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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회


제 3 장

1


일요일아침이였다. 어제밤 집에 돌아온 한정빈국장은 밀린 잠을 실컷 자보려고 하였지만 습관이 그것을 방해해서 아침일찌기 눈을 떴다.

그의 막내녀석은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난 김에 대성산유원지에 놀러 가자고 팔을 잡아당기였다.

한정빈은 누운채 창밖에 눈길을 던지였다. 맑은 하늘이 내다보였다. 휴식하기는 맞춤한 날이였으나 그는 《이다음에 가자꾸나.》하는 벌써 몇번이나 거듭 외운 말을 다시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오늘 또다시 출장을 떠나야 했다.

안해 역시 집에 오기 바쁘게 또 떠나려는가고, 어쩌다 쉬는 날인데 아이의 선생님도 만나보고 큰집 조카가 약혼을 한다는데 거기에도 얼굴을 보여야 한다고 푸념을 하였다.

그것도 해야 할 일이였고 찾아가봐야 할 일이였지만 그럴새가 없었다. 지난달 자기가 지도방조한 뜨락또르공장에서 월전투계획을 85프로밖에 수행하지 못한것이다. 뜨락또르조립대수로 보면 전달보다 조금 장성한 편이기는 하지만 월증산분까지 포함한 전투계획으로 볼 때 그것은 수치스러운 수자였다.

그러한 보고를 들고 부에 갔던 어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부의 월총화모임에서는 한정빈이 지도한 공장에서 전투계획을 수행하지 못하여 전국적으로 뜨락또르증산계획을 미달하였다고 비판되였다. 국장으로 임명된 후 첫사업에서 실패하여 받은 비판이여서 더욱 창피스러웠다.

《그곳 기사장이 생산조직을 제멋대로 해서 그 모양으로 되였다던데 자넨 왜 그걸 그냥두었나?》

모임장소에서 나올 때 가까운 친구가 격분을 표시하였을 때 그는 자기가 사업을 혁명적으로 내밀지 못한탓에 그렇게 되였노라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자기비판이면서 동시에 그의 결심이 반영된 대답이였다. 앞으로 한정빈은 자기의 주장을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결심이였다.

(두고보라지!)

한정빈은 분발하며 속으로 외웠다.

(무엇부터 어떻게 일을 밀고나갈것인가?)

그는 곰곰한 생각끝에 지방에 있는 대상공장들에 내려가 증산투쟁에 필요한 협동품들을 제때에 보장하도록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뜨락또르생산에서 비약을 일으키자면 자재와 함께 협동품들이 선행되여야 한다. 부에서는 뜨락또르를 계획외에 더 생산할데 대한 지시를 뜨락또르공장에 내려보내면서 동시에 다른 공장들에서 협동품을 그만큼 더 생산보장해줄데 대한 행정적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그런 조치만으로 협동품이 제대로 들어오겠거니 하고 믿고있다가는 랑패를 볼수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한정빈은 공장일보다도 증산계획을 수행할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것이 더 급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현지의 공장으로 떠날 결심을 내린것이다.

《정말 낮차에 떠나겠어요?》

안해가 부엌에서 들어오며 따져물었다.

《어떡허겠소, 떠나야지.》

그는 기계적으로 대답하고 주먹을 이마우에 올려놓으며 부부장이 단단히 문제를 보겠다고 하던 말을 회상하고있었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한다?)

그는 관료주의소리를 듣더래도 제 생각대로 내밀었어야 했다고 후회하며 주먹으로 이마를 두드렸다.

《아버지, 일어나.》

아이성화에 못이겨 일어난 그는 창문을 열었다. 늦가을의 써늘한 공기가 정신이 들게 페부를 찌른다.

《정말 답답하군요. 떠나야 한다면 그렇게 말을 해야 준빌 하지 않아요.》

안해는 이불을 개며 푸념을 했다.

《준빈 무슨 준빌 한다구 그러우?》

《원참, 은하오빠가 일하는 공장에 간다면서 그의 집엔 안들릴 작정이예요?》

《들려야지.》

《빈손으로요?》

(정말 그렇군.) 하고 한정빈은 은하일가에 대한 자기의 무관심을 새삼스럽게 뉘우치였다.

