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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회


제 2 장

4


이마에 손채양을 만들고 이글이글 끓기 시작하는 전기로속을 살피던 김기룡은 로개조안에 보충해야 할 좋은 생각이 떠올라 휴계실로 달려들어가 여러가지 그림들과 수자들이 어지럽게 그려져있는 공책에 방금 떠오른것을 적고있었다.

김기룡이 로를 개조하여 쇠물량을 늘이려고 애쓰고있다는것을 잘 아는 전기로공들은 그가 도면이나 공책을 마주하고 앉아있는것을 창밖에서 보면 사색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휴계실에 들어가지 않군 하는데 햇내기전기로공인 영진이가 신호도 없이 벌컥 방문을 열었다.

《직장장동지가 싸웠다는 이야기 들었나요?》

《못 들었는데.》

김기룡은 도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하였다. 직장장이 싸웠다는것은 례사로운 일인것이다.

《우리 삼촌하구 싸웠다니까요.》

김기룡은 그제야 얼굴을 들었다.

《뭐, 기사장동지하구?》

《그래요. 엊저녁에 다투었대요.》

기사장과 직장장사이를 잘 알고있는 김기룡은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한참 영진이를 얼없이 쳐다보았다.

《방금 통계원동무한테서 직접 들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되여가는 판국인지 모르겠어요.》

영진이는 언쟁의 내막을 상세히 이야기하고나서 자기 의견을 첨가했다.

《저 교대장동지, 우리 삼촌이 자기 주장만 앞세우는것이 사실이 아닐가요? 우리 직장은 로력이 모자라서 쩔쩔매고있구 남들이 그러는데 로력만 더 있으면 걸린 소재를 더 생산할수 있다구 하더구만요.》

《모르는 소리 그만둬.》

김기룡은 엄하게 꾸짖었다.

어지러운 선들과 수자들이 적힌 공책을 밀어버리고 일어선 김기룡은 안절부절하며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허리를 짚고 창가에 머물러섰다. 그는 직장장과 기사장 둘중에서 어느 편이 옳고 어느 편이 그르다고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소재생산을 위한 첫 공정인 자기네 전기로에서 쇠물량을 늘이기만 하였더라면 애당초 그러한 언쟁이 시작되지도 않았을것이다.

(빌어먹을것 같으니.)

김기룡은 자기의 연구사업이 뜻대로 잘 진척되지 않는데 화가 나서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한참후에야 김기룡은 겁에 질린듯 한 표정으로 아직 문가에 서있는 영진이를 보고 말했다.

《왜 쇠장대처럼 서있니? 어서 와서 앉아.》

《괜찮아요.》

《앉으라는데두.》

영진이는 주춤주춤하다가 말했다.

《이제 교대장동지가 로를 개조하면 쇠물량을 늘여서 소재생산을 높일수 있다지요?》

《그걸 몰라서 묻니?》

《교대장동지, 내가 도울것이 없나요? 어떤 어려운 일도 좋아요. 과업만 달라요.》

영진이는 제가 한 말대로 과업만 주면 산이라도 떠옮길듯 한 자세였다.

김기룡은 그 마음이 기특해서 아직 뼈가 채 굳지 않은 작은 어깨에 큰손을 올려놓으며 그와 나란히 앉았다.

《너무 근심말아. 이제 다 제대로 되겠지.》

《그걸 어떻게 앉아기다리겠나요. 우린 중학교 졸업할 때 마지막사로청회의에서 사회주의건설장에 나가 생산전투의 앞장에 서자고 연탁을 치며 토론을 했는데 글쎄 이건…》

김기룡은 울분에 차서 떠드는 어린 전기로공의 어깨를 한팔로 지그시 그러안았다.

《어렵고 힘든 일의 앞장에 서자구 했단 말이지.》

《아니, 난 기술혁신의 앞장에 서겠다구 토론했어요.》

그는 영진이의 드높은 포부가 마음에 들어 때아니게 껄껄 웃다가 담배를 꺼냈다.

