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7 회


제 1 장

6


《우끼시마마루》는 드디여 닻을 올렸다.

무덥고 답답하던 오미나또군항을 벗어나자 끝없이 밀려오는 검푸른 파도를 헤가르며 배는 점차 쾌속으로 달리였다.

시원한 바다바람이 배우에 탄 사람들의 무더위를 한결 식혀주었으나 그들은 저주로운 왜땅을 떠나 오매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가게 됐다는 환희로 하여 《조선해방만세!》를 목청껏 웨치며 그냥 들끓었다. 젊은축들은 부풀어오르는 격정을 누를길 없어서인지 쉼없이 따라오는 갈매기를 잡기라도 할듯 팔을 뻗치며 웃어댔다.

울며 끌려와 지옥살이를 강요당하던 그들은 바랄수 없었던 귀국이 실현되게 되자 모두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상상을 초월할만큼 숱한 사람을 태워서인지 배가 가끔 뒤뚱거렸으나 미사꼬의 아버지 무라야마 겐지로는 의연히 물주리를 문채 두툼한 입귀로 담배연기를 피실피실 날릴뿐 무표정한 자태로 키를 잡고있었다. 그는 출항직전에 뜻밖에 나타나 박진우를 따라 조선에 가겠다고 조타실 긴걸상에 와앉은 딸의 소행이 밉고 괘씸하여 딸에게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

이 며칠사이 무라야마 겐지로의 심정은 매우 번거로왔다.

일본의 패망이 시간을 다투며 다가오는 기미가 보이자 그는 불안에 떨었다.

마침 다행스러운것은 자기네 수송선이 오미나또군항에 정박한 때에 뜻밖에도 딸 미사꼬를 도꾜가 아니라 나라의 한쪽 끝에서 만나게 된것이다.

딸과의 상봉이 그야말로 우연히 이루어지긴 했으나 만약 딸이 패전이 도래하여 나라가 대동란과도 같은 혼란에 빠지기 전에 미리 오지 않았더라면 어쩔번 했겠는가.

딸은 그것대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수 없는 아버지를 찾아 정처없이 헤맸을것이고 자기는 자기대로 미사꼬를 만나지 못해 몸부림쳤을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젠 딸과 절대로 헤여져 살지 않으리라.)

전쟁이 끝났다.

딸과 헤여지지 않으려는 겐지로의 꿈은 현실로 되였다.

그의 마음은 패전의 수치마저 잊어버릴만큼 기뻤다.

그러나 겐지로의 기쁨은 며칠을 넘기지 못하였다.

미사꼬가 애비를 찾아온것이 아니라 박진우를 만나러 왔던것이다. 일본이 패망하자마자 딸은 징용에서 풀려나온 련인, 성례도 치르지 않은 조선청년을 데리고와서는 그와 더는 갈라지지 않겠다는것이다. 그러던것이 박진우가 귀국하게 되자 이번에는 애비의 품을 떠나 그를 따라 기어코 조선에 가겠다고 배에 올랐다. 자기 삶의 전부라고 할수 있는 딸이.

주인에게 버림을 받은 개와 같은 처지가 된 겐지로는 딸의 소행이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애비도 모르는 저년을 그저!)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속이 뒤틀렸다.… 만약 그처럼 애용하는 물주리가 없었더라면 배신감에 못이겨 심장이 파렬됐을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무리 밉고 괘씸해도 딸은 딸이다. 슬하에 둔 일점혈육이다.

그는 미사꼬에게 조선청년과 맺은 인연을 끊으라고 권고도 해보았고 강요도 해보았다. 그러나 딸은 아무리 타일러도 요지부동이다. 하긴 젊은 혈기에 죽자살자 하는 애인과 생리별을 하라니 선뜻 응할리가 없었다. 리해는 되면서도 섭섭하다기보다 서글펐다.

딸이 진우를 따라가면 영영 리별하게 된다. 그러면 안해마저 없는 자기는 어디에 정을 붙이고 이 거칠고 험악한 세상을 살아간단 말인가.

겐지로에게 있어서 이 리별은 《대일본제국》의 패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치명적인것이였다. 그의 마음은 생살을 저며내듯 쓰리고 아팠다. 이전처럼 조선이 식민지로 남아있어도 사정은 다르다. 딸이 조선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보고싶을 때 찾아갈수 있으니 절망적인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젠 일본의 처지가 판판 달라졌다. 딸이 설사 조선에서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만날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게다가 일본인에 대한 조선사람들의 원한이 구천에 사무쳤거늘 지금은 진우가 제 고향에 딸을 데리고가겠다지만 조선에 가자마자 곧 버릴것은 너무도 뻔하다.

