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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제 2 장

3


참으로 오선달은 생활의 파도를 재간스럽게 넘는 사람이다. 어째서 그는 시대착오적인 추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가. 그가 시대착오적으로 생각하고있는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라는 인간자체가 시대의 락오자일것이다.

2공무직장을 나선 리진오는 어두운 구내를 걸으며 오선달에 대한 생각에 잠기였다. 오선달이 공무직장에서 사업하는 동안은 설비의 만가동을 전제로 하는 생산의 높은 수준의 정상화는 기대할수 없을것이다.

리진오는 이 문제를 당장 당비서에게 제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종합청사쪽으로 향했다.

로동자들이 모두 퇴근해서 한적한 구내에는 파르스름한 외등이 가로수의 그림자를 어설프게 그려놓았고 멀리 가공직장들의 종합현장입구쪽 확성기에서 무엇인가 사색에 잠기게 하는 선률이 은은히 흘러온다. 출강하는 쇠물빛에 때아닌 밤노을이 비낀 주강직장쪽 하늘에 기러기들이 날고있었다.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날고있는 기러기떼는 불현듯 리진오에게 2천대증산투쟁에 나선 사람들의 대오는 왜 저렇게 정연하지 못한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저 철새들은 앞선것과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날고있다. 앞선것과의 각도가 커지거나 작아지면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치는 힘이 작용하여 정상적인 비행을 하지 못한다는것을 그것들은 잘 알고있는것이다.

(많은 직장장들이 그 각도를 아직 모르고있어서 제자리에 들어서지 못했어. 그래서 생산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거야. 저 앞선 기러기와 뒤기러기가 유지해야 할 각도가 몇도더라?)

리진오는 마치도 그 각도를 알아내는것이 생산속도를 보장하는데 그 무슨 의의가 있기나 한것처럼 열심히 더듬었다.

(그렇지, 1955년이였어!)

그는 마침내 중학교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내는데 성공했다. 중학교시절에 물리참고서를 보다가 55도라는 그 수자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전선에 나간 큰형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1955년 봄에 뜨락에 살구나무모를 심었던 그해와 같다고 외워둔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1955년, 그해부터 공장에서는 소농기구들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늘 외우군 하는 말에 의하면 그때 사람들은 오직 전후복구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한덩어리가 되여 투쟁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한덩어리가 못되고 제뿔뿔이인가? 저 선두에 나선 기러기가 길잡이를 잘해서 기러기들은 저렇게 질서정연하게 날수 있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저 선두기러기는 향방을 어떻게 판정하는가?

기러기떼는 어느새 은하수가 가로지른 어둠이 짙은 서학산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건너편 굽인돌이 좁은 골목에서 아마도 단조직장에서 뒤늦게 퇴근하는듯 한 로동자들이 법석 떠들어대며 밀려나왔다. 그들은 갑자기 배를 그러안거니 몸을 제끼거니 하며 즐겁게 웃어댄다.

리진오는 그 웃음소리속에서 박철산당비서의 류다르게 활달한 목소리를 가려들을수 있었다. 건전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만이 지을수 있는 그런 웃음소리였다.

리진오는 불현듯 남은 속이 숯검댕이로 되였는데 무엇이 저리 즐거운가 하는 야릇한 시새움이 가슴속에 머리를 쳐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무엇인가 한바탕 화풀이를 하고싶은 심정이기도 하였다. 오선달과 같은 추한 인간을 왜 아직 그 자리에 앉혀놓고있는가고 불평을 늘어놓고싶었다.

그렇게 말할 작정으로 차길에 내려섰던 리진오는 로동자들속에서 또다시 웃음이 터지고 당비서의 활달한 목소리가 들리자 저도모르게 무춤 걸음이 나가지 않았다. 모름지기 저 당비서 역시 최근 증산계획수행정형을 놓고 마음이 평온치 않을것이며 그래서 오랜만에 명랑하게 웃고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설사 자기가 화풀이를 한다고 하여도 그것을 나무람하지 않을 당비서였지만 그한테 오랜만에 차례진 저 즐거운 시간을 빼앗는다는것은 너무나 몰인정한 행동이 아닌가.

얼마후 로동자들과 헤여진 박철산당비서는 혼자 걷고있었다. 언제나 바지자락에서 바람이 일게 걷던 그의 걸음은 탄력이 없었고 희미한 외등불때문인지 등허리까지 구부정해보여 여불없이 60이 지난 사람의 뒤모습이였다.

