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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제 1 장

1


록음이 우거졌던 서학산에 가을빛이 짙어가고있었다. 여러가지 색의 들국화가 담상담상 피여있는 산기슭의 웃쪽으로 펼쳐져있는 관목들에는 단풍이 불타고 밤나무들에는 누렇게 익은 송이들이 다닥다닥 매달려 바람이나 슬슬 불 때면 반짝거리는 밤알들이 후둑후두둑 떨어졌다. 그래서 학교에서 공부를 마친 어린것들이 산에 올라가 속내의를 벗어 자루를 만들어서 밤을 주어넣다가 해가 지게 돼서야 제 밤자루크기를 자랑하며 산을 내리군 하였다.

대동강변에 널려있는 분공장들의 생산정형을 료해하고 공장으로 돌아오던 뜨락또르공장의 젊은 기사장 리진오는 서학산에 널린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적한 강뚝길에 나섰다.

서학산을 에돌아 뜨락또르공장앞을 흘러가는 대동강이 시원하게 눈앞에 펼쳐지였다. 거울같이 잔잔한 물면에는 건너편 강뚝에서 한적하게 풀을 뜯고있는 소들과 키다리 백양나무그림자가 비끼였고 강복판에는 대낮의 강렬한 반사광이 눈이 부시게 반짝인다.

《붕, 부웅 -》

아침에 평양에서 남포로 내려갔던 려객선이 긴 고동소리를 울리며 돌아오자 강 한가운데서 헤염치던 물오리들이 푸드득푸드득 하늘에 날아오른다.

움푹 패인 뜨락또르바퀴자리가 제강소쪽으로 아득히 뻗은 동뚝길 길가에서 흰 구절초며 홍감색의 들꽃들이 가볍게 설레인다. 서학산은 어느새 시원한 푸른 색갈을 벗어던지고 따뜻한 색갈로 단장하기 시작하였다.

리진오는 기사장으로 임명된 후 지난 몇달동안 공구와 지구, 장비, 공무 등 보조부문을 튼튼히 꾸리여 생산을 정상화하느라고 어느새 여름이 찾아왔다가 가버렸는지 더위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드바삐 돌아다니며 애쓴 보람이 있어서 제2차 7개년계획의 첫해인 올해 인민경제계획을 넉넉히 수행할수 있는 밑천을 튼튼히 마련해놓았다.

얼마후 리진오는 팔에 걸었던 웃옷을 걸치며 거리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갈림길에 이른 그는 아빠트에 있는 자기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갈가 하다가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 집에 가본지가 퍼그나 되였다는 생각이 들어 신사택쪽으로 향했다.

그는 골목길에서 장난을 하다가 굽벅굽벅 절을 하는 장난꾸러기들의 먼지오른 부연 머리를 털어주며 걸었다.

골목길 굽인돌이를 돌아서자 소년시절의 추억이 깃든 빨간 벽돌집이 눈앞에 안겨왔다. 나지막한 담장밖으로 실하게 자란 살구나무가 가지를 내밀었다. 진오의 큰형이 락동강도하전투에서 희생되였는데 아버지 리재협이 허전한 마음을 메꾸어보려고 전후에 뜨락에 심은 나무였다. 살구나무는 그 마음에 받들리워 잘 자라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다.

전후에 나라살림이 펴인 후부터 뜨락또르공장주위에는 현대적인 아빠트들이 숲을 이루며 일어서기 시작하였는데 새 아빠트가 준공될 때마다 공장관리일군들은 잊지 않고 《공장의 산 력사》라고 모두들 존경하는 그의 아버지에게 새 아빠트의 입사증을 들고왔다. 그때마다 리재협로인은 매번 듣기 좋은 말로 사양하군 하였다.

《글쎄, 우리 로친네가 뜨락에서 푸성귀를 뜯어먹는 재미에 어디 뜰 생각을 하우?》

로인은 손자가 새 집에 이사해가자고 조를 때마다 어린것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당에 서있는 살구나무를 하염없이 쳐다보군 하였다. 살구나무와 헤여지고싶지 않아 입사증을 받지 않는 로인의 마음을 철부지가 알리 없었다. 로친이 빨래줄을 감는다고 그옆에다 말뚝을 박아주며 가꾼 살구나무였다.

그 나무아래 대문가에서 할일없이 앉아있던 얼룩이가 진오를 보자 뿌르르 달려나와 바지자락에 코잔등을 문대며 감돌았다.

그가 뜨락에 들어서자 부엌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가 얼른 토방에 내려선다.

