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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1. 병신년 시월 그믐


새벽바람을 가득 안은 순찰선의 돛폭은 푸륵푸륵 소리를 내면서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긴 밤을 거기서 보낸듯 아까부터 돛대우에 앉아있던 낯모를 물새 한마리가 흐트러진 궁둥이의 하얀 속털을 주둥이로 쓱쓱 문대기고나서 서쪽하늘을 바라보며 이따금 길게 울었다.

파도가 배전을 들이치는 단조로운 음향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노대들도 삐걱거리지 않고 그 노를 쥔 격군들의 먹임소리마저 없었더라면 정말로 이 바다가 아직도 잠을 자고있는듯이 생각될것이다.

등개는 격군들이 있는 갑판아래에서 나와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갑판우에 설치된 루대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그를 띄여본 군졸들은 저저마다 《교련관나으리, 벌써 일어나셨소이까?》 하고 문안인사를 여쭈었다.

그들에게 눈인사를 보내며 등개는 두어걸음에 한번씩 고개를 숙여보였다.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바다 멀리 수평선의 경계가 어슴푸레해졌다. 하늘에는 새별이 유난히 빛을 뿌렸다. 미명을 앞둔 바다라 칠흑같던 검은 장막이 차츰차츰 벗겨져가고있었다.

등개가 2층루대우에 올라서자 반나마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있던 군교 팔동이가 곱지 않은 눈길로 치떠보았다.

《흥, 몰래 기찰이라도 나왔나?》

《기찰이라니, 그건 무슨 말인가?》

《금방 교대를 해놓구선 안심이 되지 않아 〈렴탐〉까지 나왔으니 말일세. 왜, 이 팔동이가 뿌연 막걸리를 좋아한다구 이 머리속까지 흐리터분한줄 아나?》

《원, 사람두…》

등개가 사람좋게 웃으면서 팔동의 잔등을 철썩 갈겼다. 등개와 팔동이는 어릴 때부터 한마을에서 함께 자란 죽마고우였고 전란이 터지자 수군에 함께 들어가 수차례의 죽을고비도 함께 넘나든 절친한 사이였다.

등개는 팔동의 곁에 나란히 서서 바다쪽에 눈길을 돌리고 아직 채 밝지 않은 수면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일망무제한 바다는 스러져가는 밤기운에 취해 조용히 파도를 일구며 뒤척이고있었다.

온 바다에 이 배 하나만이 떠있는듯싶었다.

참다못해 팔동이가 입을 열었다.

《보라구, 쥐 죽은듯 고요해. 이 바다에서 언제 왜란이 있었던가싶거던… 싸움이 없으니 갑갑증이 다 날 지경이네. 그저 이런 때에는 술생각이 절로 난다니까! 등개, 이제 수영으로 돌아가거들랑 내 막걸릴 한사발 사겠네. 그간 이모저모로 신세를 좀 졌어야지…》

《그런 소리 말라구. 자네와 나사이에 신세를 지구말구 할게 뭐가 있겠나.》

《그래두 신세야 신세지. 빚을 지군 못 참는 성미란걸 자네두 잘 알면서 그러누만…》

《그래? 그것 참… 헌데 한사발이나 가지구 될가, 한독쯤이면 몰라두. 엥이, 안 마시겠네.》

《또또… 제가 술맛을 알면 얼마나 안다구…》

팔동이가 모난 얼굴에 징글사 한 웃음을 띠우며 일이라도 칠듯 팔을 썩썩 걷어붙이고 다가왔다.

《가만있게! 오지 말라구.》

등개는 벌써 팔동이의 소름끼치는 그 놀음을 간파하고 두팔을 겨드랑이에 바싹 모아붙이며 밤송이처럼 웃몸을 옹송그려 방어자세를 취하였다.

《다시한번 말해보라구. 정말루 안 마실텐가?》

《사나이 한입으로 어찌 두말을 할가.》

팔동이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와락 등개에게 달려들었다.

《애개개!》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는 등개는 사납게 달려드는 팔동이때문에 몸을 비틀며 루대꼭대기에서 태질을 쳤다.

