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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회

16. 달밤의 륜무


《삼보녀!》

고개를 수굿한채 토방아래 벗어든 신발을 찾아 신고있던 삼보녀는 깜짝 놀라 두팔로 동가슴을 그러안았다. 그가 다름아닌 등개인것을 알아본 삼보녀는 《아이, 놀래라. 심장 떨어질번 했네.》 하며 놀란 가슴을 다독이였다.

삼보녀의 모습이 우스운듯 벌쭉거리던 등개는 《놀랐어? 우정 놀래우자 그런건 아닌데…》 하며 뒤더수기를 긁었다.

점직해하는 등개가 보기 멋적어진 삼보녀는 《하두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니…》 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등개는 그냥 서있기가 어색하여 마당에 굴러다니던 나무잎을 하나 주어들고 토방에 앉았다.

《오늘 밤에 달이 뜰가?》

등개의 물음에 삼보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초저녁이니 달이 안 보여. 그렇지만 밤이 되면 꼭 달이 뜰거래. 대상군어른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틀림이 없을거야.》

어두운 하늘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삼보녀가 하는 말이였다.

《그래, 우리 고모가 뜬다고 했으면 꼭 뜰거야. 준비는 다 됐겠지?》

등개의 물음에 삼보녀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달이 뜨면 모두 해변가로 나올거야. 헌데… 정말 거기서도 와?》

《그럼, 가야지. 내가 안 가면 누가 불을 지펴주겠어.》

그 말에 삼보녀는 신코숭이로 공연히 바닥을 꼭꼭 눌러놓으며 두볼에 보조개를 그렸다.

등개는 삼보녀의 옆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치렁치렁한 머리태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가쯘하게 동여맨 허리끈속에 감추어져있는 싱싱함이 등개의 모든것을 사로잡고있었다. 가만히 서있어도 이 지경인데 삼보녀가 춤까지 출 때면 등개는 그야말로 무아경에 빠질 정도였다. 춤판에서 삼보녀는 동리 그 어느 처녀들보다도 빼여났다. 불무지를 빙빙 돌며 노래를 부르고 다같이 둥실둥실 춤을 추지만 유독 그속에서 삼보녀만은 등개의 눈길을 틀어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평소에는 수집음을 그렇게 타는 삼보녀인데 어떻게 춤판에만 들어서면 싹 달라지는지 등개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처녀들과 손을 잡고 불무지를 빙빙 돌며 노랠 부르고 춤을 추는 삼보녀는 어느새 제가 알고있던 그 얌전단지가 아니였다. 삼보녀는 생기발랄하고 쾌활한 처녀였다.

등개는 바로 그런 그가 좋았다. 삼보녀를 통해 등개는 자기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군 하였다. 사실 말해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없는 등개에게 있어서 어머니를 떠올릴수 있는 기억의 토막이란 어머니가 달밝은 밤에 불무지곁을 돌며 춤을 추군 했다는 고모 강씨의 이야기뿐이였다. 그 이야기속에 나오는 등개의 어머니는 꼭 삼보녀처럼 평소에는 수집음을 잘 타 늘 얼굴이 복숭아처럼 익어있다가도 춤판에만 들어서면 비둘기같은 동작과 귀여운 걸음새로 춤판의 이목을 대번에 끌어당기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바로 삼보녀처럼…

그래서 그런지 삼보녀가 춤을 출 때면 등개는 멀찌감치 떨어진 나무그늘뒤에 홀로 숨어서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고있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오늘 밤에도 삼보녀는 틀림없이 등개의 기대를 만족시켜줄것이였다.

《뭘 생각해?》

난데없는 물음에 삼보녀는 고개를 들고 등개를 바라보았다.

《얼굴색이 어쩐지 좋지 않아. 또 할아버지를 생각해?》

할아버지라는 말에 삼보녀는 말없이 고개를 다시 수그렸다. 타는듯 한 눈길로 발아래를 내려다보고있는 삼보녀의 두볼로 맑은 이슬방울이 굴러내렸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삼보녀를 보는 등개의 마음은 몹시 쓰리고 아팠다.

(내가 공연한 소리를 했나보다.)