《그렇게 되면 너는 그들의 몽둥이에 맞아 뼈도 추리지 못할것이다. 어디에 하소할데도 없다. 너는 기필코 저 세상에 가서도 불쌍하기 그지없는 무주고혼이 된다. 이 아버지를 목메여불러도 때는 늦어. 미사꼬야, 그렇게 하지?》

겐지로는 절절하게 타일렀다.

《박진우씬 그런 너절한 인간이 아니예요. 전 그이의 진정을 믿어요.》

자기의 생각을 조금도 굽히려 하지 않는 딸의 진실한 사랑앞에 머리가 숙어지기도 했다. 자기를 버리고 달아난 안해에 비해볼 때 미사꼬는 얼마나 지조가 굳고 의리깊은 아이인가.

하지만 겐지로는 끈덕지게 달라붙어 설복하였다.

《얘야, 네가 일본청년을 맞았다면 이 애비가 이다지는 애타하지 않겠다. 듣자니 너를 따라다니는 청년들이 많다던데 하필 조선사람에게… 한심하구나. 이 아버지는 조선사람이라면 치를 떤다. 무지막지한게 조선사람이야.》

끝내 말을 듣지 않는 딸에게 그는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분을 삭이지 못해 이글거리는 눈으로 쏴보았다.

무라야마 겐지로는 조선사람의 《덕》을 많이 입은 자기네 집안을 더듬어보았다.

수천수만 장병들의 피로 만주의 산야를 물들이면서도 일본이 조선을 먹으려고 피눈이 되여 로일전쟁을 벌리고있을 때 그는 10대의 소년이였다. 세상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던 그의 유치한 두뇌를 처음으로 뚫고들어간것은 교육의 허울을 쓴 군국주의팽창열이였으며 그 첫 대상이 조선이라는 미지의 땅이였다.

《조선행 배표를 놓치지 말라!》

범람하는 광고, 목이 쉬도록 고아대는 소리에 넋을 사로잡힌 겐지로의 할아버지는 아무 밑천도 쥐지 못한 장돌뱅이였으나 악착하게 뜯어먹을수록 일확천금 거부가 될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조선으로 달려갔다.

서울 진고개에 구멍가게를 차리게 된것은 장돌뱅이 서너달도 채 못미쳐 그에게 차례진 행운이였다. 뜯어먹을게 너무도 많은 미개척지 조선땅이 그에게 베풀어준 첫 《덕》이였다. 그에게 두번째로 차례진 《덕》은 타국에서 새로 사귄 오까모도 슌스께가 던져준 거액의 돈뭉치였다.

《이 돈을 밑천으로 보부상조합을 경영해보시오. 좀 있으면 규슈의 떼거지들이 무리로 건너올테니 그들을 고용하여 장돌뱅이로 써먹으시오. 당신자신이 보부상이였으니 경험도 있겠다 잘될거요.》

겐지로의 할애비는 눈이 퀭해졌다. 슌스께의 선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을 할수 없었던것이다.

《아, 아, 놀랄건 없소. 낯선 타국에 와서 동족끼리 서로 도와주는거야 응당하지 않소? 그러니 당신은 나의 도움으로, 규슈떠돌이군들은 또 당신의 도움으로 이 흥미있는 조선땅을 실컷 뜯어먹잔 말이요.》

슌스께의 선심에 감복한 할애비는 이렇게 되여 이미 1800년대말에 조선에 침투한 《흑룡강동지회》간첩집단의 산하단체인 《천유협》에 저도모르게 흡수되였다.

규슈랑인들로 무어진 보부상들 역시 조선땅 방방곡곡을 장사를 한다는 가면을 쓰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슌스께의 첩자노릇을 하며 살아가게 되였다는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할애비는 어느덧 진고개에서 어느 상인도 견줄수 없는 거부로 한밑천 단단히 잡았다. 이것이 《조선합병》전 그에게 차례진 《덕》이였다.

그후 슌스께는 온다간다는 소리도 없이 만주로 건너갔다. 밑천이 생긴 할애비는 이젠 더는 첩자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혔다.

규슈랑인보부상들이 내탐해온 조선사람들의 반일운동과 반일감정을 채근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보부상조합을 해산할 필요는 없었다. 조합에서 들어오는 공짜돈도 적지 않았던것이다.

그는 어느덧 백화점의 주인으로 되였다.

순풍에 돛단듯 그의 장사길은 나날이 상승일로를 걸었다.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무진장 뜯어먹을수 있는 조선으로 아버지도 건너갔다. 늙어죽게 된 할아버지의 재산을 넘겨받자는것이였다.

그무렵 중학교를 졸업했으나 공부하기가 죽기보다 싫어진 무라야마 겐지로는 보내오는 돈맛에 빠져 더 진학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호의호식하였다. 돈 잘 쓰는 건달군이 된 겐지로의 장래를 념려하여 서울에 있던 아버지가 찾아왔다. 아버지는 아들이 장차 해양국 일본에서 굴지의 해운업주가 될것을 바라며 고베항에 운송선 몇척을 사주었다.