《공장에 오자마자 기술혁신이라. 좋아, 기세가 좋아. 자, 너두 한대 피워볼래?》

《난 피우지 않아요.》

《다들 피우던데?》

《헹, 일배우기 전에 담배부터 배우겠어요?》

《허긴 그래-》

17시가 가까와오자 교대준비를 하느라고 전기로공들이 서두르는 모습들이 유리창문으로 내다보였다.

《우리와 같이 공부한 한 동무는 벌써 3급기능공수준에 올랐는데 이건…》

《오선달직장장동지 딸?》

《그걸 어떻게 알아요?》

《요전날 현지지도사적비앞에서 너의 할아버지랑 사진찍은것까지 다 알지.》

《허참, 정탐같은데요?》

김기룡은 호탕하게 웃고나서 그 동무가 어떻게 3급기능공의 수준에까지 올랐는가고 물었다. 그 동무는 기관직장에 배치됐는데 자기 아버지네 2공무직장에 가서 하루 한시간씩 배우고있다고 했다.

《교대장동지, 절삭경기에서 특등을 한 은하동지 아시지요?》

《알지.》

《그 동지한테서 배운대요.》

《그래?!》

《남은 그렇게 발전했는데 도대체 난 무슨 꼴인가요. 한다는 일이 도구정리나 하고 시편검사결과를 알아보러 실험실에나 오르내리구…》

김기룡은 은하처럼 신입공들을 도와주지 못하고있는 자신을 타매하며 대답했다.

《그런것도 다 배워두어야 하는거야.》

《헹!》하고 영진이는 코웃음을 쳤다.

얼마나 배우고싶어하는 눈인가!

김기룡은 문득 모든 단위, 모든 초소에서 신입공들의 기술기능수준을 높여주면 2천대증산투쟁에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말이지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야!)

그는 자기가 신통한 생각을 해낸것 같아 기뻐서 영진이의 잔등을 철썩 갈기였다.

《내 심부름 좀 해다오.》

《무슨 일인데요?》

《은하동무에게 쪽지를 좀 전해주렴.》

은하가 금속절삭에서 독특한 기교를 가지고있는것만큼 기능전습사업을 적극 벌리도록 그를 만나서 고무할 생각이였던것이다.

쪽지편지를 쓰려고 수첩을 펼쳐놓은 그는 펜을 든채 잠시 생각에 잠기였다. 기능공양성사업때문에 편지를 쓰려는것인지 은하가 보고싶어 글을 쓰려는것인지 모를 일이였다. 하여간 오늘은 처녀에게 사랑을 고백해야겠는데 그 말을 어떻게 꺼낼것인가?

요전날 함께 영화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아무것도 거칠것이 없던 조용한 공원길이였는데 뚱딴지같이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아리숭한 문제를 놓고 론쟁을 벌리다가 벼르던 이야기는 꼬투리도 건드리지 못하고말았다.

둘이 만나면 그저 론쟁이다. 론쟁을 하다가 알고보면 문제를 다르게 리해한데서 혹은 결론은 같지만 그것을 유도하는 방식의 차이로부터 목청을 높이군 했었다.

그렇게 자기의 정신상의 령토를 남에게 침범당하기 싫어할뿐만아니라 어떤 일이든 남보다 삐여지게, 남보다 모가 나게 하려고 애쓰는 은하였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놀라리만큼 인정에 무르기도 한 처녀였다. 하여튼 그 처녀의 성격은 독특한 빛으로 채색되여있었다. 관찰할수록 새로운 성격적측면이 발견되는 처녀였다. 은하에 대한 그의 사랑은 은하의 성격적미에 대한 매혹이였을것이다.

김기룡은 어제 기사장이 무르익은것을 왜 그냥 보고만 있느냐고 하던 말이 떠올라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은하동무,

급히 만나야 할 일이 있소. 즉시 전화를 걸어주시오. 기룡.


그는 글을 쓴걸 보고 벙글벙글 웃고있는 영진이의 머리를 가볍게 쥐여박고 종이를 접었다.

《이 친구 왜 웃어?》

《미인이던데요. 노래도 잘 부르구.》

《자, 이 친구 봐라. 가지구가서 허튼소리 하면 안돼.》

김기룡이 접은 쪽지편지겉에 《은하동무.》라고 글을 쓰고있는데 비닐구럭을 무겁게 든 최문렬이가 휴계실에 들어섰다. 기룡이와 한부대에 있던 최문렬이는 얼마전에 제대되여와서 아직 머리를 높이 깎아올린 그대로였다.