등개는 어떻게 삼보녀를 위로했으면 좋을지 몰라 속이 상했다.

바다를 지킨다고 활을 메고 나서고도 눈앞에서 돌산도가 급습을 받는것도 막아내지 못했으니 사실상 등개는 삼보녀를 쳐다볼 면목이 없었다.

《다 내 잘못이야. 내 잘못으로 할아버지가 그렇게 되셨어.》

《그게 왜 거기 잘못이야, 섬오랑캐놈들때문이지.》

《아니, 내 잘못이 옳아. 내가 그날 바다감시를 똑바로 했더라면 어디라고 그놈들이 기여들겠어. 참 안타까운 일이야.》

등개는 무릎을 털썩 치며 한숨을 후- 하고 내불었다.

삼보녀는 눈물을 거두고 토방에 앉아있는 등개를 살며시 돌아보았다. 숱진 눈섭을 한데 모아붙여 이마에 내천자를 그린 등개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측은해보였다.

《너무 자기를 탓하지 마. 그런 얼굴을 하면 싫어.》

하지만 등개는 삼보녀의 말은 듣지 못했는지 모아붙인 미간을 펼줄 몰랐다.

《할아버진 어떻게 되셨을가? 무고하실가? 이렇게 날씨가 차지면 늘 무릎이 아파 고생을 하시댔는데…》

등개는 멀리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바다쪽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중얼거렸다.

흑흑 느껴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길, 난 왜 놈들이 할아버지를 노릴수 있다는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가? 아,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주먹으로 토방을 치는 소리가 쿵- 하고 울렸다.

그 소리에 놀란 삼보녀가 눈물이 가랑가랑 맺힌 눈으로 등개를 바라보았다.

등개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고있었다.

《하지만 삼보녀, 너무 걱정하지 마. 난 할아버지를 구원할수만 있다면 저 바다건너 왜나라땅에라도 쫓아갈테니까.》

《그런 말 말어. 거기까지 없으면 난 어떻게 하라는거야?》

그러나 등개는 고집스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삼보녀는 아직 다 몰라. 할아버지를 구원하는 길이 곧 거북선의 비밀을 지켜내는 길이고 거북선의 비밀을 지켜내는 길이 곧 나라를 지키는 길이야. 난 이 길에서 한걸음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그 말을 듣는 삼보녀의 눈에는 수심이 가득 비끼였다.

《이제 두고봐. 도해첩을 노리는 왜적의 간자는 꼭 우리 손에 붙잡히고야말걸. 그렇게만 되면 삼보녀의 할아버지도 구원할수 있어. 그러니 삼보녀도 맥을 놓지 마. 오늘 밤이 제일 중요하단걸 알지?》

삼보녀는 등개의 부리부리한 동자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삼보녀의 얼굴에서 무엇인가 뜨겁고도 강렬한 느낌을 받은 등개는 배심이 든든해져 감발을 꽉 졸라매였다.

《어서 가자구, 달이 떠온다.》

등개는 벌떡 토방에서 일어나 제 먼저 기운차게 마당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갔다.

삼보녀도 고개를 수굿한채 발볌발볌 소리없이 등개의 뒤를 따랐다.

해변가에 다달으니 누가 지폈는지 이미 불무지가 타오르고있었다. 불무지곁에는 아래마을, 웃마을의 처녀들이 오구구 모여앉아 짝짜그르르 웃음판을 펼치고있었다.

《이젠 혼자서 가.》

등개가 뒤에서 걸어오던 삼보녀에게 말했다.

삼보녀는 고개를 들고 등개와 저쪽 불무지쪽에 모여 떠들고있는 처녀들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였다.

삼보녀의 두눈을 다시한번 들여다본 등개는 입술을 앙다물고 거북바위쪽으로 몸을 돌려세웠다.

《이봐요!》

갑자기 삼보녀가 그의 걸음을 멈춰세웠다.

등개는 돌아보았다.

삼보녀는 또다시 부끄러움이 밀려오는듯 고개를 푹 수그리고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술사이로는 《부디 조심해.》 하는 소리가 새여나왔다.

그 말을 들은 등개는 행복스런 웃음을 얼굴에 가득 담았다.

