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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제 1 장

사랑의 기슭


5


가까와지는 시험생산의 징조를 이모저모에서 느끼며 그 어떤 보람있는 일을 해보려고 열망하는 강기석이였지만 이미 완성하여놓은 첫 창안품의 운명에 무관심할수는 없었다.

지배인에게서 무뚝뚝한 한마디 말을 들은 다음날부터 누가 찾아오리라고 기다렸으나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일이 어떻게 되였다는것쯤 한두마디로 알려주기만 하면 그만일텐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흘째되는 날 교대무렵에 전화가 왔다고 알려주는것이였다.

《어디서 왔습니까?》

원료의 장입작업을 도와주면서도 확장공사장에 한번 더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기석은 전달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물었다.

《선보러 갔던 처녀한테서.》

늙은 수리공은 시물시물 웃고있었다.

《오늘은 평량기를 잘 정비하여 인계해주오. 편차가 생길수 있소.》하고 기석은 운전공처녀에게 일렀다.

수리공은 기름묻은 손으로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여어, 롱담이 아니야. 빨리 가보라구.》

이쪽은 미타하게 그를 쳐다보고 전동차에서 뛰여내렸다.

원료장 벽전화는 현장사무실 바깥벽에 붙어있다. 송수화기는 데룽데룽 매달려있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수화기를 들고 자기 이름을 댔다.

《강기석동무예요?》하고 녀자의 목소리가 묻는다.

그는 대답하고 누구냐고 되물었다.

《나 혜영이예요.》

그는 잠자코 있었다. 원료가 장입구에 쏟아지는 소음으로 하여 헛갈려들은것만 같다. 수화기를 귀에 바짝 붙이고 긴장해서 다시 물었다.

《최혜영이예요. 잊었어요?》

말끝은 미소로 하여 밝아지는듯 하다.

이 며칠동안 그가 아무리 흥분속에 지내였다 해도, 착잡한 생각이 아무리 그를 괴롭혔다 해도 가슴속에 고이 간직되여있는 그 처녀야 어찌 잊을수 있었으랴. 고달픈 때일수록 그의 마음에 더욱 밝게 비쳐드는 그 아름다운 처녀를 잊을수는 없었던것이다.

《아니, 지금 어디서 전화합니까?》

《구단광연구실에서요. 온지 며칠 됐어요.》

《며칠 됐는데… 지금에야 나타납니까?》

《일이 좀 바빠서요.》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웃음이 어려있다.

자기 말의 진실성을 모호하게 하는 명랑한 웃음이다. 그리고는 바로 그 일때문에 전화를 걸기라도 하는듯 책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이다.

《여기엔 없군요. 〈회전로에서의 환원행정〉 말이예요.》

《언제까지 가져갈가요?》

《가져오진 마세요. 오늘 저녁 퇴근할 때 만나서 가지면 돼요.…》

만날 장소는 행길에서 가까운 광장근처가 좋겠노라고 혜영이가 말한다.

기석은 생각을 더듬다가 청년공원입구에서 9시에 만나자고 말했다.

《좋아요.》

담담한 대답에 뒤이어 송수화기변이 절컥 떨어진다.

《회전로에서의 환원행정》, 9시.

하던 일에 달라붙었으나 머리속에서는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9시, 《회전로에서의 환원행정》.

그것은 혜영이가 그에게 처음으로 하는 부탁이였다. 책도 책이려니와 그것을 가지고가서 만나는것이 더 중요하다.

원료장에서 일하는 있음직한 동무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은 그저 필요해서 찾으려니 심상히 여기면서 자기들에게는 없노라고 했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작업복을 입은채 도서실에 뛰여갔으나 공교롭게도 문이 잠겨졌다. 책임자는 신간출판물을 접수하러 보급처에 갔고 사서는 현장대출에 나갔는데 늦게야 돌아오리라는 《알림》이 붙어있었다.