우선 자그마한 해상운송업을 경영해보면서 경험을 쌓은 다음 도약시켜보자는것이였다.

16살 잡힌 겐지로에게 있어서 운송업경영은 골치아픈 일이였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송장이 다 된 할애비와 아버지의 재산이 굉장한데 하필 시끄럽고 까다로운 경영에 머리쓸게 뭐 있느냐. 그는 무료할 때마다 제가 직접 륜선의 조타를 잡고 씨원한 한바다로 배를 몰고나가는 재미에 빠져버렸다. 미인인 미사꼬의 어머니를 돈으로 유혹하고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가 유흥으로 즐기던 끝에 잉태시킨것도, 부모들의 축복도 받지 않고 결혼한것도 다 이 호화롭던 때였다. 그들의 유람, 관광, 부화방탕한 생활은 이웃한 요꼬하마항을 훨씬 벗어나 경치좋다는 세로나이까이까지 뻗어나갔다.

그런데 그처럼 부러운줄 모르고 바다가 좁다고 돌아치던 그에게 파산이 무서운 해일처럼 하루아침에 들이닥칠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조선에서 거족적인 3.1인민봉기가 터지고 아버지가 넘겨받은 보부상조합이 슌스께가 이미전에 인계한 헌병보조원들의 집단으로 폭동전야와 시위투쟁에 음으로양으로 악랄하게 책동했다는 정체가 밝혀지자 반일폭동자들에 의하여 여지없이 소탕되였다. 할애비도 애비도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그들의 재산도 백화점도 함께 하루밤사이에 불타버렸다.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을 조선놈들!》

겐지로는 이를 갈았으나 누구도 돌봐주는자가 없었다.

유흥에 빠진 그의 운송회사도 막대한 적자앞에 인차 거덜이 나고말았다. 그는 자기의 배를 몽땅 경매당하고도 모자라 끝내 제가 경영하던 회사의 한갖 보잘것 없는 조타수로 굴러떨어졌다.

졸지에 거지신세가 된 그는 갓난 미사꼬를 팽개치고 늙고 돈많은 놈팽이놈을 찾아간 안해를 저주하면서도 어쩌는수 없었다. 젊은 나이에 재취해야겠으나 돈없는 건달군에게 애기까지 달렸으니 어느 녀자가 들어오겠는가.…

(조선놈들때문에 내 신세가 이꼴이 됐는데 미사꼬년은 애비의 마음도 모르고 조선놈과 눈이 맞아서 이 애비를 헌신짝처럼… 아, 그처럼 애지중지 키운 딸년이…)

조타를 잡은 겐지로의 손은 저으기 떨렸다.

딸이 애비를 끝내 버리고 진우를 따라 조선으로 떠나간다고 생각하니 괘씸하기 그지없었고 억이 막혀 가슴이 터진듯 쓰리여 인생의 허무함을 지겹도록 맛보는것이.

(하, 모두 곁을 떠나고마는구나. 딸년도 안해도… 갈테면 다 가라!)

그는 닥쳐온 무자비한 운명앞에서 반발하였으나 끝내 무릎을 꿇지 않을수 없었다.

가슴속에서 불이 일었다. 게다가 딸자식이 떠나가는 마지막길을 하필이면 제가 운전하는 배에 싣고가게 된단말인가.

각박한 인정, 얄궂은 운명앞에 피눈물을 삼키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서글퍼지는 마음을 달랠수 없어 때늦게나마 뒤에 앉아있을 미사꼬를 뒤돌아보았다.

따라가겠다거니 가지 말라거니 하는 집요한 신경전(그것은 물론 미사꼬에게 있어서 운명의 갈림길을 의미하는것이였지만)에서 일단 벗어나 용약 결심품고 배에 올라서 그런지 딸애는 어느덧 만시름을 잊고 딱딱하고 더러운 긴걸상의 등받이에 기대여 잠들어버렸다.

온갖 시름을 다 털어버리고 자고있는 딸자식이 괘씸하기에 앞서 측은해보였다. 그렇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딸의 긴 속눈섭밑이 축축히 젖어보였다.

또다시 속이 상한 그는 슬하의 혈육조차 제 마음대로 돌려세울수 없는 야속한 인정이 한스러워 또 물주리에 독한 엽초를 부스러뜨려 다져넣고 푹푹 연기를 내뿜었다. 파르스름한 연기가 구레나룻에 뒤덮인 입과 코에서 쉼없이 쏟아져나왔다.

《얘야, 베개를 베고 자렴.》

얼마나 곤하게 자는지 대답도 못하자 그는 자식이 가긍하여 가슴이 아팠다.

