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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제 1 장

1907년 봄

2


그 시각 고종황제는 경운궁의 침전인 함녕전 앞뜰에 나와있었다.

《어찌되였느뇨?》

박상궁이 다가오자 고종이 소리를 죽여 묻는 말이였다. 박상궁은 망설이다가 송구한 어조로 아룄다.

《상감마마, 아직 행방을 찾지 못하였사옵니다.》

고종의 입에서 가슴을 후벼내는듯 한 기침소리가 터졌다. 박상궁은 황급히 상감의 등을 어루쓸며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상감마마, 부디 옥체를 보중하시옵소서. 곧 전의를 부르겠사옵니다.》

허나 상감은 귀찮다는듯 손을 내젓는다. 얼마후 기침이 좀 가라앉자 고종은 구름덮인 밤하늘을 쳐다보며 괴롭게 탄식하는것이였다.

《아, 이를 어이할고-》

박상궁이 안절부절 못하며 상감에게 여쭈었다.

《상감마마, 믿을만 한 줄을 놓아 계속 행방을 탐문하고있사옵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그러는 박상궁에게 고종은 떨리는 목소리로 당부했다.

《조심하거라. 통감부에서 벼르고있을터인데.》

《녜, 듣자왔습니다.》

박상궁이 발끝을 저겨디디며 물러갔다.

뜰안에 홀로 남은 고종은 뒤숭숭한 상념에 휩싸여 다시금 서성대기 시작하였다. 바위마냥 무겁게 짓누르는 불안과 근심을 물리칠 길이 없었던것이다.

몇시간전 어둠이 풍그렁하니 깃들었을무렵이였다.

황제의 침전인 함녕전근처의 행각에서 난데없는 화재가 일어났다.

몇해전에도 함녕전에서 일어난 화재로 대궐의 대부분이 불타버린적이 있던지라 고종은 사색이 되여 직접 뜰에까지 나가 아래것들을 몰아댔다. 내시들이며 궁녀들과 무수리들이 달려오는 바람에 다행히 불은 제때에 끌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고종이 침전에 돌아와보니 보료우의 사방침이 마구 찢겨 딩굴고있는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보는 순간 확하고 목구멍이 달아올랐다.

무엄하게도 임금의 물건을 릉멸했다는 격노때문만이 아니였다. 어떤자가 복새통을 틈타 사방침속에 숨겨두었던 황제의 옥새를 훔쳐간것이다.

온몸이 자기의 육신같지 않게 화들화들 떨려왔다.

옥새를 훔치다니. 그러니 급작스레 일어난 화재도 황제와 궁인들의 이목을 허튼데로 꾀여내기 위한 흉책이였단 말이지.

대관절 어느 릉지처참할자가 이런짓을 했는가.

당장에 신하들을 불러들여 옥새를 찾아내라 불호령을 치고싶었다. 허지만 그럴래야 그럴수 없으니 어이하면 좋단 말인가.

고종은 벙어리 랭가슴 앓듯 하면서도 지밀나인인 박상궁외에는 누구에게도 사실을 터놓을수가 없었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을사5조약》을 날조해내자마자 일본이 눈에 칼을 세우고 달라붙은 일은 《대한국새》며 《황제지새》 등 고종황제의 옥새를 저들의 통제밑에 두는것이였다.

외교문서와 국내문서에 찍는 옥새부터 철저히 장악하여야 황제를 명실공히 바지저고리로 만들고 이 나라의 모든 실권을 완전히 틀어쥘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어쩔수없이 고종은 일본에 옥새마저 빼앗기고말았다.

옥새라는것이 무엇인가. 왕권의 상징이 아닌가.

옥새를 손에 넣으면 왕이 되고 빼앗기면 옥좌에서 물러나야 하였기에 예로부터 옥새를 넘겨받아 왕위를 계승하였고 적국에 굴복하여 나라를 내주는 군주도 옥새를 바쳐 항복을 표시하지 않았던가.

