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1 회

제 2 장

1926년 여름

2


《기생을 불러라!》

종로 인사동의 사동궁에서 백주대낮에 술취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사동궁은 고종의 아들이며 순종의 이복동생인 리강이 살고있는 집이다. 노상 주색에 빠져 무위도식하는 집주인인지라 담장너머에서 어슬렁대며 감시하던 왜놈경찰도 픽 쓴웃음을 웃는다.

오래지 않아 기생을 태운 인력거가 분향기를 날리며 당도했다.

대문이 열리고 인력거가 사동궁 뜰안에 들어섰다. 껑충한 아래도리에 지하족을 신은 인력거군이 인력거를 리강이 거처하는 사랑채의 한옆에 끌고 가 세우자 삼회장저고리를 차려입고 가야금을 든 기생이 내리더니 하인을 따라 사랑채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인력거군이 머리에 동였던 수건을 풀어 땀을 씻고있는데 하녀 하나가 총총히 다가와 손에 든것을 내미는것이였다.

《삯을 받으시와요.》

인력거군은 흔연히 삯을 받아 웃도리주머니에 넣으며 인사치레를 했다.

《고맙소이다.》

그리고는 머리수건을 다시금 질끈 동여매더니 팽이처럼 몸을 돌려 인력거를 끌고 출발했다.

하늘은 칙칙하니 흐려있었다. 사동궁밖을 나서자마자 인력거군의 걸음이 차츰 빨라졌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인력거채를 겨드랑이까지 들어올린채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인사동길을 따라 안국동 네거리에 이른 인력거는 거기서 다시 느린 비탈길을 올라가 화동의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옹기종기 들어앉은 초가집들을 지나 얼마쯤 들어가니 꺼멓게 퇴색한 대문이 나타났다.

인력거가 대문앞에 멈춰서자 기다렸던듯 문이 삐걱 열리며 늙수그레한 청지기가 나왔다. 인력거군은 청지기에게 말없이 인력거를 맡기고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꽤 큰집이다. 행랑마당을 지나 중문을 넘어서니 안마당과 기윽자로 된 안채가 나졌다.

쇠락한 가세를 말해주듯 물러앉은 한쪽추녀가 쓸쓸하게 비껴왔다.

인품이 넉넉해보이는 늙은 녀인이 대청마루로 나오며 물었다.

《어찌되였나?》

머리는 반나마 세고 눈주름에는 다난했던 세월이 얹혀있어도 흰 모시적삼에 정결하게 쪽머리를 한 녀인의 모습에는 탈속한 녀승과도 같은 고고한 기품이 어려있었다.

《분부대로 받아왔소이다, 마나님.》

인력거군이 공손히 대답하더니 사동궁에서 삯으로 받은 지전을 꺼냈다. 사내는 녀인앞으로 다가가 지전갈피속에 끼여있는 쪽지를 넘겨주었다.

쪽지를 받아든 녀인이 너누룩한 어조로 말했다.

《수고했네.》

인력거군은 대답대신 허리를 굽석하고는 들어올 때와 다름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중문이 닫기자 쪽지를 펼쳐보고난 녀인이 나직하게 긴숨을 쏟는것이였다. 이윽고 녀인은 안방으로 향했다.

영창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니 무명적삼차림의 고수머리사나이가 방안에 앉아있다가 배허벅우에 두손을 모아붙이며 벌떡 일어났다.

초조해하는 사나이의 눈길을 받으며 아래목의 보료우에 가앉은 녀인은 사나이가 자리에 앉자 다소 흥분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사동궁에서 전갈이 왔소. 의왕(리강의 봉호)께선 고종황제페하의 비밀옥새를 십중팔구 윤대비마마께옵서 간수하셨을것으로 짐작하고계시오. 하긴 나도 그렇게 짐작했소마는…》

《그렇소이까?》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나이의 여윈 얼굴에 긴장이 서려있었다.

강파른 모습이였다. 자귀로 찍어낸듯 푹 꺼진 볼편이며 억세여보이는 턱에는 수염터가 꺼칠한데 고수머리카락이 한뭉치 드리운 거무스레한 이마에는 흉터가 깊숙이 패여있었다.

