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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회

제 2 장

1926년 여름

4


비청거리며 향방없이 발을 내딛다보니 뒤뜰안이다. 담장가의 향나무아래 허름하니 바랜 참대의자 하나가 한적히 놓여있었다.

윤택영은 그리로 다가가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우산처럼 퍼진 늙은 향나무가지들에 석양의 치마자락이 맥없이 걸려있었다. 구불구불 뒤틀린 향나무가지들을 보니 꼭 구겨지고 뒤틀어진 자기 신세를 보는것만 같았다.

윤택영이 만사람을 경악케 하며 《채무왕》으로 군림하게 된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1904년에 황태자이던 순종의 첫 안해 민씨가 세상을 떠나자 한다하는 세도가집들에서는 저마끔 자기 가문의 녀자를 순종의 후실로 들여보내기 위한 동궁계비책봉운동을 맹렬하게 벌렸다.

윤택영도 자기 딸을 황태자비로 앉히기 위해 눈에 황달이 떠서 뛰여다녔다.

어떻게 해야 황실과 사돈을 맺어 권세를 떨쳐볼수 있을가? 뭐니뭐니해도 관건은 누가 더 큰돈을 쓰는가 하는것이였다. 돈에 침 뱉는자 없고 돈으로 틀어막아서 안되는 일은 재채기뿐이라지 않는가.

한데 어이하랴, 그에게는 그런 큰일을 치를만 한 돈이 없었으니. 오히려 몇해전에 꾸어쓴 10만원에 가까운 남의 빚돈도 여직 갚지 못해 당장 강제집행을 당해야 할 판이였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그런 형편에서 황실의 사돈자리를 넘본다는것은 꿈도 꿀수 없는 일이다.

허지만 윤택영은 범상한 인물이 아니였다. 누가 그랬던가. 마음을 좁게 쓰면 바늘 하나 꽂을데가 없지만 마음을 크게 쓰면 천하도 얻는다고.

욕심과 비위살이 곰의 발바닥도 찜쪄먹을만치 두꺼웠던 그는 채권자에게 불원간 자기가 황실의 인척이 되니 그때 갚으마고 약속하고 강제집행을 잠시 미루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온갖 감언리설을 다하여 여기저기서 50만원에 달하는 거금을 꾸어다가 고종의 계비인 엄비에게 바쳤고 결과 이태후 끝끝내 자기의 셋째딸을 동궁계비로 들여보내는데 성공하였다.

윤택영은 일약 황태자의 장인이 되였고 한해뒤에는 순종이 등극함에 따라 임금의 장인이 되였다.

그렇게 극성을 부려 권세도 얻고 명예도 얻었건만 윤택영에게는 아직도 골치거리가 남아있었다.

빚단련이였다. 그가 딸을 국모로 앉히고 나라의 부원군이 되자 고리대를 놓고 기다리던 빚군들이 범벅덩이에 쉬파리 붙듯 달려들었다. 어지간한 돈이였으면 황실을 등대고 그렁저렁 메꿀수도 있었겠지만 워낙 엄청난 액수인지라 단김에 소뿔 빼듯 갚아버릴수 있는 빚이 아니였다.

급해맞은 윤택영은 덮어놓고 순종을 찾아가 《상감마마, 장인 빚 좀 갚아주시옵소서.》 하며 생떼를 부렸다. 자기가 진 빚을 상감인 사위가 대신 갚아달라니 역시 그다운 넉살머리였다.

한들 명색뿐인 상감에게 돈이 있어야 얼마나 있었겠는가.

입이 닳도록 순종에게 간청해도 허사로 그쳐버리자 이번에는 통감부에 손을 내밀었지만 사위도 못 갚아주는 빚을 왜인들이 대신 갚아주겠다고 나설리는 만무한것이였다.

그렇다고 단념할 윤택영이 아니였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는 리왕직(일제가 몰락한 봉건조선의 왕실과 왕족들을 감시하고 장악관리할 목적으로 설치하였던 식민지통치기구)과 통감부를 뻔질나게 찾아다니며 자기 빚을 갚아달라고 물귀신처럼 끈덕지게 물고늘어졌다.

