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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2. 꽃잎을 닮은 해안


장공마을에서 북쪽, 그러니까 남해가의 돌산도가 려수반도쪽으로 머리를 기웃하고있을 때 그 목부위에 해당되는 바로 그곳에 펼쳐진 바다를 해녀들은 《꽃바당》이라고 부르고있었다.

꽃바당이란 꽃잎을 띄워놓은 바다 혹은 꽃같은 바다라는 뜻인데 그 바다가 꼭 잎을 활짝 펼치고 쏟아지는 해빛을 받으며 즐거웁게 남실거리고있는 한송이의 아름다운 꽃을 방불케 했기에 붙여진 이름이였다.

해녀들이 많이 살고있는 장공마을을 마주한 천마산에 올라보면 그것을 더 잘 알수 있었다. 이름그대로 그 바다의 해안은 꼭 네잎을 펼치고 바람에 하늘거리고있는 아름다운 꽃모양이다.

그러니 지금 해녀들이 물일을 하고있는 바로 그곳은 네잎중의 한잎을 닮은, 꽃잎을 닮은 해안이였다.

저녁바람이 선들선들 불기 시작한 꽃바당우에는 아직도 많은 부표(해녀들이 사용하는 부유기구)들이 둥둥 떠있었다. 그것들의 사이로 볕과 바다물에 탄 해녀들의 둥실한 얼굴들이 쑥쑥 떠올랐다.

《푸우-》

물밖에 머리를 내밀자마자 한껏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올랐다. 그뒤를 따라 마치 누가 한꺼번에 더 많은 숨을 들이쉬는가 경쟁이라도 하듯 한껏 줄어들었던 허파에 바람을 채우는 소리까지 쒸익-쒸익- 들려왔다.

금방 물밑바닥에 내려가 바위등에 찰싹 달라붙은 조개따위를 몇개 뜯어가지고 올라온 삼보녀까지도 숨이 그리웠던듯 허억- 허억- 소리를 내면서 걸탐스레 공기를 들이마셨다.

제법 차거워진 바다바람이 해녀들의 얼굴에 부대끼였다.

《날씨도 차지는데 오늘은 이만 들어가자꾸나!》

《그러자요, 형님!》

《나도 그럴래요!》

여기저기서 겨끔내기로 웨치는 소리가 들렸다.

해녀들은 물우에 떠서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면서 물장난을 치고있던 부표들을 끌고 기슭쪽을 향하여 헤염을 쳐나갔다. 길죽길죽한 박의 속을 파내여 물우에 둥둥 뜨게 만든 부표들에는 큼직한 그물망태가 하나씩 매여달려있었는데 그안에는 해녀들이 건져올린 바다의 선물들이 넘쳐날듯 가득가득 들어있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기슭에 다달으자 해녀들은 성큼성큼 물밖으로 몸들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그물망태들을 훌쩍훌쩍 어깨우에 둘쳐메더니 찬바람을 피해 쉼터안으로 닁큼닁큼 날아넘어들어갔다.

쉼터래야 바다에서 일하는 해녀들이 얼어든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쪼이며 쉬는 곳으로서 흔히 주변의 막돌들을 주어다가 바람막이를 만들어놓은 조그마한 공간이였다.

차디찬 바다물에 몸의 온기를 여지없이 앗긴 해녀들로서는 그만큼 정겨웁고 아늑한 공간은 다시없어보이는 그러한 곳이였다.

삼보녀도 제법 묵직하게 담긴 그물망태를 어깨에 걸쳐메고 쉼터안에 뛰여들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에그, 추워라. 날씨가 갑자기 사나워지려나?》

불을 쬐던 강씨가 누구에게라 없이 하는 말이였다.

강씨는 이 무리속에 유일한 대상군이였다. 대상군이란 해녀들속에서 자기들의 우두머리격인 해녀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가져다붙인 호칭이였다. 상군이니, 중군이니, 하군이니 하는것은 다 대상군의 아래였는데 그것은 물속에서 누가 얼마나 더 깊이, 얼마나 더 오래 일을 할수 있는가에 따라 나뉘여 붙여진다.

물론 륙지에서 떨어진 남해가의 작은 섬이였을망정 당시 그 어느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량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제도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여기 돌산도에서 상군이니, 중군이니 하는따위들은 모두가 다 천하디천한 해녀들속에서만 통용되였다.

하지만 워낙 목숨을 내걸고 하는 바다일인지라 해녀들에게 이런 도제관념은 어떤 측면에서 볼 때 거의 신분제도와 대등하다 할만큼 제딴의 위엄을 가지고있는것이다. 고작해서 쉼터안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그런것만이 아니라 해녀들의 일상사에 관하여 결정을 내릴 권한까지 가지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따스한 불기운에 몸만이 아니라 얼어들었던 마음까지 스르르 녹아내려 이 푸념, 저 푸념을 쏟아내는 이 쉼터안에서 그들을 동정해주고 걱정해주며 조언을 주는것은 오로지 대상군과 상군들의 몫이였다.

