파편이 팔의 살점을 뜯어냈지만 강을 건늘 때까지 압철을 눌렀단 말이요. 그렇게 적과 싸워 승리했는데 난 무슨 꼴이요. 저 큰 공장을 가지고도 과녁을 바로 겨누지 못해서 패전했단 말이요.》

가슴밑바닥에 앙금이 되여 가라앉은것을 박박 퍼내는듯 한 목소리였다. 이윽고 리진오는 마치도 남의 이야기를 하는듯 한 어조로 부에서 비판된 이야기를 안해에게 들려주었다.

《여보, 당신 생각엔 내가 무얼 잘못한것 같소? 왜 이 꼴로 되였느냐 말이요?》

그는 자기 몸을 더는 지탱할 힘이 없는듯이 어깨를 떨어뜨리며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였다.

선희는 꺼시시하게 일어선 그의 머리를 잠재우며 말했다.

《피곤하실텐데 누워요.》

《아닌게아니라 더 지탱할 힘이 없소. 모두들 맥을 놓고있소. 아버지는 국장이 너에게 해로울 일을 권고하겠느냐고 날 나무라오. 게다가 생산은 상승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여전히 평행선을 긋고있소. 형편이 이런데 어떡허면 좋소?》

선희는 근 10년을 같이 살아오지만 이렇게 락심한 남편의 모습을 본적도 없었고 이렇게 풀이 꺾인 남편의 목소리를 들어본적도 없었다. 새 주조법을 탐구하던 그 어려운 나날에도 그런 남편을 보지 못했던 선희였다. 사람들은 그의 강한 의지와 불굴의 인내성을 두고 무쇠심장을 지닌 사나이라고 했었다.

선희는 그의 가긍한 모습을 보기가 괴로와 외면해버렸다. 그의 뺨에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여보, 왜 말이 없소. 이야기 좀 하우. 당신은 무얼 생각하고있소?》

선희는 몰래 눈물을 훔치고 대답했다.

《우리의 어릴적일을 생각해요.》

선희는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당신은 어릴적부터 진리와 진실앞에서 성실하게 살아왔어요. 그런 당신이기에 당에서 바라는것을 결코 외면하지 못할거예요. 어버이수령님께서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남아있는 한 당신은 결코 생산의 정상화를 위한 길에서 물러서지 못할거예요. 그런데 왜 당신은 약한 소리를 할가요? 어서 누워요. 당신은 피로해서 그런 말을 할거예요. 이제 한잠 푹 자고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거예요.》

리진오는 어루만지는 선희의 손을 당기여 잡으며 혼자소리로 뇌였다.

《정말 그럴가?》

《그래요. 어서 누워요.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말고요. 아무렴 모두 달라붙으면 그만한 난관이야 뚫고나가지 못하겠어요? 당비서동지도 좋은 궁리가 떠오르든가 무슨 수가 있게 상급당에 전화할 때 생산이 높은 수준으로 정상화되지 못한건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구 하면서…》

《뭐 책임이 어떻다구?》

리진오는 주태섭이 말하던것과는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기때문에 안해의 팔을 잡아흔들며 소리쳤다.

《아니, 그걸 어디서 들었소. 누가 그러던가 말이요?》

《아까 종합청사에 갔다가 당위원회에서 일하는 동무한테 들었어요.》

《아니, 좀 자세히 말하오.》

《아이구 참, 들은것이 그게 단데 뭘 더 이야기하라구 해요. 생산을 높은 수준으로 정상화하기 위한 문제는 자기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말씀하셨다구 하더라는데.》

짙은 그늘이 비꼈던 리진오의 눈에 밝은 빛이 비끼고 얼굴에 화색이 돌자 선희에게 그것이 옮겨져 그 녀자의 입가에 미소가 피여났다.

《장담했단 말이지?》

《그래요!》

《여보, 맥주 좀 더 들여오우. 자, 어서 들여오우!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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