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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회

제 2 장

1926년 여름

5


《황제어새라니요?》

한순간에 피가 멎어버린듯 윤씨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녀인은 돌처럼 굳어진 입술을 가까스로 놀려 말했다.

《고종황제께 비밀옥새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저는 지금껏 들어본적이 없사옵니다. 더우기 그런 옥새를 제가 건사하고있다니 아버님, 그건 허무한 소문이옵니다.》

처마로 들이붓던 소나기가 지나갔는지 락수물 떨어지는 소리만이 소란스러웠다. 어수선산란한 그 소리사이로 절망을 쏟아놓는듯 한 윤택영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바람이 다 빠져버린 풍선처럼 후주른하고 주눅이 든 모습으로 딸앞에 앉아있었다.

부어오른듯 한 눈거죽속에 움푹 꺼져들어간 두눈은 애원에 차있었고 괴롭게 이그러진 이마는 긴장으로 팽팽해있었다.

고통스러운 침묵이 방안을 바위처럼 지지누르고있었다. 한참만에 윤택영이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비전하, 고종황제의 옛 신하로서, 더구나 전하의 아비된 몸으로 이런 불충불의한 청을 올리게 됨이 죽기보다 더 괴롭나이다. 하오나 백척간두에 올라있는 이 아비의 사정을 헤아려주사이다. 정말로 대비전하께옵서 황제어새를 간수하고계신다면 이 아비의 운명은 전하의 손에 쥐여져있는것이나 다름없사오이다. 대비전하, 부디 하량해주사이다.》

윤택영의 하소연은 간절했다. 딸더러 고종황제가 맡긴 옥새를 자기한테 넘겨달라는것이였다.

전날 그가 은밀히 최박만과 따로 만났을 때였다.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최가의 입에서 왕청같은 소리가 튀여나오는것이 아닌가.

《소인의 요구조건이랑게 딴게 아니올시다. 듣자니 황제어새라고 그전에 덕수궁 리태왕전하께옵서 사용하시던 옥새럴 대비전하께옵서 간수하셨닥 하기에 그걸 소인헌테 양도하도록 해주십사 하능깁니다.》

윤택영은 어안이 벙벙해지고말았다.

평소에 호사스러운 생활에만 눈이 어두워 골치아픈 정사에 관심이 없었던 그로서는 고종황제에게 황제어새라는 옥새가 있었다는 소리도 듣느니 처음이였거니와 고종의 옥새를 윤대비가 가지고있다는 말도 뚱딴지같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던것이다.

대관절 이 촌놈이 그런 생뚱같은 소리는 어디서 주어들었는가?

윤택영이 덩둘해서 갈피를 못 잡고있는데 카랑카랑 울리는 최가의 방정맞은 목소리가 잇달아 들려왔다.

《그러닝게 소인이 드리자는 말씀인즉 인제는 골동이나 진배없는 그 물건얼 소인으게 넘겨주시문 후작각하께서 제시하신 협상안얼 다시한번 생각해볼수도 있다능깁니다. 뭐 싫으면 마시능기고.》

최가의 살찐 얼굴은 턱없이 거만스러워보였다. 항아리처럼 배가 불룩한 그자의 고리눈에서 빈정거리는듯 한 빛을 알아보는 순간 윤택영은 목덜미가 뻣뻣해왔다.

그렇지만 내색할수가 없었다. 빚진 종이라는 소리가 달리 생겼으랴.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윤택영에게 있어서 그 시각 무엇보다 긴절한것은 최박만이 던진 한오래기의 지푸래기였다.

그러니 황제어새인지 뭔지 하는 옥새만 넘겨주면 부채를 탕감해줄수도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무슨 감투끈인지 통 알수가 없었다. 어찌되여 이 수전노가 수십만원의 채권과 맞바꾸겠다고 할만치 이전 임금의 옥새에 그토록 욕심을 부리는걸가? 제 말마따나 옥새를 골동으로 팔아먹자는건가?

굴뚝같이 시커먼 최가의 속을 가늠해보려고 잠시 끙끙대던 윤택영은 이내 머리를 흔들고말았다.

까짓것,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 숨통을 조이는 빚올가미에서 벗어날수만 있다면야 고종황제의 옥새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것이라도 군말없이 꺼내다줘야 할 처지인데.

그는 최박만이 내민 지푸래기를 덥석 부여잡으며 반승낙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최가의 요구를 들어주자면 딸을 움직여야 하는데 성정이 올곧은 윤대비를 어떻게 설득한단 말인가. 《합병》때 일본인들이 칼을 겨누고있는 살벌한 속에서도 옥새를 치마폭에 감추고 끝까지 버티였던 윤대비가 아닌가.

