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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5. 돌아온 추격선


추격선이 돌아온다는 통보가 왔다. 돌산도가 왜적에게 기습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우후가 등개네보다 한발 먼저 출발시켰던 전라좌수영의 협선이였다.

등개는 급히 몸을 돌려 꽃바당쪽 포구로 잰걸음을 놓았다.

멀리서 한척의 좁고 빠른 배가 물결을 일구며 포구로 접근하고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돛을 걷은 배는 포구가까이로 들어서더니 속력을 떨구었다.

이윽고 배가 멎어서고 배다리 있는데로 사다리가 드리워졌다.

등개와 함께 섬에 남았던 군졸들은 우- 하고 그리로 몰려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군졸들을 아무나 붙들고서 저마끔 따지듯 물었다.

《제기랄것, 그 난쟁이종자들이 어디로 내뺐는지 코빼기도 볼수가 없었소!》

《이런 륙실헐…》

놈들을 놓쳐버린 군졸들은 격분에 차서 서로 언성들을 높이며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단 말인가?》

창대가 들고있던 창자루끝을 땅에다 쿡 찍으며 금방 배에서 내린듯 한 군졸들에게 생억지를 부리였다.

추격선에 탔던 군졸들은 마치도 섬오랑캐들을 놓친것이 저들의 죄인듯 긴 목에 피대를 돋구며 따지고드는 창대가 못마땅해 볼들이 부어가지고 두덜거리였다.

《젠장, 쪽발이들이 내빼는데서야 여간 암팡져야 말이지.》

《우리한테 붙잡히면 어떻게 된다는걸 잘 아는 놈들이니 별 방법이 있을라구.》

《그래두 내가 말하던 그쪽으로 뛴게 틀림없는것 같네. 아까 그 랑자도 그 어방을 가리키지 않던가!》

낯이 시꺼먼 군졸이 뾰족수염이 돋은 턱을 들어 물결에 삐걱거리는 배다리쪽을 피끗 가리키며 넌지시 동료들에게 하는 말이였다.

등개는 저도 모르게 그 군졸이 가리키는 배다리쪽을 바라봤다.

거기에서는 두명의 군졸이 들것을 들고 조심스레 사다리를 내려서고있었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다른 군졸들이 든 두번째 들것이 보였다.

《누군가?》

들것들이 사다리를 내려서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주위에 엉거주춤 모여선 군졸들속에서 제나름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까 바다에서 건져올린 그 랑자 같은데…》

《어디 사는 애기라나?》

《여기 돌산도 아니면 근방 어디 가까운 섬일테지.》

《물일하던 애기같지 않던가?》

《노나 젓던 저들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그 말에 함께 섰던 격군 한명이 벌컥 성을 내였다.

《모르긴 왜 몰라! 난 저 랑자가 누군지 알구있네.》

《엉, 누군데?》

《임자네들 생각 안 나나? 곡진장주네 집 큰애기말이야.》

《그럼, 저 애기가 곡진장주의 외손녀…》

그제서야 군졸들은 털썩- 하고 무릎들을 쳤다.

《옳거니, 곡진장주에게 이쁘장한 손녀딸이 하나 있었지.》

《있다뿐인가! 남해일판에서야 그만한 인물이 더는 없다던데…》

군졸들은 멀어져가는 들것을 속이 상한듯 바라보면서 눈살들을 찌프리였다.

《그래두 저렇게 끌려가던 도중에 내려뛰기라도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네. 놀라긴 또 얼마나 놀랐을고…》

군졸의 혀차는 소리가 들렸다.

《에익, 모조리 오라를 지어 주릴 틀어버릴 놈들같으니!》

어느결에 곁에 와 섰던 주리대가 참지 못하고 두주먹을 내흔들었다.

저마끔 떠들어대는 군졸들과 얼마간 거리를 두고 서있던 등개가 그들의 입에서 튀여나오는 곡진장주의 손녀라는 소리에 펀뜻 정신이 들었다.

