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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제 1 장

4


부두는 물끓듯 설레였다.

질서있게 배에 오르라고 박진우와 철호 등이 나서서 목이 터질 지경으로 설복하였으나 허사가 되고말았다.

죽어서도 잊을수 없고 부모처자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있는 고향으로 가느냐 못가느냐 하는 판가리가 이 시각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왜 헤덤비지 않겠는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게 되자 그들은 사람들의 물결을 겨우 헤치고 발판앞까지 나가 붙어섰다. 물에 떨어지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시키자는것이였다.

이때 박진우의 코앞에서 애기업은 한 녀인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들려 갑판우로 올라갔다. 배에 오르자마자 갑판우에 퍼더버리고앉은 아낙은 뭍쪽으로 손을 뻗치며 《돌이야, 돌이야.》하고 악을 쓰며 불러댔다.

사람들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자식을 부르자 진우는 얼결에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태질하며 아이를 부르는 녀인의 애타는 울부짖음이 그의 귀전을 아프게 자극했다.

생각해볼 사이도 없이 그는 밀려오는 사람들쪽으로 돌아서 《돌이야, 돌이야―》하고 웨쳤으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혹시 사람들의 발밑에 깔리우지 않았을가?)

불길한 예감이 든 그는 누군가가 불쑥 주저앉으며 어깨에 올라서라고 하자 무작정 그우에 올라탔다. 무던한 《진주나그네》였다.

《여러분! 밀지 마시오. 저 식모아주머니가 아이를 찾고있소. 자기곁에 돌이라는 아이가 없는지 살펴보시오.》

사람들이 진우를 알아보자 잠시 조용해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돌이야, 돌이야―》하고 불렀다. 그래도 대답이 없자 사람들은 또다시 설레이며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녀인은 다시 뭍으로 내려오려고 발광했으나 뜻을 이룰수 없었다. 올려미는 사람들에게 저지당한 녀인은 옷고름이 풀어진것도 모르고 그냥 돌이를 찾았다. 돌이 훨씬 지났으련만 고개도 바로세우지 못하는 등에 업힌 애기도 속상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에미를 따라 덩달아 울어댔다.

《헛참, 저 아주머니가 실성하겠군. 불쌍도 하지. 남정을 찾아 사생결단 여기까지 왔건만 애 애비는 돌에 깔려 죽었당이. 식모살이로 겨우 살아왔는데 고향으로 가게 된 이때 또 자식을 잃은가보지.》

진우에게 어깨를 내댄 《진주나그네》가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그것은 진우의 기억에도 생생하게 새겨져있는 너무도 끔찍한 참사였다.

저 아낙네의 남편은 굴이 무너져내릴 때 무리죽음을 당한 사람들중의 하나였다.

왜놈들은 신성한 비밀굴주변에 조선징용자들의 무덤을 쓰는것이 당치 않다고 그들의 시체를 벼랑에 끌고가 바다물에 처넣었다.

《돌이 아버지, 당신이 가면 우린 어떻게 살아요. 네? 돌이 아버지―》

비내리고 을씨년스럽던 마가을의 그날 벼랑턱에서 몸부림치던 저 아낙네의 애타는 울부짖음이 아직도 진우의 귀가를 맴돈다. 저 녀인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 마당에서 제명에 죽지 못한 불쌍한 남편, 하늘처럼 믿고 살아오던 남편의 유골함마저 가지고 돌아가지 못한다. 죽어서도 고향땅에 묻히고싶다던 남편이 아니였던가. 그런데 또 자식까지 잃었으니…

박진우는 남편잃고 태질하던 녀인이 오늘은 또 자식잃고 넋을 잃은 정상이 가긍하여 눈앞이 흐려왔다.

지긋지긋한 징용살이를 함께 해온 그로서는 저 녀인의 애타는 마음을 풀어주지 않고서는 설사 고향에 돌아갔다고 하더라도 발편잠을 잘것 같지 못했다.

박진우는 성난 사자마냥 사람들을 마구 헤가르며 공지로 나왔다.

《돌이야, 돌이야. 어데 있니?》

그는 부두가를 샅샅이 뒤지며 찾아헤맸으나 아이는 대답조차 없었다.

(분명 발밑에 깔린게 틀림없어.)

다시 되돌아서려고 창고모서리를 에도는데 얼굴에 숯칠을 한 아이녀석이 태평스럽게 주저앉아 어데서 얻었는지 돌처럼 딱딱해진 빵쪼각을 그 작은 이발로 물어뜯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이를 발견한것이 너무도 반가와 진우는 쏜살같이 달려가며 《이녀석, 너 돌이지?》하고 물었다.

피뜩 돌아보는 아이의 먼지낀듯한 뿌연 눈이 한순간 반짝거렸다. 그러나 애는 빵을 걷어안고 내빼기 시작했다.

