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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회


제 3 장

2


…부에서 받은 비판은 너무나 의외였고 혹독한것이였다. 리진오는 당생활 10여년을 해오면서 이렇게 혹독한 비판을 받아보기도 처음이였고 그런 비판을 받는것을 본적도 없었다. 그는 열에 뜬 환자와 같은 정신상태로 기차에 탔고 자기 발같지 않은 다리로 정거장에 내렸다. 혼잡한 나들문을 빠져나온 그는 큰 시름이나 놓은듯이 한참 멎어서서 네온등이 번쩍거리는 거리며 동이 트기 시작하는 때처럼 희끄무레해보이는 공장쪽 하늘을 둘러보았다.

22시가 지났다.

그는 지칠대로 지친 몸을 빨리 침대에 던지고싶었지만 그 희끄무레한 공장쪽 하늘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어째 그런지 공장에 가야만 소란스러운 이 가슴이 진정될것 같았다.

그는 퇴근하는 사람들을 만나고싶지 않았고 불밝은 거리에 나서고싶지도 않아 한적한 뒤길에 들어섰다. 혼자서 조용히 오늘낮에 부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해보고싶었다.

11월치고는 찬 날씨가 아니였지만 그는 추워서 목을 움츠리고 걸었다. 점심을 건늰데다가 아직 저녁전이여서 속이 비여 더욱 추웠던것이다.

얼마쯤 가서 밭뚝길에 들어섰다. 달이 없는 밤이고 생소한 길이여서 발더듬으로 한걸음한걸음 옮길수밖에 없었다. 사위는 고요하였다. 벌레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 대지의 호흡소리같은 위압적인 음향이 몸에 느껴질뿐이였다.

앞이 보이지 않아 길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밭두렁에서 몇번 미끄러지고는 자기가 왜 밝고 평탄한 큰길을 두고 이런 길을 걷고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회의에서 받은 비판과 거기서 받은 실망과 울분때문에 이렇게 험하고 어두운 곳에 쫓긴셈이다.

회의는 뜨락또르공장들의 증산전투를 중간총화하기 위해서 소집되였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리진오네 뜨락또르공장이 전투계획을 못했다는것을 비판하는 모임이였다.

회의에서 토론자들은 리진오네 공장이 뜨락또르증산계획을 미달하게 된것은 전적으로 리진오기사장의 독단주의의 후과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전투조직에서 기사장의 독단주의적행동은 상급에 대한 도전행위라고 규탄하였다. 그는 너무나 의외이고 또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그 다음은 어떤 비판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뭐 내가 도전했다구? 영웅주의라구?)

생각할수록 억울하여 비판을 받고있다는것도 잊고 주위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응당 자기를 지지하거나 적어도 동정의 빛을 보이리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무표정한 얼굴이였다.

피뜩 저편에 국장의 얼굴이 눈에 띄우자 그는 한정빈국장이 있는 한 비록 계획을 못했다는 비판은 받을지언정 상급의 요구에 도전하였다는 규탄은 받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기여 허탈상태에서 자기를 지탱할수 있었다. 그런데 한정빈국장은 얼굴을 들지 않았다. 자기의 눈빛만 보아도 억울한 심중을 리해하고 지지를 표시해주겠는데 무엇인가 수첩에 열심히 쓰고있었다. 쓰기 위해서 얼굴을 숙이고있는지 얼굴을 숙이기 위해서 무엇을 쓰고있는지 하여간 오래동안 얼굴을 들지 않았다.

누군가 책상을 두드리며 무어라고 소리쳤을 때야 국장은 얼굴을 들었고 리진오는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 눈길은 엄격하고 싸늘한것이였다.

《비판을 접수해야 하오.》

국장의 눈길은 그렇게 말하고있었다.

그제야 리진오는 자기가 국가의 법적과제인 지난달계획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상기되였다. 법과 당적원칙앞에서 그는 한정빈형님이 아니라 국장으로 행동해야 할것이였다.

회의에서 어떤 사람들은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느냐고 따져물었다.

이미 준비해둔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말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불같은 독촉에 못이겨 몇마디 대답했는데 모두 변명으로 규탄되였고 조소의 대상으로 되고말았다. 계렬성이 높아지고 기계화, 자동화수준이 제고된 현대공업에서 생산의 비약은 생산을 정상화하면서 기술장비들을 부단히 개조하는데 있다고 한 그의 주장은 《지난달에 그렇게 해보았는데 왜 계획을 미달했소?》하는 질문 한마디에 무참히 짓밟히고말았다.

리진오는 길지 않은 생애에서 그 회의장에서처럼 사람이 그리워본적은 없었다. 누구보다도 강봉학직장장이 그리웠다. 직장장이 옆에 있었으면 모욕적인 말로 비판하는 책임일군의 면전에 고함이라도 쳤을것이다. 자기 구상을 반대하던 주태섭부기사장이라도 곁에 있어주었으면싶었다. 정의와 진실앞에서는 자기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사람이니까 상급에 도전했다는 비판만은 막아주었을것이다.