(곡진장주의 손녀라니?! 그럼 삼보녀가…)

등개는 자기앞으로 다가오는 들것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다음순간 등개는 들것에 실려오는 랑자가 삼보녀가 옳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잠간 멈추거라.》

등개는 손을 들어 들것을 들고 가던 군사들을 멈춰세웠다.

모두의 눈길이 등개에게 쏠렸다.

등개는 총총걸음을 옮겨 들것옆으로 다가갔다.

《아니?!…》

등개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비명비슷한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과연 들것우에 누워있는 이 인사불성의 랑자가 삼보녀란 말인가?!

마구 풀어헤쳐진 머리칼이며 창백해진 두볼…

등개는 아무리 눈을 비비고 살펴보아야 정신을 잃고있는 이 랑자가 전혀 삼보녀같지 않았다.

그러나 등개는 그가 바로 삼보녀인것을 육감적으로 깨달을수 있었다. 평소에 너무도 많이 보아온 삼보녀의 아름다운 모습… 바다에서 금방 나와 늘 함초롬히 젖어있던 머리칼이며 가볍게 내려덮인 길다란 속눈섭과 그리고 이악한 그의 성미처럼 꼭 다물려있던 물앵두같은 빨간 입술이 무척 낯익기때문이였다. 아니, 다름아닌 삼보녀의 머리칼이고 삼보녀의 속눈섭이며 삼보녀의 입술이라는것을 등개는 깨달았다. 그렇다, 이 랑자는 삼보녀가 분명했다.

《삼보녀!》

등개는 군졸들앞이라는것도 잊고 약혼녀의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삼보녀, 정신차려!》

그러나 삼보녀는 등개의 애타는 부름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것 같았다.

등개는 죽은듯 누워있는 삼보녀를 흔들어대며 더 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삼보녀! 나야, 나… 등개란 말이야! 어서 정신차려!》

그랬으나 맞붙어있는 삼보녀의 두눈섭은 여전히 떨어질줄 몰랐다.

등개는 벌써 제정신이 아닌듯싶었다.

《군교나으리, 빨리 의원댁부터 가야 할듯 하외다.》

나이든 군사가 그 광경을 보다못해 이런 말을 비쳐서야 등개는 훌떡 제정신을 차리였다.

등개는 부리나케 군사들을 재촉하여 아래마을 의원네 집으로 줄달음을 놓았다.

숨이 턱에 닿아 웨치는 등개의 부름소리를 들은 의원은 갑자기 무슨 일인가 하여 버선발로 뛰여나와 대문을 열었다.

《의원님, 의원님! 이 일을 어쩌면 좋소이까?》

등개의 얼빠진 소리를 들으며 삼보녀의 맥부터 짚어보던 의원이 《어서 썩 땅바닥에 내려놓지 못해!》 하고 고함을 질러댔다.

엄청나게 크게 지른 의원의 고함소리에 얼이 나간 군사들은 영문도 모르고 들것을 흙바닥에 털썩 내려놓았다.

의원은 어정쩡하여 서성대는 군사들을 밀쳐버리고 들것에 달려들어 그것을 와락 뒤집어버렸다.

그 서슬에 들것우에 누워있던 삼보녀가 흙바닥에 얼굴을 박으며 나떨어졌다.

《아니, 이게 무슨짓이요?!》

등개가 와락 달려들어 의원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그러나 의원은 막무가내였다.

《흥분하지 말게. 이 애기를 살리고싶거들랑 어서 물러나라구.》

의원의 저력적이고 묵직한 목소리에 등개는 어찌할지 몰라 눈만 끔뻑거렸다.

《비키래두!》

재차 밀어버리며 하는 의원의 말에 등개는 의원의 멱에서 욱였던 손을 풀며 뒤로 성큼 물러섰다.

의원은 등개 같은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시 엎어진 삼보녀의 등뒤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두손바닥으로 잔등을 아래서 웃방향으로 힘을 주어 쑥쑥 밀어주기 시작하였다.

《다들 대문밖에 나가 기다려. 쓰지 못할 놈들, 초보적인 처치방이야 알고있어야지!》

대문밖에 물러난 등개의 귀전에는 여전히 두손바닥에 힘을 주어 삼보녀의 잔등을 문질러대는 의원의 끙끙대는 소리가 가슴을 조여대듯 들려왔다.

