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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회

19. 넓은 바다 한 귀퉁이에서


우후는 약속을 지키였다. 쥬스께가 포구에 도착하니 이미 배는 거의 출항준비를 끝내고있었다. 이제 먹는물만 싣고나면 떠날수 있었다.

급수군이 먹는물을 가득 담은 나무통들을 수레로 날라왔다.

군사들은 통들을 들어다가 갑판 뒤쪽에 든든히 비끄러매놓았다. 그들속에는 창대와 주리대도 있었다.

우후가 포구로 나왔다. 군사들은 우후를 맞이하기 위하여 일렬로 쭉 벌려섰다. 쥬스께도 군사들의 맨끝에 엉거주춤 섰다.

우후는 쥬스께쪽은 보지도 않고 군사들을 향해 실무적인 말을 몇마디 하였다. 그리고는 뒤를 따르던 구중에게서 자개함을 받아서 창대에게 넘겨주었다.

《이안에 바로 통제사께 보내는 도해첩이 들어있느니라. 나라의 귀중한 국보이니 목숨처럼 간수해야 한다. 너희들은 이 길로 곧장 한산도로 찾아가서 통제사께 이 도해첩과 함께 배무이정형이랑 적은 이 종이말이까지 함께 전달토록 하라. 참, 저 관포만호 송이첨의 아들 송원서에게 급한 일이 생겨 집엘 보내야 하겠으니 가는 길에 그를 태워다주도록 하라. 먼저 관포에 들려 저 사람을 내리워주고 돌아오는 길에 한산도에 들리는게 편할듯 하다. 둘 다 급한 용건이니 잠시도 지체말고 부지런히 노들을 저어 제시간에 당도하도록 하라. 더 물어볼 말이 있는고?》

《없소이다.》

창대의 대답을 들은 우후는 쥬스께에게 끔뻑 눈짓을 해보이고는 《속히 떠나도록 하라!》 하고 령을 내렸다.

《예잇-》

군사들은 우후를 향해 읍을 해보이고 우당탕퉁탕하며 배전으로 뛰여올라갔다.

《닻을 올려라!》

창대의 호령이 울리자 닻줄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영차, 영차! 하고 들려왔다.

《돛을 올려라!》

바람을 안은 돛은 순식간에 배를 포구밖으로 밀어내였다.

배가 포구밖으로 사라지도록 우후는 그냥 한자리에 서고만 있었다.

쥬스께는 그러한 우후의 심정이 리해가 되였다.

(아마 저놈은 이 배가 콱 깨져서 내가 물에라도 빠져죽길 간절히 바라겠지. 하지만 그렇게는 안될걸. 그렇게 쉽게 죽을 쥬스께가 아니거던.)

쥬스께는 우후와 또 만날 날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멀어져가는 해안을 점도록 바라보았다.

눈길을 돌려보니 창대가 우후가 건네준 자개함을 꼭 안고 갑판우에 서있었다. 국보가 들어있다니 아마 잃어버릴가 두려운 모양이였다. 주리대는 키를 잡고 나머지 두명의 군사들은 노를 잡고있었다.

쥬스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저게 빈통인것을 그렇게도 모를가?)

쥬스께는 깨고소한 눈길로 창대를 바라보았다. 우후가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봉인까지 해놨으니 창대도 그안에 도해첩이 있는지 없는지 알턱이 없을것이였다.

어쨌거나 우후의 바래움을 받으며 한산도를 향하여 닻을 올린 돛배는 바람을 안고 동쪽을 향하여 기운차게 내달렸다.

쥬스께는 이제 배가 관포앞바다에 들어서기만 하면 지체하지 않고 손을 쓸 계획이였다. 거제섬의 동북쪽에 위치하고있는 관포에서 부산포까지는 바다길로 불과 70여리가 되나마나하였기때문에 손을 쓸 장소로는 거기가 적당하였다. 게다가 관포앞바다에까지 도착할즈음이면 먼 바다길에 교대로 노질을 하느라고 군사들도 지칠대로 지칠것이니 기진맥진한 4명의 군사들을 쓰러뜨리는것이 별로 어려워보이지도 않았다.

좌우간 쥬스께는 그 시각을 위하여 힘을 아껴야 하였다. 관포에 도착할 때까지 선실에 들어가 눈을 좀 붙이고싶었다. 아까 초저녁에 마셨던 술기운이 이제야 마구 뻗치는 모양이였다.

