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6 회


제 2 장

7


관리국장 한정빈은 일요일아침 느지막해서 젊은 지도원과 함께 뜨락또르공장으로 떠났다. 책임지도원이 공장에 알리겠다고 했을 때 그는 상봉이란 뜻밖이라야 더 즐겁고 의의가 있는것이라고 굳이 말리였다. 일요일이기는 하지만 공장에서는 아름찬 전투과업을 받고 몹시 바쁘게 달려다닐텐데 그들의 사업을 방해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들판에서는 벌써 벼가을이 시작되였고 길가에 늘어선 야산에는 단풍이 불타고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에 평양으로 수없이 오르내리며 친숙해진 길을 달리고있는 그는 감회가 깊었다. 공장을 떠난지 벌써 10년이 훨씬 지난것이다. 그는 동행하는 지도원에게 저 야산에 널린 밤나무와 저기 보이는 봉화대의 유래에 대해서 그리고 저 산기슭에 펼쳐진 저수지와 그옆에 일어선 3층농촌문화주택이 건설되던 해 공장이 어떻게 지원했는가에 대해서 쉬임없이 이야기했다.

어느새 거리에 들어선 승용차가 립체다리우에 올라서자 그는 운전사에게 잠시 차를 세우게 하고 립체다리의 걸음길에 나섰다.

비날론솜같은 구름이 둥둥 떠흐르는 아래에 가공조립종합현장의 흰벽이 눈부시게 빛나고 그 저편으로 키돋움하며 일어선 웅장한 단조직장이며 현대적인 창고 그리고 하나의 큰 야금공장을 방불케 하는 주강직장이 보이였다.

한정빈은 그 공장속에서 비가 줄줄 새던 삭은 함석지붕의 옛 일터가 어데쯤 있었던가 하고 가늠해보았다. 비가 내리면 우산으로 받으며 일하군 하였던 그 직장자리는 아마도 저 창고옆이였을것이다.

한정빈이 파편에 째진 자리를 사나이의 서툰 바느질솜씨로 숭숭 호아맨 병사의 배낭을 메고 이 공장에 돌아온것은 모든것이 어려웠던 1954년이였다. 식량이 발라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메를 휘둘러야 하였고 로동복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서 군복을 입은채로 일해야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랑만에 차있던 시절이였다. 낮에는 땀을 철철 흘리며 농쟁기를 벼리다가 밤에는 영악스러운 모기에게 뜯기면서도 뜨락또르가 쏟아져나올 미래를 꿈꾸며 공부했다. 함께 제대되여 돌아온 동무들이 《여, 책에서 쌀이 나오는가. 호미라도 한가락 더 벼리자구.》하고 말하면 지금의 당비서인 박철산은 《둬두게, 앞으로는 알아야 한다네.》하고 그렇게 말한 동무의 등을 치며 웃었다.

바로 그때 꿈꾸던 미래가 지금 눈앞에 펼쳐졌다.

《자, 어서 갑시다.》

한정빈은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공장이 못 견디게 그리워져 운전사를 돌아보며 서둘러댔다. 혹시 유보도에 옛 친구들의 얼굴이 보이는가 해서 눈여겨 살펴보았으나 면목이 있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공장에서 바삐 돌아가겠는데 공연히 찾지 않는가. 그 옛날 어린 진오의 성화에 못이겨 밤을 따러 올라갔던 서학산이 눈앞에 나서며 반가이 맞아주었다.

공장정문에 다달은 한정빈은 생각했던것과는 다르게 공장이 너무나 조용해서 흥분과 기쁨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말았다.

《아니, 정말 휴식한단 말이요?》

휴양소같이 한적해보이는 공장의 정문에서 맞아준 볼이 팽팽하고 눈이 작은 처녀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일요일이예요.》

《하긴 일요일이지.》

한정빈은 허거픈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새 기사장동지가 사업하기 시작한 담부턴 일요일엔 일하고싶어도 나오지 못한답니다.》

정문을 나드는 사람이 없어서 적적하던 어린 처녀는 이야기상대를 만난것이 기쁜듯 당비서는 주택건설장에 가고 기사장은 합숙을 돌아보러 나갔으며 또 누구누구는 어데어데 갔다고 친절히 이야기하였다.

