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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8. 투옥


등개가 수영에 도착했을 때에는 한낮이 퍽 기운 뒤였다. 여느때 같으면 번을 서는 군교 몇을 내놓고는 수영이 조용했을무렵인데 오늘은 왜서인지 그렇지 않아보였다.

높다란 담에 둘러막히우긴 했지만 그안에서 일어나는 번잡스런 소음은 여기 행길에까지 그대로 새여나오고있었다.

등개는 수영의 대문을 몇걸음앞에 두고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할가?)

분명 삼보녀가 붙들려왔을것은 뻔한노릇이였다. 명목상으로야 돌산도급습건에 대한 조사라고 하겠지만 우후의 기본목적이 거기에만 있지 않다는것은 등개가 생각하건대도 헨둥한것이였다.

우후는 원래 통제사 리순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통제사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나 다 아니꼬와하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팔동이와 등개가 군공을 세웠다 하여 통제사가 군교로 발탁시키자고 하니 제일 강하게 반대해나섰던게 다름아닌 우후 리봉태였다. 아무리 전란시기라고 하여도 신분을 거스르면 안된다는게 그의 주장이였다. 량반과 상놈의 하늘같은 차이를 분명히 해두지 않는다면 장차 량반이 상놈에게 업수임을 당할수 있다는것이였다.

그 말에 통제사는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그대는 어찌하여 작은것만 보려 하고 큰것은 보려 하지 않는가!》

무도한 왜적이 대군을 일으켜 조상의 뼈가 묻힌 이 땅을 유린하여 나라가 국난을 당하고있는터에 한가하게 신분이나 따지고있느냐 하는 질책이였다.

《하오나…》

《우후는 내 말허리를 꺾지 말라. 왜적들과의 간고한 싸움을 겪으며 수군의 많은 기둥감들을 애통하게 잃어버렸다. 허나 이제 치르어야 할 싸움이 더 많거니와 그 가렬성에 있어서도 전에 못지 않을것이다. 헌데 싸움배를 지휘할 장수가 부족하니 왜적들에게 조금만 참아달라고 구걸이라도 하겠단 말인가! 전란을 당하여 남녀로소 가림없이 왜적을 치겠다고 떨쳐나선 마당에 능력이 있는 사람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그래도 우후는 숙어들지 않는 기색이였다. 다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뿐이였다.

그때부터 통제사에 대한 모든 불만은 그가 군교로 임명한 팔동이와 등개에게 고스란히 쏟아져내렸다.

통제사도 한산도에 나가있는 마당에 우후 리봉태의 전횡을 막을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는 리지팡이로 불리우던 그 시절처럼 여전히 힘이 약한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가 과거에 등개의 아버지를 때려 반병신을 만들어놓은 리지팡이라는것을 등개를 제외한 돌산도사람 누구나가 다 알고있는 사실이였다.

그것을 알게 되면 큰일을 칠것 같아 강씨는 아직 조카에게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피줄은 속이지 못한다고 우후에 대한 등개의 증오심은 뿌리가 깊은것이였다.

전에 삼보녀를 우후가 끌어갔을 때에도 등개는 당장 우후를 죽여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였었다. 아마 강씨와 곡진장주가 말리지 않았다면 등개는 우후의 목을 베던지 무슨 결딴이 났을것이다.

그때도 통제사가 와서야 사태는 수습이 되였다.

통제사 리순신장군이 그토록 성이 난것은 등개도 처음 보았다. 그의 노성앞에 우후는 다리마저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어디 대낮에 남의 집 귀한 딸자식을 붙들어다 제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다고 매를 들려 한단 말이냐!

통제사가 격분한것은 바로 이때문이였다.

사실 우후가 삼보녀를 넘보기 시작한것은 그보다 썩 오래전부터였다.

어쩐 일로 돌산도에 건너왔던 우후는 달밝은 밤에 해변가에 나왔다가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불무지곁에서 춤을 추는 해녀들속에서 삼보녀의 어여쁜 자태를 목격하게 되였다. 삼보녀를 제것으로 만들 우후의 궁리는 그때부터 시작되였다.

그래서 조용히 알아보니 삼보녀의 할아버지는 거북선의 건조담책인 곡진장주였고 통제사 리순신의 각별한 보호속에 있는 인물이였다. 만일 손가락이라도 하나 잘못 놀려 소리가 나는 날에는 가뜩이나 자기를 시답지 않게 보는 통제사가 가만있을것 같지 않았다.

