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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제 1 장

1907년 봄

4


수화기에서 하세가와의 분기충천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통감각하, 어제 밤 우리 헌병대 장교가 조선군인에게 살해되였습니다.》

이등박문은 속이 울컥해나는것을 꾹 누르며 고압적인 어조로 뇌까렸다.

《아침에 보고를 받았소. 헌데 하세가와장군, 어째서 이 통감은 사태의 전말을 맨 나중에 알아야만 하오? 조선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소한것도 다 나의 사전승인을 거쳐야만 한다는걸 장군은 모르오?》

그러자 하세가와가 심술궂게 되받아쳤다.

《각하, 군대가 모든걸 시시콜콜히 다 보고할순 없습니다. 아무튼 참을수 없는 사태이니만큼 당장 병력을 발동해 시위대를 요정내든가 궁에 쳐들어가 조선황제에게 죄를 따지든가 결단을…》

《하세가와장군!》

이등은 사납게 하세가와의 말을 가로채며 꿰진 소리를 질렀다.

《명심하시오! 이 땅에서 군대의 최고통수권자는 나라는걸 말이요!》

그 소리에 대답하듯 전화기를 내동댕이치는 파렬음이 벼락치듯 이등의 고막을 때려왔다.

이등박문의 얼굴이 금시 폭발할것처럼 부르터올랐다.

(망할 자식! 군부를 등대고 오만방자해도 분수가 있지 감히 일본제국의 원로로서 총리만도 4번을 지낸 이 이또 히로부미를 무시해!)

상전인 통감을 문관출신이라고 시답지 않게 여기면서 매사에 제멋대로 하려드는 조선주둔 일본군사령관 하세가와였다.

격노하여 수화기를 내던진 이등은 허연 턱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마구 화를 터뜨렸다.

《에잇, 망둥이 같은것들! 도대체 당신들 눈엔 이 통감이 허재비로밖에 안 보이는가?! 왜 나와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런 망동을 벌려놓는가 말이요? 아하, 그러니 통감은 이러구저러구 간참말구 당신들의 뒤나 쳐달라는거겠소? 좋소, 내 래일, 아니 지금 당장 본국으로 돌아갈터이니 하세가와나 당신이 내 자리에 앉아 실컷들 해보시오! 어서!》

칼날같이 독이 올라 연방 노성을 질러대던 이등박문은 뒤늦게야 통감의 방에 앉아있는 사나이한테 흘깃 가시눈길을 던졌다.

검은 하오리를 입은 30대의 사나이가 두손을 무릎우에 벌려짚은채 이등을 마주보며 묵묵히 앉아있었다.

둥근 얼굴에 골격이 억세보이는 사나이였다. 짧게 깎은 총이 센 머리, 두드러진 관골, 치찢어진 눈초리 그리고 시커먼 수염속에 깊숙이 묻혀있는 꾹 다물린 입…

통감부의 촉탁이며 일진회 고문인 우찌다 료헤이였다.

이 사나이를 대할 때마다 이등이 자기보다 30년나마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위압되군 하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우찌다의 등뒤에 웅크리고있는 검은 권력때문인가? 아니면 사나이의 온몸에서 뻗쳐나오는 살벌한 기백때문인가?

이 시각도 간밤의 사건을 추궁하기 위해 우찌다를 불렀건만 벌써부터 김이 새여나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등은 자기가 노기등등해서 기광을 부리는데도 눈섭 하나 까딱않는 사나이의 거만스러운 패기에 약이 올라 목청을 돋구었다.

《우찌다선생이 한번 말해보시오! 일진회에서 이번 일을 꾸몄다니 누구보다도 선생이 잘 알테지요. 대관절 경운궁에서 빼내왔다는 조선황제의 그 비밀옥새라는게 어디 있소? 나도 구경 좀 해봅시다. 허 참, 기가 막혀서… 옥새는 정체불명의 괴한한테 뺏기웠다지, 일본장교는 살해됐지. 그래 통감 모르게 치렀다는 일이 고작 그런거요? 그 책임을 누가 질테요! 쯧쯧, 철부지들같으니…》

우찌다의 두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무섭게 울대뼈를 불끈거리며 이등을 바라보던 우찌다는 돌바닥에 무쇠공을 굴리는듯 궁근 목소리로 뜨직이 입을 뗐다.

