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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13 회

제2장. 파 혼

3

우학이가 억봉이와 계향이한테 진짜혼인을 맺아주려 벼르고벼르던 날이였다. 우학은 남모르게 송별회를 차려놓고 억봉을 작숙네 집으로 손잡아끌었다.

달모네 집은 나지막한 황마산둔덕에 자리잡고있었다. 달모는 제철소적으로 손꼽히는 기능공의 한사람이고 살림살이손탁도 드센 축이여서 두칸이나 되는 자기 집을 쓰고살았다. 지붕에 기와대신 기름종이를 덮었지만 비가 새는 일은 없었으며 집둘레로 파벽돌을 주어다 나지막하게 담장을 쌓고 쇠장대를 박아 벽돌우로 얼기설기 쇠줄까지 얽어놓은것이 로동자집치고는 얼싸했다.

이 집에 계향이가 업혀산다. 제철소에 불이 죽어 일자리가 없어진 후부터는 우학이도 합숙에서 나와 고모네 집으로 왔다. 고모는 우학이네 남매를 자기 자식들처럼 위했다. 안해한테 극진하고 별로 가까운 형제와 친척들이 없는 달모는 처조카들을 자식 못지 않게 사랑하고 생각했다.

달모네 집에는 주학섭이 한발 먼저 와있었다.

《이자들 오나?》

주학섭은 집주인처럼 웃방 문턱에 가위다리를 하고 앉아 우학이와 억봉을 맞았다.

《빨리 오셨군요.》

우학은 주인노릇을 해야 할 자기가 늦어져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머리까지 끄덕여보이였다. 우학은 오늘의 소박한 송별연을 위해 그간 자기가 삯짐을 져 번 돈중에서 고향에 돌아갈 차비만 빳빳이 남겨놓고 나머지는 몽땅 털어 술도 받아오고 안주감도 사오게 했다.

《삼촌은 언제 떠나시려우?》

억봉은 주학섭한테로 다가서며 오늘따라 그를 삼촌이라고 깍듯이 존대했다. 학섭은 억봉이보다 열여섯살이나 손우여서 삼촌벌이 되고 남지만 웬만해 이렇게 부르지 않았다. 사람좋은 학섭은 언제한번 이것을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았으며 자기 나이보다 근 스무살이나 손아래인 또래들과도 동무처럼 어울리군 하였다. 자기자신을 박대하는데 버릇된 사람일수록 남의 존대에 예민하다. 학섭은 자기를 삼촌이라고 불러주는 억봉의 별치 않은 말에 가슴이 쿡 찔리웠지만 자신의 슬픔과 눈물을 웃음과 익살로 묻어두는데 습관되여있었다.

《아따, 색시네 집에 오더니 억봉이 갑자기 어른이 됐다. 그래 삼촌이 가는 날 술 한잔 사주려나?》

학섭이 입씨름을 벌리는데 집주인 달모가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고기꿰미가 들려있었다. 묵직한 고기꿰미에서는 서너손가락넓이 잘되는 붕어들이 아직 살아 풀떡거렸다.

《야, 형님 그거 안주감 괜찮수다.》

학섭은 목젖 넘어가는 시늉을 하며 부러 생침을 꿀꺽 삼키였다.

말끝마다 술술 하던 학섭은 막상 붕어회까지 받쳐 술이 들어왔을 때 댓잔밖에 들지 않았다.

《형님, 난 가겠수다. 래일은 나두 떠나야겠는데 가서 준비해야지요. 그새 형님신세 정말 많이 졌수다.》

학섭은 평시의 그답지 않게 달모의 손을 잡고 울먹울먹해 말했다.

《삼촌,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갈 땐 가더라도 이 술 한잔 더 받수다.》

억봉은 술을 한잔 부어가지고 학섭의 팔을 붙들었다.

《여보게 조카, 마음은 고맙네만 더 권하지 말라구. 오늘같은날 난 술먹으면 울어. 오늘같이 기쁘고 좋은 날 내 울어서 되겠나. 마음같아서는 이 자리를 뜨지 않구 밤새도록 술마시며 놀구싶네. 또 여기도 떠나가고싶지 않아. 여기 게걸포에 찾아와서 딸 다섯 낳도록 살았으니 미운 정일망정 톡톡히 들었거던. 고향에 간대야 나한테 땅이 있나 산이 있나, 배운 재간이 석탄 주무르구 쇠 다루는거니까 가서 딱쇠노릇밖에 더 하겠어. 그런 일이 내 성미엔 맞지 않아. 하지만 일본놈밑에서두 살았을라니 해방되였는데 살길이 생기겠지. 사람 정이란게 따져놓고보면 더럽단 말이야. 죽지 못해 살아오던 이 고장두 막상 떠나자니 서운하다니까…》

학섭은 술 받을 생각은 않고 장광설만 늘어놓았다. 술에는 취하지 않았으나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여져야 한다는 생각에 학섭의 마음은 슬픔으로 이미 잔뜩 취해있었다.