물일을 할 때 제일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게 상군이고보면 깊디깊은 해녀들의 마음속까지 헤아려야 하는 그 일에서는 상군이상 적임자가 없을듯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체로 상군들은 젖통이 불룩한 젊은 아낙네나 머리를 곱게 땋아내린 처녀들보다는 나이개나 있는 년장자들이 되군 하였다.

강씨도 원래는 이런 상군들중의 한사람이였다. 하지만 수년전 왜적들이 이 섬에 쳐들어왔을 때 대상군이였던 길가집 용이 할매를 원통하게 잃고난 후 해녀들의 한결같은 추천을 받아 하루아침에 대상군이 된 강씨였다.

성깔지고 괴벽스런 이 날바다우에서 자기들의 목숨까지 맡겨야 하는 대상군을 해녀들은 아무나 쉽게 정하지 않았다. 반드시 몇십년간 바다일에 숙련된 상군들중에서 덕이 있고 지혜로우며 포옹력이 있는 사람을 골라 대상군으로 받들었다.

때문에 대상군이라면 해녀들의 무리속에서는 관가에서 나온 아전나부랭이따위는 갖다댈수도 없는 큰 위신을 가지고있었다.

《그러게나 말이예요. 앞으로 몇날이나 더 물에 들어갈수 있을가요, 형님?》

《글쎄, 아마 기껏잡아 한 사나흘이나 되겠는지…》

강씨의 말에 해녀들은 머리속으로 무슨 속구구들을 해보는지 한동안 말들이 없었다.

바람을 등지고 앉은 덕에 잔등이 시려난 강씨는 한걸음 더 가까이 불무지쪽으로 다가앉으며 자기 그물망태에서 꺼낸 전복 몇개를 불속에 던져넣었다.

《이거야 어디 등짝이 시려서 살겠니. 아무래도 담을 좀 더 높여야 할가부다.》

이쯤되면 래일은 틀림없이 쉼터둘레의 바람막이가 조금 더 높아질게 뻔했다.

《하긴, 그런것 같기두 해요. 이 삼보녀의 어깨가 다 굽어든걸 보시라구요.》

좌중의 눈길이 자기에게로 쏠리자 쑥스러워난 삼보녀는 황급히 고개를 외로 틀었다.

뭇해녀들의 눈길에 치여 공연히 고운 가슴만 오르락내리락하는 삼보녀를 바라보는 강씨의 눈가에는 대견한 빛이 넘쳐흘렀다.

어느모로 보나 흠할데가 없는 삼보녀였다.

솔솔 전복 구워지는 냄새가 쉼터안을 감돌았다.

《에그, 벌써 다 익은가보네. 어머니, 하나 드세요.》

삼보녀는 불무지안에서 잘 구워진 전복을 하나 골라서 강씨쪽으로 슬쩍 밀어놓았다.

《에그, 그래두 제 시고모가 될 사람이라고 벌써부터 저러는걸 좀 보지. 아들없는 사람 시샘나서 살수가 있나, 쯧쯧.》

《그러게 누가 아들을 낳지 말래나?》

《태우질 않는걸 낸들 어쩌노… 어디 가서 배워올수도 없는노릇이고… 그놈의 아들타령에 낳아놓은 계집애가 벌써 몇인고?》

《호호호…》 하며 모두들 즐거이 웃음꽃을 피웠다.

《형님은 좋겠수다. 저런 끌끌한 조카며느리감을 척 앞에 놓고 앉았으니…》

저마끔 한마디씩 던지는 걸죽한 롱질에 삼보녀의 두볼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에그, 그놈의 입심들 하구는 참…》

강씨는 민망스러워 어쩔줄 몰라하는 삼보녀를 감싸주느라 짐짓 좌중을 나무라는체 하였다.

《이거 좀 점잖게들 있지 못해, 왜 가만있는 애기를 못살게 굴어!》

그러나 좌중의 웃음소린 더 높아만 갔다.

강씨도 보매 매우 흡족한 표정이였다. 강씨는 볼수록 삼보녀가 마음에 들었다. 물일에서도 죽은 제 어미를 릉가하는 삼보녀였다. 어떻게 성질머리 사납고 밸통이 세기로 마을에 소문난 조카녀석 등개가 저렇게 맘씨곱고 인물곱고 품행이 방정하여 아들가진 집이라면 누구나 넘보는 우물집 삼보녀를 소리개가 병아리 덮치듯 훌쩍 나꿔채였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는노릇이였다.

(허 참, 닮기는 신통히 제 애비를 닮았다니까.)

등개를 보느라면 꼭 젊었을적의 제 오라버니를 떠올리게 되는 강씨였다.