그럴진대 아무리 나라가 망해버리고 군주가 사라진 오늘이라 할지라도 옛 황실의 가보이며 선황의 손때가 묻은 옥새를 대비가 선뜻 내놓을리는 만무한것이였다.

하건만 벼랑끝에 몰린 윤택영으로서는 다른 길이 없었다. 이 기회마저 놓치면 또다시 기약없는 류랑의 길에 나설수밖에 없는 막막한 신세이기에 그는 자식의 효심을 붙잡고 늘어져서라도 수렁에서 헤여나야 한다는 황급한 심산으로 이렇게 말을 꺼낸것이였다.

윤씨는 짓타는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안타까이 말했다.

《아버님, 송구하오나 저에겐 어찌할 도리가 없사옵니다.》

그러는 녀인의 눈앞에 고종황제가 숨을 거두기 몇달전에 있은 일이 되살아왔다.

그날 문안차로 덕수궁을 찾았던 윤씨는 우연한 기회에 고종황제와 단 둘이 있게 되였다.

늘 곁에서 맴돌던 상궁들도 내관들도 잠시 자리를 비운 쉽지 않은 그 순간 불쑥 고종이 소매속에서 무엇인가 꺼내여 윤씨에게 내미는것이 아닌가. 얼결에 받아보니 누런 비단보에 싼 자그마한 함이였다.

《중전께서만 아시고 잘 간수해주시기 바라오.》

무겁게 당부하는 고종의 두눈에 그때껏 윤씨가 본적이 없는 절절한 빛이 흐르고있었다.

윤씨는 심상치 않은 예감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촉급히 그 물건을 품속에 간수했다. 돌아와서 남몰래 함을 열어보던 녀인은 그만 소스라치지 않을수 없었다.

천만뜻밖에도 《황제어새》라고 새겨진 옥새가 그안에 들어있었던것이다.

윤씨의 심장이 세차게 활랑거렸다.

국권을 잃은 뒤 고종황제의 모든 옥새는 왜인들에게 빼앗긴것으로만 알고있었는데 여직 이런 옥새가 남아있다니. 어인 까닭에 태황제는 위험을 무릅쓰고 숨겨온 옥새를 돌연 아들이 아닌 며느리에게 내맡긴것일가?

총독부의 눈과 귀가 가시처럼 곳곳마다에 돋혀있는 궁중의 한복판에서 아녀자의 여린 몸으로 맡아안기에는 너무도 중하고 위험천만한 옥새를 바라보며 윤씨는 가슴이 떨려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까지만도 윤씨는 자기의 비밀옥새를 며느리에게 맡긴 고종황제의 속내를 미처 읽지 못했었다.

《합병》과 함께 일본에 의해 태황제로부터 《리태왕》으로 굴러떨어진 고종은 덕수궁에 갇혀 섬오랑캐들의 기념품같은 존재로 고적한 말년을 보내고있었다.

하는 일이라야 하루의 대부분을 예순나이에 본 고명딸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거나 일본으로 건너간 막내아들 리은을 그리워하는것이 전부였고 죽어서 명성황후와 함께 묻히게 될 홍릉의 공사정형을 이따금 살펴보는것이 고작이였다.

하지만 허무하게 흘러가는듯 한 나날속에서도 고종황제는 어느 한시도 원쑤 일본을 잊은적이 없었다.

안해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자신을 황위에서 몰아내고 나라까지 빼앗아간 왜놈들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있었기에 고종은 겉으로는 대세에 순응하는척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일본에 대한 저항을 그치지 않았다.

일본에 있어서 그러한 고종은 배속에 든 벌레처럼 께름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지금은 뿔빠진 암소꼴이 되여 기가 죽어있지만 의뭉한 고종이 돌아앉아서 헤그밀사사건과 같은 엉뚱한 일을 또 꾸미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한단 말인가.

왜놈들은 이중삼중으로 감시망을 강화하는 한편 고종을 철저히 통제하고 정치적으로 완전히 거세하기 위해 갖은 악랄한 술책을 다 부렸다.

이등박문이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류학》의 명목으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리은을 일본으로 끌고 간 주되는 목적도 고종이 딴꿈을 못 꾸게 인질로 삼기 위해서였고 데라우찌가 옥좌에 오른 순종을 그때까지 거처하고있던 덕수궁으로부터 창덕궁으로 옮기게 하고 고종은 그대로 덕수궁에 눌러있게 한것도 순종에게 미치는 고종의 영향을 차단하려는 속심에서였다.

어디 그뿐인가. 제1차 세계대전후 열리는 빠리강화회의에 고종이 다시금 밀사를 보내려는 기미를 보이자 총독부기관지에 1차대전의 와중에 전복된 도이췰란드며 로씨야황제의 비참한 말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게 함으로써 고종에게 저들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그런 운명이 차례진다는 독기어린 경고와 협박을 들이대기도 하였었다.