(도대체 뭘 이리 꾸물대는거야?)

등개는 채 닫기지 않은 문틈으로 대문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땅바닥에 엎어진 삼보녀는 의원의 몸집에 가리워 보이지 않았다.

(제길할!)

그때 갑자기 안에서 윽윽- 하는 소리가 났다. 죽은듯 기척이 없던 삼보녀의 입으로 쿨럭쿨럭 짠물이 쏟아져나오는것 같았다.

목구멍을 통해 밖으로 쏟아져나오는 짠물때문에 숨이 꺽 막혀 한동안 모지름을 쓰던 삼보녀는 마지막물까지 깡그리 뱉아내자 크게 한두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하더니 다시금 풀썩 쓰러지는것이였다.

《거기 누가 없느냐?》

호기찬 의원의 부름소리가 들렸다.

《네-》

부엌쪽에서 길게 끄는 애된 계집애의 대답소리가 들려왔다.

의원은 쪼르르 달려나온 계집애에게 《어서 더운물을 떠다가 세수를 시켜라!》 하고 분부하였다.

계집애는 《알았사와요.》 하고 잽싸게 말하고는 쓰러진 삼보녀의 머리칼을 귀뒤로 슬쩍 넘겨보더니 냉큼 일어나 방으로 뛰여들어갔다.

《자, 이젠 어서 병자를 집안으로 들이세.》

의원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등개가 벌컥 대문안에 들어섰다.

그런 그의 놀란 눈이 사발만큼이나 커졌다.

아직 정신은 차리지 못하였지만 방금전까지 하얀 백지장처럼 질려있던 삼보녀의 두볼에 살짝 피기가 돌고 제법 가르랑거리는 숨소리도 들리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이까?!》

《어떻게 되긴, 가뜩이나 물을 잔뜩 먹어놔서 숨도 쉬지 못하는데 반듯이 눕혀놓고 달려오다니… 어쩌자는게야, 얼굴색이 창백한걸 보고도 몰라? 눈들은 다 뜸자리인가?》

의원은 등개며 군사들을 한그물에 넣고 마음껏 질책을 해댔다.

등개가 떡판같은 제 잔등을 들이밀어 삼보녀를 업어서는 안방에 들여다 조심히 눕혀놓았다.

더운물이 담긴 소래를 든 계집아이가 사뿐사뿐 퇴마루로 걸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가보아도 되겠네.》

의원의 그 말에 등개가 군사들쪽에 사의를 표했다.

《이크, 이건 또 뭔가?》

방안으로 향하던 의원이 퇴마루에 놓여있는 또 하나의 들것을 보고 깜짝 놀래였다.

《아뿔싸!》

등개는 그제서야 배에서 내리워지던 또 하나의 들것생각이 났다.

《바다에서 함께 건져낸 사람같소이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모르오나 아무튼 정신을 차리면 까닭을 알게 될것이니 명부터 구하고봅시다요.》

의원이 다시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먼저 응급처치를 했다.

다행히도 사내는 물을 과히 먹지 않은 모양이였다. 하지만 바다물에 오래동안 떠있은탓에 실신한 상태였다.

등개가 총각을 둘쳐업고 웃방으로 올라가 계집애가 펴놓은 이부자리우에 조심히 눕혀놓았다.

《이애, 아무 옷이나 갈아입혀라.》

《네.》

계집애는 고개를 까닥 숙여보이고 사람들이 나가자 방문을 소리없이 닫았다.

퇴마루로 나온 등개는 퍼그나 시간이 흘렀음을 느끼고 의원에게 인차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그 집을 나왔다.

등개가 다시 의원댁에 찾아간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서였다. 한것은 짬을 내여 불타버린 삼보녀의 집을 보수할래, 우후의 닥달질도 받을래 짬을 못 냈던 까닭이였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등개를 띄여본 의원은 반색을 하며 맞아들였다.

《역시 젊은이들이니 회복이 아주 빠르더구만. 특히 총각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 먼저 그를 만나보라구.》

등개는 의원을 따라 큰방으로 들어갔다.