지난날 공장에서 일할적에는 은하오누이의 일을 성심껏 도와주려고 애썼지만 평양에 소환된 후부터 차츰 관심이 적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에 뜨락또르공장에 가서 박철산과 은하사이를 보고야 몰인정한 인간으로 되여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사이 사업이 분주해서 그렇게 되였다고 자신을 변명하려고 했지만 량심이 허락치 않았다. 남보다 공부를 씨원하게 하지 못하는 딸의 대학입학을 위해서는 수없이 학교에 드나들던 그였다. 이제부터라도 도덕적인 빚을 짊어지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심은 구름장에 치부로 되고말았다.

《신의도 없고 의리도 없는 인간!》

누군가 이렇게 규탄하는것만 같았다.

그는 상을 차려놓고 백화점에 가려고 부지런히 나들이옷을 갈아입고있는 안해를 바라보며 자기의 치졸한 변명을 스스로 조소했다.

일요일의 거리는 아침부터 흥성거렸다. 온 수도시민이 이 맑은 가을날을 즐기기 위해서 모두다 거리에 쏟아져나온듯이 가나오나 사람, 사람사태다.

과년한 처녀들 한패가 걸어온다. 여섯이 모두가 은하의 나이또래였다. 그래서 그는 얼굴이며 걸음걸이며 옷매무시며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은하보다 돋보이는 얼굴은 눈에 띄우지 않는데 옷은 모두 은하가 부러워하게 차려입었다. 은하를 저렇게 차려입혀서 저속에 세워놓으면 두드러지게 아름다울것이다.

삶의 환희가 넘치고 젊음이 약동하는 거리를 걷고있는 지금 한정빈의 눈앞에는 느닷없이 이 환희, 이 젊음을 고수하기 위해서 청춘과 생명을 바친 전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은하의 아버지인 특무장도 랑만이 넘치는 이 사람들의 흐름을 위해서 그리고 그 흐름속에 아직은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랑하는 자기 딸을 내세우기 위해서 목숨바쳐 싸우지 않았던가?

한정빈은 급한 출장이나 갔다와서는 사방에 줄을 놓아 은하가 소원하는 문제를 풀어보아야겠다고 속다짐하며 렬차에 몸을 실었다.

뜨락또르공장에 협동품을 보장하는 공장이 한둘이 아니여서 그는 계약날자를 잘 지키지 않아 공장에서 늘 애를 먹는다는 전기부속품과 고무부속품을 생산하는 일부 공장들만 찾아다니였다.

예견한대로 대부분의 공장들에서는 계약외에 그렇게 많은 협동품을 요구하면 우리가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하는 태도들이여서 목이 아프도록 지배인과 기사장들을 납득시켜야 하였다. 협동품들을 증산하기 위해서 그 공장에서 걸린다는 자재를 풀어주기 위해서 여기저기 드달려다녀야 했고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 일이지만 직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청을 들기도 해야 하였다.

그렇게 온종일 시달리다가 려관에 들어오면 몸이 나른해져서 꼼짝도 하기 싫었다. 그는 날마다 바뀌는 눈에 선 천정을 바라보며 리진오, 그 사람이 이런 수고를 알기나 할가 하는 생각을 하군 하였다.

협동품을 푸는 일이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든다고 해도 공장에서 생산이 올라가면 일이 힘들지 않을것인데 어제 뜨락또르공장에 전화로 형편을 료해한데 의하면 떠나올 때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기사장은 여전히 정상화소리만 하고 혁명적인 대책을 취하지 않아서 생산은 답보상태에 있다는것이다. 그 소리를 듣자 결이 나기도 하였지만 믿던 사람한테서 배반당한것 같아서 더는 협동품문제를 풀기 위해서 달려다니고싶지 않았다.

한정빈은 격분을 참을수 없어서 어제 전화를 받는 생산부기사장에게 래일 이 시각에 기사장이 전화를 받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한정빈은 지금 고무공장에서 약속한 시간을 기다리며 멀리 산줄기가 내다보이는 창가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도대체 그 사람은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려고 손싸매고있는가?

그는 부부장이 땅땅 벼르던 얼굴이 떠오르자 속이 타서 탁자우의 물을 따라마시였다.

《교환, 교환.》

키가 날씬한 고무공장 계획과 지도원처녀가 송수화기를 들고 나직이 소리쳤다.

