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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12. 서낭당에서 찾은 흔적


돌산도 장공마을에서 맞은켠쪽 천마산포구로 가느라면 동구길어구에 제일먼저 눈에 뜨이는것이 《천하대장군》이라는 글이 씌여진 돌장승이다.

언제 누가 거기에 다듬어 세워놓았는지는 알수 없어도 마을을 지켜준다는 기원과 오랜 숙망으로 하여 사람들은 그 돌장승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종일 찌는듯 한 해빛에 온몸을 까맣게 태우고 바다로부터 불어치는 온갖 눈비바람을 고스란히 한몸에 맞고 서있는, 이제는 긴긴세월의 풍화작용으로 구멍까지 숭숭 나기 시작한 돌장승이 제법 섬사람들과 친숙해져 언제나 커다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인자스런 얼굴로 자기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대해주군 한다.

그옆에 어지간하게 솟은 돌무지가 있는데 장공인들은 그것을 《서낭당》(성황당)이라고 부른다. 이곳을 지날 때는 어부든 장사치든 의례히 돌무지우에 돌 세개를 주어다가 얹어놓고 침을 세번 뱉는다.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해주소이다.》

《빨리 마파람이 잦게 하여주소이다.》

해녀들도 가는 길이 아무리 바빠도 돌 한개는 슬쩍 집어던지고 간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진 돌이 무지를 이루고 누구나 그에 눈길을 보내고있어 이제는 장공마을의 입구에 선 돌장승과 서낭당이 돌산도에서는 이 고장의 징표이면서도 하나의 자연경관을 이루었다.

그만큼 서낭당과 돌장승은 신령스러운 위엄을 띠고 장공마을의 수호신답게 늘 선하고 착한 눈빛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안정을 가져다주고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돌장승-《천하대장군》과 서낭당이 하루밤사이에 파헤쳐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팔동이 통지를 받고 거기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토록 위엄있고 신령스럽던 돌장승이 자빠져있고 서낭당돌무지는 헤쳐져 길가 한쪽켠에까지 널려져있었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돌장승을 자빠뜨리려고 발치의 흙을 마구 파냈으며 나중엔 서낭당 밑바닥까지 싹 들춰냈다.

팔동은 돌장승과 서낭당이 왜 이런 모욕을 받았는지 알수 없었다. 마을의 수호신을 넘어뜨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동요가 일고 불안한 풍설이 돌며 온통 뒤숭숭하게 만들려는 나쁜 놈들의 책동같았다.

처음에 팔동을 찾아온 삼보녀는 입을 벌린채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얼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삼보녀!》

팔동의 부름에 삼보녀는 흠칫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니?》

《저… 저기… 가봐.》

《무슨 일이야? 어디 편치 않아?》

《서낭… 당에…》

《엉?》

삼보녀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떠듬떠듬 말을 하였다.

그제서야 팔동은 와뜰 놀라며 삼보녀를 뒤에 두고 급히 뛰여갔다.

(이게 무슨짓이야?! 어느 개자식이 간밤에 이런짓을 했을가?)

팔동은 길바닥에 머리를 박은채 넘어져있는 돌장승부터 보았다.

돌장승이 얼굴을 땅에 박고서 웃는지 우는지 모를 이상야릇한 낯색을 하고있었다.

그때 《저…》 하는 삼보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삼보녀는 민망스러운듯 저고리고름만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다가 말끝을 흐리였다.

《왜 그래? 뭔가 내게 할 말이 있는것 같은데 사람속 궁금케 말고 어서 말해.》

안달이 나하는 팔동을 바라보던 삼보녀는 불쑥 이런 말을 꺼내는것이였다.

《저쪽으로 좀…》

(?!…)

팔동은 영문을 몰라하며 그가 가리키는 마을쪽으로 제 먼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서낭당에서 퍼그나 떨어진 마을 안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을 때 또다시 《저…》 하는 삼보녀의 목소리가 팔동이를 멈춰세웠다.

《도대체 왜 그래?》

팔동은 머리를 돌려 삼보녀를 바라보았다.

삼보녀는 겁에 질린듯 걸어온 길 뒤쪽과 숲이 우거진 길모퉁이쪽을 번갈아가며 살펴보는것이였다.

《오늘은 꼭 귀신한테 홀린 사람처럼 이상해.》

정말 삼보녀는 귀신한테 홀린 사람같았다. 아까 넘어진 돌장승을 볼 때부터 낯빛이 하얗게 질려가지고 지금까지도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며 안절부절하는데 그게 대체 무슨 영문때문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씨원하게 말을 해보라니까. 이거야 어디 속이 답답해서 견딜수가 있나.》

팔동은 이렇게 소리치고싶었다.

《무엇때문인지 어서 말을 해봐.》

삼보녀는 입술을 깨물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결심을 내린듯 입을 열었다.