《땅에 정들어 그러겠나? 인정이 귀해 그러는게지.》

달모가 좌상답게 한마디했다. 머리가 반쯤 벗어진데다가 마흔다섯이라는 나이에 비해 때이르게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해진 그는 이 순간 별로 틀지고 위풍있어보이였다.

《형님, 형님 말이 맞수다.》

학섭은 억봉이가 자기한테 권하던 술잔을 뺏어 달모에게 주고나서 말에 발을 달았다.

《형님말이 진짜요. 쩍하면 고향, 고향 하는데 그게 다 고향사람이 그리워서지요. 난 고향에 내 땅이라군 송곳박을 자리두 없구 내거라군 나무 한그루 없수다. 그래두 고향을 찾아가지 않나요? 여기두 그렇지요. 처음 왔을 땐 가지 못해 야단이였구 죽지 못해 살아왔는데 오늘은 떠나자니 마음 아프군요. 형님이랑 이 억봉이 삼촌때문이지요. 내 어디 간들 형님네한테 받은 사랑을 잊겠소? 잊지 못하지요. 돌아가신 자네 아버진 더욱 그래.》

학섭은 억봉의 팔을 끌어당기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리였다. 그는 달모가 권해도, 우학이가 권해도 술을 받지 않았다. 그러더니 좌중을 향해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그래 잔치는 언제 하겠나?》

《가을에 해야지요.》

우학의 대답이였다.

《그럼, 금년가을에 해야지. 해방이 되였는데 해두 보란듯이 해야지.》

학섭은 아무말없이 앉아있는 억봉을 한참이나 뻔히 마주보더니 벌쭉 웃으며 그의 머리를 줴박고나서 달모쪽으로 머리를 돌리였다.

《형님, 그만하면 내 중매 잘 섰지요?》

《그럼―》

이미 취기가 오르기 시작한 달모는 그저 연방 머리만 끄덕거리였다. 달모는 무척 술을 좋아했지만 주량이 많지 못했다.

《내 중매비니까 마지막으루 색시가 부어주는 술이야 먹어야지, 잔치날두 올지말지 하니까. 자, 새색시― 한잔 부으라구―》

학섭은 부엌에서 들으라고 크게 소리치며 빈 술잔을 들어올리였다. 부엌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싫어요.》하는 계향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방에서 부엌으로 나가는 새문뒤에서 또렷이 들려왔다. 부엌에 함께 있던 달모의 처가 계향이더러 방안에 들어가라고 떠미는 모양이였다.

《오늘이 진짜약혼식이란 말이야. 색시없이 신랑만 앉히구 약혼하겠어?》

주학섭이 마른주정을 했으나 계향은 부엌에서 들어오지 않았다. 우학이 동생을 독촉하다못해 부엌으로 나갔으나 그도 인차 동생을 데리고 들어오지 못했다. 한참만에야 계향은 우학이한테 강제다싶이 끌려들어왔다. 방안에 들어와서도 계향은 술자리를 등지고 구석에 쭈그리고앉아 종시 술을 부으려 하지 않았다. 계향은 곤두세운 자기 무릎을 치마폭으로 감싸고앉아 푹 머리를 숙이였다. 방안사람모두가 그가 쿨쩍거린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우학은 딱한듯 말했다.

《글쎄 이 철없는게 내가 고향에 가겠다니까 저두 덩달아 따라간다고 이러지 않나요.》

우학은 제가 금시 울음을 터칠듯 한 표정이였다.

《아니, 그럼 두고 가겠단 말인가? 시집올 땐 오더라도 갈 땐 가야지…》

학섭은 어색해진 방안의 공기를 가시려고 반죽을 쳤다.

《새아기, 그러지 말구 한잔 부으라구. 나보다 신랑될 사람한테 한잔 부어야지. 그 술루 검은머리 백발 되도록 서로 의좋게 살자구 백년가약을 맺는단 말이야.》

주학섭이 아무리 능란하게 달래며 사정을 했으나 계향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계향은 우학이가 술병을 자꾸 손에 쥐여주자 나중엔 탁 뿌리치고말았다. 우학은 얼굴이 뻘개져 사람들이 없으면 자기 동생한테 금시 주먹이라도 안길것 같았다. 이때였다. 주학섭과 달모사이에 말없이 앉아있던 억봉이 나직이 말했다.