쥬스께는 밀려나오는 하품을 연방 늘어지게 하면서 갑판아래로 기여들어가 아무데고 털썩 누워버렸다.

얼마나 잤겠는지…

쥬스께는 문뜩 살갗에 무엇인가 감겨드는 이상한 감촉을 받았다. 무엇인가 부자연스럽고 불안한 느낌을 주는 물건이였다.

《앗!》

눈을 뜬 쥬스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닻줄에 꽁꽁 묶인 자신을 발견했던것이다.

《이게 무슨짓이요?!》

쥬스께는 발치에서 어물거리고있는 주리대에게 꿱- 고함을 질렀다.

《벌써 깨여나셨구려. 이제 목욕을 시켜주려던 참이였는데…》

《모… 목욕을 시키다니?》

《뭘 시치미를 떼면서 그러시우. 모를것이 있으면 우후나으리께 물어봤어야지 나한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라우?》

《우후?!》

《그렇소. 나도 어찌된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소만 우후나으리가 가면서 보라고 준 저 종이말이에 당신이 왜적의 간자이니 꽁꽁 묶어서 바다에 처넣구 그길로 좌수영으로 오라고 씌여있더구만.》

주리대의 말을 들은 쥬스께는 (개같은 우후 이놈! 감히 날 속여? 값을 치르게 하고야말테다!) 하고 윽윽하였다.

그러면서도 《왜적의 간자라니? 뭔가 오해가 생긴 모양이요. 난 도무지 영문을 알수 없구만.》 하고 발뺌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그럼, 이건 무엇이요?》

주리대도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쥬스께의 눈앞에 손을 쳐들어보였다.

그의 손에 들린것을 본 쥬스께는 두눈이 휘둥그래지였다.

(도해첩?!)

쥬스께는 불시에 하늘땅이 꺼지는것 같았다.

《말을 못하는구만. 이러니 내가 당신이 왜적의 간자가 아니라고 어떻게 믿는단 말이요? 우후나으리가 서신에 밝힌대로 당신은 왜적의 간자가 분명한것 같소.》

주리대는 입안이 쓰거운듯 입을 쩝쩝 다시였다.

《죽을 차비나 하오.》

이 말을 남긴 주리대는 저쪽으로 가버렸다.

쥬스께는 결박끈을 풀어보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그것을 풀 재간이 없었다.

(아, 가끼누마 쥬스께가 여기서 이렇게 죽어야 한단 말인가!)

쥬스께는 살고싶었다. 이렇게 죽는것은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했다.

(아, 살고싶다! 나는 살고싶다!)

움직일수록 결박끈은 더욱더 세게 팔목과 발목을 조여들었다.

(칙쇼! 우후, 이 개자식! 어디 두고보자! 네놈을 내 기어이…)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여기서 벗어날 방도는 없었다. 절망상태에 빠진 쥬스께는 마침내 모든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머리속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제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해서조차 생각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흔들리는 배전에 그냥 내버려두었다.

어디선가 가느다랗고 희미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원서, 정신차려.》

쥬스께는 눈을 뜨고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저쪽 발밑에 창대와 주리대를 비롯한 군사들이 돛줄을 어디에 고정시키려는지 한데 달라붙어 잡아당기고있는 모습이 눈에 띄울뿐 자기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젠 착각증상까지… 저승에서 찾는 소리인가?)

쥬스께는 다시 눈을 감고 온몸의 긴장을 쭉 풀었다.

그러나 그때 《원서!》 하고 부르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아니다, 이건 저승에서 찾는 소리가 아니다. 분명 내 가까이에 사람이 있다, 사람이!)

쥬스께는 눈을 번쩍 떴다.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역시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요? 어디 있소?》 하며 쥬스께가 휘둘러보았다.

《제길, 입을 놀리지 말라구. 내 말을 듣기만 하고 알았으면 고개만 끄덕거리라구.》

쥬스께는 나무통을 향하여 고개를 끄덕이였다. 분명 소리는 그쪽에서 들리고있었다.

《자넬 빼내줄테니 날 도와줄텐가?》

순간 쥬스께는 온몸에 피가 용솟음치는듯 한감을 느끼였다. 죽음의 절망에서 삶의 가망을 본것이다.

쥬스께는 더 생각할것도 없이 고개를 몇번이고 끄덕이였다.