《아니, 이거 뭘 이렇게 들고왔나?》

최문렬은 책상우에 과일구럭을 올려놓다가 김기룡이 쪽지편지에 쓴 글을 보며 동문서답을 했다.

《이런 사이면서 왜 나에겐 아직 소개하지 않아? 의뭉한 친구같으니.》

김기룡은 목덜미가 벌겋게 되여 발뺌을 했다.

《허참, 아직 소개할 처지가 아니라는데두 그래.》

《이런걸 공개적으로 보내면서두?》

마침 교대종소리가 울려퍼지자 김기룡은 은하가 퇴근해버릴것 같아 급해나서 친구가 빙글빙글 웃고있는데도 영진이에게 쪽지편지를 주었다.

《내가 전화기곁에서 기다린다구 해.》

영진이는 작업복 웃도리만 갈아입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둘이 남자 김기룡이 그와 마주앉으며 물었다.

《집에서 회답이 왔나?》

김기룡은 그가 제대되여 공장에 온 후 고향에 편지를 띄우지 않은것을 알고 안해한테 편지를 쓰게 한것이였다.

《회답이 왔네.》

《회답이 아니라 사람이 와야 하는건데 젠장, 오늘도 출근하면서 보니까 제대군인들에게 준다는 아빠트가 언제나 되겠는지 그저 그 모양으로 서있더라니까.》

《원 걱정도, 어련히 일어서지 않으리.》

최문렬이는 둥글넙적하고 호인다운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봐, 제발 남들앞에서 주택소린 꺼내지 말라구. 공장형편이 이런것저런것 생각하게 되였나? 참, 여기 오면서 듣자니까 직장장실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더군. 동문 들었나?》

《들었어.》

김기룡은 그 언쟁생각을 하고싶지 않아서 그가 들고온 구럭을 헤치며 《도대체 이거 웬 사관가?》하고 화제를 바꾸었다.

《밤에 출출할 때 먹게.》

《출출하다니?》

《몸조심하라구. 그러지 않아도 부상까지 당한 몸인데 다문 몇시간이라도 합숙에 와서 편안히 자야지. 그러다간 몸이 쇠덩이로 빚어놓았대두 당해내지 못해.》

《허허, 그래서 이런걸 들고다니나?》

《나야 아직 문세를 모르니까 어떻게 하겠나. 그런걸루나 도울수밖에.》

김기룡은 가슴이 뭉클해서 친구를 쳐다보았다. 로동안전교양을 받을 때 완성작업은 아직 손로동이 일부 남아있어서 일이 힘들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당조직에서 완성작업반에 제대군인이 있어야겠다는 말을 듣고 군소리없이 거기서 일하는 친구이다.

김기룡이 험해진 친구의 손을 바라보고있는데 최문렬이는 그 손으로 과일구럭을 밀어놓으며 제 소리를 했다.

《여보게 기룡이, 우리 직장장동지가 로력을 더 달라고 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게 사실인가?》

《그렇다고 하더군.》

《우리 제대군인들이 머리수만 채우구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니까 직장장동지가 그런 말 한게 아닐가?》

《그런게 아니라니까.》

《대관절 얼마나 배워야 제노릇을 할수 있나?》

그들의 이야기는 교대를 인계한 전기로공들이 옷을 바꾸어입으려고 들어오는 바람에 중단되고말았다.

《자 친구들, 시원하게 하나씩 들게.》

김기룡은 구럭을 거꾸로 들고 사과를 책상우에 쏟았다.

사과가 데굴데굴 굴러 바닥에 떨어지자 전기로공들은 왁 모여들어 책상모서리를 둘러쌌다.

《병사시절의 친구가 사온거요. 인사들 하라구. 최문렬이라구 완성작업반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네.》

인사를 하거니 사과를 깨물거니 하며 떠들어대는 휴계실에는 로동을 한 사람들에게만 차례지는 그런 희열이 차고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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