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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7. 할수 있을 때 할수 있는껏


아침해가 떠오르자 등개는 섬에서 배를 하나 얻어타고 곧바로 수영으로 건너갔다.

급한 걸음에 등개는 장청(영에 소속된 군교들이 모여서 일보는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거기에는 이미 팔동이가 나와 사색이 된 얼굴로 등개를 기다리고있었다.

《마침 잘 왔네. 다 알구 왔겠지?》

팔동이는 등개를 만나자마자 동이 전혀 닿지 않는 말부터 꺼내들었다.

《그건 무슨 소린가? 뭘 알구 온단 말인가?》

《챠, 이런… 아직 밤중이구만.》

팔동이는 등개의 한쪽팔을 잡아끌어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 일이 점점 커지는 모양일세.》

《무슨 소린가? 좀 알아듣게 얘기하라구.》

《글쎄 그날 내가 우후를 만났더니 밤새 번을 어떻게 섰느냐고 따져묻는게 아니겠어. 그래 사실대로 〈소인은 잠을 잤고 대신 교련관이 선것으로 아오이다.〉 했지. 그랬더니 우후가 자갈밭의 개구리처럼 풀쩍풀쩍 뛰면서 자네가 우정 왜적의 배가 지나가는것을 보고서도 눈을 감아주었다는거야. 가만 보니 이 기회에 자네나 내 감투를 아예 벗겨버릴 잡도리같애. 우후로 말하면야 기회가 좀 좋은가. 전에 통제사어른이 우리가 싸움에서 공을 세웠다 하여 군교로 발탁시키겠다고 할 때 저 우후가 나서서 훼방놀던 일을 생각해보라구. 그때 못한 분풀이를 이제 하자는게 뻔해.》

팔동이는 속에서 열이 나는듯 씩씩 단김을 내뿜었다.

《그랬으면 어쨌단 말인가? 난 하나도 무서운게 없네. 왜냐하면 우린 잘못한게 조금도 없거던.》

《허나 우후는 그렇게 보지 않지. 어쨌든 돌산도가 기습을 받은것은 사실이니까.》

《그랬대두 그것은 자네 잘못이 아닐세. 루명을 써도 다 내가 뒤집어쓸터이니 자넨 조금도 걱정을 말라구.》

등개의 말에 팔동이는 짐짓 노여운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뜻에서 한 말이 아니야. 왜 자네 혼자 바가질 뒤집어쓰겠다구 그래. 그럼 난 뭐가 되라는건가? 섭섭하네, 섭섭해.》

팔동이는 앵돌아져 애꿎은 흙바닥만 점도록 주시하며 씩씩거렸다.

《팔동이 이 사람아, 내 말이 지나쳤다면 용서해주게. … 참, 실은 내 자네한테 부탁할게 하나 있네.》

팔동은 눈길을 들어 등개를 바라보았다.

《난 빨리 여기 상황을 한산도에 나가있는 통제사어른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네. 통제사어른만이 여기 일을 바로잡을수가 있어. 내 생각 같아서는 왜적이 재침입을 준비하고있다는 통제사어른의 말씀이 분명한듯싶네. 왜적들이 돌산도를 기습한것도 다 그런 까닭에서였지.》

《자네 뭘 좀 알아냈나?》

팔동은 등개의 말에 상당한 흥미를 나타내였다.

《그래, 놈들은 바로 우리 거북선을 노리고 들어왔댔어. 장주어른의 집을 들이친 놈들이 그더러 도해첩을 내놓으라고 했다는거야. 헌데 장주어른은 내놓지 않았지. 그러니 놈들이 장주어른과 삼보녀를 랍치해갔던거야. 삼보녀는 요행 살아돌아왔지만 장주어른은 아직 놈들 손아귀에 있네. 그러니 이것 보라구. 만일 놈들이 계획대로 거북선의 도해첩을 손에 넣기만 한다면 참화는 막을수 없게 돼. 놈들의 기도는 반드시 짓부셔버려야 하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은가?》

팔동의 눈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여기 일은 내게 맡기고 자넨 어서 한산도로 건너가 통제사어른께 이 사실을 알리게. 통제사어른이라면 뭔가 방책이 꼭 있을거네.》

등개는 팔동이의 손을 꽉 잡았다.

