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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앞이야기

눈물속의 할아버지들


흐르는 물은 바다로 향하기마련이다. 천갈래만갈래 자기 곬을 따라 각기 제멋대로 흘러가는 시내라 할지라도, 지어는 한 봉우리에서 시작되여 정반대방향으로 갈라져나간 강이라 할지라도…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는 뽀얀 안개속에 대동강은 유유히 흘렀다. 흐르는듯마는듯싶으나 순간도 흐름을 멈춘적 없는 강물이였다. 랑림산기슭에서 샘으로 솟아나 대흥과 녕원, 덕천, 북창, 순천, 평양, 남포 등 거의 스무개나 되는 도시와 군을 적시며 서해에 이르는 천여리 긴강, 검은모루유적의 주인공들과 《력포사람》, 《덕천사람》, 《승리산사람》들로 불리우는 인류발생초기의 사람-원인, 고인, 신인들이 살던 아득한 그 시대로부터 고조선을 거쳐 고구려, 고려의 무사들이 강변에서 말을 목추기던 무훈의 빛나는 시절들과 비렬한 음모로 하루아침 왕권을 가로챈 후 한잔 술에 얼근하여 뜨는 달, 지는 해를 읊조리던 리조 500여년의 나날들을 모두 합쳐도 대동강이 흘러온 력사에는 비길바가 못되였다. 오래고 오랜 세월 비바람 사나운 음산한 나날에도 눈보라가 아우성치는 모진 겨울밤 두터운 얼음장밑에서도 변함없이 오직 바다로만 흐른 줄기차고 도도한 흐름이였다.

병진(1916)년 봄 어느날.

안개가 걷히자 대동강기슭에 크지 않은 당두리 한척이 나타났다. 평양을 떠나 대진나루(은률)로 향하는 배였다. 사리발때여서 평양에서 겨우 백리 벗어난 이곳까지 두물이면 오고 남건만 여섯물잡히는 지금에야 배는 기진포를 떠난다.

소나무 많은 고장이여서 송림이라고도 하고 일명 화석시, 굴포라고도 부르는 여기 기진포에서 배는 어제 하루 정박했다.

무너져내리는 돌산처럼 나라운명이 기울면서 험악하게 급변하는 세월은 조용하던 이곳 어촌마을을 너무도 놀랍게 변모시켰다. 대동강의 숭어와 서해의 조기, 칼치 등 비린것을 구하려 주변 농부들이 철따라 몇사람씩 찾아들던 강기슭에 청일전쟁과 로일전쟁을 구실로 쇠벙거지를 뒤집어쓴 왜놈들이 시꺼멓게 모여들더니 거리와 마을을 타고앉아 산림을 발가벗기고 논과 밭을 파헤치기 시작했다.1904년 2월 21일 일본군 참모부는 침략의 길을 열기 위해 서울-신의주간철도를 건설한다는 구실로 군용철도감부를 편성했고 일본군용철도감부는 1904년 10월 29일 송림에 철도공장을 두기로 했다. 황주-기진포사이에 군수물자용달을 위해 20리안팎의 철길을 놓고나서 기진포주둔 일본군 공병대대장 와다나베 겐지란 놈은 소좌밖에 못되는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린채 마치 새로 정복한 대륙을 명명하는 장군들처럼 오만무례하게도 자기의 이름을 따서 《겐지호》(겸이포)란 지명까지 만들어냈다. 와다나베 겐지소좌가 도적질을 목적으로 용감무쌍하게 뚫어놓은 개구멍으로 미쯔비시재벌을 비롯하여 《대일본제국》의 한다하는 온갖 협잡군, 장사군, 망나니, 지어 뚜쟁이, 기둥서방, 돌파리들까지 일확천금을 꿈꾸며 시체를 본 까마귀떼처럼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겸이포는 황금에 굶주린 돈벌레들이 욱실거리고 집잃고 땅떼워 이리저리 밀리우던 사람들이 인부로 끌려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아우성치게 되였다. 이때로부터 송림에는 《겸이포》대신 《게걸포》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붙기 시작하였다.