사람의 신념이란 무엇인데 그렇게 검질긴것인가.

리진오는 지금 생각하면 그 모임에서 어떻게 끝내 자기 주장을 고집할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였다. 책임일군은 때늦게 후회하지 말고 결심하라고 3일간의 여유를 주었다. 그것은 《최후통첩》이였다.

《계획을 미달하게 되면 법앞에서 책임지게 된다는걸 명심하고 결심하오.》

공개적인 위협이였다.

《들었소? 동문 도대체 무엇을 믿고 고집하는거요?》

지시에 순종하는것이 무난한 길이라는것이다. 유혹적인 말이였지만 그것은 신념을 포기하는 대가로만 얻어지게 된다.

(어떻게 할것인가?)

공장후문앞의 외등이 반디불같이 반짝거리는것이 보였다. 그는 그 불빛을 빌려 밭뚝길을 살펴보려고 하였는데 불빛을 본 후의 눈이여서 길이 더욱 보이지 않았다. 유혹이란 항상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 법이다.

얼마후에 공장후문에 들어선 그는 드넓은 현장들을 돌아보며 어데로 갈것인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누구를 만나려 무엇때문에 급히 왔는지 모를 일이였다. 저 종합청사에 가서 만나고싶은 사람이란 박철산당비서뿐이다. 부에서는 공장당위원회에 회의과정에 대해 통보하겠다고 했으니까 당비서는 통보를 받았을것이며 지금쯤 그 역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있겠는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찾아가겠는가?

긴히 만나야 할 사람도 없고 급히 해야 할 일도 없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그는 급히 걷고있었다.

집중화물역쪽에서 기적소리를 울리며 이쪽으로 기차가 달려오고있었다. 기적소리의 긴 여운이 숯검댕이처럼 타버린 가슴을 지지누르며 들려왔다. 잠시후 렬차는 공장뒤를 지나가고있는데 무개화차에 실린 뜨락또르들이 꿈속에서처럼 어슴푸레하게 내다보였다.

화차들이 레루이음짬을 지나갈 때마다 과당, 과당 하는 소리가 단조롭게 들려온다. 리진오는 그것이 레루우를 달리는 단순한 차바퀴소리가 아니라 뜨락또르들이 농촌으로 가면서 자기에게 무엇이라고 조언을 주는 소리인것처럼 들리여 오래도록 차를 바랬다.

이윽고 그는 아닌밤인데 판매과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여서 그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판매과옆 뜨락또르를 반출하는 곳에서 모닥불이 그물그물 피여오르고 그 불빛속에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그림자들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멀지 않은 협동농장에서 온듯 한 운전수들이 뜨락또르를 접수하고 떠날 차비를 하느라고 분주히 서둘러대고있다.

《려관에서 눈 좀 붙이고 떠나지 않겠나요?》

젊은 운전수가 기름걸레에 손을 훔치며 옆의 동무에게 하는 말이다.

《관리위원장이 오늘밤도 창밖을 내다보고있을걸세.》

《갈려면 갑시다. 이 고구마나 구워가지구 떠나지요.》

그들은 주위의 검불을 모아 모닥불 피울 준비를 하고있는데 그옆에 모자를 머리에 비딱하게 올려놓은 중년은 아직 뜨락또르가 차례지지 않았는지 남이 받은 뜨락또르를 부럽게 바라보고있었다.

저편에 있는 한패에서는 불평들이 튀여나왔다.

《도대체 이 공장 사람들은 어쩌자구 하지도 못할걸 한다구 대포를 놓아 이 고생을 시키는가 말이요!》

《영웅주의자들이 회전의자에 앉아있겠지.》

《원 사람도, 일이란 계획대로 안되는 수도 있는거지 그렇게 모욕하면 쓰나?》

《동무도 사흘나흘 나처럼 고생하면 점잖은 소리 안할걸.》

리진오는 듣기가 송구해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버렸다. 생활은 이렇게 절박한데 증산계획을 못해서 책임을 질망정 신념을 굽힐수 없다고 생각한것은 얼마나 희극적인것인가. 신념을 사업상 약점의 위장물로 리용하는것은 신념에 대한 모독이며 배신이다. 나에게 무엇이 부족해서 자가당착의 미궁에 빠지여 헤여나지 못하는가?

판매과 사무실안에서는 뜨락또르를 받으러 온 늙수그레한 사람이 종이장을 내흔들며 고아대고있었다. 그런데 판매과장은 하루종일 사람단련에 지친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있다. 손님이 또다시 무어라고 화를 내며 종이장을 내흔들자 과장의 손에서 오르는 담배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져갔지만 과장은 여전히 함구무언이다.

이번에는 얼굴이 갱핏한 중년이 판매과장앞에 나서서 종이장이 아니라 커다란 손을 내흔들며 소리쳤다.

돌미륵같이 앉아있던 과장이 듣다 못해 한마디했다.

