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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대에서 찾은 한생의 진리

 

   

한 진 섭(연극배우)

                       

1914년 5월 16일 경기도 김포군에서 출생.

1935년 금희좌에서 배우생활 시작.

1946년 5월 중앙예술공작단(국립연극단의 전신)에서 활동.

전후에 국립연극극장 예술부총장으로 사업.

1994년 3월 12일 사망.

인민배우.

                                                           

 

 

어버이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각별한 사랑과 관심속에서 인민배우로 자라나 수많은 연극과 영화들에서 관록있는 연기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그 은혜로운 품속에서 보람찬 무대생활로 한생을 마치고 애국렬사릉에 오른 인민배우 한진섭!

그가 걸어온 인생의 길은 북에 살건 남에 살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건 관계없이 모두에게 귀중한 생의 진리를 체득시키고있다.

 

 

방황의 먼지오른 고달픈 청춘시절

 

한진섭은 1914년 5월 경기도 김포군 대곶면 약암리 붉은바위마을에서 가난한 농사군 한응식의 막내아들로 태여났다.

이때부터 한진섭자신이 해방전 생활을 돌이켜보며 《방황하던 인생》, 《막벌이청춘》이라고 말하던 불우한 인생살이가 시작되였다.

고향에서 8살이 되던 1922년에 그는 없는 살림속에서도 지극한 부모들의 관심과 형제들의 후원속에 인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할수 있었다.

배움에 대한 소원은 당시의 모든 조선소년들이 다 가지고있었지만 한진섭은 정말 미치다싶이 공부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그 향학열은 수업료미납때문에 눈물과 한숨으로 바뀌여질 때가 드문하였다.

째진 가난속에서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웠던 가정사정은 그토록 배움을 갈망하는 어린 한진섭의 꿈을 지켜주지 못하고 종시 보통학교를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 그는 부모들의 아픈 가슴을 허비며 학교가겠다는 말을 다시는 꺼내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일자리를 찾아 방황하였다. 공부는 둘째치고 먹고 살기 위한 초보적인 생존조건이 어린 소년의 앞길을 위협하였던것이다.

아글타글 애쓰던 끝에 그는 1927년 가을에 인천항 소년인부로 들어가 힘겨운 육체적로동을 강요당하였다.

그러나 그 일이 생활의 안전을 담보해주는 직업으로는 될수 없었다. 나이로 보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육체로동인데다가 그 일자리마저 거덜이 날 때가 드문하였다. 배가 들어와야 짐을 싣기도 하고 부리기도 하는 그 일이 공고한 직업으로 될수 없은것은 당연한 리치였다.

발을 벋디디고 밥벌이를 할수 있는 직업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던 한진섭은 1931년 가을에 서울로 가서 금강당이라는 활판인쇄소 로동자로 입직하여 일하다가 그후 일자리를 옮겨 문화당인쇄합작사와 대성당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로동에 종사하였다.

청년기에 들어서면서 당시 인쇄소에서 출판하고있던 신문과 잡지들을 읽어보고 남몰래 좌익서적도 탐독하게 된 그는 사람 못살게 되여먹은 세상의 리치를 깨닫게 되였으며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일에 적은 힘이나마 보태고싶은 불같은 희망을 품게 되였다.

그는 1935년 여름에 비밀독서회에 망라되여 맑스, 엥겔스와 레닌의 저서들을 비롯한 사회주의리론서적들, 자본주의의 취약성을 폭로하고 사회주의사상을 고취하는 도서들을 탐독하였다.

그러던중 당시 일제가 가장 엄중시하며 눈초리를 돌리던 좌익서적의 하나인 《붉은 지붕밑》이 발각되는 바람에 한진섭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게 되였다.

순간이라도 어물거리다가 잡히는 날에는 목이 날아나든가 꽁꽁 묶이워 감옥으로 끌려갈수 있었기에 그가 급기야 피신처로 찾아간 곳이 당시 3류급의 가설포류랑극단인 금희좌였다. 말그대로 거친 포목으로 림시 막을 둘러 무대를 만들고 공연을 하며 떠다니는 극단이여서 배우들의 잔등에서 늘 등짐이 떠날줄 모르는 극단아닌 극단이였다.