《알겠네. 그건 걱정말라구. 내 어떤 일이 있어도 통제사님께 그 소식을 전하지.》

팔동이도 등개의 손을 마주잡고 흔들었다.

《가만, 갔던 길에 경상우수영에 좀 들려주게나.》

《우수영엔 뭣 하러?》

《사람 하날 좀 알아봐주게.》

《누군데?》

등개는 얼핏 주위를 살펴보더니 팔동의 귀에 대고 가만가만 속삭였다.

그의 말을 듣는 팔동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또 자네 걱정주머니가 흔들거리는게지? 걱정 붙들어매게나. 꼭 알아봐주지.》

《그럼 믿겠네.》

등개는 말을 마치자 돌아서서 우후를 만나러 대청으로 나갔다.

우후가 벌써 나와있었다.

《우후나으리께 문안드리오-》

등개는 손을 앞으로 마주잡은채 허리를 굽석 구부리며 인사부터 하였다.

그 모양을 내려다보던 우후는 답례는 고사하고 단도직입적으로 《갔던 일은 어찌되였느냐?》 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물음을 던졌다.

《왜적들의 급습이 있은것은 사실이오이다. 장공마을이 큰 피해를 입었사온데 곡진이라 하는 장주어른을 놈들이 끌어갔다 하오이다.》

《음- 헌데 그 손녀라는 계집은 돌아왔다지?》

등개를 바라보는 우후의 눈빛은 음험하였다.

(추격선의 군사들을 통해서 전해들은 모양이구나. 하긴 살아돌아온거야 뭐 죄될게 있담.)

등개는 《그렇소이다. 곡진장주의 외손녀도 함께 끌려갔댔사오나 도중에 왜적들의 배에서 뛰여내렸다고 하오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래? 장한 일을 했으니 상이라도 줘야 할가보군.》

등개는 속이 좋지 않았다. 우후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비위를 박박 긁어놓는 소리뿐이였다.

《헌데 왜적들이 곡진장주는 어찌하여 잡아갔다 하던가?》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왜적들이 곡진장주어른에게 무슨 도해첩인가를 내놓으라고 강박했다 하오이다. 헌데 말을 듣지 않자 아예 끌고 간줄로 짐작되나이다.》

여우처럼 치째진 우후의 눈이 도해첩이라는 말에 반짝 빛났다.

《도해첩?! 무슨 도해첩말이냐?》

우후의 물음에 등개는 한순간 망설이였다.

(괜히 확실치도 않은것을 내 맘대로 말했다가 엉뚱한 사람만 잡는게 아니야?)

등개는 정확한것이 밝혀질 때까지 도해첩에 대해선 발설하는것을 고려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소인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수가 없소이다.》

《그럼, 그걸 누가 안단 말이냐?》

《소인 생각에는…》

등개의 머리속에는 문득 삼보녀가 떠올랐다. 삼보녀는 곡진장주의 하나밖에 없는 살붙이이니 그라면 뭔가 알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러나 삼보녀가 알고있을것이라는 말을 할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괜히 그 말을 우후한테 했다가 삼보녀가 욕을 볼수 있었다. 등개는 애초에 우후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떠오르는 사람이 없소이다.》

등개는 시치미를 뚝 따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빨리 돌산도에 다시 건너가 삼보녀에게 도해첩에 대해 자초지종 물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후는 등개의 머리속을 환히 꿰뚫고있는듯싶었다.