꽝- 꽝-

강기슭둔덕에서 발파소리가 울리였다. 대동강항로운영권을 통채로 거머쥔 진남포 기선주식회사배들이 며칠째 실어들인 《사꾸라》표 화약상자더미가 단번에 모두 터지는가싶은 요란하고 위압적인 소리였다.

꽝- 꽈르릉-

발파소리는 한동안 그칠줄 몰랐다.

출항을 서두르던 당두리우의 두 사공은 눈들이 화등잔만 해져 공사장쪽을 바라봤다. 이곳 배우에서는 월봉산앞의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과 대동강둔덕에 한벌 깔리다싶이 한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 상공에 뽀얗게 떠도는 먼지구름만 바라보였다. 자세히 보면 먼지만이 아니였다. 공중에 뿌려진 돌쪼각, 흙덩이, 나무뿌리와 함께 발파에 질겁한 까마귀, 까치, 솔새 등 여러 날짐승의 떼가 광풍에 쫓기는 구름장처럼 흐르고있었다. 아늑한 보금자리를 순간에 잃어버리고 겨우 살아남은 날짐승들은 수림깊은 월봉산과 송림산 그리고 강건너 룡강의 산발로 필사의 힘을 다해 산산이 흩어지고있었다.

발파의 굉음이 산울림을 일으키며 멀어져가자 날짐승들의 놀란 부르짖음만 주변의 공간을 한가득 채웠다.

《형님, 이렇게 가선 세월이 없겠수다. 여섯물이면 금산포에 갔을텐데…》

돛을 손질하던 까까중이달보 이물사공이 발파소리에 불안을 느끼듯 중얼거리였다. 배길이 지금처럼 네물나마 늦어진것은 날씨나 배탓이 아니였다. 측량기구궤짝들과 종이, 붓, 먹 등의 잡화를 가지고 배에 오른 짐주인은 갈길이 급하다면서도 만경대에서 하루, 여기 기진포에서 또 하루 묵어가자고 했다.

배에는 검은 모직양복에 수박색중절모를 쓰고 개화장을 든 짐주인 말고도 만경대에서 오른 또 한사람의 손님이 있었다. 열두새 무명바지저고리에 광목두루마기를 입고 옥색숙수오리로 바지대님을 한 젊은 손님이 이 배 운행의 진짜 주인격이였다. 양복차림의 짐주인이 배값을 물지만 평양턱밑의 만경대에서 배를 하루 댄것도 이 손님을 태우기 위해서였고 여기 기진포에서 묵게 된것도 이 손님이 하루일을 본 후 가자고 했기때문이다.

고물사공은 이 모든것을 잘 알고있고 강기슭의 발파소리에 불안을 느끼기는 이물사공과 매한가지였으나 아무 응대 안했다. 단발령이 내린지 만 십년이 되였건만 아직 고집스럽게 상투를 틀어얹은 고물사공은 이물사공보다 십년맏이가 채 못되면서도 이미 철지난 북상투와 다부룩한 수염때문에 그의 아버지벌로 겉늙어보이였다.

《아하… 바람새가 이거 원… 맞바람이나 치지 않겠는지…》

까까중이달보 이물사공은 까닭모를 불안과 위구가 배길이 늦어졌기때문에 생겨나기라도 한것처럼 저 혼자 다시 두덜거리였다.

《어험-》

고물사공은 어른들이 하는 일에 오지랖 넓게 웬 참견이냐고 꾸짖듯 마른기침을 하며 솥뚜껑만 한 껄껄한 손으로 가잠나룻을 썩썩 쓸어만졌다.

