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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 1 장

4


다음날 점심때였다.

리진오는 아침에 한정빈국장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본청사현관으로 향했다.

부장은 어제 담화할 때 마음을 진정하고 부에서 도와주어야 할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라고 하였지만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그는 이렇다할 아무것도 생각해내지 못하고말았다. 공장에서 떠날 때 새 과업이 제기되면 부의 방조를 받는것이 좋겠다고 부기사장이 말했던것들은 부장이 부에서 다 해결해주겠다고 하였고 그외에 걸릴수 있다고 떠오른것은 다 공장자체의 힘으로 해결하여야 할것들이였다. 그는 새로운 전투를 벌리자면 그 무엇인가 더 필요하며 또 그 무엇인가 더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있는것만 같아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혹시 그런 생각은 막연한 불안때문에 생겨난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한정빈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막연한 불안이 없어질것 같은 기대를 가지며 바쁜 걸음을 옮겨놓았다. 마치 소학교시절에 어려운 숙제를 풀다가 막히면 정빈형님을 찾아가던 때와 비슷한 심정이였다.

약속한 장소에 갔을 때 마침 한정빈국장은 해빛에 눈이 부신듯 손을 이마에 붙여 차일을 만들고 돌계단을 내렸다. 50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한정빈의 민첩한 동작은 불현듯 전사한 큰형 생각을 불러일으키여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형은 공장의 체육선수였으니까 지금 살아있으면 저 한정빈과 동갑이라도 더 가볍게 계단을 내렸을것이다. 형이 운동장에서 공차는것을 구경하다가 해가 저물면 커다란 공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절이 어제일같다.

리진오가 가까이 오자 한정빈 역시 전사한 옛친구 생각이 났는지 추억에 잠기여 말했다.

《어쩌면 그렇게 진규를 닮았는지 모르겠군.》

《형을 닮지 않으면 누굴 닮겠습니까?》

《닮아두 너무 닮아서 그러지. 자, 타라구.》

그는 한정빈이 권하는대로 먼저 차에 올랐다. 차는 인차 수도의 거리에 나섰다. 방금 물을 뿌린 도로는 정오의 해빛이 비쳐 반짝거렸고 경쾌하게 지나가는 차며 부지런히 걷고있는 사람들의 흐름에는 어덴가 모르게 약동하는 률동이 느껴졌다.

운전사 옆자리에 앉은 한정빈은 이편에서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집에서들은 다 편안한가, 아버지는 그냥 공장에 나가시는가, 작은형네는 아직 그 살구나무가 서있는 집에서 사는가 하고 연방 물어댔다.

《그새 평양에 올라오군 했겠는데 왜 한번도 우리 집에 들리지 않았소?》

성냥을 그으며 서운한 소리를 한 한정빈은 담배연기를 길게 빨았다. 문짬으로 담배연기가 앞을 다투며 빠져나갔다.

한정빈이 서운한 소리를 하게도 된것이 대학에 다닐 때는 그의 집에 자주 찾아다니군 하였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에 내려간 다음은 처음 이렇게 만난것이다.

《대학을 졸업한지가 근 10년이 돼오지?》

한정빈이 속셈을 하는 사이에 리진오가 먼저 대답했다.

《8년이 지나갔습니다. 》

《8년이라-》

리진오는 그렇게 혼자소리로 외우는 한정빈의 뒤모습을 새삼스럽게 쳐다보고있었다.

한정빈은 공장에서 일할 때보다 몸도 나고 걸음걸이도 변해서 뒤모습만 보고는 알아볼수 없을것 같았다. 그러나 지난날 어머니가 늘 《저 사람은 대동강건너 사람의 눈섭도 헬수 있겠다니까.》 하고 혀를 차던 그 눈만은 그때처럼 지금도 변함없이 번뜩이고있었다

《참 철산동문 부상당한 다리가 말썽을 일으키지 않습디까?》

그는 20여년전의 일을 잊지 않고 걱정하는 그 우정을 부럽게 생각하며 대답하였다.