《일진회의 고문으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러나 각하께서 정말로 우리가 하는 일을 철부지들의 망동정도로밖에 치부하시지 않는다면 단언컨대 기꺼이 저는 이 자리에서 사표를 낼 용의가 있습니다.》

이등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말았다. 한동안 성을 가라앉히지 못해 씩씩거리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 한켠에 있는 벽장으로 다가가 브란디병과 술잔을 꺼내들었다.

록록치 않은 사내였다.

작년에 초대조선통감으로 부임하는 이등박문에게 명치정계의 한 막후거물이 이런 말을 하는것이였다.

《지금 일본에는 비길데 없는 명마가 한필 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그 말을 부릴수 있는 인물이 없는것 같습니다. 각하께서 그 말에 자갈을 물리고 한번 부려봄이 어떻겠습니까?》

이등은 그 말에 한번 타보고싶었다. 그렇게 되여 소개받은 인물이 바로 일본우익의 준마였던 우찌다 료헤이였다.

일찌기 《흑룡회》라는 첩보모략단체의 우두머리가 되여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해 조선과 만주, 로씨야가 좁다하게 뛰여다닌 우찌다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이등도 잘 알고있었다. 이등은 주저없이 우찌다를 통감부의 조사촉탁으로 임명하여 자기의 개인참모로 삼았다.

과연 우찌다는 특유의 장악력과 음침한 지략으로 일진회와 같은 친일세력을 거머쥐고 조선의 국정동태를 날카롭게 감시하면서 일본제국의 번영을 위해 분주다사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정부나 통감에게도 구애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뜻을 쫓아 《천황》페하와 국가에 충성한다는 그 방약무인한 태도가 골치거리였다. 거기에다가 언제부터인지 우찌다에게도 군부의 입김이 미치고있었다.

야생말처럼 거칠고 자유분방한 이 사나이를 마음껏 부리자면 어떻게 하나 자갈을 든든히 물려야 할텐데…

술잔에 부은 브란디를 한모금 마시고나서 다시 제자리에 놓은 이등박문은 천천히 돌아오더니 책상을 사이에 두고 우찌다와 마주앉았다. 그리고는 지친 기색으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미안하오, 우찌다선생. 나이를 먹으면 노여움을 참기가 힘들어지는가보오. 허나 이번 일에 대해서는 실로 유감천만을 금할수 없소. 〈천황〉페하의 성지를 받들어 조선을 다스리고 광대한 대륙을 개척하자면 우리모두가 일치단합해야 할텐데 그렇게 다들 제가다리로 놀면 이 늙은이 혼자 무슨 용빼는수가 있느냐 말이요.》

그래도 우찌다는 여전히 분이 사그라들지 않는듯 무뚝뚝한 어조로 응대하는것이였다.

《통감각하의 심정을 하세가와대장께 전하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겠소.》

이등은 밸이 불끈거렸지만 지금은 적당한 때가 아니여서 화제를 돌리고말았다.

《당신들이 빼내왔다는 비밀옥새가 바로 〈황제어새〉라는거요?》

이등의 물음에 우찌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조사한바에 의하면 조선황제가 일본을 반대하여 외국에 보낸 밀서들과 국내의 배일세력들에게 보낸 밀지들에는 다같이 그 〈황제어새〉가 찍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미전부터 벼르고있었는데 그만… 하지만 불원간 우리 손에 다시 들어오게 될겁니다.》

우찌다의 눈이 번뜩였다.

이등박문은 량미간에 주름살을 모았다. 언젠가 그도 통감부 경무부에서 압수해온 고종황제의 밀서에 《황제어새》라고 옥새가 찍혀있는것을 본적이 있었다.

외교권을 빼앗은 뒤 고종의 모든 옥새를 통감부가 철저히 관할하게 하고 황제의 손발을 단단히 얽어매느라 그처럼 독을 썼건만 쥐도 새도 모르게 비밀옥새를 품고 허튼짓을 계속해왔으니 정말 소귀신같이 질긴 고종이였다. 이등이 고종의 의뭉스러움에 새삼스레 혀를 터는데 우찌다의 웅글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기회에 통감각하께 긴히 말씀드릴것이 있습니다.》

이등이 머리를 끄덕이자 우찌다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어찌하여 각하께서는 암암리에 딴꿈을 꾸고있는 조선황제에 대해 결정적인 대책을 취하시지 않습니까? 더우기 그는 근래에 들어와 헤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기 위해 끈덕지게 움직이고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선들을 통해 각하께 보고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런데도 각하께서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계시니 저로서는 리해할수가 없습니다. 본국정부내에서도 이를 두고 통감부의 태만을 비난하는 지적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등의 입가에 묘연한 미소가 떠돌았다.

