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2 회

제 2 장

1926년 여름

3


경복궁옆 간동에 자리잡은 윤택영의 집 사랑채안은 악마구리 끓듯 하였다. 집주인측과 일여덟명의 채권자들사이의 담판이 벌써 몇시간째 치렬하게 벌어지고있었던것이다.

저녁무렵이 가까와오고있었다. 하건만 악에 받쳐 펄펄 뛰는 빚군들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줄 몰랐다.

엷은 천으로 지은 하오리에 하까마(가랭이가 넓어서 치마처럼 된 일본인들의 아래옷)를 걸친 본정의 일본인부자 가또가 맞은켠에 앉아있는 윤택영의 대리인을 향해 류창한 조선말로 고아댔다.

《도대체 그게 무슨 낮도깨비같은 소리요! 전답을 담보로 내 돈 15만원을 차용해가서는 7년이 지나도록 원리금을 갚지 않고있다가 인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채권액의 1할만 받고 빚을 탕감해달라고? 여보시오! 아무리 왕지네 회쳐먹을 비위이기로서니 세상에 그런 도적놈의 심보가 어데 있소! 누굴 미시리로 아는거요!…》

가또가 분김에 옆에 놓인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바람에 탁자우에 놓여있던 재털이에서 담배꽁초 두어개가 튕겨져나와 방바닥에 나딩굴었다.

가또에게 지지 않겠다는듯 다른쪽에서 땅개소리처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기광을 떨었다.

《15만원이락꼬? 항, 난 윤후작으게 30만원얼 대여해준 사람올시다, 30만원! 한달기한으로 30만원얼 빌려줬소만 9년 8개월하고도 닷새를 지내보낸 오늘꺼지도 리자넌커녕 원금조차 받지 못했단 말씀잉기라오. 이봐요. 서변호사, 30만원이 뉘 집 비루먹은 강아지이름인가 하능기요? 앙!》

발까지 탕탕 구르며 과따치는 목소리의 임자는 3년전 서울로 이사온 전라도 함평의 대지주 최박만이였다. 인정머리라고는 새알꼽재기만큼도 있어보이지 않는 최가의 꼬부장한 고리눈이 사납게 희번덕대고있었다.

그는 《합병》후 동척의 앞잡이로 왜놈들을 위해 극성을 부린 덕에 함평벌과 그 린근에선 황새가 10리밖에 날아가 앉아도 최박만의 논밭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많은 땅을 그러모은자였다.

그러한 최가가 순종의 장인이며 후작이라는 윤택영의 후광을 믿고 고리대를 놓았다가 그만 날벼락을 맞은것이다.

윤택영의 대리인인 서변호사가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전을 훔치며 맥빠진 변명을 늘어놓았다.

《채권자제씨들의 불만을 모르는바 아니오이다. 그래서 이렇게 고두백배 사죄를 올리는게 아니겠소이까. 사실 그간 후작각하께서도 부채상환때문에 여간만 뇌심초사를 하신게 아니오이다. 뚝섬에 락화생재배도 시도해보셨고 자제분이 미두에도 손을 대보았었지요. 마지막엔 총독부에까지 도움을 청했었소이다. 물론 일이 여의치 않아 어느 하나도 소기의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지오만 중망이 깊으신 후작각하의 진심이야 어델 가겠소이까. 보십시오. 부채를 상환하느라 커다란 이 집에 변변히 남은게 뭐가 있소이까. …》

서변호사가 손을 휘둘러 너렁청한 사랑방안을 가리켜보이며 딱한 표정을 지었다.

아닌게 아니라 어제날에는 부원군이였고 오늘에는 후작인 세도가의 집치고는 너무도 초라한 정경이였다.

마호가니나무로 만든 프랑스제가구들과 임금이 하사한 서화며 서양그림들, 금빛추가 흔들거리던 기다란 벽시계와 바닥에 깔았던 푹신한 고급주단, 창가를 장식했던 호화로운 비로도휘장이며 천정에 드리웠던 번쩍거리는 장식등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페가처럼 텅 빈 방안에는 어느 려인숙에 놓였던것인듯싶은 의자들과 탁자들 그리고 《수여남산》(남산처럼 장수하라는 뜻)이라는 색날은 현판만이 댕그러니 눈에 띄울뿐이였다.

서변호사의 목소리가 자못 절절하게 울렸다.

