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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3 회


63. 후원군이 왔다


경사년 정월 초닷새날이였다. 명나라 후원군이 순안에 당도했다. 이에 조, 명련합군이 대병력으로써 평양성내의 일본군을 포위하게 되였다.

우리 관군은 평양성 남쪽 함구문밖에 결진하고 명군은 보통문과 칠성문을 중심으로 평양성의 서북쪽을 포위하는 태세로써 대병력을 보통벌에 집결했다.

성내의 왜놈들은 을밀대에서부터 칠성문, 보통문을 거쳐 함구문에 이르는 성가퀴에 나붙었다. 붉은기, 흰기들을 늘여세운 성가퀴에 빈틈없이 내대고있는 적의 창검과 조총으로써 평양성은 마치도 큰 고슴도치같은 광경을 이루었다.

이날 밤에 서산대사는 법근이와 돈정신을 시켜서 얼마전부터 동대원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의병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금 명나라 후원군이 나와서 우리 관군과 합세하여 평양성을 포위했으므로 오래지 않아서 결전이 있으리라는것과 그러니까 소서행장은 필연코 남쪽에 있는 일본군과 어떤 내통을 할것이라는 내용이였다. 서산은 편지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에게 마름쇠를 주어보냈다. 밤중에 얼음을 타고 흥복앞에서 대동강을 건너간 법근이와 돈정신은 그곳 의병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한성길목을 지켰다.

소서행장이 황해도땅에 머물러 진을 치고있는 자기 부장인 오오도모 요시도모에게 평양성이 위급하게 됨을 말하고 증원군을 이끌고 곧 평양으로 달려오라는 급사를 띄운것은 이보다 바로 좀전의 일이였다. 그러나 증원군은 오지 않았다. 소서행장의 기별로써 형세가 이미 기울었다고 본 오오도모는 자기 수하의 군사를 일으켜 평양으로 갈 대신에 한성으로 달아나고말았던것이다.

엿새날 아침에 명군의 한 부대가 모란봉을 공격하는것으로써 일본침략군에 대한 공격전이 시작되였다. 평양성중의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란봉을 점령하는것이 유리했기때문이다. 역시 모란봉을 중요시하는 놈들은 2천에 가까운 병력으로써 지켰다. 일설에는 소서행장자신이 이날 모란봉방어전을 지휘했다고도 한다.

모란봉공방전은 날이 저물도록 결말이 안 났다. 그 중허리로 돌아가며 보통벌일대를 내려다볼수 있게 굴설한 참호안에서 튼튼한 흉장에 의지하고 방어하는 놈들의 진지는 유리했고 또 그 화력도 만만치 않았다.

명군은 보통벌에서 포화로 엄호해가며 돌격을 거듭했으나 성공치 못했다. 나중에는 강철로 만든 방패들을 버리고 물러섰다. 그것이 탐난 왜군은 산밑으로 쓸어내려왔다. 다시 돌아선 명군은 그들을 섬멸했다. 그러나 모란봉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날이 저물었으므로 군사를 거두었다.

이튿날은 조, 명련합군이 평양성을 공격했다. 우리 관군은 함구문을 치고 명군은 보통문과 칠성문을 공격했다. 우선 성안으로 화전을 날렸다. 끝에 불이 달린 화살이 한꺼번에 수천수만대씩 날아들어간 성내의 적진에서는 곧 화재가 일었다. 뒤이어 포격이 시작되였다. 평양성을 가득히 뒤덮은 연기중에 여기저기서 일어서는 화염은 한낮의 해를 그슬렸다. 연연 십여리에 걸쳐 놈들이 조총과 활을 란사하고 돌까지도 굴러내리는 성가퀴들에서는 백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큰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날이 또 저물었다. 이날도 승부를 결하지 못하고 쇠북을 울려서 군사를 거두었다.