제 욕구를 못 채워 속이 상한 우후는 늘 벌레씹은 상을 해가지고 문밖출입도 잘 안했다.

헌데 뜻밖에도 우후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통제사가 곡진이 새로 무은 거북선의 성능을 시험해보기 위해 며칠간 수영을 떠나게 되였던것이다.

우후의 낯빛에는 다시 활기가 넘쳐흘렀다.

새로 무은 거북선이 먼바다로 나가자 우후는 그달음으로 배를 타고 돌산도로 건너갔다.

우후는 돌산도 장공마을어귀에 배를 가져다붙이고 심복들을 시켜 삼보녀를 잡아오라고 호령했다. 허나 우후의 심복들은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물일하러 나갔는지 삼보녀가 집에 없었던것이다.

화가 동한 우후는 바다에 나갔으면 쫓아가서라도 삼보녀를 무조건 잡아오라고 심복들의 궁둥이를 발길로 걷어찼다.

구중녀석들이 삼보녀를 끌고 돌아온것은 저녁녘이 다되여서였다.

우후는 삼보녀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물러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눈치가 빤한 구중녀석들은 입들을 싸쥐고 키득키득 웃으면서 사라졌다.

호젓한 물결우에 떠있는 배의 갑판우에는 우후와 삼보녀 둘만이 남게 되였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삼보녀라 하옵니다.》

《너 나를 아느냐?》

《전라좌수영의 우후나으리인줄로 아나이다.》

달밤에 가만가만 울리는 삼보녀의 청고운 목소리에 우후의 애간장은 박박 타는듯싶었다.

《그럼 내 세도줄이 얼마나 든든한지도 잘 알겠다?》

우후의 그 말에 삼보녀는 대답이 없었다.

《내 말만 잘 들으면 팔자도 고칠수도 있다. 그래, 어떠냐? 오늘 밤 내 수청을 들겠느냐?》

삼보녀가 거절한것은 두말할나위도 없었다. 우후의 끈덕진 요구를 삼보녀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량반의 체면을 지키시오이다. 소녀신분이 아무리 비천하다 하오나 나으리의 수청을 드는 기생은 결코 아니오이다. 공연한 수고로 세월을 보내지 마소서.》

삼보녀의 대답은 대쪽같았다.

호락호락 굽어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었지만 이 정도로 나올줄은 몰랐던 우후였다.

《비천한 계집이 지금 누굴 가르치려드는게냐? 량반의 은총을 입어 혹여 가세라도 펴이게 되면 황송해할노릇이지 돼먹지 못하게 무슨 버르장머리냐! 네가 매를 맞아야 말을 듣겠느냐?》

그래도 삼보녀는 굽어들지 않았다.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우후의 호령이 떨어지자 구석에 숨어 우후가 노는 꼴을 지켜보고있던 구중 두명이 《예잇-》 하며 한달음에 달려나왔다.

《괘씸한 년이로다! 이년에게 버릇을 가르쳐주어라!》

우후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구중들은 매채를 꺼내들고 악-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만!》

통제사의 목소리가 울린게 바로 그때였다.

거북선을 타고 려수반도를 떠나 바다를 한바퀴 순회하고 돌산도로 돌아오자마자 우후가 잡아간 삼보녀를 놓아달라고 애원하듯 매달리는 해녀들의 말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통제사였다.

통제사의 뒤에는 등개가 서있었다. …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우후가 자기와 삼보녀 그리고 통제사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며 죄를 들씌우지 못해 애를 박박 쓰고있다는것을 등개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가 딱 번을 서는 날 돌산도가 왜적에게 침습당하는 사건이 터졌으니 참으로 일은 공교롭게 된것이다. 통제사에게 받은 모욕을 어느때든 앙갚음하려고 벼르던 우후로서는 이 사건을 통해 곡진장주를 모해함으로써 그를 적극 뒤받침해주던 통제사의 얼굴에 먹칠을 해보려고 책동할수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온 삼보녀도 가만둘리 만무하다는게 등개의 생각이였다. 그러니 삼보녀가 순순히 풀려날것은 바랄것도 못되는 일이였다.

막연한 불안감이 흉벽을 지지리 내려눌렀다.

(누구 말대로 삼보녀를 한동안 어디 숨겨두는편이 낫지 않았을가?)