거치른 세월을 살아온듯 사나이의 눈이 이따금 감때사납게 번뜩인다.

사나이는 다름아닌 곽칠성이였고 녀인은 왕년에 고종황제를 가까이에서 섬기던 박상궁이였다.

친형처럼 의지하던 김상건을 왜놈들에게 잃고 조선군대마저 강제로 해산당하자 의분에 불을 질러 의병이 된 칠성은 스무해가까이 동료들과 함께 《왜멸복국》의 뜻을 품고 조선국내와 만주, 로령땅을 수없이 넘나들며 갖은 고생을 치르어왔다.

그 세월 장백의 골짜기들과 만주의 황야에 그들이 뿌린 피와 눈물은 얼마였던가. 때로는 총을 안고 수림속에서, 바위틈에서 밤을 지내기도 하고 때로는 왜놈들의 흉탄에 숨진 동료의 눈을 오장이 찢기는 슬픔속에 감겨주기도 하며 어느덧 만주의 한 독립군부대의 별동대장이 된 곽칠성은 군자금을 모연하기 위해 이렇게 압록강을 넘어 서울까지 온것이다.

그가 군자금때문에 국내에 들어온것은 처음이 아니였지만 이번에 받은 임무는 류다른것이였다.

어떻게 하나 이번 길에 황제어새의 행방을 알아내라는것이였다.

칠성이 떠나올 때 상부에서 내려온 총관령감이 그를 붙들고 신신당부했다.

《우린 거론끝에 자네에게 그 일을 맡기기로 하였네. 자넨 국경을 많이 넘나들어서 국내사정에 밝은데다가 고종황제의 비밀옥새에 관계한 사람들도 알고있질 않나. 곽군, 부디 성공을 바라네. 루차 말했지만 황제어새만 손에 넣으면 고종황제가 남긴 거금은 그대로 독립성전을 위한 군자금으로 될걸세. 허니 이번 길에 군자금모연에 지장이 있더래도 옥새의 행방을 알아보는 일만은 절대로 소홀히 하지 말게.》

황제어새라는 말을 근 20년만에 다시 들은 그 순간부터 곽칠성의 가슴속에서는 검붉은 화염이 피여오르고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황제어새는 임금이 남긴 거금이고 군자금이기 전에 그토록 망막에 아프게 새겨진 김상건의 마지막모습이였다.

자기의 귀뺨을 후려치며 꾸짖던 김상건의 성난 목소리가 어제런듯 귀전을 무섭게 때려왔다. 이 땅의 남아다운 그 희생을 헛되게 할수 없다는 심장의 웨침소리가 사나운 파도마냥 흉벽을 쾅쾅 두드렸다.

그렇다. 그 누구의 명령에 떠밀려온 길이 아니였다. 자기자신의 량심의 명령에 화답하여 칠성은 피를 끓이며 이 길에 나선것이였다.

곽칠성은 무거운 눈빛으로 방바닥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윤대비가 황제어새를 간수한것이 틀림없다면 그를 설득하는것외에 별도리가 없지 않는가.

하건만 저자거리의 려염집도 아니고 총독부의 철통같은 감시속에 있는 구중궁궐의 녀인을 설득은커녕 만날 방법조차 묘연하니 어찌한단 말인가.

설사 윤대비를 만난다 해도 왜놈들의 칼날이 항시 목을 겨누고있는 살벌한 판국에서 옥새를 독립운동에 선뜻 내놓으리라고는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였다.

칠성은 저도 모르게 불한숨을 내뿜었다.

국내로 들어올 때 받은 임무는 황제어새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내는것이였지만 막상 옥새의 행방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하고보니 우물을 발견하고도 드레박을 찾지 못해 물을 못 들이키는 목마른 길손마냥 마음이 갈급해나는것을 참을수가 없었다.

그러는데 박상궁이 천천히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것이였다.

《황실을 지켜보는 왜인들의 눈길이 여간 사무럽지 않으니 맞춤한 기회를 봐서 내가 의왕께 청을 넣겠소. 윤대비마마께옵서는 대의를 아는분이시니 의왕께서 나서시여 말씀드리면 외면하시지 않을거요.》

곽칠성은 미심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박상궁에게 물었다.