하거늘 옥새를 빼앗긴 고종이야말로 허재비와 다를바없는 임금 아닌 임금이였다.

그러나 지독한 왜놈들도 미처 셈하지 못한것이 있었으니 고종에게는 《황제어새》라는 또 다른 옥새가 있었던것이다.

《을사5조약》이 날조되기 전 일본의 조선강탈야망이 각일각 로골화되는 급박한 사태속에서 고종황제가 밀서와 밀지에 찍기 위해 은밀히 마련한 비밀옥새가 다름아닌 황제어새였다.

극비를 유지해야 하는 문서에만 찍혔기때문에 황제어새의 존재에 대하여서는 불과 몇사람만이 알고있었고 지어 명성황후를 잃은 뒤 고종이 계비로 맞은 엄비조차 모르고있었다.

일본의 마수로부터 사직과 옥좌를 지켜내기 위해 외로이 몸부림쳐온 고종이였다.

무정한 렬강들에게 밀서를 보내여 조선의 독립을 수호해달라고 눈물겹게 애원하기도 하고 임금을 저버리지 않은 신하들에게 밀지를 보내기도 하면서 그는 얼마나 처절하게 모지름을 써왔던가.

고종황제의 피눈물과 몸부림으로 씌여진 그 모든 밀서와 밀지들에는 하나같이 황제어새가 찍혀있었으니 실로 왜적들에게 모든것을 빼앗기고 빈이름만 남은 고종에게 있어서 황제어새는 자신이 이 나라의 군주임을 확인하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증거가 아니였던가.

헌데 겨우 붙어있는 한가닥 숨줄과도 같은 그 물건을 감히 황제의 침전에까지 기여들어와 훔쳐가다니. …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져와 고종은 부글대는 가슴을 부여안고 뜰안을 정신없이 서성거렸다.

구태여 캐보지 않아도 왜인들의 작간이라는것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일이였다.

통감부라는게 생겨난 뒤 황제의 일거일동에 더욱더 눈과 귀를 도사려온 그네들이니 고종이 자기가 좀처럼 떨어질줄 모르는 사방침속에 비밀옥새를 숨겨두었건만 어느 틈에 기미를 챈게 헨둥하였다. 그렇다고 왜인들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을게고 모름지기 대궐안의 끄나불을 추겼을터인데 대체 그게 어떤자일가?

매일같이 궁안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을 황황히 더듬어보던 고종은 이내 도리질을 치고말았다.

과연 황제곁에 믿을수 있는자가 몇이나 되랴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설음이 치밀어올랐다.

문득 황실의 종친으로 궁내부대신을 하는 리재극의 일이 되살아났다.

언제인가 리재극이 일본공사관에서 열린 왜왕의 생일잔치에 가서 《덴노헤이까 반자이.》(《천황》페하 만세.)를 불렀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그를 부른 고종이 신하는 제 나라 군주에게만 만세를 부르는 법도도 모르느냐고 꾸지람하자 리재극이 둘러댄 변명이라는게 참 가관이다. 자기는 반자이라고 했지 만세라 하지는 않았다나. …

꼭뒤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로 흐른다고 종친이라는자가 제 임금알기를 그처럼 우습게 아는데 다른 신하들이나 종복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대신들은 대신들대로, 궁녀들이나 내시들은 또 그들대로 앉으나서나 통감부의 눈치보기에만 여념이 없으니 새삼스레 그들가운데 누가 통감부의 끄나불이냐를 따질것도 못되는 형편이였다.

기막히도다, 정녕 이 나라의 주인이 통감인가 황제인가.

고종의 눈앞에 이등박문의 표독한 가시눈이 소름끼치게 다가왔다.

필경 이 나라의 주인은 통감인 이등이였다.

이 땅의 모든것이 지어 황제인 자기의 운명까지도 이등의 손아귀에 꼼짝없이 쥐여져있으니 이등이야말로 이 나라의 진짜황제인것이다.