《그만, 그만하라구! 아이구, 사람 살려라!-》

《암만이구 소리쳐보지… 어때, 이래두야?》

《흐흐흣, 간지러… 아하, 간지러워!》

《답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테다.》

《그만둬, 제발 그만두게!》

《어디 한번 혼쌀나봐!》

한참동안 엎치락뒤치락하며 찧구 까불던 두 군교는 숨이 턱에 닿아서야 씩씩거리면서 잠시 들뜬 가슴들을 진정시키였다. 요즈음 해상근무로 서로 만나는 일이 드문했지만 그들은 마주서기만 하면 순간에 동심에 들어 어릴 때처럼 장난을 쳤다.

《에, 숨차다. 어때, 혼났지?》

《십년 체증이 뚝 떨어졌네. 다신 그러지 말게.》

《거야 내 맘이지. 헌데 자네 정말로 술을 아예 끊었나?》

《끊기야 뭘… 그저 지금은 좀 아니다싶어서 그럴뿐이지.》

등개는 한쪽으로 삐뚤어진 전립을 바로잡으며 일어나 앉았다.

《왜? 지금이야 태평시기가 아닌가.》

《태평은 무슨 개똥… 일시적일뿐이야.》

정색해진 등개가 옷을 활활 털며 벌떡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통에 팔동이도 덩달아 란간을 붙잡으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임진년에 불시에 들이닥쳤던것처럼 조만간 왜적들이 다시 쳐들어올건 뻔해. 지금 쉬쉬하며 돌아가는 소문을 자네 못 들었나? 그놈들의 재침입은 이제 시간문제라니까.》

등개는 란간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며 아직은 어둡고 고요하기만 한 먼바다쪽으로 시선을 던져버렸다.

검푸른 바다가 불안스레 출렁거리는것 같았다.

그러나 팔동이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웬걸, 그건 그때 가서 봐야 알노릇일세! 그만큼 혼쭐이 난 왜구들인데 어디라고 감히 기여든단 말인가! 어제 수영에 왔던 옥관자를 붙인 대감이 하는 말을 자네도 들었지? 왜적들과의 〈강화담판〉이 거의 무르익었다구… 통신사가 왜나라로 건너갔다네. 이제 그 일만 잘되면 왜병은 조만간 물러갈거구 전란도 끝장이 날걸세.》

《그랬으면야 여북 좋겠나. 헌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거야. 저 섬나라오랑캐놈들이 여간만 간사하고 능청스러워야 말이지.》

등개는 이렇게 말하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팔동이 등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걱정두 팔자다. 우리 같은 군교나부랭이들이 걱정한다구 뭐가 달라진대? 싹 걷어치우라구! 그걸 생각할 벼슬아치들은 따로 있어. 주제넘은 생각일랑 말구 우리 아까 하던 막걸리생각이나 마저 하세나.》라고 하며 그의 몸을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는것이였다.

등개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팔동의 손을 밀며 핀잔을 놓았다.

《뽕딸 생각일랑 말구 바다나 잘 살피게.》

그 말에 팔동이는 《허허-》 하고 웃음을 흘리였다.

《이것 보라구, 등개. 자네가 아직 그 집 주모를 본적이 없어서 그래. 허리가 얼마나 잘룩한지 아나. 얼굴은 또 얼마나 밴밴하다구… 치마를 요렇게 들구 발볌발볌 술좌석을 오구가는데 히야, 그때마다 얼핏얼핏 드러나는 흰버선하구 매끈매끈한 장딴지를 보느라면 정말로 숨이 꺽꺽 막힐 지경이라네.》

팔동이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치마입은 술집계집의 걸음새를 흉내내는데 그 모습이 하도 신통하여 등개도 도저히 웃지 않을수가 없었다.

《허허-》 하고 허거픈 웃음이 등개의 입에서 새여나오자 팔동은 더욱 신이 나서 주막집녀인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한번은 말이야, 히히… 그 아낙네가 술을 따르다가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모르고 그랬는지 아, 고것이 내 무릎에다 훌쩍 술을 흘리지 않았겠나. 〈이크, 치겁다!〉 하고 놀라는차에 그 계집이 〈아이, 어쩌나…〉 아, 요리면서 제 치마를 뭉텅 들어 그걸로 무릎을 쑥 문대주겠지, 히히. 그바람에 난 온몸이 찌륵찌륵해져서 사지가 마비되는듯싶더군. 왜 그런가? 흐흐, 글쎄 내 손이 내 무릎우에 놓여있었거던. 그러니까… 뻔하지 않은가. 그 주모의 치마밑에 내 손이 들어간셈이 됐지 뭔가! 손끝에 닿은게 내 허벅지인지 주모의 허벅지인지 분간을 못하겠더라니까! 심장이 그냥 쿵닥쿵닥 방아질을 해대는데 이거야 어디 진정을 할수가 있어야지… 그래 내 막걸리 한사발을 단숨에 들이키고 벌떡 일어나 나오구말았다네.》

《하하하.》

별안간 허리를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치는 등개를 팔동은 헤식은 웃음을 담은 눈길로 쳐다보았다.