《걱정말어.》

이렇게 한마디 말을 남기고 등개는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호- 하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삼보녀는 등개가 더 보이지 않자 불무지쪽으로 종종걸음을 놓았다.

등개는 어둠속에서 삼보녀를 눈으로 바래우며 무엇인가 생각하고있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있는걸가? 이제라도 그만두는것이 낫지 않을가?)

그러나 다음순간 등개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일단 시작했으니 어떻든 끝을 봐야 해.)

등개는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해풍에 떨고있는 나무들사이로 빠져 불무지가 빤히 바라보이는 곳에 있는 거북바위쪽으로 다가갔다.

가보니 이미 팔동이와 송원서가 한걸음 앞서 나와있었다.

숲속에서 나오는 등개를 띄여본 팔동이 손을 흔들었다.

《벌써들 나왔구만. 오래 기다렸나?》

등개는 이렇게 말하며 팔동이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몇걸음 뒤에 서있는 송원서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송원서도 고개인사를 하였다.

《밤중에 안됐네. 하지만 도해첩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니 량해해주리라고 믿네.》

등개는 팔소매를 썩썩 걷어올렸다.

《자, 시작해보세. 불들을 걸라구!》

이내 준비해두었던 홰들에 불이 붙여지고 바위주변이 환히 드러났다.

등개는 품속에서 똘똘 만 짐승가죽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두손으로 정히 펴가지고 불뭉치쪽으로 기웃하게 들어올렸다.

그것은 도해첩의 위치가 표시된 략도였다.

《그게 략도인가?》

《그렇네. 삼보녀가 찾아낸게 바로 이거야.》

팔동과 송원서는 등개의 손에 들린 략도를 신기해서 쳐다보았다.

《어디 좀 보세.》

등개가 선뜻 략도를 넘겨주자 팔동은 얼른 받아 불빛에 펼쳐보았다.

《좀 보라구. 이게 략도래.》

송원서도 그 략도라는것에 무척 흥미가 동하는듯 했다.

팔동의 어깨너머로 략도를 들여다보던 송원서는 략도속의 거북바위와 실지 눈앞에 있는 거북바위를 연방 대조해보았다.

《이것만 있으면야 눈을 감구서도 도해첩을 찾아낼수가 있지!》

팔동은 제일 가까이에 있는 홰아래 략도를 펼쳐놓고 작은 돌을 주어다가 네 귀퉁이를 지질러놓았다. 그렇게 하니 략도가 더 잘 보였다.

《여길 보게. 분명 거북바위잔등에다가 표시를 해놨구만. 그러니 바위등부터 훑어보자구.》

《그렇게 하세.》

등개의 말에 팔동과 송원서는 바위등으로 기여올라갔다.

《여기에 올라오니 도해첩냄새가 막 나는것 같은걸.》

팔동이 풀숲에 떨어진 바늘찾는 놈처럼 허리를 구부정해가지고 하는 말이였다.

《주의하라구. 도해첩냄새가 아니라 자네 허리춤에 달린 호리병이 기울어져 막걸리가 새여나오는 냄새일세.》

바위아래서 그들을 바라보던 등개의 말이였다.

《뭐라구? 이크, 젠장… 다 흘렸구나. 이놈 거부기가 내 술을 훔쳐먹었구나!》

팔동은 짐짓 성이 난듯 거북바위를 발로 쾅하고 내리밟았다.

그러나 다음순간 《아이쿠!》 하면서 발바닥을 넌떡 들고 껑충껑충 뛰였다.

《찾으라는 도해첩은 안 찾고 웬 뜀박질이야?》

등개의 물음에 팔동은 대답할 짬이 없는듯 했다.

그 모양을 보다못해 송원서가 《도해첩을 찾게 되였다니 너무 좋아 저러는 모양이구려.》 하고 한마디 했다.

그러거나말거나 팔동은 지붕우에 올라간 닭처럼 한발을 들고 널뛰기를 하더니만 어느결엔가 뚝 멈춰서서 움직이지 않는것이였다.

《왜 그러나?》

팔동이 고개를 돌린쪽을 바라보니 거기서는 처녀들이 불무지곁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있었다.