《정말로 사동궁에서 이 일을 도와나서리라 믿소이까?》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피눈물속에 왜놈의 종살이노릇을 하고있는데도 매일같이 술만 마시고 기생이나 끌어들이는 위인이 어떻게 위험천만한 이런 일에 발을 들여놓을수 있다고 믿는지 그로서는 좀처럼 리해되지 않았다.

칠성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듯 박상궁이 조용히 웃었다.

《그 어르신네에 대해 불미한 소리들이 많지만 기실 황족들가운데서 일본을 제일 미워하는분이 의왕이신줄 아오.》

박상궁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것이였다.

본의든 강요때문이든 일본의 꼭두각시가 되여 비루한 삶을 이어가는 고종의 일족들가운데서 그래도 옛 황족의 자존심을 지켜 오기라도 부리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의왕 리강이였던것이다.

《한일합병》직후 벌어진 연회판에서 울분을 누를길 없어 강주정을 부리던 리강이 자기를 나무라는 데라우찌에게 《이놈, 무엇이 어째? 너 죽고 나 죽자!》고 권총을 뽑아들었다는 일화며 어느 술자리에서 이전 대신들을 향해 《우리 아버지를 팔아먹은 놈들이 여기 있구나!》 하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들은 지금도 궁인들의 입에 종종 오르내리군 하는 이야기거리였다.

그렇듯 왜적들과 매국역신들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혀있는 리강이기에 안중근에 의해 이등박문이 사살된 뒤 자기를 일본에 사죄특사로 보내기로 한 리완용내각의 결정을 완강하게 거절했던것이고 기미년의 만세함성이 터지자 독립된 제 나라의 평민이 될지언정 일본의 황족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선언하며 서울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망명하다가 단동에서 일본경찰에 붙들려 강제송환당한것이 아니겠는가.

그후 총독부의 혹독한 감시속에서 연금상태에 놓이게 된 리강은 절망감을 달래기 위해 주색에 빠지기도 하고 그러다가는 때없이 천장에 대고 권총을 쏘아대기도 하면서 괴롭고도 허무한 세월을 보내고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방종속에서도 왜적에 대한 증오와 독립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리강의 가슴속에 잉걸불처럼 이글거리고있어 오늘처럼 기회만 생기면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제나름으로 왼심을 쓰군 하였던것이다.

곽칠성은 리강의 그런 리면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믿음이 비낀 박상궁의 낯빛을 보니 얼마간 마음이 놓여 결심을 내렸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현재로서는 상궁마나님의 생각을 따르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을것 같소이다. 헌데 왜놈들이 언제 냄새를 맡고 달려들지 모르는 형편에서 일을 지내 늦추다가는 랑패를 보기 쉽소이다. 되도록 이른 시일내에 기회를 마련해보시오이다.》

박상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고종황제페하의 마지막옥새를 섬오랑캐들의 손에 더럽혀서야 절대로 안되고말고. 그 옥새를 지키려 목숨까지 내댄 김참위가 지하에서 우릴 지켜보고있질 않소. …》

상궁의 목소리가 초불처럼 떨렸다.

칠성은 울컥 목이 메여왔다. 스무해가 되여오는 오늘까지도 김상건을 마음 한구석에 소중히 간직하고있는 박상궁이 고마웠다.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난 뒤 궁을 나왔지만 임금을 섬기던 지밀나인의 지절과 기품을 흐트림없이 지켜오는 상궁이였다.

임금을 욕보이고 황실을 유린한 섬오랑캐들을 상전의 원쑤이자 자기의 원쑤로 증오하는 상궁이기에 독립전에 나선 사람들과 일찍부터 줄을 잇고있는것이고 반백이 된 오늘까지도 독립을 위한 일이라면 이렇듯 외면할줄 모르는것이 아니랴.

곽칠성이 눈을 슴벅이며 아무 말도 못하는데 박상궁이 문득 생각난듯 묻는다.

