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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 회


60. 적장수의 목이 떨어졌다


칠성문에서 동북쪽으로 울창한 송림속을 거쳐 을밀대까지 련닿은 성벽의 어느 한 굽이였다. 이 어간의 송림중에도 가장 조잡하고 깊은 곳이다. 성벽가까이 서있는 큰 소나무로 올라간 돈정신은 거의 끝까지 다 올라갔지만 그래도 한팔로는 아름이 버을게 굵은 원체를 그러안고 서서 내려다보이는 성가퀴안을 살폈다. 달은 이미 지고 또 금시 싸락눈이라도 뿌릴듯이 흐린 밤중이라 송림속은 더욱 침침히 어두웠다. 바로 성가퀴에 기대선듯 가까이 있는 나무의 체대들만이 어렴풋할뿐 다른것은 더 보이지 않았다. 귀를 사렸다. 휘파람소리를 내며 가지끝에 울부짖는 바람뿐 역시 달리 들리는것은 없었다.

그저께 밤의 변을 겪은만치 놈들의 경계가 더 엄할것이므로 찬찬히 살피기는 했으나 별것이 없었다. 성을 넘어가볼밖에…

《좌우간 넘어가볼테니 그런줄 알라구.》

돈정신은 제가 디디고있는 가지아래를 굽어보며 말했다. 그 나무중토막에 올라와있던 차돌이는 그 말을 받아서 밑의 사람들에게 전했다.

돈정신은 머리우에 늘어진 가지 하나를 잡고 성가퀴를 향하여 한팔을 내민듯이 뻗은 녹녹한 가지에 올라섰다. 재인이 줄을 타듯이 커다랗게 높은 외나무다리에서 한발씩 내디디기 시작했다. 한걸음한걸음 옮겨놓는 발과 함께 역시 이손저손 옮겨잡던 가지가 끝나면 옆의 나무의 가지를 붙들고 나갔다. 이제는 더 나갈수 없이 디디고있는 가지가 휘늘어지기 시작했다. 밑에서는 쳐다보기만도 아슬아슬했다. 걸음을 멈춘 돈정신은 한번 더 성가퀴안을 살폈다. 역시 인기척 같은것은 없었다. 지금 서있는 가지에서 성가퀴까지는 두어발가량이나 사이가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 한다?》

밑에서 조마조마하게 쳐다보던 사람들은 부지중 《아차!》 소리를 질렀다. 금방 떨어지는것 같이 흠칠한 돈서방이 허공 나떴다. 허리를 굽혔다펴며 한번 발을 굴러서 휘청 휘였다 퉁겨지는 가지의 탄력을 받아 훌쩍 몸을 날린 그는 벌써 성가퀴우에 올라서있었다.

이 나무, 저 나무에 몸을 숨겨가며 주위를 살핀 돈서방은 허리에 감았던 바줄을 풀었다. 줄사다리였다. 한끝을 큰 나무에 붙들어매고 성벽너머로 내려보냈다. 차돌이가 올라왔다. 다음다음으로 김응서와 법근이, 주복이 또 젊은 중 4~5명이 올라왔다. 열명도 채 안되는 그들은 놈들의 진중으로 잠입해들어가기 시작했다.

송림속으로 접어든 때였다. 얼마 멀지 않은데서 불빛이 번쩍했다. 쏴- 쏟아지는 수채물같이 흘러나오는 화광에 저편 성가퀴가 어둠속에서 길게 드러난다. 그러자 또 이쪽 숲속을 더듬듯이 휘둘린다. 저마다 큰 나무등걸에 붙어선 이쪽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다시 껌벅 사라지고마는 그 불은 순라들의 암등이였다. 도적등이라고도 하는것이다. 칠성문가까이로 갈수록 그런 불빛은 더욱 자주 휘둘렸다. 여기저기서 순라도는 놈들이 서로 부르며 뭐라고 지껄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될수록 깊은 숲속을 톺아가는 우리 사람들은 징검다리를 건너뛰듯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아붙어서는 귀를 사리고 앞뒤를 살펴야 했다.

만수대를 넘었다. 나무사이로 영문의 큰 기와지붕이 내려다보인다. 예정대로 여기서는 두패로 갈려야 했다. 김응서와 차돌이, 돈정신 세사람은 애련당골로 가고 주복이와 법근이는 4~5명의 중을 데리고 장경문쪽으로 가기로 했다.

어제 김응서가 계월향이한테서 들은 말로써 지금 성내에 붙들려있는 우리 사람들이 장경문근처의 어느 집에 갇혀있다는것을 알았으므로 그들까지도 구해낼 작정이였다. 계월향이는 그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고 또 성안에 불이 일었을 때 더러는 탈출하고 더러는 죽은것도 몰랐다. 더우기 제가 영명사로 나간 동안에 그 나머지 사람들이 련광정앞에서 다 전사한것도 모르고 한 말이였다.

지금 그쪽으로 가는 주복이와 법근이는 더구나 그런것을 알리가 없었다. 우리 사람들이 갇혀있는 집이 어데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경문근처로 가서 살피노라면 놈들이 지키고있는 눈치를 보아서도 찾을수 있을것이다. 찾은 다음에는 서두를 생각은 말고 목목이 지키고있다가 짬수를 보아가며 파수보는 놈들을 소리 안 나게 하나하나 잡아치워가면서 우리 사람들을 빼낼 계획이였다.

