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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생을 꽃봉오리로 살고싶어

 

공화국의 품에 안긴 윤복진의 가슴은 한없는 감격과 흥분으로 끝없이 설레였다.

보고 듣는 모든것이 그대로 시였다.

그러나 막상 붓을 잡으면 웬 일인지 작품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되였을가?

어두운 눈물의 나라에서 헤매다가 갑자기 눈부신 웃음의 나라로 들어섰기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윤복진은 그때의 자기 심정을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어둠속에서 헤매던 소경이 눈을 뜬것과 같이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자기를 문학신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도 좋기만 하였다.》

이 시기부터 윤복진은 참된 삶과 진정한 문학창작의 길을 걷게 되였으며 인민들과 청소년들의 사랑을 받는 개성이 뚜렷한 아동문학작가로 성장하게 되였다.

전화의 나날 윤복진은 군복을 입고 조선인민군의 어느 한 부문에서 사업하면서도 동요창작과 문학공부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책을 읽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린이들은 미래의 주인공이며 혁명선렬들의 뜻을 이어나갈 꽃봉오리들이라고 하신 내용의 교시를 접하게 되였다.

혁명의 꽃봉오리! 이 얼마나 뜻깊은 말씀인가!

세상에는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장래를 생각하는 혁명가와 정치인, 유명한 문호들이 남긴 말이 적지 않지만 이런 명언은 찾아볼수 없다.

그때부터 그의 가슴속에는 《꽃봉오리》라는 표현이 깊이깊이 아로새겨졌다. 외워보면 그 뜻이 그대로 시로 안겨왔다. 이 표현을 잘 쓰면 좋은 동요가 될수 있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무렵(1952년) 우리 나라에서는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있었지만 승리할 조국의 미래를 확신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따라 후대교육을 위한 새 교과서편찬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으로 윤복진은 교과서편찬위원회 위원으로 선발되였다.

그는 소학교 1학년용 음악교재의 첫머리에 넣을 동요를 창작하라는 영예로운 과업을 받게 되였다.

어떤 동요를 쓸것인가. 그는 늘 가슴속에 품고있던 꽃봉오리에 대한 노래를 쓰기로 하였다.

 

김일성원수님

넓으신 품안에

자라나는 우리들은

새 조선의 꽃봉오리

우리모두 그 품안에

씩씩하게 자라지요

 

김일성원수님

따사론 품안에

방실 웃는 우리들은

새 조선의 꽃봉오리

우리모두 그 품안에

즐거웁게 배우지요

 

윤복진은 이렇게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끝없는 행복과 높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동요 《우리들은 꽃봉오리》에 담았다.

후날 윤복진은 지금 와서 이 동요를 보면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동심세계를 좀더 아름답게 노래했더라면 좋았을것이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군 하지만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와서 어린이들의 행복한 생활을 노래한 작품으로서 처음으로 쓴 동요이기때문에 각별히 사랑한다고, 두번째 처녀작이라고 은근히 자랑하군 하였다.

그후 30여년이 지난 1985년에 그는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창건 40돐을 맞으며 이 작품의 자매편으로 볼수 있는 동요 《우리들은 당의 품에 피는 꽃송이》를 창작발표하였다.

동요에서는 새 세대 어린이들이 눈바람 사납게 휘몰아쳐도 어버이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혁명의 꽃송이로 붉게붉게 피여나는데 대하여 격동적으로 노래하고있다.

윤복진은 준엄한 전쟁시기에도 승리의 신심에 넘쳐 밝고 명랑하게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노래한 동요 《이 동네는 영웅동네》, 《학교길》, 《기차놀이》(1952년)를 비롯하여 우리 인민군대의 영웅성과 미제침략자들의 추악성을 그린 《미국놈병정 겁쟁이병정》, 《총알형제》(1951년), 《고추먹고 맴맴》(1952년) 등을 창작하였다.