《그럼 빨리 돌산도에 다시 건너가 그 장주의 손녀를 내앞에 끌어다놓도록 하여라.》

《예에?!》

등개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건 무슨 영문이오이까?》

등개는 불쑥 자기 입에서 이런 말이 튀여나가는것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어허, 네 이놈! 감히 뉘앞이라고 방자를 떠는게냐! 계집을 잡아다 대령시키라면 그렇게 할노릇이지 어째 화를 돋구는게냐! 혹시 그 계집과 잘 아는 사이라더니 지금 그래서 네가 나에게 따져묻고싶은게냐?》

우후는 발을 탕- 구르며 버럭 성을 내였다.

등개는 뭔가 일이 꼬이고있다는감을 느끼였다. 그렇다, 지금 일은 등개의 생각대로 되고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삼보녀는 틀림없이 잡혀오게 될것이였다.

《우후나으리, 그런게 아니오라 지금 그 곡진장주의 손녀가 몸이 추서지 못해 움직일 형편이 못되오이다. 그러니 설사 불러온다 해도 며칠 회복할 시간을 좀 주었으면 하오이다.》

그러나 우후는 더욱 발광을 부리였다.

《불상놈이 군교가 되고 털벙거지를 하나 얻어쓰더니만 이젠 제법 건방을 떨 작정이구나. 에끼, 이런 고현놈 봤나! 돼먹지 못하게 감히 누굴 훈시하려들어? 게 누구 없느냐? 어서 이놈을 썩 치워버리지 못해!》

우후는 대청바닥을 쾅쾅 밟으며 객기를 부렸다.

그바람에 어느 구석에 숨어있던 군졸 몇이 달려나와 등개의 팔을 량쪽에서 잡아끌었다.

《어서 가소이다.》

등개는 자기를 잡아끄는 군졸들의 성화에 못이겨 대청을 물리고 장청으로 나왔다.

장청에 모여있던 군교들은 무슨 일인가 하여 등개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찰나 낡은 북 찢어지는듯 한 우후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여봐라, 어서 돌산도로 건너가 그 장주의 손녀라는 계집년을 잡아다 내앞에 꿇어앉혀라! 제발로 걷지 못하겠다면 꼬챙이에 꿰여서라도 끌고와야 한다. 감히 상놈이 량반에게 훈시질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마!》

그 소리를 들은 군교들은 《또 밸통이 거꾸로 뒤집힌 모양이군.》 하며 혀를 끌끌 찼다.

《자네 큰일났구만. 어쩔셈인가?》

등개가 걱정이 된 군교들이 저저마다 한마디씩 말들을 하였다.

《우후나으리가 저쯤 나오는걸 보면 아마 이번은 무사히 넘길것 같지 못하네그려.》

《자네 약혼녀를 두고 하는 말 같은데 차라리 자네가 가서 데려오는것이 더 낫지 않을가.》

《누구 좋으라고 그짓을 한단 말인가? 아직 몸이 추서지두 못한 아녀자를 붙잡아다 문초라도 받게 하고싶은가?》

《등개, 자네 약혼녀랑 며칠 어디 가서 숨어있으라구. 시간이 지나면 우후나으리도 성이 좀 가라앉을거야.》

《자네 그걸 말이라구 하나? 그러다 군률에 걸리면 공연히 죄목이나 늘거네. 내 말대로 하라구. 자네가 건너가서 약혼녀에게 사정이야기를 하고 데리고 오게. 우후나으리가 아무리 세도가 당당한들 죄가 없는 그 랑자를 어떻게야 할라구?》

《그럼, 우리가 두눈을 시퍼렇게 뜨구있는데… 다른 일은 없을걸세. 몇마디 말이나 물어보고 인츰 돌려보내겠지.》

동료들의 지꿎은 권유에 등개는 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암만 그래두 난 가지 않겠네. 아니, 가지 못하겠어. 그건 차마 못할짓이네.》

등개가 그렇게 나오자 군교들은 더 할 말이 없어졌다.