침상에 누워있던 젊은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의원을 보더니 웃몸을 일으키려들었다.

《가만 누워있으라구, 젊은이. 어디 좀 보세.》

의원은 젊은이를 황급히 만류하며 이불을 들치고 팔목을 끌어내다 맥을 짚어보았다.

《괜찮아. 아주 좋아지고있네. 젊음이 부러울 지경이군.》

의사의 말에 젊은이는 볼에 홍조를 띠웠다.

《다 의원어른 덕분이오이다. 저를 구원해주어 정말 고맙소이다.》

《허허, 고맙긴… 임자를 구원한건 내가 아니라 우리 좌수영의 군사들일세. 인사를 하겠으면 이 사람한테 하라구. 이 사람이 바로 자네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람이니까.》

의원이 등개쪽으로 손짓을 해보였다.

《그렇소이까?》

의원의 말에 젊은이는 등개쪽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고맙소이다.》 하고 인사를 하는것이였다.

《이거 나한테 인사할것 없소. 좌우간 자네의 인사는 내 전해주겠소.》

등개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헌데 자넨 어떻게 되여 이런 지경이 되였나?》

등개가 묻자 젊은이는 허리쪽이 시큰거리는지 량미간을 쪼프리였다. 그리고는 잠간동안 숨을 멈추고서 속으로 끙끙거리였다. 어딘가 속이 말짼 모양이였다. 한동안 얼굴을 붉히며 괴로워하던 그는 한숨을 푸- 하고 내불었다.

《나는 관포만호 송이첨의 아들 송원서란 사람이우.》

이렇게 첫마디를 뗀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관포라는데서 만호의 벼슬을 지내던 그의 부친 송이첨은 경상우수영 후부장으로 옥포해전에 참가했다가 날아드는 왜적의 흉탄에 가슴이 뚫려 한을 품고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원서는 땅을 치며 통탄하고싶었지만 피나게 입술을 깨물며 꾹 참았다. 눈물이나 쥐여짠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때 그의 머리속에는 시신조차 건지지 못한 부친의 령혼을 어떻게 하면 지하에서나마 편히 잠들수 있게 위로해드리겠는가 하는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그래 결심한것이 부친이 왜구와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했으니 마땅히 왜장우두머리의 목을 베여다가 그것으로 제를 지내드리겠다는것이였다.

그는 허줄한 차림을 하고 왜수군이 둥지를 틀고있는 부산포로 스며들어갔다. 거기서 받은 갖은 천대와 멸시는 이루 다 말할수 없었다. 불때기, 물긷기, 개나 돼지도살에 심지어는 뒤간치기까지도 모조리 그의 소임이였다. 정말로 더럽고 치사해서 하루에도 열두번 밖으로 뛰쳐나오고싶었지만 오로지 부친의 혼백을 위로해드릴 제물감을 마련할 일념으로 꾹 참고 견디여냈다.

당시 부산포에 갇힌 왜적들의 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먹을것은 점점 바닥이 나고 무서운 병마가 항상 막사주위를 어슬렁거리였으며 그칠새없이 일어나는 소요때문에 늘 불안속에 허덕이고있었다. 한껏 굶주림에 지쳐버린 섬오랑캐놈들은 왜장들이 먹다 남긴 떡부스레기 하나를 놓고서도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칼부림을 하는 형편이였다. 저들끼리 벌리는 죽일내기때문에 왜장놈들은 골머리를 앓고있었다.

어느날 너무도 배를 곯은 왜적놈 하나가 해변가에서 파도에 밀려나온 이름을 알수 없는 송아지만 한 괴상한 물고기를 발견하였다. 그놈이 너무 기쁜김에 저들 무리에 대고 소리치는 바람에 하늘이 저들에게 보내준 선물이라며 창과 칼을 들고 숱한 왜적들이 몰켜들었다.

물고기의 대가리며 몸뚱이, 지느러미 등에 달라붙어 칼질을 해대는 놈들에게 누군가 조용히 이르는 사람이 있었다.

《다치지 않는게 좋겠소. 천벌을 받게 될거요.》

송원서였다. 그는 이 말을 남긴채 올리미는 속을 겨우 잠재우며 왔던 길로 되돌아섰다.