《돌장승을 넘어뜨린 사람 누군지 알것 같애요.》

삼보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그만 팔동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엉, 그걸 어떻게 알아? 그놈이 누군데?》

《돌장승을 보는 순간 알았어. 분명 그가 그랬을거예요. 그밖에 다른 사람은 없어요.》

《그라는건 대체 누구를 보구 하는 소리야?》

《절름발이…》

이렇게 말해버린 삼보녀는 혹시 그가 가까이에서 제 말을 엿듣고있지나 않나 하는 겁먹은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좀 자세히 말해, 어째서 회남이가 돌장승을 넘어뜨렸는지…》

팔동의 물음에 삼보녀는 겁기가 가득 어린 목소리로 두서없이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바로 엊저녁에 그가 나를 찾아왔댔어요. 아니, 말하자면 우리 집 울바자곁에서 내가 먼저 그를 알아봤어요.》

삼보녀의 이야기는 흥미있었다. 확실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절름발이 회남이는 의심이 가는 작자였다.

《그러니까 말을 요약해보면 엊저녁때 회남이가 찾아왔… 아니, 울바자곁에 있는 회남이를 발견하였고, 그가 이말저말 꺼내던 끝에 등개와 토론했다던 도해첩찾는 방도를 제입으로 설명해줬고, 나중에는 할아버지가 자주 가군 하시던 곳이 어디 어디냐고 물어보아 서낭당일수도 있다는 말이 우연히 튀여나왔다, 그 말이지?》

《응, 거기다가 돌장승에 새똥이랑 묻으면 닦아주던 얘기까지 해줬어요.》

삼보녀의 말을 들은 팔동의 눈앞에는 돌장승의 밑바닥을 파내고있는 절름발이 회남이의 모습이 환영되며 안겨왔다.

…달빛을 등지고 부지런히 흙을 파제끼는 어둠속의 사나이, 이미 옆에 있는 서낭당돌무지는 밑바닥까지 죄다 파헤쳐진 상태고 이제는 말 못하는 돌장승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그것을 흙바닥에 넘어뜨린다. 그리고는 감자밭의 메돼지처럼 여기저길 들쑤시며 뭔가를 찾고있다. …

(에이, 내가 무슨 생각을…)

팔동은 애써 머리를 흔들어 그 모든 생각을 지워버리려 했다.

(회남이가 등개에게서 도해첩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은것은 사실 아닌가. 가만, 그런데 왜 그런 일을 하필 남의 눈을 피해 밤중에 했을가? 혹시 돌장승과 서낭당에 손을 대는것을 사람들이 반대해나설가봐… 차라리 그를 만나 속씨원히 물어보자.)

팔동은 겁에 질려있는 삼보녀를 달래며 말했다.

《이 일은 내가 알아볼테니 어서 집으로 가봐.》

그러나 삼보녀는 조금도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는듯 했다.

《할아버진 늘 돌장승이 넘어지면 불행이 닥친다고 외우군 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돌장승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착은 남달랐어요. 내가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할아버진 돌장승앞에까지 마중나오시군 했는데 먼발치에서 바라보느라면 돌장승과 할아버지는 서로 친한 사이같았거든요. 할아버지가 없는 지금에 와서 돌장승까지 넘어졌으니 놈들에게 붙잡혀간 할아버지에게 꼭 무슨 불길한 일이 생긴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요.》

비로소 팔동은 넘어진 돌장승을 보고 그렇게도 불안스러워한 삼보녀의 마음을 리해할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무 일 없으실거야. 이제 제꺽 돌장승을 바로세우지. 그러니 마음을 가라앉히라구.》

《돌장승을 넘어뜨린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그놈을 붙잡아 혼뜨검을 내줘야 해.》

삼보녀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팔동은 집쪽으로 총총히 걸음을 옮기는 삼보녀의 뒤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 집문안으로 그의 모습이 사라져버리자 오던 길로 돌아섰다.

(도해첩을 찾느라고 서낭당을 뒤졌구나. 헌데 감히 돌장승까지 넘어뜨렸단 말이지. 이자식, 가만두지 않을테다!)

그는 씩씩거리며 다시 서낭당쪽으로 씨엉씨엉 걸었다. 때마침 그쪽에서 회남이가 지팽이를 짚고 마주 오고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앞을 막아나선 팔동은 다짜고짜 회남이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자네짓이지? 바른대로 말해.》

그러나 회남이의 팔뚝힘이 만만치 않았다.

《이걸 놔! 미쳤나?》

회남이는 가볍게 팔동이의 손을 치워버렸다.

그 서슬에 팔동은 하마트면 넘어질번 하였다.

《내가 돌장승을 자빠뜨리는걸 자네 눈으로 봤어? 왜 애매한 사람에게 함부로 루명을 씌워?》

《자네밖에 그럴 사람이 또 있어? 곡진장주가 늘 거기 가군 했다는 말을 듣고서 도해첩을 찾으려고 자네가 거길 뚜졌지? 서낭당을 파헤친것도 모자라 돌장승까지 넘어뜨려? 이제 그러다 천벌을 받아!》

《근데 왜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성성하지? 정말 내가 서낭당을 파제끼고 돌장승까지 넘어뜨렸다면 천벌이 내려서 사지를 뻗었을텐데 왜 이렇게 성성한가 말이야! 돌장승얼굴에다 밀가루 발라놓고 국수값 내라 한다더니 동다리(조선봉건왕조시기에 무장들이 입던 겉옷의 일종. 두루마기와 비슷하나 등뒤 아래가 터졌다.)나 걸쳤다고 막 덮어씌우네그려.》

팔동은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것 봐라, 꽤 당당하게 나오는데… 이실직고하고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군. 어디 그래 봐라.)