한물전에만 떠났어도 배는 꽁무니바람을 달고 지금쯤 남포 앞바다에 나섰을것이다. 바다와 하늘이 한품에 무르녹는 수평선을 바라보면 한결 가슴이 후련해지는 배군들이다. 그래서 사자밥을 지고 다니는줄 뻔히 알면서도 바다를 못 떠나는 그네들이다. 빨리 바다로 나갔으면 하는 갈망은 고물사공도 이물사공과 다를바 없었으나 그는 배에 오른 두 손님이 범상한 사람들이 아님을 낌새채고있었다.

고물사공은 순뜯이 살담배를 듬뿍 담았던 대통을 꾸룩꾸룩 빨고나서 창나무 한끝에 툭툭 털어 괴춤에 찔렀다.

공연히 퉁까지 맞아 속이 더 요글요글해진 이물사공은 마음속의 불안과 분함을 삭이느라 꽁무니에 찼던 무명수건을 쭉 뽑아 머리에 질끈 동이고나서 힘껏 마루줄을 챘다.

바람에 돛이 부풀어오른 배는 닻을 감아올리자 서서히 강물우를 미끄러졌다.

이때 그치는가싶던 발파소리가 다시 잦아지며 비명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온몸에 오싹 소름을 끼얹게 하는 애절한 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더니 강기슭 둔덕의 다박솔밭에 베감투를 쓴 한사람이 나타났다. 한손으로는 흘러내리는 바지를 쥐고 다른 한손을 머리우로 흔들며 그는 발파에 쫓기듯 달려왔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그 사나이는 거쉰 목소리로 다급히 부르짖었다. 정신없이 뛰여오던 베감투는 강기슭의 풀뿌리에 걸려 밑둥 찍힌 나무처럼 앞으로 쓰러졌다. 그 바람에 발에선 엄짚신 한짝이 벗겨져 풋뽈처럼 디굴디굴 굴었다.

엎어졌던 베감투는 땅에서 일어나더니 신을 찾을 경황이 없는지 한짝 짚신만 신고 배를 향해 뛰여왔다.

두 사공은 영문을 몰라 놀란 눈길을 강변의 베감투사나이한테 그루박았다. 저고리 앞자락이 풀어져 동가슴을 드러내놓은채 한손으로 벗겨지려는 베감투를 쥐고 한손으로 흘러내리는 바지를 춰올리며 뛰여오는 그의 모습은 험상궂었다.

방창에 들어가있던 양복차림의 평양손님이 갑판우로 올라왔다.

《무슨 일입니까?》

양복차림의 손님은 개화장을 짚고 이물사공쪽으로 다가섰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처럼 구슬픈 곡소리가 들려오고 배를 향해 뛰여오는 사나이뒤로 상여가 바라보였다. 상여뒤로는 베옷입은 십여명의 사람이 울며불며 따라왔다.

《아이고-아이고-》

《어이구-어이구-》

타고 쓰린 속을 발기발기 찢어내뱉는것 같은 녀인의 애처로운 울음소리와 허물어져내리는 가슴속에 괴로움을 깊숙이 묻어두는 남정들의 구성진 곡소리가 한데 어울리여 강기슭으로 가까와온다.

고물사공은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배우의 짐주인을 바라봤다. 그는 양복차림의 짐주인과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그 시선속에 담긴 뜻을 깨닫고 이물사공을 향하여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닻 놔라!》

무거운 참나무닻이 갑판에까지 물똥을 튕기며 강물에 빠져들어가자 이물사공은 물가로 다가오는 령구에 조의를 표하듯 서둘러 돛을 내리웠다.

강변의 베감투사나이는 가탈걸음으로 몇걸음 더 물역에 다가서더니 감탕판에 무릎을 꿇고 풀썩 주저앉았다.

《어르신네 바쁜 길을 방해한 이 죄인을 용서하십시오.》

베감투는 헤쳐지는 두루마기앞자락을 왼손으로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쓰러지는 몸을 지탱하여 작대기버티듯 땅을 짚고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렸다. 수그린 그의 얼굴에선 땀과 눈물이 비오듯 했고 반쯤 헤쳐진 옷자락사이로 드러난 그의 가슴은 터질듯 오르내렸다.