빼빼마른 아이는 진우가 빵을 빼앗을가봐 겁이 났던것 같았다. 달리던 아이가 돌뿌리를 찼는지 픽 하고 모재비로 넘어졌다. 빵이 굴러가자 아이는 피멍이 진 무릎도 돌봄이 없이 앙상해진 손을 뻗쳐 그것을 재빨리 덮치고 또 내뺐다.

너덜너덜한 바지가랭이가 종다리를 휘감았고 새둥지처럼 갈래없는 더벅머리가 바람을 맞아 곤두섰다.

《이놈 섰거라! 너 돌이지?》

뒤쫓던 진우가 일부러 큰소리를 쳤으나 아이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달아났다. 진우는 땀이 질벅한 아이를 독수리마냥 덮쳤다. 숨이 차 헐떡거리는 아이의 가냘픈 심장의 뜀소리가 진우의 가슴을 툭툭 쳤다.

《얘야, 무서워말아라.》

빵을 나꾸어챌가봐 겁에 질렸던 아이는 그제야 진우를 쳐다보며 헤식은 웃음을 입가에 띠웠다.

진우는 그 순박하고 꾸밈이 없는 아이의 웃음에 그만 눈물이 꽉 솟구치는것을 겨우 참았다.

《얘야, 너 돌이지?》

그는 될수록 부드럽게 말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지않아 안타까왔다.

아이는 고개만 끄떡거릴뿐 쥐이발처럼 작은 송곳이로 빵을 부스러뜨려 그냥 입에 넣었다.

《이녀석, 어서 가자. 엄마가 배우에서 기다린다.》

진우는 아이를 번쩍 안고 일어났다.

《싫어싫어, 난 안갈래. 저 집에 먹을게 많아.》

돌이의 여윈 손이 문이 열려진 식료품창고를 가리키고있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애는 엄마와 헤여진것은 생각지도 않았을가. 그 헤여짐이 어떤 결과를 빚어낼는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것이 어린 자기 운명을 어떤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지도 모르고 비록 한때나마 주린 창자를 채워줄 횡재와 결코 바꾸려 하지 않는것이다.

진우는 아이가 돌이라는것을 확인한것으로 하여 가슴이 뻐근해났다.

그는 아이를 안고 터벅터벅 창고로 갔다. 창고안에는 곰팡이가 끼고 말라빠진 빵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저 많은 빵을 썩이면서도 온종일 굴을 파며 허기진 배를 그러안던 징용자들을 굶주리게 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가 매서운 눈길로 창고안을 쏴보자 아이는 겁에 질려서인지 품속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제야 아이를 놀래우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진우는 빵자루를 한손으로 번쩍 들어 어깨에 둘러멨다.

《돌이야, 이건 모두 네것이다. 아구리를 잡아라. 그리고 어서 엄마한테 가자.》

그는 갑자기 목이 메였다. 아이가 다른 한팔로 목을 감싸쥐며 눈물에 젖은 볼을 비벼대였던것이다.

(아, 이 어린것이 이다지도 좋아하는걸.…)

한동안 말이 없던 아이는 빵자루가 통채로 차례지자 그 엄청난 횡재가 미덥지 못한지 그냥 뭐라고 묻고 주절댔다.

그는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돌이를 어떻게 배에 태워 엄마품에 안겨주었는지 몰랐다. 다만 《아이구… 죽어서도 잊지 않겠어요.》하며 코울음소리로 치사하는 아낙의 우는지 웃는지 가려볼수 없는 주름낀 얼굴만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애비잃은 그들모자의 기막힌 정상이 가슴에 맺혀 이윽토록 올려다보던 그는 불현듯 고향인 북청 속후를 떠나 서울로 고학을 떠나던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진우야, 온 집안이 네 학비를 대보겠다. 그러니 집걱정은 말고 부디 성공하거라.》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으며 기대와 근심이 어려 바라보던 어머니의 차분한 모습이 눈앞에 밟혀왔다. 비릿한 생선냄새가 쫙 깔린 물녘, 모래산에 피여오르는 저녁노을을 등에 진 체소한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였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 있는 경기중학교에 아들이 수석으로 입학하자 집을 어머니에게 떠맡기고 서울까지 따라와 함께 고달픈 하숙을 하며 물지게를 져서 학비를 대주던 아버지의 굽은 등도 어려왔다.

칠성판을 등에 지고 노상 날바다우에 떠있어야 식구들의 입에 풀칠이라도 해줄 운명을 타고난 아버지 박택삼은 늦게 본 아들을 소학교에 보내놓고야 인간이 체험할수 있는 소박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처음으로 맛본 텁석부리 어부였다. 안해에게 단 한번도 사다준적이 없는 쌀말과 거의 맞먹는 아들의 월사금을 한푼두푼 마련해주며 겪은 고역은 그처럼 고달팠지만 진우가 글을 배우게 됐다는 한가닥 기쁨으로 하여 오히려 락으로 받아들일줄 아는 아버지였다.