《마음대루 하라구. 가구말구 하는거야 자네 맘이지. 허나 자네가 가지 않으면 누구든 우리들중에 한사람이 대신 가야 하는데 참으로 일이 딱하게 될수 있네.》

장청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에익!》

등개는 바늘방석에 앉은것 같아서 더는 장청에 머무를수 없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수영안을 훌쩍 나와버렸다.

어디든 발길이 닿는데로 걷고싶었다. 정처없이 걷는 그의 눈앞에 제법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초가집이 한채 보였다.

(저게 뭐야? 팔동이가 말하던 주막집이로구나. 에라, 모르겠다. 저기나 한번 들려볼가?)

등개는 주막집을 향하여 어슬렁어슬렁 발걸음을 옮기였다.

그러나 주막집앞에 서있는 크지 않은 노가지나무앞에서 그는 뚝 멎어서고말았다. 차마 주막집안으로는 발길을 들일수가 없는 그였다.

등개는 다시 돌아서고말았다.

(등개, 너도 이젠 다된 놈이로구나. 전란도 끝나지 않았는데 술을 처먹을 생각을 다 하다니!)

등개는 앞에 펼쳐진 뙈기밭머리에 앉아 파도가 밀려드는 포구쪽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바다건너 돌산도가 바라보였다.

등개는 정말 곡진장주에게 도해첩이란것이 있긴 있었을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긴 저 돌산도에 거북선을 무어내는 암영이 있고 거북선 건조담책인 곡진장주가 살고있다는것까지도 내탐해낸 놈들인데 분명 놈들은 도해첩에 대해 뭔가 알고 왔던게 분명해. 그러니 도해첩은 장주어른에게 틀림없이 있었을거야. 하지만 놈들은 찾아내지 못했지. 장주어른이 어떤 사람이라고 그걸 순순히 내놓는단 말인가. 그때문에 장주어른은 끌려가게 되였구… 왜적에게 도해첩을 빼앗기는 날에는 놈들의 재침을 막아내지 못하게 되는것은 물론이고 곡진장주어른은 나라의 역적으로 락인될거야. 그렇게 되면 삼보녀는 또 어떻게 되는가?)

등개는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하였다.

(아니, 삼보녀가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내버려둘수는 없어. 도해첩은 무조건 내가 먼저 찾아내야 해. 그래야 삼보녀도 지킬수 있고 거북선도 지켜낼수 있어. 거북선을 지켜내면 이 바다도 지키는것으로 되는거야. 그러니 결국 지금 상황에서 제일 급한건 도해첩을 먼저 찾아내는 일이다. 장주어른이 도해첩을 감춘 장소만 알면 좋겠는데… 도해첩을 과연 어디다가 숨겨두었을가?)

등개는 곡진장주가 도해첩을 숨겨두었으리라고 짐작되는 곳들을 머리속에 떠올려보았다.

(곡진장주의 집은 벌써 왜적들이 다 뒤졌다. 항아리속에 감추는것도 안전하지 못해. 천장도 쥐새끼들때문에 그리 믿음직스러운데가 못되고… 제길할, 이거야 도대체 알수가 있나! 만일 나에게 그런 도해첩이 있었다면 어디다 감추었을가?)

거북선도해첩이라면 제법 부피도 꽤 있을터이니 아무곳에나 막 감추어둘수도 없을것이였다.

(혹시 삼보녀는 어디 짐작이 가는데가 없을가?)

등개는 갑자기 떠오른 삼보녀생각에 무릎을 털썩 치였다.

(그래, 삼보녀야, 삼보녀! 곡진장주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삼보녀라면 할아버지가 어디에다 도해첩 같은걸 숨겨놨을지 짚이는데가 분명 있을것이다.)

등개는 한시바삐 삼보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어느덧 해는 하늘중천을 지나 한쪽으로 기울어져있었다.

(벌써 유시(17시부터 19시사이)가 되였나? 이쯤이면 삼보녀가 수영에 도착하구두 남았겠구나.)

등개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삼보녀를 만나야겠어.)

그는 수영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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