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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 1 장

3


울화가 부걱부걱 괴여올라 견딜수 없게 된 오까모도 나미오는 선장실에 처박혀 해군단검을 뽑았다꽂았다하며 살맞은 승냥이마냥 이를 갈았다. 선풍기에서 내뿜는 시원한 바람도 그의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는 머리를 싸쥐고 요람처럼 흔들거리는 해병침대에 몸을 던졌다.

박진우 등 갑판우에서 맞섰던 사람들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제 명령에 굴종만 해오던 조선징용자들이 해방을 맞았다고 순간에 범잡은 포수처럼 기고만장하여 등등 날치는 꼴은 차마 눈뜨고 볼수 없었다. 키낮은 천정마저 내려누르듯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속에서 또 불이 일었다. 무조건항복이 달아놓은 불이다.

(패망이 이렇게도 빨리…)

그는 가슴을 쳤다. 생각할수록 수치를 당한게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제가 기안하고 지휘한 오미나또군항 비밀함선대피굴공사가 저들의 로동으로 착착 진척돼왔건만… 그는 군항건설전문가로서 해군성의 촉망을 한몸에 받아안았던 지난날의 처지가 못견딜만큼 그리워났다.

일본군항들의 장래가 모두 자기의 총명한 두뇌우에 실렸던 행운아시절이 어쩌면 이다지도 빨리 물거품처럼 사라졌단 말인가. 그 시절 그가 꾸고있던 꿈은 쬐쬐하게 다 기울어가던 조선왕궁의 요녀에 불과한 민비따위나 살해하는데 가담하고 명성을 떨치려다가 히로시마에서 감옥밥을 먹기까지 한 할아버지에 비해 얼마나 웅대하고 화려했던가. 그 단꿈이 이렇게도 쉽게, 이렇게도 빨리 깨여지다니. 비밀함선대피굴공사의 발기자, 설계자로서의 최상의 영예가 무참히 꺾이운것도 분하거늘 오늘 징용자들의 시달림까지 받게 되였으니, 그것도 공사가 끝나면 군사비밀을 위해 징용된 모든 조선사람들을 대피굴에 처넣고 모조리 죽여버리려 했는데 오히려 그자들에게서 반격을 받을줄이야.

그는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려 흔들거리는 침대에서 팔딱 뛰여내렸다. 악이 치밀었던것이다.

어째서인지 인생말년에 이르러 오줌똥을 가리지 못하던 산송장 할애비 오까모도 슌스께가 자리에 누운채 돌연히 번뜩이는 눈으로 쏴보던 일이 불쑥 되살아났다. 10대소년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나미오! 넌 우리 오까모도가문의 장손이지?》

할애비는 손자를 악취로 구역질이 나는 머리맡에 꿇어앉히였다. 이윽토록 말없던 할애비는 시들어 나무뿌리처럼 말라버린 손으로 손자의 여물지 못한 어깨와 손을 더듬어 잡아쥐였다.

(유언을 하려나?)

나미오는 겁이 더럭 났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망치고싶었으나 정을 쏟아붓던 할아버지앞에 죄스러워 무서움을 가까스로 이겨내며 앉아있었다.

《나미오, 나를 일으켜다오. 그리고 저 벽에 걸려있는 칼을 벗겨오너라.》

사무라이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칼을 갖다바치는 나미오의 속은 심히 떨렸다.

(이 칼로 자결하려는가?)

아니나다를가 할아버지는 죠슈군벌 오까모도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겉옷을 입혀달라고 하더니 색이 바래여 싯누렇게 황이 든 《명치천황》의 사진앞에 정중히 꿇어앉는것이였다. 무엇인가 입속으로 주문을 외우는 할아버지는 마치 귀신같아보이기도 했고 유령처럼보이기도 했다.

나미오는 머리칼이 곤두섰다. 무릎걸음으로 게걸음을 쳤으나 도망칠수는 없었다.

《천황》앞에 세번 큰절을 한 할아버지가 《나미오, 날 부축해다오.》하고 당부하는것이였다.

떨리는 손으로 할아버지를 일으켜세운 나미오는 무게가 느껴지는 둔중한 칼을 지팽이삼아 겨우 몇걸음 옮기는 로인의 잔약해진 몸에 등을 내댔다.

업히운 6척장신의 할아버지, 그 옛날 군부특무의 중견으로서 조선과 만주땅을 메주밟듯 하던 할아버지는 온 여름 비바람에 시달려 앙상하게 형체만 남은 논밭의 허수아비처럼 가벼웠다. 그는 할아버지의 몸이 이다지도 여위고 가벼워졌을가 하고 생각하니 가엾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다.

그래도 정신만은 아직 또렷하여 《마차를 대라!》하는 말은 특무시절처럼 결패가 있었다.