귀신도 빌면 듣는다더니 마침내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한일합병조약》이 공포된 뒤 일제가 윤택영의 친일공로와 순종의 장인이라는 지위를 참작하여 후작의 작위와 수십만원의 은사금을 내려준것이다.

윤택영은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빚보따리를 완전히 털어버릴 돈은 못되였어도 그런대로 채권자들을 무마할수 있을 정도는 되였던것이다.

헌데 도리여 그것이 더 큰 사달을 불러올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윤후작이 딸을 황태자비로 들여보내기 위해 얻어쓴 빚을 청산한다는 소문이 떠돌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난데없는 무리들이 암치뼈다귀에 불개미 달라붙듯 덤벼든것이다.

《왜 나는 쏙 빼놓고 다른 사람 돈만 갚느냐.》고 다그어대는 그들인즉 윤택영이 새까맣게 잊고있던 또 다른 채권자들이였다.

그러니 동궁계비책봉운동을 위해 빌린 돈은 윤택영이 진 빚가운데서 빙산의 일각이였던셈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빚을 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빚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똑같지 않다.

대개의 사람들은 빚을 멍에로 여기면서 한시바삐 벗어던지려고 서두르는 반면에 빚을 즐기는 렴치좋은 비게덩어리들도 있다.

안 빌려줘서 못쓰지 빌려준다면 천금인들 마다하랴. 아무리 큰 빚을 졌어도 있으면 갚는것이고 없으면 배를 째도 못 갚는게 아닌가. 이런 배심을 가지고 제 돈 가져다 쓰듯 빚을 가져다 쓰는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일것이다.

윤택영이 바로 그런 《재능》을 가진 인간이였다.

돈이 모자라면 쭈물대지 말고 빌려야 한다. 빚진 돈도 아무튼 내 돈이 아닌가. 아무렴, 제 털 뽑아 제 구멍에 꽂으며 궁상맞게 살바엔 빚낟가리를 깔고앉아서라도 풍청거리며 사는게 잘난 놈이구말구.

윤택영은 배포가 두둑해서 빚돈 끌어들이기를 례사로 여겼다. 뜨르르한 저택도 빚으로 지었고 주지육림의 연회들도 빚으로 차렸으며 총독부 고관들도 빚으로 구워삶았다.

허나 빚진 돈은 분명 《내 돈》이 아니거늘 쓸 때는 좋고 갚으려면 속이 알짝지근해도 내 돈 아닌 《내 돈》이라는 빚의 본성이야 갈데가 있겠는가. 빚군들의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기에 언제건 갚아야만 하는것이 빚인것이다.

윤택영이 당장 급해맞은 부채만 상환하는 시늉을 하고 대부분의 부채에 대해서는 이붓아비 제사날 미루듯 채무리행을 차일피일 미루자 괄시를 받은 채권자들은 독이 오르기 시작했다.

리왕전하의 장인이니, 후작이니 하는 방패를 내들고 이 피탈 저 피탈 얼렁방귀만 뀌는 윤택영과 씨름질하다 못해 채권자들은 총독부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수차례 청원을 하였다. 하지만 총독부가 시끄럽게 여기며 개입하려들지 않자 빚군들은 법원과 끈질기게 교섭해 윤택영이 소유하고있는 동산의 강제집행에 들어갔다.

그런데 기가 찬노릇이였다.

작위로 보나 가문으로 보나 《조선귀족》의 거두급이라 할 윤후작의 집안에 남아있는 재산이라군 겨우 몇백원어치에 불과하지 않은가. 빚단련에 너무 시달려 눈치가 도가집 강아지같은 집주인이 어느새 재산을 날래게 빼돌린것이 분명했다.

홍두깨가 치밀어오른 빚군들은 집달리를 시켜 윤택영의 가옥에 돌아가며 차압딱지를 붙이게 하고 경매에 내걸었다.