《조선놈의 자식, 뭘 안다구 참견질이야!》

《저놈은 우리가 모두 굶어서 죽기를 바라는 놈이야.》

《속이 다그어댄다, 먹고볼판이지!》

원서를 향해 침을 뱉은 무리들은 고기를 썩썩 베여 시뻘건 살을 입이 미여지도록 경쟁적으로 쓸어넣었다.

가까운 야산에 오른 원서는 후리후리한 속을 진정시킬 생각으로 잔디를 깔고 드러누워버렸다. 좀 있으려니 솔곳이 졸음이 밀려들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가…

갑자기 여러 놈이 달려들어 두손과 두발을 붙잡는통에 송원서는 벌떡 잠에서 깨여나고말았다.

《이게 무슨짓이요?! 이걸 놓소!》

송원서는 놈들의 우악스런 손아귀에서 벗어나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놈들은 막무가내였다. 놈들은 원서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움켜쥐더니 도살장으로 짐승을 끌고 가듯 산아래로 급히 내려가는것이였다.

놈들은 저들의 막사가 주런이 세워져있는 목책안에 이르자 송원서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흙바닥에 이마를 짓쪼은 송원서는 벌컥 일어나 도끼눈을 해가지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온통 살기를 띤 놈들뿐이였다.

문득 한 막사안에서 제법 으리으리한 갑옷을 떨쳐입은 왜장놈이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송원서의 앞으로 다가왔다.

《네가 물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는가?》

왜장은 당장 송원서를 때려죽이기라도 할것처럼 눈알을 부라리였다.

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얼결에 고개만 끄덕이였다.

피발이 선 눈으로 송원서를 바라보던 왜장놈은 갑자기 옆구리에 찬 칼을 쑥 뽑아들더니 원서의 턱밑에다 들이대는것이였다.

《이놈아, 지금 그 고기를 먹은 나의 군사들이 배를 그러쥐고 돌아가고 그중 둘은 죽기까지 했다.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귀신살이 뻗친듯 하다는데 네놈만이 그것을 막을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어서 액막이를 하라!》

왜장놈은 당장 송원서의 목을 칠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이건 또 무슨 낮도깨비 잠꼬대같은 소리야. 액막이라니? 누굴 무당으로 아는게 아니야?)

《난 무당이 아니요!》

이렇게 송원서는 소리를 지르고싶었다. 그러나 서늘한 칼기운에 입이 얼어붙었는지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까짓거, 죽는것보다 까무라치는게 낫다는데 내라고 무당노릇 못한다는 법이야 없지.)

송원서는 머리를 외로 틀고 침을 세번 내뱉았다.

《좋소, 그런 액풀이쯤은 문제될게 없소. 단 내 말에 모두가 따라야 하외다.》

왜장놈은 황황히 원서의 목을 겨누었던 칼을 거두었다.

마음이 으쓱해진 원서는 우선 놈들을 바다가로 데리고 가서 커다란 구덩이를 파도록 하고는 거기에 물고기, 아니 물고기뼈를 묻도록 하였다. 그와 함께 물고기를 먹고 죽은 그 졸병놈들도 함께 묻도록 하였다.

으스스한 바람이 불어치는 해변가에 커다란 모래무지가 생겨났다. 그앞에 원서는 요란한 제상을 차리도록 하였다.

이젠 송원서가 《귀신쫓는 굿》을 할 차례였다.

(우리 마을에 왔던 무당이 굿을 시작할 때 뭐라고 한참 사설질을 늘어놓던것 같은데… 뭐라고 하댔던가, 제길…)

원서는 첫마디가 생각나지 않아 입을 봉하고 무작정 아까부터 손에 들고있던 붉은 술이 달린 왕방울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섬오랑캐놈들은 굿이 시작되는줄로 알고 넙적넙적 엎드려 대가리들을 틀어박았다.

(에라, 모르겠다!)

원서는 《신》들린 사람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요란스레 방울을 한두번 흔들고나서 어디선가 얻어들은 풍월을 지껄이기 시작하였다.


