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농촌》
전후 우리 민족의 유구한 전통회화인 조선화의 앞길에는 빛나는 전성기가 펼쳐졌다.
너무나도 기나긴 세월 민족사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사대주의와 민족허무주의, 교조주의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것이
발전하는 현실과 인민의 지향을 반영한 문화,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드높여주는 주체적인 문화를 건설하시려는것이
온 나라 미술가들이 흥분했다. 그중에서도 정종여를 비롯한 조선화화가들의 격정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지난날 홍수처럼 쓸어들어오는 서양화에 밀려 퇴색한 동양문명의 슬픈 그림자마냥 외면당하던 조선화였다. 그러던 민족회화가 마침내 당당한 자기의
시대를 맞이하고 화가들
정녕
우리 인민의 미감과 시대의 요구에 맞게 조선화를 발전시키는것은 미술부문에서 주체를 세우고 미술의 모든 종류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선차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관건적인 과업이였다.
그것은 아직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로동당시대의 화가들이 처음으로 개척해야 할 전인미답의 생소한 길이였다. 수많은 미학적문제들을 새롭게 해결하여야 했고 형상수법들도 보다 풍부하게 탐구하여야 했다. 론쟁들도 많았고 이러저러한 시도들도 많았다. 하지만 초행길은 역시 다난하고 힘겨운 법이다.
허다하게 쌓이는 리론실천적과제들앞에서 많은 미술가들이 갑론을박하며 창작적번민에 모대기고있던 1954년 8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환호하는 군중에게 답례를 보내시며 차에서 내리시는
학생들앞에 나서자면 외모가 단정해야 한다시며 교육자들을 보다 번듯하게 내세우시려 늘 마음을 쓰시면서도
그날
전시된 작품들중 대부분이 학생들의 실습작품들이였던지라 미숙한 점들도 적지 않았지만
1층에 전시된 그림들을 보시고 2층으로 올라가신
그 작품은 우리 나라의 명승인 금강산의 일경을 대담하게 채색화로 그린 풍경화였다.
이윽토록 그림을 바라보시던
그렇다. 조선화의 기준은 다름아닌 우리 민족의 감정이였고 우리 인민의 미감이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화가들이 묵화를 그대로 답습하기만 하면 조선화의 전통을 살리는것처럼 생각하고있은것도 결국에는 옛것에만 매여달리면서 인민들의 생활감정을 보려 하지 않은데 주되는 원인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강서고분이나 안악고분의 호화찬란한 벽화를 통해 알수 있듯이 조선화는 오래전부터 채색화로 발전하여왔고 먹도 초기에는 조선화의 한개 채색에 불과하던것이 아닌가. 그러던것이 《청빈락도》를 숭상하는 일부 문인들의 수묵화가 수백년간 류행되면서 채색화의 화려한 전통은 점차 희미해지고 먹그림을 조선화의 주류인것처럼 여기는 외곡된 편견이 생겨나게 되였던것이다.
물론 지난 시기 수묵화도 현실의 모습을 이러저러하게 취급했지만 생활의 다양한 내용과 인민대중의 미적요구를 충족시키는데서는 단조로움을 면할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정종여의 눈앞에 문득 대동문의 자태가 떠올랐다.
평양의 대동문은 왜정때부터 퇴색된채로 조국해방전쟁까지 겪어왔는데 그 검뿌연 재빛의 모습은 마치 먹으로 그린 묵화를 련상시키군 하였다. 그러던 대동문이 전후에 들어와 새롭게 단청을 하였다. 봄을 맞아 초록의 생명이 다투어 움트는 대동강변에 수려하고 웅장하게 드러난 대동문의 새 모습은 흡사 아름다운 한폭의 진채화를 방불케 하였다.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우아하게 단청된 대동문앞에서 감탄해마지 않던 광경을 상기하며 정종여는 조선화의 채색화와 묵화를 두고 깊이 생각해보았다.
《인민들은 확실히 색을 사랑한다. 건강하고 젊고 씩씩한 빛갈을, 침착하고 점잖은 빛갈을, 청신하고 화려한 빛갈을 사랑한다. 채색화, 이는 일반군중속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대중적인 그림이다.
인민의 생활, 그들의 요구와 지향, 그들의 감정과 견해들은 진정한 예술을 먹여살리며 그것에 내용을 부여하는 생신한 원천이다. …》
그가 어느 기회에 토로한 자기의 소감이다.
정종여는
조선화 《5월의 농촌》(1956년)은 그 과정에 창작된 화가의 대표작중의 하나로서 당시의 채색화들가운데서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그림에는 해살 따사로운 봄날의 그윽한 농촌정서가 펼쳐져있다.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햇병아리들을 품고있는 어미닭과 한가로이 모이를 쫏고있는 닭들, 모이통에 내려앉은 한마리의 참새와 그것을 쫓아달라는듯 어미닭을 쳐다보는 병아리, 변두를 곧추세운채 참새를 노려보는듯 한 수닭, 그런가 하면 봄풀이 돋아난 들판우로 뻗은 복숭아나무가지며 아름답게 피여난 꽃송이들…
번들거리는 직사광선도 강한 그늘이나 반사도 취급되여있지 않지만 여유있는 공간감이 느껴지는 화폭전체에서는 포근하고 따스한 봄빛이 흘러넘치고있다. 몰골기법을 적용한 봄물이 오른 나무가지며 연두빛애잎들, 구륵법과 우림법을 활용한 엄지닭의 섬세한 형상 등은 진채화의 양상에 맞게 조화롭게 통일되여있음으로써 봄을 맞은 농촌마을의 정겨운 서정을 실감있게 나타내고있다.
보이는 정경도 아름답지만 보이지 않는 정경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림을 바라보느라면 전쟁을 이겨낸 이 땅우에 봄은 찾아와 그 봄의 훈기속에서 한껏 기지개를 펴며 새 생활창조에 떨쳐나선 전후 우리 농촌의 웃음과 화기, 약동하는 기상이 훈훈하게 안겨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단순히 화조화라고만 볼수는 없는것이다.
조선화 《5월의 농촌》은 전통적인 채색화형식을 시대적요구에 맞게 발전시킨것으로 하여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으로 당선되였으며 현대조선화의 채색화발전에서 선도적역할을 논 우수한 작품으로 우리 나라 미술사에 당당히 기록되여있다.
정종여는 그 작품외에도 담채와 농채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다채로운 채색화들을 많이 창작함으로써 조선화를 채색화로 발전시키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