외래자합숙에 방을 꾸려놓았다던 박철산의 말이 생각나서 그쪽으로 돌아서려는데 떠들썩하며 이리로 오던 처녀들속에서 웬 처녀가 우뚝 멈추어섰다. 그 처녀는 다음순간 환희에 넘치여 그한테로 달려오며 웨쳤다.

《국장동지-》

은하였다. 언제인가 평양에 놀러 온것을 본 은하였는데 그사이에 더욱 환하게 피여났다. 목도 쑥 빠지고 얼굴도 박속같이 맑아졌다.

은하는 그의 팔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자기가 온다구 당비서동지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는거며 기사장동지네 어머니는 국장동지가 좋아하는 송편을 빚겠다고 팥을 마련하러 농촌에 갔다왔다는 이야기며 한참 내리엮었다.

《그렇게들 기다리는데 어느날 오신다는 기별이나 하구 오시지요. 그럼 마중을 할것 아니예요.》

한정빈은 조용한 공장을 다시한번 훑어보며 은하에게 2천대증산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가고 물었다.

2천대증산과제가 전달되지 않았다든가 정치사업이 잘되지 않아서 공장이 이렇게 한가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듣구말구요. 어제밤에도 우리 사로청에서는 궐기모임을 가졌는데요 뭐.》

은하는 련일 조직별모임을 가지고있으며 경제선동을 맹렬히 전개하고있는 정형이며 가두에서 년로보장을 받고있는 로인들까지 공장당위원회에 찾아와서 일을 맡겨달라고 나섰다는 이야기를 했다. 노래만 잘 부르는것이 아니라 말도 잘한다.

《근데 왜 이렇게 공장이 조용하니?》

은하는 가볍게 놀라더니 깔깔 웃어댔다.

《일요일이니까 조용하지요 뭐.》

한정빈은 어설프게 따라웃었다.

(일요일? 하긴 쉬기도 해야지.)

그는 정치사업이 맹렬히 벌어지고있다고는 하지만 그 꼭지만 건드린거라고 짐작했다. 안온한 이 공장에 어떻게 혁명적열정의 선풍이 일게 하겠는가?

《다 노는 날이라면서 넌 왜 공장에 나왔니?》

《예술소조련습 나왔어요.》

제대군인들과 중학교졸업생들을 환영하는 공연을 준비한다고 했다.

한정빈은 예술소조라는 말에 은하가 기다리고있을 극장문제가 생각이 나서 말했다.

《제때에 회답을 못해서 안됐다. 여기저기 다리를 놓고 알아보느라고 지체됐다.》

한정빈은 기뻐서 얼굴이 빨갛게 물드는 은하를 보니 그 일을 좀더 적극적으로 추진시키지 못한것이 후회가 되였다. 누이동생이 자기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겠다고 한 후 한두군데 전화로 알아보았을뿐이였다.

《기사장이 와서 말하지 않더냐?》

《기사장동지 아주머니한테 들었어요, 힘들거라구.》

《아닌게아니라 극장에 들어가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구나. 하여간 좀 기다려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어떻게 되겠지.》

한정빈은 은하의 극장문제가 확고한 전망이 내다보이는것은 아니지만 자기 팔에 안기여 숨을 거둔 그 인정많던 특무장의 부탁이 생생하게 떠올라 다르게 대답할수 없었다.

…장마때문에 전선으로 통하는 수송로가 두절되여 전사들은 강냉이 한이삭으로 한끼를 에우고있던 엄혹한 여름이였다.

적후정찰에 나갔던 한정빈은 같이 떠났던 두 전우를 피눈물과 함께 묻어주고 중대에 돌아왔다. 그날도 역시 한정빈에게 강냉이 한이삭이 차례졌다. 돌덩이도 먹으면 삭일수 있는 그에게 강냉이 한이삭은 눈요기도 할수 없는 량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전사한 전우들의 생각이 나서 강냉이를 알알이 뜯어서 기계적으로 집어넣느라고 그것을 다 먹을 때까지 한시간은 걸렸을것이다.

