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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회


제 2 장

8


(일이 안되면 말이 많아지는 법이지.)

점심을 먹은 리재협로인은 운동장옆 의자에 앉아 청년들이 공을 차는것을 바라보며 기사장사업을 하는 아들이 강봉학직장장이며 오선달직장장과 곱지 않은 말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를 상기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같으니!)

리재협로인은 그 충돌이 단순히 나이많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들의 건방진 행동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이렇게 걱정이 되지 않을것이였다. 필경 진오는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생산을 높은 수준으로 정상화하기 위한 투쟁이 은을 나타내지 못하고 높아진 일정계획을 련속 미달하니까 간이 달랑달랑해서 조폭한 행동을 했을것이다.

일에 공을 들이기 전에 먼저 성과부터 바라고 성과가 없다고 초조해서 그런짓을 하는 아들이 과연 어려운 전투를 이끌고나갈수 있겠는지 모르겠다.

아침까지만 하여도 맑던 하늘이였는데 어데 숨어있던 매지구름인지 앞을 다투어 흐른다. 비가 올것 같다. 비가 그치면 날이 차지겠지.…

《아버님, 점심 드셨어요?》

리재협로인은 제 생각을 더듬느라고 며느리가 옆에 올 때까지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네가 큰일을 시작했다지?!》

로인은 며느리가 고철압착기를 설계하고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어둡던 얼굴에 밝은 빛이 피여났다.

《여기 좀 앉으려무나.》

로인은 비스듬히 비켜서있는 선희를 대견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힘들지?》

《모두들 도와주고있어요.…》

힘드는것을 힘드는줄 모르고 일하겠지 하고 로인은 생각했다. 불안에 싸여있는 아들의 곁에 듬직한 반려자가 있는것이 미더워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하고 리재협로인은 가볍게 나무랐다.

《로친네에게 당분간 너희 집에 가있으라구 하겠다.》

《그러지 마세요. 큰집 일도 바쁘실텐데요.》

한참 자기 생각에 잠겼던 로인은 다시 며느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요새 아애비 기색이 어둡지?》

《…》

선희는 발끝으로 땅을 비볐다.

《어려운 아애비에게는 나나 로친보다 네가 더 필요할게다.》

《알겠어요.》

오후의 작업시작을 알리는 고동소리가 울려퍼지였다.

며느리가 사라진 다음에도 리재협로인은 그 자리에 한참 앉아있었다. 오늘은 와달라고 각별히 청하는 직장도 없거니와 여기저기 돌아다닐 경황도 없었다.

(원, 저런 녀석들 봤나? 고동이 났는데도 공을 쳐?)

청년들을 빨리 작업장으로 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리재협로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그가 청년들한테 가기 전에 그들은 어느새 다 흩어져버렸고 로인도 역시 이미 그 생각이 아니라 강봉학과 아들사이에 있었던 언쟁에 대하여 걱정하며 걷고있었다.

리재협로인은 허리가 아파나서 허리 아래도리를 툭툭 치였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공장이다. 전후에 복구했던 공장은 고함을 치면 온 공장 어데서나 다 들리군 하였는데 그사이 공장이 얼마나 커졌는가?

작업장 구석마다에 놓인 침대들,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다시 기대를 잡던 돌격전투의 그 밤들 그리고 처자들까지 떨쳐나서 봉족을 들던 그 작업장이며 한시간동안 영화구경을 갔던 녀석을 비판해야 하였던 그 준엄한 모임들… 그 나날이 있어서 이런 공장이 태여났는데 그것을 제눈으로 본 녀석이 왜 그런 돌격전투는 안중에 없는고?!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락엽과 먼지를 말아안고 공중에서 빙글빙글 맴돌다가 대동강쪽으로 사라진다.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을비는 가시아비나릇아래서 긋고 간다더니 여름비처럼 내린다. 비는 저녁때까지 멎지 않았다.

리재협로인은 단조직장의 송풍기가 말썽이라던 말이 생각나서 그것을 보아주러 갔다가 단조공들과 토론을 하느라고 비가 퍼붓는것을 보지 못했다.

일을 끝낸 로인은 단조직장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리며 하늘을 내다보고있었다. 추녀밑에서는 갑자기 내린 비가 도랑을 이루었는데 바람까지 불어 비발이 모로 후려치고있었다. 비는 조금 가늘어졌지만 인차 멎을것 같지 않았다.

(왜 날씨까지 이렇게 구질거리는고?!)

그렇게 비가 내리는 속을 박철산당비서가 걸어가고있었다. 웃옷이 푹 젖었다. 이왕 맞은 비라고 천천히 걷고있는것 같다.

《여보게, 당비서-》

리재협로인이 소리쳐불렀지만 쿵쿵거리는 공기망치소리때문에 당비서가 듣지 못하자 마침 지나가던 지게차의 운전공처녀가 당비서의 앞에 가멎으며 교관아바이가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리재협로인은 나팔을 만들었던 손을 저으며 어서 오라고 소리쳤다.

《조용히 할 말이 있네.》

조용히 할 말이라면 휴계실이나 사무실에 가야겠는데 로인은 단조직장현장으로 앞장서 들어간다.

당비서는 뒤따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현장으로 가서는 송풍기며 망치소리때문에 조용한 이야기를 할수 없는것이다.

《저리로 가자구.》

육중한 망치들이 한켠에서 씩씩거리고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발바닥이 울리게 쾅쾅 소재를 조겨댄다. 가열로에서 시뻘겋게 된 소재들이 망치가 있는쪽으로 현을 그리고 훌쩍훌쩍 날았다.

《이녀석들, 누가 그렇게 던지라고 했어?》

리재협로인은 표준조작법을 지키지 않는 키작은 청년한테 가서 땀이 번지르르한 잔등을 사정없이 갈기였다.