우찌다의 말대로 이등에게 있어서 헤그회의와 관련한 고종의 움직임은 별로 놀라운것이 아니였다.

훌륭한 쟁인바치는 미완성품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 법이지.

이등박문은 턱수염을 내리쓸며 아닌보살했다.

《개밥에 도토리같은 조선황제가 인제 와서 무슨 큰일을 치겠다구.》

그러는 이등을 못마땅한 눈길로 바라보며 우찌다는 고집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는 단지 헤그회의만을 념두에 두고 말씀드리는것이 아닙니다. 주지하는바이지만 오늘날 일본은 이 나라를 완전히 장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나라의 외정은 물론 내정전반까지도 통감부가 좌지우지하고있는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하께서는 어찌하여 〈합병〉의 즉시단행을 망설이십니까? 숨김없이 말씀드린다면 저는 각하의 그 우유부단함에 불만을 금할수 없습니다.》

우찌다의 말은 숨가쁠 정도로 단도직입이였다. 느닷없이 그가 《합병》문제까지 거들고나오는 바람에 이등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제서야 이등은 우찌다가 진작부터 이런 기회를 노려왔다는것을 깨달았다.

《허허…》

이등은 대범하게 너털웃음을 터치려 했으나 웃음이 목안에서 걸리고말았다.

그의 이마에 피줄이 푸릿하게 살아났다.

《합병》을 즉시 단행해야 한다는 우찌다의 주장인즉 하세가와를 비롯한 군부의 주장이였고 더 정확히는 이등의 최대정적이며 군부의 실권을 틀어쥔 죠슈군벌의 두목 야마가따 아리또모의 주장이였던것이다.

오래동안 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야마가따의 죠슈군벌과 치렬하게 승부를 다투어온 이등이였다.

그가 조선통감으로 될 때에도 죠슈군벌의 반발과 방해가 얼마나 우심했던가. 그러한 그들이 이제는 우찌다 같은 재야강경파들에게까지 손을 뻗쳐 자기를 압박한다고 생각하니 이등은 목덜미가 달아올랐다.

하지만 수염이 허얘지도록 정쟁속에서 부대끼며 로회해질대로 로회해진 이등은 이런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이등박문은 입술을 실그러뜨리며 소리없이 웃더니 책상우에 놓인 담배함에서 굵은 려송연 한가치를 꺼내 물었다.

잠시후 자기의 들창코우로 그물그물 피여오르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며 이등은 우찌다의 도전에 느긋이 응수했다.

《옛말에 사슴을 쫓는자 산을 보지 않는다고 했던가. … 우찌다선생, 나 역시 〈합병〉을 찬성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 아니겠소. 제국의 식민정책을 현장에서 책임져야 할 나로서는 조급한 〈합병〉단행이 가져올 후유증을 념려하지 않을수 없소. 일로전쟁을 치르느라 피페해진 일본의 재정형편도 고려해야 하고 국제렬강의 시선도 의식해야 하거던. 게다가 우리는 일본의 〈보호통치〉를 거부하는 조선민중의 반항을 아직까지 수습하지 못하고있소. 때문에 나의 주장은 일단 조선을 〈보호국〉으로 통치하다가 조건이 성숙되면 〈합병〉해버리자는거요.》

우찌다가 시뭇이 웃었다. 입술사이로 늘어지게 려송연을 걸고 거드름을 피우는 이등의 모양이 비스마르크의 모습과는 전혀 비슷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래도 이등은 젊은 시절 견문을 넓히려 도이췰란드에 갔다가 《철혈재상》으로 명성이 높던 비스마르크를 만나본 뒤로는 려송연을 입에 무는 등 그를 흉내내면서 《동양의 비스마르크》라는 소리를 듣고싶어한다고 한다.