하지만 한켠으로는 (뭘 잘못했기에 숨는단 말인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팔동이를 한산도로 보냈으니 곧 옳바른 처사가 있게 될것이라고 등개는 믿고싶었다.

(이제 통제사어른만 오게 되면 우후의 이 놀음도 끝장이 날테지.)

등개는 마음을 다잡고 꾹 닫겨있는 솟을대문의 둥근 쇠고리를 두손으로 쾅쾅 두들겼다.

삐거덕-

불그스레한 나무대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량쪽으로 쭉 갈라졌다.

파수를 서던 군사들은 등개를 마주보기가 무척이나 괴로운듯 얼굴을 돌리고 외면하는 눈치였다.

아마 군졸들까지도 그와 삼보녀의 관계를 다 아는듯 했다.

(그러니까 삼보녀가 벌써 잡혀와있구나.)

피가 정수리에 몰리는지 관자노리의 피줄이 풀떡거렸다.

마당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동시에 등개의 얼굴에 날아와 박혔다.

등개는 헛기침을 깇고 마당안에 한발을 들여놓았다.

처음 눈에 뜨인것은 흙바닥에 깔린 커다란 멍석이였는데 그것은 군률을 위반한자들이 생겼을 때 매를 안기기 위해 마련되군 하는 매자리였다. 하도 써본지가 오래되여 곰팡이냄새가 나던 그 멍석이 오늘은 마당복판까지 들려나와 해빛을 쪼이는데 그우에는 오늘 매자리의 주인공인듯 머리를 풀어헤친 웬 랑자가 부복하고있었다.

그 녀자의 뒤모습을 보는 순간 등개는 그만 가슴이 철렁하였다.

매채를 들고 섰던 라졸 두엇이 등개를 보고 목들을 움츠리였다.

등개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듯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렇다, 저건 틀림없이 삼보녀다! 삼보녀가 지금 매를 맞고있다!

등개는 섬돌앞으로 썩 다가갔다.

《나으리, 나으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소이까?》

그 말에 우후는 발끈 성을 내였다.

《어허, 이 발칙하고 당돌한 놈 같으니라구! 이놈, 네놈이 지금 내게 따져묻는거냐?》

몇오리 안되는 우후의 턱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렇소이다. 감히 나으리께 따져묻건대 지금 나으리는 무엇을 하고있소이까?》

등개는 쓰러진 삼보녀를 손으로 가리키며 우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어서 이놈을 썩 끌어내가지 못해!》

우후는 발을 탕 구르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등개는 끄떡도 안했다.

《다시 묻겠소이다. 나으리, 이게 대체 무슨짓이오이까?》

《뭐라구, 무슨짓? 저런 고약스런 불상놈을 봤나!… 에잇, 이놈아!》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민 우후는 옆에 있던 벼루를 등개에게 집어던졌다.

날아드는 벼루에 가슴팍을 얻어맞은 등개는 더는 참지 못하고 옆에 서있던 군졸의 손에서 매채를 뺏아들었다.

정황은 급작스레 무섭게 번져져갔다. 그냥 놔두면 등개의 손에 들린 저 매채에 우후의 골통이 박살날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옆에 있던 군졸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그만하지 못할가!》 하는 큰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눈길은 그쪽으로 쏠렸다.

《통제사나으리!…》

대문간에 서있는 사나이는 뜻밖에도 통제사 리순신이였다. 숱많은 그의 두눈섭은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고있었다.

통제사는 노한 표정을 짓고 대문간에 떡 벋치고 서있었다.

등개는 마음이 울컥해지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통제사나으리, 이거야 어디 분통이 터져 살겠소이까!)

등개의 두눈동자에는 이런 불만의 호소가 가득 실렸다.

호- 하고 한숨을 내쉬는 군사들도 더러 보였다. 통제사가 왔으니 이젠 등개와 삼보녀가 살아났다는 안도의 숨이였다.

가장 바빠난것은 우후 리봉태였다. 이렇게 갑자기 통제사가 들이닥칠줄 몰랐던 우후는 온몸에 얼음을 들쓴듯 정신이 아찔하였다.

당황해난 우후는 섬돌아래로 뛰여내려 통제사의 앞으로 황급히 다가왔다.

《통제사대감…》

《저놈 묶어라!》

우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제사의 불호령이 떨어져내렸다.

헌데 통제사의 손길에 군졸들이 어안이 벙벙해했다. 통제사의 화살촉같은 집게손가락이 분명 우후가 아닌 등개를 가리켰기때문이였다.