리완용 같은 역신들이 황제를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업신여기며 제멋대로 날쳐대게 부추기는자도 이등이고 《궁금령》이라는것을 강요하여 일본경찰들로 황궁을 봉쇄하고 황제를 연금상태에 몰아넣은 장본인도 바로 이등이라는것을 고종은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그렇듯 통감자리에 틀고앉은 첫날부터 황제의 손발을 동여매기 위해 한사코 기승을 부려온 이등일진대 비밀옥새의 존재를 눈치챈것이 분명한 지금에 와서 더더욱 독기를 부릴것은 의심할바 없었다.

고종은 무거운 한숨을 몰아쉬였다.

이등의 독살에 시달릴 일도 끔찍했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것이 있었던것이다.

머지않아 네데를란드의 헤그에서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게 된다.

일본에 국권을 떼운 뒤 기회만 있으면 큰 나라들에 약소국의 억울함을 하소하는 밀서를 보내군 하여온 고종황제에게 있어서 만국평화회의는 《을사5조약》의 불법성과 일본의 강도적본성을 만천하에 고발하고 렬강들의 힘을 빌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가 아닐수 없었다.

나라의 비운을 통탄하는 애국지사들도 어떻게 하나 헤그회의에 대표를 보내야 한다고 황제에게 열렬히 상주해왔다.

고종은 통감부의 살벌한 감시를 피해가며 조심스럽게 헤그에 밀사를 파견할 준비를 진척시키도록 하였었다.

작년에 미국인 헐버트를 황제의 특사로 임명하여 헤그밀사들을 지원하는 사전공작을 펼치도록 하였고 정사(대표)로 선정한 전 의정부 참찬 리상설도 이미 해외로 나간 상태였다. 다만 부사(부대표)인 전 평리원 검사 리준이 현재 한성(서울)에 남아 밀사들이 지니고 갈 황제의 신임장을 기다리고있는중이였다.

이등의 엄격한 통제속에서 궁중비용도 마음대로 사용할수 없는 처지인지라 밀사들의 려비를 마련하는것조차 수월치 않았으나 지사들의 피끓는 애국충정과 고종의 끈덕진 집념으로 준비는 그럭저럭 이루어져왔다.

남은것은 기회를 보아 황제의 신임장을 작성하여 내려보내는것뿐이였는데 그런 대목에 와서 홀지에 옥새가 사라져버린것이다.

참으로 간이 마르는노릇이였다.

옥새를 찍지 못한 황제의 신임장이 무슨 소용있으며 황제의 신임장없는 밀사들의 말을 누가 들어주겠는가.

국권회복의 마지막기회마저 놓쳐버린다고 생각하니 고종은 가슴이 무너져와 견딜수가 없었다.

왕권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 같으면 즉시에 옥새를 새로 만들라 벼락을 떨구고도 남았을것이다.

하지만 모든 실권을 통감부에 빼앗긴채 늘 살얼음판을 밟아야 하는 지금의 처지에서 번거로운 과정과 많은 품이 요구되는 옥새제작을 왜인들 모르게 한다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또다시 기침이 터져나왔다. 숨이 넘어갈듯 고통스럽게 곤두기침을 깇던 고종은 한동안이 지나서야 식은땀을 훔치며 고개를 쳐들었다.

밤하늘에서는 이지러진 달이 조난당한 쪽배마냥 구름속에 잠겼다가는 솟아나군 하면서 힘겨이 떠가고있었다. 수염발을 흩날리는 쌀쌀한 밤바람에 마음마저 베이는것 같다.

어딘가에서 개들이 자발스레 짖어댔다. 대한문쪽이 소란스럽더니 오래지 않아 잠잠해지고말았다.

멍청히 그쪽을 바라보던 고종의 눈길이 어느 한 곳에 붙박힌채 움직일줄을 모른다.