고종황제의 불안과 초조는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권력도 돈도 신하도 모두 잃어버린 그에게 있어서 어제날의 군주였음을 말해주는 유일한 증표는 오직 황제어새뿐이였다.

비단 어제날의 권위만을 말해주는것이였던가.

아니, 아직도 고종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있었다. 언젠가는 큰 나라들이 구원의 손길을 뻗쳐줄지도 모른다는, 식어버린 재무지속에서 불꽃이 다시 일듯 그 언젠가는 무너진 사직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자신의 옥새가 필요하리라는 한가닥의 가냘픈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있었거늘 실로 고종에게 있어서 황제어새는 비통한 현실에 대한 쓰라린 위안이였고 꿈속에서도 바라마지 않는 그날에 대한 애절처절한 희망이 아니였던가.

하기에 고종은 일제의 사나운 감시속에서도 비밀옥새만은 한사코 숨겨온것이였고 왜놈들의 살기띤 압박이 각일각 조여들수록 황제어새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래도 옥새를 자신이 계속 가지고있기는 힘들것 같았다. 그러니 누구한테 맡긴단 말인가.

순리로 보면 살아있는 세 아들중 첫째이며 옥좌를 물려받았던 순종에게 맡기는게 당연하겠지만 순종은 너무 유약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도 호기와 강단은 둘째인 의왕이 제 형보다 얼싸했지만 망명시도가 있은 이후로 총독부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대상이니 어림도 없었고 막내 영왕(리은의 봉호)은 왜국에 건너가있는 몸이니 더 생각해볼나위도 없었다.

우황든 소 앓듯 속을 태우는 고종황제의 마음은 자꾸만 맏며느리인 윤씨에게로 향하는것이였다.

간흉과 방탕으로 오명이 자자한 친정켠과는 달리 지조가 대쪽같고 품성이 결곡하여 왕조의 마지막국모였다고 이르기에 손색이 없는 윤씨였다.

나라가 왜놈들에게 통채로 삼켜지던 그날, 순종은 물론이고 고종자신까지도 속절없이 비탄의 눈물만 흘리고있던 절망의 그 시각 사직을 지켜보려고 마지막순간까지 옥새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친 윤씨의 소행을 고종황제는 잊을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눈물겹도록 고맙고 자식들보다도 더 믿음이 가는 며느리였다.

하여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고종은 마침내 자기의 비밀옥새를 윤씨에게 맡기기로 결심하고 오래동안 기회를 보아왔던것이다.

그러한 사연을 다는 몰랐어도 옥새때문에 흘린 피눈물이 가슴속에 응혈로 맺혀있기에 윤씨는 황제어새를 천금보다 더 무겁게 맡아안았고 고종황제의 당부대로 자기만이 아는 곳에 깊숙이 간수하였다.

총독부의 눈초리는 검질기고도 매서웠다. 때로는 창살에 와 걸리는 바람소리에도 몸을 떨었고 때로는 경술년의 그날처럼 옥새를 뺏기우는 악몽에 가위눌려 온밤 허덕이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윤씨의 눈앞에 옥새를 맡기던 고종황제의 눈빛이 떠올랐다. 망국의 한이 서린 절통한 눈빛이였다. 복국의 날을 학수고대하던 처량한 눈빛이였다.

그 눈빛이 떠오를 때마다 지하에 가서도 눈을 감지 못했을 시아버지의 통한이 가슴에 사무쳐와 윤씨는 마음을 도스르군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였다.

근래에 들어와 음으로양으로 고종황제가 남긴 옥새에 눈을 밝히는 인간들이 부쩍 많아졌던것이다.

윤씨를 찾아와 황제어새의 행방을 캐묻는 총독부와 리왕직의 관리들도 있었고 지나가는 말가운데 슬며시 동정을 떠보는 친지들과 궁인들도 있었다. 알지 못할 그림자들이 윤씨의 주위에서 불안스레 어슬렁거렸고 지어 그가 방을 비운 사이에 여기저기에 손을 댄 흔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러더니 오늘은 또 이렇게 곤궁에 빠진 아버지까지 황제어새를 넘겨달라고 찾아온것이다.

허나 윤씨는 불효자식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아버지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일수 없었다.

그게 어떤 옥새인가. 고종황제가 운명을 앞두고 맡긴, 시아버지의 마지막부탁이 담긴 500여년 왕조의 최후의 옥새가 아닌가.

도리머리를 흔드는 윤씨의 얼굴에 찬바람이 일었다.

윤택영은 온몸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간신히 부여잡았던 한오래기의 지푸래기마저 종내 끊어지고마는가. 눈앞이 새까매졌다.