여기서 이야기는 좀 선후하거니와 이날 《올빼미새벽》에 법근이와 돈정신은 동대원의 의병 몇사람과 함께 왜놈의 큰말 두필과 군졸 네명을 붙들어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영제교근처에서 그곳 의병들과 함께 한성길목을 지키다가 어제 밤 3경에 나타난 적의 소부대를 요격했던것이다. 눈빛으로 겨우 길을 가려볼수 있는 한밤중이였다. 짐실은 말 십여필을 끌고 가는 20여명의 적이 평양쪽으로부터 나타났다. 이편에서는 길가의 눈을 파고 잠복했다. 앞으로 지나가는 적들이 저편에 눈을 다지고 마름쇠를 깔아놓은 길목으로 들어서게 된 때를 기다려서 일시에 함성을 지르며 내달아 배후로부터 엄습했다. 황겁한 적들은 날카로운 마름쇠를 밟고 쓰러지는자가 많았다. 전투는 오래지 않았다. 적은 태반이 살상되고 나머지는 어둠을 타서 달아났다.

붙들어온 두필 큰말의 짐짝들은 모두가 왜놈장수들의 행리와 귀중품들이였다. 그중에는 소서행장의것이 분명한 문서까지도 들어있었다. 그것은 큰 소득이였다. 서산은 그 짐짝들을 다시 봉했다. 그리고는 붙들어온 군졸중의 다소 상하기는 했으나 능히 걸을수 있는 두놈에게 내주었다. 날이 채 밝기 전에 우리 사람 몇이는 그 두놈이 짐을 실은 말을 몰고 저희 진중으로 돌아가도록 모란봉앞에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이날 밤 퍼붓듯 쏟아지는 눈에 이레날 쪼각달은 빛을 내보지도 못하고 지고말았다. 하늘에서 땅에 련하여 짙은 회색장막을 내려드리우는듯 한 눈! 그리고 삭풍은 노호했다.

평양성내의 왜군은 이러한 야음을 타서 기습전을 감행했다. 그 1지대는 대동문으로 빠져나와서 얼음을 타고 대동강으로 내려와 함구문밖의 우리 관군을 습격하고 보통문으로 나온 2지대는 명군을 습격했다. 그러나 다 실패였다. 적의 기습을 알자 이편에서는 등불, 우등불을 다 꺼버리고 일시에 화전을 날렸다. 반공에 나뜬 수천의 화전은 밤하늘을 대낮같이 밝히면서 적의 머리우로 내려꽂혔다. 불빛속에 드러난 일본군은 이편의 반돌격을 지탱치 못하고 다시 성안으로 쫓겨들어갈밖에 없었던것이다.

이보다 좀전에 잡약산을 떠나서 모란봉으로 향해가는 3천여명의 사람들이 보통벌 한가운데 나타났다. 그들의 흰옷으로써 2천 5백~2천 6백명의 승군과 4백~5백명의 농군은 땅에 덮인 눈과 노호하는 바람세를 따라 십리벌에 파도같이 일어서는 눈보라와 분간해보기 어려웠다.

대렬선두에는 고충경(그는 지난 넉달동안에 상처가 낫고 몸도 추섰다.)이하 수십명의 궁수들과 함께 사명당이 앞섰다. 맨끝의 대렬에는 서산대사가 따랐다. 그는 륙환장을 눈속에 소리없이 옮겨놓으며 나갔다.

지금 서산의 승병은 모란봉의 적을 치러 나가는 길이였다. 고충경과 방어사 김응서와의 련락으로써 이 장한 기별을 받은 우리 관군에서는 군사를 나누어 승병을 원조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서산을 비롯하여 잡약산사람들은 응하지 않았다. 지금 명군과 손을 잡아 평양성의 적을 포위하고있는 우리 군사의 힘을 덜어낼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또 이편의 힘만으로도 승산이 있었다. 더우기 지난번 보통벌추수때에 밤중에 싸운 경험은 그들로 하여금 만만한 자신을 가지게 했던것이다.

