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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6. 별빛 흐르는 돌산도의 밤


등개는 하루밤을 고모의 곁에서 보낼 생각이였다.

강씨는 몸이 많이 추선 모양이였다. 조카가 들어서는것을 본 강씨는 그래도 얼굴에 웃음을 띠우며 어서 들어오라는듯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좀 어때요?》

등개는 고모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푹 자고났더니 이젠 괜찮다.》

그러나 등개가 보기에도 고모는 기력이 딸리는것이 퍽 알렸다.

《나 오늘은 고모곁에서 자구 갈라우.》

《원, 녀석두…》

강씨는 고맙다는 말을 그 한마디로 표현하였다. 그리고는 상처자리가 쑤시는지 얼굴 한쪽볼편을 찡그리는것이였다.

《계속 편치 않은가보군요.》

《괜찮대두 그러누나. 의원님이 발라준 약이 효험을 내느라 그러겠지…》

강씨는 조카가 마음을 쓸가보아 다시 얼굴에 웃음을 실었다.

아무거나 이부자리를 하나 가져다 고모곁에 편 등개는 전복과 허리띠를 풀어서 머리맡에 개여놓고 팔베개를 하며 벌렁 드러누웠다.

《하루종일 고단했겠는데 어서 좀 쉬려무나.》

반듯이 누워 천정만 올려다보고있던 등개는 고모의 그 말에 머리만 슬쩍 옆으로 돌려보다가 그쪽으로 아예 돌려눕고 말았다.

한쪽팔로 머리를 고인 등개는 다시한번 고모의 이마에 손을 얹어보았다.

(고열이 나면 안된다고 의원님이 말했는데…)

등개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강씨는 《왜, 열이 높으냐?》 하고 물었다.

《아니예요, 무엇을 좀 생각해보느라 그래요.》

《무슨 생각을 하길래 사내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냐?》

어릴 때부터 등개는 남자는 하늘이 무너져도 비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 들으며 자라왔다. 그렇게 자란 등개여서 그런지 그도 웬만한 일쯤에는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는 기질이였다. 하지만 사람이 죽고살고 하는 이번 돌산도사건은 등개의 모든 신경들을 죄다 건드려놓은듯싶었다.

등개는 눈을 바로 떴다.

《고모, 고모는 무슨 도해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신적이 있어요?》

《도해첩?》

강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 그러디, 도해첩이라고?》

《방금 나도 얻어들은 소리인데…》

《그런 소릴 들었어? 나도… 분명 내가 칼에 맞고 쓰러졌을 때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도 바로 그 도해첩얘기였단다.》

등개는 놀랐다. 무심히 던진 물음인데 고모가 그에 대해 알고있을줄이야. …

《고모, 좀 자상하게 말해주세요.》

강씨는 다시 상처가 쑤셔나는듯 입술 한쪽귀를 꼭 깨물었다. 하지만 신음소리 같은것은 새여나오지 않았다.

한동안 그러다 강씨는 《새벽에 물을 길러 동이를 끼고 우물가로 나갔댔지.》 하며 두눈을 슬며시 감는것이였다.

잠시후 강씨는 《그래, 옳거니.》 하며 머리를 한번 끄덕이더니 그날 새벽에 있었던 일들을 소곤소곤 이야기해주는것이였다.

강씨는 매일 아침 이른새벽이면 남먼저 일어나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우물에서 정화수를 떠다가 바다쪽으로 쑥 나가있는 거북바위앞에서 치성을 드리는것을 하나의 습관처럼 굳혀오고있었다. 숱한 해녀들의 생명과 그날 수확에 대해 소임한 대상군이고보면 오히려 그 정성이 모자랄가봐 늘 걱정을 하는 강씨였던것이였다.

그날 새벽에도 강씨는 여느때보다 빨리 잠을 깨였다.

(무슨 소리가 들렸던것 같은데… 꿈이였나? 원 참, 가위에 눌렸던 모양이로군.)