풍자동요 《미국놈병정 겁쟁이병정》은 윤복진의 조국해방전쟁주제 작품창작에서 주목을 끄는 작품이다. 동요에서는 바스락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머리가 쭈빗, 다람쥐 보고도 가을바람소리 듣고도 놀라 헛총질하는 겁쟁이병정, 미국놈보초를 신랄히 풍자조소하면서 우리 인민군정찰병의 슬기롭고 용감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그의 창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은 동요 《아름다운 우리 나라》이다. 이 동요는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동요는 윤복진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 후퇴시기 남조선에서 인민군대를 따라 공화국북반부로 들어오는 과정에 자신이 직접 체험한것을 기초로 하여 창작하였다.

이에 대하여 윤복진은 자기 수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은혜로운 삶의 품인 공화국북반부로 들어오는 길은 미제에 대한 끝없는 증오심을 불태우는 길이였고 우리 조국의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새기며 익히는 길이였다.

비록 조국산천은 전쟁의 불길속에 휩싸여있긴 했지만 넓고넓은 들에는 오곡이 물결치고 높고낮은 산에는 푸른 숲이 설레이고있었다. 나는 해방후 불과 몇해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너무나도 몰라보게 달라진 마을과 도시를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며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천리,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끝나자 림진강하류에 있는 고랑도까지 걸어갔다. 그곳에서 다시 평양까지 걸었으니 내가 걸은 그 길은 2천리도 훨씬 넘는 머나먼 길이였다.

나는 멀고 험한 길을 걸으면서 오각별 빛나는 조국을 더 잘 알게 되였고 더욱 사랑하게 되였던것이다. 이 과정에 나의 가슴속에는 조국찬가를 쓸수 있는 씨앗이 뿌리내렸다.》

동요 《아름다운 우리 나라》는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

 

아름다운 우리 나라

참 좋은 나라

산에는 금은보화

바다엔 고기

넓고 푸른 들에는

오곡이 물결치는

원수님 세워주신

참 좋은 나라

 

아름다운 우리 나라

참 좋은 나라

누구나 다 일하고

글 잘 배우고

오각별 공화국기

푸른 하늘 높이 나는

원수님 이끄시는

참 좋은 나라

 

이렇듯 동요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날로 륭성번영하는 아름다운 내 나라, 내 조국에 대한 다함없는 례찬의 감정으로 되여있다.

동요에서는 오곡백과 무르익는 어머니조국의 아름다움을 시적화폭으로 펼쳐보이면서 그속에서 혁명의 후비대로 억세게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의 한없는 긍지와 자부심, 자랑을 노래하였다.

그리하여 동요에는 누구나 다 일하고 배우며 오각별 공화국기 푸른 하늘 높이 휘날리는 고마운 어머니조국을 위하여 몸바쳐 싸울 우리 시대 어린이들의 굳은 결의가 흘러넘치고있다.

동요는 그 시기뿐아니라 오늘도 누구나 다 좋아하는 가요로 전해지고있다.

전쟁의 포화가 멎은 후 윤복진은 왕성한 창작적열정을 가지고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였다.

동요들인 《시내물》, 《학습을 다하고서》(1954년)를 비롯하여 《내가 심은 복숭아》(1955년), 《검둥아 멍멍》(1956년), 《자랑찬 우리 평양》, 《꽃가마 들어온다》(1957년), 《림진강기슭에서》(1958년) 등에서는 미제를 물리치고 승리한 그 기세로 전후복구건설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들의 벅찬 생활을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다양한 생활과 결부시켜 생동하게 노래하고있다.

이 시기 창작된 동요 《시내물》은 작가의 창작적재능을 보여주는 특색있는 작품중의 하나이다.

동요에서는 시내물이 졸졸 노래하며 흘러간다는 서정적정황을 펼치면서 한굽이를 돌아드니 불탄 산에 새봄 왔다고, 또 한굽이 돌면 새 목장이 생겨나고 물방아 돌던 곳에 전기방아 새로 돌고 또 한굽이 돌면 새 학교가 우뚝 서고 또 한굽이 돌면 봄밭갈이 한창인데 우르릉 뜨락또르 넓은 들을 갈아엎고 또 한굽이 돌고돌면 우뚝우뚝 영웅도시 평양이 일떠선다고 하면서 페허속에서 새 생활을 일떠세우는 전후복구건설의 영웅적현실을 생동한 시적화폭을 통하여 감동적으로 노래하고있다.

