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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제 2 장

2


단잠에 파묻혔던 박진우는 와닥닥 놀라 깨여났다. 배전을 후려친 검푸른 파도가 우박과도 같은 굵은 물방울을 휘뿌렸던것이다.

그는 소스라쳐 일어섰다.

바다밑에서 화산이 터졌는지 물이 끓고 곤두선 파도가 배를 들이받아 산산쪼각을 내기라도 할듯 무섭게 달려들었다. 배는 높이 솟은 아아한 물마루우에 올리떴다가 눈깜박하는 사이에 깊숙이 골이 패인 물고랑으로 곤두박혔다. 그럴 때마다 갑판에 소나기가 쏟아지고 사람들은 이리몰리고 저리몰리며 아우성친다. 귀국의 기쁨으로 들끓던 동포들은 무시무시해진 바다의 요동앞에 기가 질려 전률하였다. 삽시에 갑판우로 물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지난밤까지 보름달밑에서 유유히 설레이던 바다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박진우는 세차게 흔들리는 배우에서 몸조차 가누기 힘들었으나 한발두발 갑판으로 다가갔다. 겁에 질린 동포들의 눈길이 그에게 쏠리였다.

《여러분, 이런 때일수록 덤비지 말고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배가 흔들린다고 무리지어 왔다갔다하면 배가 뒤집힐수도 있습니다.》

목이 터지도록 부르짖어서야 사람들은 좀 진정하여 기대가 실린 시선으로 끈덕지게 그를 주시했다.

헤덤비며 기관실쪽으로 접근해가던 그는 배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감촉이 들었다.

파도가 제아무리 산악처럼 솟구쳐 밀려온다고 하더라도 작지도 않은 해군수송선이 이만한 설레임에 바다가 하자는대로 락엽처럼 까불어댈수 있을가?

《발동이 꺼진지 오래되였대요.》

누군가가 큰소리로 귀띔해주었다.

그 소리에 사람들은 또다시 설레였다.

(고장일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의연히 귀속을 파고들었다.

박진우는 불안에 휩싸였다. 허지만 속수무책이였다.

그의 눈앞에서는 배가 뒤집혀 바다밑으로 줄지어 곤두박히는 동포들의 비참한 모습이 환영처럼 나타났다사라졌다 했다.

마음이 초조해진 그는 얼핏 해병들이 한놈도 없다는것을 확인하였다.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지자 조급해났다.

그는 무작정 사람들을 헤가르며 앞으로 나갔다.

몸이 휘청거리고 속은 메슥거렸으나 왜그런지 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수천명 동포들을 한시에 몰살될것 같은 위구심에 사로잡혀 그자리에 그냥 있을수가 없었던것이다.

파도는 여전히 배전을 치며 덮쳐들었다. 배는 노없는 쪽배마냥 쉼없이 흔들렸다. 어린 아이들과 녀인들의 울부짖음소리가 우뢰소리처럼 고막을 찢어놓자 그는 정신을 바싹 차렸다. 눈을 밝혀 살펴보았으나 여전히 왜놈들은 한놈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어디 갔는가? 자고있는 사이에 배를 팽개치고 달아났는가? 아니, 그럴수 없다.)

발동이 꺼진 배는 마치 죽은 고래마냥 파도에 실려 그냥 떠내려갈뿐이였다.

(발동은 왜 꺼졌는가? 고장인가? 아니, 그럴수 없다. 지난밤까지 쾌속으로 남하하던 배가 아닌가.)

재삼 곰곰히 추리해보던 그는 혹시 왜놈들이? 하는 짐작이 들었다.

짐작이 엄연한 현실처럼 느껴졌을 때 그는 《철호형, 어디 있소?》하고 웨쳤다.

진우는 자기마저 공포에 허덕이고있다는 생각에 반발심이 솟구쳤다.

(분명 놈들이 표류당한 배를 줴버리고 달아났다. 그렇지 않다면 멀쩡하던 기관이 왜 멎었단 말인가.)

《철호형, 어디 있소?》

환각과 현실을 오가며 헤매이던 그는 불현듯 이 위급한 사태를 놓고 철호와 의논하고싶었다.

《진우야, 여기 있다. 덤비지 말고 오거라.》

박진우는 철호가 부르는쪽을 여겨보았다. 선실앞에 바위처럼 떡 뻗치고있는 철호가 보였다. 그 두리에는 《진주나그네》를 비롯한 끌끌한 장정들이 수십명 모여서 피대를 세우며 떠들고있었다. 성난 사자와도 같이 번뜩이던 그들의 눈길이 일제히 자기에게 쏠리고있었다. 그들도 아마 낌새를 맡고 무엇인가 의논하던중인것 같았다.

그는 휘청거리면서도 한발한발 그들에게 다가갔다.