《참, 평양에서 산다는 김참위의 처자들은 무고하오?》

칠성은 박상궁의 자상한 기억력에 재삼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예, 얼마전에 소식을 들었는데 다들 별고없이 지낸다 하오이다.》

이렇게 대답하는 칠성의 얼굴에 비로소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웃을 때면 신통히도 아버지를 방불케 하는 김상건의 유복자인 현무가 생각났던것이다. 이태전 황해도에 가는 길에 들려본것이 마지막이니 인젠 그녀석도 장정꼴이 다 잡혔을테지.

곽칠성은 어떻게든 이번 길에 꼭 찾아가봐야겠다고 속다짐을 굳게 했다.

그러는데 박상궁이 좀 기다리라고 이르더니 웃방으로 올라갔다.

잠시후 상궁은 비단수건에 싼것을 들고나와 칠성의 앞에 펼쳐보이는것이였다. 뜻밖에도 금가락지와 은비녀가 아닌가.

《변변치는 못하오만 군자금에 보태주오.》

박상궁이 하는 말이였다.

칠성은 당황해하며 상궁을 만류했다.

《그러지 마시오이다. 상궁마나님께선 전번에도 적지 않은 군자금을 기부하시지 않으셨소이까.》

하지만 박상궁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비록 내인이긴 하나 나도 왜적들에게 원한을 품고 사는 조선의 망국노요. 이 집을 통채로 팔아서라도 나라가 독립되는 날을 볼수만 있다면 무엇이 아깝겠소.》

사무친 소망이 상궁의 눈에 눈물같이 배여 후르르 떨었다.

곽칠성은 그 모습을 보기가 괴로워 눈길을 떨구고말았다.

어찌 박상궁뿐이랴. 왜놈들의 발굽에 짓밟혀 치욕을 씹고있는 조선사람모두가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독립의 날이 아닌가.

그런데 독립군이라 일컬으는 자기들은 이 불쌍한 겨레들을 위해 해놓은게 대체 무엇인가? 그래도 한때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다니며 왜놈병영을 친다, 주재소를 답새긴다 하고 기세를 들날리기도 했었건만 인제 와서는 괴멸되고 흩어지다 남은 오합지졸의 부대들이 다도해의 섬들처럼 여기저기 널려져 니전투구의 세력다툼만 일삼고있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염낭이 불룩하게 륙혈포를 차고 군자금을 거두러 다닐 때마다 칠성은 과연 자기들한테 동포들의 피땀이 배인 돈을 요구할 자격이 있기나 한가 하는 가책감에 가슴이 찔려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를 떠내보내면서 상관들은 황제어새를 손에 넣기만 하면 당장에 변을 낼것처럼 큰소리들을 쳤지만 똑똑한 방략도 없이 목침을 집어던지며 파쟁으로 여념이 없는 그들이 설사 백만금을 손에 쥔들 큰일을 이루랴싶어 칠성의 마음은 더더욱 무거워지기만 했다.

그러던 칠성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불이 펄펄 타던 김상건의 눈길이 눈앞에 다가들었던것이다.

(안된다. 상건형이 목숨으로 지켜낸 옥새를 왜놈들에게 뺏겨서는 안된다!)

김상건의 피값이 헐값이 되게 할수 없었다. 김상건이 목숨을 바쳐 새겨준 피타는 당부를 저버릴수 없었다.

칠성의 관자노리에서 피줄이 살아올라 꿈틀거렸다.

구름장틈새로 잠간 새여나온 한가닥의 오후해살이 간신히 울안으로 넘어와 대청마루에 흘러들고 영창문을 통해 용케 안방에까지 스며들었다.

박상궁이 장판우에 번지는 희미한 해살을 귀한듯 손끝으로 쓸어본다. 허나 해살은 이내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박상궁이 구슬픈 어조로 말했다.

《정녕 그 내탕금이 나라찾는 일에 쓰이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리된다면 구천에 계시는 상감마마께옵서도 편히 눈을 감으실게요. 나라를 빼앗기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시던 우리 상감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쓰리오. …》

지난날을 처연히 회상하는 상궁의 멍한 눈빛이 서러웠다.

더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곽칠성은 박상궁에게 당분간 서울에 머무르면서 기다릴테니 소식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하고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을 나서니 부풀어오른 흐린 하늘이 육중한 덩어리마냥 머리우로 흘러가고있었다.