《임자두 참, 우…우습지?》

등개는 그냥 머리를 흔들어대며 웃기만 하였다. 그 웃음소리는 점점 습한 대기를 헤가르며 높아갔다.

비꼬는듯 한 등개의 표정에 속이 달아오른 팔동은 성가시게 매달리며 《왜 이리 크게 웃는거야? 사람들이 듣겠네!》 하며 등개의 입을 막으려들었다.

《이거 좀 조용하게!… 그날 정말 일어서서 내 발로 나왔다니까. 이건 사실이야.》

《그럴테지. 암, 그렇구말구! 하하하!》

등개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웃어대였다.

《제길할, 정 약을 올릴텐가!》

《하하하, 그럼 그 주모의 서방녀석한테 늘씬하게 얻어맞구 쫓겨난건 딴 녀석이였던게지. 자넨 곱게 나왔다니 말이야, 하하하…》

《젠장… 늘씬하게 맞기야 뭘… 기껏해야 계집 손목 한번 잡았다가 짚신짝에 얻어맞은걸 가지구, 괜히… 허허허… 난 그 서방녀석이란게 그런 왈패일줄은 정말 몰랐다니까! 장담하건대 난 꼭 한대만 맞았을뿐이야. 그것도 비껴맞았지.》

《으하하!》

등개는 아예 너털웃음을 터뜨리였다.

《제길, 계속 웃을테야?!》

약이 바싹 오른 팔동은 등개의 량쪽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간지럼을 피워댔다.

《아갸갸, 아얏! 그만… 그만… 하라니까! 앗하하!》

등개는 연방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너무 간지러워 등개가 눈물까지 찔끔 흘리고나서야 팔동이는 그에게서 떨어졌다.

《잘못했지?》

《내가 졌네, 졌어. 이젠 됐지?》

《에끼, 이 사람아!》

팔동이도 얼굴에 웃음을 담고 등개의 가슴팍을 슬쩍 쳤다.

《하하하!》

등개와 팔동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먼바다를 바라보며 통쾌하게 웃었다.

그러는 사이에 순찰선은 남해도의 변두리를 에돌아 퍼그나 바다길을 축내였고 눈앞으로는 돌산도가 가까워지고있었다.

거밋거밋한 섬의 자태가 점점 다가오자 문득 팔동이가 이런 말을 꺼냈다.

《자넨 언제까지나 삼보녀를 그렇게 내버려둘셈인가? 왜적들도 물러갔는데 이젠 마련을 봐야 하지 않겠나.》

팔동이의 그 말에 등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삼보녀!

가만히 입속으로 불러만보아도 명치끝이 찌르르해지며 가슴이 자꾸만 들먹여진다. 삼보녀는 다름아닌 등개와 약혼을 한 랑자의 이름이였다.

등개는 저도 모르게 허리춤에 항상 매달고 다니는 깜찍스레 생긴 표주박에 손을 얹어보았다. 볼록하고 매끈매끈한 뒤면에 손바닥이 닿았다.

그 순간 등개의 마음속으로는 형언할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파동을 일으켰다. 표주박은 등개와 삼보녀가 약혼한 사이임을 밝히는 정표와도 같은것이였다. 무쇠덩이같은 그의 심장을 꽉 채워버린 그 랑자는 어려서부터 등개에게 목수일을 배워준 장주 곡진의 외손녀였다. 장공일을 하던 등개와 삼보녀의 부모들은 다 왜란초기에 무도한 왜적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란리때 왜적에게 생때같은 목숨을 빼앗긴 사람이 어찌 등개와 삼보녀의 부모들뿐이랴. 임진왜란은 등개와 삼보녀만이 아닌 이 나라 백성들 누구나에게 커다란 슬픔과 재앙을 가져다준 횡액과도 같은것이였다.

바다건너 섬오랑캐들은 이 전쟁을 오래전부터 준비했었다.

100여년간의 국내전쟁으로 한껏 사나워진 사무라이무리들을 가까스로 휘여잡은 도요또미 히데요시에게는 시급히 풀어야 할 난문제가 한가지 있었다.