《제길, 이런 때에 없다니!》

잠시 생각해본 기석은 그 책이 있을만 한 사람들에게 두루 물어보다가 직장책임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책임기사는 나이지긋한 사람인데 사연을 듣고는 껄껄 웃었다.

《어째 또 갑자기 환원행정인가? 로조업에서 무슨 혁신을 해보자는거야?》

그리고는 이어 자기에게는 책이 없노라고, 그건 출판된지 오랜 책이여서 가지고있는 사람이 드물뿐더러 집에는 혹 있을수 있어도 들고다니며 보지는 않을거라는것이였다.

《환원행정의 무슨 문제가 그렇게 급히 알고싶소? 내가 설명해줄수는 없을가?》

허물없는 친절성에 난처해하면서도 적당히 꾸며대는 수밖에 없었다.

《좀 까리까리한 문제입니다.》 웃으며 하는 말에 저쪽은 《거 참 맹랑하군.》하고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누구하고인지 이야기를 나누더니 《가만, 여기 누가 가지고다니는걸 봤다는데 찾아보기요.》하고 선선히 말했다.

잠시후 강기석이 직장사무실에 당도했을 때 책임기사는 국판으로 된 두텁지 않은 낡은 책을 내놓았다.

《마침 누가 가지고있었으니 망정이지 강동무가 부탁한 일을 들어주지 못할번 했소.》

기석은 무슨 그림이 찍힌 탄탄한 모조지로 가위를 덧씌운, 운명의 행복한 예언자와도 같은 그 책을 받아들자 안도감에 싸여 원료장으로 돌아왔다.

자료를 정리하여 부직장장에게 보고한 후 조업일지를 넘겨주었다.

옷을 갈아입고 돌아오니 아홉시까지는 50분이 남아있다. 걸어가는 시간을 넉넉히 20분을 잡아도 아직 반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30분이 이처럼 길게 생각된적은 그의 생활에 일찌기 없었다. 책때문에 초조하게 뛰여다닌 뒤여서 더욱 그렇다.

새 일감을 펼쳐놓는다면 그 시간안에 끝을 맺을수가 없을것이다.

책상뽑이에서 《과학기술통보》를 꺼내놓았다. 야금설비들의 제작에 관한 부록을 펼치고 어제 읽었던데서부터 계속해 읽었다. 그리도 흥미있던 이 문제가 지금은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글줄들사이로 명랑한 미소가 떠도는 혜영이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오르더니 균형이 잡힌 온 자태가 눈앞을 막아선다.…

(무슨 일로 왔을가? 얼마나 오래 있을가.… 아무러면 어때? 만나자고 하는건 좋은 징조지.)

《바래우러는 나오지 마세요. 그건 안돼요!》하고 말하던 명랑한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리는것 같고 헤여질 때 보았던 그 녀자의 청신한 모습에 미소가 어리더니 손저어 부르는듯 상글상글 웃고있었다.

《회전로에서의 환원행정》, 9시.

아직은 시간이 되지 않았다.

《…분해식주물골조는 용접이나 리베트한것보다 강도가 크고 견고성이 높다.

대형로용주물골조는 보통볼트로써 련결되는 세개의 씨그멘트로 제작한다.

그러나 제작할 때 규석벽돌의 팽창에 의한 천장의 상승을 감소시키며 벽돌축조물내부에서의 응력을 저하시킬수 있게 한다.…》

기석은 이미 읽은 글줄들을 다시 눈으로 더듬었으나 표상되는것은 수직으로 늘어선 흑갈색철주들이 아니라 부드럽게 흘러내린 머리로부터 시작하여 날씬한 몸매를 가볍게 받들어올린듯 한 굽이 뾰족한 구두를 신은 혜영이의 모습이였다.

형태의 완성감, 균형의 미에 예민하고 사랑에 취한 젊은이에게는 그 녀자의 온 자태가 완성의 극치로 보였던것이다.