《채무문제때문에 물설은 이국땅에서 여섯해동안이나 환국을 못하시고 간난신고하시는 후작각하의 고충도 헤아려주시오이다. 그보다도 부친의 일로 자나깨나 념려하시는 대비전하의 심경은 오죽하시겠소이까. 사사로운 채무문제인 까닭에 총독부에서도 이래라저래라 간섭은 못하고있으나 창덕궁과 관계되는 일인지라 내심 채권자제씨들의 선처를 바라고있소이다. 아무쪼록 인지상정으로 살펴들주시기를 바랄뿐이오이다.》

그러나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그 사설은 눅거리빵부스레기처럼 방바닥에 흩어져버리고말았다.

무섭게 으르렁대는 소리들이 어지러이 터져나왔다.

《듣기 싫소! 그따위 소리나 듣자고 우리가 여기 온줄 아시오!》

《렴치두 가죽안에 있다는데 허 참, 남의 큰돈을 넙적 삼키구서 여태껏 수염을 내려쓸더니만 되려 제편에서 인지상정을 거들다니.》

《흥, 개입에설랑 상아가 돋는댑디껴?》

서변호사가 어쩔바를 몰라하며 장지문이 굳게 닫긴 옆방쪽으로 도움이라도 청하듯 눈길을 보냈다.

사랑방곁에 달려있는 그 방에 다름아닌 화제의 주인공인 윤택영이 있었다.

윤택영은 앙바틈한 몸을 안락의자에 깊숙이 파묻은채 꿀꺽꿀꺽 화를 삼키고있었다.

입귀로 축 처진 그의 코수염이 경련을 만난듯 가늘게 떨리는데 땀방울이 송골송골 돋은 움푹 패인 관자노리에서는 혈관이 풀떡거리고있었다. 몇가닥의 머리카락이 푸스스 흐트러진 벗어진 이마우에 어찌된 영문인지 푸릿한 멍자욱이 나있었다.

순종의 장례때문에 베이징에서 서울로 도적고양이처럼 몰래 돌아온 후 채권자들이 두려워 두달 남짓한 동안 창덕궁 내전에 들어박힌채 밖에 얼씬도 하지 않던 윤택영이였다.

하지만 국상도 이미 끝나고 머지않아 졸곡을 마치면 눈에 홰불을 켜들고 기다리던 채권자들이 아귀처럼 달려들터인데 그 성화를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더군다나 3년전부터 진행되여오는 자기에 대한 파산재판이 막바지에 이르러 드디여 선고가 눈앞에 닥쳐왔는데도 채권단과의 막후협상이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자 그는 급해나지 않을수 없었다.

법원이 자기한테 파산을 선고하면 부동산을 포함한 전 재산이 채권자들에게 넘어가는것은 물론 《품위실추》를 리유로 후작의 작위까지 박탈당해 모든 례우가 중지될것이니 그래도 지금껏 총독부가 씌워준 귀족의 감투라도 있어 간신히 버티여오던 윤택영으로서는 눈앞이 아뜩해지는 일이였다.

차라리 귀찮은 모든것을 피해 다시 베이징으로 달아뺄가 하는 생각도 우럭우럭 치솟았지만 천리타향에서 귀양 아닌 귀양살이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담해지는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바빠맞은 윤택영은 친지들과 머리를 맞대고 변통수를 의논했다.

그렇게 해서 마련한 새 협상안이라는게 100명이 훨씬 넘는 채권자들한테 빚진 돈 350만원의 1할인 35만원만 물어주고 나머지 빚돈은 탕감하자는것이였다. 윤택영은 서울장안에서도 손꼽히는 갑부인 형 윤덕영에게 35만원을 마련해주소 하고 부탁했다.

그런데 형이라는 사람은 대뜸 눈알을 곤두세우며 벌컥 화를 내는것이 아닌가. 평생 형을 등쳐먹다 못해 나주막엔 빚바라지까지 시키며 체면을 깎는다는것이였다.

윤택영은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누가 누구를 등쳐먹었다는건가? 부원군인 동생을 둔 덕분에 상감의 척신이 되고 서슬푸른 세도를 뽐내며 시종원경자리에까지 바라올라갔던게 대관절 누구인가?…

제 주제에 체면을 운운할 계제가 되나? 고종황제의 국장때 장례식을 주관하는 관리에 임명한다는 첩지를 다량으로 위조하여 《량반이 될수 있는 마지막기회》라고 광고하며 팔고 다니다가 꼬리를 밟혀 망신한게 누구인데, 각종 사기사건에 련루되여 경찰서와 법원을 제 집 드나들듯 하는게 누구인데 뻔뻔하게 그 입으로 체면을 외워대는건가.