《왜 그러십니까?》

배우의 양복입은 손님이 물었다.

《네, 고인을 모실데가 없어 그럽니다.》

베감투는 흐느끼듯 뇌이고나서 코가 땅에 닿을듯 머리를 숙이였다.

발파에 놀라 떠들던 까마귀 댓마리가 까욱거리며 대동강지류인 12포천 상공을 날아지나고 상여는 곡소리와 함께 물가로 점점 다가왔다.

《제철소공사가 선산에 벌어졌습니까?》

《네, 대대로 내려오는 송림 박씨네 무덤자리에 왜놈의 불가사리가 둥지튼답니다.》

베감투사나이는 이런 변이 어디 있냐고 하소하듯 한손으로 가슴을 싸쥐고 한손으로 땅을 쳤다. 한참 넉두리끝에야 베감투사나이는 땅에 꿇어앉은채 몸자세를 바로했다.

《청개구리 장사지내듯 고인을 물가로 모시게 된 죄인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장쇠형님은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돌에 치워 돌아가시면서 자기 시체를 강물에 내버리라 유언하였습니다. 장쇠형님마음이 얼마나 아팠으면 〈죽은 박씨네들이 모두 쫓겨났는데 나만 어떻게 고향땅에 묻히겠는가.〉고 했겠습니까?

하지만 박씨네 무덤을 파내고 제철소를 세우게 된것이 장쇠형님죄라고 할수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조상을 알아본다고 해도 먹지 않고서야 살수 없으니 공사장에서 일할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조상들의 무덤을 지키지 못해 괴로와하면서 그 벌을 받으려고 한 장쇠형님의 마음을 모른다고 할수도 없고 상제들의 도리로 고인을 물에 버려 괴롭힐수도 없어 토론하던 끝에 고향에는 묻지 않되 고향이 빤히 뵈며 물이 가까운 저 대동강건너 륙명산에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약속했던 배를 쓰지 못하게 돼서 그러니 불쌍한 이 죄인들을 굽어살피시고 도와주십시오.》

베감투는 무릎을 꿇고 두손으로 땅을 짚으며 절을 했다.

그러는새 관은 물가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배우에서 강기슭의 상제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양복차림의 곽춘산은 굽도젖도 할수 없어 관두리에 떼지어 서있는 상제들과 두 사공을 갈마봤다. 그는 지금 김형직선생을 모시고 가는 길이였다. 평남선이 개통된지 이미 6년, 남포까지 기차를 타고가서 남포에서 배를 구해 은률로 갈수도 있었지만 김선생께서 이번 려행길에 미쯔비시재벌이 제철소공사를 벌려놓은 송림읍과 작년 10월에 갓 조업한 구하라광업주식회사 남포제련소에 들려보시겠다기에 배편을 구했었다. 지금 남포와 은률에선 사람들이 김선생님을 손꼽아 기다리고있었다.

이물방창에서 언제 갑판우로 올라오셨는지 김형직선생님께서 곽춘산과 고물사공가까이로 걸어오시였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길이 늦었지만 배머리를 돌립시다. 아무리 갈길이 급해도 한 겨레가 당하는 불행을 보고 그냥 지나칠수야 없지 않습니까? 죽어서조차 묻힐수 없게 된 송림 박씨네 불행이 나라잃고 당하는 우리 이천만 백의동포모두의 수난 그대로가 아닙니까.》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비할바없이 분하고 슬픈 마음을 애써 진정하시며 곽춘산과 배우의 두 사공을 향하여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달보 이물사공은 차고오던 전마선 삭을 풀기 시작했다. 기슭에서 당두리우로 관을 날라오려면 전마선을 써야 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전마선이 물역으로 떠나가자 배머리로 향하시였다. 눅눅한 강바람이 불어오며 흐린 강물우에 잔주름을 입히고 선생님의 두루마기고름과 옷자락을 날리였다. 선생님께서는 폭넓게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강기슭에 파도치며 뻗어간 야산줄기들을 더듬으시며 배머리에서 움직이실줄 모르시였다.