《날이나 궂은 때면 자꾸 도지군 한답니다.》

《치료를 받으라고 등을 밀어도 고집을 쓰더니 그 친구 그예 고생하는군.》

《당비서동진 밤에 조용한 짬이 생기면 제대후에 국장동지랑 함께 뜨락또르를 만들던 때를 회상하군 한답니다.》

《정말 잊지 못할 시절이였소!》

한정빈은 눈을 쪼프리고 추억에 잠기여 외웠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후에 뜨락또르를 만들기 시작해서 벌써 근 20년세월이 흘렀군.》

《올해가 스무돐되는 해입니다.》

리진오가 일깨워주었다.

《옳거니, 58년도에 첫 뜨락또르를 만들었으니까 꼭 20년이지. 참 그러고보니 첫 뜨락또르를 만들어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린 11월이 가까와오는데 크게 기념해야지.》

《당위원회에서 기념준비를 하고있습니다.》

리진오는 의자기슭으로 나앉으며 말을 이었다.

《생산에서 새로운 앙양이 일어나야겠는데 참, 우리 공장에 새 전투과제가 떨어졌다는 이야기 들었습니까?》

한정빈은 흥분한 그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알고있소. 아주 영예로운 과제를 받았더군. 물론 어려운 과제지만 일이 어려워지면 그만큼 삶의 보람은 더 커지는 법이지.》

리진오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리여 차가 한정빈의 주택쪽으로가 아니라 버드나무거리로 달리고있다는것을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아니, 왜 이리로 갑니까?》

《극장에 좀 들리자구, 동무의 옛 소꿉친구가 보고싶다고 모셔오라질 않소.》

뜻밖에 일이 아주 잘되였다. 극장에 들리여 신인배우를 받는지 알아보아달라던 안해의 부탁을 들어줄수 있게 된것이다.

《우리 보금이 만나본지도 오랬겠구만.》

《늘 보군 합니다.》

《그래? 그러면서 왜 나한텐 오지 않았소?》

《텔레비에 나오는 얼굴을 보군 한걸요.》

그들이 떠들썩하게 웃는 사이에 차는 극장에 닿았다.

차가 멎기 바쁘게 극장뜨락에 서있던 한정빈의 누이동생 보금이 두 아이의 어머니같지 않게 소녀처럼 가볍게 달려왔다. 그 녀자는 리진오의 손을 잡아흔들며 고향소식을 물었다.

소학교시절 진오와 한책상에서 가운데에 금을 그어놓고 팔굽이 금을 넘어온다고 다투며 함께 공부하였고 공장에도 같이 진출했던 보금은 묻고싶고 알아보고싶은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요즈음 서학산에 단풍이 들었겠지요?》

《단풍도 들고 밤따는 아이들도 하얗게 널렸다우.》

《어서 타라, 그러다간 로상에서 점심시간 다 보내겠다.》

그들을 뒤좌석에 밀어넣은 한정빈은 운전사곁에 앉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오, 오늘저녁은 우리 집에 가서 묵어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공장에 가서 동무네 집에 들리지 않겠어.》

《그래도 아마 오빤 공장에 가면 진오동무네 집에 가지 않고는 못배길걸요.》

《허긴 그래, 제대되여 공장에서 일할 때 진오네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며 반찬투정까지 했다니까.》

한정빈은 그들을 바라보며 즐겁게 웃고나서 불현듯 생각나서 누이동생에게 말했다.

《참, 은하의 극장문제 좀더 알아보았니? 진오동무까지 그 부탁을 가지고왔는데.》

《대관절 어떻게 될것 같소?》 하고 리진오가 끼여들었다.

《글쎄말이예요. 배우선발사업이 다 끝나서 이젠 다음기회를 기다릴수밖에 없을것 같아요. 혹시 독창가수로 발전할수 있는 특별한 성대라면 몰라도 …》

《독창가수로는 뽑히지 못한다치더라두 경연에서 입상까지 했다는데 합창에야 끼우지 못하겠니?》

《원참, 합창이라고 아무나 끼울수 있는줄 알아요?》

《허참, 비싸겐 군다. 그만둬라, 내가 알아보겠다. 배우로 뽑는것도 사람이 하는노릇이겠지.》

《호호, 오빠실력이 어느만큼인가 두고보자요.》 하고 보금은 눈을 곱게 흘기며 웃었다.

그들이 떠드는 사이에 차는 옥류관앞에 와멎었다.