수많은 다이묘들과 제장들이 《관백》인 히데요시에게 《스스로》 칼을 바치고 항복해왔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정예》한 대군이 남아있었고 그만한 병력이면 옹근 한차례의 전쟁을 치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따라서 섬나라의 《관백》에게는 피에 주려있는 《용장》들과 걸핏하면 칼부터 빼드는게 버릇처럼 굳어져버린 휘하 사무라이들의 과잉된 용력을 어떻게 해서든지 깡그리 배설하고 소모시킬 대상지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도요또미는 그 대상지를 조선으로 선정하였다. 본시 바다도적의 피가 꿈틀거리고있는 흉악한 왜인들로서는 태평스런 기운에 둘러싸여 호젓한 젖빛안개속에 잠들어있는듯 한 기름진 조선땅을 그대로 한옆에 곱게 내버려두고 못 본척 한다는게 속이 부걱부걱 끓어오르는 모양이였다. 도요또미의 심정도 다를바없었다.

하여 조선침공준비를 갖추라는 《관백》의 령이 전국에 떨어지고 그때로부터 사무라이들은 밤잠을 잊고 칼을 갈았다. 달밤에 썩썩 칼을 가는 소리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바다건너 조선땅에까지도 들릴상싶었다.

그때문인지는 모르나 왜적들이 우리 나라에 침입하기 썩 이전부터 나라안에서는 별의별 흉흉스런 소문들이 가만가만 떠돌았다. 신묘년(1591년)에 한강상류로부터 죽은 자라가 굉장히 많이 떠내려와 보는 사람마다 놀랐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또 한강물빛이 갑자기 붉어져 주변사람들이 모두 근심에 싸였다는 소문이다. 또 그로부터 얼마 있지 않아서는 임금이 정사를 보는 대궐안의 숲속에서 비둘기처럼 생긴 재빛색갈의 낯모를 새 한마리가 밤새도록 《각각화도.》, 《각각궁통개.》라고 슬프고도 다급하게 울었다는 이야기가 이 입, 저 입을 거쳐 장안을 좁다하게 휘젓고 다녔다.

《각각화도》라는 말은 《각자 화를 피하여 멀리 도망하라.》는 뜻이고 《각각궁통개》라 함은 《각자 갑옷과 전동을 착용하라.》는 소리라 풀이하는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대로 일리가 있는 말들 같았다.

이상한것은 그 새가 울기 시작한 그날이 바로 임진년(1592년) 4월 임인일인데 바로 그날에 왜구들이 부산에로의 침입을 시작했다는것이였다.

어쨌거나 이 모든 풍설들이 가짜였는지 진짜였는지는 알수 없어도 나라에 재앙이 박두했음을 알리는 전조 같은것들이 꽤 있었다는 설명으로써는 충분할듯싶었다.

임진년 4월 임인일 즉 1592년 4월 13일 잔파도 설레이던 조선반도의 한끝 부산앞바다로는 대마도를 거쳐 바다를 건너온 왜적의 함선들이 끝이 안 보이게 몰켜들었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허락도 없이 떼거리로 쓸어들어온 도적배들은 못난 원숭이들처럼 들까부는 섬오랑캐들을 그야말로 한바리씩 통채로 쏟아놓았다.

임진왜란이 바야흐로 시작된것이였다.

긴칼과 조총으로 무장한 섬나라의 망나니들은 꽥꽥 알지도 못할 소리를 사납게 울부짖으며 신성한 땅을 감히 어지럽히였다.

산천초목도 비분에 떨고 산간벽지의 금수들마저 격분으로 이를 갈았다.

부산과 동래가 련이어 침략자들의 무지스런 발길아래 짓이겨졌고 겁을 먹은 관료배들은 저저마다 제 살구멍을 찾기에 바빴다. 임금마저 보따리를 싸쥐고 뒤문으로 빠져서는 누가 볼세라 서둘러 피난길을 떠나버렸다.

인정많고 맘씨고운 이 나라의 백성들은 왜적의 칼날앞에 수난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칼부림에 이골이 날대로 난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사촉을 받은 섬오랑캐들은 단숨에 큰길을 따라 조선땅 주요거점들을 겁탈하였다. 무너진 경상도의 수군과 륙군을 시까스르며 진격을 거듭한 오랑캐들은 부산에 기여오른지 불과 한달도 못되는 사이에 조선봉건왕조의 오랜 수도를 함락시키고말았다. 물밀듯이 쓸어드는 왜군의 조총소리와 매캐한 화약연기는 실로 무덤구뎅이에서 뛰쳐나온 형형색색 도깨비들의 지랄발광을 방불케 하였다.