놈들이 밤낮 쏘아대던 포소리도 멎어 조용한 밤이였다. 이틀밤을 꼬박 새운 그였지만 잠들지 못하고 전호에 기대여 쪼각달을 바라보았다. 고지의 고요를 민감하게 감촉한 풀벌레들이 목청껏 울고있었다.

밤이 깊었을 때 은하의 아버지인 특무장이 그한테로 왔다. 늘 바쁜 특무장은 그의 옆에 와앉으며 《자리를 잘 기억해두었소?》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묻은 자리를 기억한다고 그들이 살아납니까?》

한정빈은 어째선지 화를 내며 돌아앉아버렸다.

《수첩에 적어두라구. 전쟁이 승리하면 동무가 찾아가야지 아는 사람이 없지 않아.》

특무장은 한정빈에게 타이르며 종이에 싼것을 말없이 쥐여주고 가버렸다.

인차 손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강냉이 반이삭이였다. 그 허리부러진 강냉이의 따뜻한 온기가 그의 든든한 심장을 흔들어놓았고 마침내 뜨거운 눈물을 지어놓았다. 그 다음날에야 그는 련락병한테서 특무장이 자기에게 차례진 강냉이 한이삭의 허리를 잘라서 준 강냉이라는것을 알았다.…

외래자합숙에 가서 짐을 풀어놓은 한정빈은 리진오의 아버지가 뜨락에 살구나무를 심을 때 땅을 파주던 일을 회상하며 신사택쪽을 향해 걸었다.

한정빈을 맞은 리재협로인의 집은 명절같았다. 리진오의 어머니와 형수는 점심을 마련하느라고 부엌에서 분주히 돌아갔다.

《아무거나 빨리 좀 주시우. 출출해서 견디겠습니까.》

손님으로 온 사람같지 않게 한정빈이 부엌쪽에 대고 소리쳤다. 리진오의 어머니 차씨는 상을 들고 방에 올라서며 응수했다.

《높은 사람도 그런 소리 하나? 량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염은 치지 않는다더구만.》

《허허, 그런 량반노릇 돈주고 하래도 못하겠수다. 영진이아버지는 공장에 나가서 아직 안들어옵니까?》

《요즈음은 언제 들어와 자는지도 모른다네.》하고 그와 마주앉은 리재협로인이 대답했다.

《하긴 제일 복잡한 기관직장사업을 맡았다니까 고생할겁니다.》

《귀한 평양나그네에게 찬이 없어서 어떡허나. 입에 맞지 않아도 많이 들어야 하네.》

《내가 언제 어머니 지어주는 밥 남기는걸 봤어요?》

한정빈은 제대후 공장에 와서 멀리 떨어져있는 자기 집에 가지 못할 때면 어머니를 찾아와 밥을 달래서 먹군 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껄껄 웃었다.

리재협로인은 떠들썩하던 로친이 부엌에 내려가자 다시 중단하였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우리 진오가 일을 너무 곧은목으로 내밀지 않는지 모르겠네. 잘 살펴주게.》

《참, 아버님도. 그런 패기가 있어 당에서 젊은 그에게 무거운 기사장임무를 맡긴거랍니다.》

한정빈은 로인에게 맥주를 따르며 대답했다.

《아닐세. 자네가 더 잘 알지만 공장은 혈기만 가지고는 이끌지 못하네.》

《아버님은 진오를 다 모르시는구만요. 진오가 보통내기인줄 압니까?》

이 말은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 한정빈은 진오를 그렇게 믿고있었다.

그가 진오를 보통이 아닌 사람이 될것이라고 확신한것은 제대후 공업대학의 교육을 받고있을무렵이였다. 어린 진오는 한정빈이 대학생이니까 많은것을 알고있으리라고 생각하며 그가 집에 나타나기만 하면 자연현상에 대하여 의문나는것을 캐여묻군 하였다.

그것이 아마도 진오가 소학교 4학년때였을것이다.

무슨 이야기끝엔가 동물들이 셈을 셀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그때 한정빈은 동물들은 셈을 셀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진오는 그 말을 반박해나섰다.