등개의 아버지, 그러니까 강씨의 손우오라비는 남도일대에서 소문난 상씨름군이였다. 제아무리 황소같은 힘을 가진 씨름군이라고 하여도 그의 깍지걸이맛을 한번 본 사람들은 씨름판에 그가 나타났다는 소문만 들으면 좀처럼 샅바에 발을 꿰기 저어할 정도였다. 그처럼 등개 아버지의 깍지걸이는 남도씨름판에서 유명하였다. 바위처럼 뚝하니 웅크리고있다가 불시에 달려들어 량팔로 상대방의 허리를 안아 조이는데 어지간히 근력이나 씀직해뵈던 사람들까지도 금방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러대며 괴롭게 몸을 비틀어대기가 일쑤였다. 한순간에 상대방을 제압한 다음에야 쿵- 하고 메치고나면 승부는 이미 결정이 된것이였다.

등개의 아버지가 소를 끌고 마을로 돌아올 때면 온 동네가 떨쳐나 제일처럼 기뻐해주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으니 대개 그러한 사람들로는 생원나으리나 고을의 사또 혹은 륙모방치를 휘두르기 좋아하는 아전들이였다. 특히 아전나부랭이나 구실아치 같은것들은 용력이 센 등개의 아버지를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하였다.

장정 두세사람은 넉근히 둘러메칠 정도로 힘이 센데다가 불의를 보고서는 참지 못하는 그가 무서워 아전나부랭이들은 그 동네에서 감히 기를 펼수가 없었다.

그러니 속이 상하는것은 유독 강씨 혼자뿐이였다. 등개의 어미라는것은 등개를 낳구나서 일찌기 산후탈인가 하는 모진 병을 만나 불행히도 세상을 떠났었다. 강보에 싸인 등개를 아들맞잡이로 안아키운 강씨로서는 저러다 등개가 아비까지 없는 아이로 될가보아 늘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동네사람들은 모두 등개의 아버지로 하여 토호들의 가혹한 수탈과 아전들의 무지막지한 행패질에서 벗어날수 있어 좋았겠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언제건 잡아먹을 기회만을 노리며 승냥이들처럼 이발을 바득바득 가는 아전들과 토호들의 낯빛을 볼 때마다 강씨의 마음은 금방 싸늘하게 얼어드는것만 같았기때문이였다.

툭하면 《역적》이고 턱하면 억울한 《화적》루명을 쓰고 죽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새 말이지. …

그러다 종내 일은 터지고야말았다.

한번은 그들이 사는 마을에 《리지팡이》라 불리우는 량반이 묵어간적이 있었다. 《리지팡이》라 해서 그 량반의 이름이 《지팡이》거나 벼슬이름이 그런것은 아니였다. 그의 벼슬이 사헌부 지평이였는데 사헌부라는것이 대개 벼슬아치들의 능력과 수완을 조사장악하며 온갖 위법행위들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지고있었던지라 사헌부에서 나온 지평이라면 현령이나 현감따위들은 비록 품계차이는 얼마 없었어도 아주 땅바닥에서 설설 기는 정도였다.

량반중엔 청렴한 관리가 드물다고 지평벼슬을 지내는 리씨라는 량반도 달고다니는 뒤소문이 좋지 못하였다. 그래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리지팡이》라고 별명을 달아놓았던것이다.

리지팡이의 부친은 본래 어떤 지체높은 량반가문의 후손이였다고 하였다. 헌데 점차 가세가 몰락하여 한성 어느 세도가댁에 문객으로 밥술이나 축내게 되였는데 어떻게나 권모술수를 잘 꾸몄던지 그것이 맞아떨어져 그 집의 딸을 정실로 맞게 되였다. 처가집덕분에 마침내 머리에 옥관자를 붙이게 된 리지팡이의 부친은 대궐 어느 구석짬에서 짭짤한 벼슬이나마 한자리하게 되였는데 결국 못난 그의 자식도 사헌부의 지평이라는 벼슬감투를 뒤집어쓸수 있게 되였다는것이다.

아무튼 그 모든 소리들은 다 그 리씨의 세도줄이 당당하다는 말을 보태주는 이야기뿐일따름이였다. 그래 그런지 그를 따라다니는 구중(벼슬아치들이 나다닐 때 시중을 들며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도 여간만 악독스럽지 않았다.

사또는 고을에 잠간 들린 리지팡이를 위해 풍악을 잡히고 요란한 주안상을 차려 내왔다. 기생들도 나오고 장고와 가야금에 맞추어 춤가락도 펼쳐지니 온 고을이 그야말로 떠나갈듯싶었다.

헌데 리지팡이를 따라온 구중 두놈이 술개나 얻어먹고 잔뜩 취한김에 다른 곳에서처럼 애꿎은 백성들의 가산이나 털어볼가 하고 방망이를 하나씩 옆구리에 차고 마을길로 들어서게 되였다. 아무렴, 큰 산같은 지평나으리가 뒤에 있는데 무지렁이같은 백성놈들이 어디라고 감히 맞선단 말인가.