《못 들었느냐?!》

통제사의 령이 다시 떨어져서야 머리를 기웃거리던 군졸 두엇이 달려가 매채를 들고있던 등개에게 포승을 지웠다.

등개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통제사는 막무가내였다.

《그놈을 끌어다 옥에 처넣어라!》

《예잇-》

등개는 무엇인가 말하고싶었지만 입이 종시 떨어지지 않았다.

옥문이 절컥- 소리를 내며 닫기고나서도 영문을 리해할수 없는 등개는 눈만 그저 껌뻑거릴뿐이였다.

등개를 옥에 끌어가도록 령을 내린 통제사는 마당을 한바퀴 휘- 둘러보고나서 대청마루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내여놓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통제사는 멍석우에 쓰러져있는 랑자의 모습을 한동안 내려다보더니 옆에 서있는 우후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통제사대감, 돌산도가 얼마전 새벽에 왜적의 기습을 받은 사실을 알고계시오이까?》

《무어라고?! 돌산도가 기습을 받다니?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고. 좀더 자세하게 말해보라.》

통제사는 실지로 돌산도급습사건을 아직 모르고있었다. 팔동이를 만나지 못하고 전라좌수영으로 떠난 길이였으니 통제사에게 있어서 왜적에 의한 돌산도사건은 참말로 천만뜻밖의 일이였다.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고? 죽은 사람은 몇이나 되는고?》

《여러채의 살림집이 깡그리 불타고 죽은 사람도 여럿이나 되오이다.》

《어허, 변고로다. 그럼 장공마을은 어찌되였는고?》

그 물음에 우후는 통제사를 쳐다보았다.

《왜적들이 침입한 곳이 바로 장공마을이로소이다.》

《무어라구, 장공마을을?!》

통제사는 억이 막혀 한동안 말을 못했다.

《돌산도를 들이친게 대체 어떤 놈들인고?》

《장공마을에 대해 환히 아는 놈들인듯 하오이다.》

《근거가 있는 소린고?》

《그렇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곡진장주만 훌쩍 잡아갈수 있겠소이까. 분명 왜적의 간자가 돌산도에 박혀있는게 틀림없소이다.》

통제사는 우후의 입에서 나오는 점점 더 험악한 소리에 기함할 지경이였다.

《곡진장주가 잡혀가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린고?》

《그 장주의 손녀라는 저 계집의 입에서 나온 소리오이다.》

우후의 말에 통제사는 놀란 눈으로 멍석쪽에 눈길을 돌렸다. 곡진장주의 손녀라면 삼보녀가 틀림없을터인데 얼마나 모진 매를 맞았는지 죽은것처럼 기척도 없었다.

《자세히 말해보라.》

통제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괴로운듯 눈을 감고 등받이에 웃몸을 맡겨버렸다.

어디선가 꿀벌이 웅웅- 하고 울어대는것 같았다. 허나 그것은 통제사의 귀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우후가 옆에서 뭐라고 설명을 하고있었지만 통제사의 귀에는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니 곡진장주를 랍치해갔단 말이지! 내가 방심했던탓이로군. 정말 방심했어. … 놈들이 거북선을 노릴수 있다던 그의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였구나. 다른 사람은 다 생각 못했지만 그만은 미리 내다보았거던.)

통제사는 뼈아픈 죄책감으로 눈을 뜰수 없었다.

허나 그의 마음이 쓰린지 알알한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우후는 금방 삼보녀를 통해서 얻어들은 소리에 제 말까지 보태가며 횡설수설을 늘어놓고있었다.

《저 계집의 말이 왜적들이 곡진장주에게 그 무슨 도해첩인가를 요구했다 하던데 그것을 내놓지 않자 무작정 배로 끌고 갔다고 하오이다. 배에 올라서도 왜적들은 그냥 곡진장주에게 도해첩의 행방을 따져묻더라 했소이다.》

《뭣이, 그럼 거북선도해첩을!》

그제서야 우후도 《아하!》 하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게 거북선도해첩이였소그려. 과시 왜적이 탐낼만 한 물건이로소이다. 그러니 대감, 제 추측이 틀림이 없다면 그 곡진장주는 분명 왜적에게 넘어간듯 하오이다. 대감의 말대로 그게 정말 거북선도해첩이라면 왜적들은 아마 곡진장주에게 거절할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을것이오이다. 응하지 않는다면 목숨이 날아나겠는데 곡진장주가 무엇을 택했을지는 삼척동자도 가히 짐작할수 있을것이외다. 분명 곡진장주는 왜적과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도해첩을 감춘 장소를 손녀에게 대주었고 저 계집은 그것을 찾겠다고 구사일생을 가장해 다시 들어온듯 한데 도해첩을 뺏기면 제 할애비를 살릴수 없겠으니 아무리 물어도 모른다고만 뻗쳐대는 꼴이로소이다. 쯧쯧쯧.》

우후의 혀를 차는 소리만이 마당가에 떠돌았다.