동생이 개 몰리듯 빚군들한테 몰려 이역살이를 하고있을 때 세인들의 손가락질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장안에서 제일 큰 프랑스식저택까지 인왕산기슭에 어여번듯하니 세워놓은 형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다른 궁지에 빠진 동생을 쉰 떡 보듯 하는 윤덕영의 태도앞에 윤택영은 젖먹은 밸까지 뒤집혀와 견딜수가 없었다.

그는 형인 대갈대감과 주먹다짐까지 하며 대가리가 터지게 싸웠고 윤택영의 이마에 난 멍도 그래서 생긴것이였다.

결국 35만원은 윤덕영이 부담하기로 락착이 되였지만 정작 난감한 대목은 그 다음부터였다.

어차피 다 받기는 케가 그른 빚인지라 대부분의 채권자들은 마지못해 새 협상안을 수용했지만 받아야 할 빚돈이 엄청나게 많은 일여덟명의 대채권자들만은 협상안을 거부하며 법대로 하자고 마지막까지 버텼던것이다.

난사가 아닐수 없었다. 비록 머리수는 일여덟에 불과해도 과반수의 채권을 그러쥐고있는 그들이 도리를 친다면 협상의 결말은 불보듯 헨둥한것이였다.

물에 빠져 지푸래기라도 붙들고싶은 심정이 된 윤택영은 울며 겨자먹기로 창덕궁 담장밖을 나와 소고집을 부리는 채권자들을 간동의 자기 집에서 한번 만나보기로 하였다.

하면서도 시퍼렇게 독이 오른 빚군들앞에 나설 담은 도저히 생기지 않아 이렇듯 대리인만 내세우고 자기는 옆방에 숨어 하회를 지켜보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빚군들의 행악질은 예상했던것보다 더 험악했다.

그전 같으면 땅바닥에 코를 박고 고개를 쳐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천한것들이 아닌가. 그러던것들이 갑작졸부가 되였다고 거들렁대면서 귀족을 누데기만치도 여기지 않는 꼴을 보느라니 아무리 낯바닥에 철판을 두르고 웬간한 욕질은 담배 한모금 들이키는 정도로 례사롭게 넘겨버리는 윤택영이건만 목에 피대가 점점 더 동해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치받치는 분기를 애써 참느라 윤택영이 가쁜숨을 헐헐거리는데 최박만의 야살궂은 목소리가 다시금 귀청을 두들겼다.

《빚얼 갚느라 남은게 하나도 없닥꼬? 하항-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마시소. 7년전에 난 총독부에 수차 청원해서도 해결얼 못 보는지라 일본인변호사헌테 의뢰해설랑 윤후작의 동산얼 집행하게 했었지라오. 헌데 윤후작의 소유재산이란게 고작해서 300여원에 불과한게 아닝기요. 내 눈이 다 의심스럽더랑께. 조선귀족얼 대표하는 어른의 재산이 달랑 300여원이라니 어디 말이나 되능게라오. 아니나다를가 웬걸, 차압딱지럴 뗀지 한해도 못되설랑 후작어른이 일본인헌테 전답문서럴 잽히고 4만원얼 차입했다는게 아닝기요. 고급가옥 한채에 1만원얼 부르던 때니까니 4만원이 어디 작은 돈잉게라오. 그렇게 약차한 돈으로 전에 하다가 만 집수리공사를 재차 벌려놓았지라오. 항, 빚군헌테 물어줄 돈은 300원밖에 없다면서도 흥야라붕야라할 돈은 암만이고 샘 솟듯 하더랑께. …》

(개똥쇠같은 놈!)

채권자들가운데 협상안을 제일 한사코 반대해나서는자가 바로 저 최박만이다. 돈을 얼려낼 땐 촌부자라고 우습게 봤었는데 알고보니 벼룩이가죽도 벗기려드는 지독한자였다.

눈을 지릅뜨고 사랑방쪽을 노려보는 윤택영의 귀가에 중구난방으로 고아대는 소리들이 또다시 후려쳐왔다.