강씨는 울렁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어 도닥도닥 두드리며 《호-》 하고 조용히 한숨을 내불었다.

속옷을 여민 강씨는 날이 밝았는지 가늠해보느라고 창호지를 바른 장지문쪽을 건너다보았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조금 더 있어야 했다.

(그만 일어나야 할가보군.)

주섬주섬 머리맡에 개여두었던 저고리를 털어입은 강씨는 낭자를 두손으로 더듬어 머리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았는가를 꼼꼼히 살핀 후에 부엌으로 내려가 물동이를 찾아끼고 문밖에 나섰다.

상쾌한 새벽공기가 기분을 띄워놓았다.

(가볼가?)

맑은 공기를 함씬 들이킨 강씨는 발에 익은 길을 따라 우물쪽을 향하여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하나밖에 없는 우물은 강씨의 집에서 좀 떨어져있었다.

동네에 우물이 하나뿐인것은 옛날부터 돌산도에 내려오는 미신에 의해서이다. 돌산도에 첫살림을 폈던 먼 조상들은 대개가 배를 뭇는 장공들이였는데 그들은 섬도 그 무슨 배처럼 생각했는지 구멍을 많이 뚫러놓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하면서 더 파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아래마을, 웃마을이 그 우물 하나에 매달려 살아오고있었다. 강씨네 집과 삼보녀네 집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있는 그 우물은 섬식구들의 유일한 담수원천이였다. 이웃이긴 하지만 강씨네 집보다는 삼보녀네 집이 우물에서 더 가까워 동네에서도 《우물집》이라고 하면 삼보녀네 집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고있었다.

드레박질 두번에 동이가 가득찼다.

강씨는 (오늘 바다에 나가선 우선 쉼터둘레의 돌담을 좀 더 높여봐야 하겠다.) 하고 혼자생각을 굴리며 동이의 겉에 묻은 물기를 손으로 닦아내였다. 그리고는 동이를 들어 머리우에 받친 똬리우에 올려놓았다.

이제 갈 곳은 바다가근방에 있는 거북바위였다. 대가리를 바다쪽으로 뻗치고 앉아있는 그 바위에 올라서면 꽃바당이 한눈에 안겨든다.

강씨는 바로 그 펑퍼짐한 바위등에 제물들을 갖추어놓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치성을 하군 했었다.

물동이를 머리우에 이고 우물을 돌아나오던 강씨는 문득 삼보녀네 집에 불이 켜진것을 보게 되였다.

(삼보녀네도 방금 일어난 모양이구나. 우물집 큰애기가 부지런해. …)

강씨는 조카며느리가 될 삼보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혼자 입귀에 웃음을 실었다.

(등개 그녀석이 색시복은 있어.) 하고 속웃음을 지으며 동이에 손을 얹고 한손으론 치마자락을 걷어올리고나서 코끝으로 어두운 발아래를 간신히 내려다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얼핏 강씨는 나지막한 신음소릴 들은것 같았다.

(?…)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다른 소린 더 들리지 않았다.

(허- 이젠 나이가 들면서…)

강씨는 도리머리를 저으며 다시 걸음을 옮겨짚었다.

바로 그때 다시 《억!》 하는 숨이 넘어가는듯 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야, 분명 소리가 났어. 삼보녀네 집 같은데…)

등골이 오싹해진 강씨는 그 자리에 굳어져버린채로 눈만 휘둥그렇게 뜨고 불이 켜진 삼보녀네 집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분명 소리는 그쪽에서 났다.

(무슨 일일가?!)

강씨는 저도 모르게 삼보녀네 집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누가 두런두런 말하는것 같기도 하고 무엇인가 들부시는것 같기도 하고…

(누굴가? 저 집엔 장주어른과 삼보녀밖에 더 없을텐데…)

그곳에서 울려나오는 말이 똑똑히 들려오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분명 곡진장주의 목소리가 아닌것만은 분간해낼수 있었다.