선생님께서는 이 순간 웬일인지 얼마전 어느 신문에서 보신 금강산 류정사에서의 금불상도난사건이 불쑥 생각나시였다.

지난 4월 6일 금강산 류정사에 안치되여있던 53개의 불상중에서 금으로 만든 16개의 불상을 도적맞힌것이였다. 일제무단통치의 엄격한 보도검열조건에서도 《한양신문》 등에 이 사실이 널리 소개된것은 도적놈이 칼찬 사무라이들자신이 아니라고 위장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을것이다.

지금 정세와 나라형편은 문화재도난정도가 아니였다.

여기 기진포에 미쯔비시재벌이 수천만원 자금으로 겸이포제철소건설을 벌려놓은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일제가 지금 군수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얼마나 피눈이 되여있는가를 잘 말해주고있었다. 일제는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이미 지난세기말부터 군수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해왔었다. 1897년에 1 920만원의 자금으로 야하다제철소를 건설한 군벌들과 군수독점재벌들은 1899년 구례공창에 특수강로 2기를 설치하였고 시모세화약제조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900년에는 오사까공창에서 4톤평로를 조업하였으며 그 다음해에는 이 평로들을 전기로로 개편하여 2년후인 1903년부터 포신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에 미쯔비시재벌이 미국과 도이췰란드의 재벌들을 등에 업고 벌려놓은 겸이포제철소는 조선을 영원히 제놈들의 식민지로 만들며 나가서는 대륙침략을 준비하려는 군벌들의 전략적기도와 결부되여있었다.

일제만이 아니였다. 유미렬강은 지금 세계도처에서 세력을 다투며 거머쥔 식민지를 자기 손아귀에서 놓지 않으려고 피비린 살륙을 일삼고있었다. 1916년 4월 26일 영국, 프랑스, 짜리로씨야는 메소포다미야, 씨리야연안, 아르메니야 분할에 관한 비밀협정을 체결하였고 지난 4월 24일에 선포되였던 아일랜드공화국은 수만의 영국군대에 의하여 한주일만에 자기 존재를 마치였다.

이런 형편에서 조선은 과연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수억만 피압박민중이 살길은 어디에 있는가?

너무도 절박한 물음이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배전으로 밀려드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시였다.

…누리의 모든 강물을 바다와 대양의 한품에 모으는 지구의 거대한 인력처럼 온 겨레와 민중의 마음을 하나의 지향속에 결합시키는 그런 힘은 과연 이 세상에 없을가?

제나름의 신념과 지향, 서로 다른 성격과 취미 그리고 각이한 생활경로와 습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합쳐지게 하는 힘은 무엇이며 수천수만의 마음이 고이게 될 마음의 바다는 과연 무엇일가?!…

선생님께서 모색하시는 사색의 갈피를 펼쳐보이듯 강바람은 강물우에 어린 당두리와 강변의 산그림자를 지우며 파문을 일으키고 파문은 끝없이 일고 잦으면서 물속에 비낀 삼라만상을 깨뜨렸다가는 새로 붙여놓고 붙여놓았다간 또 깨뜨리군 하였다.

곡소리가 높아갔다.

높아가는 곡속에 령구를 배우로 끌어올리며 두 사공이 배소리를 했다.

《어야-지야-》

강물만 바라보시던 김형직선생님께서 곽춘산쪽으로 얼굴을 돌리시였다.

곽춘산은 강건너 산발을 가리켰다.