동요 《학습을 다하고서》는 작가가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공화국의 품에 안겨 받은 강한 창작적충동에 의하여 창작한 작품이다.

남반부에서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와보니 전쟁이 한창인데도 어버이수령님의 따사로운 사랑속에서 어린이들은 하루도 중단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고있었다. 어디 가나 학교가 있었고 아이들의 랑랑한 글소리, 노래소리가 그칠줄 모르고 들려왔다. 책보를 메고 학교길을 오고가는 학생들보고 너희들의 첫째가는 임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조국을 위하여 공부를 잘하는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던 1952년 어느날이였다. 그는 평양교외에 있는 친구네 집으로 가게 되였다.

그 집에는 딸형제가 있었는데 맏딸은 소학교 1학년생이고 둘째딸은 유치원생이였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 마주앉아 회포를 나누는데 들창밖에서 이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언니야, 나하구 놀자.》

《안돼. 숙제를 아직 못다했어. 너 혼자 놀려무나.》

창밖을 내다보니 언니는 웃방에서 공부를 하고 동생은 혼자서 소꿉놀이를 하고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머리속에는 학습주제의 동요세계가 떠올랐다.

그날에 받은 충동으로 윤복진은 정전직후인 1954년에 《학습을 다하고서》를 창작하였다.

동요의 서정적주인공은 기껏해야 소학교 1학년생이다.

사실 꽃이 피고 새가 우짖는 봄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할것없이 마음을 들뜨게 하는 계절이다.

작가는 아이들의 마음에, 아이들의 생활에 먼저 찾아오는 이 아름다운 계절, 봄바람 솔솔 불어오는 날을 시적계기로 잡았다.

작품에서 보는바와 같이 동생은 천진하게도 봄놀이에 취해서 자꾸만 같이 놀자고 언니에게 졸라대지만 언니는 숙제공부 먼저 하고 놀아야 한다고 타이른다. 동요는 서정적주인공의 호소를 통하여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있다. 작품의 이 사상은 마지막련에서 잘 결속되고있다.

 

울긋불긋 꽃동산

꾸며놓고서

혼자서는 심심하여

언니보고 조르지요

정말정말 그만큼 공부하고

나구 둘이 꽃놀이 놀자요

 

오냐 그래 놀자꾸나

이젠 그래 놀자꾸나

학습을 다하고서

너구 나구 꽃놀이 놀자꾸나

 

이처럼 동요는 앞날의 훌륭한 일군이 되기 위하여서는 꾸준히 학습하고 배워야 한다는것을 힘있게 확인함으로써 어린이들이 학습의욕과 학습에 대한 옳바른 태도를 가지게 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뿐아니라 작품은 동요문학의 새 양상을 개척하는데 기여한 특색있는 성과작의 하나로 되였다.

윤복진의 동요창작에서 전성기로 되는것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이다.

이 시기 윤복진은 참된 삶의 길로 이끌어주신 어버이수령님과 영광스러운 당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슴 불태우면서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였다.

윤복진의 창작생활에서 유서깊은 만경대에서 진행한 현지생활은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그것은 만경대에 깃들어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어린시절이야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혁명사적내용들을 누구보다 먼저 들을수 있게 된 행운이였다.

윤복진은 위대한 수령님의 삼촌어머님과 한집안식구처럼 가까이 지내면서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야 할 만경대의 혁명사적들을 수집정리하고 고증하는 일에 달라붙었다.

그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였다. 그가 이 성스러운 사업을 스스로 맡아서 진행할수 있은것은 그만큼 자기를 품에 안아 키워준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보답의 일념을 안고 노력하여왔기때문이였다. 하기에 그는 만경대현지체험작가로 있은 8년간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가슴깊이 새기고 어버이수령님의 어린시절을 노래한 동요동시집을 묶어내기 위한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여 《만경대는 우리 고향》, 《무지개》, 《군함바위》, 《하얀 물동이》, 《만경대의 등잔불》을 비롯한 총 18편의 동요동시들을 수록한 동요동시집 《아름다운 만경대》를 세상에 내놓았다.