그를 확인이라도 해주려는듯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재차 새여나왔다.

《도해… 도해첩, 그게 어디에 있소?!》

강씨가 바싹 긴장해지는데 이번에는 《억!》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누구인가의 타격에 의한 큰소리여서 강씨는 자기의 판단을 확신했다.

더럭 겁이 난 강씨는 곡진장주네 집 삽짝문곁에 바싹 붙어섰다. 그리고는 용기를 내여 《삼보녀야!》 하고 소리쳐불렀다.

그때 바로 곁에서 얼굴에 시커먼 복면을 한 사나이들이 불쑥불쑥 솟아나더니 사정없이 강씨에게 접어들어 그의 옆구리에 칼을 박는것이였다. 살을 비집고 들어오는 선뜩한 기운에 강씨는 눈앞이 흐려지며 몸의 중심을 잃었다. 어느 놈인가의 우악스러운 손바닥이 입까지 꾹 덮쳐눌렀다.

딱!-

머리에 이였던 물동이가 바닥에 떨어져 깨여지면서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였다.

그 소리에 놀란 동네 개들이 소란스럽게 컹컹 짖어대기 시작하였다.

강씨는 옆구리로 온몸의 힘이 죄다 빠져나가는것만 같았다.

시커먼 땅바닥이 한쪽귀옆으로 빠르게 와닿았다. 쿵- 하고 머리가 어딘가에 세차게 부딪치는감을 느꼈는데 그와 동시에 무수히 많은 별찌들이 눈앞에서 무질서하게 떠돌아다니는것이였다. …

《그래 끝내 난 삼보녀네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도 못하고 의식을 잃고말았지. 그 다음은 전혀 생각이 안 나.》

《하마트면 큰일날번 했어요. 의원님이 인츰 손을 썼기에 망정이지.》

웃마을의 열살잡이 아이가 갑자기 게우고 설사를 심하게 하면서 배를 싸쥐고 대굴대굴 구운다 하여 의원이 집의 심부름군애와 함께 새벽길에 나섰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사람들이 깨여나 밀려오는통에 왜구들이 줄행랑을 친것이였다.

등개는 다시 팔베개를 하고 반듯하게 누워버렸다.

《그러니 고모도 어렴풋이 도해첩이란 말을 들었구만요. 삼보녀를 구원해준 송원서라는 그 사람도 바로 왜적들의 배에서 뛰여내리기 직전에 왜장놈이 장주어른에게 도해첩을 내놓으라고 강박하는 소리를 들었다던데… 참, 그 사람이 바로 관포만호 송이첨어른의 자제래요. 일전에 옥포바다싸움때에 적장을 두놈이나 껴안고 물속에 뛰여들었다던 그 어른 있잖아요. 바로 그분의 자제가 어떻게 그 배에 올라있다가 삼보녀를 구해냈다지 않아요. 참…》

《정말 고마운 젊은이로구나. 네가 단단히 사례를 해야겠다.》

강씨의 말에 등개는 《그러지 않아도 내가 귀를 잡고 절을 했어요. 헌데… 장주어른이 감추어두었다는 도해첩이란게 뭔지 모르겠거든요. 분명 왜적들이 그걸 노렸겠는데…》 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보나마나 중요한거겠지. 곡진장주야 거북선까지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냐.》

그 말에 등개는 벌떡 몸을 일으켜세웠다.

《가만, 고모! 그러고보니 그 도해첩이란게 혹시 거북선도해를 묶은 책을 말하는게 아닐가요?》

《무어라구? 난 곡진어른에게 그런 도해첩이 있다는 소릴 들어보지 못했는데…》

강씨도 어지간히 놀라는 눈치였다.