어화 술걸어라

돈걸어라 떡걸어라

쿵자쿵자에 굿이로구나

쿵자쿵자에 신내린다


홀애비죽어 하무자귀야

총각죽어 몽달귀야

무당죽어 걸닙귀야

쇠경죽어 신선귀야

선달죽어 호반귀야

처녀죽어 간신귀야

과부죽어 탄식귀야

너도 먹고 니가서라

… …


원서는 섬오랑캐놈들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어릴 때 보아온 무당들의 흉내를 내였다. 제가 보기에도 제법이였다.

왈랑절랑 왕방울을 흔들며 원서가 다가오면 기겁한 놈들이 연신 굽석굽석 대가리를 조아렸다. 그럴수록 원서는 더욱 승이 나서 방울을 흔들어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오동추야 달밝은데

처녀총각 단 둘이 놀다가

상한나서 죽은 귀야

시오마니 몰래 쌀퍼주구

엿사먹다 목구멍메여 죽은 귀야

너도 먹고 니가서라

천만리로 방송하고

억만리로 가소사


온 해변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액막이굿놀음》은 날이 어두워져서야 끝났는데 왜적들은 혼맹이 빠져 아예 녹초가 되고말았다.

헌데 이상하게도 송원서가 《굿》을 하고난 뒤 더는 아무도 배아픔이나 두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좌우간 그것은 송원서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었다. 놈들은 송원서가 《액풀이굿》으로써 자기들의 체내에 기여들었던 악귀를 몰아내주었다고 믿고있었다. 왜장놈까지도 송원서를 보는 눈빛이 조금 달라진것 같았다.

다음날 왜장놈은 송원서를 불러다가 역관(통역)노릇을 하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아무래도 귀신을 부리는 재주를 가진 송원서를 물이나 길어오고 장작이나 패며 짐승도살같은 험한 일을 시키는게 몹시 께름직했던 모양이였다.

원서는 대번에 그 제의를 수락하였다. 하루아침에 송원서는 왜적들속에서 무시 못할 인물로 되여버렸다. 역관으로 된 원서는 아무때나 왜장놈의 막사를 마음대로 드나들수 있었다.

어느날 병졸들이 모두 술에 취하여 거꾸러지고 털부숭이왜장놈도 곯아떨어진 밤에 그는 거사를 단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먼곳에서 밤파도소리만 간단없이 들릴뿐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했다.

원서가 발볌발볌 막사안에 들어가 시퍼런 칼을 뽑아들고 왜장놈의 목을 따자고 하니 그게 별로 달갑지 않았다. 글쎄 요까짓 놈의 모가지나 가지고 부친의 령혼을 위로해내겠는가 하는 생각이였다. 그래 그는 결심을 바꾸었다.

(아니다, 같은 값이면 가또 기요마사놈이나 그보다 더 큰 도요또미 히데요시놈의 모가지를 따다 제를 지내야 한다.)

그는 다시 발톱을 감추고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서 조선과 일본사이에 《강화담판》이 벌어지면서 전란의 검은구름은 저 멀리로 사라지는것 같았다.

(이렇게 전란이 끝나는것은 아닌지. 그럼 아버님의 복수는…)

원서는 부산땅에 떠도는 《강화》의 분위기를 목격하며 이러다가 영영 뜻을 이루지 못할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왜장놈이 그에게 대마도(쯔시마)로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원서에겐 더없는 기회였다. 대마도를 거쳐 일본땅에 가면 틀림없이 조선침략의 원흉 도요또미 히데요시놈을 만날수 있게 되리라. 그놈의 목을 뎅겅 베여 왜란의 화근을 들어내고 보란듯이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리라!

드디여 배가 뭍을 떠났다. 왜구들은 그를 창고 같은데 가두고 절대로 갑판우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꼬박 이틀밤을 원서는 그안에 갇혀 지냈다. 그러다보니 배가 대마도가 있는 동남쪽으로가 아니라 그 반대켠인 서남쪽으로 내려가 한산도를 멀리 에돌고있다는것도 알수 없었다.

