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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4 회


64. 리여송과 서산대사


날이 밝았다. 아직도 오는 눈은 한밤동안의 격전장을 발자취도 없이 내려덮었다. 그러나 목없는 적의 시체들과 떨어져나간 적의 수급과 팔들은 흐르는 피로써 눈을 녹이면서 모란봉일대에 널려있었다.

문봉과 무봉에는 눈으로써 묻고 눈으로써 봉분까지도 한 우리 희생자들의 흰 무덤들이 있었다. 그 무덤들은 상한 전우들의 선혈로써 붉게 물든것이 많았다. 그 어느 한 무덤앞에서는 주복이가 상한 팔죽지에서 흐르는 피가 손등을 적시는 손으로 눈을 그러모아 봉분을 높이면서 간간이 눈물을 씻고있었다. 더 참을래야 참을수 없이 북받치는 설음에 《망할 자식! 제입으루 〈이제 우리 힘으루 이 란리를 치르기만 하면 우리 백성의 처지가 달라질거라구, 이전 백성이 아닐거라구.〉하구두 란리를 치르다말구 죽다니! 망할 자식! 못난 자식! 이 돌중놈아! 이 자식아! 법근아!》

울음 반 넉두리로 욕설을 퍼붓듯 하는 주복이는 애들이 물쌈을 하듯이 무덤에다 두손으로 눈을 거퍼 끼얹으며 목이 메여 울었다. 그뒤에서 합장하고 서있는 서산대사도 울었다.


도원수 김명원과 방어사 김응서가 명군제독 리여송과 그의 참모장 리응시를 인도해서 모란봉에 올랐다. 이때 리여송과 서산대사간에 주고받은 말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옛날 우리 명나라에도 요대사라는 중이 있어 귀 승과 같이 나라일을 잘 도모했으므로 명나라에서는 그의 공훈과 충렬에 힘입은바 많았기때문에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이 빛나거니와 오늘 귀 승이 나라일을 도모함이 또한 그와 같소이다.》

리여송의 이같은 찬사에 합장으로써 답례한 서산대사는 《심유경이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오이까?》 하고 물었다.

《명나라 공주와 왜왕과의 혼사라든가 우리 조선국토를 왜적에게 베여준다든가 하는 두가지의 일은 비록 꼴 비고 소 멕이는 목동들일지라도 차마 입에 담아 말하지 못할 일이거늘 황차 조정의 신하노릇 하는자로서야 어찌 그런 사리를 몰라서 될 일이겠소.》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듣기만도 분하고 괘씸히 생각해온 서산은 이 기회에 그 실정들을 물어보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이에 대하여 리여송은 이렇게 대답했다.

《귀 승의 말씀이 지당하오. 심가자는 그 사람됨이 한낱 소인일따름이요.》

합장하고 머리를 숙였다가 다시 드는 로승의 얼굴에는 마음에 조그만 티도 없는 어린아이같은 맑은 웃음이 떠올랐다. 그 한가지만으로도 얼마나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인가를 알수 있는 웃음이였다. 그런것을 알아볼만 한 안목이 있었던 리여송은 이렇다 말은 안했으나 숙연한 얼굴로 깊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리여송은 참모장 리응시가 가져온 지도를 펴들었다. 그것은 안주에서 류성룡이가 제공한 평양지도였다. 그 지도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때 류성룡은 평양으로 진군중인 명나라군을 안주에서 영접하고 리여송을 청천강가에 있는 백상루로 인도했다. 주객이 좌정하자 리여송은 아무런 말도 없이 류성룡앞에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류성룡은 조금도 주저하는 빛이 없이 미리 준비해두었던 평양지도를 소매속에서 꺼내주었다. 리여송은 과연 류성룡이 현명함을 절절히 탄복했다는 이야기다.

평양성의 지형을 지도와 대조해본 리여송은 자기 포병의 진지로 쓰기 위해서 모란봉을 내달라고 서산대사에게 청했다. 서산대사 역시 딴 의견이 있을리 없었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은 함구문을 공격하는 우리 관군과 합세하기 위해서 승병부대를 앞세우고 산을 내렸다.

이날 계사년 정월 초여드레날 아침부터 반년나마나 일본사무라이의 강점하에 있는 평양성을 회복한 력사적인 공격전이 결행되였다.