크고 검은 눈에 어리군 하던 믿음과 기대가 반짝이는 정겨운 미소는 청춘의 애무를 체험하지 못한 젊은이의 가슴에 따뜻이 흘러들었고 부드럽고 신선한 그 자태는 흑색의 금속설비들과 철을 뽑는 로동에만 몰두해오던 그의 눈앞에 느닷없이 어른거리는것이였다.

그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약속한 시간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아있다.

시간은 너무나도 지루하게 흐르고 손에는 아무 일도 잡히지 않는다. 갑갑해진 그는 창문에 눈길을 던졌다. 어둠이 시커멓게 내려덮인 유리창 저쪽에 방안의 전등이 어리여있다.

(인젠 떠나보자. 천천히 걸어가면서 시간을 보내지.)

흥분을 진정시키면서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과학기술통보》를 덮어 뽑이속에 던졌다.

《마침 있구만, 강동무.》

문을 열고 교대부직장장이 그를 불렀다.

《기사장이 찾는데 가보우. 무슨 급한 일이 제기된 모양이요.》

그 말은 청천벽력같이 울렸다. 이쪽의 속심을 알리 없는 부직장장은 싱글싱글 웃고있었다.

《그렇게 어리둥절할거야 없지. 뭐 처음 있는 일이라구!》

강기석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무의식적인 동작이였다. 눈에는 시계바늘도 문자판도 보이지 않았다. 공원어구에서 자기를 안타까이 기다리고있을 처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벌써 와있을지도 모르지. 왜 나는 진작 떠나지 않았을가?)

기사장은 할일이 뒤쌓이게 되면 해당 부문에서 형편을 잘 알고있는 만만한 축들을 곧잘 불러올리군 한다. 회전로직장에서는 강기석이 그런 축에 속한다. 그에게는 과업을 주기가 쉬웠고 준 뒤에도 마음이 놓이는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구실이 없었고 능력은 있었던것이다.

그렇게 불리워가면 두세시간 걸려야 할 일감을 받기는 보통이고 때로 밤을 밝혀도 다할수 없는 일거리도 생기군 한다.

기사장은 방에 혼자 있었다.

《앉소. 또 일이 생겼소.》

한명택은 사람좋게 웃으며 서류함에서 무엇인가를 찾고있었다. 이쪽은 초조하게 그 거동을 살펴본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집에서는 더러 편지가 오우?》

《예, 며칠전에도 받았습니다.》

《아버지도 정정하시구?》

《예,무고합니다.》

대답은 짧게 했지만 잊지 않고 문안해주는것이 그에게는 고마왔다. 그런 문안조차 들어본 일이 별로 없는 기석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기사장을 존경하고싶었다.

한명택은 표정이 풍부한 둥그스름한 얼굴에 인정미있는 미소를 띠우고 문서를 찾으면서 그의 아버지와 관련되는 일들을 짤막짤막 회상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엔 겉보기에 위풍이 당당했으므로 몹시 어렵더라는 이야기며 함께 일하면서 깊이 알게 되자 쉽게 친숙해지더라는 이야기 등…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그의 사람됨을 깊이 알게 되였는가는 밝히지 않았다. 밝히지는 않았으나 그 인상은 한명택의 기억에 똑똑히 남아있었다.

위엄을 보이는 틀진 몸가짐이며 마음에 들지 않는것을 애써 참는듯 한 침울한 눈빛, 계획의 초과완수를 부르짖을 때의 열에 뜬 목소리, 자기 자존심에 아부하는 말을 들을 때의 너털웃음 등으로써 통이 큰 사람이지만 안목이 낮고 속에 든것이 없으며 예리하지 못하다는것을 간파했던것이다.

그러자 그는 강정민이와 어렵지 않게 친숙해졌는데 그때부터 지배인은 여러가지 문제처리에서 기사장의 견해에 많이 조종되였었다.

ㅁ구단광을 할 때만은 시험생산이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기 시작하자 한명택은 그만두자고 만류했으나 강정민은 새 야금법을 완성하겠다고 실적을 과장해가면서까지 내밀다가 결국은 엄중한 손실을 냈던것이다.