《국장동지가 뜨락또르공장에 부탁한것 제시간에 련결시켜줄수 있지요?》

《그냥 두시오. 대주겠지요.》

한정빈이 참견했다. 이제 리진오의 목소리를 듣겠거니 하는 생각때문에 벌써부터 흥분한 어조였다.

《긴급통화가 제기됐다구? 아이참, 이건 뭐 긴급이 아닌줄 알아? 곧 대줘.》

송수화기를 놓은 처녀는 미안하다고 미소를 지어보인다.

미소하는 처녀의 입매가 은하의 입매와 비슷해보였다. 한정빈은 은하의 생각이 들자 그의 어머니를 만났던 일이 떠올라 울적하던 가슴이 좀 가라앉는것 같았다.

그는 은하의 집을 방문함으로써 도의적인 중압감에서 해방된것이다.

은하의 어머니는 그에게 극장소리는 꺼내지도 말고 평양에서 마땅한 신랑감이나 마련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지금 은하의 어머니가 하던 말을 회상하며 왜 벌써 그런 생각을 못했을가 하고 자책했다. 안된다는 극장때문에 비라리하기보다 맞춤한 신랑감을 골라주는것이 더 헐할것이고 또한 그의 어머니도 기뻐할것이다.


*


리진오가 전화를 받을 시간이 되여 종합지령실에 들어서자 기사장이 이 시각에 여기에 온다는것을 탐지한 사람들이 긴 걸상에 앉아 기다리고있었다. 그속에서 기사장이 부른것은 김기룡이 하나뿐이였다.

방에 들어선 기사장의 안색이 례사롭지 않다는것을 눈치챈 그들은 여느날처럼 기사장의 관심을 먼저 차지할 경쟁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처분을 기다리고있었다.

리진오는 국장과의 통화를 앞둔 긴장한 시간이였지만 시계가 18시를 가리키자 얼굴을 들고 종합지령실 한쪽구석에서 통계용지에 부지런히 수자를 적고있는 종합통계원쪽으로 시선을 돌리였다. 빨리 종합통계를 보고싶었던것이다. 그런데 통계원처녀는 매일 18시정각이면 기사장에게 제출하기로 약속되여있는 통계를 제출할수 있게 준비하지 못하여 사과하는 표시로 몸을 약간 의자에서 들며 매력있는 눈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제도와 질서를 귀중히 여기는 기사장은 그 미소를 보고서도 시간이 늦어지는것과 타협할 아량을 표시하지 않고 직장장들과 마주앉기 위해서 수첩을 폈다. 그의 수첩 여백에는 좌표의 원점에서 상승하는 직선과 처음에는 밋밋하게 오르다가 나중에는 갑자기 오르는 곡선이 그려져있는데 두 선분의 교차점 아래우에 형성되는 반달형을 사선을 그어 강조하였다. 그 직선은 월초나 월말이나 같은 속도로 생산이 장성하는것을 표시하는것이고 곡선은 월초에는 늦잡다가 월말에 가서 돌격식으로 일하던 지난날의 생산과정을 표시한것이다. 그리고 두 선분이 형성하는 아래쪽 반달형의 공간은 월초부터 생산을 정상화한다면 그만한 예비를 얻을수 있으리라는것을 표시한것이고 우쪽의것은 월말돌격으로 얻어낸 량을 표시한것이다. 어제 무슨 회의엔가 참가하였다가 공장의 생산흐름을 생각하며 도표화해본것이다. 그 도표에 의하면 월말에 돌격식으로 일을 조직하지 않더래도 공장관리를 정규화하고 생산을 정상화하면 뜨락또르생산량은 훨씬 증대될것이였다. 그러나 지난 10월생산은 그가 도표에 표시한대로 되지 않았다.

찾아온 직장장들과 마주앉아 제기된 문제들을 처리한 리진오는 김기룡이에게 돌아앉으며 물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되여가는거요?》

그사이 김기룡의 연구사업이 전혀 진척되지 않아서 그 원인을 알아보려고 부른것이다.

김기룡은 방열모를 한참 주무르며 갑자르다가 대답했다.

《될만 한것을 붙들고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될만 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주태섭부기사장까지도 고개를 기웃거린다는것이다.

《뭐요? … 동무 귀로 들었소?》

《우리 직장장동지가 그러시던데요.》

《내가 본 새 도면을 보였소?》

《전번 도면을 보인것 같습니다. 허지만 그것과 새 도면은 큰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누가 차이가 없다고 그럽디까?》하고 리진오는 따져물었다.