(뭔들 못하랴! 날 살려주겠다는데야…)

한순간, 한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창대와 주리대가 돛작업을 다 끝냈는지 손을 툭툭 털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있었다.

쥬스께는 몸을 꿈지럭거리며 구석쪽에 숨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바로 그때 주리대와 창대의 뒤쪽에 난데없이 등개가 불쑥 나타났다.

《안녕한가, 친구들?》

주리대와 창대는 어지간히 놀라는 눈치였다.

《아니, 전 교련관이 어떻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소?!》

《나? 보다싶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네. 헌데 이게 자네들게 아닌가?》

등개는 뒤에 감추고있던 바른손을 꺼내들었다.

《저런, 자개함이구려. 교련관이 그걸 왜 손에 들고있는거요?》

그들의 물음에 등개도 놀라는 표정이였다.

《글쎄, 이따위 필요도 없는 물건짝을 내가 왜 손에 들고있을가?》

등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훌쩍 바다물에 던져버렸다.

《아니?!…》

등개의 손을 벗어난 자개함은 포물선을 그으며 곧장 바다물에 철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리고는 수면우에 떠올라 기우뚱기우뚱하면서 배전밖으로 멀어져갔다.

《그 통은 왜 집어던지는거요? 제길할!》

창대가 주먹을 내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이거 놔! 제길, 교련관이였으면 다야?!》

창대는 성이 독같이 나서 펄펄 뛰였다. 그러나 주리대는 말 한마디 못하고 자꾸 창대의 팔소매를 잡아당기기만 하였다.

《이거 왜 그래?》

창대는 주리대가 자꾸 성가시게 굴자 꽥- 소리를 지르며 그를 돌아보았다.

《저기… 도해첩이 떠내려가네!》

한참만에야 주리대가 고함을 질렀다.

《뭐라구? 저건 빈통이라며?》

《아니야, 아까 내가 도해첩을 들고 돌아다니다가 건사할데가 없어서 거기다 넣었드랬네. 바로 저안에 도해첩이 있어!》

《건 왜 거기에 넣어?》

창대가 주리대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주리대는 창대의 팔뚝에 매달려 발버둥치면서도 눈으로는 떠내려가는 자개함만 바라보고있었다.

《허허, 그러다 도해첩을 영영 잃어버리고말겠는걸.》

뒤에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있던 등개가 넌지시 하는 말이였다.

그 말에 창대가 고개를 돌려 등개를 쏘아보았다.

《교련… 아니 등개, 목에 칼을 질줄 아우!》

창대는 더이상 긴말이 없이 훌쩍 몸을 날려 바다물에 뛰여들었다.

《바줄을 던져!》

창대는 떠내려가는 자개함쪽으로 헤염을 쳐가며 소리쳤다.

《알았네.》

주리대가 발밑에 있던 바줄퉁구리를 잡아 창대가 헤염치는쪽을 향해 힘껏 던졌다.

《어이쿠!》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바줄만 하염없이 바라보고있던 주리대는 뒤에서 등개가 밀치는 바람에 허양 바다물에 떨어져내렸다.

《바줄을 꼭 쥐게!》

등개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주리대를 배전너머로 내려다보면서 야유적으로 소리쳤다.

《이게 무슨짓이요?》

노를 젓던 두명의 군사가 달려왔다.

하지만 등개는 그들도 눈깜빡할 사이에 닁큼 쳐들어 바다물에 던져넣었다. 상씨름군이였던 아버지에게서 넘겨받은 재간이였다.

《어이쿠!》

물에 빠진 군사들은 어쩔줄을 모르고 헤덤비였다.

《자, 나무통들을 내려보낼터이니 그걸 붙잡구 물장구나 치라구! 이제 곧 순찰선이 나타날게야!》

등개는 갑판 뒤쪽에 있던 빈통들을 골라가지고 그들에게 던져주었다.

《아까 그 끈으로 나무통들을 묶어서 떼를 만들어도 좋아! 여, 끈을 잘 건사했겠지?》

가까스로 나무통을 붙잡고 기여오르던 주리대는 등개의 그 말에 《이놈, 잡히기만 해봐라. 주릴 틀어놓구말테다!》 하고 소리치는것이였다.

《자, 친구들! 또 만나세!》

등개는 키를 잡아 배의 방향을 동쪽으로 돌려세웠다.