《우학이 동생! 그러지 말구 달모삼촌한테 한잔 붓소.》

크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자못 위엄있게 울리였다. 사람들은 모두 숨소리를 죽이였고 방안의 공기는 금시 터질듯 팽팽해갔다. 계향이가 억봉이말에 응한다면 그가 억봉을 자기의 약혼자로 인정한다는걸 의미했고 그렇지 않다면 모든것을 부인한다는걸 말했다. 찌꾸덩 새문이 열리더니 달모처가 방으로 들어왔다. 계향이를 달래는데는 자기가 낫다고 생각했는지 달모의 처는 계향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며 술병을 손에 쥐여주었다. 계향은 여전히 술병을 받아쥐려 하지 않고 탁 밀쳐버리였다. 그 바람에 술병이 넘어지며 방바닥에 술이 쏟아졌다. 억봉의 얼굴은 불타는듯 붉어졌다. 하지만 그는 아직 자기의 리성을 잃지 않았다.

《부라는데 왜 그러오?》

억봉은 조용하나 강박하듯 물었다. 계향은 방구석에 사람들을 등지고 앉은채 아무 응대 하지 않았다. 억봉은 얼굴이 뻘개서 다시 뇌이였다.

《나한테 술달라는게 아니라 이 〈걱정말라〉아저씨한테 한잔 부란 말이요. 오빠랑 작숙이랑 함께 고생하던 사람이 떠나가면서 작별의 정을 나누자는데 그 마지막부탁마저 거절해서야 되겠소? 그리구 뭔가 잘못 생각하는것 같은데 난 동생때문에 오지 않았소. 떠나가는 동생오빠와 작별하자구 왔지…》

억봉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갔다. 그는 달아오른 목을 추기려고 제손으로 술을 부어 쭉 들이키더니 방안사람들을 향해 다시 말을 이었다.

《모두들 약혼이요 잔치요 하는데 난 일본놈 덕에 장가들고싶지 않소. 그때 명색일망정 벼락약혼을 하고 허위 혼인신고를 냈던것은 처녀공출이 괘씸하구 속이 까매 돌아가는 우학이를 위해주느라 그랬던거지 내가 장가들자구 그랬던게 아니요. 우학인 내 동무구 동무가 제 동생때문에 안타까와하는걸 옆에서 보구 가만있을수 없어 연극놀았던거란 말이요. 일본놈때문에 억지로 했던 약혼이니 일본놈이 망한 오늘 그건 무효요. 오늘루 그 약혼은 파혼이란 말이요.》

억봉은 열에 떠서 부르짖었다. 일이 예상치 않던 방향으로 너무도 갑작스레 변하는 바람에 방안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져 억봉이만 쳐다봤다.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했던 달모는 술이 싹 깨여버리고 우학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학섭은 진담인지 주정인지 알아보려고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은채 억봉의 일거일동을 바라봤다. 억봉은 자기를 그렇게 눅거리로 알았댔는가 하고 묻는듯 한 표정으로 방안사람들을 둘러보며 피식 웃었다. 억봉은 등진채 돌아앉아있는 계향을 향해 개선장군의 관용성을 가지고 의논하듯 다시 말을 걸었다.

《우학의 동생! 어떻소? 해방이 됐으니까 이젠 낡은 둥우리에서 날아가잔 말이요. 자기 가구싶은데루…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두 한잔 붓겠으면 부으란 말이요. 〈걱정말라〉아저씨한테는 작별인사루, 나한테는 억지약혼 파혼값으루…》

억봉의 말에 계향은 정말 술을 부었다. 《걱정말라》주학섭의 잔에 술을 붓고나서 계향은 부엌으로 뛰여나갔다.

억봉은 계향이가 주학섭한테 부어놓은 술을 제앞으로 끌어당겨 단숨에 쭉 들이키더니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여보게 헌바지, 고향에 갈 때 차비루나 보태. 떠나던 날 너한테 역에서 주자던거야.》

억봉은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술상우에 내놓고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향에 오던 날 필주한테 꾸었던 돈중에서 남은 전부다. 억봉은 자기 누이 알뜰에게 주려고 봉투에 몇번씩 손이 갔다가도 이제 곧 고향에 가야 할 우학을 생각해 지금까지 참아왔었다.

우학이 달려나와 붙들고 먼저 가겠다던 학섭이 못 간다고 앞을 막아섰으나 억봉은 막무가내였다. 억봉은 모든 사람을 뿌리친채 어둠이 깃든 거리로 나섰다. 하늘에서는 방금 돋아나기 시작한 별들이 반짝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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