비칠비칠 팔자걸음을 걷던 놈팽이들의 걸음은 어느 한 초가집의 사립문앞에서 멎게 되였다. 응당 열려있어야 할 문짝이 신수사납게 닫겨있었던것이다. 이에 화가 동한 놈팽이들은 냅다 발길로 문짝을 걷어찼다. 사립짝은 허줄하게 매달려있었는지 단방에 떨어져 마당에서 뒹굴었다. 놈팽이들은 그것을 보고 좋다고 히히닥닥거리였다.

방안에 누워 솔곳이 잠이 들었다가 와당탕하고 제 집마당에 뭐가 떨어져나가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란 그 집 할멈은 무슨 일인가 하여 벌컥 장지문을 열었다.

《못된놈의 로친이… 뻔히 안에 있으면서도 문까지 닫아걸어?》

할멈의 모습을 띄여본 놈팽이들은 제 몸도 가누지 못해 기우뚱기우뚱거리다가 아무렇게나 혀가 돌아가는대로 말을 내뱉아버리였다.

《문을 닫아걸고… 뭐… 술이라도 마셨나?》

시까스르는 놈팽이들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할멈은 《대체 뉘들이시오?》 하고 물으며 지팽이를 짚고 마당으로 나왔다.

《누굴 찾으시오?》

《누구긴 누구야, 로친이지…》

《로친, 나리님들이 모처럼 오셨는데 어서 주안상을 큼직하게 차리구래.》

《주안상이라니, 난데없이 웬 주안상 말이요?》

《주안상을 몰라? 그럼 알기 쉽게 설명해줄가. 술상을 차리란 말이야, 술상을!》

놈팽이들은 술잔을 들이키는 흉내를 내면서 서로 마주보며 좋다고 너털웃음을 쳤다.

《하루 세끼 목구멍가심할것도 변변히 없는터에 난데없이 술상이란 웬 말인고?》

《챠, 이 로친네 봐라. 우리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는 모양인데…》

《되겐 뻣뻣하게 나오는데?》

《로친, 나리님들의 약을 자꾸만 올리지 말고 좋게 말할 때 빨리 술상을 차려.》

《아니면 술사먹게 피륙이라도 꺼내놓던가…》

《그거 그럴듯해. 어서 움직여, 이 늙다리 할망구야!》

놈팽이들은 무작정 빈털터리 할멈을 쥐여짜낼 잡도리였다.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우리 손으로 죄다 가져가는수가 있어!》

말을 마친 그놈은 뜰안에 하나밖에 없는 장독곁에 다가가더니 독을 그러안고 끙- 하고 힘을 쓰는것이였다. 그러자 장독은 중심을 잃더니 옆으로 나자빠지였다.

《에구, 에구… 저걸 어쩌노!》

기겁한 할멈이 발을 동동 굴렀다. 허나 장독은 모난 돌에 얻어맞더니 딱- 하는 애처로운 소리와 함께 여러쪽으로 깨지며 무너앉는것이였다. 장국물이 쏟아져나와 사방으로 튀였다.

《이 불한당같은 놈들! 이놈들아, 백주에 이게 무슨 짐승같은짓이냐?!》

눈앞에서 전 재산과도 같은 귀한 장독이 맥없이 깨여져나가는것을 본 할멈은 두손으로 제 무릎만 털썩털썩 쥐여박았다.

《그래 내놓겠어, 안 내놓겠어?》

신을 신은채로 우르르 집안으로 쓸어들어간 놈팽이들은 장농을 부시고 창호지를 찢다못해 아궁이에 달려들어 솥을 뽑아내려고 악을 써댔다.

바로 그때였다.

《이놈들!》 하는 벽력같은 소리가 울리더니 놈팽이들의 몸뚱아리가 허궁 들렸다. 그리고는 어쩔새도 없이 하나씩, 하나씩 부엌문밖으로 날려가 마당에 쿵쿵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할멈네 집 부엌문밖으로 성큼 걸어나오는것은 다름아닌 등개의 아버지였다. 할멈네 집에 불량배들이 뛰여들었다는 말을 듣고 앞뒤 안 가리고 한걸음에 달려온 그였다.

《아이쿠!》

《이크!》

장국물에 범벅이 된 흙바닥에 코를 처박은 놈팽이들은 연방 죽는다고 소리들을 질러댔다.

《사람 죽인다!》

《사람 살려라!》

그러나 결이 아직 사그러들지 않은 등개의 아버지는 흙바닥에서 뒹구는 두놈의 멱을 량손에 거머쥐고 번쩍 일으켜세우더니 힘껏 두놈의 머리를 서로 짓쪼아놓았다.

《아이쿠!》

《악!》

얼굴들을 싸쥐고 나자빠진 놈팽이들은 발바닥으로 땅을 두드리며 통곡소릴 질렀다. 그러더니 놈들은 더 있어야 매벌이밖에 안된다고 생각했던지 후닥닥 울밖으로 달아빼는것이였다.