《어디 갔다오는 길이냐?》

《분공장에 갔댔어요. 아버지 벌써 들어오셨나요?》

리진오는 마루아래에 놓인 아버지의 색날은 로동화와 조카의 흰 운동화를 바라보며 땀을 흘리여 끈적끈적해진 몸을 씻으려고 웃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점심 자시러 왔다더니 점도록 아이를 붙들고앉아 타이르고있잖니.》

그의 어머니 차씨는 아들의 옷을 받아 빨래줄에 걸며 혀를 찼다.

얼마전에 중학교를 졸업한 그의 조카는 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요새 로동안전교양을 받고있었다.

《형님은 안 들어오시는가요?》

기관직장에서 일하는 작은형을 두고 묻는 말이였다.

《직장에 꿀단지를 파묻어놨는지 밥을 안싸가지고 간 날도 들어오지 않는단다.》

살구나무에서 참새들이 요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하자 차씨는 습관적으로 전사한 맏아들 생각이 나서 화제를 바꾸었다.

《아에민 요새 바쁜 모양이구나.》

리진오는 어머니의 그 말속에서 불만을 감촉하였다. 생활에서 가장 까다로운것중의 하나가 이런 경우의 대답이다. 안해가 바쁘다고 변명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바쁜 안해인줄 알면서 한가하다고 말할수도 없고 해서 그는 얼른 수도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나 밥 좀 먹고 가겠어요.》

《마침 잘 왔다. 두부를 앗았는데 맛이 어떨는지 모르겠구나.》

차씨는 아들이 웃도리를 벗고 세면을 시작하자 부엌에 들어가 잔등에 끼얹어줄 더운물을 바가지로 퍼들고나왔다. 아들은 벌써 큰 공장의 기사장이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을 등에 업고다니던 시절의 마음이였다.

《그렇게나 씻어가지고 되겠니? 엎뎌라, 물 끼얹어줄라.》

그는 총각시절에 늘 그렇게 하였던것처럼 서학산쪽으로 뒤를 쳐들고 ㅅ자모양으로 엎디였다.

《으흐흐 … 아니, 물이 왜 이렇게 뜨뜨미지근해요? 찬물을 끼얹어줘요.》

《모기한테 뜯겼구나. 모기장을 치고 자지 않구 …》

차씨는 동문서답을 하며 여전히 아들의 잔등에 미지근한 물을 슬슬 끼얹었다.

리진오는 량다리사이로 방안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영진이녀석이 왜 할아버지에게 졸경을 치르고있어요?》

《그러게 말이다. 공장에 가선 일은 어떻게 해야 하구 친구는 어떻게 사귀여야 하구 한 말 자꾸 곱씹는구나.》

《어허 – 시원해라.》

리진오는 문득 어렸을 때 종아리를 맞아가며 몸을 씻던 생각이 났다. 잔등에 닿는 어머니의 손이 수세미오이처럼 껄끄러운것을 느끼자 그는 얼굴을 돌리였다. 어머니의 넓은 얼굴에 가늘고 굵은 주름이 빈자리가 없게 가로세로 건너갔다. 아들들을 키우느라고 근심과 걱정이 침식해서 저 고랑들이 패였을것이다.

아래방문이 열리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밥 푸다 말고 뭘하는거요. 빨리 공장에 나가봐야겠는데.》

《어머니, 어서 가봐요.》

그랬지만 차씨는 아들의 넓은 잔등에 그냥 물을 끼얹고 문대였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늘 저렇게 부산을 피운단다.》

한생을 로동으로 늙은 그의 아버지는 지난해부터 일정한 직무가 없는 교관으로 일하고있었다.

《일이 있으니까 나가시겠지요 뭐.》

《일은 무슨 일, 말 못하는 공장이나 기다리겠는지, 남들이 그러는데 저렇게 서둘러 집을 떠나서는 할일없이 공장안팎을 빙빙 돌아다닌다더구나.》

《여보, 밥타는 내 나지 않소?》

령감이 밥을 기다리다 못해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화를 냈지만 차씨는 수건을 아들의 어깨에 걸쳐주고야 부엌에 들어갔다.

리진오는 세면대에 걸터앉아 기계적으로 잔등을 훔치고있었다.

《일은 무슨 일, 말 못하는 공장이나 기다리겠는지…》

그는 어머니가 한 말이 뜻밖에 큰 충격을 주어 속으로 되뇌이였다. 어린시절에 그가 아버지의 밥을 가지고 공장에 나가면 현장에 앉아 밥을 드시다가도 누군가가 급한 소리를 해서 어디론가 달려가군 하던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빈 밥곽을 들고오라고 매번 이르군 하였지만 그는 기다리기에 지쳐서 그냥 맨손으로 돌아오기가 일쑤였고 그때마다 어머니에게서 꾸중을 들었었다.