《이녀석, 넌 처녀들이 있는데서 웃통을 벌거벗으면 어떻게 해!》

로인은 쇠의자를 들어다가 가열로옆에다 놓으며 가까이 온 당비서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박철산은 떨리던 몸이 갑자기 뜨거운 로앞에 오자 긴장이 풀리였다.

《어서 앉으라구.》

《여기 앉아서야 무슨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그까짓 이야기야 관에 들어가는 날까지 하는거 차차 하지. 그 작업복이나 벗게.》

그제야 박철산은 로인이 젖은 자기 옷을 보고 이리로 데려왔다는것을 깨달았다.

《어서 벗으라는데두.》

로인은 제손으로 작업복을 벗기였다.

《어이구, 속까지 젖었구만. 변변치 않은 사람이 제 몸 제가 건사해야지 이렇게 비를 맞구선 어쩔라구 그러나?》

로인은 박철산의 작업복을 펼쳐들고 로쪽으로 대였다.

《등이 젖었으니 돌아앉으라구. 원, 공장안에서 그렇게 비를 맞다니, 어디서 긋구 다니지 못하구서.》

《제관직장에 갔다오다가 여기저기 좀 들리느라구 했는데 그새 이렇게 젖었구만요.》

《제관직장에서 하는 일이 앞이 내다보이던가?》

박철산이 걸린 주강소재를 제관품으로 전환시키여 주강직장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애쓰고있는 일에 대한 물음이였다.

《내다보이구 말구요. 예비가 없을리 있습니까?》

《강봉학이 좋아하겠군.》

리재협로인은 열기를 피하느라고 얼굴을 뒤로 젖히며 말했다. 그가 든 작업복에서는 김이 문문 오르기 시작했다.

《허, 저렇게 개이기 시작하는 하늘이 그 조화를 부렸구만.》

박철산은 뜨거워오는 잔등을 슬슬 긁다가 《왜 찾으셨습니까?》하고 돌아앉으며 물었다.

《아직 마르지 않았네. 어서 돌아앉으라구.》

그는 로인이 시키는대로 돌아앉아 얼굴을 돌리며 대답을 기다렸다.

작업모를 비딱하게 쓴 공기망치운전공처녀들이 당비서의 상의를 말려주고있는 리재협로인이며 그렇게 맡기고있는 당비서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저희들끼리 킥킥거리고있었다.

《왜 찾았습니까?》

박철산이 다시 물었다.

《옷말리우는걸 보면서 묻는군.》

《허허, 허긴 이제야 몸이 거뜬해집니다.》

박철산은 로인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것을 발견하고 말했다.

《기색이 좋지 않으시군요.》

《들리느니 답답한 소리뿐인데 기색이 좋을수가 있나? 당비서두 우리 진오가 강봉학에게 큰소리쳤다는 얘길 들었겠지?》

《들었습니다.》

《그래, 그걸 그냥둬?》

《일을 하느라면 그런 일도 있기마련이지요.》

《그게 무슨 소린가?》하고 리재협로인은 엄한 소리로 나무랐다.

《상하도 모르고 뛰는걸 그냥두다니 말이 되나? 내 보기엔 기사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해서 소재생산이 늘어나지 않는것 같은데 기사들을 발동시킬 생각은 못하고 왜 헛다리를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가 말이요.》

《그 말씀이 옳습니다. 그래서 기사장동문 기사들을 궐기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기사장동무가 옳은 말을 한것 같습니다. 지금은 힘으로가 아니라 머리로 뜨락또르를 생산하고있구 고함으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생산을 지휘하는 시대가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강봉학직장장에게 양보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양보해야 하구 그렇게 되면 생산을 정상화하자는 구호까지 양보하게 되지요.》

리재협로인은 옷을 여기저기 옮겨잡으며 말리웠다.

《이젠 됐습니다. 주십시오.》

리재협로인은 옷을 주며 혼자소리를 했다.

《요샌 통 국장을 볼수가 없군.》

《공장사업을 료해하느라고 밤이 깊을 때까지 현장에 나가있습니다.》

《공장형편을 보고 뭐라든가?》

《아직 저에게도 말이 없습니다. 하루이틀만 더 료해하구 이야기하겠답니다.》

《그래? 허긴 웃사람이니까 매사에 신중해야지.》

《자, 이젠 주십시오. 다 마른것 같구만요.》

《깃쪽이 덜 말랐어. 참 여보게, 2조립의 강칠석이를 아나? 일석이부터 륙석이까지는 왜정때 다 굶어죽고, 앓아죽은… 옳으이, 마마자국이 좀 남아있는 작업반장말일세. 내가 어제 길거리에서 그 사람의 어머니를 만났네. 아들은 휴양을 가고 없는데 탄이 떨어져간다구 걱정하더군.》

《무연탄이 들어왔는데요.》

《무연탄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칠석이어머니가 하는 말이 일군들이 공급사업을 공평하게 조직하지 못하고있는것 같더구만. 그래서 후방부에 이야기를 했는데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겠는지 모르겠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얼마후 박철산은 마른 상의를 입고 일어섰다. 리재협로인은 문가에까지 따라나가며 귀띔해주었다.

《일이 바쁘겠지만 인민반의 세대주모임에도 짬을 내서 참가하라구. 집이란 아낙네들 손이 가야 할데가 있구 남정들 손이 가야 할데가 따로 있다네.》

밖에서는 아직도 가는 비가 내리고있었다.

《한정빈 그 사람이 예전에 속앓이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어떤지 모르겠군.》

리재협로인은 이런 소리를 하며 그의 등에 걸쳐주려고 작업복상의를 벗었는데 박철산은 벌써 문을 나서서 급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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