나라님도 버리고 간 조상의 땅이 바다를 건너온 도적의 발굽아래 치를 떨었다. 살륙의 낮과 밤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죽음의 아우성조차 살아남지 못했다.

원통하게 죽어간 백성들의 한이 맺혀 식지 못한 더운 피는 그대로 지심에 고여 부글부글 암장처럼 끓어번지다 못해 마침내 활화산이 되여 이 땅우에 터져올랐다.

백성들의 의병투쟁은 시작부터 이렇듯 처절하였다.

임금님은 수레에 올라 피난길을 떠났어도 백성들은 향토를 저버릴수 없었다. 왜적이 쳐들어온다는 한마디의 말에 량반과 관료배들은 줄행랑을 놓았지만 천대받고 멸시받던 이 나라의 인민들은 절대로 그들의 뒤를 따를수가 없었다.

누구의 말이였던가. 《나라는 임금의 나라도 아니고 관리의 나라도 아니다. 나라는 오직 백성의 나라일뿐!》이라는.

국난을 당한 이때 제 살구멍을 찾은것은 통치배들뿐이였고 나라를 위하여 서슴없이 목숨을 내던진것은 오직 백성들이였다. 짓밟히고 천대받던 이 땅의 백성들은 나라의 운명을 고스란히 떠안고 죽음이 도사리고있는 왜적과의 싸움터에로 용약 달려나갔으며 오랑캐들의 흉탄에 피를 쏟으면서도 열손가락으로 이 땅을 부둥켜잡고 몸부림을 쳤다.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이 나라 의병들은 고향땅을 강점한 섬나라오랑캐들을 무찔러 죽음마저 불사하고 멸적의 창검으로 임진년의 력사를 새로이 써나갔다. 성가퀴에서 혹은 어느 이름모를 산골짜기에서 그들이 흘린 남모르는 피가 고이고 모여 가증스런 원쑤들의 머리우에 죽음과 공포의 파도로 덮쳐들었다.

흉악한 원쑤들은 전률하였다. 파렴치한 왜오랑캐의 털부숭이심장들은 정의의 성전에 떨쳐나선 조선백성들의 분노에 찬 노성에 한줌도 못되게 오그라들었다.

오랑캐를 물리치는 가장 통쾌한 격전은 바다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등개는 그 모든 승리의 기쁨들을 낱낱이 기억하고있었다.

옥포해전과 합포해전 그리고 적진포해전에서 오만을 떨던 왜적의 침략함대는 기절초풍할 정도의 심대한 타격을 입고 황급히 패주하였다.

첫 싸움에서부터 조선수군의 위용에 압도된 왜구들은 그후부터는 감히 맞서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가장 볼만 했던것은 거북선이 처음으로 자기의 위력을 남김없이 과시한 조선수군의 제2차출전이였다.

《왜적의 함대가 이제 곧 사천, 곤양, 로량앞바다로 기여든다 하오이다!》

경상우수영으로부터 날아든 전갈을 받아든 좌수사 리순신은 지체없이 왜적을 맞받아 함대들을 출동시켰다.

경상도앞바다에 이르니 과연 섬오랑캐놈들의 싸움배들이 포구에 새까맣게 몰켜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까마귀들이 바다를 한벌 뒤덮은것 같았다.

《적을 유인하라!-》

리순신장군의 령에 따라 조선함대는 거짓공격을 단행하다가 하나, 둘 포구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등개가 타고있던 판옥선(임진조국전쟁시기 조선수군의 기본싸움배)도 지기 시작하는 썰물에 때를 맞추어 배머리를 뒤로 돌렸다.

《도망친다! 추격하라!》

해적출신으로 바다싸움에선 이골이 텄다고 하는 왜장 가끼누마 마사가께가 리순신장군의 유인전술에 걸려들었다.

《도망치는 조선함대를 놓치지 말고 추격하라, 빨리!》

혁혁한 전공에 눈이 어두웠던 가끼누마는 자기의 상대가 누구인줄도 모르고 배갑판에 설치한 높은 다락꼭대기에 올라 자기 함대를 싸움에로 독려하며 호통을 쳐댔다.

