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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제 1 장

9


리재협로인은 종일 제관직장에서 프레스의 대보수작업장에 있었지만 어제 확대참모회의에서 장시간 론쟁들이 있었다는 말이 자꾸 떠올라서 보수작업을 제대로 도와줄수 없었다.

뜨락또르를 계렬식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후 공장이 이렇게 방대한 과제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공장사람들모두가 한마음한뜻이 되여도 하기 어려운 과제인데 그렇게 합심이 안되여가지고 앞으로 일이 어찌 될고?

로인은 아무리 생각을 여러모로 굴려보아도 아들이 증산전투를 제대로 지휘할수 없을것만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아들이 제의한 전투지휘계획을 수많은 직장장과 실장들이 반대하였다는것이 상서롭지 못했다.

(빈름이 있어. 빈틈이 있어도 한두군데가 아니라니까. …)

리재협로인은 그 빈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들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는데서 오는 빈틈일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경험은 금을 주고도 얻지 못하지.

로인은 불현듯 전사한 맏아들이 살아서 기사장자리에 있었으면 경험따위는 문제로 되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라 그것이 예리한 쇠붙이처럼 가슴을 허비였다. 뒤따라 어느해인가 맏아들이 전사한 날 찾아왔던 한 친구가 기관직장에서 일하는 둘째아들은 어떤 일에서나 깐깐하고 셋째아들은 도량이 크고 활달하니까 명철한 머리를 가지고있는 첫째까지 있어서 셋이 함께 달라붙으면 저 높은 서학산도 능히 떠옮길수 있을것이라고 외우던 말이 회상되였다.

(나라도 첫째녀석 대신을 해야지 왜 이렇게 맥을 놓고 앉아있는고?)

리재협로인은 신바닥아래에다 담배를 비벼끄고 벌떡 일어나 큰 나사를 조이고있는 청년곁으로 갔다.

《이녀석 바싹 조여.》

《이만하면 돼요.》

《더 바싹 조이라는데두. 더 못 조이겠으면 스파나 이리 내라.》

《왜요?》하고 청년은 눈이 올롱해서 반문했다.

《힘은 아꼈다가 저승에 가지고갈테냐?》

《내가 해요. …자, 이만큼 조이면 됐지요?》

젊은 조립공은 스파나를 세멘바닥에 훌쩍 내던지며 돌아선다. 스파나는 《쟁가당.》하고 소리를 내며 두어번 곤두박질쳤다.

리재협로인은 그 스파나를 집어들고 젊은 조립공에게 내밀었다.

《자, 받아라.》

《왜요?》

《어서 받으라는데두.…》

청년은 로인을 흘끔 쳐다보며 그것을 다시 잡았다.

《로동자의 무기를 그렇게 천대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어? 다시 제자리에 놔라, 어서! 그걸 던질 때 쟁가당하는 소리가 나는걸 들었겠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고나 있나?》

《쇠덩이소리지요 뭐.》

《네 귀에는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느냐? 그건 스파나가 널 욕하는 소리야.》

저녁때 일이 끝나자 리재협로인은 제관소재더미에 걸터앉아 주강직장쪽을 쳐다보며 담배에 불을 붙이였다. 출근할 때 오늘부터 정식 일을 시작하는 손자에게 작업이 끝나면 이리로 오라고 일렀던것이다.

기다리는 손자가 아니라 웬 중년이 가까이 와서 모자를 벗었다.

《저 교관아바이, 래일 좀 짬이 없겠습니까?》

《왜 그러나?》

《철판절단기축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공무에서도 잘 모르겠답니다.》

《덮개를 열고 아래로 난 나사를 살펴보라구. 그래도 소리가 나면 2주물에 오게. 래일 거기 있겠네.》

로인은 하던 이야기를 채 끝내지 못하고 부지런히 걷고있는 3가공직장의 반장을 불러세웠다.

《여보게, 그 자동흐름선에 기름을 제대로 주게 하라구. 설비를 그렇게 관리해가지구는 2천대는커녕 스무대도 증산하지 못해.》

리재협로인은 거의 타버린 담배를 손가락끝으로 잡고 다시 주강직장쪽을 바라보았다.