대한문 맞은켠의 소공동쪽에서 고깔모양의 유별난 지붕이 어슴푸레한 달빛에 반사되여 누렇게 비쳐오고있었다.

황제가 하늘땅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인 원구단이였다.

서리맞은 호박잎처럼 생기가 없는 그 모양을 바라보느라니 지나간 일이 쓸쓸하게 떠올랐다.

그때가 정유년(1897년) 10월이였던가.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던 그날 새벽 고종은 원구단에 나가 자신이 황제로 즉위한다는 사실을 하늘에 알리는 고천지제를 올렸었다.

경운궁에서 원구단에 이르는 길 좌우로 총검을 추켜들고 엄엄히 늘어섰던 군사들, 호화로운 례복차림으로 떨쳐나섰던 만조백관들과 잡인의 왕래를 금하여 연도에 위엄스레 쳤던 휘장들… 임금이 입고있는 곤룡포며 타고있는 가마도, 나붓기던 의장기들도 온통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빛으로 번쩍거리고있었다.

먼 옛적부터 하늘의 자손임을 자부한 이 땅의 선조들은 해마다 동맹과 영고, 무천 같은 제천의식을 열어 하늘에 제를 지내군 하였건만 조선봉건왕조는 큰 나라의 천자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수 있다는 사대의 쇠사슬에 얽매여 500여년세월 감히 하늘을 쳐다볼 엄두조차 내보지 못하였었다.

바야흐로 사대교린의 한가한 외교로는 약육강식의 각축장으로 화한 국제무대에서 더이상 살아남을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하여 자주독립을 절규하는 겨레의 열망과 시대의 엄혹한 흐름에 떠밀리운 고종은 길지를 골라 황금빛지붕의 제단을 쌓도록 하고 왕조가 세워져 처음으로 하늘에 제를 올려 이 나라가 자주국임을 만방에 선언하였던것이다.

허나 왕으로 불리우던 자기가 황제로 불리우는 경사의 날이였건만 그날따라 고종의 심사는 왜 그리도 울적했던지.

40명이 메는 화려한 대련을 마다하고 4명이 메는 소련을 타겠다고 화를 내며 출발을 지연시켰는가 하면 원구단으로 가는 도중 어느 대신이 말에서 떨어지는 불상사까지 겹쳐 고종의 한숨은 더욱 늘었었다.

선왕대대로 물려온 사대의 유습을 거역한다는 불안감때문이였던가, 아니면 자주독립을 이룩할 아무런 실력도 없이 지렁이가 룡 흉내내듯 허울만 요란스레 바꾸었을따름이라는 렬등감때문이였던가.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만 10년이 되여온다.

(그런즉 경운궁에 옮겨온지도 10년이 되였단 말이지. …)

입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어둠속에 잠긴 궁을 둘러보는 고종의 얼굴에 추연한 빛이 서리였다.

다난한 세월이였다.

렬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약소국의 설음을 고스란히 씹어야만 했던 굴욕과 비탄의 10년이였다.

일본의 독수를 피해 로씨야공사관에 1년나마 피신해있던 고종황제가 온 나라의 들끓는 비난에 못이겨 환궁을 결심하던무렵만 해도 경운궁일대는 무수한 빈민굴과 황량한 밭고랑이 태반이였다.

원래 이곳에는 성종(조선봉건왕조의 9대왕)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의주로 피난갔던 선조(조선봉건왕조의 14대왕)가 돌아와 그 집을 림시거처로 사용하면서 궁으로 불리우게 되였고 이곳에서 즉위한 광해군(조선봉건왕조의 15대왕)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경운궁이라는 궁호를 붙여주었다.