달밝았다 계명산천에

달밝았다 강강수월래

달밝았으면 오늘 밤도

승전이라네 강강수월래

나는 좋네 나는 좋네 강강수월래


석달열흘 기다려도

나는 좋네 강강수월래

우리 님은 승전하여

오실테니 강강수월래

간다간다 나는 간다 강강수월래

님따라서 나는 간다 강강수월래


손에 손을 맞잡은 꽃같은 해녀들이 삼보녀의 선창에 맞추어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있었다.

달밤이면 왜적의 침입을 경계하여 부르군 하던 《강강수월래》가 이제는 돌산도의 해녀들속에서도 인기를 끄는 노래가락이 되였다.


바늘 가는데 실 안 가랴 강강수월래

열두바다 건너 나는 간다 강강수월래

너 죽으면 내가 있다 강강수월래

내 죽으면 하늘 있다 강강수월래

어서 싸워라 나라일에 강강수월래

죽은 주검에 꽃이 핀다네 강강수월래


팔동은 아예 넋을 잃고 그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송원서도 그런 춤판을 가까이에서 목격하기는 처음이였던지라 불빛에 얼른얼른 드러나는 처녀들의 얼굴과 세련된 춤가락들을 얼이 빠진 사람처럼 여겨보고있었다.

바위아래서 그들을 바라보고있던 등개는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리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반원형으로 주위를 둘러싼 컴컴한 숲은 등개의 시야를 차단해버리였다.

문뜩 등개는 지꿎은 시선이 자기의 등뒤를 찌르는듯 한 감촉을 받았다.

홱- 하고 몸을 돌려 그쪽을 보았으나 거기에는 어둠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도 신경을 도사린탓인가 등개에게는 바람이 나무가지를 스치는 소리까지도 무심히 들리지 않았다.

(가까이 왔구나.)

등개는 그것을 육감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등개의 모든 감각기관들이 그렇다고 알려주고있었다.

(때가 되였다!)

등개는 한두걸음 옆으로 물러서더니 거북바위의 밑에 쭈그리고 앉았다.

큰돌을 하나 들춰내고 작은 돌을 꺼내고 한웅큼씩 모래를 긁어내였다. 다시 돌판을 들어내고 또 작은 돌을 끄집어내였다.

마침내 등개의 손에 무엇인가 잡히는 느낌이 왔다.

(이것이다.)

등개는 손에 잡힌 그것을 꺼낼가말가 잠간 망설이였다. 온 몸의 신경은 등뒤 한곳에만 집중되여있었다.

《뭐하나?》

갑자기 등뒤에서 팔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뜰 놀란 등개는 얼결에 도해첩을 쥔채로 손을 쑥 뽑았다.

《야, 도해첩이다! 도해첩을 찾았구나!》

송원서가 달려와 등개를 얼싸안았다.

《찾았다!》

송원서의 팔에 감겨 허공중에 들린 등개는 《찾았다!》 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팔동이까지 달라붙어 셋은 그만 모래불에 나딩굴었다.

《하하하!》

《끝내 찾았어! 우리가 먼저 찾아냈어!》

《제길, 이런 곳에 숨겨져있는걸!》

《이럴 때 한잔해야지.》

팔동은 허리춤에 달려있던 호리병을 떼여 등개에게 내밀었다.

《한모금 쭉 내게.》

그러나 등개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럴줄 알았어. 자넨 원래 금주가니까. 원서, 자넨?》

송원서도 도리머리였다.

《제길, 기쁜 날에 다들 왜 이래? 그럼 할수 없지.》

팔동은 호리병의 마개를 열어 한모금 마시고는 다시 닫았다.

《자, 이젠 어떻게 한다?》

팔동이 묻는 말이였다.

《어떻게 하긴, 바쳐야지. 그래서 찾은게 아닌가.》

팔동의 말이 리해가 안되는듯 송원서가 물었다.

《그건 그래.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 안 와서 그래.》

팔동의 말에 송원서는 더욱 의문스러움을 나타내였다.

《기다리다니, 누굴? 누가 여기로 오나?》

그때 등개의 큰 목소리가 울렸다.