나미오는 할아버지를 마당 한복판에 앉혀놓고 급히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마부와 마차를 끌고 되돌아왔을 때 나미오는 깜짝 놀랐다. 칼을 두손으로 감싸쥐고 홀로 일어선 슌스께의 눈은 마치 푸른 린광을 내뿜듯 무서워보였다. 그 눈은 그 옛날 가없이 드넓은 만주땅이 좁다하게 종횡무진 싸다니던 《흑룡강동지회》시절에 보았던 그대로였다. 소년시절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리여 만주땅을 밟아본적이 있는 나미오는 그때 료정 안침진 방으로 끌어온 중국인쿠리를 꿇어앉히고 심문하던 슌스께의 눈에서 저런 린광을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던것이다.

덜컥거리는 마차우에 올라앉아 두무릎사이에 칼을 세운 할아버지는 벗어진 대머리로 하여 자못 근엄해보였다.

번화한 도꾜의 뒤현관이라고 불리우는 우에노공원앞에서 마차를 세우게 한 할아버지는 스스로 칼을 짚고 내려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거침없이 개사슬을 잡고있는 사이고 다까모리의 거대한 동상앞으로 찾아가는것이였다.

슌스께는 동상앞에 나미오를 세워놓았다.

《절을 올려라!》

할아버지의 갈린 목소리가 궁글게 울렸다.

나미오는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으나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혀 최경례를 하였다.

《너도 알고있겠지만 이분은 초기명치시대에 일본을 대표한 장군이노라. 륙군대장, 참의 및 근위도독을 겸했던 사이고야말로 일찌기 무력으로 조선을 통채로 먹자고 한 첫 〈정한론자〉였다. 그런데 이 할애비는 저런 일본남아의 기질을 본받을 대신 기껏해야 검이나 휘둘러 민비를 죽이고 영웅으로 둔갑하려다가 오히려 히로시마에서 감옥밥을 먹은 졸장부 미우라 고로의 심복이였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소냐. 물론 미우라퇴역륙군중장도 호전적기질에서 사이고륙군대장을 뒤따를만 하다. 허지만 사이고야말로 조선정벌을 제창한 첫 〈정한론자〉의 한 대표자라고 볼 때 벌써 명치초기에 그의 선견지명은 따를자가 없었다. 히로시마감옥에서 이 할애비가 찾은 교훈은 무사도기질 하나만으로는 조선뿐아니라 만주를 먹을수 없다는것이다. 사이고처럼 선견지명의 두뇌를 소유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래서 이 할애비는 출옥하자마자 곧 만주로 달려가 〈흑룡강동지회〉의 기틀을 닦아놓는 일에 전념하였다. 후날 〈흑룡강동지회〉의 특무아이들이 〈대륙의 망나니〉라고 비난받은적이 있긴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굴할줄 모르는 무사도정신과 수를 꾸밀줄 아는 총명한 두뇌진의 대집결장이 〈흑룡강동지회〉였거늘 이 할애비는 대륙을 거머쥔 사나이였다. 너도 크거들랑 제국과 우리 가문의 운명을 걸고 이 사이고대장을 숭배하여 명예를 떨친 할애비의 뒤를 잇기 바란다.

대일본제국의 팽창에 온넋을 쏟아부으라는 부탁이다. 우리 제국이 살길은 그것밖에 없어. 그런 큰뜻을 품고 동분서주해왔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구나. 이젠 틀린가보다. 그러니 이 말은 네 할애비가 장손에게 남기고싶은 말이라는것을 명심해다오.》

숨이 차 겨우 말을 잇던 할아버지는 며칠후 무의식상태에서 끝내 피여나지 못하고말았다. 그리하여 사이고 다까모리의 색바랜 동상앞에서 한 말은 가문에 남긴 유언으로 되였다.

(기어코 내 할아버님 유언대로!)

나미오는 할애비의 쪼그라든 시신앞에 눈물을 떨구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몇번이나 말을 곱씹었다.

자나깨나 선조들의 넋이 담긴 유한을 꼭 풀어드리리라.

성공하지 못한 그분들의 넋을 딛고 올라서서 크게 도약하리라. 그러자면 선조들이 남겨놓은 쓰라린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교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지막지하게 칼이나 휘둘러서는 조선을 영원히 먹을수 없고 아시아의 맹주가 될수 없다는것이다.

그래서 그는 바다를 건너야 조선과 대륙, 남양군도의 그 무수한 섬나라들을 영원히 먹을수 있다는 단순한 지리적개념으로부터 바다를 손금처럼 알고 해도에 정통하였다.

하여 그는 조선을 발판삼아 대륙으로 도약할 해양국 일본의 그 출발점이 군항이라는 새로운 인식으로부터 대대로 륙군이 많았던 집인 죠슈군벌출신의 정통관념과 대담하게 결별하고 주로 사쯔마군벌출신의 소굴이라고 할수있는 해군이 되였다.

그는 복잡한 해도를 익혔으며 출발진지, 공격진지, 보급기지로서의 군항을 만능처럼 여기고 드디여 항만전문가, 해군장교로 될수 있었다.