쏟아지는 눈발을 사이에 두고 모란봉의 륜곽이 어렴풋이 드러나는데서 대렬은 횡대로 변하여 좌우로 퍼졌다.

을밀대근처의 송림으로 연소되기 시작한 불이 충천한 화염으로 일어설 때마다 두리뭉실하게 보이던 모란봉은 날카로운 선으로 두쪽에 갈라진듯 명암이 달라지군 했다.

동북 량면으로 모란봉을 포위한 우리 사람들은 일체 소리를 안 내기로 했다. 함성은 물론 할수 있는대로 발소리도 안 내도록 했다. 이 나무, 저 바위에 붙어서 형적을 숨겨가며 접근해서 적의 참호로 뛰여들기만 위주였다. 그중의 한 부대만은 적의 진지 한토막을 돌파해서 모란봉의 상봉인 문봉과 무봉을 먼저 점령하기로 했다. 그 5백~6백명의 한 부대는 일면 양동작전(로출된 작전)을 하는것이므로 처음부터 적의 집중공격의 목표가 될것이였다. 서산은 그 부대를 따랐다. 선두에는 전주복이, 법근이, 돈정신이 있었다.

보통벌에서 노호하는 바람소리는 우리 사람들의 함성을 대신해주었다. 몰아오는 천군만마의 기세로 십리벌의 눈을 휩쓸어오는 충천한 눈보라는 적들의 시야를 거슬러 엄습해서 육박해가는 우리의 형적을 감싸주었다. 무릎아래를 가든가든히 묶고 흰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질끈 동인 우리 사람들은 짤막한 검과 철퇴들을 들고 모란봉을 에워싸고 접어들었다. 산기슭에서부터 작은 충돌이 시작되였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적의 초소들이다. 혹은 《고마인이…》 하고 부르짖다가 혹은 설렁 줄을 당기고 경적을 불다가 쓰러지거나 달아나는 적의 전초선을 넘어서 적진앞으로 접근했다. 적의 진지는 금시 소란해졌다.

《고마인이다!》

《고마인의 야습이다!》

세찬 바람에 마디마디 찢기여 날아버리는 고함과 울부짖음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참호속에서 흉장에 붙어선 적들은 총구멍으로 내다보며 불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의 형체를 발견한 일본군은 극히 적었다. 저앞에 서있는것을 사격하고보면 눈덮인 애솔이였고 혹은 저편의 엎드린것을 겨눌 때에는 어느덧 눈이 날아버린 바위였다. 눈보라로써 눈앞은 현혹할만치 뒤바뀌고 변했다. 그런중에도 역시 《고마인-》, 《고마인이다!》 하는 고함소리는 연해 났다.

넉달전 보통벌추수때에 한밤중 싸움에서 승리한 우리 사람이였고 참패한 왜적이였다. 불안에 휩싸인 적의 진지의 어느 한토막에서였다. 헛불질을 하다말고 다시금 목표를 찾노라 내다보던 총구멍으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돌도 날아들었다. 바로 지척인듯 가까운데서 날아드는 화살과 돌은 정확했다. 적의 조총수들은 저희 참호안에서 쓰러졌다. 어느새 흉장밖에서 총구멍으로 들어온 손들이 조총을 나꿔채기도 했다. 그러자 또 머리우에서 눈사태가 지쳐내렸다.

《고마인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고마인들이 벌써 흉장을 넘어 뛰여들었다.

적의 진지 한토막에 쐐기를 쳤다. 뛰여든 법근이와 십여명의 젊은 승군은 량옆으로 갈라서 단병전을 시작했다. 그뒤를 이어 흉장을 넘어 참호의 저편쪽으로 건너선 전주복이는 긴 철퇴를 휘둘러 나무들을 분질러서 참호우에 쓰러뜨렸다. 돈정신은 이쪽저쪽으로 넘나들면서 쓰러진 나무들을 참호안에 우겨넣었다. 적의 량쪽련락을 차단했다. 적진의 한토막을 끊었다. 그리고 이편에서 합세하여 진격할 길이 열렸다. 적들은 이쪽으로 총부리를 돌렸다.