《이제 어떤 천벌이 쏟아지는지 똑똑히 알게 될게다.》

팔동이는 마지막말마디에 힘을 주고나서 서낭당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마음대로 해보게. 하지만 날 보는 그런 눈초린 감아버리게.》 하는 회남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서낭당에 가니 이미 군사들과 마을사람들이 넘어진 돌장승을 제자리에 들여세우고 흐트러진 돌무지를 정리하고있었다.

팔동은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가만, 이게 뭐야?!)

팔동이는 돌장승뒤에 있는 큰 나무곁에서 이상한 흔적을 발견하였다. 엽전처럼 동그란게 땅에 꼭꼭 찍혀 자리를 내였는데 이슬에 젖은걸로 보아 간밤에 생긴 자욱이 분명하였다.

팔동은 돌장승곁에서 땀을 닦고있는 한 군졸을 소리쳐불렀다.

《방금 여기 절름발이가 왔다갔지?》

그 군졸은 《그렇소이다. 아까부터 저기에 서있더랬는데 우리가 돌장승을 세우고나니 보이지 않았소이다.》라고 말하는것이였다.

《그가 이 나무밑에 서있었나?》

그 물음에 군졸은 뒤더수기를 벅벅 긁었다.

《글쎄… 돌장승을 옮기느라 잘 보진 못했는데 제 생각엔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던것 같소이다.》

《분명 그랬나?》

《예, 그렇소이다. 분명 여기까진 오지 않았던줄 아오이다.》

《음- 아, 알았네. 가보라구.》

군졸은 허리를 한번 굽히고 동료들속에 섞여들었다.

《그러니 자네 생각에는 회남이가 거짓말을 하고있다는건가?》

지금까지 팔동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등개가 되묻는 말이였다.

《그렇네. 분명 내가 본것은 지팽이자국이였네. 낮에 왔을 때에는 그 나무밑에까지 오지 않았다는데 그걸 봐선 간밤에 거기에 왔던것만은 틀림이 없어. 헌데도 자기는 아니라고 딱 잡아떼겠지. 속이는게 아니면 뭐겠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나?》

팔동의 말은 등개에게 많은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회남이! 그는 왜 자기가 한 일을 터놓지 못하는가. 또 왜 도해첩을 혼자 몰래 찾으려고 하고. 혹시 그가 도해첩을 찾는것이 다른 목적때문이 아닐가? 회남이… 대체 그는 어떤 사람인가?)

등개는 회남에 대해 빨리 알아봐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팔동이, 사람을 수영으로 띄워서 회남이에 대해 우리가 알고있는 모든 자료들을 다시 확인해야 하겠네. 정말로 그가 수군에서 배를 탄게 맞는지, 그의 다리가 정말로 왜적과의 싸움에서 그리된것인지. 이것만 알아내면 진실이 밝혀질거네.》

《좋네, 그렇게 하지.》

등개와 팔동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세나. 래일 아침일찍 자넨 또 배무이장에 나가야 할테지?》

《그야 물론. 에에, 섬에 같이 있으면서 삼보녀를 만날새도 없네.》

《래일 삼보녈 보면 인살 전해주지. … 내가 없었다면 자넨 어찌될번 했나? 이담에 막걸리 한사발, 아니 두사발 사는걸 잊지 말라구.》

팔동은 지껄이며 발치에 떨어진 나무꼬챙이를 하나 집어들고는 휘- 멀리로 던져버렸다.

《갑자기 왜 한사발이 두사발로 불어나나?》

《글쎄, 여러말말구 두사발 내라면 공손히 내게. 난 혼자구 자네는 약혼녀까지 두명이니까 내가 두사발 받아먹는거야 응당한거지.》

《차라리 세사발 받으라구. 고모님 몫까지 합쳐서 말이야.》

《아차! 옳아, 고모님생각을 못했군. 정 그러면 고모님 섭섭치 않게 세사발을 마셔줘야지. 가만, 뭐 세사발? 이거 사람을 어떻게 보구 그래? 내가 뭐 죽은 사람인가!》

《에끼, 이 사람아! 세사발 받는게 무슨 죽은 사람… 누워서 받는게 죽은 사람이지. 싫으면 그만두게나.》

《아니, 두말말고 세사발로 하세!》

《하하하!》

겨끔내기로 터져나오는 두 사나이의 웃음소리가 해변가를 지나 소나무숲을 거쳐 다시 세운 돌장승이 지키고 서있는 장공마을쪽으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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