《저 강건너편에 마주뵈는 산발끝을 애암갑이라 하고 그 맞은편 대안을 철도라고 하는데 배사람들은 저기를 사공죽이라고 합니다. 배사람들이 쩍하면 어야지야 소리를 하는것은 죽은 어가성을 가진 사공과 지가성을 가진 사공을 찾는 소리랍니다. 전설속의 어가사공과 지가사공이 죽은 곳이 저 애암갑입니다.》

《그렇습니까? 저도 어야지야의 유래에 대한 전설은 들었습니다만 사공죽이란 곳까지 있는줄은 몰랐습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곽춘산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시며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셨다.

넓은 강의 흐름은 마주선 산발앞에 이르러 두갈래로 갈라져나갔다. 왼켠 갈래는 대동강에 흘러드는 재령강줄기이고 오른쪽이 애암갑을 에돌아 서해로 향하는 대동강본류이다. 한때 재령강하구의 철도에 칡넝쿨과 딸기덩굴이 우거지고 애암갑에 나무가 무성해 바다에서 대동강흐름을 거슬러올라오느라면 지류인 재령강보다 대동강본류가 좁아보였다고 한다. 그래 서울에서 배를 타고 평양성으로 향해가던 한 량반이 애암갑부근에서 왼켠으로 꺾어올라가야 평양으로 간다는 어가성을 가진 사공과 지가성을 가진 사공을 역적이라면서 죽여버리고 재령강을 대동강 본류인줄 알고 며칠이나 재령쪽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남겨놓았다.

애암갑과 재령강하구의 철도를 바라보시던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곽춘산을 향해 서시였다.

《전설속의 그 어리석은 량반은 갈길을 헷갈려 애매한 사공 두사람을 죽이였지만 이제 우리가 옳은 길을 찾지 못하면 수많은 겨레가 피흘리게 됩니다. 생활의 갈림길에서 길을 헛든 사람은 잘못하면 일생을 고생하게 되고 자기가 갈길을 모르는 민족은 나라를 망하게 만듭니다. 갈길을 옳바르게 가르쳐줄 위대한 령도자를 모셔야 우리는 오늘의 불행에서 벗어날수 있고 우리 민족은 억세여질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마디마디 말씀에선 애타는 절규가 울리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말씀을 끊으시고 곽춘산의 얼굴에 눈길을 못박으신채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상제들이 서있는 물역으로 눈길을 돌리시며 힘있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제 제철소가 일떠서면 땅잃고 집잃어 떠돌던 사람들이 수없이 여기로 모여들것입니다. 그네들은 먹고 살기 위해 불속에서 고역에 시달리겠지만 자기네들을 학대하는 일본 사무라이들과 모든 억압자들을 영영 묻어버릴 커다란 무쇠관을 부어내고야말것입니다. 불로 쇠를 다스리는 억센 그네들의 힘을 당해낼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네들이야말로 새로 태여나는 우리 조국의 믿음직한 맏아들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곽춘산은 애타고 쓰린 가슴을 말끔히 씻어줄 소나기를 부르는 번개가 눈앞에 번쩍이는가싶었다.

(새로 태여나는 조국의 믿음직한 맏아들!)

곽춘산은 흥분으로 높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며 선생님의 말씀을 입속으로 받아외웠다. 곽춘산은 선생님께서 바쁜 길을 여기서 지체하시고 안면없는 상제들의 하소에 그토록 귀를 기울이시는것이 박씨가문의 불행에 대한 단순한 동정때문만이 아니심을 이 순간에야 비로소 깨닫는가싶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해묵은 갈대들이 설레는 황량한 이 강변에 울려퍼지는 상제들의 구슬픈 곡속에서 죽어서조차 제 고향에 묻힐수 없게 된 겨레의 피맺힌 원한과 가슴찢는 불행을 호소하는 부르짖음만이 아니라 아직은 봄풀싹보다 연약하지만 세월의 풍파를 헤치고 대들보감으로 자라날 조국의 맏아들들이 이제 멀지 않아 힘차게 울리게 될 탄생의 고고성마저 들으시는것이였다.