허나 자식이 한해, 두해 상급학년으로 진학할수록 이름할수 없는 우수가 백사장에 잦아드는 파도마냥 그의 메마른 가슴속에 깊숙이 자리잡을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그 우수는 어떻게 하면 자식을 교문으로 들여세워볼가 애태우던 나날에는 짐작조차 해보지 못한 그런것이였다. 월사금을 마련하는게 고되서만도 아니요 자식이 애어린 때부터 왜놈들의 수모를 받을가 걱정스러워 생긴 근심만도 아니였다.

아들은 타고난 수재라고 했다. 그것은 아버지로서 최대의 기쁨이 아닐수 없었다. 허나 어부인 그가 기쁨을 맛볼여가도 없이 아들이 수재라는데로부터 남몰래 가슴을 쥐여짜지 않을수 없는 처지가 되리라 어찌 상상이나 해보았으랴. 수재라는 소문은 날개라도 돋친듯 한산한 시골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백집도 되나마나한 초라한 어촌에 쫙퍼지더니 《실력제고》라는 파도에 실려 아들이 번화한 도소재지 함흥까지 오르내리자 어느덧 함경도지경에 퍼졌다.

《이사람 동생, 개천에서 룡난다는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진우 그녀석을 두고 하는 소리였구만 그래, 응? 하하, 임자 운이 트일가봐, 운이. 내가 다 기뻐 어쩔줄 모르겠다니까.》

형님, 동생하며 함께 사자밥을 지고 풍랑을 헤쳐가던 철호 아버지의 사심없는 칭찬까지도 왜 그런지 그의 가슴을 더 답답하게만 해주었다.

꽃은 피여도 알찬 열매를 맺을길 없는 자식의 장래가 불보듯 뻔하지 않느냐. 택삼은 아들에게 그런 장래가 닥쳐올가봐 벌써부터 겁이 났던것이다. 그런 자식을 더 공부시킬 힘없는 자신이 못내 한스러웠다. 기껏해야 소학교문전이라도 넘나들면 자식이 자기처럼 어부의 신세는 면하리라 생각하고 학교에 보냈던 박택삼이였다.

이런 우수속에 세월은 흘러갔다.

졸업을 앞둔 어느날 담임선생이 찾아왔다. 달도 없는 으슥한 밤이였다.

《내 제자를 키우다가 진우와 같은 학생은 처음 봅니다. 진우와 같은 조선학생들이 모두 공부를 마음껏 해서 크게 성공하면 우리 조선도 왜놈들 발밑에서 벌레처럼 짓밟히지는 않을텐데…》

박택삼은 진한 엽초연기를 온 방안에 뿜어놓는것으로 대답을 피할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더 시키고싶은 생각은 굴뚝처럼 뻗쳐오르건만 어쩔수 없는 신세가 그 욕망을 야금야금 좀쓸고있었다.

《어떻게 하던지 서울에 있는 경기중학교에 진학시켰으면 좋으련만… 그 학교가 중학교들가운데서 으뜸가는 학교랍디다. 물론 학생들의 태반이 돈많고 잘사는 지주, 자본가, 고관대작들의 자식들이지만 그밖에는 수재급아이들이 실력을 겨루고 입학한다는 학교지요. 진우와 같은 수재가 그런 학교에서 입학시험을 치면 실력에서 아마 열손가락안에 들거외다.》

실력을 담보하는 담임선생의 고무조차도 박택삼에게는 가슴에 못을 박는것으로 느껴졌다.

이른봄, 바다바람이 아직도 지게문을 그냥 울려놓던 날 새벽 그는 비장한 결심을 품었다.

그는 자식의 손을 잡고 무작정 서울행렬차 3등칸에 몸을 실었다. 철호네와 가난한 이웃들이 보태여주는 몇푼의 로자가 그의 객기를 더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담임선생의 말처럼 경기중학교 입학시험은 무식한 박택삼의 눈으로 봐도 요란하였다. 전국의 수재아이들이 실력을 겨루는 곳이라 입학비률이 30대 1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50명쯤 물리쳐야 들어간다고도 했다. 아니 입학률은 문제도 안된다는 소문도 귀에 들어왔다. 학교는 입학생정원이 없다고 한다. 성적이 합격권안에 들지 못하면 학년이 구성 안되여도 무자비하게 불합격시킨다는것이였다.(명색상으로나마 그렇게 표방했다.)

박택삼은 겁이 났다. 날이 갈수록 우울해졌다. 공연히 올라와 아직 이 세상의 쓴맛을 모르는 아들의 마음에 시름이 서리게 할가봐 못내 후회스럽기도 했다.