《그러니 낸들 어떡허란 말이요?》

《그래 책임을 회피할수 있을것 같습니까? 규탄을 받을줄 아시오!》

《규탄을 받을테니 제발 그만 떠드오.》

늙수그레한 사람이 중년을 밀어내고 결이 나서 소리쳤다.

《배짱도 땅두께만 하오. 여보 과장동무, 배정된대로 뜨락또르를 주지 못하겠다는 확인서나 써주우.》

《그런 확인서 난 써본 일 없소.》

《여보 과장동무, 당신은 돌심장 아니요? 당신은 농촌경리발전을 방해하고있을뿐만아니라 로동계급에 대한 농민의 믿음에 금이 가게 하고있단 말이요!》

부의 회의에서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좋지 않은 후과를 가져다주었다고 비판할 때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겠거니 하고 접수가 되지 않던 리진오는 소스라치듯 놀랐다.

로동계급에 대한 농민의 믿음에 금이 가게 한다는것은 큰 죄악이다.

판매과장은 그런 으름장에 놀랄 사람이 아니라는 배심으로 여유있게 책상우의 문건을 거두고있었다.

과장대신에 생산을 책임진 자기가 저 단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리진오는 방에 들어서지 못하고 돌아서서 마치 누가 다우쳐오기라도 하는듯이 빨리 걸었다.

얼마후 뜨락또르시운전장옆에 나서자 공장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였다. 저녁이면 아름다운 노을을 배경으로 조화된 기하학적인 선을 그리던 웅장한 공장이 자기를 위압적으로 둘러싸는것 같다.

공장을 쳐다볼 면목이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불현듯 정상화의 방법으로 계획을 수행하면 내 손바닥에 장을 지지라고 했다는 오선달직장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대머리를 번뜩이며 조소의 눈빛으로 맞아줄것이다.

리진오는 조소의 눈빛은 두렵지 않았다. 책임일군의 모욕적인 비판도 견디여낸 그였다. 그가 두려운것은 조소가 아니라 선량하고 기대에 찬 눈으로 맞아줄 사람들이였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운명의 도마우에 자기를 올려놓고 자기 태도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리진오는 바로 지금이 그런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결심해야 하는가?

자기 생각에 쫓기여 걷던 그는 판매과에서 시운전장쪽으로 질러 건너놓은데를 지나다가 미끄러져 그만 한발이 시궁창에 첨벙 빠지여 신발만 아니라 바지가랭이까지 젖었다. 신발을 벗어들고 물을 찌우고 신었지만 신발안에서는 발을 옮길 때마다 쿨쩍쿨쩍하는 물소리가 들리였다. 발을 곱디디였는지 발목까지 아팠다.

이윽고 물에 빠진 발이 얼어들어와 발목이 떨어져나가는것처럼 시렸지만 그는 그냥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그는 인입선이 들어오는 서쪽문에까지 왔다. 언제나 사람이 그리운 경비원로인이 기사장을 알아보고 다급히 달려나와 반기였다.

《아니, 언제 돌아왔나? 춘부장한테 들으니 아침에 평양에 갔다구 하더니.》

로인은 아버지와 동년배의 친구였다.

《좀전에 왔습니다.》

《어서 들어가자구. 이 추운데 왜 여기까지 왔나.》

그는 로인이 이끄는대로 수위실에 들어갔다. 작은 도람통으로 만든 화독의 옆구리가 벌겋게 달아서 방안은 후끈후끈하였다.

《아래도리가 젖었구만. 어서 신발을 벗어 말리우라구.》

그는 로인의 권에 못이겨 신발을 벗었다. 이윽고 바지가랭이에서 김이 문문 오르기 시작했다.

로인은 화독안에 넣었던 고구마를 꺼내서 기사장에게 주려다가 그가 신발을 말리우고있어서 자기가 껍질을 벗기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설익었구만. 하지만 들어보게. 어서 들라니까. 여기 또 여러개 올려놓았네.》

리진오는 고구마가 너무 뜨거워서 이손저손으로 옮겨쥐며 깨물었다.

그제야 로인은 알고싶은것을 물었다.

《갔던 일이 잘되였나?》

《예.》

리진오는 근심스럽게 쳐다보는 로인의 눈앞에서 다르게 대답할수 없었다.

《그래!》 로인은 안도의 숨을 쉬며 계속했다.

《그럼 이제부터 일이 펴이겠구만.》

《그렇게 되겠지요.》

《그럴테지. 어려운 일을 시작하면 항상 고패를 겪기마련이라네.》

《그럴가요?!》

《그렇구말구!》

말동무가 그리웠던 로인은 지난날 공장이 아름찬 과제를 받아안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군 하였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로인은 난로에서 고구마를 또 하나 꺼내여 껍질을 벗기며 그때를 방불하게 그려볼수 있게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자 기사장, 하나만 더 들게. 그러면 속이 훈훈해질걸세.》

리진오는 사양하지 않고 그것을 받았다. 뜨거운것이 속에 들어가 그런지 로인의 고마운 마음때문인지 이윽해서 그의 몸은 훈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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