동요동시집은 어린 독자들의 열렬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원수님 자라나신

아름다운 만경대

 

만경대는 내 고향

자랑많은 우리 고향

 

흘러가는 대동강

푸른 물도 노래해요

 

만경봉을 얼싸안고

춤을 추며 노래해요

 

원수님 자라나신

아름다운 만경대

 

만경대는 내 고향

자랑많은 우리 고향

 

푸른 하늘 종달새도

해만 뜨면 노래해요

 

만경봉을 날아돌며

하늘높이 노래해요

 

동요 《만경대는 우리 고향》은 보는바와 같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탄생하시여 어린시절을 보내신 만경대는 혁명의 성지로서 우리 인민모두의 고향이라는것을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노래하고있다.

만경대현지체험작가의 큰 행운을 지닌 윤복진만이 만경대를 노래한 동요를 내놓을수 있었다.

혁명의 성지에 내세워준 어버이수령님과 당의 신임이 없었더라면 그는 이런 큰 행운, 만경대동요의 첫 시인으로서의 영예를 생각지도 못하였을것이다.

동요동시집 《아름다운 만경대》의 발표로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하루는 뜻밖에도 바다건너에 있는 일본땅에서 한장의 편지가 날아왔다.

(나에게 온 편지가 옳긴 옳은가?)

그는 겉봉을 다시 살펴보았다.

자기에게 온 편지가 분명하였다.

보낸 사람의 이름을 들여다보며 그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누굴가?)

그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었다.

편지를 읽고난 그는 깜짝 놀랐다.

총련의 한덕수의장이 보낸 편지였다.

편지에는 동요동시집 《아름다운 만경대》에 씌여있는 작가이름을 보고 대구에서 살던 옛동무 윤복진이 아닌가 해서 펜을 들었는데 맞으면 인차 회답을 보내달라는 사연이 씌여져있었다.

(아니, 그럼 중학시절에 나와 한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던 그 옛동무가 한덕수의장이란 말인가!)

윤복진은 그날 밤 동요동시집 《아름다운 만경대》를 품에 꼭 껴안고 오래동안 잠들지 못하고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의 기쁨, 나의 자랑인 아름다운 만경대의 노래야! 너는 나의 학창시절 옛동무를 만나볼수 있는 꽃다리까지 놓아주는구나. 고맙다!)

그가 쓴 회답편지는 인차 한덕수의장앞으로 날아갔다. 그후 그는 조국을 방문한 한덕수의장과 뜻깊은 상봉을 하게 되였다.

그들은 얼싸안고 감개무량하여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였다.

이윽고 머리를 맞대고 앉아 축배잔을 나누며 아득히 흘러가버린 어린시절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았다.

행복한 시간은 빨리도 흘러 어느덧 헤여질 때가 되였다.

다시한번 얼싸안고나서 윤복진이 그 자리를 떠나 퍼그나 나왔을 때였다.

갑자기 등뒤에서 급히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복진아, 복진이! 이리 오라구.》

돌아보니 한덕수의장이 뒤따라오며 오라고 손짓을 하고있었다. 웬 일인가 해서 다시 들어가니 한덕수의장이 깜빡 잊을번 하였다고 하면서 어렸을 때처럼 서로 키 대보기를 하자고 하는것이였다.

그들은 돌아서서 등을 맞대고 키 대보기를 하였다. 그들의 입에서는 약속이나 한듯이 어린시절에 부르던 동요가 흘러나왔다.

 

누가 키가 더 큰가

어디 한번 대보자

올라서면 안된다

발을 들면 안된다

똑같구나 똑같애

래일 다시 대보자

 

한덕수의장은 키 대보기를 하고나서 아무래도 자기가 좀더 크다고 하면서 어렸을 때처럼 두어깨를 으쓱거렸다. 윤복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였다.

이때부터 그들사이에는 자주 편지가 오고갔다. 윤복진은 새로 출판한 자기의 동요동시집 《시내물》을 보내고 한덕수의장은 자기가 쓴 가사와 시들을 보내며 의견을 달라고 하였다.