지어 안주인의 옷가지까지도 경매에 붙여지는 수모를 면치 못했으니 안주인이 누구인가. 여느 주막집 아낙네가 아니라 다름아닌 옛 상감마마의 장모가 아닌가.

집안망신이기 전에 창덕궁의 망신이고 딸자식과 사위의 망신이였건만 윤택영에게는 개구리대가리에 찬물끼얹기였다.

이상한것은 빚 잘라먹고 오리발 내밀기로 서울장안에 정평이 나있는 윤후작임에도 그에게 빚을 내주는 고리대군들이 이후로도 그치지 않았다는것이다. 윤택영의 얼렁수에 넘어갔다기보다 그를 미끼삼아 총독부나 리왕직을 상대로 한몫 톡톡히 잡아보겠다는 빚군들의 흑심때문이였을것이다.

속이 시꺼멓기는 윤택영도 마찬가지였다.

이왕 빚을 질바엔 크게 지는게 낫다. 1 000원 빌린 사람이 추가로 1만원을 빌리기는 힘들어도 1 000만원 빌린 사람이 추가로 1만원을 빌리기는 누워서 떡먹기이다.

그런데다가 채권자들은 큰 빚을 진 채무자일수록 서뿔리 대하지 못하지 않는가. 채무자의 심기를 잘못 건드려 채무를 미루거나 떼먹기라도 하면 채권자는 앉은자리에서 쪽박을 찰수도 있으니까.

그럴진대 빚을 내준 놈이 애를 졸이게 생겨먹었지 빚진 놈이 안달복달할게 뭐란 말인고.

목구멍을 넘기면 뜨거움을 잊는다고 생각하며 윤택영은 그후에도 계속 빚을 얻어 허영에 찬 생활을 이어갔다.

빚을 져서 호화로운 생활에 탕진하고나면 차압이 들어오고 경매를 당하고, 다시금 빚을 져서는 탕진하는 악순환이 10년을 두고 되풀이되였다.

그동안에 빚더미는 점점 더 불어나고 윤택영의 집으로는 문턱이 닳도록 집달리가 찾아들어 차압딱지를 붙이고 돌아갔다. 나중엔 왜왕이 준 꽃병이며 고종이 보낸 서첩 등에까지 차압딱지가 떠덕떠덕 붙었다.

제가 진 빚이 얼마나 되는지 윤택영 본인도 똑똑히 아는것 같지 않았다. 빚군들이 몰려와 차용증서를 내밀고 재판을 걸면 그제서야 《썼나보다.》 하는 식이였다.

그렇게 빚단련과 소송에 시달리던 6년전 어느 여름날 윤택영은 아들과 함께 한달후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슬그머니 베이징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밤낮으로 찾아와 행악을 부리는 빚군들의 성화독촉에 더이상 견뎌배기기도 어려웠거니와 자신들이 자리를 비운 동안 대리인을 시켜 거덜이 나고 남은 가산이라도 정리해서 빚군들에게 노나주려고, 그렇게 해서 다문 얼마간이라도 빚을 갚는 흉내를 내고 부채를 탕감받아보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약속한 한달이 지나고 그해가 저물도록 윤택영은 돌아올수가 없었다. 그들부자가 중국으로 도피한 뒤 채권단과의 교섭이 날로 악화되였기때문이였다.

채권자들은 무리를 지어 빚받이소송과 사기횡령소송을 제기하다 못해 윤후작부자에게 산 사람을 경제적으로 죽은 사람으로 선언함이나 다름없는 파산선고를 내려줄것을 법원에 신청하였다.

하는수없이 윤택영은 채권자들과의 교섭이 타결되기를 기다리며 흙바람 맵짠 이역땅에 언제까지고 머물러있지 않으면 안되였다.

베이징에 도착한지 두어날도 지나기 전에 그의 입에서 벌써 환국하고싶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고국에는 빚으로 지은 집일망정 덩실한 제 집이 있었고 《채무왕》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할망정 리왕의 장인이고 후작이라는 위세가 있었건만 이국땅에서 그는 빚군들에게 쫓겨다니는 초췌한 도망자에 불과할뿐이였다.