그는 때가 끼고 로파의 배가죽처럼 볼품없는 자기의 베개를 꺼내여 딸의 머리를 애기때처럼 조심스럽게 받쳐들고 베워주었다. 그래도 그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깊이 잠든 딸애의 갸름한 얼굴을 시름에 겨워 이윽토록 내려다보던 그는 살결맑은 스무살의 미사꼬가 어쩌면 저렇게도 제 에미의 얼굴을 그대로 닮았을가 하는 생각에 흠칫 놀라 외면하고말았다.

가산이 거덜난 죄아닌 죄때문에 저렇게도 귀여운 자식을 어려서부터 에미없이 키우지 않으면 안되였던 외롭고 쓸쓸하게 보낸 반생의 나날들이 잔파도마냥 끊임없이 눈앞에 떠오르는것이였다.

그는 딸자식이 바라는것이라면 그것이 비록 하늘의 별을 따와야 하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안들어준것이 없을만큼 자신을 무섭게 혹사하면서까지 정성과 사랑을 퍼부었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이 해군소속 수송선 《우끼시마마루》의 조타수로 자원한것도 딸의 학비를 한푼이라도 더 보태줄수 있다는 유혹때문이였다. 그래야 상류계자식들이 많은 우에노음악학교에 다니는 미사꼬의 마음에 그늘이 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것이다.

그러나 막상 해군수송선에 옮겨앉았을 때 전혀 예기하지 못했던 뼈저림을 겪게 될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단 한번도 품에서 떨어져본적이 없는 일점혈육을 쓸쓸한 빈방에 홀로 재우고 기약할수 없는 지루한 항행길을 떠날 때 그는 남몰래 가슴을 쳤다. 사생활에서 그나마 온기가 남아있다면 그것은 어린 딸애에게 베개대신 제 팔을 베워주고 다독여주면 잠결에도 제 목을 꼭 끌어안는 그 단순한 애정뿐이였다. 안해없는 고적과 허전함이 어렵지 않게 메꾸어진것도 바로 이런 부녀간의 정이 있어서가 아니였던가.

그러나 겐지로는 딸의 미래를 위해서 자기가 체험할수 있는 이런 자그마한 기쁨마저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더구나 미사꼬가 도처에 퍼져있는 유명무명의 민족, 종족들의 민요에 매혹되여 미친듯이 수집채보하며 돌아칠 때 자기와 같은 음악의 문외한이 들어봐도 토색적이기는 하나 선률보다도 타악기의 부잡스러운 리듬우에 올라선 민요, 정서라고는 털끝만치도 없는 민요를 수집해놓고 광적인 희열에 잠기는것을 보며 그는 마음에 없으면서도 딸의 비위를 건드릴가봐 나오지 않는 웃음을 지었다.

《그런것에서 돈이 나오느냐 밥이 나오느냐? 당장 걷어치워라!》 하고 꽥소리를 치고싶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그는 꾹 참았다. 그렇게 길러온 딸자식이다.

(이제는 애와 영영 헤여져야 한단 말이지.)

겐지로는 공든 탑이 무너져내리는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기막힌 현실앞에 깊은 탄식을 진한 담배연기와 함께 내뿜지 않을수 없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저애를 박진우와 갈라놓아야 한다.)

그는 박진우만 먼저 귀국시키면 딸의 마음도 서서히 가라앉을것이라고 타산했다.

미사꼬의 눈앞에서 보기도 싫은 조선놈 진우가 얼씬거리지 않으면 잠시 입었던 마음의 상처도 차차 아물것이다. 젊은것들의 사랑이란 흔히 가랑잎에 불당기듯 하는 법이니까.

그러자면 진우가 요구한대로 뒤따라가겠다는 한마디 대답만 하라고 미사꼬에게 끝까지 권유해야 한다. 그래도 미사꼬가 고집을 부리면 시모노세끼에서 부산으로 떠나기 전에 강제로 떨구어버리리라.

남아있던 미사꼬가 뒤따라가려고 발광해도 그때 가서는 어쩔수 없을것이다. 현해탄이 가로놓여있고 관부련락선도 끊어질것인즉 걸어서야 바다를 건너갈수 없지 않는가.

그렇게 되면 저애들은 영영 갈라지고말것이다. 련인의 얼굴이 기억에서 희미해지면 사랑도 세월과 함께 바래여질것이다.…

딸의 생명의 은인인 박진우의 진정과 홀딱 반해버린 미사꼬의 열렬한 사랑에 칼탕질을 할 계책을 꾀하면서도 무라야마 겐지로는 자기의 기발한 생각에 저으기 만족하여 키를 지그시 잡았다.

망망대해가 어둠에 잠겼으나 그는 거친 파도를 유유히 헤가르며 자신만만하게 최대의 쾌속으로 배를 몰고나갔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