그러던 곳이 임금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궁궐다운 건물도 없는 황페한 곳으로 퇴락하고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궁궐로서의 체모를 당당히 갖춘 경복궁이 아니라 페허와도 같은 경운궁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해가 왜놈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장소에, 자신의 신변안전도 담보할수 없는 경복궁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고종은 경운궁에 들어앉아 서양세력과 근거리외교를 펼치면서 그들의 힘을 빌어 일본의 압박을 견제할 속심이였다.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전해에 미국공사관이 들어선것을 시작으로 영국, 로씨야, 프랑스, 도이췰란드 등 각국의 공사관들이 련이어 들어서면서 경운궁일대의 정동은 조선에서 치렬한 리익쟁탈전을 벌리고있던 서양세력의 주요거점으로 변모되고있었다.

고종은 유미렬강의 공사관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선 경운궁에 자리를 잡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여차하면 몸을 피할수 있게 외국공사관들과 다리를 련결하도록 하였고 제 나라 병정들은 믿을수가 없어 서양인호위병들을 두려고 각방으로 노력하였다.

한편 기울어진 국운을 다시 일으키고저 나라이름을 바꾸고 황제로 즉위한 고종은 경운궁에 전각들을 새로 갖추고 외국인들을 접견할 서양식건물을 짓도록 하였으며 높다란 옥좌대신 보통의자에 앉아 외교사절들을 맞이하는 등 개명군주의 모습을 보이려고 왼심을 쓰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정동의 손탁호텔에 자주 드나들면서 서양외교관들과 긴밀히 련계하고있어 이른바 《정동파》로 불리우던 친미, 친로인사들을 적극 후원해주었다.

이 땅을 놓고 밀고당기는 렬강들의 톱질흥정은 음험하고 무자비하였다.

일본은 조선에서 청국을 밀어낸 뒤 주되는 경쟁자로 등장한 로씨야와 당분간 정면충돌을 피한채 미국과 영국에 접근하면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있었고 미국과 영국은 로씨야의 극동진출을 막기 위해 일본의 등을 밀어주고있었다.

로씨야는 또 로씨야대로 고종의 보호자연하면서도 정작 돌아앉아서는 조선의 장래를 저울판에 올려놓고 일본과 흥정을 벌려놓고있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고종황제는 큰 나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라의 귀중한 리권들을 떼여주고 온갖 환대를 베풀면서 사대외교에 골몰하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이듬해에 도이췰란드황제의 동생 하인리히가 조선에 들린적이 있었다.

청일전쟁후 로씨야며 프랑스와 함께 《3국간섭》을 들이댐으로써 일본이 료동반도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게 한 도이췰란드에 대하여 고종은 환상을 품고있었고 그런것으로 하여 도이췰란드황제를 보호자로 삼아 일본의 전횡을 저지할수 있기를 희망하며 하인리히를 최고의 국빈으로 례우하도록 하였었다.

그런데 그 대가로 고종이 받은것이란 하인리히가 떠나면서 답례로 남기고 간 뻐꾸기시계 하나뿐이였다. 그런 시계는 그무렵 도이췰란드의 어느 농가에나 흔하게 걸려있던 눅거리물건이였다.

그 일을 두고 약소국이라 업신여겼다고 분개하는 목소리들이 많았지만 어떻든 렬강들의 힘을 빌어 옥좌를 지키고 국권을 유지하는데만 급급하던 고종으로서는 서러워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였다.

로일전쟁에서 로씨야를 이기고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은 일본은 얼음에 박밀듯 《을사5조약》을 날조하여 이 나라의 국권을 가차없이 박탈했다.

고종황제는 피눈물을 흘리며 큰 나라들에 하소연하고 또 하소연했다.

총칼의 위협아래 강요된 조약에 자기는 동의한적이 없으며 금후에도 절대로 아니할것이라고, 억울하게 빼앗긴 국권을 되찾아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그러나 고종의 피타는 그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뿐이였다.

한때는 저마다 약소국의 보호자로 자처해나서면서 살이라도 뭉청뭉청 베여줄것처럼 갖은 감언리설을 아낌없이 늘어놓던 렬강들이 아닌가.