몇걸음 뛰던 놈들은 갑자기 뚝 멈추어서더니 아직도 자기들을 노려보는 등개의 아버지쪽에다 대고 《네놈이 감히 이 어른을 건드려! 어디 혼나봐라!》 하고 소리를 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등개 아버지가 몸을 움씰하는듯 하자 다시 덴겁하여 줄행랑을 놓았다.

그것을 울바자 한옆에서 빠짐없이 지켜보고있던 강씨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꼭 무슨 불길한 일이 하나밖에 없는 제 오라비에게 들이닥칠것만 같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강씨는 그때 왜 자기가 오라버니에게 빨리 몸을 피하라고 한마디 말을 못해주었는지 뼈아프게 자책이 되였다. 하긴 머리꼭대기까지 화가 돋아있는 오라버니가 녀동생의 말이나 듣고 몸을 사릴 사람도 아니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 일로 해서 등개 아버지는 관가에 붙들려가 몹시 얻어맞고 인사불성이 되여버렸다.

후에 들으니 간특한 구중놈들은 그때 관가로 뛰여가 리지팡이라는 량반에게 어느 로친의 집에서 란동을 부리는 무뢰배 한놈을 붙잡다가 되려 그 주먹에 얻어터지기만 하였다고 고해바쳤다는것이였다.

제 하인들의 못된 버릇을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리지팡이라는 량반은 감히 제가 부리는 노복들에게 불상놈이 손을 댔다는게 종시 속에서 내려가지 않아 그놈을 잡아들여 곤장맛을 좀 보여주라고 함께 있던 사또에게 말을 했다고 하였다.

빨래줄같은 리지팡이의 어마어마한 뒤배경에 환장을 했던 사또는 전후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두억시니같은 아전들을 대여섯이나 풀어 등개의 아버지를 붙잡아다가 형틀에 묶어놓고 죽도록 매를 안기게 하였다.

매를 들고나선것은 아까 혼쭐이 나 도망을 쳤던 바로 그 구중놈들이였다. 젖먹은 힘까지 다 짜내여 내려치는 호된 매질에 억대우같던 등개의 아버지는 그만 반병신이 되여 담밖으로 내쳐지게 되였다.

강씨는 더는 안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집에 불을 놓은 다음 야밤삼경에 솔가도주하여 여기 돌산도까지 건너오게 되였다.

돌산도에서 그들을 받아준것이 바로 삼보녀의 할아버지인 곡진이였다. 곡진은 배를 뭇는 장공들을 담책한 장주였는데 등개의 아버지가 차츰 몸이 추서는듯 하자 그에게도 도목일을 배워주기 시작하였다. 눈썰미가 빠른 등개의 아버지는 인차 한다하는 도목수가 되여 장주 곡진과 함께 리순신장군의 령에 따라 거북선을 뭇는 일에도 참가하게 되였다. 곡진은 늘 등개의 아버지와 붙어앉아 이것저것을 론의하였다. 등개와 삼보녀의 혼사문제도 바로 거기서 락착이 된것으로 강씨는 알고있었다.

강씨도 돌산도에 건너와서 해녀가 되였다. 그들이 눌러앉은 동네가 장공마을이면서도 해녀마을이였던 까닭에서였다.

강씨의 권고로 등개는 철이 들면서부터 곡진장주의 밑에 들어가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등개는 그 일이 마음에 들어 부지런히 배무이장을 오가며 열심히 배웠다.

등개가 배무이장에 장공일을 배우러 가고나면 항상 그와 붙어다니던 팔동이는 함께 놀 동무가 없어 늘 심심해하였다. 장공일을 같이 배우자고 권고도 해보았지만 팔동이는 그런데 취미가 없어하였다. 그렇지만 등개와 떨어져있기가 아쉬워 늘 배무이장주변에서 빈둥거렸다.

이따금 강씨는 해녀들과 함께 바다로 오고가다가 배무이장근처의 모래불에 홀로 멍하니 앉아있는 팔동이를 보게 되면 《너도 재간을 한가지 배우지 그러누나.》 하고 핀잔을 주기가 일쑤였다.

그때마다 팔동이는 《난 그런거 안 배워요. 난 춤군이 될터예요.》 하고 주먹으로 코밑을 뻑 씻고는 거북바위쪽으로 달아나버리군 하였다.

《표주박사건》이라 불리우는 그 일이 일어났을 때도 팔동이는 마을에 공리(공물관계일을 맡아보던 아전)가 온것도 모르고 거북바위근처에서 혼자 너덜너덜 춤을 추고있었다.

《오라버니!》

자기를 찾는 부름소리에 뒤를 돌아본 팔동이는 대뜸 반색을 지었다.

거북바위에서 마을로 향한 소로길 변두리에 삼보녀가 서있었던것이다.

《아이, 오라버니는 그냥 춤을 추는데 힘들지도 않은가봐.》

팔동이는 얼굴에 뒤집어쓰고있던 탈바가지를 냉큼 벗어 등뒤로 감추며 멋적게 《헤헤-》 하고 웃었다.