인천공립보통학교시절부터 연극에 남다른 취미와 지향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너무 밑천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했던지라 그는 주저없이 극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극단에 들어간 초기에는 공연무대를 타지 못하고 무대잡부로서 궂은일 마른일을 도맡아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후에 본인이 회상자료에도 썼지만 허기진 배를 그러안고 토스레를 걸친 연약한 등에 무거운 짐짝을 걸머지고 류랑하는 극단을 따라다니는 짐군노릇은 참으로 눈물겨운 고통의 하루하루였다.

적지 않은 기간 잡부로 일하면서 어쩌다가 군중역에 출연해본것이 그의 첫 예술활동이였다.

이처럼 체포령을 피하여 새로운 방랑을 시작한 때로부터 한해반가까이 되던 1936년 가을 한진섭은 2류급의 극단인 황금좌의 광대로 취직하여 연극 《법정에 선 기생》에서 청년대학생역을 수행하게 되였다.

여기서 배우로서의 장끼를 보여주고 인정을 받은 그는 련이어 연극 《장수월》에서 주인공 장수월역을 맡게 되였다. 결국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인 무대배우로 나서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그리도 공경하고 하고싶었던 일, 가고싶었던 길인 연극예술창조의 소원은 쉬이 성취되지 않았다.

어디에나 먹이를 노리는 독사들이 득실거리던 악의 땅에서 그한테는 꿈을 펼칠 무대가 아니라 죽음의 올가미만이 늘 뒤따르고있었다.

황금좌의 무대에서 두번째 봄을 맞이하던 1938년 3월 독서회책임자였던 현기백이라는 사람이 체포되였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시시각각으로 위험이 닥쳐오고있다는것을 직감한 그는 조국을 떠나 이국땅 만주로 몸을 피하였다.

이때부터 거의 두해가까이 그는 형용키 어려운 가련하고 서러운 눈물의 방랑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승원에서 베이징으로, 베이징에서 심양으로, 심양에서 평양과 인천으로 변성명을 하고 숨어다니는 방랑객이 되다나니 연극무대 같은것은 그림의 떡이였고 당장 입에 풀칠을 하는것이 목전의 과제로 나섰다.

한진섭은 서리바람이 배회하는 락엽무지에 방랑객의 몸을 묻고 밤을 지새우면서 서럽게 울군 하였다.

울어도 땅을 쳐도 자기 몸을 따뜻이 감싸줄 집이 없었고 돌봐줄 손길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 눈물겹고 고달픈 방랑의 먼지를 들쓰며 차츰 나라잃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자기자신의 운명과 결부시켜보면서 이대로는 살수 없어 투쟁에 일떠선 사람들의 장거가 얼마나 의로운것인가를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되였다.

귀중한 청춘시절을 놈들의 눈을 피해다니며 호구지책을 위한 방랑으로 흘러보내는 허무감과 수치감으로 모대기던 끝에 그는 가고싶은 길을 걸으면서 왜놈들과 그 앞잡이놈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선 사람들을 찬양하고 고무격려하는 일을 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내리게 되였다.

그리하여 1939년 11월 만주의 할빈으로 들어간 한진섭은 조선연극연구협회에 가입하였으며 연극 《길》과 《포구에서》를 창조공연하는데 참가하였다.

그런데 일본고등계의 검열관놈들은 이 작품들이 불온한 경향을 가지고있다고 하면서 무작정 공연을 중지시키고 이 단체에 추방령을 내리였다.

하는수 없이 심양으로 가는 창조집단을 따라걸으며 이국땅에 와서까지 일본놈들의 채찍밑에서 옹크리고 살아야 하는 식민지노예의 신세를 절감하였다.