등뒤에서 《교련관, 이 개자식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게! 아, 여보게!》

쥬스께가 등개를 찾았다.

《왜 그러나?》

등개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젠 이걸 풀어줘야지!》

쥬스께는 한데 묶인 발목을 쳐들어보이였다.

《풀어준다고까진 안했는데… 에라, 까짓거 풀어주지. 헌데 자네 나한테 한 약속을 꼭 지켜야 하네.》

《뭐… 뭘 말인가?》

《나를 도와주겠다고 한 그 말 말이야.》

《알았다니까.》

등개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더니 쥬스께의 손목과 발목에 묶은 바줄을 툭툭 끊어버리였다.

《어휴, 살았군.》

손과 발이 자유로와진 쥬스께는 벌떡 일어서더니 자기를 묶었던 바줄토막들을 걷어안아 배전밖으로 내팽개쳐버리였다.

《우후, 이 개자식아!…》

쥬스께는 서쪽하늘에다 대고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네놈의 간을 꺼내여 씹어먹구말테다!》

쥬스께는 도저히 진정할수 없는듯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젠 좀 조용하라구. 여긴 아직 조선수역일세.》

등개의 그 말에 쥬스께는 입을 다물었다.

《자넨 대체 누군가?》

쥬스께가 물어보는 말이였다.

《나? 나야 급수군이지. 전라좌수영의 급수군을 모르나? 이 배의 먹는물도 내가 길어다놓은건데…》

쥬스께의 물음에 등개는 딴전을 부렸다.

《자네도 참… 그럼 툭 터놓구 말해보세. 자넨 어째서 날 구원해주었나?》

쥬스께의 말에 등개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문뜩 이런 말을 하는것이였다.

《난 급수군이 아닐세. 난 급수군따위가 될수 없어. 자네도 내가 몇년전까지만 해도 배를 만드는 장공이였다는것을 모르지는 않을테지? 사실 말해서 내가 가진 배무이술은 곡진장주를 릉가한다네. 곡진장주의 재간은 이미 낡았어. 곡진장주가 아무리 난다긴다하는 재간을 가졌다지만 나한테는 감히 비교가 안되지. 이 배를 보라구. 내가 만든 배인데 얼마나 빠른가? 아마 남해바다우에서 이보다 더 빠른 배는 찾기 어려울걸세.》

《그래? 이게 정말 자네가 만든 배인가?》

쥬스께는 놀라운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렇네. 그저 놀음삼아 한번 만들어본걸세. 헌데 도무지 인정을 해주지 않는구만. 난 더이상 참을수가 없네. 이런 재간을 가지고있는 사람이 그래 물통이나 들구 다녀야 옳단 말인가?》

등개의 말에 쥬스께는 좀 어리둥절해졌다.

《그럼, 그렇지 않구. 헌데 날 보구 하소연하는 리유는 뭔가?》

쥬스께는 조심히 등개의 속을 찔러보았다.

《난 자네가 누구며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다 알고있네. 자네에겐 내 도움이 꼭 필요해. 내가 없으면 자네의 그 계획은 실현이 불가능하네. 왜냐면…》

《가만!》

쥬스께는 손을 들어 등개의 말을 중단시켰다.

《자넨 내가 누군지 아나?》

쥬스께의 물음에 등개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래?》

《그럼, 난 게다가 자네가 뭘 바라고있는지도 잘 알고있어. 거북선을 만들어보고싶어하지.》

정통을 찔리운 쥬스께는 더욱더 등개가 의심스러웠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나? 자네 도대체 누군가?》

하지만 등개는 호기심어린 쥬스께의 눈길을 외면해버리였다.

《아직도 아닌보살인가. 난 이미전에 자네가 관포만호의 아들이 아니라는것을 짐작하고있었네. 자네는 도해첩을 훔치려고 들어온 사람일뿐이야. 안 그런가?》

쥬스께는 아무 말도 못하였다.