《그러게 발뺌할 틈사리가 없게 재산추적을 깐깐스레 해야 헌다니! 엉뚱한데다 숨겨놓은 재산이 있을수도 있는거구 또 타인의 명의로 옮겨놓았을수도 있으니껀요. 그리구 그런 사실이 드러나면 페일언하구 재산은닉죄로 고소를 해야 헙니다!》

《거 듣자니 윤후작이 돌연히 북경으로 가게 된건 창덕궁 리왕전하로부터 받은 비밀임무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더군요. 예전에 덕수궁 리태왕전하(고종)께옵서 원세개에게 개인적으로 금화 30만원을 꾸어주신 일이 있었는데 그 증서가 근래에 발견된지라 윤후작이 원세개의 유족한테서 빚을 받기 위해 증서를 가지고 중국에 건너간거라더군요.》

《흐하하…》

누군가가 너털웃음을 쳤다.

《삶은 소대가리가 다 웃겠소. 설사 리왕전하가 원세개에게서 받을 돈이 있었다손치더라도 〈채무왕〉으로 평판이 자자한 윤후작한테 그런 중임을 맡겼을라구요. 차라리 고양이한테 반찬단지를 맡겼으면 맡겼지. … 하여튼 윤후작이 하는 일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디다. 아무리 국상이라 해도 100여명의 채권자들이 윽벼르고있는 여기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요. 차라리 이 기회에 국상을 핑게삼아 할복자결이라도 하였으면 충신칭호라도 들을텐데. 흐흐흐…》

좌중에 폭소가 인다.

온몸을 발가벗기우는듯 한 모욕감으로 윤택영의 얼굴이 푸들푸들 뛰였다. 우는 얼굴에 벌 쏘듯 야지랑을 떠는자는 좀전의 가또였다.

윤택영은 당장 사랑방으로 짓쳐들어가 가또의 나불대는 주둥아리를 줴박고싶은 충동에 턱을 덜덜 떨었다.

송장메뚜기같은 놈! 지금은 저렇게 큰 부자연하며 건방을 피우지만 근본을 캐보면 저 가또란자도 한갖 생선장수출신이 아니던가. 그런 미천한 놈이 청일전쟁때 조선에 건너와 군대용달을 맡아 기반을 다졌고 그뒤로는 조선조정의 전매품인 인삼을 불법으로 재배하고 가공해서 거부가 된것이다.

이 땅에서 으시대는 왜놈갑부들이 다 그런 식으로 일확천금을 하고 득세를 하였다.

서양가구를 전문하던 어떤자는 조선관청들에 사무용가구들을 도맡아 공급해 거부가 됐고 또 어떤자는 몰락하여 락향하는 량반들의 집에서 골동들을 헐값에 사들여 거부가 되였다. 심지어 손가락 하나 까딱않은채 일본인의 배경이 필요한 조선인들의 회사에 이름만 빌려주고 돈을 번자들도 있었다.

그렇게 성공한 왜인들은 세인들앞에서 자신의 성공을 불굴의 투지와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라고 뻐젓이 포장하군 하였다.

허나 어떤 식으로 돈을 벌었든 그들의 성공의 배경에는 하나같이 일본의 권력이 도사리고있지 않았는가. 일본이 조선의 모든것을 틀어쥐고있는 덕에, 일본군대가 총칼로 뒤받침해준 덕에 조선인들의 재산은 왜인들에게 있어서 벼락맞은 소고기였고 왜인들은 무른 땅에 말뚝박듯 거침없이 성공의 신화를 써나갔던것이다.

윤택영의 입에서 땅이 꺼지도록 괴로운 한숨소리가 새여나왔다.

한때는 임금의 장인으로 뭇사람들의 공경을 받던 자기가, 《합병》후 일본으로부터 제일 높은 작위와 최고액의 은사금을 받았던 자기가 어데서 굴러다니던 말뼉다귀인지도 모를 가또나 최박만 같은자들한테 거지발싸개취급을 당할줄이야.

하긴 비단 윤택영뿐이 아니였다.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일본의 작위를 받은 이른바 《조선귀족》들중 대부분이 겨우 10여년안에 그 많던 재산을 탕진하고 간신히 생계를 유지해가고있었다.

어떻게 되여 그런 일이 벌어졌던가.

원래 조선봉건왕조시대에는 귀족제도가 없었다. 어이없게도 《조선귀족》은 조선이 사라진 이후에 생겨났다.