하건만 우찌다에게는 이등이 구운 게도 다리를 매놓고 먹을만치 소심해빠진 로둔한 정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리도 소극적인 이등이니 두번째로 내각을 이끌 때 일청전쟁의 귀중한 전리품인 료동반도를 《3국간섭》에 굴복하여 도로 게워놓는 굴욕을 당할수밖에. 통감관저에서 새여나온 소리를 들으니 밤마다 이등은 자객이 두려워 이리저리로 잠자리를 옮긴다던지…

우찌다는 능청스러운 불꽃이 이는 눈을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최근에 누군가가 쓴 글을 읽어보니 일본은 아시아의 대렬에서 벗어나 서양을 따라야 하고 렬강들의 방식대로 조선이나 중국을 대해야 한다는 후꾸자와 유기찌선생의 〈탈아론〉을 거론하면서 일청전쟁이 일본의 탈아입문전쟁이라면 일로전쟁은 탈아완결전쟁이라고 력설하였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우리가 조선을 완전히 〈합병〉하여 대일본제국을 완성할 때라야 탈아(아시아에서 벗어나는것)는 비로소 완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로씨야를 물리쳤다 해서 안심할수는 없습니다. 지금도 서양렬강들이 호시탐탐 동양을 노리고있는 형세에서 일본의 안전을 확보하고 우리의 국력을 대륙으로 확장하기 위해 〈합병〉은 빠를수록 좋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단코 행동하면 귀신도 길을 낸다고 했습니다. 비스마르크도 큰 문제들은 말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과 피에 의해 해결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석가에게 설법하듯 자기를 가르치려드는 우찌다의 건방진 태도가 이등에게는 심히 불쾌하게 여겨졌다.

입으로야 오사까성도 못 세우랴.

이른바 《지사》라고 자처하는 대륙랑인들이라는게 하나같이 저 모양이다. 먹지 않아도 이만 쑤신다는 허세와 무분별한 객기, 자기가 손만 대면 대사는 성사되고 천하는 순식간에 뒤집힐것이라 생각하는 과대망상…

명치유신의 결과 사무라이신분을 박탈당하고 칼을 차는것조차 금지당한 수백만에 달하는 일본사무라이들은 졸지에 랑인(섬기던 주인을 잃은 무사)이 되여 한지에 나앉게 되였다.

농사를 짓자니 땅을 뚜지기 싫었고 장사를 하자니 밑천이 없었고 장인바치가 되자니 손재간이 없었다. 오직 칼부림밖에 모르는 랑인들이 먹고살기 위한 방도로 택한것이 현양사니, 흑룡회니 하는 패거리를 무어 대륙침탈의 길잡이로 나서는것이였고 일본제국은 구시대의 오물로 페기해버렸던 그들을 《국권신장》의 수단으로 삼았다.

이른바 《대륙랑인》으로 불리우는 우찌다 같은 《대륙건달》무리들은 그렇게 생겨난것이였다.

하기야 저들에게 저런 기질이 없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광기와 피가 요구되는 대륙진출의 선봉에 어떻게 내세울수 있으랴고 생각하며 이등은 랭소를 띠웠다.

우찌다의 눈이 음침하게 빛났다. 상대의 마음을 간파하는데 능한 그는 이등박문의 속을 훤히 헤집고있었다.

우리를 두고 허세를 부린다고 비웃지만 자기는 어떤가?

《명치일본의 주역》이라느니, 《〈천황〉을 보좌하여 유신의 대업을 이룩한 호걸》이라느니 간판은 요란해도 들여다보면 젊었을적에는 출세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암살과 방화를 장한듯이 저지르군 하던 비렬한이 아니였던가.

《존왕양이》를 부르짖으며 망동을 일삼던 그 시절 출신이 미천하여 사무라이축에 당당히 끼울수 없었던 신분상의 렬등감을 만회하려고 칼없는 학자까지 암살했다는 이등의 졸렬한 과거가 떠올라 우찌다는 코웃음이 나오는것을 꾹 참았다.

차겁게 굳어진 통감의 낯빛을 보며 우찌다는 자기의 주장이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이 늙은 여우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으리라는것을 직감했다.

(빈말이 소용없다. 중요한건 실행이다. 우물쭈물할테면 하라지. 우리 흑룡회가 앞장에서 제국의 앞날을 개척해나갈것이다.)

우찌다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하며 이등의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고 이번에는 일진회의 자금문제를 끄집어냈다.

돈문제가 나오자 통감의 이마살이 대번에 찌프러졌다.