그때는 그렇게 찾는 사람이 많던 아버지였다. 성에서 일군들이 내려와서도 직공장(당시)인 아버지를 찾았고 부근 농장에서 뜨락또르를 만드는 로동자들이 수고를 한다고 떡함지를 이고와서도 모범로동자인 아버지를 만나군 하였었다. 아버지의 친구들은 얼굴에 술기운이 퍼지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뜨락또르를 처음으로 만들 때 아버지가 보잘것없는 설비를 가지고도 정밀한 부속품들을 기묘하게 만들어내던 일을 회상하며 《임자 저승에 갈 때 그 손만은 남겨놓고가게.》 하고 롱담을 한다. 그런 아버지를 찾는 사람이 없어졌다는것이 그는 믿어지지 않았다. 세월이란 그렇게 무자비한것인가.

강쪽에서 부는 바람에 살구나무가 조용히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 나무에서 요란스럽게 떠들던 참새들이 후르르 날아올랐다.

한참후 리진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웃방문으로 들어가 걸상에 걸터앉았다.

영진이는 동무들과 놀러가기를 약속한듯 궁둥이를 들썩거리며 벽시계를 올려다보고있었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그치지 않았다.

《명심해들어라, 사람은 다 올려다보고 일은 다 내려다보아야 한다.》

리진오는 자기가 공장에 입직하기 전날 아버지가 바로 저 이야기를 해주던 일이 어제일처럼 회상되였다. 그것은 70년간의 인생총화에 기초한 아버지의 생활철학이였다. 리진오가 경험한바에 의하면 그것은 생활에서 보편적의의를 가지는 진리였지만 인생의 문턱을 갓 넘어선 영진이는 그 진리를 듣느니보다 동무들과 놀러갈 일이 급해서 짜증을 냈다.

《알고있어요.》

《할아버지말씀 명심해들어.》 하고 리진오는 걸상을 끌고 사이문쪽으로 나앉으며 끼여들었다.

《사람은 사람마다 다 장점이 있으니까 머리숙여 배워야 하고 일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하자구 마음막 먹으면 할수 있다는 말이야.》

《쳇, 다 안다니까요.》

《이녀석, 네가 알긴 쥐뿔을 알아?》 하고 할아버지는 눈을 흘기며 손자를 나무랐다.

《사람은 이야기하는 재간을 배우기 전에 남의 이야기 듣는 법을 배워야 해.》

《원, 그만큼 타일렀으면 됐수다. 그러다간 아이의 귀에 길이 나겠수다레.》

차씨가 령감의 밥상을 들고 문지방을 넘어서며 하는 말이였다. 할머니는 어느때나 무작정 손자의 편이다.

리진오가 공장에 전화를 하려고 하자 영진이가 묻어올라와서 귀속말을 했다.

《나 삼촌이 쓰던 가방 가질래.》

학생가방을 들고 공장에 가기가 멋적다는것이다.

《어서 가지렴. 집의 벽장안에 있는것 같더라.》

대답이 떨어지기 바쁘게 영진이는 웃방문을 나섰다.

《박지도원(당시)동무요?》 하고 리진오는 식사를 하는 아버지에게 방해가 될가봐 송화기를 싸쥐고 말했다.

《내가 준 계획서초안을 다 정리했소?》

수화기에서는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의다 되여갑니다.》

《아직도 〈거의다〉요?》 하고 그는 가볍게 책망했다.

《곧 끝내겠습니다. 근데 저, 부에서 곧 올라오시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나를?》

《그렇습니다. 래년도계획초안을 가지고 오늘중으로 올라오시랍니다.》

이 공장은 지배인도 학교에 가서 없고 기사장도 임명된지 오래지 않고 해서 부에서 공장에 내려와 계획확정사업을 하겠다고 했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계획을 토의하는 모임에 참가하도록 하라고 부장이 지시했다는것이다.

《알겠소. 내 곧 사무실에 가겠소.》

송수화기를 놓은 리진오는 잠시 뙤창밖을 내다보며 부장이 어째서 부를가 하고 짐작해보다가 이렇게 퍼더버리고앉아있을 겨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래방에 내려갔다.

아버지는 부지런히 술을 놀리고있었다.

담밖으로 어린것들이 《속도전 속도전 기치드높이》 하고 목청을 빼며 지나간다.

리진오는 밥독촉을 하려고 부엌으로 나드는 사이문옆에 앉았으나 오늘따라 어머니의 허리가 더 굽은것 같아서 말이 나가지 않았다.