《지식은 밭았지만 열의는 대단한 사람이였지.》하고 한명택은 입밖에 내여 중얼거렸다.

강기석은 묵묵히 앉아있다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9시 20분전이였다.

그는 처녀가 벌써부터 거기 와서 기다리고있을것만 같아 초조했다.

《태호는 그냥 거기 있소?》하고 기사장은 여전히 서류를 뒤지면서 자기 처남에 대해 물었다.

《예, 있습니다.》

《그녀석이 요즘은 집에 오지 않거던. 하긴 일이 바쁘겠지.》

안태호는 한때 누님네 집에서 살았는데 제가 우겨서 합숙에 나왔던것이다.

《퇴근해와선 그저 빈둥거리는가?》

《공부도 합니다.》

《똑똑하지 못해. 아직 당원도 못됐지, 처녀 하나 제절로 고르지 못하지… 무슨 구실을 하겠어.》

《사람이 진실합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기사장은 아무 일이나 능숙하게 처리하는 솜씨가 있었다. 지금도 말은 말대로 하면서 문서는 문서대로 찾고있었다.

《강동무가 이전에 창안했던 습식제진장치 말이요. 그걸 상부에 제기했댔소?》

《예.》

《사람이 내려왔더군, 기술국에서는 좋게 평가하는 모양이요.》

기석은 잠자코 있었으나 마음은 저도 모르게 긴장되는것이였다.

《그때 효률을 얼마로 보았던가?》

《지금 설치되여있는것보다 8내지 10프로 높일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95프로까지 제진할수 있지요.》

《흐음, 그래.…》

기사장은 여전히 너그러운 표정이였으나 어조는 실무적이였다.

강기석이 처음 그 안을 제기했을 때엔 기사장도 크게 관심하면서 공사전망도 구상했으나 지배인이 부결한 뒤로는 시종 침묵을 지켰을뿐이다. 그런 연고로 해서인지 지금도 자기 태도를 표명하지 않았다.

《국에서는 현실적인 사업으로 추진시킬 의향인것 같은데… 으음, 여기 있군.》

드디여 필요한것을 찾아낸 기사장은 책상앞으로 다가왔다. 몇장 번지며 더듬어보고나서 말했다.

《이전에 만든 자료인데 너무 일반적이란 말이요.》

《그적엔 그럴수밖에 없었지요.》

《그래. 좌우간 이걸 다시 검토해보고 시공과 관련되는 기초자료들을 작성해주오. 투자범위까지 말이요.》

편집부의 서류장속에 오래동안 처박혀있던 자기 원고가 출판에 회부되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신진작가마냥 강기석은 흥분에 싸였다.

《시공한다는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소. 다른 기업소에서도 도입할수 있는 일반적인 조건을 타산하라니까… 아마 표준형을 요구하는 모양이요.》

《언제까지 하랍니까?》

《한 삼사일이면 안될가?》

《…》

《어쨌든 가능한껏 빨리 하오. 사람이 내려와있으니까.》

그들이 이야기를 끝맺으려는데 문이 열리고 늙은 로동자가 방안을 돌아보며 들어섰다. 보수직장 제관공 박운보였다.

《아, 이거 박아바이가 어떻게 모처럼 오셨습니까?》

기사장은 례절바르게 웃으며 일어섰다.

《사업토의를 하는중이우?》

로인은 권하는 의자를 사양하면서 물었다.

《이젠 다 끝났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난 강동무를 찾아서 여기까지 왔수다.… 자네 오늘 저녁에 우리 동길이를 만났댔나?》

《아니요.》

《못 만났다아?》 심사가 좋지 않은 어조다.

《무슨 일입니까?》하고 강기석은 의아해 물으면서 또 한번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로인은 한동안 덤덤히 서있다가 침울하게 입을 열었다.