하면서도 딸에게 옥새가 있는게 분명하다는것을 직감으로 확인한 윤택영은 우물에 든 고기마냥 두눈을 갈팡거리며 어푸러지듯 달라붙었다.

《대비전하, 전하께옵서까지도 그렇게 외면하시오면 또다시 이 아비는 천리타국으로 쫓겨갈밖에 별도리가 없사오이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전하를 뵈옵겠나이까. 선조의 사당과 혈육지신들이 있는 고국땅을 떠나 남의 문간에 몸을 기대고 소매동냥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윤택영은 그만에야 입귀를 삐죽거리다가 끝내 말끝을 흐트리고말았다.

그러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윤씨의 눈가에도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불과 몇달전에 남편을 잃었는데 아버지와도 또 생리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설음이 북받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딸자식의 마음을 이다지도 지지리 괴롭히는가.

딸이 중전이 된 뒤로 내전에 들어오면 노상 《중전마마, 불충한 아비의 빚을 갚아주시옵소서.》 하는 말부터 입버릇처럼 외우군 하던 아버지였다. 중국으로 도피한 이후에도 아버지는 얼마나 그칠새없이 인편을 띄워 돈이 부족하다고, 총독부에 도움을 청해달라고 하소연을 토하군 하였던가.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윤씨는 낯이 뜨거워 남편을 쳐다볼수 없었고 손아래 황실사람들앞에서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하건만 이렇든저렇든 아버지는 아버지였기에 윤씨는 중국에서 내전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아버지의 안위부터 걱정했고 아버지의 도피생활이 길어질수록 깊어만 가는 근심속에 늘 속을 졸여야 했다.

속을 태우는이가 단지 아버지뿐이였다면 그나마 다행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억이 막히게도 윤씨의 피붙이들중에는 또 한명의 방탕아가 있었으니 바로 오빠인 윤홍섭이였다.

투기에 손을 댔다가 거덜이 나는 바람에 가뜩이나 엄청난 집안의 빚더미를 더 걷잡을수 없이 불궈놓은 윤홍섭은 아버지와 함께 베이징으로 도주한 후 얼마 안 있어 대학공부를 한다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빚독촉에 몰려 도망한 신세에 무슨 돈이 있어 학비를 감당하랴. 그렇다고 명문대가의 귀공자로 고이 자란 그가 고학살이를 하겠다고 할리는 만무했다.

결국 윤홍섭이 택한 방도라는게 걸핏하면 창덕궁의 누이동생에게 학비를 대달라고 전보를 날리는것이였다.

아버지는 빚을 갚아달라고 죽는소리를 하고 오빠는 학비를 대달라고 아이 보채듯 하니 망국의 슬픔에 가정사의 번뇌까지 겹쳐 윤씨의 얼굴에는 어느 하루도 그늘이 가셔질 날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경술국치때 윤씨의 품에서 옥새를 빼앗아간 큰아버지 윤덕영은 또 어떠한가.

아버지와 오빠가 방탕과 채무문제로 윤씨를 끈덕지게 괴롭혔다면 《합병》후 왜인들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얻고 리왕직의 요직에 앉아있으면서 옛 황실의 동정을 감시하여 총독부에 보고하군 한 윤덕영은 조선사람들한테 《제명에 죽지 못할 놈!》이라는 욕을 먹을 정도로 친일에 광분하여 윤씨의 가슴속에 더욱 큰 치욕의 상처를 남겨놓고있었다.

윤덕영이 그런 욕을 들을만한 까닭이 있었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가 특별히 중시한 일들가운데 하나는 봉건조선의 마지막군주였던 순종으로 하여금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저들의 《천황》을 《알현》하도록 하는것이였다.

그것은 단순한 의례행사가 아니라 조선황실이 일본황실에 완전히 굴복하고 조선민족이 일본민족앞에 무릎을 꿇었음을 내외에 선언하는 상징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합병》을 계기로 험악해진 조선백성들의 반일감정과 고종이며 순종의 반감때문에 거사를 차일피일 미루어오던 데라우찌는 총독의 자리를 하세가와에게 넘겨주는 자리에서 순종의 도꾜행을 중대과제의 하나로 인계하였다.

데라우찌가 못해낸 일을 반드시 실현하리라 결심한 하세가와는 은밀히 준비를 갖추게 하는 한편 리완용을 불러 고종과 순종을 설득하라고 지시하였다.

리완용은 헛물만 켜고말았다. 고종도 순종도 이런저런 구실을 들어 도꾜행을 거부해나섰던것이다. 그러자 하세가와는 이번에는 《합병》당시에 수완을 발휘한바 있는 윤덕영에게 일을 맡겼다.

리왕직의 찬시장(시종장)으로 있던 윤덕영은 순종을 움직이려면 반드시 고종부터 움직여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고종을 만나 단도직입으로 들이댔다.