리진오는 문득 계획과의 눈밝은 로처녀들이 기사장은 최근에 바야흐로 청년시절로부터 중년시절에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고 이야기하더라고 누군가 들려준 말이 회상되였다. 아마도 그 처녀들이 저 당비서의 뒤모습을 보았더라면 중년시절로부터 로년시절에로 이행이 시작된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행이 완료되였다고 볼것이다.

《어디 갔댔습니까?》

리진오는 잰걸음으로 박철산당비서를 따라잡으며 말을 건넸다.

《여기저기 좀 두루 다녀보았소.》

표상이 모호한 《여기저기》며 《두루》라는 두개의 단어의 결합은 리진오에게 그가 로동자들속에서 증산의 예비를 찾기 위해서 애쓰고있다는 명확한 표상을 주는것이였다.

《선기가 나는데 저녁엔 뭘 좀 껴입고 다니오. 그 작업복이 바람갈망을 하겠소?》

박철산당비서는 그의 옷차림을 눈여겨보며 말했다.

《현장에 나갔댔소?》

《주강에 갔다가 둘공무에 들렸댔습니다.》

《사무실에 가는 길이요? 저기 소공원에서 좀 쉬였다 갑시다. 가을이 깊어가는데도 가을을 감상할 짬도 없구려.》

하루일을 끝마친 남녀청년들이 속삭이군 하던 소공원은 그들한테서 버림을 받고 한적하였다.

긴 걸상에 앉은 박철산당비서는 전쟁때 부상당한 다리를 습관적으로 주무르다가 정말 가을을 감상하려는듯이 긴 걸상등받이에 몸을 기대였다.

한쪽 귀가 이지러진 달이 마당비로 쓸어놓은것 같이 줄무늬가 간 엷은 속을 헤염치고있는데 그 아래로 또 한무리의 기러기떼가 날고있었다.

《그래 전투분위기가 어떻습디까?》

박철산당비서가 먼저 말을 건넸다.

《전투분위기요? 내참, 그게 무슨 전투를 하는 사람들입니까?》

《어째 그러우?》

리진오는 주강직장장에게 목청을 높인 일이며 2공무직장의 예비부속품창고의 형편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박철산당비서는 돌미륵같이 묵묵히 앉아 가을을 감상하고있었다.

긴 걸상뒤에서 풀벌레들이 무슨 변이나 난것처럼 야단스럽게 울고있었다.

얼마후 리진오가 화김에 늙은 직장장에게 모욕적인 말을 한것 같다는 이야기를 덧붙인 다음에야 당비서는 얼굴을 돌리고 물었다.

《기사장동문 로력타발을 하지 않는 직장장을 본 일이 있소?》

《그것이 단순한 로력문제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증산전투를 림하는 근본립장문제와 잇닿아있기때문에 화를 냈습니다.》

리진오는 급한 일이나 있는것처럼 서둘러 말을 이었다.

《생산을 높은 수준으로 정상화해야 한다는 결정을 지은 다음에도 많은 동무들은 그것이 가능하냐 마냐 하고 뒤소리를 하고있습니다.》

《뒤소리를?》

박철산당비서는 무릎을 주무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뒤소립니다. 결정을 지었으면 골을 싸매고 해보고나서 어쩌구저쩌구해야지 품 안 들고 뼈심 안 드는 말만 하고있는데 그게 뒤소리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박철산은 너그럽게 웃었다.

《평가가 너무 린색한것 같구만. 뒤소리라는 말대신에 다르게 평가할수도 있지 않겠소. 례를 들면 그렇게 걱정들만 하고있더라구 말이요.》

《그들이 걱정을 하고있다고 하더라도 높은 수준의 정상화를 위해서 아글타글 애쓰지 않는 사람의 그 걱정은 뒤소리라는 동전의 뒤판에 지나지 않지요.》

《말없이 수걱수걱 예비를 탐구하고있는 사람들이 기사장의 눈엔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만. 기사장동문 이번 달에 들어선 후 완만하기는 하지만 생산도표가 상승선을 그리기 시작한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소? 내 제관과 단조에 나가보았는데 거기서들은 힘겨워하는 주강직장의 짐을 덜어주려고 일부 주강소재를 단조품과 제관구조물로 전환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고있더란 말이요.》

《당비서동지가 호소를 해서 움직이겠지요.》

《아니요. 난 그들에게 제관공시절의 경험을 보태주었을뿐이요. 기사장동무 말대로 많은 직장장과 실장동무들이 뒤소리만 하고있다고 합시다. 그러니까 기사장동무는 그 뒤소리가 두려워서 그렇게 신경이 날카로와져 자제하지도 못한다는거요?》

