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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회

15. 덫


그날 새벽이후로 회남이는 종적을 감추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회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심히 훼손된 조상의 무덤들을 그날 아침중으로 다시 손질하고나서 때아닌 때에 제사를 올리게 되였다.

회남이를 놓쳐버린 마을사람들은 저저마끔 분개해하였다. 이제 붙잡기만 하면 하나 남은 그의 성한 다리까지 마저 분질러버리겠다고 윽윽하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였다.

어쨌거나 조상의 령혼을 욕보였다고 마을사람들이 생각하는 회남이의 얼굴을 볼수 없었다.

웃마을과 아래마을에서는 회남이가 왜적의 간자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관포만호 송이첨의 아들이 부산포에서 목격했다는 그 절름발이가 바로 마을에서 돌아치던 회남이가 분명하다는 말까지 보태여져 많은 사람들이 회남이가 틀림없이 부산포쪽으로 달아났을것이라고 추측들을 하고있었다.

이번에 파헤쳐진 무덤들중에는 곡진장주에게 장공일을 배워주었던 전 장주의 무덤도 있었다. 그러니 곡진장주가 거기에 묻어놓았던 도해첩을 회남이가 파내가지고 달아나버렸다는 말의 신빙성이 꽤 있어보였다.

조금 있더니 그날 새벽에 마을 뒤산 묘지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절름발이를 직접 보았다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때라 똑똑히는 못 보았는데 별스레 마당에서 강아지가 끙끙 울길래 밖에 나갔다가 뒤산 묘지쪽에서 뭔가 시꺼먼 형체들의 움직임을 느꼈다는것이였다. 잠에 취해 허깨비를 본 모양이라고 여기면서 그땐 그냥 스쳐지났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틀림없이 그때 그 허깨비가 다리를 저는것 같았다는것이였다. 다리저는 허깨비란 올데갈데 없이 회남이란 말처럼 들리였다.

그리하여 도해첩은 분명 전 장주의 무덤에 있었고 도해첩을 찾아낸 회남이는 그것을 안고 부산포쪽으로 내뺐다고 사람들은 믿게 되였다.

마을사람들의 모든 걱정은 삼보녀에게로 쏠리였다. 가뜩이나 삼보녀를 아니꼽게 여기고있는 우후인데 도해첩까지 없어졌다는것을 알게 되는 날이면 마침이다 하고 삼보녀를 잡아먹을듯이 길길이 날뛸게 뻔했기때문이였다. 등개의 아버지를 반병신으로 만들었던 리지팡이에게 삼보녀까지 당하게 하고싶지 않은게 사람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도해첩과 관련된 소리가 일체 마을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누구나 신경을 썼다.

하지만 소문이란 언제까지나 한자리에서 머물지 않는 법이니 어느때건 발없는 이 말이 우후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될것은 뻔한 일이였다.

그때문에 팔동이까지도 얼굴빛이 시꺼멓게 죽어있었다. 삼보녀를 감시하다 도해첩을 빼앗아올데 대한 령을 받고 장공마을에 들어왔던 팔동은 이제 우후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여 자기에게 호된 추궁을 하게 될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있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였다. 잃어졌다고 소문이 난 그 도해첩을 꼭 다시 찾아낼 방도가 있어야 하였다. 하지만 그런 방도가 팔동이의 머리에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팔동의 얼굴에는 먹장구름이 덮인듯 어두운 그늘이 가셔질줄 몰랐다.

바로 그때, 팔동이의 마음을 틔워주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삼보녀의 집에서 도해첩을 숨겨둔 장소가 표기된 략도가 나타난것이였다.

그 소식을 가져온 사람은 다름아닌 등개였다.

《팔동이, 략도… 략도를 찾았네!》

《뭐, 략도라니… 무슨 략도말인가?!》

《도해첩을 숨겨둔 장소가 표시된 략도말이야!》

등개의 말에 팔동이는 한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 략도가… 어디… 어디서 찾았게?》

《삼보녀네 집에서지 어디긴 어디겠나.》

등개는 손에 들고있던 짐승가죽쪼박을 팔동이의 눈앞에 흔들어보이였다.