《여보게들, 저기 왔어!》

세사람의 눈길은 동시에 등개의 손끝에 쏠리였다.

등개의 손끝이 가리킨 나무숲 어두운 곳에서 딱딱 하는 단조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을 씹으며 아까부터 그들을 노려보고있던 사나운 짐승이 이발을 드러내고 나오는듯싶었다.

조금씩, 조금씩 불빛에 모습이 드러났다.

《으악!》

팔동은 너무 놀라 기절할 지경이였다.

온통 시커먼 옷을 걸치고 얼굴에는 무서운 귀신탈을 걸친 괴물 같은것이 절뚝거리며 천천히 다가오고있었던것이다. 딱딱 하는 소리는 그의 지팽이끝에서 나는 소리였다. 꼭 금방 무덤을 뛰쳐나온 도깨비의 형상을 한 회남이는 곧바로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있었다.

등개는 손에 들고있던 도해첩을 등뒤로 감추었다. 그앞을 원서가 막아서고 또 그앞을 팔동이 막아나섰다.

《죽고싶지 않거들랑 도해첩을 내놔라!》

가까이 다가온 절름발이의 입에서는 듣기만 해도 오싹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튀여나왔다.

이때 팔동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절름발이! 네가 담도 크구나. 제발로 예까지 찾아오다니!》

그러나 회남이는 팔동이의 말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의 온 정신은 등개의 뒤에 감추어진 도해첩에만 쏠려있는듯 하였다.

회남은 팔동에게 입을 다물라는 신호로 손을 들어보이고나서 천천히 등개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화가 부쩍 동한 팔동은 《이 자식이!…》 하고 소리를 지르며 회남에게 달려들었다.

《헉!》

명치끝을 주어맞은 팔동이 회남의 어깨를 간신히 붙잡아 넘어지진 않았으나 얼마를 못 버티고 스르르 미끄러져내렸다.

그것을 본 송원서의 등골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회남이 한발자국 다가가면 등개와 송원서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회남이 잔등에 지고있던 칼집에서 날이 시퍼런 환도를 쑥 뽑아들었다.

《이리 내놔! 그럼 목숨은 살려주겠다!》

그러나 등개와 송원서는 입들이 얼어붙은듯 아무 말도 못하였다.

《셋까지 세겠다.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둘 다 목없는 귀신이 될줄 알아라. 자, 하나!…》

그러면서 회남은 등개와 송원서의 눈앞에 칼날을 이리저리 그어보이며 위협했다.

《둘!…》

등개와 송원서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긴장한 눈빛들이 오고갔다.

《셋!》

갑자기 등개가 등뒤에 감추었던 도해첩을 거북바위꼭대기로 집어던졌다.

회남의 눈길이 순간 그쪽으로 쏠리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송원서가 회남에게로 날아들어 칼을 쥔 그의 손목을 발길로 냅다 걷어찼다.

쟁강- 하고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환도는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이어 주먹질과 발길질이 시작되였다.

등개는 얼른 거북바위우로 뛰여올라 도해첩을 찾아들었다.

원서와 회남은 필사적으로 격투를 벌리고있었다.

송원서가 밀리는게 알렸다. 회남의 타격에 원서가 입술이 터진것 같았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위태로울것 같았다.

《원서, 뛰자!》

등개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바위를 훌쩍 날아내리며 회남의 동가슴을 모두발로 내질렀다.

난데없이 날아든 등개의 타격에 회남은 가슴을 싸쥐고 데구루 굴렀다.

《어서 뛰자!》

등개는 얼떠름해있는 송원서에게 다시한번 큰소리를 질러대고는 쓰러져있는 팔동이를 어깨에 둘쳐멘 다음 바다쪽을 향하여 냅다 달리기 시작하였다.

환도를 주어든 회남이가 그들을 쫓아왔다.

《서라, 서지 못해?!》

딱딱- 급하게 울리는 절름발이의 지팽이소리가 무시무시하게 들려왔다.

《저기 환한데로 나가자!》

등개는 송원서를 끌고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륜무를 추고있는 해녀들의 불무지를 향해 죽기내기로 달음박질쳤다.

《사람살려라!》

창피를 무릅쓰고 소리를 지른것은 송원서였다.