원대한 야망을 품고 자라면서 그는 마음이 약해지거나 흔들릴사할 때마다 사이고 다까모리의 동상을 찾아왔고 그앞에서 한 할아버지의 피타는 유언을 되새기군했다. 그리고 모진 마음을 가다듬군 하였다.…

그렇게 공들여 쌓은 탑이 패망과 함께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다니…

(아니, 그럴수 없다. 패망은 일시적이다. 비록 쓰디쓴 쓸개를 빨면서라도 기어코 다시 일어나야 한다. 8월 15일 도꾜방송이 그걸 호소한게 아니냐. 그러니 기가 살아서 펄펄하는 저 조선징용자놈들부터 당장…)

그는 분연히 비좁고 답답한 선장실에서 뛰쳐나와 무전실로 달려갔다. 해군성, 아니 아직도 그 존재를 고수하고있을 《대본영》에 자기의 단호한 결심을 전문으로 날렸다.

허락을 받으면 더욱 좋고 설사 회신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애당초 극비명령에 조선사람들을 쥐도새도모르게 모조리 죽여버리게 되였던것이니 군인인 나는 《대본영》과 해군성의 명령을 집행할 의무가 있는것이다. 명령을 집행하면 장차 나는 《대일본제국》을 위하여 크게 공헌한 군인으로 평가받을것이다. 나라고 왜 오까모도가문의 가풍, 아니 일본군인으로서의 《야마도다마시》를 줴버릴손가!

며칠전까지만 해도 기울어질대로 기운 《대동아전쟁》이건만 본토가 함락될 때까지, 한명의 일본인이 남을 때까지 싸워보겠다고 악악 고아대던 전쟁의 최고통수부 《대본영》은 무조건항복을 끝까지 반대하다가 《천황》이 그것을 선포하자마자 졸지에 초상난 집처럼 기가 팍 꺾이였다.

했으나 전쟁광신자들로 꽉 찬 《대본영》 의 괴수들은 피를 물고 발악하는 승냥이마냥 윽윽 벼르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날아든 오까모도의 전보는 마지막으로 던져준 주패장처럼 광신적인 호전분자, 국수적인 복수주의자들의 단 가슴에 불을 확 달아주었다.

《패망했다고 야마도다마시도 죽은줄 아는가. 제국의 군인으로서 조선놈의 씨종자가 대동아공영권의 가장 큰 암이였다는것을 몰라서 우물거리는가. 일본제국은 조선이 식민지에서 해방되였다고 하여 그들을 살려서 제 나라에 돌려보낼수 없다. 결코 조선사람이 살아서는 제 고향땅을 밟을수 없다는것을 알게 해야 한다. 한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수장해버리라!》

《오까모도 나미오대좌! 그대는 대본영이 공들여 키워낸 군부의 특무라는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특무의 본분은 잔인성에 있다. 대좌의 솜씨를 보이라. 력사는 조선사람에 대한 일본의 잔인성을 영원히 찬양할것이다. 이것은 지난날에도 그랬고 오늘도 래일도 일본제국의 변함없는 국시다. 72시간안으로 그대의 잔인한 솜씨를 떨치여 제국의 국시에 충실하라.》

《대본영》 과 해군성은 앞을 다투어 회답전보를 《우끼시마마루》에 날리였다.

골수에 박힐대로 박힌 조선민족말살정책에 혈안이 되여 미쳐날뛰던 《황군》의 잔당들은 수천명 조선사람들을 수장해버릴 사상 류례없는 음모를 꾸미면서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드디여 회신을 받아든 그는 미칠듯이 기뻤다.

《대일본제국》은 영영 패망한것이 아니다. 사무라이의 넋은 이런 불리한 시국에 꽃필수록 그 값이 비싼것이다.…

회신에 너무도 감격한 그는 저도모르게 《천황페하 만세!》를 3창했다. 불안에 떨던 그의 눈은 야수와도 같은 빛을 뿜고있었다.

식인종같은 흥분에 휩싸인 그는 벌써 리성을 잃었다.

갑판으로 달려나간 그는 이번에는 권총이 아니라 메가폰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마치 전투명령이라도 하달하듯 춤추고 노래부르는 조선징용자들에게 미친듯이 웨쳐댔다.

《드디여 〈우끼시마마루〉는 높은 인도주의를 발휘하여 당신들, 해방된 조선사람들의 소원대로 부산항까지 항행할것이다. 이제 이 배로 귀국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고향에 갈 기회가 더는 없다. 즉 영원히 귀국할수 없다는 소리다.》

그의 광기어린 력설은 마땅한 은을 냈다.

《우끼시마마루》의 항행을 일각천추로 고대하고있던 수천명 조선사람들은 그가 징용자이건 아낙이건 아이이건 가림없이 때를 놓칠세라 남먼저 배에 오르려고 헤덤볐다.

4730톤급기관선에 립추의 여지도 없이 오르는 조선사람들을 마치 그물에 걸려 끌려오는 고기떼를 바라보듯 내려다보던 오까모도는 10년 묵은 체증이 떨어진것만큼이나 가슴이 후련하였다.

(잘은 올라온다. 한사람도 남지 않고 어서 올라라, 어서―)

그는 마음속으로 야수와도 같은 쾌감을 마음껏 맛보며 며칠만에 비로소 담배를 꼬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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