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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2 회


62. 서관 대로상에서


보통벌은 한빛으로 호호히 흰눈속에 잠겼다. 지금도 눈이 온다. 목화송이같이 큰 눈개비가 지상의 모든것을 덮어내려쌓인다. 동지(11월 15일)를 4~5일 앞두고 한창 추운 겨울바람은 노호한다. 십리어간의 눈보라를 격해서 바라보이는 평양성의 륜곽은 몽롱했다.

강복산 서쪽고개를 넘는 큰길에서 농군과 승군 7~8명이 보통벌을 내려다보고있었다. 거의 한낮이 다된 때였다.

《이제야 뭐이 나오나부네.》

《뭐이 보이나?》

《보통문밖에 말탄것들이 거뭇거뭇 보이지 않아?》

《그렇군. 한 대여섯 되나부지?》

《그래, 분명히 그 사람들이기나 한지 모르갔네.》

《왜놈들이문야 이 대낮에 저렇게만 나오갔나.》

이들이 벌써부터 기다리고있는것은 심유경의 일행이였다. 지난 엿새날 이곳에 다시 나타난 심유경일행이 성내의 일본군진중으로 들어간지 4~5일째다. 8월 하순에 와서 50일 기한하고 돌아갔던 그는 엊그제야 비로소 다시 나타났던것이다.

기록들에 의하면 벌써 기일이 많이 지났어도 이렇다 소식이 없으므로 이제는 더 기다릴것 없이 명나라로 쳐들어간다고 으르대면서 그러나 역시 으르대기만 하던 소서행장은 다시 온 심유경을 반가이 맞아들였던것이다. 그는 현소를 시켜 《부상식극복중화》라 운운하는 헌시를 짓게까지 했다. 《일본은 병장기를 뉘고 중화에 복종한다.》는 뜻으로서 명나라에 아첨해보인것이다.

이때부터 소서행장은 례의 《강화조건》이라는것을 곳곳에 내붙이기 시작했던것이다. 심유경이와 타협이 됐다는 그 조건을 보는 우리 사람들은 이럴수 있는 일인가? 분개했다. 설사 명나라사람 심유경은 그렇게 생각할는지 모르나 우리 조선사람으로서는 참을수 없는 일이였다. (물론 명나라조정에서도 그렇지 않았다. 명나라에서는 이미 리여송을 제독으로 하여 후원군을 일으킨 때였다.)

4~5명의 종자를 거느린 심유경은 지금 보통벌을 거쳐 서관 대로인 고개길로 온다. 앞섰던 심유경의 말이 고개마루에서 먼저 걸음을 멈추지 않을수 없었다. 앞을 막아선 우리 사람들을 둘러보는 심유경은 자못 불쾌한 낯빛이였다. 그는 겉옷자락 한쪽을 걷어젖히고 허리에 한손을 세웠다. 박속같이 흰 모피로 안받친 겉옷밑에는 큰 무늬들이 번들거리는 호화로운 비단옷이 드러났다. 자기가 얼마만한 귀인인가를 보라는듯도 했다. 허리에 세웠던 손으로 이번에는 썩썩 물러서라는 손짓을 했다. 눈우에서는 그리 희여보이지도 않는 무명옷을 입은 우리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심유경의 뒤에서 《쩌-》 소리와 함께 말을 채쳐 그의 옆으로 나서는자가 있었다. 말궁둥이를 덮다싶이 했던 그의 겉옷 뒤자락이 들렸다. 속에 찬 칼자루를 눌러쥔 모양이다. 이때 이쪽 언덕에 좀 떨어져 서있던 사명당이 길로 내려왔다. 허옇게 눈이 앉은 수염오리에는 구슬같은 물방울들이 길게 흘러내리기도 했다. 깊은 눈길에 소리없이 옮겨짚던 륙환장끝으로 그는 숫눈우에 글자를 썼다.

《우리는 귀하를 심유경대인으로 아는데 과연 그런가?》

이런 뜻이였다. 말우에 오연히 앉은 심유경은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자 둘러선 우리 사람중의 하나가 말아쥐고있던 큰 종이를 심유경앞에 폈다. 옆의 사람들은 눈을 빚어서 길에 펴놓은 종이의 네귀를 눌렀다. 소서행장의 글발이였다. 마상에서 이윽히 굽어보던 심유경의 얼굴에는 분명히 당황한 빛이 떠올랐다.

사명당은 또 썼다.

《귀하가 그 진중에 류하고있는 동안 왜적이 이같은 언어도단인 글발에다 귀하의 이름을 꺼들수 있었다는것을 우리는 귀하를 위해서 극히 민망히 생각하는바이다.》

눈우에 뚜렷뚜렷이 나타나는 글자들을 따라보던 심유경의 얼굴에는 사실 민망한 빛이 떠올랐다. 우리 사람들은 어떤 대답이 있기를 기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심유경의 눈은 그 누구도 정시(똑바로 보거나 쳐다보는것)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잠시후에 《만일 귀하의 대답이 없다면…》 하고 륙환장끝은 또 썼다.

《이러한 왜적의 글발에 대한 우리 조선사람의 대답은 오직 이렇다.》

사명당이 쓰기를 마치자 뒤에 섰던 박서방이 뒤짐진 손에 들고있던 일본군의 수급 하나를 소서행장의 글발 한가운데 꽉 눌러놓았다. 아직도 생생하게 흐르는 피가 내려쌓이는 눈을 녹이며 《우리 일본군사를 죽이지 말라.》는 종이에 붉게 퍼졌다. 당겨쥐였던 말혁을 놓칠만치 실색한 심유경은 《앗!》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도 소리를 질렀다. 앞발을 들고 공중 일어섰던 그의 말은 네굽을 안고 옆의 숲속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그달음으로 돌아가던 심유경은 료동에서 명나라 응원군을 거느리고 나오던 리여송제독을 만났다. 소서행장과의 교섭경위를 듣던중에 《대동강을 경계선으로 그 이남의 땅을 일본에…》 하고 운운하는 말을 듣자 리여송은 즉석에서 심유경을 베이려고 했다. 이때 만일 명군의 참모장 리응시가 아직 참으라고 만류하지 않았다면 심유경은 그때 처단되였을것이였다.

리여송제독은 군사를 재촉하여 곧장 평양을 향해서 진군했다. 이동안에도 계속 《마초와 소금을 구하러 성밖으로 나가는 일본군사를 죽이지 말라.》는 소서행장의 글발이 나붙는 바위나 나무에는 일본군의 수급들이 놓이거나 매달렸다. 우리 사람들이 혹은 길목을 지키고 혹은 숲속에 잠복했다가 성밖으로 나오는 일본군을 요격해서 베인 수급들이였다.

이러한 우리 사람들의 요격은 세계력사상에서 최초의 유격전일는지 모른다.

《전쟁과 평화》에서 그 작가는 모스크바까지 진격했던 침략자 나뽈레옹의 대군이 무너지게 된 원인중의 중요한 하나로서 예로부터 어느 전쟁에서나 있은적이 없는 로씨야 전체 인민의 유격전을 들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해온 임진란은 그보다 몇세기이상이나 전의 일이다.

《연려실기술》의 《총론 의병》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각 고을마다 의병장의 칭호로써 백성을 불러일으킨자 무려 수백이다. 이로써 왜적을 섬멸하여 나라를 회복한것은 실로 의병의 힘이였다.

의병은 곧 낫과 호미로 창검을 만들어가지고 일어선 인민이였고 그러한 인민들의 힘으로써 일본침략군을 소탕하고 조국을 수호한것이다.》

이로부터 한달 남짓한 후에는 해가 바뀌여 계사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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