색날은 밀짚모를 눌러쓰고 골목에서 나온 곽칠성은 천천히 종로방향으로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점쟁이 하나가 길섶에 자리를 펴고 앉아 찾아온 사람에게 옥추경을 외워주는 모습이 눈에 띄웠다. 양은장수며 땜쟁이가 골목길을 돌고있었다.

《양은 바꿔요, 양은.》

《솥 때워요, 냄비 때워요.》

그러는데 그 소리들을 누르며 어느 골목에서 장작개비를 쥐고 뛰쳐나온 아낙네가 달아나는 애녀석을 쫓아가며 화가 나서 고아친다.

《요 우라질 녀석 같으니, 게 서지 못해!…》

얼마쯤 내려가느라니 안동별궁의 두꺼운 돌담이 두길도 더 되는 높이로 길게 펼쳐져있었다. 별궁의 담장너머로 오래된 은행나무 한그루가 꾸부정히 서서 고적한 뜰안을 굽어보고있었다.

50여년전 순종의 세자책봉식이 조선봉건왕조사상 가장 화려하게 거행되였다는 안동별궁도 지금은 쓸쓸하게 비여있고 부속건물들에 궁에서 나온 얼마 안되는 궁녀들만이 거처하고있다고 한다. 조선의 왕권을 무력화하려는 일본의 책동으로 오래전에 많은 궁녀들이 궁에서 쫓겨났고 쫓겨난 이들은 궁궐근처의 떡집이며 조선옷집에 주저앉아 궁중음식을 가르치거나 궁중복식을 선보이면서 생계를 이어가고있었다.

돌담을 벗어나 행인들의 왕래가 한결 잦아진 안국동 네거리를 건너서자 칠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북악산을 등지고 왼쪽으로는 창덕궁이, 오른쪽으로는 경복궁이 지척에 바라보였다.

이 땅의 진짜주인이 누군지 알라는듯 경복궁을 가로막은채 도성전체를 굽어보는 모양새로 오만하게 솟아있는 조선총독부 신청사의 반구형지붕이 눈뿌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경복궁을 짓눌러 조선의 기맥을 끊어버리고 백성의 뇌리에서 옛 왕조에 대한 기억과 미련을 지워버리겠다는 왜놈들의 심보가 뻔드름히 들여다보이는 흉체였다.

어둑하니 흐려진 칠성의 얼굴에 비분의 그늘이 어른거렸다.

저걸 짓는데 근 57만가마니의 쌀에 해당한 돈이 들었다던 어느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조선사람들의 등껍질을 벗겨 수탈한 그처럼 엄청난 돈으로 왜놈들이 벌려놓은짓이란게 대체 어떤것이였던가.

수백여년의 력사가 슴배인 경복궁의 대부분 전각들은 되는대로 뜯기워 여기저기로 팔려나가고 궁궐의 오른쪽 망루인 서십자각에 이어 궁궐담장도 헐리다나니 왼쪽 망루인 동십자각만이 찌그러진 네거리 한가운데 외따로 내버려져있었다.

소문을 들으니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도 총독부 신청사의 정면을 가리운다 하여 머지않아 어느 구석진 곳으로 귀양살이를 가게 된다고 한다.

어찌 경복궁뿐이랴. 퇴위된 고종황제가 쓸쓸한 말년을 보낸 덕수궁은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였고 새로 들어선 일본인중학교에 밀려난 경희궁의 전각들은 코를 떼여 귀에 갖다붙이고 귀를 떼여 코에 갖다붙이듯 여기저기로 옮겨져 지금은 정문인 흥화문만이 페허같은 빈터를 지키고있을뿐이다.

그런가 하면 창경궁도 어디선가 잡혀온 동물들이 서식하는 동물원으로, 식물원으로 변모되고말았으니 조선을 타고앉은 왜놈들이 제일 큰 품을 들이고있는것은 다름아닌 조선민족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음으로써 렬등감과 굴종의식을 심어놓는것이였다.

곽칠성은 아프도록 심장이 쿵덩쿵덩 고동치는것을 느끼며 견지동길을 따라 걸음을 계속 옮겼다.