깜깜한 야밤에 배는 어느 항구엔가 정박하였다. 목적지에 다달은듯 배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놈들은 원서를 내놔줄 생각을 하지 않는것 같았다.

원서는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어쩐지 지금 배가 닿은 곳이 대마도같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체로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배를 타고 하루낮 하루밤이면 가닿을 거리였다. 헌데 이놈의 배는 어찌된 영문인지 연 이틀이나 그냥 바다에 떠있었던것이다.

아무래도 배는 애초에 대마도를 목적지로 하고 떠난것 같지가 않았다.

원서는 놈들의 속심을 알수가 없어 몹시 초조하였다.

시간이 얼마 흐른 뒤 문득 사람을 강제로 태우는지 아우성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나서 곧 배는 다시 바다로 나가는듯 하였다.

배가 떠난지 얼마 안되여 미욱스레 생긴 왜졸 한놈이 그에게로 다가오더니 왜장이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원서는 금방 살아날것만 같았다. 바다바람을 맞으니 답답하던 속이 한결 시원해지는듯 했다.

원서는 왜장놈이 보낸 졸병놈의 뒤를 따라 갑판우로 올라갔다.

갑판우에는 후렁후렁한 검은 옷을 걸치고 검은 삿갓으로 상판을 가린 섬오랑캐놈들이 잔등에 환도들을 두어자루씩 둘러메고서 둥그렇게 원을 짓고 서있었다.

웬 일인가 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뜻밖에도 거기에는 웬 늙은이 하나와 그의 손녀벌쯤 되여보이는 랑자 하나가 왜구들에게 붙잡혀있는것이였다.

왜장은 원서더러 통역을 하라고 하였다.

《우리 말을 듣겠느냐?》

늙은이는 오래전부터 놈들의 시달림을 받았는지 묵묵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다시 왜장놈이 물었다.

《도해첩을 내놓겠느냐?》

이번에도 그 늙은이는 말이 없었다.

성이 꼭두까지 치민 왜장놈은 《빠가야로! 그래봐야 욕을 볼건 네 손녀뿐이다!》 하고 뇌까리더니 갑판에 우글거리는 졸개들에게 눈짓을 하였다.

원서는 왜장의 말을 통역해주면서도 도대체 이게 무슨 감투끈인지 알수가 없었다.

(이 로인장은 누구고 이 랑자는 누군고? 그리고 도해첩이란 또 웬 말이고…)

원서는 도무지 영문을 알수 없어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그런데 돌원숭이같은 졸개들은 왜장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기다렸다는듯이 랑자를 묶은 포승끈을 끊어버리더니 짐승처럼 마구 달려들어 그의 옷을 발기발기 찢는것이 아닌가!

원서는 너무도 경악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야만들! 이게 무슨 짓거리란 말인가!

그것을 본 늙은이가 무섭게 몸부림을 쳤다.

《이 악귀같은 놈들아! 내 손녀를 다치지 말아!》

피가 거꾸로 솟고 두주먹이 후들거렸지만 원서는 종시 결심을 못 내렸다. 이제 정체를 드러내면 부친의 복수도 못해보고 그러면 몇년동안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

송원서는 그때의 참을수 없는 광경이 머리속에서 되살아났는지 마르고 탄 입술을 푸들푸들 떨었다.

《이 사람, 그만 진정하구 물이라도 좀 마시라구.》

의원이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그릇을 건넸다.