《하하하! 너희들도 보고있느냐? 이제 곧 바다의 신인 이 가끼누마 마사가께앞에 조선의 수군이 무릎을 꿇게 될것이다!》

아다께부네라고 부르는 십여척의 호화스런 다락배들은 《도주》하는 조선수군의 싸움배들을 쫓아 헐레벌떡 넓은 바다로 뛰여나왔다.

등개는 악악 고함을 지르며 자기들의 배를 뒤쫓아오는 왜적들을 향해 연방 화살을 날려보냈다.

핑핑핑- 하는 소리와 함께 시위를 벗어난 살들은 마치 그 끝에 눈이 달리기라도 한것처럼 어김없이 왜적들의 숨통을 꿰질렀다. 왜적들은 악에 받쳐 조총을 란사하였다. 왜적의 흉탄이 무질서하게 날아와 사방에 들이박혔다.

《앗!》

등개는 펑끗하고 관자노리쪽에서 뭔가 튀는 느낌에 눈을 감았다.

(맞았구나!)

볼편을 타고 뜨끈뜨끈한것이 흘러내렸다. 피같았다. 하지만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등개는 살며시 얼굴을 만져보았다. 분명 피가 흘러내리고있었다.

소매로 그것을 썩 닦아낸 등개는 무심결에 옆을 돌아보다 깜짝 놀라 두눈이 휘둥그래지였다.

바로 자기의 발밑에 돌격장 송만춘장군이 얼굴에 온통 피자박이 된채로 쓰러져있지 않는가! 가보니 이미 숨져있었다.

《돌격장이 숨졌다!》

등개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아, 돌격장이 죽다니…》

《악귀같은 왜적들!》

모여온 군사들은 저저마다 주먹들을 내흔들며 격분을 감추지 못해하였다.

돌격장을 잃은 군사들은 흡사 성이 난 호랑이들처럼 길길이 날뛰였다.

《제길, 어째서 그냥 꽁무니만 빼는거야?!》

《화포라도 한방 시원하게 갈겼으면…》

하지만 군령은 어길수가 없었다.

노가 많은 왜적의 배는 점점 등개네 싸움배와의 거리를 좁혀들어왔다.

《돌격신호기발이 올랐나?》

《아직 아닐세.》

《저놈들이 저렇게 가까이 오는데…》

정말 가까이에서 왜적들이 내쏘는 조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졌다. 한꺼번에 발사된 탄알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아와 갑판의 널쪽들을 마구 물어뜯었다.

《이러다 다 죽겠다!》

당황해하는 군사들도 보였다. 그러나 돌격장이 죽었으니 그들을 지휘할 사람도 없었다.

《제길, 어째 돌격기가 안 오르는게야?!》

이때였다.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갑판을 짓눌렀다.

《모두 내 말을 들으라!- 돌격기가 오르기 전까지 모두 제자리들을 지켜라!》

지휘다락우에 올라선것은 손에 강궁을 틀어쥔 등개였다. 볼편이 피자박이 된 등개는 무서운 눈길로 왜적들을 쏘아보고있었다. 픽픽 소리를 내며 조총탄알들이 날아와 주변의 기둥과 란간들을 뜯어댔지만 등개는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군사들은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하면서 어서빨리 반돌격을 알리는 신호기가 올랐으면 하고 좌수사가 타고있는 지휘선쪽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돌격기만 올라봐라. 저 왜장놈의 가슴팍에 기어코 활촉을 박을테다!)

하지만 돌격기는 안타깝도록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퇴각》하는 판옥선들의 사이로 거북선이 들어서는것이 보였다.

《반돌격이다!》

돌격기가 오른것은 바로 그때였다.

격군들은 힘을 합쳐 배를 돌려세웠다. 조선수군의 싸움배들에 설치된 노는 근접거리에서도 사용할수 있도록 아래쪽으로 휘여들어있었기때문에 기동성에서 아주 효과적이였다.

거북선의 뒤를 따라 조선수군의 싸움배들은 다시 시작된 밀물을 타고 반달형의 포위환을 형성하였다.

《화포를 발사하라!》

리순신장군의 군령이 신호기로 각 전함들에 전달되였다.

《사정없이 들부셔라!》

쾅, 콰쾅-

멸적의 포문이 왜적의 배를 겨냥하여 불을 뿜었다.