《누군가 했더니… 또 등개에게 밥을 날라주러 가니?》

팔동이의 말에 삼보녀는 손에 들고있던 보자기를 뒤로 감추었다.

《흥, 누가 그 오라버니에게 밥을 날라다주나? 별소릴 다 듣겠네. 이건 배무이를 하느라 수고하는 할아버지랑 울 아빠에게 가져가는거거던. 그 오라버니밥은 그 집 고모님이 요즘 몸이 말짼것 같애서 내가 가는 길에 같이 가져다주마 하고 함께 쌌을뿐인걸.》

삼보녀는 얼굴이 새빨개져가지고 둘러댔다.

《됐어, 발이 저려하긴… 말을 들어보니 이제 너희네 집하구 등개네 집이 사돈이 된다더라. 네가 등개의 새각시가 된다는 소리겠지 뭐. 등개의 새색시가 되면 삼보녀두 좋지 않아!》

팔동이는 삼보녀의 약을 올려주느라 덩실덩실 춤을 추는 흉내까지 내보이였다.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네. 그럼 오라버닌 누구한테 장가드나? 그 탈바가질 붙들구 세월 다 보내게…》

삼보녀는 이렇게 톡 쏘아주고는 밥보자기를 옆구리에 끼고 배무이장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삼보녀야, 가만…》

팔동이는 장난기가 동한 모양이였다.

《에, 한바탕 춤을 추었더니 막 목이 마른데 물이라도 한모금 주구 가려마.》

팔동이의 성화에 못이겨 삼보녀는 밥보자길 내려놓고 그안에서 호리병과 함께 깜찍스럽게 생긴 표주박을 꺼내들었다.

《누가 곱단다고… 물까지 달래.》

삼보녀는 눈을 흘기면서도 표주박에 물을 따라 팔동이에게 내밀었다.

표주박을 받아든 팔동이는 한번 숨을 후- 하고 불어내고는 꿀떡꿀떡 소리를 내면서 걸탐스레 샘물을 목구멍으로 쏟아넣었다.

《햐, 거 물맛 참 시원하다.》

팔동이는 팔소매로 입술을 쑥 닦고나서 손에 들고있던 표주박을 다시 삼보녀에게로 내밀었다.

《등개 그 자식 팔자만은 정말 부럽단 말이야. 삼보녀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어.》

그때 등뒤에서 갑자기 《에헴-》 하는 헛기침소리가 들렸다.

팔동이와 삼보녀는 깜짝 놀라 그쪽을 돌아보았다.

처음 보는 낯선 총각이 호기심어린 눈을 해가지고 바라보고있었다.

《에헤, 늬들은 여기서 대낮에 뭣들을 하는게야? 어스크레한 놈들같으니라구…》

보매 나이도 어슷비슷할것 같은데 첫 대면부터 반말을 하는게 팔동이의 귀에 상당히 거슬리게 들렸다.

《이건 또 어디서 굴러온 놈팽인데 감히 여기서 큰소리를 치는게냐?!》

팔동이는 허리춤에 두손을 가져다붙이고 이렇게 대들었다.

《에끼, 고현놈! 공리어른의 자제분도 몰라보다니… 알고있어? 우리 아버진 공리야. 네놈들한테서 공물을 걷어들이는 큰어른이란 말이야!》

그제서야 팔동이는 불청객의 우아래를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알만 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는것이였다.

《아하, 이제 보니 네가 그 공리네 집 〈둘째멍청이〉댔구나. 네 소문은 이미 익히 들었다.》

그 말에 둘째멍청이가 시뜻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도 날 알구있구나. 그래, 난 공리네 집 둘째멍청이가 옳다. 사람들이 모두 날 그렇게 부르더구나. 그러니 너희들도 그렇게 불러라.》

팔동이와 삼보녀는 어이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양을 본 둘째멍청이도 제가 말을 잘한줄 알고 덩달아 웃었다.

《가만, 네 손에 든게 뭐냐?》

둘째멍청이가 삼보녀의 손을 가리키였다.

삼보녀의 손에는 방금 팔동이가 물을 마신 그 표주박과 호리병이 들려있었다. 둘째멍청이가 가리키는게 바로 그 호리병이였다.

《이거 우리 아버지한테 있었는데 어떻게 네가 갖고있니? 아버진 내가 그걸 다치려면 못 다치게 하면서도 왜 그걸 너에게 주었을가? 분명 그안에 신선한테서 가져온 선단이 있다 그랬는데…》

삼보녀는 어이없어 뭐라고 말할지 몰랐다.

《이런 멍텅구리라구야… 그래, 동네 누렁개는 다 너네 개란 말이냐?》

팔동이도 어처구니가 없어하였다.

헌데 가만히 있던 둘째멍청이가 팔동이의 말을 듣고나더니 와락 달려들어 삼보녀의 손에서 호리병을 나꿔채는것이였다.

