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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의 무용은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우리 민족무용예술의 기초를 튼튼히 닦아놓았을뿐아니라 무용후비육성에서도 많은 경험을 남긴 최승희는 세계적인 무용가로서 널리 이름을 떨치다가 1969년 8월에 우리곁을 떠나갔다.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가 세상을 떠난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무용예술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마다 최승희를 감회깊이 회고하군 하시였다.

그리고 그의 생을 더 아름답게 빛내주시려고 여러모로 마음을 써오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최승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왜색왜풍의 탁류속에서 시들어가는 민족성을 고수하고 민족적인것을 발전시키려는 강렬한 모대김이 문학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분수처럼 솟구쳐오르던 때였다.

바로 이 시기에 최승희는 조선의 민족무용을 현대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민간무용, 승무, 무당춤, 궁중무용, 기생무 등의 무용들을 깊이 파고들어 거기에서 민족적정서가 강하고 우아한 춤가락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여 현대조선민족무용발전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기여하였다.》

일제통치의 암담한 그 세월 우리의 민족무용을 고수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몸부림친 그의 생을 그리도 값높이 추억해주시며 높이 평가해주신 어버이수령님!

우리의 무용예술인들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최승희와 같은 무용인재가 되기 위하여 그가 창작하고 직접 형상한 무용작품들을 깊이 연구하고 그 수법과 기교를 련마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갔다.

춤체란 춤의 가락과 률동, 그 련결과 결합 등 형상의 매 요소에서 표현되는 무용가의 예술적개성의 총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춤체에 의하여 춤의 형상이 창조된다. 때문에 같은 춤을 같은 기법으로 춘다고 하여도 그 양상은 무용가마다 다르게 안겨온다.

춤체는 무용예술의 민족적특성을 나타내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된다. 고개, 시선, 몸가짐새를 어떻게 잡는가, 장단을 어떻게 살리고 률동적인 흐름새를 어떻게 타는가에 따라 민족적특성을 진하게 나타내는 춤체와 그렇지 못한 춤체로 갈라진다. 때문에 어떤 춤체를 기본으로 살려나가는가에 따라 우리 춤의 민족적특성을 뚜렷하게 나타낼수도 있고 나타내지 못할수도 있는것이다.

최승희춤체의 특징은 우선 민족성과 현대성이 잘 결합된 춤체로서 우리 인민의 감정과 정서, 취미에 맞으며 안착된 속도와 유순한 흐름을 가지고 서정적으로 추면서도 그속에 기백과 힘이 있어 춤이 아주 편안한것이다. 더구나 우리 장단의 고유한 멋을 타고 춤가락을 살린것으로서 흥이 나고 건드러진 맛이 있는것이다.

최승희춤체의 특징은 또한 인체의 생리적조건을 고려하면서도 미학적으로 다듬어졌으므로 그 형상이 매우 자연스러운것이며 모든 놀림과 자세에서 감정과 정서가 흘러넘치게 내적 및 외적아름다움이 통일되여있는것이다.

그의 춤체는 하나를 가지고 열을 보여주는 원칙에서 형상을 창조할수 있게 하며 고요한 속에서 격렬함을, 격렬함속에서도 고요함을 느끼게 하는 아주 고상하고 아름다운 춤체이다.

위대한 수령, 위대한 령도자의 품속에서 최승희는 자기의 춤체와 더불어 영원히 살수 있는 최상최대의 특전을 누릴수 있게 되였다.

그는 오늘도 수많은 새 세대들의 숨결속에 살아 무대우에서 계속 향기를 뿜고있다.

《부채춤》, 민속무용조곡 《계절의 노래》에 흘러넘치는 최승희의 춤가락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다.

최승희가 집필한 도서들은 오늘 민족무용연구와 창작에서 의의있는 교과서, 참고서들로 리용되고있다.

무용예술부문에서 출판된 《무용작품분석》, 《무용작품구성형식》, 《조선무용사》(하)를 비롯한 여러 교과서들과 참고서들에 구체적으로 소개되였다.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민족무용건설에 남긴 뚜렷한 자취는 이처럼 고유한 유산으로 남아 전해지고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최승희의 공로를 귀중히 여기시고 그것을 영원히 빛내주시기 위하여 돌리신 관심과 배려는 참으로 각별하였다.

2003년 2월 12일 최승희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는 의식이 뜻깊게 진행되였다.

최승희가 애국자의 값높은 영예를 빛내이며 영생의 언덕에 안치될 때 사람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우리 수령님이 고마워서, 우리 장군님이 고마워서 무용예술인들은 오래전에 떠나간 최승희를 마음속으로 부둥켜안고 그의 몫까지 합쳐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또 올리였다.

지난 세월 외세의 구두발에 짓밟힌 남녘땅에서 갈길 몰라 헤매이는 그를 이끌어 인생의 보람찬 길에 내세워주시고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끝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그가 빛나게 살도록 보살펴주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은혜로운 품을 두고 누구인들 감격에 목메이지 않을수 있으랴.

하기에 조국인민들은 더 말할것 없고 조국을 떠나 먼곳에 있는 동포들도 최승희에 대한 이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두고 격찬을 금치 못하였다.

《조선신보》 2003년 3월 28일부는 최승희의 유해가 애국렬사릉에 안치된 소식을 전하면서 그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으로부터 받아안은 각별한 사랑과 은정에 대하여, 바로 그 은덕속에 누리게 된 그의 영원한 삶에 대하여 격조높이 이야기하였다.

무용이라는 배에 돛을 달고 살길을 찾아, 인간다운 삶을 찾아 헤매였던 최승희!

세계의 넓은 판도에서 민족의 넋을 휘뿌리며 애처로운 무용화폭을 펼쳐보였건만 진정한 삶의 품이 없어 식민지민족의 설음속에 울던 최승희!

그가 만약 어버이수령님의 품을 찾아 북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 운명의 선택을 하지 못했더라면 무용예술의 아름다움과 함께 영생하는 삶을 생각이나 할수 있었으랴!

운명의 옳바른 선택을 하였기에 그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먼먼 래일에도 조선민족무용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

그렇다! 최승희의 무용은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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