등개는 쥬스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자네 생각은 그럴듯하지만 도해첩만 가지고는 그 배를 만들어낼수 없네. 거북선건조에서 기본은 도해첩이 아니라 그걸 만드는 장공이거던. 도해첩은 그림에 불과하지만 장공은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이라네. 거북선은 그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와 같애. 자넨 잘 모를수 있겠지만 도해첩을 보고 그대로 거북선을 만들어낸다 해도 그것은 제 성능을 다 발휘할수 없어. 원래 도해첩에는 제일 중요한 기본자료들을 반영하지 않는 법이라네. 그건 그 도해첩을 만들어낸 장공들의 머리속에만 존재해. 그러니 자네가 진짜거북선을 만들고싶다면 바로 나와 같은 장공들이 꼭 필요하다 이 말일세. 어때, 이젠 내 말이 리해가 되나?》

쥬스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자네 말이 일리가 있네. 그러니 자네가 나를 도와 귀선을 만들겠다 그 말이지?》

《어허, 똑똑한걸… 말할 재미가 있어. 옳네, 정확하게 리해했구만.》

《그럼 나한테선 뭘 바라나?》

《더 나은 대우지. 지금보다 나은 처지, 지금보다 나은 대우. 사실 내가 자네한테 바라는건 그리 크지 않다네.》

《?!…》

《그래, 어때? 자넨 이런걸 약속해줄수 있나?》

그러자 쥬스께는 《그런것이라면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내 노력해주겠네.》라고 대답하였다.

쥬스께는 오래간만에 만족스럽게 웃어보았다.

《역시 자넬 믿은 보람이 있구만.》

등개도 팔을 벌리며 호방하게 웃었다.

배는 어느덧 가덕도근방을 지나고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부산포였다.

《헌데 자네 내가 송원서가 아니라는것을 어떻게 눈치챘나?》

거밋거밋한 가덕도의 풍경을 홀린듯 바라보며 쥬스께가 등개에게 묻는 말이였다.

《그거야 자네가 알려주지 않았나.》

《내가?》

《그럼, 자네가. 내게 하던 말이 생각나지 않나? 그 말을 듣다가 제꺽 알았지.》

《무슨 말? 난 그런 말을 한적이 없는데…》

의아해난 쥬스께가 등개를 바라보았다.

《자네 날 보구 뭐라고 했나? 삼보녀를 구원할 때 자네 거기서 역관노릇을 했다고 했지?》

《그야 그랬지. 헌데, 그게 뭐 어때서?》

《어째선가구? 허허 참… 삼보녀가 말하기를 자기 집에 달려들었던 왜장은 복면을 했었는데 통역이 없이도 말을 아주 잘하더라고 합데. 그러니 뭔가 모순되지 않는가. 생각해보라구, 그래 자넨 소리와 억양을 과연 숨길수 있다고보나? 안 그런가?》

등개의 말에 쥬스께는 얼굴이 붉어졌다.

《흐음- 자네 그 분석력이 놀라운걸. 그러니 자네 내 정체를 다 알고있으면서도… 이거 자네한테 뭐라고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구만. 고맙다는 말을 기대할테지?》

《그야 물론 고맙다는 말이지.》

등개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뭐 품들일것두 없구만. 그럼 인사를 받으라구. 고맙네.》

그러나 등개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듯싶었다.

《말로만? 말로 굼땔 생각은 애초에 버리라구.》

《그럼, 자넨 또 뭘 바라나?》

그 말에 등개는 와락 몸을 일으켜 쥬스께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자네 내 약혼녀를 놀라게 한 값을 치르지 않을셈인가? 난 그걸 용서할수 없어. 게다가 배우에서 그를 졸개들에게 던져주었댔어!》

등개의 눈빛은 순간에 사나워졌다.

멱살을 잡힌 쥬스께는 금방 숨이 막히는듯 모지름을 썼다.

《이… 이걸… 놓으라구!》

쥬스께의 얼굴은 순식간에 시뻘겋게 변했다.

《에익!》

등개가 손을 풀자 쥬스께는 뒤로 벌렁 나가자빠지였다.

《어휴- 자네 손아귀힘이 보통이 아닐세그려. 그건 내가 미안하게 되였네. 나도 할수 없어 그랬다는걸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난 자네 약혼녀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네. 그럴 생각도 없었고…》

쥬스께는 열이 확확 나는듯 한 자기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입이 돌아가는대로 변명을 주어담았다.

《다행인줄이나 알아. 만일 내 약혼녀의 손끝 하나라도 건드렸다면 넌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닌지 옛날이야. 그렇다구 내가 다 용서한것으로 생각지는 말라. 그건 네가 내게 갚아야 할 빚이야.》

등개의 어깨가 심히 오르내렸다.