(이녀석이 왜 이렇게 늦어.)

마침내 담배꽁초를 던진 로인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허리를 툭툭 쳤다. 시험제작직장의 직공장으로 첫 뜨락또르를 만들어내던 그 날파람있던 시절은 먼 옛날로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기력이 쇠잔해져서 일하는 로동자들에게 조언을 주다가도 자기도 모르게 꺼벅꺼벅 졸기가 일쑤였다.

로인이 또다시 담배를 피워물었을 때에야 제 삼촌같이 키가 늘씬한 영진이가 급히 달려왔다. 손자녀석은 늘씬한 몸매에 쟈크가 달린 잠바를 입었다. 제 어머니가 몇밤 재봉기를 굴리더니 애를 훤하게 차려내놓았다.

《이녀석 넘어질라. 무엇이 그리 급해서 달려와?》

《할아버지, 왜 찾았어요?》

영진이는 제 동무들이 기다리는지 달려온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 오늘 뭘 했니?》

《주강직장 견학했어요.》

영진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이야기를 빨리 끝내고싶다는 표정이다.

《그다음은 무슨 일 했니?》

《청소.》

《그게 다야?》

《할아버지, 나 바빠요.》

그러거나말거나 할아버지는 한참 제 생각에 잠겼다가 또다시 물었다.

《첫날 감상이 어떠냐?》

《좋지요 뭐.》

《어떻게 좋은가 말이야?》

《쟈, 할아버지두, 그걸 어떻게 한마디로 말해요?》

《대답해봐라.》

《왜 그걸 따지나요?》

《따질만 한 일이 있어서 그런다. 어떻게 좋더냐?》

《로동계급이 됐으니까 좋지요 뭐.》

《뭐 니가 로동계급이 됐어?》

《할아버지, 나 갈래요. 난 동무들과 로동계급이 된 기념으로 사진을 찍자고 약속했어요.》

《니가 로동계급이 됐어?》

리재협은 허리를 젖히며 껄껄 웃었다.

《그럼 내가 뭐 사무원이란 말이나요?》

《로동계급의 근본도 모르는 녀석이 무슨 로동계급이야. 어서 날 따라오너라.》

로인은 손자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앞장섰다.

그때 가공조립종합현장쪽에서 단발머리처녀가 이리로 왔다.

《예분동무, 일 끝났어?》

영진이는 앞에 가는 할아버지를 살피며 나직이 물었다.

《끝났어.》

얼굴이 둥글납작한 예분이는 발씬 웃어보인다.

《어디 가?》

《아버지한테 좀…》

예분의 아버지는 오선달직장장이다.

《약속대로, 알지?》

중학교를 같이 졸업한 동무들이 모이자고 한것이다. 예분이는 머리를 까닥까닥해보였다.

영진이는 그사이 저만큼 앞서가는 할아버지를 따라가며 물었다.

《어디 가요, 할아버지?》

영진이는 시쁘둥해서 물었다.

《따라오라니까.》

리재협로인은 싫다는 손자를 앞세우고 종합청사사무실에 왔다.

《삼촌한테 가나요?》

《삼촌은 무슨 삼촌, 어서 따라오라는데두.》

로인은 손자를 8층 옥상에까지 데리고 올라갔다.

높은 옥상에서는 근 20리나 떨어진 제강소며 벌판건너 산기슭까지 한눈에 안겨왔다. 유유히 굽이쳐흐르는 대동강이 저녁해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두덜거리며 할아버지를 따라온 영진은 높은데 올라서자 기분이 좋아져서 물었다.

《여긴 왜 올라왔나요?》

로인은 눈을 쪼프리고 한참 산기슭쪽을 바라보다가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

《옛말 하나 해주려구 왔다.》

《옛말이요? 참, 어처구니가 없네.》

영진은 남은 바쁘다는데 한가한 이야기한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저기 저 철탑이 서있는 마을이 보이지?》

《보여요.》

할아버지가 가리킨 마을은 세면이 산으로 둘러싸여있어서 삼태기안처럼 옴폭하였고 앞에 내물이 흘러 퍼그나 아늑해보였다.