《년로하신 리태왕전하를 괴롭히는 일이라 송구하오나 왕가의 백년안태를 위해 참으시고 친히 동경에 가셔서 〈천황〉의 문안을 여쭙는게 옳다고 생각하옵니다. 그러시지 않는 경우 어떤 화가 들이닥칠지 알수 없사오니 전하의 깊은 사려를 바라옵니다.》

로골적인 협박에 고종황제는 자신은 늙어서 세상일에 관계가 없는 몸인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단마디로 뿌리쳐버렸다.

하지만 윤덕영이 누군가.

그날부터 그는 자리를 뜨지 않고 고종앞에서 같은 말만 반복했다. 밤이 깊어도 덕수궁을 떠나지 않은채 고종이 누우면 별실에서 쉬였고 고종이 눈을 뜨면 기다렸다는듯이 들어가 도꾜로 갈것을 강요했다.

임금과 신하간의 례의도 옛정도 아랑곳않는 검질기고 파렴치한 그 태도앞에 궁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한주일이 지나갔음에도 고종황제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사대를 외교의 근간으로 삼아온 조선봉건왕조 500여년동안에도 임금이 직접 큰 나라들에 찾아간적은 없었다. 하물며 사직을 무너뜨리고 강토를 집어삼킨 섬나라 오랑캐왕에게 어찌 제발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린단 말인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였다.

40여년간이나 임금노릇을 한 고종황제가 70고개를 바라보는 늙은 몸을 끌고 스스로 도꾜에 찾아가기를 바라는것은 오이넝쿨에 가지 열리기를 기대하는것이나 같다는것을 윤덕영도 모르는바 아니였다.

그의 속심은 다른데 있었다. 고종을 궁지에 몰아넣어 제입으로 《나는 년로하여 갈수 없으니 창덕궁에서 대신 동경에 가도록 하라.》는 분부를 내리도록 하자는것이였다.

헌데 고종은 자신이 도꾜에 가는것을 단호히 잘라맬뿐더러 순종의 도꾜행도 일언반구 입에 올리지 않고있었다.

윤덕영은 하세가와를 비롯한 왜놈들과 짜고 고종황제에게 더욱더 핍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덕수궁의 집기들을 정리한다는 핑게를 대고 궁내의 창고들을 가택수색이라도 하듯 일일이 뒤지며 들볶아댔는가 하면 물품을 보관하는 궁녀를 파면해 궁궐밖으로 내쫓았다. 그 궁녀는 고종이 늘그막에 총애하던 녀인이였는데 조그마한 결점을 트집잡아 그런 처분을 내린것이였다.

고종은 화가 꼭두까지 치밀어 노발대발하였지만 윤덕영은 본척만척하며 보다 악랄한 술책을 부렸다.

이전에 명성황후가 살해된 뒤 고종황제의 계비를 맞아들이기 위해 많은 량반집처녀들을 물색한적이 있었는데 그중 김씨라는 녀인이 뽑혀 약혼까지 성립됐건만 무슨 리유에서인지 궁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때껏 허구한 세월을 독수공방하고있었다.

전후사연이 흐리마리한 애매한 풍문을 꼬투리로 잡아쥔 윤덕영은 그 사실을 하세가와에게 알렸다.

내심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쾌재를 올린 하세가와는 한번 약혼한 녀자를 버리는것은 륜리에 어긋나니 마땅히 덕수궁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붙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윤덕영은 자못 의분에 넘쳐 고종황제에게 간했다.

《임금의 말은 땀과 같아 한번 나가면 들어올수 없는것이옵니다. 김씨는 전하께옵서 반드시 은총을 내리실것으로 믿고 이십년세월이 지나도록 독수공방해오고있사옵니다. 하세가와총독도 이 일을 알고있어 전하를 패덕하게 보지 않을가 심히 우려되옵니다. 그 녀인을 죽이고 살리는것은 오로지 전하의 마음에 달렸사오니 바라옵건대 은총을 내려주시옵소서.》

새벽 봉창 두들기는것 같은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진 고종황제는 당시 신하들이 계비감을 물색하다가 생긴 일인가본데 자기는 여적 들어본적이 없다고, 이제 와서 그런 일을 운운하는것은 불충의 극이라고 밀어버렸다.

허나 윤덕영은 그 말을 들은체도 않고 매일 새벽 2시가 넘도록 고종의 눈앞에 까딱않고 뻗치고 서서 김씨를 받아들이라는 말만 외우며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피로를 안기군 하였다.

그래도 고종이 마음을 돌리려 하지 않자 나중에는 혼례복을 입힌 김씨녀인을 대한문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70이 가까와오는 옛 임금에게 추호의 애정도 없는 결혼을 강요하기까지 하였으니 실로 그 악랄함과 랭혹함, 집요함에 혀를 차지 않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였다.