양복점이니, 모자점이니 하는 잡다한 간판들이 이어진 길가에 일본상점들도 적지 않았다. 견지동을 지나 공평동을 끼고 좀 걸어가느라니 화신상회의 간판이 보이는 종로 네거리가 나졌다.

전차가 종을 치며 느릿느릿 굴러온다. 왜놈군대 고관을 태운 시꺼먼 세단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오가는 사람들이 더욱 빈번해졌다. 양복차림에 가방을 들고 바삐 걷는 사나이도 있었고 상투를 틀고 갓을 쓴채 팔자걸음을 하는 로인도 있었다. 볕에 타서 거무테테한 장정이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데 버선에 구두를 신은 사내가 자전거를 타고 마주왔다.

겨드랑이에 빈 밥곽을 낀 젊은이 하나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울상이 되여 서있다. 젊은이의 발밑에서 좁쌀봉지가 쏟아져 나딩굴고있었다. 유까다(일본인들의 여름옷)의 소매자락을 너펄거리며 걸어가는 왜인들이 그 모양을 보며 키득거렸다.

길건너편에 몰락한 량반의 사랑채모양으로 퇴락해가는 보신각의 정경이 비쳐왔다. 보신각의 종소리를 들은지도 까마득한 옛날이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가 한번 크게 종을 울리고 달아난 일이 있었다 한다. 종각모퉁이의 로점주위로 거지애들이 어정거리고있었다.

칠성은 눈길을 왼쪽으로 돌려 종로경찰서를 바라보았다.

경찰서의 옥상우에 되바라지게 솟은 원통형시계탑이 살기를 풍기며 눈을 찌르고들었다. 매국은 합법이 되고 애국은 불법이 되는 식민지의 뒤틀린 질서를 강요하듯 시계탑의 정면과 량측면에 붙은 3개의 시계가 제각기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있었다. 경찰서의 현관앞에서 칼을 찬 순사가 아래배에 힘이 그득해서 사위를 두리번거린다.

누를길 없는 증오에 숨이 꺽 막혀왔다.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원한의 저 종로경찰서에 붙잡혀가 형언할수 없는 고초를 당하였던가. 제 나라를 사랑하고 침략자들에게 빌붙지 않은것이 죄라 하여 야수들은 살을 지지고 뼈를 으스러뜨리고 피를 말리며 갖은 고통을 들씌우고있었다.

그러면서 왜놈들은 거리낌없이 지껄인다. 《조선놈은 두들겨 패야 말을 듣고 명태는 두들겨야 맛이 난다.》고. 그런즉 놈들에게 있어서 조선인은 사람이 아니라 길들여야 할 짐승이고 맛을 들여야 할 명태에 불과한것이니 망국노의 신세는 얼마나 눈물겨운것인가.

종로경찰서를 노려보던 곽칠성은 입안에 피가 고인듯 한감을 느끼며 또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종로 네거리를 건너 관철동을 지나서 빨래하는 녀인들의 방치질소리가 들려오는 광통교를 넘어서니 남대문쪽으로 넓게 뚫린 번화가의 량쪽으로 서양풍의 건물들이 줄느런히 서있었다.

울긋불긋한 간판을 높이 매단 상점들에는 일본상품들이 쌓여있는데 거리의 구석구석마다에서 무언지 모를 이국적인 냄새가 풍겨왔다. 인도로 다니는 행인들가운데도 왜인들이 눈에 많이 띄였다.

느긋해서 이를 쑤시며 걷는 유까다바람의 사내들이며 게다를 달달 끌며 따라서는 녀인들, 누런 금이발을 드러내고 낄낄거리며 왜말을 주고받는 양복쟁이들… 그가운데 간간이 주항라 두루마기를 걸쳤던가 양복조끼 앞자락에 금시계줄을 늘어뜨린 상류층으로 보이는 조선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남대문쪽으로 갈수록 딸깍딸깍 게다짝을 끄는 소리들이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걷는 칠성의 얼굴은 암울하게 흐려있었다.

전번에 와보았을 때보다도 더한층 왜놈의 세상으로 변모된 서울이였다.