《그 마을은 옛날부터 신선골이라고 했다.》

마지못해 끌려왔던 영진이는 차츰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끌려들어가 물었다.

《왜 신선골이라구 불렀나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마을앞에 누워있는 들판은 기름져서 오곡이 무르익는데 뒤산에는 과일이 주렁지고 게다가 맑은 시내까지 흐르겠다, 그래서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맑은 내물에 미역까지 감고 갔다고 신선골이라고 불렀다더라.》

《정말 살기 좋았겠어요.》

《이녀석 뭐가 살기 좋아. 땅 있는 놈들이나 살기 좋았지.》

로인은 나무리는 소리를 하였다.

《참 할아버지두, 할아버지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영진은 굽어들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했다.

로인은 대가 든든한 녀석이라고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게 알아두어 나쁘지 않아. 하여간 그건 그렇구. 저 신선골에 자그마한 서당 하나가 있었느니라.》

《서당이 뭔가요?》

《지금으로 이르면 학교 같은데라고 할가? 남의 집 웃간을 얻어서 동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주는데를 서당이라구 했다. 알겠니?》

《예.》

《그 동네에 학식이 높은 점잖은 한 어른이 그 서당에서 동네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느니라. 그 훈장어른은 아주 유식한 선비였는데 어째서인지 서울에 가서 벼슬을 하지 않고 더벅머리아들 하나를 데리고 이 시골에 내려와 살았다. 그 훈장어른은 땅도 없구 집도 없구 오직 그 어린 아들 하나를 바라고 살고있었다. 동네사람들은 훈장이 자기네 아이들을 가르쳐주는것이 고마와서 이번달은 이 집에서, 다음달은 저 집에서 돌림밥을 대접했느니라. 그래서 훈장의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이 집 저 집으로 옮겨가 밥을 얻어먹으며 자랐다. 그 아들이 열두살잡히는 해 봄 보리고개때였다. 하루는 그 훈장어른이 아들을 불러앉히고 이렇게 말했느니라.

〈너도 동네사람들이 조석으로 죽을 먹는걸 보았지?〉

〈네.〉

훈장어른은 엄한분이여서 아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언제나 끓어앉군 했었다.

〈보았는데 생각되는바가 없느냐?〉

아들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앉아있었다. 열두살잡힌 어린것이 무슨 생각을 했겠느냐?

〈그렇게 낟알이 귀한 때인데 너와 나는 지금 무엇을 먹고있느냐?〉

〈세끼 밥을 먹습니다.〉하고 아들이 대답했다.

〈우리가 먹는 쌀이 어디서 생긴 쌀이냐?〉하고 훈장어른은 다시 물었다.

〈동네어른들이 지었지요.〉

아들의 대답을 들은 훈장어른은 한참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동네어른들이 죽을 마시면서도 왜 너와 나에게는 밥을 해주느냐?〉하고 물었다.

〈아버지가 동네아이들에게 글을 배워주지 않습니까?〉

아들의 대답이였다.

〈그렇지. 아버지가 글을 배워주니까 동네어른들이 고맙다고 밥을 해준다. 그런데 나만이 아니라 너까지 동네어른들이 일년 내내 땀흘려 지은 곡식을 먹고있지.〉

아버지가 여기까지 말하자 그 아들은 아버지의 말귀를 알아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저는 저대로 밥벌이를 하겠습니다.〉

훈장어른은 이래저래 속이 좋지 않아서 눈구석을 훔치며 〈오냐, 생각을 잘했다. 동네어른들에게 입 하나라도 덜어드려야지.〉하고 말했다.…》

리재협로인은 이야기를 더 하지 못하고 눈을 슴벅거리며 련거퍼 담배를 빨았다.

영진이는 할아버지가 왜 눈구석을 훔치는지 알수 없었다. 또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들부자의 그후 운명이 궁금해서 다우쳐물었다.

《그래 그 아들은 무슨 일을 시작하였나요?》

로인은 헛기침을 하고나서 신선골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야장일을 배웠다.》

《그렇게 어린 애가요?》

《…》

로인은 대답을 하지 않고 긴숨을 내쉬였다.