오죽했으면 고종 본인도 윤덕영을 가리켜 500여년 왕조사에 보지 못한 간흉이라고 원성을 터뜨렸겠는가.

마침내 하세가와와 윤덕영의 끈질긴 모략에 손을 든 고종황제는 《창덕궁에 뜻을 전하고 대신 가게 하라.》는 분부를 내렸고 아버지의 분부라면 거역할 엄두조차 못 내는 순종은 순순히 도꾜로 건너가 왜왕을 《알현》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불쌍하게 된것은 총독부와 윤덕영이 고종을 압박하는 희생물로 써먹은 김씨녀인이였다.

궁안에 들어갔건만 고종황제의 부름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그 녀인은 그후 덕수궁에서 떨어진 별당의 비좁은 방에서 궁녀생활을 하다가 고종이 세상을 떠나고나서야 비로소 고인앞에서 일장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왜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그렇듯 수단을 가리지 않는 큰아버지의 철면피한 추문들이 들려올 때마다 윤씨는 참기 어려운 수치감에 온몸을 떨군 하였다.

국모라 자처하던 몸으로 사직을 지켜내지 못한것만도 대대손손 머리를 쳐들수 없는 죄인데 어쩌면 일가붙이들은 하나같이 친일과 방탕으로 치욕에 치욕만을 덧쌓는것인가.

아버지나 큰아버지나 다 옛 황실의 인척들이고 조정의 국록을 누구보다도 많이 타자시던 원로중신들이 아니였던가. 나라를 말아먹은 죄책감을 제일 뼈저리게 통감해야 마땅할 그들이 오히려 귀밑머리가 허연 이날까지도 사리와 탐욕에 눈이 어두워 시골백성들도 침을 뱉는 추태만 일삼고있으니 혈육된 윤씨로서는 늘 쥐구멍을 찾는 심정이였다.

윤씨는 죄많은 집안어른들을 대신하여 무릎을 꿇고 빌고싶었다.

망국의 원한품고 숨진 이 땅의 수많은 영령들앞에서, 망국노의 설음을 매일 매 시각 씹고있는 2천만동포들앞에서 윤씨가문이 지은 죄악을 고하고 석고대죄하고싶었다. 한몸이 티끌로 사라져버리는 날까지 낮에 밤을 이어 속죄하고싶었고 시궁창에 처박힌 가문의 오욕을 다문 얼마라도 씻고싶었다.

하거늘 아무리 혈육의 정이 끈지다한들 고종황제의 애절한 당부가 담긴 마지막옥새를, 짓밟힌 나라의 마지막존엄을 어찌 방탕한 아버지의 빚값으로 내줄수 있으랴.

윤씨는 애걸하듯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을 강잉히 피하며 힘겨우면서도 결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버님, 재삼 말씀드리옵건대 저는 그런 옥새에 대해 아는바 없사오니 더이상 저에게 옥새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주사이다.》

윤택영은 구들이 꺼지게 한숨만 몰아쉬다가 마지못해 일어섰다.

아버지를 바래고난 윤씨는 암울한 공허가 떠도는 방 한가운데 못박힌듯 서있었다. 가슴이 거문고줄처럼 떨려왔다. 해쓱하게 질린 녀인의 얼굴에 세파에 시달리는 고달픔이 무겁게 실려있는데 허공을 더듬는 두눈에는 우물처럼 깊은 슬픔이 고여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망연히 서있기만 하던 윤씨는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번민을 가실길 없어 뒤뜰로 나갔다.

뒤뜰에 나서니 언제 소낙비가 지나갔던가싶게 해맑은 대기가 추녀우에서 굼실거리고있었다.

머리우로 떠가는 흰 구름송이들은 세월도 잊고 풍상도 모르는듯 한가롭기만 하다. 한여름의 해살이 비물에 씻긴 기와지붕이며 운치롭게 둘러진 담장에, 비탈을 따라 길게 다듬은 돌들로 쌓은 여러 계단의 꽃밭우에 알알이 부서져 딩굴고있었다.

(우리는 이리도 초라하고 비참한데 어쩌면 산천은 저렇듯 아름다울가!)

윤씨는 속으로 이렇게 탄식하며 자기가 들어있는 락선재의 고적하면서도 단아한 자태를 덧없는 눈길로 둘러보았다.

창덕궁안의 동쪽에 외따로 자리잡은 락선재는 본래 국상을 당한 왕후들이 소복차림으로 은거하던 집이였는데 순종이 세상을 하직하자 윤씨도 대조전으로부터 이곳의 안채로 옮겨온것이다.