군졸들은 너무나도 놀랍기만 한 우후의 말을 듣느라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있었다.

그때 마당가의 고요를 깨뜨리며 통제사의 령이 내렸다.

《곡진장주가 왜적에게 넘어갔다는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로다. 곡진장주는 나와 함께 거북선을 무은 장공으로서 내가 잘 아노라. 그는 절대로 쉽사리 굴복할 나약한 사람이 아니다. 눈앞에 물증이 보이지 않는 한 그에 대한 모든 험담은 용서할수 없다. 그리고 저 랑자도 속히 놓아주도록 하라. 왜적이 거북선에 눈독을 들인다는게 분명해진 이상 우후는 빠른 시일내에 도해첩을 찾도록 할것이며 모든 군사들은 각성들을 높이고 절대로 해이되지 않도록 하라. 나라를 지키는 군사들에게 있어 제일가는 금물이 바로 이것이다. 전시에 란동을 부리고 군률을 문란시킨자들은 엄격히 처벌할것이다. 여봐라! 아까 마당에서 야료를 부리던 놈을 이리 끌어내오너라!》

군사들의 낯빛은 시커멓게 질렸다. 통제사가 군률을 들먹인다는것은 곧 목을 벤다는 소리와 같다는것을 모르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우후!》

통제사가 불렀다.

《무슨 일이오니까?》

우후는 통제사의 곁에 다가가 그의 말을 기다렸다.

《저놈의 잘못을 낱낱이 아뢰여라.》

우후는 리순신의 곁에 착 붙어 허리를 굽히고 조용조용 귀속말을 넣었다.

우후의 말을 듣고있던 통제사는 이따금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우후가 하는 말에 동감을 표하는듯 했다.

우후는 곧 통제사에게서 물러나 허리를 쭉 폈다.

얼핏 통제사의 얼굴을 훔쳐보니 시름이 가득 몰렸다는것이 한눈에 알린다.

(흥! 통제사의 속이 꽤나 알알하겠는걸. 허접쓰레기 같은 불상놈들에게 함부로 은혜를 베풀면 안된다는것을 이제는 알았을테지.)

우후는 속으로 깨고소해하였다.

한편 리순신은 마음이 번거로왔다. 우후의 말을 듣고보니 등개가 곡진장주가 늘 외우던 외손녀사위감이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도 리순신은 등개를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등개를 볼 때마다 그는 섬오랑캐놈들과 바다에서 처음으로 싸움을 벌렸던 옥포앞바다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때 판옥선과 협선, 포작선들로 이루어진 조선수군의 함대는 옥포항구에 몰켜있는 50여척의 왜적함대를 향하여 무섭게 돌진하였다. 하늘과 바다를 통채로 뒤흔들듯 쾅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발사된 화포알들이 련이어 적선들을 통쾌하게 들부시였다. 죽음을 고하는 왜적의 아우성소리가 싸움마당에 떠들썩하였다. 원래 옥포항구라는것이 거제도 안쪽으로 우묵하니 패여들어간 곳에 위치했던지라 조선수군함대에 의해 입구를 봉쇄당한 왜적들로서는 그 어디로도 빠질 곳이 없었다.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 조롱안에 든 새였다.

조선수군함대의 섬멸적인 타격에 왜적수군은 꼼짝없이 녹아났다.

궁지에 몰린 적들은 필사적으로 발악하여나왔다. 궁지에 몰린 쥐 고양이를 무는 격이랄가.

일제히 발사되는 놈들의 조총탄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배전 여기저기에 들이박혔다. 비록 조선함대의 드센 공격으로 적들의 서렬은 흐트러졌지만 워낙 수가 많았던지라 놈들의 최후발악은 만만치가 않았다. 그통에 어느 배에선가 장대가 부러져 거기에 매놓았던 군기가 떨어지게 되였다.