서산대사의 돌격부대는 적의 집중사격을 받으면서 큰 기발을 앞세우고 문봉, 무봉을 향하여 내달렸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적진으로 달려든 우리 사람들은 전면적으로 흉장을 넘었다. 진지전이 시작되였다. 적들은 저희 참호안에서 단병전을 해야 했다. 이제는 조총이 소용없었다. 좁은 참호속에서는 긴칼, 긴 창까지도 소용없었다.

무봉 바로 밑의 적장의 군막앞에서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주위가 얼마 안되는 뾰족한 산봉우리를 겹겹이 에워싸고 좁혀드는 우리 사람중의 한패는 먼저 적장의 군막에다 불을 지르기도 했다.

군막은 빈것이였다. 적장은 벌써부터 밖에 나와서 자기 부하를 지휘하고있었다. 우리 사람들은 재와 함께 짚꾸레미에 싸가지고 온 불씨의 불을 일궈야 했다. 단병전이 벌어진 한가운데서 그들은 다음다음으로 희생되면서도 끝끝내 군막에 불을 지르기에 성공했다. 마침내 불길이 일어섰다. 충천한 화광이 올려비치우는 무봉꼭대기에 《조선승병장 서산대사》의 큰 기발이 일어섰다. 몇사람이 기대를 붙들었다. 이제는 그 기발을 중심으로 육탄전이 벌어졌다. 그 한가운데 저자신 불길속에 휩싸인듯 화광에 드러난 기발앞에 나선 서산로승은 붉은 가사를 흩날리며 그 역시 화염의 한가닥같이 빛나는 륙환장을 짚고있었다. 적들은 그앞으로 육박했다. 짧은 칼, 짧은 철퇴를 가진 우리 사람들은 개개의 적을 붙잡듯이 달려들었다. 뒤섞이고 한데 엉클어진 혼전란투였다. 염염히 일어섰다 껌벅 씨그러졌다 하는 화광중에 비껴 쏟아지는 눈발속에서 오직 옷의 흰빛, 검은빛으로 우리와 적을 가려볼수 있을뿐이였다. 번득이는 창검의 섬광과 부딪치는 병장기들의 날카로운 소리뿐 함성을 지를 여지도 없이 긴박한 순간, 절박한 찰나의 련속이였다. 뿜어나는 피는 방울로 흩어져 눈보라와 함께 뿌리고 비명과 신음소리는 바람결에 사라졌다. 몸으로써 부딪쳐싸우던 우리 사람중에는 적을 끌어잡고 낭떠러지로 굴러서 아득한 절벽밑의 대동강으로 떨어져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혹은 눈을 붉게 물들이면서 바로 서산로승앞에서 쓰러지는이도 있었다. 싸움이 더욱 격렬해진 때 서산은 여섯개 고리가 화광중에 빛나는 륙환장을 높이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웨쳤다.

《을지문덕장군이시여-》

《막리지 연개소문이시여-》

《강감찬장군이시여-》

《지금 여기서 조국을 위해서 피를 흘리는 당신들의 후손들을 굽어보시라! 적앞에 굴한적이 없는 선조들의 피와 그 충성을 계승한 이 의로운 당신들의 후손들을 찬양하시라! 어여삐 여기시라! 칭찬하시라!》

다시금 일어서는 화광에 그 흰 눈섭밑의 두눈은 화염을 뿜는듯 빛났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이 평양을 지켜 우리에게 끼쳐주신 을지문덕장군이 굽어보신다.》

그는 또 웨쳤다.

《옛날 왜구를 진멸하신 최무선장군의 혼령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

지금 우리는 저 림원평에서 우리 평양을 지켜싸운 선조들의 백골이 묻힌 이 땅에서 싸우는것이다.》

소리높이 웨치는 서산의 음성은 노호하는 바람소리까지도 억누르는듯 했다. 우리 사람들의 환호와 함성을 불러일으켰다.