총련에도 유명한 작가들이 있는데 한덕수의장이 왜서 윤복진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였는가.

한덕수의장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 자네야말로 고지식한 인간이여서 좋으면 좋다, 나쁘면 나쁘다고 사실그대로 말해줄 사람이기때문일세.》

이것은 윤복진의 인간됨을 말해주는 하나의 이야기인것이다.

동요동시집 《아름다운 만경대》를 발표한 후 윤복진의 생각은 깊어졌다.

어떻게 하면 유서깊은 만경대의 이야기를 어린 독자들이 더 잘 알게 할수 있을가. 동요동시만으로서는 만경대에 깃든 이야기를 깊이있게 쓸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산문으로 쓰기로 하였다.

그는 한줄두줄 심혈을 기울여 장편실화문학 《김일성원수님 어린시절이야기》(1962년)를 집필하여 발표하였다.

장편실화문학 《김일성원수님 어린시절이야기》는 위대한 수령님께 만경대에서 탄생하시여 어린시절을 보내시며 민족의 태양으로 자라나신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면서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해 왜놈들과 싸우시던 아버님 김형직선생님께서 놈들에게 체포되시였다는 가슴아픈 소식을 받으시고 조선이 독립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은 맹세 다지시며 사랑하는 고향 만경대를 떠나신 이야기, 아버님께서 다하시지 못한 조선독립의 큰뜻을 자신께서 기어이 이어나가실 결심을 다지시는 이야기를 력사적사실자료에 기초하여 생동하게 서술하고있다.

장편실화문학은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고매한 풍모를 통하여 학생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만경대현지체험을 마친 윤복진은 1964년부터 1979년까지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현역작가로 있으면서 창작활동을 정력적으로 벌리였다. 이 기간은 우리 아동문학이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주체문학예술의 대화원속에서 전면적으로 개화발전된 뜻깊은 나날이였다.

윤복진은 불타는 열정을 안고 만경대현지체험기간에 가슴에 새긴 위대한 수령님의 어린시절을 노래한 동요 《만경봉에서》(1967년), 《학습터에서》, 《해도 해도 뜨기 전에》(1978년)와 《봉화리의 배나무》, 《아름다운 삼지연》, 《사랑의 보금자리》를 비롯한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혁명일가분들의 고매한 풍모를 그린 작품들을 계속 창작하였다.

이밖에도 그는 동요 《소년단림 고운 새》(1968년), 《꽃침대》, 《꽃피는 산골마을》(1975년) 등 학생소년들의 학습과 조직생활,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과 조국통일주제 등 다양한 내용의 동요들을 창작발표하였다.

특히 위대한 장군님께 드리는 송가창작에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였다. 그는 장군님의 위대성과 고매한 덕성을 노래한 수십여편의 동요동시들을 창작하여 우리 아동시인들이 해마다 묶어온 동요동시집 《온 나라 꽃봉오리 영광드려요》(1-10)에 꼭꼭 넣군 하였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동요 《우리들은 당의 품에 피는 꽃송이》, 《백두산고향집》, 《은방울꽃》, 《맑은 하늘》 등을 들수 있다.

윤복진은 년로한 몸에 건강이 좋지 못하여 1980년부터 자택에서 창작생활을 하게 되였다.

그가 집에 들어가서도 쉬지 않고 언제나 책상앞에 마주앉아 책을 읽거나 동요창작에 열중하는것을 보고 젊은 시인들이 윤복진에게 년로한 몸에 건강치도 못한데 어떻게 왕성하게 글을 쓰는가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헤아릴수 없이 은정깊고 뜨거운 사랑은 영원한 청춘과 창조의 생명력을 주는 장생불로약입니다. 이 불로약을 받아안은 사람은 결코 로쇠하는 법이 없습니다. 나는 일흔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은 청춘입니다. 청춘이란 말은 결코 젊은 나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밝혀주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끌어주시는 주체문학의 큰길을 힘차게 걸으며 우리 시대 꽃봉오리들의 행복넘치는 노래를 쓰고 또 쓰렵니다.》

그는 이런 열정을 안고 어느 하루도 붓을 놓지 않았다.