《아니 우찌다선생, 현재 일진회는 통감부로부터 매달 2 000원씩의 기밀보조금을 받고있는데 또 무슨 자금이 필요하다는거요?》

《통감각하, 각하께서도 잘 아시다싶이 지금 일진회는 각 방면에 걸쳐 제국의 통감정치를 적극 협력해나서고있습니다만 불원간에 치르게 될 〈한일합병〉 등 우리가 이 땅에서 수행해야 할 중대사들을 생각해볼 때 아직도 그 력량이 미흡하기 그지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몇해어간에 일진회원의 수를 한 100만쯤으로 늘이자는것입니다.》

《100만?!…》

이등은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문득 어제 열렸던 한 회의에서 군부대신 권중현이 일어나 그 자리에 참석한 7명의 대신들을 제외하면 전국민이 남김없이 배일세력이라고 우는소리를 하던것이 생각났다.

과장된 소리가 아니였다.

조선인들로부터 을사5적으로 지탄받는자들이 자객의 손에 걸려 황천객이 될번 했고 지어 우찌다본인까지도 일본헌병대에 신변을 보호받아야만 하는 처지가 아닌가.

사태가 그 지경인데도 일진회원수를 100만으로 늘구겠다며 돈을 달라니 배꼽이 하품할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똥 누고 개 불러대듯 일진회를 써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겨날 때부터 일본군부쪽과 가까왔던 일진회를 은근히 흘겨보고있던 이등으로서는 우찌다의 제의가 별로 반가울리 없었다.

이등이 입가에 쓴웃음을 바르는데 우찌다가 눈에 힘을 모으며 말했다.

《조련치 않은 일이라는걸 모르지 않으나 제국의 장래를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할 일입니다. 통감각하, 조선을 통치하는데는 두가지 길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조선민족을 외국인으로 간주하고 통치하는것인바 영국이 인디아에서 그렇게 하고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국은 오래 견딜수 없으며 언젠가 인디아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날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선민족을 동화시키는것입니다. 즉 조선민족이 일본어를 자기의 모국어로 받아들이게 하고 자기들의 전통과 문화대신 일본의 전통과 문화로 숨쉬게 하며 자기들 고유의 민족성을 잃어버리게 하여 그들을 일본민족에 용해시켜버리는것입니다. 이렇게 하는것만이 조선을 일본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드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자면 이 땅에 광범한 친일세력을 부식시키는것이 선차적인 문제로 나서는데 일진회의 확대는 이 문제를 푸는 해결책으로 될것입니다. 각하의 깊은 사려를 바랍니다.》

이등박문의 눈가에 음험한 빛이 떠올랐다.

야망에 불타는 우찌다의 얼굴을 날카롭게 바라보던 이등이 떠보듯 넌지시 물었다.

《우찌다선생, 과연 수천년동안 독자적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조선인들을 꽤 동화시킬수 있을가?…》

그러자 우찌다는 시커먼 수염속에서 궁글은 소리로 웃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조선민족을 동화시킨다는게 무른 땅에 말뚝박기처럼 헐하지는 않을겁니다. 그러나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반도라는 지리적위치와 오랜 기간에 걸치는 약한 국력으로 인하여 이 땅에는 대국에 굴종하는 사대근성이 뿌리내리게 되였습니다. 이 나라가 강하면 이 나라에 가붙고 저 나라가 강하면 저 나라에 가붙으면서 대국들의 힘을 빌어 살아가는 지배층의 사대정치가 수백여년세월 지속되는 속에 조선인들은 자기 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고 국난이 닥쳐오면 큰 나라부터 쳐다보는 사대심이 생겨났습니다. 그러한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오늘날의 일본은 동양에서 맨 먼저 문명개화를 이룩하고 청국과 로씨야를 거꾸러뜨린 대국중의 대국입니다. 한즉 조선인들의 마음속에 일본에 대한 사대심을 적극 조장하고 활용한다면 능히 그들을 우리의 의도에 맞게 동화시킬수 있으리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핫하하…》

이등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찌다의 생각이자 그의 생각과 꼭같았던것이다.

그래, 대일본제국의 앞길을 개척하자면 하세가와의 우직한 밸통도 필요하고 우찌다의 검측한 지략도 필요하다. 요는 그들의 장점과 허점을 제국과 이등자신의 리익에 부합되게 적절히 써먹을줄 아는것이다.

일본정계에서 《조정의 명수》라는 평판을 받는 이등은 이번에도 그에 어울리는 판단을 내렸다.

(역시 이자는 써주면 장수요 버리면 괴수가 될 사나이야.)

원래는 우찌다를 추궁하기 위해 불렀건만 어느새 마음을 고쳐먹은 이등은 그가 제기한 일진회의 자금문제에 대해 반승낙을 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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