게다가 꽁지가 빳빳해서 뺑소니쳐온 신세다보니 주머니의 로자도 넉넉치 못했다.

윤택영의 우는소리를 전해듣고 이따금 창덕궁에서 생계비를 보내주기도 했었지만 왕실의 일체 재산을 총독부가 철저히 틀어쥐고있는 형편에서 그 돈이라야 뻔한것이였다.

거지의 씨가 따로 있는게 아니였다. 난생처음 끼니를 거를가봐 걱정해야 하니 목이 메여들었고 주머니가 가벼우니 자연 어깨가 축 처져내렸다.

환락에 지쳐빠졌던 지난날이 그리웠다. 턱짓으로 남을 부리군 하던 그 시절이 못견디게 눈에 밟혀왔다. 고달픈 타향살이가 한해두해 길어질수록 윤택영의 입에서는 고국에 돌아가고싶다는 소리가 입버릇처럼 더 자주 튀여나왔다.

하건만 수백만원의 빚과 100여명의 빚귀신들이 뒤끓는 고국으로 돌아간다는것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여드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윤택영은 창덕궁의 사위와 딸에게 줄곧 인편을 띄워 총독부에 잘 이야기해서 제발 자기 빚을 해결해달라고 간절히 졸라대군 하였다.

장인의 그 정상을 보기가 하도 딱해 한번은 순종이 왜인들과 련계가 깊은 리완용을 불러 총독과 협의해보라고 부탁한적이 있었다.

평소에 윤씨의 집과 대면조차 잘하지 않던 리완용도 돈소리에는 귀가 솔깃했던지 총독을 찾아가 량전하께서 항상 슬퍼하시니 리왕직의 예산중에서 몇달분을 떼여 채무문제를 해결할수 없겠는가고 제의했다.

총독은 난색을 지었다. 그러지 않아도 재산을 송두리채 들어먹고 오늘은 리왕직으로, 래일은 총독부로 찾아다니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옛 황족들과 귀족들의 등쌀에 진저리를 치는 판인데 윤후작에게만 특혜를 베푼다면 뒤감당은 어쩌겠느냐는것이였다.

그토록 목이 빠지게 고대했건만 종내 창덕궁에서 숨통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윤택영은 절망에 빠지고말았다.

헌즉 고국으로 돌아갈 날은 묘연하단 말인가. 돈이 없이야 뒤집힌 거북 한가지인데 어떻게 이 낯선 땅에서 허구한 세월을 살아간단 말인가.

별다른 수가 없었다. 타향에서 알거지신세를 면하자면 귀족의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호구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군자 말년에 배추씨장사 한다고 오래동안 주먹궁리를 하던 끝에 엿장사를 해볼가 하고 생각한 윤택영은 장사밑천을 마련해달라고 창덕궁에 또 기별을 띄웠다. 엿장사를 시작할 돈마저 남의 돈을 빌려 마련하려 했으니 과연 《채무왕》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윤택영이였다.

그러던 올해 4월 좋든싫든 윤택영이 환국하지 않으면 안될 불가피한 일이 일어났다.

순종의 부고를 받은것이다. 막상 채권자들이 잔뜩 이를 갈고있는 곳으로 들어가자니 아귀지옥으로 뛰여드는것만 같아 속이 떨려났다.

허나 이 기회가 아니면 영영 고국땅을 밟지 못할수도 있었기에 이러구저러구를 따질 계제가 못되였다.

윤택영은 쥐가 숨어들듯 살금살금 국내로 들어왔다. 본래 같으면 신분이 신분인지라 위풍당당히 귀국했을테지만 혹 빚군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면 어쩔가싶어 서울로 직접 들어올 대신 캄캄한 밤에 문산역에서 내렸고 거기서 마중나오게 한 리왕직 자동차를 갈아타고 몰래 창덕궁의 옆문인 금호문을 통해 입궐했다.