왜적들은 휘둥그래진 눈으로 판옥선들사이에서 슬며시 나타나는 거북선을 얼나간듯 바라보았다. 섬오랑캐들에게 그 배는 지금껏 본적이 없는 분명한 바다괴물이였다. 정신이 핑 돌 지경이였다. 그통에 사방에서 날아오는 포탄세례는 피할념도 못하였다.

《어어, 저… 저게 뭐야?! 괴물이다… 바다괴물이다!》

《천조대신님이시여, 살려주옵소서!》

갑자기 왜적들의 배에서는 일대 수라장이 펼쳐졌다.

(괴물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마사가께는 술기운탓인지 아니면 어디서 피여나는지 모를 매캐한 연기때문인지 자꾸만 앞이 흐릿해지는 제 눈을 손등으로 비벼가며 졸병들이 마구 손짓을 해대면서 고아대는 앞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엉, 저게 뭐야?!》

깜짝 놀란 가끼누마 마사가께는 하마트면 다락에서 아래로 곤두박질할번 하였다. 반돌격해오는 조선수군의 싸움배들의 선두에 괴물같은 형국의 배들이 서있는것을 보았던것이다.

외형만 보아도 퉁방울처럼 치뜨고 희번득이는 눈이며 쩍 벌린 아가리로 꾸역꾸역 토해내는 무시무시한 연기, 뿔이 돋은 룡대가리와 주름잡힌 목이며 거무스름한 몸뚱이를 온통 뒤덮은 날카로운 창끝들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바다괴물을 련상시키였다.

왜장 가끼누마 마사가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조총을 쏘라!》

마사가께의 말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왜졸들은 저저마다 총대들을 뽑아들고 거북선을 향해 꽝꽝- 철알들을 쏘아댔다.

하지만 거북선은 꿈쩍도 안하였다.

《으악, 들이받는다!》

쿵- 하는 둔중한 소리가 울리고 다락이 삐이걱 소리를 내며 갑판에 무너져내렸다. 그토록 큰 배가 통채로 움씰거렸다.

거북선에 들이받기운 호화스런 다락배는 어디가 깨졌는지 뿌지직- 뿌지직- 소리를 내면서 거대한 몸뚱이를 한쪽으로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앗, 제길할!》

마사가께는 더 생각할 사이도 없이 무거운 갑옷을 활활 벗어던지고 차디찬 바다물속에 뛰여들려고 하였다. 그때 어디선가 윙- 하는 소리와 함께 그게 뭔지 알아차릴새도 없이 자기 몸이 허궁 뒤쪽으로 나떨어지는것을 느끼였다.

《으악!》

가슴에 화살이 박힌 가끼누마 마사가께는 첨벙- 하고 물속에 떨어지고말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에 눈돌리는 놈도 없었다.

바다물을 꼴깍꼴깍 삼키며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 마사가께… 그는 자기의 함대가 여지없이 박살나는 장면을 더는 지켜보기 괴로운듯 눈도 못 감고 깊디깊은 바다물밑 어두운 곳으로 조용히 사라져버리였다.

전멸의 운명에 빠져든것은 비단 가끼누마 마사가께의 함대뿐이 아니였다.

며칠후 당포, 당항포앞바다에서는 구로시마와 가메이의 대함대가, 한산도를 지나 견내량쪽에서는 와끼사까의 침략선들이 그리고 안골포어귀에서는 구끼와 가또의 싸움배 수십여척이 변변히 대항 한번 못해본채 조선수군의 공격앞에 차례차례 녹아나버렸다.

조선남해의 제해권은 완전히 조선수군의 수중에 장악되게 되였다.

원래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계책이란 《수륙병진》즉 바다와 륙지로 동시에 쳐들어가 일거에 목적을 달성해버리는것이였다.

《수륙병진》작전계획에 따라 왜적수군은 물밀듯이 북상하는 지상부대의 진격을 뒤받침하면서 조선서해로 깊숙이 들어가 륙군과 합세하여 전쟁을 결속하게 되여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중임을 맡고있는 수군이 리순신장군에 의해 남해가에서 발목을 잡히게 되자 위협을 느낀 왜적륙군은 더이상 북상에 매달릴수 없었다. 평양성까지 강점하여 한껏 기고만장해졌던 섬나라오랑캐놈들은 더는 전진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바다를 잃은 왜적들은 더이상 허망한 《수륙병진》작전계획에 미련을 품을수가 없었다. 수군의 좌절과 동시에 고립무원한 처지에 빠져든 륙지의 왜적들은 차지한 계선에서 완전포위에 들 위험에 빠져들었다. 해상보급로의 차단이란 곧 내륙깊이 쳐들어간 전 왜군의 완전포위와 나아가 혹독참담한 괴멸을 의미하였기때문이였다.