《생각해보세요, 고모. 기세등등해서 날뛰던 놈들이 왜 부산에 쫓겨갔나요. 〈수륙병진〉이고 뭐고 하던것을 바다에서 우리 리순신장군이 거북선을 가지고 막아버렸기때문이지요. 전에 바다싸움때랑 보니 놈들이 우리 거북선만 나타나면 도망칠 구멍을 찾느라 여념이 없더구만요. 거북선이 있는 한 놈들은 다시 바다로 기여들지 못할거예요.》

《그러니 놈들이 어쩐다는거냐?》

《우리 거북선한테 쓴맛을 봤으니 아마 약점을 찾자고 덤빌거예요. 그러자니 거북선의 도해첩이 꼭 필요할거구요. 아니면… 아니면 놈들이 거북선을 무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틀림없어요.》

《그럴가?》

《틀림없어요. 놈들이 정말로 거북선을 무을 생각이라면… 어엉?》

등개는 혼자생각에 깜짝 놀라며 고모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니 놈들이 〈강화담판〉을 구실로 재침준비를 하고있다는 통제사어른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란 소리예요.》

강씨의 눈도 휘둥그래지였다.

《〈강화담판〉이란 다 개나발이였어요. 놈들은 뒤에서 재침입을 준비하고있어요. 도해첩도 아마 그래서 필요했을거예요. … 이제야 모든게 석연해지는것 같아요. 어째서 놈들이 여기까지 기여들어왔나 했더니만… 알겠다- 그때문이였구나. 악귀같은 섬오랑캐놈들!》

등개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떨어댔다. 모든것이 분명해졌다. 돌산도기습, 곡진장주의 랍치, 그들의 입에서 나온 도해첩이야기, 결국 이 모든것들은 《재침입》이란 세 글자를 가리키고있었던것이다.

《그럼 곡진장주를 잡아간건…》

《거북선을 무어보자는 수작이지요.》

강씨는 속이 한줌만해졌다.

《에그, 저걸 어쩌노…》

《왜요? 장주어른이 쉽게 변절할 사람인가요!》

《무슨 말을… 내가 아는 곡진어른은 속심이 굳은분이다. 죽으면 죽었지 절대 왜적의 말따위는 듣지 않아! 그러니 그분 고생이 오죽하시겠냐. 에그…》

강씨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고모, 장주어른이 종내 거북선비밀을 불지 않는다면 놈들이 어떻게 할가요? 거북선과 같은 배가 없이는 우리 수군과 맞서는것이 불가능하다는걸 뻔히 아는 놈들이 포기하진 않을테고 그러니 남은건…》

《도해첩이구나!》

《그래요. 놈들은 도해첩을 못 찾고 곡진장주만 랍치해갔으니 어른이 제놈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다음 방도로 도해첩을 무조건 찾으려고 할거예요.》

《이 일을 어쩌면 좋니? 도해첩이 왜적들 손에 들어간다면…》

《우리가 먼저 찾아내야 해요. 찾아서 지켜내야지요.》

《그래, 그래야지.》

《우선은 한산도에 나가있는 통제사어른께 이 사실을 빨리 알려야 하겠는데.》

《그래, 통제사어른이 곡진장주와 거북선을 만들었으니 혹시 도해첩에 대해서도 뭔가 알수 있겠다.》

《그랬으면 좋으련만…》

등개는 답답한듯 몸을 일으키더니 장지문을 활짝 열고 멀리 동쪽하늘을 바라보았다.

(교활한 왜적들이 《강화》의 막뒤에서 다시 쳐들어올 꿍꿍이를 하고있었구나! 통제사어른의 선견지명에 정말 탄복하게 되는데.)

무수히 많은 별들이 저저마끔 어두운 밤하늘꼭대기에서 반짝반짝 빛을 뿌리고있었다.

풀벌레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니 하늘이 평온해보였다.

《음-》

등개는 낮게 신음소리를 냈다.

가슴 한구석에 묵직한 돌멩이가 맺힌듯 마음이 가벼웁지 못했다.

그러나 등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돌산도의 밤은 자연대로의 고요속에 새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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