《저쪽 공사에 동원된 녀석들이 벽체를 쌓을 때 수조관이 앉을 자리를 생각지 않았네. 날림식으로 해치웠지. 이제 수조관을 올리자면 류출구가 걸리겠으니 날더러 제관품을 거기 맞춰 만들어달라는거네. 안된다고 잘랐더니 자네하고 얘기가 있었다질 않아.》

기석은 심중해졌다.

오늘 오후에는 거기에 나가보지 못했다. 교대전에 가보려고 하다가 혜영에게서 전화를 받은 뒤에 그만 잊어버리고말았던것이다.

(그사이에 제멋대로들 해버렸구나.)

박동길에 대해서뿐아니고 자기자신이 더욱 불만스러웠다.

그의 걱정어린 표정을 넘겨다보고 박운보가 말했다.

《그러지 않아 내 그녀석의 말이 미덥질 않아서 자네를 찾아다니던 길이네.》

《…》

박동길은 일을 설쳐놓고나서 바쁜목을 굼때느라고 그렇게 둘러맞췄을것이다.

《그러니 내벽은 뜯어고쳐야지?》하고 로인이 진지하게 묻는다.

《뜯어버리고 다시 쌓아야 합니다.》

《그럴테지.》 박운보는 개탄하듯이 뇌인다.

《이녀석은 우물가에 어린애를 내놓은것 같은게 통 마음을 놓을수 없단 말이야.… 그럼 우린 제관품을 도면대로 만들겠네.》

돌아서 나가려는 박운보를 기사장이 불러세웠다.

《가만계십시오. 어느 대상 얘깁니까?》

《새로 건설하는 원료장의 내부공사입니다.》하고 강기석이 대답했다.

《그런데 아직 제관품은 만들지 않았다는거지요?》

《철판에 계서만 해놓았지 말구지는 않았수다.》

《그렇다면… 벽체를 뜯어고치느라 하지 말고 제관품을 수정하면 되겠구만.》

《그래도… 그건 중요한 공사가 아닙니까?》하고 기석은 자책감에 싸여 걱정스럽게 말했다.

박운보도 덩달아 참견했다.

《일을 설치구 얼렁뚱땅 넘기는 녀석들은 버릇을 가르쳐줘야 한다니.》

기사장은 사람좋게 웃고있었다.

《박아바이,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시오. 우리가 토론해서 잘 처리하겠으니 들어가서 쉬십시오.》

《쉬다니, 밤교대에 나온 동무들이 철판을 절단하겠다고 기다리고있는데…》

《그렇다면 이제 곧 알려드리겠으니 현장에 내려가십시오.》

덤덤히 서있던 로인은 말없이 나가버렸다. 둘이만 남게 되자 한명택은 강기석에게 말했다.

《강동무, 그렇게 하는게 어떻소?》

《기사장동지, 그건 새 구단광을 위한 원료장이 아닙니까?》

《어디에 리용하든 원료장은 원료장이지.》 기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자재나 로력을 랑비하지 않으니 좋고 아들때문에 마음을 쓰는 박아바이를 생각해서도 다행이고… 시공자들은 물론 비판해야지.》

《…》

《그렇게 하기요. 강동무가 가서 좀 수고해주우.》

기석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가 등한했다는 자책감과 더불어 그렇게 해도 일없으리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기사장의 태도에서는 헝클어진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려는 의향과 박운보로인을 걱정해주는 너그러운 인정이 느껴졌으므로 말없이 수긍하며 문쪽으로 걸어갔다.

《강동무, 그래 이건 여기다 팡가치고 가겠소?》

기사장은 웃으면서 그에게 책을 집어주었다.

《회전로에서의 환원행정》을 받아쥐고 걱정에 싸여 현관에 나섰다.

시계는 9시 10분전을 가리키고있었으나 혜영이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초조감보다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의무감으로 하여 마음이 무거워지는것이였다.

외등에 비추인 구내길을 바라보며 침통한 기분에 싸여있던 그는 이윽고 공사장을 향해 어둠속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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