《야, 영진아, 영진아!》

손자가 보이지 않는것을 이제야 발견한 차씨는 영진이가 짜개바지를 입고 오래뜰에서 놀던 지난날처럼 생각하고 부엌문을 열며 소리쳤다. 허탕을 친 차씨는 아들의 밥그릇을 들고 들어오며 령감을 몰아세웠다.

《글쎄 한두마디 하면 됐지. 조반도 설때린 애를 점도록 붙들구 앉아서 밥도 제때에 못먹게 만들건 뭐요.》

리진오는 어머니가 공연한 걱정을 한다고 속으로 웃었다. 하기는 그것이 어머니의 생활인것이다. 근심이 없으면 근심거리를 만들어서라도 걱정을 하는 어머니였다.

리재협로인은 로친의 푸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생각에 골몰해서 밥을 먹었다. 이윽고 로인은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가공에서 소재가 딸린다더라.》

《알고있어요.》

로인은 생각되는바를 더 이야기하려다말고 천천히 숭늉을 마셨다. 아들이 직장장사업을 할 때만 하여도 그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하고 간참을 했지만 기사장으로 사업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공장전반사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 함부로 이야기할수도 없었고 또한 아들은 그 아들인데도 어째선지 지난날처럼 대할수가 없었던것이다.

리진오는 아버지의 그러한 심정을 잘 알기에 가끔 아버지가 주는 이런 짤막한 조언에서 큰 의의를 찾으려고 애쓰군 한다.

지금도 역시 그랬다. 그는 아버지가 소재를 선행시킬수 있는 그 어떤 방도에 대한 조언을 주지 않으려나 하고 기다리였다.

밥상에서 물러나앉은 리재협로인은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이였다. 살구나무너머에 비낀 구름을 한참 내다보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던 로인은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형도 직장에서 소재가 떨어지군 한다구 걱정이더라.》

《이제 대책을 세우겠어요.》

《대책이야 벌써 세웠어야지. 소재가 모자라서 조립흐름선이 멎게 되였는데 명색 기술자란 녀석들은 도대체 뭣들 하고있다더냐? 로동자들만 애써가지군 소재가 안풀려!》

령감의 높은 목소리에 놀란 차씨가 사이문을 활짝 열며 끼여들었다.

《원참, 남들이 들으면 싸우는줄 알겠수다레. 아니, 왜 벌써 수저를 놓았소?》

《그게 어디 밥이요? 죽이지.》

리재협로인을 자리를 일어서며 나무랐다.

《좀 되면 돌멩이같대. 좀 질어지면 죽을 쑤었대, 공장에 나가서두 저렇게 잔가시를 팔테니 부처님 아닌 담에야 누가 좋다고 할구? 쯧쯧…》

차씨는 령감에게 지청구를 주면서도 눈은 령감이 어느 반찬에 손을 많이 댔나 하고 살피고있었다.

로친의 푸념소리를 듣고만 있던 리재협로인은 전화종소리가 울리자 웃방에 올라갔다.

주강직장 강봉학직장장의 목소리였다.

《형님, 날 찾았수? 아까 전화를 걸었다면서요?》

강봉학직장장은 반세기전 로인에게서 일을 배울 때 입에 오른대로 지금도 여전히 《형님》이라고 부른다.

전화에 습관되지 않은 리재협로인은 고막을 진동하며 울리는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히여 송수화기를 쳐다보고나서 대답했다.

《우리 손자때문에 찾았댔네. 임자네 주강에 배치되였다더군.》

《배치가 아니라 그 녀석이 자원해서 왔습데다. 아까 아침에 몰래 나한테 와서 하는 말이 전기로에 배치해달라고 조릅디다. 전기로에 보내주지 않으면 제강소로 달아나겠다는게 아니겠소.》

《그래?!》

리재협로인의 입가에는 느슨한 미소가 그려졌다.

《하여간 신발을 잘 신겨주게.》

《념려마슈, 옛날 형님이 일배워주던것처럼 배워주리다. 모르면 몰라도 그 녀석이 제 삼촌처럼 한몫 단단히 할거웨다.》

《제 삼촌처럼?》 리재협로인은 가볍게 웃고 말을 이었다.

《큰 짐을 걸머지구 당의 기대에 보답하겠는지 걱정일세. 하여간 쇠는 달구어 두드리기탓인데 부탁하네.》

담밖으로 처녀들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간다.

그렇게 바쁘다고 밥독촉을 하던 로인은 뜨락에 내려서더니 담밑에 소꿉놀이터같이 두어뙈기 일군 터밭옆에 쭈그리고앉았다. 그는 갈구리같은 손가락으로 김장배추밭에서 잔풀을 몇뿌리 뽑아주고 문을 나섰다.

쳐녀들의 노래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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