원래 서울의 중심은 광통교밑을 흐르는 청계천의 북쪽이였다. 궁궐과 종묘사직, 주요관청과 지배층의 거주지가 청계천의 북쪽에 있었고 남쪽은 중인들과 하층민들이 살던 곳이였다.

그런데 40여년전 남산기슭에 일본공사관이 둥지를 튼 때로부터 도성의 중심은 서서히 청계천이북으로부터 이남으로 옮겨지기 시작하였다.

청일전쟁발발후 저들의 거류민수가 빠르게 늘어나자 일본은 전쟁에서 승리한 기세를 몰아 거류지역을 본격적으로 확장했다. 진고개에서 남대문사이에 새 도로가 뚫어지고 일본인들의 주택과 상점, 우편기관과 주재소 등이 명동일대에까지 쓸어들었다.

로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방대한 침략무력과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거류민들을 배경으로 청계천의 남촌을 더욱더 왜식으로 뒤바꾸어갔다.

단순히 일본인거류민들의 생활공간을 넓히기 위해서만이 아니였다. 보다는 일본인들의 새 거주지인 남촌과 전통적인 조선인들의 거주지인 북촌의 차이를 하늘땅으로 만들어 《문명한 일본》이 《락후한 조선》을 다스려야 한다는 저들의 론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던것이다.

《합병》후에도 총독부는 도로확장 등 《개발》사업을 청계천이남에 집중하면서 조선의것은 냄새조차 나지 않게 말살해나갔다. 조선은행이며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이 땅을 수탈하기 위한 기관들이 남촌에 다투어 들어섰고 백화점들과 상점같은 류통망들도 이 지역에 많이 생겨났다.

그뿐인가. 오랜 유래가 깃든 남촌의 마을이름들도 얼토당토않은 일본식한자어로 마구 뜯어고쳐 진고개는 《본정》, 명동은 《명치정》, 소공동은 조선주둔 일본침략군사령관이였던 하세가와의 성을 따서 《장곡천정》 하는 식으로 《창지개명》을 하였다.

일본인들의 거주지는 명동과 구리개를 넘어 청계천변으로 뻗다못해 지금은 북촌까지 먹어들어오는 형편이였다.

총독부를 등에 업은 일본상인들의 밀물같은 침투앞에 조선상인들은 나날이 령락하여갔고 조선사람들은 차례차례 도성의 중심을 왜놈들에게 내여준채 변두리로 밀려나가고있었다.

결국 오늘에 이르러 서울의 중심은 청계천의 남쪽으로 확연히 옮겨진것이다.

토목적삼차림의 한 아낙네가 크다만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쫓기듯이 큰길을 건너갔다. 아낙네의 손에 잡힌 아이가 배가 고픈지 연신 칭얼대며 따라가고있었다. 무겁게 지게짐을 걸머진 중늙은이가 오그라든 볼편을 푸들거리며 골목에서 나온다.

가난에 결박당하고 강심살이에 주름깊은 그들의 꺼칠한 얼굴들은 화사하게 차려입고 거드름스레 유유자적하는 일본인들의 모습과 판이한 대조를 이루고있었다.

쓰라린 아픔이 칠성의 가슴속으로 불길마냥 번져왔다.

이 땅은 남의 땅이였다.

북악산과 남산은 예나 다름없고 한강수의 흐름도 여전하건만 이 땅의 주인행세는 왜놈들이 하고있었다. 이 땅의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쥔자들도 왜놈들이였고 이 땅의 산과 들을 처분할 권한도 왜놈들에게 있었다.

지어 놈들은 남산을 비롯한 삼천리 곳곳에 신궁과 신사라는것을 세워놓고 백의민족의 얼마저 저들에게 가져다 바칠것을 강요하고있으니 실로 이 땅에서 조선사람들은 남의 집 곁방살이를 하는 이방인이나 왜놈들의 노비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불현듯 칠성의 눈앞에 고종황제를 생각하며 서러워하던 박상궁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퍼런 대낮에 두눈을 펀히 뜬채 500여년의 사직을 강도들에게 빼앗긴 고종황제의 원통한 심정은 가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허지만 아무리 황제가 비탄속에 몸부림쳤다 할지라도 왜적들의 총칼에 몰려 마소처럼 부림당하고도 모자라 정든 고향과 농토에서 쫓겨나 타향만리를 헤매고있는 하많은 백성들의 비참한 신세에야 어찌 비길수 있겠는가.