《헹, 아니야. 새들도 셈을 세는데 뭐, 정말이야.》

진오는 자기 주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 양조장다락우에 새가 둥지를 틀고있는데 그 새를 잡아보려고 그 다락에 숨어있으면 새가 둥지에 날아들지 않다가 사람이 다락에서 내려오면 새는 둥지에 날아든다. 그래서 두사람이 다락에 올라가 숨어있다가 한사람이 다락에서 내려오면 새가 둥지에 날아들겠거니 했는데 새는 종내 날아오지 않다가 두번째사람까지 다락에서 내려와서야 둥지에 날아왔다. 이렇게 해서 넷이 가서 셋이 다락에서 사라져도 날아오지 않던 새가 다섯이 가서 넷이 사라지니까 둥지에 날아들었다.

《자, 봐요. 그러니까 새는 넷까지는 셀줄 알지 않나요?》

그때 한정빈은 새에게 있는 그것은 수관념이 아니라 다소관념이라고 납득시키려고 노력하였지만 진오는 새들이 셈을 셀줄 안다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우겼던것이다.…

《하여간 잘 왔네, 마침 잘 왔어.》

리재협로인은 맥주를 쭉 들이마시고 안주를 집으며 외웠다.

한정빈은 문득 길가에서 만났던 주태섭부기사장도 바로 저렇게 마침 잘 왔다고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전사한 자기 친구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신세를 진 지난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싶었지만 로인은 추억할 틈을 주지 않고 뜨락또르증산과제에 대해서, 공장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좋은 공장을 지어놓고 잘 거두지 않는다는거며 공장울타리에 아직도 나무도 제대로 심지 못했다는거며 앞으로 주요협동품을 다 자체로 만들어야 생산에서 파동이 없을거라는 이야기며 로인의 온 정신은 오직 미래를 위해서만 활동하고있었다. 그것은 방금전에 만났던 주태섭부기사장이 지난날을 추억하려고만 하던것과는 너무나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있었다. 그 반대의 경우라야 정상적일것이다.

갑자기 대문이 열리며 《할머니.》하고 웨쳐대는 어린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차씨가 아이를 앞세우고 방에 들어와 자랑했다.

《자 보게, 내 손주일세. 기사장네 아들이야.》

《아니, 아들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컸어요?》

한정빈은 인철이를 제 무릎에 앉히며 말을 이었다.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단 말이지! 어머님, 그러니까 나도 이젠 늙어가는 셈이지요?》

《고갱이는 솟아오르고 떡잎은 젖혀지게마련이지. 쉰고개에 올라섰으니 이젠 잠간이라네.》

《잠간이라-》

《자, 어서 드세.》 리재협이 술잔을 먼저 들며 권하였다.

《내 이젠 발편잠을 자겠네.》

한정빈은 이제나저제나 하고 리진오를 기다리다가 저녁이 다 되여서야 외래자합숙에 돌아왔다.

은하가 어떻게 소문을 놓았는지 숱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천정이 날아나게 웃고 떠들다가 《오늘은 일찍 주무십시오.》하고 자리에서 일어서군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한정빈이 몸이 피로해서 일찍 누울가 하고 생각하고있는데 리진오가 나타났다.

《왜 하필 쉬는 날 오십니까, 집에서 좀 휴식하고 오시지 않구.》

리진오는 호실이 국장의 마음에 들가 하고 살피며 말했다.

《허허, 이렇게 쉬지 어떻게 쉬겠소. 대관절 노는 날 어딜 그리 분주히 다녔소?》

한정빈은 다반에 놓인 배를 깎으며 물었다.

《제대군인들은 자꾸 오는데 집이 일어서야지요. 그래서 아빠트건설장에 갔다가 합숙들을 좀 돌아보느라구…》

《자, 드오. 아니, 난 먹었소.》

담배를 피워문 그는 어석어석 배를 깨무는 리진오를 건너다보며 말했다.

《전번 평양에서 볼 때보다 축갔구만.》

《정말 힘듭니다. 국장동지가 왔으니 망정이지…》

《허허, 난 동무의 종아리를 치러 왔는데?》

한정빈은 리진오가 큰 배를 휘딱 다 먹어버리자 담배를 물주리에 끼워물고 다시 배를 깎기 시작했다.