헌데 막상 약소국이 망국의 수렁속에 빠져 구원을 청하니 누구 하나 들은체도 안했고 한오래기의 지푸래기조차 내밀념을 않는것이였다.

고종은 몸서리치게 박정하고 랭혹한 렬강들의 진면모앞에 가슴을 두드리며 한탄했다. 그중에서도 그를 더욱 당혹케 한것은 미국의 돌변한 모습이였다.

사실 렬강들가운데서 고종이 제일 믿고 의지했던 나라가 미국이였다.

그렇게 된데는 미국을 남의 백성과 토지를 탐내지 않는 부유한 나라로, 신의를 중시하고 외국과 체결한 조약을 엄수하는 《모범적인 문명개화국》으로 극구 찬양한 친미파의 영향도 적지 않았지만 보다는 고종자신이 미국과 맺은 조약에 상당한 희망을 걸었던탓이였다.

미국이 봉건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면서 체결한 《조미조약》에는 류다른 조항이 박혀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다른 나라가 조약국의 어느 한 나라에 대하여 멸시하거나 불법행위를 할 때에는 반드시 서로 돕는다는 제1조의 항목이였다.

빛좋은 개살구같은 미국의 외교적수식사에 생소했던 고종은 그 조항을 미국이 안겨준 큰 선물로 받아들였다.

고종은 그 조항에 근거하여 미국이 이 땅에서 렬강들의 횡포를 견제하는 조정자가 되여줄것으로 크게 기대하였고 지어 미국과 공수동맹이라도 맺은것처럼 허망한 몽상에 부풀어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다른 렬강들과는 달리 조선에 대해 령토적인 야심을 보이지 않는데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수만리 떨어져있음에도 약소국이 릉멸을 당하면 힘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한 미국이야말로 선의로 가득찬 《서양대인》의 나라요, 신의가 두터운 대국임이 분명하였다.

따지고보면 미국의 겉모습이 고종의 눈에 그렇게 비쳐올수 있은것은 그들에게 령토적야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시기 미국의 관심이 다른 곳에 쏠려있었기때문이였다.

당시 력사상 최초의 제국주의전쟁으로 기록된 미국-에스빠냐전쟁에서 라틴아메리카와 태평양의 에스빠냐식민지들을 탈취한 미국은 그 일대를 저들의 세력권으로 굳히는데 몰두하느라 다른 분쟁들에는 될수록 말려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있었다.

미국의 그러한 정책의 본질을 뚜렷이 드러낸것이 필리핀에 대한 저들의 통치권을 인정받는 대신 일본의 조선통치에 동의한 《가쯔라-타프트협정》이였던것이다.

하건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제국주의적본성과 국제정치의 가혹한 리면에 너무도 어두웠던 고종은 한성에 부임해온 초대미국공사를 최대로 환대하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미국공사에게 자문하였는가 하면 미국인고문을 초빙한다, 리권들을 양도한다 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두터이 하기 위해 허다한 품을 들이였다.

그처럼 든든히 믿어왔던 미국이 결정적인 시각에 와서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꿀줄이야.

로일전쟁에서 일본의 승세가 확연해지자 초조해난 고종과 중신들은 《조미조약》의 문구를 곱씹어 외우며 일본의 감시를 피해 미국에 밀사를 파견했다.

로씨야와 일본사이의 포츠머스강화담판에서 조선의 독립이 보장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줄것을 담판의 중재자로 나선 미국대통령 루즈벨트에게 청원하기 위해서였다.

밀사가 제출한 청원서를 받아든 루즈벨트는 공식외교경로로 청원서가 들어오면 강화담판에 의제로 제출하겠노라고 약속했다.

밀사는 속으로 환성을 올리며 루즈벨트의 말대로 청원서를 주미조선공사관에 들고 갔다.

허나 때이른 환성이였다. 친일파가 장악하고있던 주미공사관에서는 본국으로부터 정식훈령이 없다는 구실로 청원서를 접수하는것조차 거절한것이다.