《누가 그러던가 말이요?》

기술과장이 새 도면을 보고 그런 말을 하였지만 김기룡은 그것을 밝히고싶지 않아서 벗어든 허연 방열모를 비틀었다.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오! 동문 기사들을 믿고 연구사업을 시작했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무어라고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말이요?》

《기사들의 동의가 없으면 도입시험을 할수 없지 않습니까?》

《승인하지 않겠으면 말라지. 그만한 배짱도 없이 일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모르겠소. 어디에 남의 승인을 받고 혁명을 시작한 력사가 있소? 기술혁명도 하나의 혁명이란 말이요! 우리 공장 선배로동자들이 첫 뜨락또르를 만들 때 누가 된다고 지지하는걸 시작했소?》

열이 올라 화를 내던 리진오는 문득 김기룡의 눈에 해지는 저녁바다같은 쓸쓸한 빛이 담겨있는것을 발견하고 입을 다물었다. 동정을 받아야 할 기룡이를,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그를 어째서 몰아세우고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결국 그것은 화풀이였다.

김기룡은 정면으로 기술자의 공격을 받고있을뿐아니라 영웅주의자라는 배후공격도 받고있다. 그는 견디기 어려운 그런 심리전에 참가해야 할뿐아니라 지식의 빈곤과도 싸우며 연구사업을 진행하여야 한다.

(친구, 미안하이.)

리진오는 잠시 방안을 거닐며 생각에 잠겼다가 창가에 가 서며 말했다.

《누가 뭐라든 자신을 믿으라구, 자기 신념대로 행동하라구.》

그의 이야기는 김기룡이에게보다 오히려 불안과 초조속에 있는 자기자신에게 타이르는 말이기도 하였다.

《자기 신념을 의심하는것은 패배자로 되는 첫 걸음이요.》

잠시후 리진오는 그에게 도면을 밀어놓으며 말했다.

《래일 현장에서 협의회를 열겠는데 그때까지 생각을 좀 더 무르익히오.… 왜 대답이 없소?》

리진오는 손가락빗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리다가 요새 이 친구와 은하사이가 순탄치 못하다던 안해의 말이 생각나서 터놓고 물었다.

《은하동무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소?》

《제기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모를건 동무가 아니라 나요.》하고 이야기하던 리진오는 속보생각이 나서 《기룡동무, 속보를 봤소?》하고 물었다.

《봤습니다.》

속보에 《기능공양성의 앞장에서》라는 큰 활자로 은하가 각 직장에 널려있는 10여명의 중학교 졸업생들의 기능을 높여주기 위해서 애쓰고있는 내용이 실려있었다.

전날에는 은하가 안착되지 않아 그랬다치구 이렇게 사업에서 혁신을 일으키고있는데 어째서 그냥 서로 아웅다웅하는지 리진오는 도무지 리해가 되지 않았던것이다.

김기룡은 입이 쓰다는 표정으로 외면하고 앉았다가 시들하게 이야기했다.

《국장동지가 빨리 평양에 가보라고 부추긴것 같습니다.》

《여기에 국장동지가 무슨 상관이라구 그런 소리 하오. 쇠덩이를 녹이는 친구가 처녀의 얄팍한 심장 하나 녹이지 못한단 말이요?》

그때 시외전화가 련결되였다.

리진오는 국장과의 대면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긴숨을 풀고 수화기를 귀에 댔다.

《리진오가 전화받습니다.》

《동무가 기사장이요?》

거친 목소리가 진동판을 때렸다. 부의 한 책임일군이 하는 말이였다.

《동무, 아직도 국장이 지시한대로 사업조직을 개편하지 않고있다는것이 사실이요?》

《…》

《왜 말이 없소. 동무에게는 상급도 없소? 국장은 동무의 상급이기 전에 동무의 선배이구 또 누구보다도 동무네 공장실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요.》

《…》

리진오는 대답할 소리가 없었고 또한 흥분해서 대답할수도 없었다.

《긴말 할새가 없소. 부에 올라오오. 들었소? 래일 9시까지 올라오란 말이요.》

전화는 끊어졌지만 리진오는 한참동안 귀에서 수화기를 떼지 못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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