그뒤 두달이 넘도록 윤택영은 채권자들을 피해 창덕궁 내전에 수인마냥 붙박혀있으면서 원쑤진 집보다 빚진 집 문앞을 지나기가 더 어렵다는것을 처절히 절감했다.

어떻게나 이번 길에 쫓기는 들개신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바심치며 그는 친지들을 내세워 채권단과의 협상을 시도한다, 총독부에 청을 넣는다 수염의 불끄듯 덤벼쳤다. 그랬건만 빚군들은 저렇듯 더욱 기광이 뻗쳐서 날쳐대니 인제는 어찌해야 하는가.

지난 일들을 멍하니 돌아보는 윤택영의 목구멍으로 뻣뻣한 경련이 치밀어올랐다.

또다시 머나먼 타향으로 귀양살이를 가야 한단 말인가. 칼바람이 옷자락을 물어뜯는 골목길과 불기없는 려관방에서 또다시 고독과 절망을 하염없이 삼켜야 한단 말이지.

철새들도 돌아올 때가 정해져있건만 자기에게는 돌아올 기약조차 없다고 생각하니 와락 눈물이 쏟아져나오는것을 주체할길이 없었다.

그러고있느라니 느닷없이 뒤쪽에서 찾는 소리가 들려온다.

《후작각하.》

윤택영은 황망히 손수건을 꺼내 짓물린 눈굽을 훔치고나서 구겨진 얼굴을 돌렸다.

빚군들한테 붙잡혀 진땀을 뽑던 서변호사가 이마전을 훔치며 다가와 알리는것이였다.

《각하, 채권자들이 돌아갔소이다.》

《흥.》

윤택영은 맥없이 코웃음을 쳤다.

들어보나마나 결말이야 뻔할테지. 씹어먹을것처럼 떠들어대던 빚군들의 목소리가 되살아나 윤택영이 넌더리를 떠는데 서변호사의 입에서 뜻밖의 소리가 나왔다.

《헌데 저, 최박만씨가 각하를 꼭 뵙겠다고 기다리고있소이다.》

순간 윤택영의 목에 피줄이 파드득 일어섰다.

지독한 구리귀신같은 놈. 기어코 오늘중으로 내 깝대기라도 벗겨가겠다는건가.

윤택영은 벌레라도 삼킨듯 오만상을 찡그리며 역스럽게 내뱉았다.

《그깟 촌놈을 만나선 뭘 해.》

그러자 서변호사가 초조한 빛을 드러내며 몇걸음 더 다가서더니 슬며시 귀띔하는것이였다.

《최씨가 넌지시 하는 말이 각하께서 한가지 조건만 만족시켜주신다면 새 협상안을 고려해볼 용의가 있다 하오이다.》

순간 윤택영의 눈빛이 홱 달라졌다. 최가가 했다는 소리가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그의 귀에 탁 걸려들었던것이다.

윤택영은 눈이 퀭해서 서변호사를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조건이라구? 무슨 조건인데?…》

서변호사가 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그에 대해선 꼭 후작각하를 뵈옵고 말씀드리겠다 했소이다.》

서리맞은 풀잎처럼 처져있던 윤택영의 코수염이 꿈지럭거렸다.

대체 최가가 무슨 조건을 내대겠다는걸가?

하기야 아무 조건인들 상관있나. 빚만 탕감해주겠다면야 최가네 집 말뚝에라도 절을 할 판인데.

상당한 몫의 채권을 가지고있는데다 협상안을 앞장에서 반대하고있는 최가가 정말로 마음을 돌려준다면 다른 빚군들한테도 영향을 미칠수 있으련만…

윤택영은 앙가슴을 부풀리며 욕심스레 깊은숨을 들이긋고는 흉중에서 맴도는 불안과 죄의식을 몰숨과 함께 씻은듯이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거드름스레 헛기침을 톺으며 일어났다.

《으험, 최 아무개를 만나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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