그로부터 얼마후 루즈벨트의 중재하에 조선에 대한 일본의 독점권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포츠머스강화조약》이 체결되고 루즈벨트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인수하는것에 대해 이의가 없다고 발표했다.

결국 루즈벨트는 일본과 짜고 어리숙한 조선봉건정부를 보기 좋게 롱락한셈이였다.

미국을 신주 믿듯 맹신해온 고종으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조미조약》을 맺은 뒤 대통령까지 연설을 통하여 만약 외국이 조선의 권리를 침해할 경우 힘껏 보호하여 영원히 우호를 돈독히 할것이라고 선언한 미국이 아닌가. 의로움과 신의를 목숨처럼 여긴다는 미국이 아닌가.

아니, 결코 그것은 미국의 본심이 아닐것이다. 전란을 끝장내고 화평을 이루자니 사세부득이 승자인 일본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만 했을테지.

(아무렴, 미국은 우리에게 확약한바가 있거늘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 나라를 버리지 않을게야.)

고종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며 미국에 대한 믿음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하기에 《포츠머스강화조약》이 체결된지 며칠후 루즈벨트의 큰딸일행이 유람차로 한성에 들리자 고종황제는 풀이 죽어있던 속에서도 황태자(순종)와 함께 오찬까지 마련하며 어떻게든 미국의 도움을 얻어보려고 안깐힘을 다했던것이다.

조선에 머무르는 열흘간 미국대통령의 큰딸일행이 얼마나 부산스러운 환대를 받았으면 후날 그 일을 돌이켜보며 《지겨울 정도였다.》고까지 고백했으랴.

민망한 모습이였다. 나라가 사대에만 매달려 허둥거리면 그 지경에까지 떨어지는 모양이다.

만일 그때 고종이 루즈벨트의 조종밑에 미륙군장관 타프트와 일본수상 가쯔라가 조선을 두고 벌린 흥정판을 알았더라면 그 심경이 어떠했을가.

그렇듯 처절하게 몸부림쳤건만 끝끝내 국권상실의 비극은 닥쳐오고야말았다.

고종은 또다시 오래전부터 신뢰하여온 헐버트에게 일본의 불법무도한 죄행을 고발하고 미국의 도움을 청하는 밀서를 주어보냈으나 워싱톤의 정계에서 헐버트가 받은것은 랭대뿐이였다.

하지만 이미 휴지장이 되여버린 《조미조약》에 여전히 미련을 품고있던 고종은 그후에도 거듭 미국에 구원을 간청하였다. 그런데 미국의 대답은 어떤것이였던가.

《을사5조약》이 공포되자 한성에서 제일먼저 공사관을 철수시킨 나라는 다름아닌 미국이였다. 서양국가들중 조선과 가장 먼저 국교를 맺은 미국이 가장 먼저 국교를 단절한것이다.

자국의 훈령에 따라 주재국정부에 고별의 인사 한마디 없이 서둘러 떠나던 미국공사관일행의 모습에 대해 그들자신도 《침몰하는 배에서 황급히 도망치는 쥐떼같은 모습이였다.》고, 《아직 장례식도 끝나지 않은 관에 못질하는것》이였다고밖에 달리 표현할수가 없었다.

외국공사관들이 모두 철수해버린 정동은 밀물이 빠지고난 개가처럼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경운궁의 담너머로 그 살풍경을 바라보면서 고종은 세상 한끝에 홀로 내버려진듯 한 절망의 나락에 빠져 남모르게 슬피 통곡하였다.

아, 이것이 정녕 약소국의 피할 길 없는 숙명이던가!…

눈구석이 축축해왔다. 그제서야 고종황제는 자기가 그날처럼 소리없이 울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고종은 누가 볼가 저어하며 슬며시 눈물을 훔쳤다.