동요 《백두산》(1983년)은 이 나날에 쓴 우수한 작품중의 하나이다.

 

산 산 백두산

구름우에 솟은 산

지도자선생님

탄생하신 백두산

 

산 산 백두산

하늘끝에 솟은 산

지도자선생님

자라나신 백두산

 

동요는 생략과 함축의 수법을 재치있게 활용하면서 백두산위대한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자랑높은 산이라는 작품의 심오한 사상을 밝히고있다.

윤복진은 이외에도 동요 《착하신 마음》을 비롯하여 어린시절 위대한 장군님의 고매한 풍모를 노래한 아동시가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하였다.

윤복진은 1980년대 후반기 병석에 누워서도 아동문학작가의 사명감을 잊지 않고 창작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동요 《저 하늘이 멀고멀어도》(1986년)는 작가가 병환속에서 창작한 성과작이다.

동요는 어버이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과 아동들의 생활을 동심적으로 펼쳐보이면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회주의제도를 마련해주시는 절세위인들의 한없는 사랑을 감명깊게 노래하고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의 동심을 생동하게 노래한 동요는 높은 사상예술성으로 하여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여 출판되였다.

참으로 윤복진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사랑의 품속에서 자기의 창작적재능을 마음껏 꽃피우고 삶을 빛내인 아동문학작가로서 오랜 창작생활기간 2 000여편의 우수한 동요, 동시들을 창작하여 어린이들의 사상교양과 우리 나라 현대동요문학을 개척하고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동요할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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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선택 3^bb 1. 한생을 태양의 가수로 1) 해님을 목메여 부른 소녀 운명의 선택 3^bb 1. 한생을 태양의 가수로 2) 태양의 품을 찾아 수천리 운명의 선택 3^bb 1. 한생을 태양의 가수로 3)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 운명의 선택 3^bb 2. 금별메달에 비낀 한생 1) 항쟁의 거리에서 운명의 선택 3^bb 2. 금별메달에 비낀 한생 2) 그가 안긴 품 운명의 선택 3^bb 2. 금별메달에 비낀 한생 3) 서울에 안고 간 김정일화 운명의 선택 3^bb 3. 한 무용가의 운명 1) 운명의 배에 돛을 달고 운명의 선택 3^bb 3. 한 무용가의 운명 2) 깃들인 인생의 보금자리 운명의 선택 3^bb 3. 한 무용가의 운명 3) 우리 장단, 우리 춤가락으로 운명의 선택 3^bb 3. 한 무용가의 운명 4) 최승희의 무용은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운명의 선택 3^bb 4. 《동요할아버지》가 부른 노래 1) 설음의 시, 눈물의 동요 운명의 선택 3^bb 4. 《동요할아버지》가 부른 노래 2) 한생을 꽃봉오리로 살고싶어 운명의 선택 3^bb 4. 《동요할아버지》가 부른 노래 3) 그의 삶은 영원하다 운명의 선택 3^bb 5. 무대에서 찾은 한생의 진리 1) 방황의 먼지오른 고달픈 청춘시절 운명의 선택 3^bb 5. 무대에서 찾은 한생의 진리 2) 인생의 가치 운명의 선택 3^bb 5. 무대에서 찾은 한생의 진리 3) 누려온 행복, 못다 이룬 소원 운명의 선택 3^bb 6. 조선화의 거장으로 성장하기까지 1) 《해변》 운명의 선택 3^bb 6. 조선화의 거장으로 성장하기까지 2) 《5월의 농촌》 운명의 선택 3^bb 6. 조선화의 거장으로 성장하기까지 3)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운명의 선택 3^bb 6. 조선화의 거장으로 성장하기까지 4) 후대들의 추억에 새겨진 모습 운명의 선택 3^bb 7. 설음을 불사른 웃음의 한생 1) 족쇄를 찬 희망 운명의 선택 3^bb 7. 설음을 불사른 웃음의 한생 2) 환생 운명의 선택 3^bb 7. 설음을 불사른 웃음의 한생 3) 웃음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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