윤씨는 잠시나마 마음의 평온을 얻고싶어 조용히 뒤뜰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하건만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불안과 비애, 외로움의 그림자는 좀처럼 가셔질줄 몰랐다.

비운의 녀인이였다. 어린 나이에 동궁계비로 들어가 인츰 중전이 되기는 했어도 허물어지는 왕조의 마지막 안주인이였던 그의 인생길에는 기쁨보다는 설음이, 절망이 더 많았다.

문득 남편의 모습이 떠오른다. 늘쌍 어드멘가 허공중을 방황하는듯 하던 텅 빈 그 눈빛이…

누구와 다투는것을 질색했고 구경을 해도 씨름 같은것은 반기지 않던 남편이였다. 허약하여 슬하에 자식도 두지 못한채 쓸쓸히 가버린 순종이였다.

한 집안의 가장노릇도 하기 딱한 그렇듯 무맥한 심신으로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나라의 군주노릇을 하자니 얼마나 고달팠으랴.

이 땅을 타고앉은 일본은 삼천리를 뒤흔드는 반일기세를 무마하고 옛 황족들을 회유할 목적으로 조선사람들의 고혈을 짜낸 금액가운데서 해마다 어느 정도씩 몰락한 황실에 지출하는 등 《우대조치》를 베푸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옛 황실의 모든 재산을 철저히 장악한 일본이 어제날의 황족들을 저들의 식객으로 전락시키고 《보호》라는 미명밑에 총독부의 철통같은 감시와 통제를 받게 한데 불과한것이였다.

일제의 강제《합병》으로 명색뿐이였던 옥좌에서마저 밀려난 순종은 력사의 그늘속에서 허망하고 무의미한 삶을 이어갔다.

불안과 시름에 시달리느라 밤을 지새우던 고종황제와 달리 깨여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물론 목욕이며 산보시간에 이르기까지 1분도 어김이 없었던 순종에게 있어서 하는 일이 있었다면 총독부가 벌려놓는 잡다한 관례행사에 장식품처럼 불리워나가거나 온종일 신문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는것뿐이였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태엽이 감겨져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동작만을 속절없이 반복하는 인형 한가지였다.

그런 속에서도 순종이 유일하게 관심을 돌린 일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고종에게 문안전화를 하고 한달에 한번은 덕수궁으로 찾아가 아버지와 식사를 같이하는것이였다.

고종이 불귀의 객이 된 후에도 순종은 때때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군 하였다. 그럴 때면 내시가 릉을 지키는 관리에게 전화를 걸어 《덕진풍(전화기)을 혼백에 대라.》고 말했다. 상복으로 갈아입은 순종이 엎드려 절을 하면 내시는 전화기를 순종의 입가까이에 가져갔다. 그러면 순종은 전화기에 대고 넉두리를 섞어가며 곡을 하는것이였다.

아버지의 혼백을 찾아 구슬피 울려가던 남편의 그 곡성이 또다시 윤씨의 귀가에 메아리로 울려왔다.

그것은 비탄과 절망에 찬 곡성이였다. 설음조차 터놓을데 없는 망국의 군주가 구천을 향해 터치는 외로운 호곡소리였다.

사직을 뺏기고도 목숨을 부지해가는 구차한 인생이였건만 왜놈들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피멍으로 맺혔으면 순종은 숨을 거두는 마지막시각 신하에게 통한의 유언을 남겼으랴.

지난날 자신이 《합병》을 《인준》한것은 이웃강도가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자신을 유페하고 협박하여 제멋대로 선포한것이라고, 구차히 살며 죽지 못한 자신은 종사의 죄인이 되고 2천만앞에 죄인이 되였다고.

윤씨의 눈에서 물기가 떨었다. 날카로운 고통이 윤씨의 온몸으로 줄달음쳤다.

비단 남편뿐이였던가. 쏟아진 둥지엔 성한 알이 없다고 고종황제의 일가모두가 무겁고도 수치스러운 망국의 오욕을 걸머지고 체념과 굴욕의 세월을 살아가고있지 않는가.

일본에 항거하여 한때 망명까지 시도했던 의왕도 지금은 수많은 첩실을 거느리고 풍류에 빠져 좌절과 타락의 나날을 보내고있었고 철부지때 이등박문에게 끌려 일본으로 건너간 영왕도 잠시 귀국했을 때 조선말이 서툴러 고종과 통역을 두고 대화했을만치 철저한 일본인으로 길들여지고있었다.

영왕이 일본황족의 녀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원쑤국의 황족녀자를 어찌 며느리로 삼겠느냐며 짐이 생존해있는 한 이 혼사는 성립될수 없다고 펄펄 뛰던 고종황제의 모습을 윤씨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허리 부러진 호랑이신세인 옛 황제가 아버지의 권한인들 어찌 변변히 행사할수 있으랴.