《을지문덕장군-》

《강감찬장군-》

여기저기서 웨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마침내는 저마다 우리의 자랑인 선조들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 사람들의 기세는 한층 더 높아졌다.

《왜적들아! 우리 최무선장군의 후손의 칼을 또 받아라!》

웨치며 적중으로 뛰여드는 그들의 칼은 더욱 날카롭고 철퇴는 더욱 억셌다. 이때 긴칼을 휘두르며 날뛰던 적장수는 주복이의 철퇴에 투구를 쓴채 골통이 으스러져서 꺼꾸러졌다. 법근이는 벌써 몇번째나 앞을 에워싸는 적들을 휘몰아치였다. 또 달려드는 4~5명의 적을 막아 칼을 휘두르던 그의 팔이 끊어졌다. 칼은 눈속에 내려꽂히고 떨어진 팔은 눈속에 잠겼다. 한두걸음 비틀거렸으나 곧 몸을 가눈 법근이는 왼손으로 다시 칼을 잡았다. 끊기운 어깨에서 쏟아지는 피로써 그의 반신은 이미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기가 꺾인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검술은 더욱 신비로워진듯도 했다. 앞을 막는 적들 한가운데로 뛰여든 그는 크게 웨쳤다.

《주복아, 이 승검술을 좀 봐라!》

그의 고함소리와 함께 적의 머리 하나가 날아와 불붙는 군막앞에 굴렀다. 그러자 법근이는 그 앙천대소식의 웃음을 크게 웃었다.

《오냐- 본다, 법근아!》

이번에도 역시 무슨 부드러운 가루를 넣은 자루를 짓치는듯 퍽퍽 소리가 나는 저편 어둠속에서 주복이의 대답이 들렸다. 큰소리로 웃던 법근이가 《돈정신이, 너두 좀 봐라!》 하고 또 이렇게 웨치는 소리와 함께 적의 머리가 또 하나 떨어졌다.

《돈비신이 여기 있다!》

이러한 대답과 함께 피흐르는 검을 든 돈정신이가 불빛안으로 뛰여들었다. 그러나 법근이와 엇갈렸다. 쫓기는 적들을 짓쳐나가는 법근이의 뒤모양은 금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몇순간후였다.

《우리 평양아!》

웨치는 법근이의 소리가 들린다.

《영세불망 잘 있거라!》

련이어 또 이러한 그의 음성이 저편 층암절벽 낭떠러지아래서 한마디 한마디 멀어가는 소리로 들었다.

이때였다. 저편 어둠속에서 날아오기 시작한 화살이 아직도 칼질, 창질을 하고있는 적들을 한놈씩 찍어내듯이 쓰러뜨렸다. 그러자 산중복에서 우리 사람들의 함성이 일어나며 쫓기는 적들을 급히 추격하라는 사명당의 우렁찬 호령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상봉에 기를 세운것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무봉에서 불이 일고 또 그 화광중에 큰 기발이 서있는것을 보게 된 중복의 놈들은 진지를 버리고 길이 트인 성안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또 지난밤에 붙들어온 일본군졸과 말들을 돌려보낸것도 전략적인 효과가 있었다. 소서행장이하 두두룩한 장수들은 벌써부터 저희 귀중품을 뒤문으로 빼돌리고있다는 사실이 병졸들에게 알려졌던것이다. 그것은 소서행장부터 이 평양성을 끝까지 내놓지 않을 의사도, 자신도 없다는것을 말하는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란봉을 애써 지키잘것은 무엇인가. 이래저래 싸움의욕을 잃게 된 군졸들이였다. 사명당의 지휘하에 중복에서 싸운 우리 사람들은 극히 적은 희생으로써 적의 진지를 빼앗을수 있었다. 함성과 함께 달려오는 우리 사람들의 기세에 문봉, 무봉에서 싸우던 적들도 달아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함구문과 보통문밖의 전투도 이와 거의 한무렵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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