《어마나?!》

깜짝 놀란 삼보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거나말거나 둘째멍청이는 병마개를 열더니 호리병을 하늘로 쳐들고 그 구멍안을 들여다보는것이였다. 그통에 호리병안에 조금 남아있던 샘물이 쏟아져 둘째멍청이의 상판에 그대로 들부어졌다.

찬물을 상판에 뒤집어쓴 둘째멍청이는 놀라서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푸하하!》

한옆에서 그 모양을 구경하고있던 팔동이가 둘째멍청이가 노는 꼴이 우스워 웃음을 터뜨렸다.

《선단이 다 녹아버린 모양이구나, 괘씸하게!》

둘째멍청이는 애꿎은 호리병을 힘껏 집어던졌다.

《남의 호리병은 왜 던지면서 그래?!》

끈이 달린 호리병은 둘째멍청이의 손을 떠나 공중제비를 하더니 높은 나무가지에 걸려 내려오지 않았다.

《이런, 왜 남의걸 함부로 집어던지는게야!》

화가 동한 팔동이가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언제 집어던졌다고 그래?》

금시 둘째멍청이는 울먹울먹해졌다.

《이런 반편이라구야… 누가 이런 자식을 여기까지 데려왔어? 어서 썩 사라지지 못해!》

팔동이는 손에 쥐고있던 탈바가지를 내흔들며 소리쳤다.

무섭게 생긴 탈바가지를 보자 둘째멍청이는 화닥닥 뒤로 두어걸음 물러나더니 쏜살같이 마을쪽으로 달아나버리는것이였다.

《어디서 저따위 반편이 다 생겨났을가!》

팔동이는 달아나는 둘째멍청이의 등뒤에다 대고 주먹을 내흔들어보였다.

《저걸 어쩌니?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호리병인데…》

삼보녀는 나무에 매달려 데룽데룽거리는 호리병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걱정마, 내가 내려줄게.》

팔동이는 일단 삼보녀를 안심시키고나서 호리병만 올려다보며 저걸 어떻게 내리울것인가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저 높은 곳까지 닿을만 한 막대기는 당장 없는것이고 그렇다고 신짝이 걸렸을 때처럼 돌팔매질을 할수도 없었다. 호리병이 박살이 날 념려가 있었다.

(나무에 오르면 되지 않아!)

그러나 팔동이는 나무에 오르는 재간이 통 없었다.

하는수없이 팔동이는 수를 쓰기로 하였다.

《이거 시간이 많이 걸리겠는걸… 하지만 괜찮아. 가만, 삼보녀! 밥이 다 식겠는데 어서 할아버님께 가져다드리는게 어떻니? 호리병은 깜빡 잊어버리고 못 가져왔다구 해라. 내가 인차 저걸 내려서 가지구 갈테니 걱정말고 먼저 가, 응?》

밥이 식는다는 소리에 삼보녀는 아쉬운대로 발길을 돌리였다.

《빨리 따라와야 해요!》

허나 팔동이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 삼보녀가 아무리 기다려도 팔동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배무이장일이 끝나 마을로 돌아가던 곡진장주와 등개 그리고 등개 아버지와 삼보녀의 아버지가 삼보녀와 함께 거북바위에 도착했을 그때까지도 팔동이는 호리병을 내리우지 못하고있었다.

《너 아직도 그걸 못 내리웠어?》

삼보녀에게서 말을 다 들은 등개가 팔동이에게 나무라는 어조로 하는 말이였다.

《애를 써봤지만 난 안되겠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지 않구선 저걸 내리울 방도가 없어.》

팔동이의 입에서는 맥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한번 해볼가?》

곡진의 일행은 그들이 노는양을 지켜보기만 할뿐이였다.

등개는 장공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버릇처럼 늘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자그마한 손도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나무에 매달려 흔들거리고있는 호리병을 찬찬히 여겨보더니 엇!- 하고 힘을 주는것과 동시에 그것을 올려던지는것이였다. 호리병의 얇은 끈이 건너간 굵은 나무가지에 면바로 들이박힌 도끼날은 그 끈을 단박에 두동강내버렸다. 데룽데룽 매달려있던 호리병은 새파란 풀을 밟고있는 곡진장주의 발치로 뚝 떨어져내렸다.

《허허, 자네 아들 솜씨가 쓸만 하네그려.》

호리병을 받아든 곡진이 등개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원, 어른도… 애 듣는데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등개의 아버지도 나쁘지 않는지 허허 하고 웃음을 지었다.

곡진은 품속에서 장도칼을 꺼내더니 아무 미련없이 호리병을 세로 자르기 시작했다.

《장주어른, 그건 왜 자르시오이까?》

등개 아버지의 물음에 곡진은 《다 생각이 있어 그러네.》 하며 더 다른 말을 안했다.

잠간사이에 곡진의 손에서 하나의 호리병은 두개의 표주박으로 되여버렸다.

등개와 삼보녀를 가까이로 부른 곡진은 그들의 손에 그것들을 하나씩 쥐여주는것이였다.