《기발이 떨어진다!》

리순신장군은 아연한 눈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기발이 떨어지다니?!)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배전을 차고 한 군사가 바람처럼 날아올라 꺾어지는 장대를 붙잡는것이 보였다.

(그렇지! 아무렴!)

리순신장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 군사는 군기가 매달린 장대를 두손으로 틀어쥐고 하늘높이 쳐들었다.

주위로 적들이 내쏘는 조총탄알이 무수히 날아와 박혔지만 그 군사는 아랑곳도 않고 꿋꿋이 서있기만 하였다. 그야말로 불사신같았다.

(참으로 장할시고!)

리순신장군은 뿌듯해지는 마음과 함께 감탄을 거듭하였다.

(저런 군사들이 있는데야 왜 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고!)

리순신장군은 큰소리로 령을 내렸다.

《한놈도 놓치지 말라!》

멸적의 기세높이 조선함대는 기발을 펄럭이며 포위환을 좁혀들어가 왜적함대에 불세례를 후련하게 들씌웠다.

싸움이 끝난 후에야 리순신장군은 바로 그 군사가 곡진장주가 제 외손녀사위감으로 점찍어둔 젊은이였음을 알게 되였다. 이름은 등개라던지… 그때부터 리순신장군은 싸움마당에 나갈 때마다 등개라는 그 젊은 군사를 눈여겨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는 보면 볼수록 대견하게만 느껴지는 젊은이였다. 특히 눈앞에 왜적만 나타나면 범처럼 펄펄 뛰며 용맹을 떨치는게 마음에 꼭 들었다. 전란초기에 진행되였던 사천앞바다싸움때에 단 한대의 화살로 3층다락배우에서 거들먹거리던 왜장놈의 멱을 꿰뚫어 바다에 처박는 등개를 본 리순신장군은 마침내 결심을 내리고 그를 전라좌수영의 군교로 발탁시켰다.

군교가 된 등개에게서 처음으로 절을 받아보던 그때의 흐뭇한 감정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었다. 리순신장군은 등개를 보면서 앞으로 수군을 이끌고나갈 든든한 버팀목을 하나 찾아냈다고 내심 기쁨을 금치 못했었다.

그런 쓸만 한 놈이 군률을 어겼으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군률은 자비가 없는 법이다. 병서에 이르기를 군률은 인정의 어느 한 꼬투리도 슴배여들수 없는 자못 지엄한것이라고 했다.

통제사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뚫어지게 한곳만 바라보고있었다.

그의 눈아래서 군졸들이 쓰러진 삼보녀를 질질 끌다싶이 하며 수영밖으로 내가고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온몸이 포승끈에 결박당한 등개가 끌려나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참으로 결심하기 힘든 상황이였다.

마침내 통제사는 자리에서 움쭉 몸을 일으켰다.

《듣거라! 자고로 기강이 해이된 군사는 적과의 싸움에서 절대로 승리할수 없다고 했다. 교련관 등개는 전번 바다싸움에서 세운 공이 있다 하여 군교로 발탁이 되였으나 제가 잘나 그렇게 된것으로 여기면서 안하무인격으로 심히 방종한 처사를 보였다. 무장이 된자로서 이런 란시에 상하구분이 없이 제 밸대로 놀아대니 이런 군사를 어디다 쓰겠는가! 마땅히 선참으로 목을 베여 군률의 엄함을 알려야 할것이다!》

통제사의 말을 들은 우후는 속이 다 후련하였다.

(눈꼴사납게 놀아대더니… 네놈이 제 죽을줄을 모르고 그렇게 날뛰였지. 하늘 무서운줄 모르는 이놈!)

《허나…》

통제사의 말은 계속되였다.

《왜적과의 바다싸움에서 세운 전공이 있고 지금까지 군생활을 착실하게 해온것을 고려해서 목은 베지 않을터이다. 듣거라. 교련관 등개에게 장형 80대를 안기고 돌산도배무이장에서 로역을 치르게 하라!》

《예잇-》

통제사가 말을 마치자 등개는 등골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다리에 맥이 탁 풀려 금시라도 그 자리에 주저앉을것만 같았다.

장형 80대. 그만한 매쯤은 이미 각오한것이였다. 지금 그의 가슴을 아프게 허비는것은 군복을 벗어야 한다는 그자체였다.

휘익- 하고 찬바람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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