마침내 적들은 총퇴각을 시작하였다.

고니시 유끼나까와 가또 기요마사, 우끼다 히데이에와 구로다 나가마사, 모리 요시노리가 평안도와 함경도, 한성과 황해도, 강원도를 비롯한 전략적요충지들마다에서 저저마끔 퇴각을 부르짖었다.

군침을 질질 흘리며 조선땅에 함부로 발을 들이밀었던 날강도 섬오랑캐놈들은 불과 1년도 채 버티여내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만을 산더미처럼 남긴채 꽁지가 빳빳해서 줄행랑을 놓았다.

관군과 의병들은 도처에서 도망치는 왜적들을 섬멸하기 위한 일대 추격전을 개시하였다.

욕심을 참지 못해 남의 나라 땅에 침략의 검은 발을 들이밀었던 왜적들에게 구차하게라도 살아남을 단 한가지 방도는 항복하는 길뿐이였다.

놈들은 휴전을 제기하였다.

쌍방간의 모든 군사행동을 잠시 중단하자는 놈들의 제의는 조정의 론난을 불러일으키였다.

바야흐로 전몰의 문턱에서 헤매는 왜나라야수들에게 시간을 줄것이 아니라 그 명줄을 단호히 끊어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항간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허나 백성들의 의사와는 상반되게 량반관료배들속에서는 《강화담판》의 기회를 리용하여 어쩌면 이 전쟁을 끝장낼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회의론이 대두하였다.

어쨌거나 이러저러한 리유로 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난 그 다음해인 계사년(1593년) 9월부터 전쟁은 일시 중지상태에 들어가게 되였다. 일체의 군사적행동들은 모두 억제되였다.

남해가의 좁은 지역에 몰켜든 왜적들은 감히 그밖으로 나올념을 못하였다.

이렇게 해를 넘긴지가 벌써 3년, 그 《전쟁의 일시중지》바람에 기약을 모르는 태평스러운 시간이 흘러가게 된것도 사실이였다. 실지로 많은 사람들속에서 더는 전쟁이 없으려니 하는 말들이 신빙성을 띠고 전파되고있었다.

그러니 삼군(삼도수군)의 말직군교인 팔동이까지 삼보녀와의 혼사문제로 등개에게 성화를 먹이는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것이였다.

하지만 등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그렇게 쉽게 물러갈 왜적들이면 애초에 이 땅에 들어오지조차 않았을것이였다. 저기 저 부산의 좁은 골목에 오골오골 틀고앉은 섬오랑캐놈들은 《강화담판》을 구실로 시간을 벌고있었다. 치째진 상처를 혀바닥으로 핥으며 다시 달려들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승냥이들처럼 가쁜숨을 고르고있을뿐이였다. 멋모르고 들어왔다가 호되게 얻어맞고 물러선 놈들이라 소모된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할것이였다. 분명코 적들은 얼마간 힘을 축적하고나서 다시 밀려들것이 뻔했다. 단지 오늘일지, 래일일지 그것을 알수 없을따름이였다.

얼마전 한산도에 갔던 등개는 하루빨리 거북선무이를 다그치며 바다경계를 강화하라는 통제사 리순신장군의 명을 받으며 제 생각이 백번 옳았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옳거니! 리순신장군의 생각이 저러할진대 내 어찌 군복입은 사람으로서 추호인들 허망한 생각을 할수 있단 말인가.

《장군의 명을 목숨으로 받잡겠소이다!》

등개는 그날 리순신장군앞에서 이렇게 굳은 맹세를 다짐했었다. …

그러니 삼보녀와의 혼사문제도 당분간은 뒤로 미루는것이 옳은 처사라 생각되는 등개였다.

《자네 생각은 고맙네만 아직은 때가 아닌것 같애.》

《또 그 소린가. 임자 고집은 여전하구만.》

팔동이는 도리머리를 흔들며 혀를 끌끌 찼다.

《삼보녀가 애타하는 심정도 알아줘야지.》

그의 말에 등개는 말없이 서있었다.

륙지쪽으로 길게 뻗은 돌산도를 옆에 끼고 순찰선은 좁은 물목을 빠져 전라좌수영이 있는 려수반도쪽으로 배머리를 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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