구름틈사리로 얼룩진 달이 간신히 얼굴을 내밀었다. 으스름한 달빛이 대궐의 뜰안을 쓸쓸하게 얼비친다.

저도 모르게 고종의 입에서 처량한 시조가 흘러나왔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워도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홀로 오노매라


그 옛날 월산대군이 지었다는 시조였다.

시에 기대여 인생의 시름을 삭이며 살다 간 월산대군, 왕위에 오르게 되여있었건만 간신들의 롱간으로 오르지 못한 그를 두고 사람들은 비운의 왕손이라고 측은해하지만 그 시각 고종에게는 월산대군이 오히려 자기보다 낫게 여겨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신도 월산대군처럼 소란스러운 현실을 떠나 호수가에 은둔하여 풍월이나 읊조리며 세월을 보낼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담약하고 내성적인 고종이였다.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해온탓일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여서는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에 의지했고 그후로는 안해인 명성황후가 아버지를 대신했다.

그리고 명성황후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무당이나 점쟁이에게 의지해왔고…

그러한 고종이 격변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구새먹고 고삭은 사직을 지탱하자니 얼마나 힘에 버거웠으랴.

과도한데는 있었어도 일단 칼을 뽑으면 주저함이 없었던 아버지의 과단력이 부러웠다. 민첩한 총기와 림시변통의 기지로 임금이 할바를 귀띔해주던 안해의 조언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군 하는 고종이였다.

그 안해가 곁에 있었더라면 이렇게 앞이 캄캄한 때 무슨 말을 해주었을가?

고종의 생각은 다시금 숨막히게 답답한 현실을 헤매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가면 오래지 않아 나라가 아주 망할것은 불보듯 뻔했다.

과연 이제 와서 렬강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줄가?

국권을 잃고 그토록 피마르게 도움을 청했건만 여태 동정의 눈길 한번 던진적 없는 그들이 아닌가.

그러나 어이하랴.

스스로 운신할 힘조차 없는 약소국이니 큰 나라들을 쳐다보는것 말고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데야.

고뇌에 허덕이던 고종의 뇌리에 문득 을미사변후의 광경들이 떠올랐다.

공포에 시달리는 자기를 지켜 권총을 든채 밤새껏 침전을 지키던 헐버트며 미국선교사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독살이 두려워 눈앞에서 딴 련유통졸임이나 생닭알만 입에 대는 자기를 위해 매일 샌드위치를 만들어야 했던 서양녀인들이 떠올랐다.

그래, 죽어 조선땅에 묻히고싶다고 외우던 헐버트 같은 양인들이 있는 한 아직 한가닥의 희망은 남아있는게 아닌가.

비록 미국이나 영국, 아라사 같은 대국들이 전번에는 부득이하여 이 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는데 동의했지만 설마하니 일본이 이 나라를 통채로 삼키는것까지야 용인할라구.

렬강들이 한데 모이는 헤그회의에 참가하여 국제적물의를 일으키고 큰 나라들의 동정과 지지를 이끌어내기만 한다면야 일본도 서뿔리 날칠수가 없을테지.

헌데 어찌할고. 아무쪼록 헤그에 밀사를 보내야 할텐데 옥새를 잃었으니 이를 어찌할고…

또다시 가슴이 무너져왔다.

고종은 막막한 밤하늘을 쳐다보며 한숨만 내뿜었다. 그러는데 뒤에서 박상궁의 근심겨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상감마마, 밤이 쌀쌀하옵니다. 어서 안으로 듭시옵소서.》

고종은 버럭 역정을 내였다.

《왜 이리 성화냐!》

박상궁에게라기보다 무력한 자신에게 터뜨리는 상감의 맥빠진 노기였다.

화를 내고보니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런 때 황제를 곁에서 걱정해주는 사람이라고는 기껏해서 박상궁밖에 더 있는가.

고종황제는 긴숨을 내긋고나서 지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만 들어가자.》

그리고는 박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허청허청 침전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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