《어느 공장에서 일을 했는가요?》

《원 녀석, 그 시절에 공장은 무슨 공장이냐?》

《그럼요?》

로인은 눈을 좁히고 한참 멀리를 내다보다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어기 저 마을앞으로 길이 나있지 않느냐?》

《있어요.》

《지금은 이쪽으로 신작로가 밭을 째고 곧추 났지만 저 좁은 길이 그때는 큰길이였다. 그래서 사람은 물론 평양과 서울로 통하는 우마차의 왕래도 잦고 해서 마을에는 큰 야장간이 하나 생겼다. 훈장어른의 아들은 바루 그 야장간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느니라. 처음에는 야장쟁이들의 심부름을 하였고 조금 자라서는 풍구질을 하다가 뼈마디가 좀 굵어지자 메를 잡았다.》

《그 훈장이 지독한데요?》

영진은 어린 아들을 동정해서 말했는데 리재협은 눈을 부릅뜨고 손자를 노려보며 《그게 무슨 소리냐?》하고 나무랐다.

《공부를 시키고 다음에 일을 시키지 않구.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녀석 아버지가 아들 공부시키고싶지 않아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켰겠니?》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어떻게 되긴? 그 아들은 그날부터 한평생 야장쟁이로 살았지. 결국 아버지는 글을 가르쳐주는 선생인데도 아들은 글을 못 배우고 일만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종일 풍구질을 했고 단쇠를 두드렸다.》

영진은 왜 할아버지가 방금 한 말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가 하고 마음을 조이며 다음말을 기다렸다.

어느새 해가 져버리고 하늘에 노을이 물들기 시작했다. 유난스럽게 빨간 노을이였다. 그 노을을 받아 높은 창고의 유리창이 금빛으로 빛나고있었다.

오랜 침묵끝에 리재협이 손자에게 물었다.

《그 야장쟁이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내가 어떻게 알아요? 누구나요?》

《너의 증조할아버님이시다.》

《네?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아버지란 말인가요?》

리재협은 손자의 잔등을 주글주글한 손으로 쓸어만지였다.

《너의 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메를 잡고 쇠를 두드리셨다. 나도 너의 증조할아버지 슬하에서 풍구질하는 법을 배웠다.》

새들이 짙어가는 노을속으로 부지런히 날고있었다.

잠시후 리재협로인은 약간 갈린듯 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는 우리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이른 말을 알겠느냐? 우리 집안은 대대로 로동을 했다. 성실하게 말이다.》

영진이는 대답대신에 할아버지가 말한 《성실하게》라는 단어를 입속으로 외웠다.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사람은 어버이수령님과 당중앙에 충성을 다할수 없는 법이다. 그래 넌 2천대증산전투가 어떤 전투라는것을 알고나 있니?》

《한달에 300대 증산하는 전투지요 뭐.》

《이녀석 뜨락또르 300대란 말이 동네집 아이이름인줄 알구 그렇게 쉽게 말하는거냐?》

《참 할아버지도. 하루 10대를 더 만들지 못해요?》

《암 만들어내야지. 만들어내야 하구말구. 해내야지. 너 명심해듣거라.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는 10점만점에서 한점이나 두점 깎이여 9점이나 8점을 맞아도 최우등이요 우등이요 하고 떠받들어주었지만 로동계급에게는 하나도 에누리가 있어서는 안돼. 2천대에서 단 한대를 못해도 안된단 말이야, 단 한대라두.》

《알겠어요.》

《아는것이 아니라 가슴에 새겨넣어라.》

《알겠다는데두요.》

《그럼 자, 날 따라와.》

리재협로인은 부지런히 옥상에서 내리기 시작하였다.

《또 어디 가자는가요.》하고 영진이는 볼부은 소리를 하며 뒤를 따랐다.

《빨리 가서 사진을 찍어야지.》

《힝, 할아버지하구요? 난 동무들하구 약속했어요.》

《못난 녀석 같으니. 로동계급이 된 기념으로 찍는다면서 오랜 로동자하구 찍는것이 어때서 그래?》

영진이는 씩 웃고나서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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