이른아침부터 평양성내를 손금보듯 내려다볼수 있는 모란봉에서 아군의 포격이 시작되였다. 이날의 총공격전의 개시였다.

이날따라 풍세는 더욱 맹렬하고 추위는 혹독했다.

포성은 하늘을 울리고 땅을 흔들었다. 맹렬한 풍세를 따라 불바다를 이룬 성내에서는 솟구치는 붉은 화염과 몽몽히 퍼지는 검은 연기로써 하늘을 덮어 일광은 빛을 잃었다.

눈덮인 보통벌과 평천벌의 련합군은 은빛으로 빛나는 눈보라를 일으키며 천군만마를 몰아 파도같은 기세로써 평양성을 에워싸고 달려들었다. 성첩에 나붙은 일본군은 조총과 활과 창검으로써 저항했다. 우박같이 퍼붓는 적의 총탄과 화살을 무릅쓰고 우리 공격군은 성벽으로 올라붙었다. 성첩우에서는 창검이 마주치고 몸뚱이와 몸뚱이가 부딪치는 격투가 일어났다. 쏟아지는 피가 성벽을 씻어흘렀다.

마침내 우리 관군은 함구문을 격파하고 명군은 칠성문을 깨뜨리는데 성공했다. 련합군은 남쪽과 북쪽으로 일시에 성내로 돌입했다.

적장 소서행장은 련광정앞에 굴설한 엄페호속에 들어앉아서 전투를 지휘하고있었다.

성내로 진격한 우리 공격군은 성내에서 또 성에 부딪쳤다. 련광정을 중심으로 하여 만수대, 장대재, 가마구비재 등을 련결한 엄페호속에 들어있는 적들은 벌집같이 뚫린 총구멍으로 맹사격을 했다. 날은 이미 어두웠다. 땅속으로 련결된 적의 진지는 마치 개미둥지같아서 갈피를 찾기조차 어려웠다. 우리 공격군은 쇠북을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했던것이다.

이날 밤 소서행장의 군대는 대동문과 장경문을 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사기저상으로써 이미 정신적패잔병이던 일본군은 이제는 완전한 패잔병이였다. 성가퀴에서 싸우다 죽은자와 불에 타서 죽은자를 합해서 1만여명의 시체와 군마 2천 9백여필과 수많은 무기를 버리고 평양성에서 쫓겨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기록들에 의하면 어둠을 타서 몰래 대동문으로 빠져나가 얼음우로 대동강을 건너 한성길로 들어선 소서행장의 패잔군은 장수, 군졸 할것없이 다리를 절며 신음소리를 내며 가다가 혹시 인가를 만나는 때는 제 입을 가리키며 밥을 한술 달라고 구걸했다는것이다. 남의 나라를 정복하려고 한때는 기세당당히 쳐들어왔던 사무라이의 《위신》과 《체면》 같은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였다. 죽을것까지도 돌보지 않았다. 요행 한술 밥을 얻어먹을수 있으면 다행한 일이고 그렇지 못하면 기진해서라도 어차피 죽을 처지라 구걸해보다가 맞아죽더라도 여한이 없이 된 형편이였다.

《우리 일본군은 앞으로 나갈줄만 알고 한걸음도 뒤로 물러설줄은 모른다.》고 소리쳤던 왜군선봉장 소서행장은 불과 반년만인 오늘에 와서는 밥 한술에도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왜적이 저 아무런대도 부산서 부산까지밖에는 더 못 간다.》

이런 뜻의 동요가 있었다. 물론 후세사람이 지어낸것이겠지만 임진란을 미리 예언한 동요가 말하는바와 같이 선봉장 소서행장의 군대는 반년나마나 평양성을 강점하고있으면서도 사실 부산고개이북으로는 더 진출하지 못하고 쫓겨갈밖에 없었던것이다.

소서행장군의 평양에서의 퇴각은 우리 조국을 침략해왔던 일본군의 전면적퇴각의 시초였다. 소서행장군이 평양에서 쫓겨가자 가등청정의 군대도 함경도에서 쫓겨나게 되였다. 그들은 일시 한성에 모였다. 그러나 이해 4월에는 한성에서도 쫓겨나지 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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