(저녁도 먹지 않고 달려왔군.)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충고하였다.

《자기 몸을 과신하지 말라구. 건강한 몸은 가장 큰 밑천이야. 생활에선 자기 과신이 신심이 없는 경우보다 오히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우.》

복도쪽에서 어느 문인가 단속을 잘못해서 삐익, 삐익 여닫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정빈은 물주리를 들고 창가에서 공장의 야경을 건너다보고있었다. 공장의 불빛이 눈뿌리가 모자라도록 아득히 펼쳐졌다. 쇠물을 붓느라고 남쪽하늘이 불기우리하게 물들었다.

《저기가 주강직장이지?》

한정빈은 명상에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강봉학직장장은 건강하오?》

《정정하십니다.》리진오가 대답했다.

《일을 배워주셨다지요?》

《일만 아니라 인생을 배워준 스승이요. 참, 저 공장에 많은 흔적을 남겨놓은 직장장이요. 예전에는 〈호랑이직공장〉으로 소문을 냈는데 이젠 늙었겠지?》

《60이 지났으니까요.》

《아마도 이젠 직장을 지휘하기 힘겨울거요.》

《아닙니다. 아직도 패기가 보통 아닙니다.》

리진오는 담배를 피워물고 한모금 길게 빨고나서 성을 내듯 말했다.

《글쎄 난 직장장동지하고 언쟁을 하지 않았습니까.》

한정빈은 그의 솔직한 말에 감동되여 자책하는 그를 위안했다.

《내 다 들었소. 옛날부터 걸핏하면 큰소리를 치군 했다우.》

《아닙니다. 내가 자중했어야 하는건데 어떻게 되여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생각하지 마오. 뒤는 없는 사람이요.》

한정빈은 그와 만나자마자 귀맛이 나쁜 이야기를 해도 좋을가 생각하다가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솔직한 말로 대답하는것이 자기의 도덕적의무라고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보나마나 일을 쓰게 하지 못하고있겠지만 그가 요구하는 로력지원은 줄걸 그랬소. 일을 잘못한것은 차후에 계산하기로 하고 하여간 지원을 주어서 빨리 소재생산을 끌어올려야 할게 아니요. 물론 생산을 정상화하는 투쟁을 벌려야지. 동문 그걸 양보하지 않으려고 늙은 직장장과 다투기까지 했다는데 사실 동무가 무엇보다 양보하지 말아야 할것은 증산과제가 아니요? 옳은것이 옳은것으로 되자면 결과가 좋아야 하는 법이라오.》

《…》

생산을 높은 수준으로 정상화하기 위한 투쟁을 무조건 지지할줄 알았던 리진오는 가슴이 철렁해서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업을 신축성있게 하라고 해서 하는 말이겠지.…)

리진오는 이렇게 실망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하였지만 얼마전 평양에 올라갔을 때 대동강유보도에서 국장이 들려준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것을 방해하였다.

유보도에서 국장이 과정과 결과에 대한 생활철학을 들려줄 때는 귀에 선 말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리진오는 이제야 그 주장의 뚜렷한 표상이 안겨왔다. 국장은 2천대증산을 어떤 방법으로 하든 그 결과에만 의의를 부여하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제대로 인사나 하고 국장과 헤여졌는지 리진오는 생각나지 않았다. 거리에 나온 그는 발 나가는대로 걸었다.

그는 국장의 립장을 잘못 평가하고있지 않는가 하고 자초지종을 곰곰히 더듬어보았으나 다른 대답을 얻을수 없었다.

결과는 과정의 루적인데 왜 결과만 의의가 있다고 하는가? 좋은 결과는 나쁜 과정으로 평가하지 않는다구?

리진오는 어느새 4호합숙앞에까지 왔다. 합숙 앞마당 못가에 조각가가 곰이 바이올린을 켜는 해학적인 석고조각을 형상해서 세워놓았는데 그 주위에 둘러앉은 로동자들이 처녀한테서 새로 나온 영화의 주제가를 열심히 배우고있었다.

리진오는 그 청년로동자들한테 달려가서 결과와 과정에 대한 토론을 붙여보고싶은 생각이 치솟는것을 참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