늘 봐야 한없이 무던하면서도 불의앞에서는 결패사나운 《진주나그네》가 《박기사, 어데 갔덴노. 우째 이제사 오능가.》하며 노한 소린지 반가운 소린지 가려들을수 없게 웨치며 마중나와 손을 잡아끌었다.

혼자 떨어져있던것이 객적어 그는 헤식은 웃음을 띠웠다.

오미나또부두에서 돌이를 찾을 때 서슴없이 어깨를 들이댔던 중년의 《진주나그네》는 《모두 임자를 찾았댔당이.》하고 반겼다. 그가 입가에 띠운 미소는 대피굴을 파면서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든고》를 구슬프게 부르고난 다음 어색해하며 짓군 하던 그 미소였다. 《진주나그네》라는 별명도 그 괴롭던 나날에 얻은것이다.

막상 진우가 다가가자 중구난방 떠들던 그들은 조용해졌다. 그대신 기대어린 시선으로 진우만 쳐다보고있었다. 초조하고 긴장한 눈길이였다.

《형님, 짐작이지만 집채같은 파도가 밀려오자 왜놈들의 기미가 이상해진것 같지 않수? 발동도 멎고 한놈도 얼씬하지 않으니 말이웨다.》

진우의 예견이 마치 도화선에 불을 단듯 그들은 또 목에 피대를 세우며 격분한 심정을 마구 터놓았다.

《그대로 있다가는 큰일나겠소다. 왜놈들치고 고약하지 않은 놈을 봤소? 악착하고 교활한 놈들이 아마 배가 뒤집히기를 기다리고있을지도 모르우. 그러니 모두 날따라오우. 샅샅이 뒤져봅시다.》

진우가 앞장서서 선실로 내려가자 수십명 장정들이 이를 북북 갈며 뒤따랐다.

문을 열어제끼자 가문 논에 올챙이처럼 모여있던 해병놈들의 놀란 눈이 일제히 쏠렸다. 놈들은 하나와 같이 어깨에 구명대를 메고있었다. 여차직하면 일제히 갑판으로 뛰쳐나가 바다에 뛰여들 차비인지 군복은 모두 벗어던지고 줄말무늬해군샤쯔와 빤쯔바람에 군화도 벗어던진 맨발차림이였다.

그런 몰골을 보는 순간 진우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어느 놈이 발동을 껐는가!》

추상과도 같은 박진우의 호통소리에 놈들은 기가 죽어 패잔병마냥 고개를 떨구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좀 지나서 주눅이 든 기관장이 경풍이라도 만난듯 부들부들 떨면서 《우린 명령대로…》하고 말끝을 사렸다.

《네놈들만 살겠다는것이지? 명령한 놈이 누군가?》

박진우의 분노에 놈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때 돌연히 격발기를 재우는 아츠러운 소리가 어스크레한 저켠 구석에서 들려왔다. 오미나또에서 그중 악착하게 굴던 헌병오장이였다. 그놈만은 유독 군복을 벗지 않고 제법 팔에 《헌병》완장을 그대로 끼고있었다.

격발기소리가 나자마자 누군가가 비호같이 달려갔다.

《진주나그네》였다. 그뒤로 대여섯명이 따랐다.

그들은 달려가자마자 총을 빼앗고 면상을 후려쳤으며 짓밟아 뭉개놓았다. 찔 나가뻐드러진 헌병오장은 송장처럼 꿈틀거리지도 못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수십명 격노한 장정들이 철호의 명을 받고 쏜살같이 달려가 무기가에 세워둔 총을 모조리 잡아쥐고 아구리를 왜놈들에게 들이댔다.

기가 팍 꺾이운 놈들은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무기를 빼앗아쥔 장정들은 진우가 멱을 잡아쥐고 일으켜세운 기관장과 놈들을 포로처럼 줄을 세워 갑판으로 끌고나왔다. 살맞은 뱀처럼 후줄근해진 놈들이 어깨에 구명대를 메고 샤쯔와 빤쯔바람에 고기두름처럼 줄레줄레 끌려나오자 격노한 동포들이 《그놈들을 꿇어앉히라!》하고 웨쳤다. 조선사람들속에 몇겹으로 포위된 놈들은 머리를 땅에 박고 꿇어앉았다.

소란하던 갑판이 조용해지자 《기관장, 어느 놈이 닻도 내리지 않은 배의 발동을 끄라고 했는가?》하고 박진우가 재차 다그쳐물었다.

《제발 잘못했으니 살려만주시오. 명령은 선장…》

어느 사이에 철호와 《진주나그네》가 구명대를 두개씩이나 멘 선장에게 총을 내대고 끌어왔다.

《선장, 배가 뒤집히기를 바라서 발동을 끄라고 명령했는가?》

선장은 몇배로 커진듯한 흰자위를 휘굴릴뿐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있었다.