《자, 내리게. 우리 공훈배우가 자넬 위해서 한상 차렸다우.》

점심을 먹은 리진오는 강변을 거닐자는 한정빈을 따라 대동강유보도에 나섰다.

올해 가을날씨는 이상기후현상의 영향을 받아 그런지 류달리 변덕을 부렸다. 옥류관에 들어갈 때까지만 하여도 대낮의 해빛을 눈부시게 반사하던 대동강에 뽀트들이 한가하게 널려있었는데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강물에 물결을 일으키고 유보도의 락엽을 날리고있었다

그들은 한참 말없이 걸었다.

그 무슨 철학적명상에라도 잠긴듯이 잎을 땅에 드리우고있는 실버들을 이윽히 바라보던 한정빈이 혼자소리같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한달에 300대를 더 조립해야 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하루에 10대를 더 조립해야 합니다.》

《지금의 로력과 설비로 그만큼 더 생산한다는건 조련치 않은 일일거요.》

《그러기 말입니다. 어떻게 일을 밀고나가야 좋겠는지 모르겠습니다.》

파도를 가르며 강을 거슬러올라온 발동선이 앞을 지나가며 긴 고동소리를 울리였다. 배가 일으킨 파도가 기슭으로 밀려와 석축란간을 때리며 물구슬을 사방에 뿌리였다.

《무얼 그렇게 생각하오? 》 하고 한정빈은 그의 어깨잔등을 뚜덕뚜덕 두드리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 자네 일솜씨를 부장동지가 칭찬하더군.》

《원참, 제가 언제 이런 일을 당해보았습니까?》

《허긴 그렇지만 괜찮아, 자신을 믿으라구. 큰일에서는 무엇보다도 신념이 중요하다오.》

이렇게 이야기를 꺼낸 한정빈은 우리 나라 기계공업의 비약적인 발전면모를 이야기하다가 세계기계공업의 발전추세를 요약해서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새로 듣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리진오는 큰일을 앞둔 자기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말하는 그 마음이 고마와 귀를 기울였다.

한정빈의 이야기는 가지에 아지가 치더니 마침내 경제지도일군들이 일반적으로 갖추고있어야 할 풍모에 대한 화제로 변했다.

얼마후 한정빈은 담배를 피워물었다. 담배연기가 그의 어깨를 넘으며 뒤로 사라졌다.

《경제를 지도하는 우리들의 사업은》 하고 한정빈은 자기가 이제까지 길게 한 말은 다음말을 강조하기 위한것이였다는듯이 어조를 바꾸어 말했다.

《무엇보다도 생산계획을 얼마나 수행하였는가 하는 수자에 의해서 평가된다는것을 잊지 마오. 거듭 말하지만 2천대증산과제의 수행정형을 총화할 때는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이 문제로 되는것이 아니라 2천이라는 수자가 문제로 될거요.》

《알겠습니다.》

《하긴 경제사업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한 법이지.》

그것은 필경 생활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었을 그의 《인생철학》일것이다.

다음날, 공장에 돌아가려고 렬차에 몸을 실은 리진오는 한정빈이 들려준 《인생철학》을 되새겨보았다.

물론 인간의 모든 행위는 결과를 목적으로 한다. 허지만 왜 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은 무시되여야 하는가? 과정은 음페되고 결과만 표면화되기에 결과의 본색을 알자면 과정을 중요시해야 하지 않는가.

문득 이러한 의문이 생겼지만 잠시후 그는 인생의 문턱을 갓 넘어선 자기로서는 삶의 심연속에 깊이 자맥질해서 들어가야만 볼수 있는 그 세계를 알수 없을것이라고 자기 생각을 부정하였다.

하여간 국장의 생활철학이 생활에서 큰 의의가 있는것인지는 몰라도 리진오는 한정빈과의 상봉을 서운한 감정으로 회상하고있었다. 새 전투과업을 받고 자기에게 무엇인가 부족하고 또 불안해서 한정빈에게 큰 기대를 걸고 그를 만났었는데 그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고 또한 불안한 마음도 가셔지지 않은것이다. 그러나 그는 미지의 힘에 끌리여 덜컹덜컹 레루이음짬을 지나가는 률동음에 맞추어 《과정과 결과》라는 단어를 곱씹어외우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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