어떻든 고종황제야 허수아비로 쓸쓸한 말년을 보냈을망정 제 집에 앉아 환갑나이에 고명딸까지 보면서 여생을 지내다가 숨을 거두지 않았던가.

흔히들 리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리완용만 아니였더라면 나라가 망하지 않았을것이라는건가?

하다면 나라가 그 지경이 되도록 옥좌에 앉아있던 황제는 무엇을 하고있었단 말인가.

한시바삐 일본에 맞서 제 힘을 키울 생각은 않고 큰 나라들만 쳐다보면서 귀중한 리권들을 헐값으로 넘겨주었는가 하면 바른말에 귀를 기울일 대신 무당이나 점쟁이들의 말만 들으면서 부패무능의 수렁속에서 허송세월하지 않았던가.

국권을 강탈당할 때 이른바 황족들가운데 왜놈들에게 항거하는 시늉이라도 한자가 있었던가?

한명도 없었다. 을사5적중의 하나인 리지용은 고종황제의 오촌조카였고 《한일합병조약》이 공포되기 전날 기녀와 창부를 불러모아 밤새도록 연회판을 벌려놓은 리재면은 고종황제의 형이였다.

나라가 망할 때 300여명에 달하던 전국 13도의 군수중 총독부 군수는 못하겠다고 사표를 내던진자가 과연 누가 있었던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때껏 순종의 신하임을 자처해온 봉건조선의 군수전원이 하루아침에 왜왕의 신하로 돌변하여 총독부 군수로 둔갑해버린것이다.

물론 사대부들가운데는 민영환이나 조병세와 같이 지조를 지켜 목숨을 끊은이들도 없지는 않았다.

허나 망국의 국치일을 돌아볼 때마다 기가 막히는것은 나라를 팔아먹은 공으로 왜국으로부터 상을 받은 이 땅의 관리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점이다. 마땅히 사직과 운명을 같이했어야 할 수많은 관리들이 《합병》후 왜왕으로부터 귀족의 작위를 받았고 은사금을 받았다.

리완용을 위시한 매국노들에게 무더기로 훈장이 지급되는 바람에 표훈원은 해를 넘기면서까지 훈장을 제조하기에 눈코뜰새가 없었다고 한다. 나라는 망했어도 훈장은 풍년이였던것이다.

망국노가 된 비통함에 겨레가 호곡하고 이 땅의 이름없는 백성들이 피를 뿌리며 왜적에게 항거해나설 때 나라를 망하게 한 대가로 왜왕이 던져준 돈과 훈장을 받아들고 희희락락한 무리들이야말로 개나 버러지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백성의 머리우에 군림하려고만 했지 나라와 백성앞에 지닌 책임에 대해서는 아닌보살하던 통치배들이였다.

황제와 관리들의 머리속에 들어찬 생각은 단 하나 개인과 가문의 부귀영화였거늘 그러한 《어른》들밑에서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을수 있고 어찌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지 않을수 있으랴.

곽칠성의 입에서 불같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사람에게는 자기가 돌아가야 할 집이 있어야 한다. 하건만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을 빼앗긴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조선사람들에게는 돌아갈래야 돌아갈 집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왜놈들에게 모욕당하고 착취당하고 고문당하고 학살당하고있는가.

얼마나 많은 조선사람들이 얼어터지는 만주벌과 씨비리로, 풍랑사나운 하와이와 아메리카로 헐벗겨 쫓겨가고있는가.

그들이 조상의 뼈가 묻힌 고국산천을 다시 밟을 날이 정녕 있기나 할가. 불쌍한 백의민족에게 빼앗긴 집을 되찾아주고 나라를 되찾아줄 어른은 과연 이 하늘아래 없단 말인가.

칠성은 울분으로 태질하는 가슴을 부여안고 발길이 가는대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그도 이 시각 자기가 김상건이 목숨을 던진 한강철교를 향해 가고있다는것을 깨닫지 못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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