《어서… 어서 좀 보자구!》

팔동이는 략도를 받아들자마자 쭉 펴보았다.

략도를 들여다보는 팔동이의 낯빛은 점점 심각해졌다.

《이게 뭐야?! 그러니 도해첩을 감춘 장소가… 장주의 무덤이 아니란 말인가?!》

팔동은 놀란 표정으로 등개를 바라보았다.

《보면 모르겠나! 도해첩을 숨긴 장소는 장주의 무덤이 아닐세. 전 장주의 무덤은 표시조차 안되여있어.》

《그럼 회남이가 파갔다는 그 도해첩은 뭔가?》

등개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눈만 슴벅거리고있는 팔동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헛소문일뿐이야. 도해첩은 애당초 거기에 있지도 않았으니까.》

팔동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숨만 씩씩 내쉬고 들이키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헛소문이 분명하지? 그런걸 제길, 내 이럴줄 알았다니까.》 하며 자기 한손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치는것이였다.

《공연히 가슴을 조였댔어. 회남이가 전 장주의 무덤에서 도해첩을 파내갔다는 소리는 다 뜬소문이였네.》

《그럼 뒤산의 무덤들은 어떻게 된건가?》

팔동이의 물음에 등개는 한동안 갑자르며 대답을 못하였다.

《좌우간 누군가 무덤들을 들친건 사실이야. 도해첩을 찾는게 우리뿐이 아니라는거지.》

《자네 그 말은…》

《그렇네. 분명 누군가가 우리 주위에서 맴돌고있어. 대충 짐작은 가. 우린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놈을 꼭 잡아내야만 하네.》

등개의 말에 팔동은 놀라는 눈치였다.

《짐작이 간다구? 대체 그게 누군가? 내가 아는 사람인가?》

팔동은 숨도 한번 들이쉬지 않고 내처 물음을 던졌다.

《글쎄, 아직은 추측에 불과할뿐이네. 확실치 않으니 말해줄수 없구만. 괜한 사람 오해하게 하면 큰일이거던. 그놈이 제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게 만들어야 해.》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게 한다구?》

《그래.》

등개는 팔동이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을 하기 시작했다.

팔동의 얼굴에 의혹의 빛이 짙어졌다.

《그러니 자네 생각엔 그놈이 분명 제발로 나타난다는거지?》

《그렇다니까.》

《놈이 정체를 드러내리라고 어떻게 확신하나?》

《놈에겐 시간이 없네. 도해첩이 여기 돌산도를 떠나 수영으로 들어가고나면 도해첩을 손에 넣기가 그만큼 힘들어질게거던. 때문에 어떻게 하나 여기 돌산도에서 도해첩을 쥐려 할거야. 헌데 도해첩의 략도를 찾았다는 소문이 이미 난 이상 도해첩을 빼앗을 기회가 오늘밖에 없다는것을 놈도 짐작할거란 말이야.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놈은 분명 오늘 밤에 움직이려 할걸세.》

《자네 말을 듣고보니 그럴법하구만.》

팔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등개의 말에 동감을 표시하였다.

《그러니 팔동이, 자넨 아까 내가 이야기한대로 달이 뜨거들랑 원서를 데리고 거북바위쪽으로 나와주게나. 난 이길로 삼보녀의 집에 다녀올테니.》

《알았네. 걱정말고 다녀오라구.》

뜨거운 눈빛으로 마주보던 두 젊은이는 서로 고개를 크게 끄덕여보이고는 헤여졌다.

어두운 나무그늘속에 숨어있던 차거운 바람이 삼보녀의 집을 향해 큰걸음을 걷는 등개의 바지가랭이며 팔소매에 매달려 장난질을 치다가 달아나버리였다.

《있어?》

삼보녀의 집앞에서 한번 소리친 등개는 문을 쑥 열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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