《이거 진정… 진정해주게. 빚이라… 좋네, 인정하네. 자네가 갚으라면야 갚아야지. 자네를 위해서라면야 무엇인들 아깝겠나. 내 말했지, 자네가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해주겠다구?》

쥬스께는 흔들리는 배전을 붙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곡진장주를 놓아주게.》

《뭐라구?!》

등개의 말에 쥬스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는 자네한테 아무 소용도 없어. 그러니 놓아주라구.》

쥬스께의 눈알이 교활하게 움직였다.

《만일 내가 싫다면?》

《자넨 싫어할 까닭이 없어. 만일 그렇다면 당장에 자네의 모든게 끝을 보게 될걸.》

등개는 품속에 손을 넣어 지금껏 간수하고있던 도해첩을 꺼내들었다.

《도해첩?! 자네 아까 그것을 물속에 처넣지 않았나?》

등개의 손에 들린 도해첩을 본 쥬스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이걸 왜 물속에 처넣는단 말인가. 내가 내던진건 빈통일뿐이야. 거북선을 만들자면 이게 반드시 필요하네.》

등개는 도해첩을 쥬스께에게 내밀었다.

《이젠 이게 자네것이 되였네. 그러니 선택도 자네 몫이야. 만일 곡진장주를 놓아주지 않으면 나도 역시 거북선을 만들어주지 않을걸세. 그럼 그 도해첩도 소용없게 되지. 하지만 내 청을 들어서 곡진장주를 놓아주면 난 자네를 위해 거북선을 만들어줄걸세. 잘 생각해보게나, 어느것이 리득이고 어느것이 손해일지…》

등개는 흘러가는 물결만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다.

쥬스께는 그러는 등개의 속을 알다가도 모를것 같았다.

《자넨 자기가 살던 곳을 완전히 떠나오지 않았나.》

쥬스께의 이 말은 등개가 지금 가는 이 길이 더 나은 처지와 대우를 바라고서 완전히 돌산도를 떠난 길이 옳은지를 확인하는 물음이였다.

《그래. 난 다시 돌아갈 생각이 꼬물만큼도 없네. 난 한번 결심하면 다니까.》

《다시 갈것도 아니면서 왜 내버린 약혼녀를 자꾸만 걱정하나?》

《어쨌든 그는 내 약혼녀였으니까. 그의 곁엔 나밖에 다른 사람이 더 없어. 하기야 자네 같은 오랑캐족속들이 그걸 알턱이 없지.》

《그래, 그건 인정하네. 솔직한 말로 조선인들에겐 고상한게 있어. 그렇지만 정말이지 자네 심정을 리해할수 없구만.》

쥬스께는 등개의 한숨소릴 들으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제 그에게 남은것은 아무도 없네. 나마저 떠났으니 그는 외토리가 되였지. 그게 딱 마음에 걸려 내려가질 않누만. 내가 꼭 그렇게 만든것 같은게, 사내로서 못할짓을 한것만 같은게. 하긴 내가 그렇게 만든것이나 같지. 내가 그를 떠났으니까. 내가 못 견디겠다고 그 생활을 뛰쳐나왔으니까. 허나 나는 그가 불행해지는것을 지켜볼 자신이 없네. 그가 불행에 빠진다면 나는 나자신을 결코 용서하지 못하게 될걸세.》

《그래서 곡진장주를…》

《옳네, 바로 그래서야. 그에게 할아버지라도 계신다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거라고 보네. 나보다는 그에게 할아버지가 더 귀중해. 그러니 곡진장주를 보내주자구. 어차피 자네한테야 쓸모가 없지 않나.》

《그럼 차라리 약혼녀도 함께 데려오는게 어때?》

쥬스께의 말에 등개는 버럭 화를 냈다.

《내 약혼녀의 손끝 하나 건드리면 어떻게 된다고 내 말했지? 그에게 무엇이든 강요하지 말라구. 그는 거기서 살길 원해. 나와는 다르단 말이야. 알겠어?》

쥬스께는 등개의 낯빛이 다시금 험악해지는것을 보고 속이 한줌만하게 졸아들었다.

(그래, 저놈의 요구를 무시할순 없다. 귀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저놈이 꼭 필요해. 그러니 어떻게든 저놈을 진정시켜야 한다.)

《알았네, 알겠어. 그 일은 나에게 맡기구 더 신경을 쓰지 말라구.》

쥬스께는 이렇게 말하며 등개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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