영왕을 일본녀자와 정략결혼시켜 조선봉건왕조의 혈통을 혼혈화하고 저들의 식민지통치의 《감화력》을 내외에 널리 광고할 야심밑에 총독부는 이미 10년전에 영왕과 약혼한 조선처녀에게서 약혼반지를 뺏아오게 하였는가 하면 지어 나흘뒤로 다가와있는 영왕의 혼례식을 예정대로 치르려고 고종황제의 사망소식까지 숨기려고 획책하였다.

그처럼 검질긴 총독부의 책동으로 종시 영왕은 일본황족의 녀자를 안해로 맞았건만 과연 그 《덕택》에 망국노의 처지가 달라지기라도 하였던가.

언젠가 일본황족회의에 참석했던 영왕이 죄송하지만 황족이 아닌분은 나가달라는 궁내청관리의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비틀거리며 나왔다는 이야기가 윤씨의 뇌리에 아프게 떠올랐다.

《합병》후 일본에 의해 《왕세자》로 책봉되고 일본황족가문의 사위로 들어갔으니 마땅히 자신은 일본황족의 한 성원이라고 생각한 영왕이였으나 실제로 일본황실에 있어서 《리태왕》이니, 《리왕》이니, 《왕세자》니 하는 조선의 왕족들은 귀찮은 식객들이였고 저들의 위엄을 뽐내는 치레거리에 지나지 않았던것이다.

하기에 고종황제가 금지옥엽처럼 애지중지하던 고명딸 덕혜옹주도 영왕처럼 어린 나이에 《류학》의 명목으로 일본에 끌려갔건만 그곳에서 일본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며 신경쇠약증에 시달리고있다지 않는가.

고종황제의 온 가족이 그렇게 망국노의 굴레를 쓴채 인생의 진창길을 이리저리 끌려다니고있었다. 그리고 그들속에 바로 윤씨 자신도 있었다.

어디선가 산새 한마리가 피를 토하듯 울음을 터뜨린다. 발밑에서는 땅벌레가 어둑충충한 곳으로 느린 걸음을 옮겨가는데 머리우에서는 세월의 더께가 앉은 락선재의 암막새를 타고 아직도 기스락물이 눈물인양 떨어져내리고있었다.

처연히 그 정경들을 둘러보는 윤씨의 눈길뒤에는 끝없는 어둠이 있었다.

어렵고 비참한 세월을 살아가면서도 왕조의 마지막국모로서의 존엄만은 잃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모지름쳐온 윤씨였다.

허나 망국이 불러온 현실은 너무나도 쓰라리고 가혹한것이였다.

왕조의 위엄이 서렸던 궁궐들은 사정없이 헐려나가고 옛 황실은 여지없이 무너지고있었다. 총독부의 승인이 없이는 궁문밖을 단 한걸음도 나설수 없었고 대부분의 옛 황족들이 바람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초불마냥 왜인들에게 굽신거리고있었다.

죽고싶도록 수치스러웠다. 나라를 망쳐먹었다는 죄악감으로 하여, 구접스레 원쑤가 던져주는 밥덩이를 주어먹으며 산다는 굴욕감으로 하여 조상들과 백성들앞에서, 이 땅의 산천앞에서 도저히 머리를 쳐들수가 없었다.

가끔 윤씨는 저세상에 먼저 간 남편이 부럽게 생각되군 하였다.

저세상사람이 되였으니 이제는 해가 바뀔 때마다 치욕을 삼키며 왜왕에게 신년하례전보를 바치는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는것이고 왜왕의 생일때마다 《축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총독관저로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것이다. 부모들을 해친 왜놈들의 살기찬 마수가 언제 자기에게 뻗칠지 몰라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것이고 왜놈들의 강박에 못이겨 종묘앞에 더 큰죄를 지게 될가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것이다.

자기도 그처럼 고뇌에 찬 이승을 하직하고싶은, 하다못해 깊은 산속의 승방에 들어가 마음을 텅 비우고 살아가고싶은 충동에 때없이 한숨이 나가군 하는 윤씨였다.

(아, 영영 우리는 이렇듯 그칠줄 모르는 모멸과 치욕속에 살아가야만 하는가?)

캄캄하고 고통스러운 앞날을 그려보는 윤씨의 눈가에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

그뒤에도 윤택영은 문돌쩌귀에 불이 일도록 락선재를 드나들며 아비를 살려달라고 련일 딸에게 애걸복걸하였다.

흡사 그 모양은 수렁에 빠져 단말마의 몸부림을 치는 짐승을 방불케 하였다.

매일같이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성화를 먹이는 아버지의 끈덕진 간청에 기진할대로 기진한 윤씨는 종내 어느날 깊숙이 간수해오던 황제어새를 내여주고야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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