그는 가슴속에서 굳어지기 시작한 반일애국감정을 폭발시켜 무대우에 무엇인가 더 크고 의로운 형상을 펼쳐놓아야 한다는 자각을 가지게 되였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옳았다는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1941년 봄 서울에 있던 중앙극단인 반월무대의 연극인들이 심양으로 밀려들어왔는데 리유인즉 일제놈들이 무조건 연극을 일본말로 해야 한다고 강요하였으므로 이에 항거하여 극단이 통채로 이동해왔다는것이였다.

남의 나라 땅인 만주에서라도 우리 말로 연극을 계속해보려는 이들의 념원은 절절하면서도 눈물겨운것이였다.

침략자가 주인이 되여버린 조국땅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던 처지, 조선사람이면서도 조선말을 하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이 가슴찢기는 현실을 두고 연극인들은 설음에 울고 분노로 주먹을 떨면서 이를 갈았다.

과연 내 나라, 내 민족을 살릴 구세주는 어디에 있는가?

이들은 왜놈들이 이름만 들어도 기절초풍하는 김일성빨찌산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김일성장군님을 따르는 심정으로 마음과 마음을 합쳐 새로운 극단인 동방을 조직하고 공연활동을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한진섭과 함께 해방후 연극예술활동에서 이름이 높았던 배우들도 있었다.

하지만 동방은 태여나 첫울음을 터치기 바쁘게 된서리를 맞지 않으면 안되였다.

악독한 일제놈들은 만주국홍보처(검열기관)놈들을 부추기여 한진섭이네들이 조직운영하는 동방을 불순단체로 락인찍고 공연활동을 중지시키였으며 이것도 모자라 추방령까지 내리였다.

한진섭을 비롯한 동방성원들은 포악무도하고 잔인교활한 일제놈들의 이 책동앞에서 한숨을 쉬거나 비겁하게 굴복한것이 아니라 이를 악물고 분연히 일어나 종횡무진의 이동공연을 결심하였다.

그들은 북대정자, 명월구, 돈화, 반석, 교하, 길림 등 조선사람들이 사는 부락과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일제놈들에게 복수라도 하듯 우리 말로 연극공연무대를 펼쳐놓군 하였다.

공연활동은 열을 띠고 진행되였으나 그 열성에 비하여 공연이 대중에게 주는 영향은 그리 혁명적인것이 못되였다.

그들은 대체로 《불사른 저고리》,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등과 같은 인정세태극을 공연하였는데 그것은 불공평한 사회, 돈이 판을 치는 사람 못살 착취사회에 대한 증오와 가난에 우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련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였다.

일제침략자들을 때려눕히고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투쟁에로 추동하는 정신세계와는 먼거리에 있는 공연내용은 적지 않은 제한성을 가지고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공연은 조선사람들로 하여금 조국을 알게 하고 조국에 드리운 비운과 신음하는 인민들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특히는 조선말로 공연하는것을 허락치 않는 일제에 대한 항거인것으로 하여 반일의식고취에서 일정한 의의를 가지였다.

방랑하는 류랑극단으로 알려진 동방이 조국해방소식에 접한것은 심양을 떠난지 4년째 잡히던 때였다. 1945년 8월 해방의 기쁨을 안고 심양으로 돌아온 한진섭과 연극인들은 평양으로 가겠는가 서울로 가겠는가를 놓고 의논을 벌리였다.

더러 서울로 가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으나 한진섭은 가슴속에 원한만을 안겨준 서울로 갈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었다.

눈물겨운 방랑의 자욱이 수없이 찍힌 서울과 인천은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치였다.

그는 서울이요 평양이요 하면서 갈 곳을 론하기 전에 우선 해방된 조국에서 우리 말로, 우리 생활로 마음껏 극무대를 펼쳐보고싶은 욕망이 솟구쳐올랐다.

적지 않은 연극인들의 심정도 한진섭과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동방의 연극인들은 심양을 떠나 도보로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에서 려장을 풀었다.

이때 한진섭은 해방된 조국에서 시작된 자기의 연극창조활동이 어떤 전변을 가져오게 될지, 자기가 어떠한 광망에 휩싸여 태양이 빛나는 하늘길을 걷게 될는지 알수도 예측할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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