곡소리와 사공들의 구슬픈 어야지야소리가 그치더니 잠시후 상여며 상제들이 배우에 올랐다.

아까 강역으로 당두리를 따라오며 고함지르던 베감투사나이가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배머리로 걸어왔다.

굴대장군같은 사나이는 김형직선생님과 곽춘산앞에 이르러 갑판우에 덜썩 꿇어엎디여 큰절을 했다.

《귀인들을 만나 우리 형님을 고이 모시게 되였습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그의 곁에 가시여 모꺾어서신채 허리를 굽히시였다.

《자, 일어서십시오.》

선생님께서 일어나라고 부축여주시였으나 굴대장군같은 사나이는 거듭 허리굽혀 절을 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인사는 이 배의 주인들께 하십시오. 우리는 이 배에 오른 손님들입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그의 한손을 다정히 잡으신채 돛대옆에 서있는 두 사공을 가리키시였다.

고물사공은 불에 덴 사람처럼 와뜰 놀라며 돛달던 마루줄을 놓았다.

《아니올시다. 저희들은 삯내서 배를 부리는 배군들이올시다. 배주인은 저 진남포에 있지요.》

북상투에 가잠나룻이 담상담상한 고물사공은 손사래까지 쳤다. 짠물에 절고 습한 바람에 반들반들 닦이운 사공의 표정에서는 놀라움과 웬만해 남의 말을 믿지 않으려는 록록치 않은 앙센 고집이 느껴졌다.

《아닙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뭇 단호히 부정하시였다.

《진남포에 있다는 그 선주는 돈을 내고 배를 샀을뿐입니다. 이 배의 진짜주인은 배를 다루는 사공들입니다.》

살다 처음 듣는 소리라는듯 두 사공의 눈은 더욱 커지고 자기 설음에 경황없던 상제들과 관을 따라온 사람들도 귀를 강구었다.

굴대장군의 베감투 리곽쇠는 베두루마기자락을 너풀거리며 김형직선생님과 배사공사이로 나섰다. 설음에 지쳤으나 아직 숫기만은 다 죽지 않은 그였다. 흙이 게발리고 구겨진 베옷차림이였으나 걸까리진 몸집과 쩍 벌어진 어깨 그리고 불찌같이 이글거리는 두눈에서는 대바르고 담찬 혈기가 느껴졌다.

《진짜주인이 누구인지 소인은 딱히 알수가 없으나 어르신네들이 아니더라면 고인을 륙명산에 못 모실게 아닙니까. 고맙습니다.》

그는 모두걸이로 거듭 절을 하고나서 관옆에 맥없이 서있는 소년을 불렀다.

《얘, 고마우신 어르신네들께 맏상제가 인사를 드려야지.》

배우의 모든 사람들은 관옆에 혹처럼 붙어서있는 소년에게로 눈길을 몰방질했다. 깡동하니 돌린 베두루마기밑으로 너덕너덕 기운 바지가랭이가 몰풍스레 내보이고 두눈이 퉁퉁 부어있는 그의 얼굴에는 온통 노랑꽃이 펴있었다.

소년은 목이 손회목처럼 가는데다 빳빳한 베두루마기깃에 목이 자꾸 쓸려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처럼 자기 머리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소년의 커다란 베감투는 자꾸만 눈두덩까지 흘러내렸다.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반나마 허탈상태에 빠져버린 소년은 관습의 힘으로 무척 힘겹게 나섰다. 어른들이 하라는대로 이미 수십번도 더 절을 하고 절을 받은 소년은 배우에서 제일 웃어른이라고 생각되는 김형직선생님과 곽춘산쪽으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두어깨를 푹 떨구고 고개를 숙인채 힘겹게 움직이는 소년의 모습은 눈물겨웠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절을 하려고 갑판우에 엎디려는 소년의 어깨를 두손으로 붙드시였다.