시험을 치고 나오는 아들을 담장에 기대여앉아 기다리기란 속이 타도록 지겨웠다. 연방 쑤셔담는 곰방대에서 대진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그는 그것조차 가늠하지 못했다.

《시험문제가 꽤 까다로와요.》

《오늘은 힘들게 시험을 쳤어요.》

기다리기에 지친 아버지에게 다가올 때마다 신중해지는 아들의 얼굴표정으로 하여 고향을 훌쩍 떠나올 때 솟구쳤던 그의 객기는 주눅이 들대로 들었다. 아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려고 들어간 날 박택삼은 제나름으로 완전포기상태에 빠져버렸다.

(글쎄 그러면 그럴테지. 시골수재란 우물안의 개구릴테지비.)

입학시험에 무관심해지자 마음은 오히려 태평스러워졌다. 그제서야 번화하고 낯선 도시풍경이 제 모양대로 눈에 안겨왔다.

택시라고 불리우는 무척 작은 차가 먼지를 휘감으며 내달리고 사람이 사람을 태우고 끌고가는 인력거가 지나가는것도 비로소 눈에 띄였다. 이 며칠사이에도 여전히 들려왔으련만 《무드렁 사려―》, 《조기드렁 사려…》하는 구슬픈 웨침이 오늘에야 뚜렷이 들려오는것이였다.

쭈그러들것만 같은 어깨우에서 노상 삐걱찌걱소리가 울려나오는 물지게군의 휘청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가위에 시험이 끝나 좀 지나더니 부형들이 악마구리 끓듯 설레이며 교정으로 몰켜갔다.

어디선가 환성이 터져올랐다.

수많은 부형들과 수험생들이 모여선 앞벽에 긴 종이두루마리가 옆으로 퍼지며 나붙었다. 합격자명단이 공시되였던것이다. 그앞에 모여선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소리치기도 하고 슬픔에 잠겨 흐느끼기도 하였다.

어리둥절해진 박택삼은 아들의 손을 잡고 그앞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그의 눈은 갑자기 화등잔처럼 커졌다.

두루마리 맨 꼭대기 합격자성적순위명단 제1번자리에 아들의 이름이 당당하게 나붙어있지 않는가.

박택삼은 그만 아들의 머리우에 난생처음으로 굵은 눈물방울을 떨구었다. 그는 벌써 제정신이 아니였다. 《덤베북청》인 그는 아들의 손을 잡아끌고 무작정 교문을 나서 첫눈에 뜨이는 음식점으로 뛰여들었다. 그리고 몹시 후들거리는 손으로 잘 풀어지지 않는 돈주머니를 헤쳐 지전몇장을 상우에 던졌다. 그는 자기와 자식의 배가 언제 이렇게 불러본적이 있었더냐싶게 마시고 먹었다. 입에서는 노상 헤픈 웃음이 튀여나왔다.

입학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서울역에 나와 차표를 살 때에야 그는 북청 속후까지가 아니라 겨우 함흥까지나 갈 돈밖에 없다는것을 비로소 알았다. 했건만 얼마나 마음이 붕 떴던지 《얘야, 뭐라니? 걸어서라도 가자꾸나. 속후땅이 생긴이래 장원급제한 놈이 너말고 또 뉘가 있지비?》하고 걸걸한 소리로 웨쳤다. 그의 눈섭밑은 여전히 젖어있었다.

개학과 함께 박택삼은 아들을 따라 훌쩍 서울로 올라가 물지게군이 되였다.

한푼의 학비라도 더 벌어보자고 그는 꼭두새벽부터 물지게를 지고 넓고넓은 서울장안 단골집들을 찾아 장딴지에 쥐가 일도록 샅샅이 누벼나갔다.

어머니 조씨와 누이 진옥이도 고향에서 물고기함지를 이고 덕성, 풍산일대의 산간오지를 북처럼 나들었다. 진우 하나만을 공부시켜보자고…

《붕―》

《우끼시마마루》가 긴 고동을 울렸다. 그바람에 물지게를 지고 달리던 아버지의 가긍한 모습도 바다바람에 흩날리던 어머니의 곤두선 머리카락도 박진우의 환각에서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어머님― 어떻게나 지내시는지? 며칠만 더 기다려주오다. 불효막심한 이 자식은 이제야 어머니슬하에 다시 가게 됐어요. 어머니―)

진우의 가슴에 혈육을 그리워하는 정과 오매에도 잊을수 없던 향수가 그들먹하게 차올랐다.

이제 닻이 오를것이다. 그러면 배는 고향을 향해 쏜살같이 파도를 헤가를것이다.

부두에 있던 모든 동포들이 배에 다 올랐다는것을 확인한 박진우는 그제야 발판에 한쪽발을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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