《…》

리진오는 그렇지 않노라고 대답하고싶었으나 말이 나가지 않아서 긴 걸상모서리를 꽉 그러쥐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만약에 기사장동무의 구상이 뒤소리를 듣지 않는것이라면 그것은 벌써 새로운 혁신적인 발기가 아닌거요. 지난날 기사장동무가 새 주조법을 탐구하려고 분투하던 때 등뒤로 어떤 타격을 받았는가 회상해보오. 새것은 항상 뒤소리가 따르기마련이요. 그런데 만약에 기사장동무가 그 뒤소리라는것때문에 자기 구상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한다면 동무의 신념이란 헌 넝마값어치도 되지 않는다고 자인하는것으로 되지 않소?》

(그렇지, 정말 그렇다니까!)

리진오는 얼굴이 달아오르는것을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직장장이나 실장동무들이 정상화문제를 가지고 론쟁하고있는걸 뒤소리라는 딱지를 붙이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소.》하고 박철산당비서는 날이 선 어조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동무가 사람들을 린색하게 평가하고있기때문만이 아니라 그 말속에 숨은 기사장동무의 불안을 보기때문이요.》

《사실 그렇습니다.》

당비서에게 마음을 터놓고 사는데 습관된 리진오는 자기 대답에 아무런 의의도 부여하지 않고 얼른 그렇게 대답하였다.

천진하다고 할만큼 솔직한 대답앞에서 박철산당비서는 더는 엄격한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마침내 때아니게 나직이 웃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다시 걸상에 등을 기대인 그는 밤하늘을 한참 감상하다가 말을 이었다.

《물론 내가 당비서의 이름으로 더는 이러니저러니 말을 못하게 오금을 박아놓을수도 있소. 사실 나도 뒤에서 벌어지고있는 이야기들에 대한 통보를 받고 그런 경향에 대해서 타격을 주는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소. 그래서 나는 〈뒤소리〉를 한다는 동무들을 만나보았는데 그들은 동무나 공장참모부가 미처 예견하지 못한 문제들을 들면서 현실태에서는 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하더란 말이요. 최근에 내가 동무에게 미리미리 대책을 세우는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준 대부분의것들은 다 〈뒤소리〉하는 사람들과의 담화에서 들은것들이요. 물론 뒤에서 이러니저러니 하는 시비를 듣는다는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못되지. 막대한 정신력을 요구하는것만은 사실이요. 그러나 진정한 탐구자는 공개적인 반대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요. 오히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쓰지. 기사장동무, 우리 락관적으로 삽시다.… 하긴 내가 말한 모든것이 나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오.》

먼 외등불을 빌려 시계를 본 박철산당비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혼자소리를 했다.

《가만 앉아있으니까 춥구만.》

걸상뒤에서 숨을 죽이고있던 벌레들이 당비서가 이야기를 그치자 또다시 맹렬하게 울기 시작하였다.

허리에 손을 짚고 몇걸음 옮기던 박철산당비서가 의논조로 말을 건늬였다.

《근데 참 이걸 어쩌면 좋겠소. 동문 극장에서 사람을 받지 않는다더라고 했는데 저 은하는 무작정 평양에 가보겠다는게 아니겠소.》

방금전에 문제를 그렇게 명철하게 판단하던 박철산당비서가 대낮처럼 환한 일을 가지고 걱정이였다.

《뒤늦게 가서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그 동물 보내면 한정빈국장동지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허긴 그렇소만 어디 은하가 그렇게 생각해주어야 말이지.》

박철산당비서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미리 관심을 돌렸더라면 선발사업이 있었다는것을 알았을건데 마음에 걸리는구만.》

《그래서 가보라구 했단 말입니까?》

《타이르다가 지고말았지.》

《방금전에 난 둘공무에 갔다가 은하동무가 휴가를 신청한걸 보고 취소해버렸습니다.》

《건 왜 취소했소?》

《그렇게 알아주십시오.》

리진오는 당비서가 더 캐묻지 않는것이 고마왔다.

길가의 압축기실에서 고르롭지 못한 동음이 들려오자 박철산당비서는 한참 그것에 귀를 기울이다가 말을 꺼냈다.

《내 어제 김기룡이를 만난김에 그를 여러모로 뜯어보고 이것저것 이야기도 시켜보았는데 사람이 듬직하고 속에 든것도 있고 괜찮더라니까. 전투나 끝나면 잔치를 차려주어야겠소. 그러면 그도 발을 땅에 붙이게 되겠지.》

《…》

리진오는 이미 그 말을 듣지 않고 창조자는 공개적인 반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당비서의 충고를 되새기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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