불무지를 돌며 춤을 추고있던 해녀들은 숲속에서 갑자기 터져나오는 비명소리에 놀라 그쪽으로 얼굴들을 돌리였다.

《무슨 일이야?!》

《무슨 소리가 났는데…》

저저마다 홰불을 하나씩 쳐든 해녀들이 등개와 송원서를 향해 마주 달려왔다.

《으악!》

뭣에 발목이 걸린 송원서는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공중제비를 한번 하더니 해녀들의 발치에 나가떨어졌다.

《무슨 일이예요?!》

처녀들이 우르르 몰려와 에워쌌다.

얼굴에 온통 땀투성이, 모래투성이가 되고서도 연방 뒤를 돌아보던 송원서는 더는 절름발이가 따라오지 않는다는것을 확인하자 《후유-》 하고 한숨을 내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

일부 왁살스러운 해녀들이 다우쳐물어댔다.

송원서는 말할 기력도 없는듯 저쯤에서 숨을 헐떡거리고있는 등개에게 손짓을 해보였다.

《도해첩을… 찾았…소.》

등개는 품속에서 도해첩을 꺼내여 삼보녀에게 넘겨주고는 아예 모래바닥에 퍼더버리고 주저앉고말았다.

《도해첩을 찾았다구요?!》

와- 하고 해녀들이 몰려들었다.

《어디 보자, 도해첩이란게 대체 뭐야?》

《어떤 물건인데 사람을 그렇게도 맘고생을 시키다니…》

해녀들은 송원서와 등개는 제쳐놓고 삼보녀의 손에 들린 도해첩을 보겠다고 저저마다 성화였다.

그러나 삼보녀는 도해첩을 높이 쳐들고 《얘들아, 가만있어. 함부로 보는 책이 아니야. 이건 나라의 국보란다.》 하고 침을 박았다.

국보라는 말에 해녀들은 일시 즘즘해졌다.

《삼보녀야, 그게 바로 네게 억울한 루명을 들씌웠던 물건이냐?》

《그래, 바로 이 도해첩이야.》

《그럼, 이젠 삼보녀가 루명을 벗을수 있겠구나!》

《아무렴, 삼보녀가 누구라구!》

《그래서 이들도 도해첩을 찾고 여기로 곧장 달려온건가?》

그 말에 등개와 송원서는 동시에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도해첩을 막 찾았는데 글쎄 탈바가지를 쓴 회남이가 불쑥 나타나 빼앗으려는게 아니겠소. 여러명이나 끌고 왔는데 우리 셋이서 어디 당할수가 있어야지. 그래 불이 환한 여기로 막…》

송원서의 너스레에 해녀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였다.

《거짓말, 그 얼굴에 다 씌여져있는데요. 절름발이가 무서워 뛰여왔지요?》

원서는 달아오르는 얼굴을 매만지며 어둠이 다행이라 생각하는듯 했다.

《절름발이따위가 뭐가 무섭다고 범 본 노루처럼 공중제빌 다 한담, 호호호.》

해녀들은 저저마다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우습게 볼게 아니요. 이건 정말이요.》

송원서의 변명에 처녀들은 더 크게 웃었다.

《자, 얘들아! 그만들 웃구 〈강강수월래〉나 한판 또 추어보지 않을래? 탈바가질 썼다는 귀신들이 천리만리로 달아나게!》

삼보녀의 말에 해녀들은 와- 하고 환성을 올렸다.

《옳다옳다. 도해첩도 찾았겠다… 이렇게 기쁜 날에 춤을 추지 않으면 또 언제 춤을 추겠니! 얘들아, 어때?》

휘파람소리가 울리고 등개와 송원서 그리고 아직 정신을 덜 차린 팔동이와 불무지를 둘러싸고 해녀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빙빙 돌기 시작했다.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간다간다 나는 간다 강강수월래

님따라서 나는 간다 강강수월래

바늘가는데 실 안 가랴 강강수월래

열두바다 건너 나는 간다 강강수월래


달밤의 륜무는 오래도록 계속되였다.

어둠속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서있던 회남은 고개를 가로흔들더니 지팽이를 끌고 다시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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