물그릇을 받아든 원서는 한사발을 단번에 마시고나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난 그 늙은이가 그렇게 강기가 있는줄은 짐작도 못했지요. 그 늙은이는 온몸을 묶어놓은 포승줄을 끊을듯이 악을 쓰더니 그게 뜻대로 안되자 〈귀신한테나 썩 물려가거라!〉 하고 소리칩디다. 여간만 고집이 센 늙은이가 아니더군요. 글쎄, 나중엔 왜장의 얼굴에 침까지 뱉더구만요. 화가 동한 왜장놈과 졸개들은 야수처럼 달려들어 그 늙은이를 두들겨패기 시작합디다. 난 더 참을수가 없었소. 눈앞에서 그런 일을 목격하구서야 피가 끓는 대장부로서 어찌 참아낸단 말이요! 그래 부친의 복수구 뭐구 다 집어치우구 얼른 그 랑자를 덥석 안아들구 바다물속으로 훌쩍 뛰여들고말았소. 우리가 물에 뛰여들자 놈들이 복닥소동을 일으킵디다. 조총을 쏴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여하튼 총알에는 요행 맞지 않고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였소. 꽁지가 빳빳해서 도망치는 길이였던지라 놈들도 우릴 추격할 생각을 못하는 모양이였소. 헌데 난 헤염을 잘 치지 못하여 물속에 자꾸만 가라앉는데 그 랑잔 본시 헤염에 능했던지 나를 부축하고도 헤염을 곧잘 칩디다. 그 덕에 요행 목숨을 건지게 되였소. 헌데 시간이 갈수록 파도가 세지고 나를 건사하느라 그 랑자도 어지간히 지쳐 둘이 다 빠져죽게 되였더랬는데 그때 마침 우리 수군이 나타나 구원해주었소그려.》

송원서는 말을 마치자마자 쿨럭쿨럭하고 기침을 터쳐내였다.

《허허, 관포만호 송이첨어른이라고 하면 옥포바다싸움때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왜장놈을 둘씩이나 겨드랑이에 끼고 바다물에 뛰여들었다는 그분을 말하는건가?》

의원은 제법 그의 부친을 알기라도 하는듯이 반색을 띠였다.

《우리 부친을 아시오이까?》

《아다뿐일가! 만나뵌적은 없지만서도 내가 무척 존경하는 분들중의 한사람이라네. 그러니 자네가 관포만호 송이첨어른의 자제였단 말이지. 훌륭한 부친을 둔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라구. 과시 용장의 자제답구만.》

의원은 송원서의 손을 꼭 붙잡고 대견한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관포만호 송이첨은 등개도 한번 본적이 있었다. 의원이 말하는 옥포바다싸움에서 송이첨은 왜적이 배에 오르자 칼을 뽑아들고 무수한 적병의 모가지를 삼대베듯 하다가 칼이 부러지게 되자 적장 두놈을 그러안고 바다물에 뛰여들어 목숨바친 사람이였다. 게다가 사천앞바다싸움때에 바로 자기 눈앞에서 숨을 거둔 돌격장 송만춘장군의 동생이기도 하였다.

그런 사람들의 아들이고 조카라고 생각하니 송원서의 인품이 더 돋보이는것 같았다.

《삼보녀를 구해주어 정말 고맙네.》

등개는 송원서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하였다.

등개의 갑작스러운 인사에 송원서가 의아해하자 의원이 제꺽 《자네가 구해준 그 랑자가 바로 이 사람 약혼녀라네.》 하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제서야 송원서는 《아하, 그런 사이였소그려. 인사는 오히려 내가 해야 할 판이요. 그 랑자덕에 목숨을 건진건 바로 나니까요.》 하며 반색을 하였다.

오래간만에 의원의 집 퇴마루로는 사나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등개는 의원에게 삼보녀를 부탁하고나서 고모네 집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어느새 해가 떨어졌는지 저녁바람이 휘익- 불어와 옷자락을 들추어놓았다.

등개는 고모네 집을 향해 걷다말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의원네 집쪽을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분명 도해첩이라고 했지? 그래, 도해첩… 헌데 그게 무엇이길래 섬오랑캐놈들이 그렇게 도사리며 찾는걸가?)

등개는 뭐라고 딱히 찍어 말할수는 없어도 분명 그 도해첩이라는것이 왜적들이 감행한 이번 돌산도사건과 련관이 있다는것만은 명백하다고 생각하였다.

돌산도기습, 곡진장주의 랍치, 왜장이 찾고있다는 도해첩. 이 세가지는 분명 하나의 대상을 가리키고있었다. 하지만 등개는 그것이 무엇인지 딱히 종잡을수가 없었다.

(도대체 도해첩이라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일가? 곡진장주가 가지고있었다?)

등개는 의원집을 뒤에 두고 휘적휘적 웃마을쪽으로 걸음을 내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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