《한일합병》과 함께 《조선귀족령》을 공포한 일제는 저들의 길잡이노릇을 한 친일매국노들에게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작위를 주었고 그리하여 황족과 척족이 사라진 이 땅에 귀족이라는 새로운 무리가 생겨나게 되였다.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대다수의 귀족들은 명문거족의 후예들로서 워낙 물려받은 유산이 많았었고 봉건조선의 고위관료로 있을 때 부정부패로 긁어모은 재산 또한 방대하였었다. 게다가 작위와 함께 왜왕의 은사금까지 두둑이 덤으로 받다보니 《합병》직후 리완용을 비롯한 많은 매국귀족들이 조선에서 30대자산가의 반렬에 들어있었던것이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동족을 팔아넘긴 덕에 명예도 줏고 재산도 불쿤 역적들이였건만 잃어버린것도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더없이 소중한 권세였다.

조선을 집어삼킨 뒤 권력의 중심에서 조선사람들을 철저히 배제한 일제는 저들에게 아부굴종하는 친일귀족들까지도 총독부의 허수아비자문기관인 중추원의 한직으로 돌려놓았다. 개원이래 10년가까이 한차례도 소집되지 않은 중추원에서 친일인사들이 하는 일이란 고문서를 뒤적거리며 총독정치에 참고할 조선의 옛 관습과 제도 같은것들을 조사하는것이였고 그들이 받는 급료는 총독부 관리들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는것이였다.

지난날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 배꼽이 오강꼭지가 되도록 백성들을 수탈하고 뢰물을 받아먹다가 하루아침에 권세라는 여의주를 왜놈들에게 스스로 섬겨바친 친일귀족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뽕밭이 바다가 된것 같은 기막힌 현실이 아닐수 없었다.

《귀족》의 벙거지는 얻어썼어도 실권이 없었고 어제날의 고관대작이였어도 문밖을 나서면 증오에 찬 백성들의 눈총이 돌멩이마냥 날아들군 하였다.

별수없이 친일귀족들은 으늑한 집구석에 바퀴처럼 숨어 무료한 나날을 보낼수밖에 없었다. 밖에 나가봐야 할 일이 없고 집안에는 금의옥식이 가득한데다 흥청망청하며 떵떵거리던 옛시절의 버르쟁이는 여전하였으니 그들이 어떻게 세월을 보냈을지는 자상히 설명하지 않아도 뻔드름한 일이다.

주색잡기와 부화사치가 그들의 일상사였고 날마다 친일귀족집들의 대청마루에서 쏟아져나온 돈뭉치들이 장사치들의 지갑과 노름군들의 염낭속으로, 기생아씨들의 속치마속으로 이리저리 흩어져갔다.

하건만 권세를 부려야 재물이 계속 들어오고 부귀영화를 줄창 이어갈게 아닌가. 이전날에 긁어모은 재물이 아무리 많다한들 돈 들어올 구멍수가 막혀버렸는데야 오뉴월 땡볕아래 말라가는 시궁창이나 다를것이 무엇이랴.

몇해가 지나자 친일귀족들의 재산은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술값에 몰려서, 기생한테 줄 화대가 모자라서, 아편을 맞자니 돈이 없어서 집을 팔고 땅을 팔고 나중에는 투전질과 사기협잡에 절도죄까지 저지르다가 경찰서에 들락날락하는 귀족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거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터지는 가족들사이의 재산싸움은 작위 하나만으로는 도무지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친일에 앞장선 공로와 황족이라는 신분덕에 경술국치이후 왜놈들로부터 백작의 작위를 받고 중추원 고문이 된 을사5적 리지용의 경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본래 지독한 노름군이였던 리지용은 《합병》후에도 가산을 탕진하며 투전에 미쳐 돌아치다가 순사에게 발각되여 태형 100대의 판결을 받는 망신을 당했는가 하면 그로 인해 백작의 례우마저 몇년간 정지당해야만 했다. 그러고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해 끝내는 패가망신하고 지금은 비좁은 세방으로 옮겨가 방세조차 내기 어려워 전전긍긍하고있다니 실로 부유하고 귀해지기는 어려워도 가난하고 천해지기는 쉬운것이 세상의 리치인것 같다.

윤택영은 시르죽은 눈길로 사랑방을 바라보며 비맞은 스님처럼 중얼거렸다.

《처마가 낮으면 머리를 수그리지 않을수 없지. …》

빚군들한테 걸어보았던 실낱같은 미련마저 여지없이 끊겨져나가자 윤택영은 그칠새없이 울려나오는 기승스러운 목소리들에 침을 뱉으며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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