《이것도 인연이니 잃어버리지 말고 고이 간수하도록 하여라.》

등개와 삼보녀는 각각 자그마한 표주박을 손우에 받쳐들고 얼떠름해 서있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싸고있던 어른들은 그 모양을 바라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혼기에 이른 처녀, 총각들이 표주박을 나눠갖는것은 돌산도에 전해져내려오는 오랜 풍습이였다. 집안의 어른들로부터 표주박을 받은 처녀, 총각들은 그것을 깨뜨리거나 잊어버리지 않게 늘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소중히 간수하였다. 그러다가 정작 시집장가가는 날이 오면 그것에다 혼례술을 부어 마시고는 백년언약의 상징으로 청실홍실로 묶어다가 신방에 걸어놓았다. 그러면 하나로 합쳐진 표주박처럼 두사람의 마음도 하나로 결합되게 되여 백년을 해로하게 된다고 믿고있었다.

이것으로 두집사이 오고가던 혼사말은 결판이 난셈이였다.

등개와 삼보녀는 그때부터 약혼한 사이로 되였고 이제 좋은 날을 받아 혼례식을 올리기로 되여있었다.

헌데 임진왜란이 터지고 왜적을 치러 나갔던 삼보녀와 등개의 부모들이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등개는 혼례식을 뒤로 미루고 전라좌수영의 수군이 되였다.

등개가 손에 들고나선것은 진짜 큰활이였다. 아버지를 닮아 힘이 장사인데다가 그동안 남몰래 수련해온 보람이 있어 등개의 활은 쏘면 쏘는대로 왜적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어느 바다싸움때에는 호화스런 다락배우에서 거들먹거리던 적장까지 한대의 화살로 단숨에 쏘아맞힌 공을 세운것으로 하여 군교로 발탁이 된 등개였다. …

강씨에게는 생각하면 할수록 대견스럽기만 한 아들 같은 조카였다.

(란리나 가시구선 제꺽 조카놈 혼사를 매듭지어주어야지.)

강씨는 정이 넘친 눈길로 삼보녀의 이곳저곳을 더듬어보았다.

《에그, 형님은 안 가실려우?》

물일하는 옷을 벗고 수건으로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던 상군 하나가 삼보녀에게 넋이 팔린 강씨에게 핀잔조로 이르는 말이였다.

《으응? 오, 가야지.》

강씨도 불기운에 김이 문문 피여오르던 물옷을 벗고서 바구니를 끄당겨 그안에 있는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머, 저게 뭐예요?!》

난데없이 삼보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녀들은 《무얼?》 하고 되물으면서 삼보녀의 손끝이 가리키는쪽으로 고개들을 기웃했다.

멀리 수평선너머로 지는해가 보였는데 그를 배경으로 돛을 올린 배 한척이 빠른 속도로 해안 저쪽을 향해 접근하고있었다.

《저쪽으로도 배가 들어오는가?》

먼바다쪽으로부터 들어오는 배를 여태 본적이 없는 해녀들은 의아한 눈빛들을 감추지 못하였다.

《저리로 배가 들어오는게 뭐가 신기해?》

《글쎄, 난 한번도 본적이 없으니 하는 말이지.》

《아마 우리 수군배가 먼데까지 나가서 순찰하고 돌아오는 모양일테지. 얼마나 고생들이 많을고…》

《혹시 공물을 걷으러 오는 관청의 배가 아닐가?》

《무슨 공물타령이람.》

《에그, 혹시나 저게 오랑캐놈들의 배가 아니요?》

《원, 재수빠지게스리… 한산도인가 어디 어귀에선가 리순신장군이 길목을 턱 가로막고있는터에 제놈들이 예가 어디라고 함부로 기여든단 말인가.》

《글쎄, 그건 그렇기도 한데…》

《게다가 지금은 〈강화〉인가 뭔가 하느라고 정신들이 없는가분데 어찌 왜적들이라고 함부로 나댕길텐가.》

《그 말에두 일리가 있어. 그 〈강화〉라는게 벌써 몇년을 끌어오고있으면서도 아직 결판을 못 냈지그래.》

《왜적들이 종시 항복할 마음이 없으면서도 수작질을 부리고있는게 분명하다니까.》

《에구, 그저 냅다 치면 속이 시원하련만…》

《자자, 팔자에 없는 점들은 그만들 치소그려. 입방아만 찧다가 집식구들 저녁 굶기겠나?》

《옳아요, 우리도 빨리 서둘러야지 그러다 정말로 식구들 저녁 굶기겠어요.》

해녀들은 이렇게 지껄지껄하면서 그동안 물이 쭉 빠진 그물망태들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둘이 같이 나누어 들기도 해가지고 대상군의 뒤를 따라 마을을 향해 걸음들을 놓았다.

해가 저물어 어스름이 살짝 내려덮인 돌산도의 로송숲속으로 해녀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오래도록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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