《박기사! 그건 내가, 이 오까모도가 명령했소.》

선장실에 들어박혀 이마를 맞대고 배가 뒤집히거나 암초에 올라앉았을 때 혹은 표류되였을 경우 조선사람들을 모두 수장하거나 팽개치고 어떻게 도망치겠는가 하고 모의를 하던 오까모도가 제 면전에서 선장이 끌려나가자 스스로 발이 저려 헐떡거리며 따라나왔다.

《그건 배가 좌초될가봐 그랬소.》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듯 오까모도는 팔을 휘저으며 변명해나섰다. 그는 왜서인지 구명대만은 메지 않았었다.

《닻도 내리지 않고 기관을 멈추면 스스로 좌초되기를 바란게 아니고 무엇인가?》

우뢰와도 같은 박진우의 호된 추궁에 말문이 막혔던 오까모도는 《그만 미처… 자, 자, 이렇게 우격다짐으로 시간만 끌면 배가 위험하오. 어서 선원들을 모두 제 위치에 돌려보낸 다음 차근차근…》하고 사정했다.

배가 좌초되거나 표류할 우려가 박진우의 가슴을 옥죄였으나 그는 교활한 오까모도를 그냥 쏴보았다.

《당신들, 조선사람들을 내가 직접 책임지고 부산항까지 안전하게 귀국시키겠으니 널리 량해해주오. 모두 뭣들 하는가. 어서 제 위치로 돌아가 배를 빨리 근해로!》

오까모도는 박진우에게 빌붙어 사정하던 때와는 달리 부하들에게는 제법 큰소리로 명령하였다.

거의 알몸의 놈들이 일어나려고 움씰거렸다.

《가만!》

박진우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자 놈들은 다시 꿇어앉았다.

《박기사, 한초가 급하오. 저 밀려오는 파도가 배를 삼키기 전에… 내 해군대좌의 명예를 걸고…》

오까모도의 사정에 박진우는 밸이 뒤틀렸다. 해군대좌의 명예를 걸겠다는것이 잠시 잠재우려던 그의 분통을 폭발시켰던것이다.

박진우는 엉거주춤 서있는 오까모도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아무말없이 그의 두어깨에서 《대일본제국》의 더러운 표적물인 해군대좌의 견장을 북북 뜯어내여 바다에 처넣었다.

동포들속에서 《그거 잘한다!》, 《속이 다 씨원하다. 해방이 좋긴 좋구나!》하는 함성이 터졌다. 그러는 사이에 선장, 기관장의 견장도 바다물에 던져졌다. 누군가가 선실에서 벗어놓은 놈들의 군복을 안고나와 바다물에 처넣으려고 했다.

《여보시오. 그러지 마오. 그렇지 않아도 원숭이같은 놈들인데 옷도 못입고 배를 모는 꼴이야 눈뜨고 어떻게 봐주겠소. 견장만 바다물에 처넣소.》

철호가 타일러서야 젊은이는 아쉬운듯 히죽이 웃으며 그의 말을 따랐다.

박진우는 견장을 떼우고 우거지상이 되여 후줄근해진 오까모도에게 《우리 동포들의 분노를 알만한가? 우리는 저 가증스러운 견장을 단 네놈들밑에서 노예살이를 해왔다. 네놈들에게서 옷을 벗기지 않고 견장만 떼버린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하라. 우리 조선사람들은 악착한 당신들과는 비교도 할수 없는 선량한 민족이란 말이요.》하고 오금을 박았다.

오까모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시시해진 해병놈들에게 옷을 던져주자 놈들은 또다시 빼앗길가봐 서둘러 주어입고 비실비실 사라졌다.

《오까모도, 이제부터는 우리가 당신들의 행동을 주시한다는것을 명심하오. 배의 운행을 감독통제해야겠다는 뜻이요.》

《그렇게야 어떻게? 파도가 자면 안전하게 운행하겠으니 마음을 놓으시오.》

오까모도는 박진우의 강경한 태도에 의연히 잔꾀를 부리려고 했다.

《안되오. 우린 당신들의 속심을 너무도 많이 체험했소. 잔꾀를 더이상 부리지 않는게 좋겠소.》

드센 박진우의 질책에 오까모도도 어쩔수 없다는듯 《좋도록 하오.》하며 이마살을 찌프리였다.

오까모도가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물러갔다.

《이 사람 박기사! 임잔 아까운 젊은이야.》

어색하게 멘 총을 추슬러올리면서 《진주나그네》가 롱담인지 진담인지 가릴수 없는 말을 하자 열이 오른 동포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해방이 좋긴 좋구나!》

조선사람의 발밑에서 설설 기게 된 왜놈들의 몰골이 너무도 가슴후련하여 배가 아직도 기우뚱거렸으나 동포들은 그냥 웃고 떠들었다.

배는 힘겹게 연해쪽을 향해 움직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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