《몇살이지?》

《열셋입니다.》

나이에 비해 소년은 발육이 떴고 그늘아래에서 자란 풀싹처럼 생기도 없었다. 어울리지 않는 베옷과 감투가 소년을 더 잔약하고 가련하게 보이도록 만드는지도 몰랐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험악한 세월이 이제부터 소년의 어깨우에 실어놓을 생활의 중하를 함께 나누시는 심정으로 측은히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뇌이시였다.

《네가 맏상제란 말이지?》

선생님의 목소리는 애닲게 떨리시였다.

지금까지 사람들의 등뒤에 숨어있던 소년의 어머니가 갑자기 애고소리를 터뜨렸다. 어린 맏상제는 갑자기 몸을 획 돌리더니 고물쪽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관이 놓여있었다.

송진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관우에는 박장쇠란 고인의 이름이 먹으로 큼직큼직하게 씌여진 발굵은 무명이 덮여있었다.

관옆에는 열살이 되나마나한 또 한명의 어린 소년이 서있었다. 남편잃은 녀인의 곡소리와 아버지를 찾는 어린 형제의 울음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허비며 한동안 그칠줄 몰랐다.

숫기좋던 굴대장군도 쿨쩍거리고 세파에 쪼들릴대로 쪼들리워 가물철의 천둥지기 바닥처럼 감정이 깡그리 말라버린상싶게 목석같은 표정으로 서있던 천광군들과 두 사공도 슬며시 왼고개를 틀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습기밴 강바람에 두루마기옷고름을 날리시며 갑판우에 서신채 강기슭에 줄느런히 늘어선 우죽비죽한 산봉우리너머 어딘가 먼곳을 바라보시였다.

잠시후 선생님께서는 관을 안고 쓰러진 소년과 그의 동생에게로 다가가시였다.

《얘들아, 진정하거라. 너희들은 이제부터 집안어른이다. 집안어른이 그래서는 안된다.》

선생님께서는 두 소년을 부축해 일으켜세우시며 뜻깊이 타이르시였다.

《너희들은 아버지를 잃었고 우리모두는 나라를 빼앗겼다. 목놓아운다고 세상떠난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하고 망해버린 나라가 일어서지 못한다. 혀를 깨물고 슬픔을 이겨야 한다. 돈많은 놈들은 자기 돈을 믿고 땅을 가진 지주는 자기 땅을 믿겠지만 빈주먹뿐인 우리야 자기 손발밖에 믿을게 없지 않느냐. 이제는 너희들이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둘러메야 한다.》

김형직선생님의 안광은 비분의 어둠속에서 별처럼 빛나시였다.

북상투 고물사공은 자기가 해야 할바를 스스로 깨달은듯 근엄하게 소리쳤다.

《마루줄 채라!》

이물사공은 돛대꼭대기로 바싹 돛을 달아올렸다. 고물사공이 창나무로 키를 틀고 이물사공이 배머리 삼각돛을 돌리자 배는 서서히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지줄 죄라!》

고물사공은 창나무를 쥐고선채 다시 불같이 호령했다.

맞바람이 불어왔으나 배는 비스듬히 누우며 륙명산을 향해 강물우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당두리는 두리저으며 기진포기슭에서 맞은켠 대안을 향해 점점 멀어져갔다.

장례는 늦게야 끝났다. 륙명산기슭을 떠나는 당두리의 배전에서는 홰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둠속의 당두리는 인간세상에 불을 가져오던 신화속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이 땅에 칭칭 내려덮인 어둠을 불태워버리려는듯 홰불을 담아싣고 월봉산대안으로 움직이였다.

그믐밤 강물우에서 타번지는 저 한점 불꽃이 이 나라 겨레의 가슴가슴마다에 가득 고인 불행의 피눈물을 말끔히 가시여주고 굳은 쇠를 녹여 버글버글 끓이며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게 될 그날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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