법근이가 앞장섰다. 주복이보다도 성안골목을 법근이가 더 잘 꿰뚫고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더 잘 안다만다할것이 없었다. 장경문근처는 빈 터전만이 남았다. 다 무너진 돌각담들이 보이는 넓은 재더미를 사이에 두고 장경문 맞은편에 그 역시 불에 그슬린 기와집 몇채가 남아있었다. 우선 그쪽으로 붙어섰다. 앞의 사람이 뒤손질로 부르는것을 알아볼수 있는 정도로 하나씩 동떨어져서 다음 집, 다음 집으로 붙어가면서 동정을 살폈다. 그나마 단 몇집을 못 가서 또 재더미가 된 빈 터전이 드러났다. 환히 트인 저쪽에는 웬 불빛이 이글이글해보인다. 거기가 어델가? 그것이 바로 련광정앞의 넓은 마당이였다. 여기저기 피워놓은 화토불옆에는 난쟁이들같이 왜소하게 보이는 파수군놈들의 그림자까지도 볼수 있다. 전 같으면 오불꼬불한 골목들을 한참 처나가야 했던 련광정이 지금은 곧바로 보이는 형편이다. 그만치 화재가 컸던것이다. 서로 말은 안하나 장경문밖에서 성가퀴너머로 굽어보는 왜놈을 끌어내리다가 같이 강으로 떨어졌다는 황서방의 생각에 제각기 가슴이 뭉클했다.

여기서는 더 알아보잘데가 없었다. 이제는 애련당골로 가서 거기 일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아서 다시 의논하기로 했다.

이때 애련당골로 들어선 세사람은 벌써부터 눈여겨보면서 온 집의 차면바자길에 널린 흰 빨래를 보았다. 분명히 두가지다. 지금 계월향이네 집에는 보패가 있고 또 왜장수놈도 있다는것을 알리는것이다. 일은 단순치 않게 되였다. 그러나 적장을 베일수 있는 기회일는지도 모른다. 우선 계월향이네 집 문간을 지키는 졸개놈을 잡아치워야 할것이다. 사방은 고요했다. 그리고 어두웠다. 골목어구에 돌아앉아있는 집의 추녀밑으로 들어선 세사람은 잠시 귀를 기울이고 동정을 살폈다. 그러나 수직군졸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앞섰던 김응서가 집모퉁이의 기둥에 붙어서서 골목안을 엿보았다. 비좁은 골목안은 더욱 어두웠다. 무엇이 타는듯 한 이상한 냄새가 풍긴다. 향긋하면서도 매운맛이 있는 내내였다. 깊지 않은 막다른 골목인데 저편 구석에서 웬 불찌 하나가 반짝인다. 누가 조그마한 불씨를 불기라도 하는듯이 차차 더 빨개지는 불빛에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코구멍에서 무럭무럭 뿜어나오는 연기까지도 보인다. 그것이 담배라는것이다. 수직군졸이 대문간 대돌에 걸터앉아서 담배질을 하는중이다. 분명히 놈은 한놈뿐이다. 이제 와락 달려들기만 하면 제놈이 손쓸새도 없이 단칼에 요정을 낼수는 있다. 그러나 놈이 한번쯤은 고함을 지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놈은 물론 이 근처의 적들까지도 쓸어나올것이다. 김응서는 뒤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놈이 이리로 나올 때까지 기다릴가? 의논하고싶었다. 이때 바로 그의 등뒤에 붙어서서 역시 골목안을 엿보던 차돌이가 김응서의 소매를 당기고 제가 앞으로 나섰다. 나서서 다시한번 골목안을 엿본 차돌이는 한걸음 성큼 내짚으며 한팔로 허공을 후려치듯 했다. 알고 들으면 분명히 들리는 딱! 소리와 함께 앉은자리에서 벌렁 자빠지는 그놈의 뒤통수에 밀려서 대문 한짝이 삐거덕 열렸다. 세사람은 발을 성큼성큼 떼여놓으면서도 소리 안 나게 대문앞으로 달려갔다. 이마로부터 골통이 갈라진 군졸의 시체를 넘어서 반쯤 열린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맞은켠 방 쌍창안에는 불빛이 뒤밝았다. 그런데 웬 일일가? 뜻밖에도 요사스러울만치 랑랑히 울리는 계월향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계월향은 벌써부터 왜놈을 술로 휘여 쓰러뜨리려 하였으나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나저제나 초조한 생각으로 연해 술을 따르면서도 온 정신을 밖에 두고있던 때라 삐거덕하는 대문소리가 깜짝 놀라울만치 크게 들렸다. 금시 제 낯빛이 파랗게 질리는것을 느꼈다. 《혹시 바람에-》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그러자 또 대문앞으로 다가드는 인기척이 들리는것 같았다. 놈의 눈치를 살폈다. 그 역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눈을 번뜩이고 들었던 잔을 놓았다. 그러나 곧 잊어버리는 모양으로 다시 술잔으로 손이 간다. 계월향은 아직도 그득한 잔에 술을 덧쳤다. 일부러 철철 넘게 쏟고는 제 실수를 눙치는 핑게로 큰 웃음을 쳤다. 골목안에서 나는듯 한 인기척을 지워버리기 위한 웃음이였다.

김응서랑이 대문안으로 들어서며 들은것이 바로 그 웃음이다.

《이제는 어떻게 하나?》

계월향은 웃으면서도 눈이 더욱 둥그래졌다. 밤이 깊었으니까 옆집의 적장들은 이미 다 잠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요한 밤중에는 좀만 큰소리도 빤히 통해 들릴만치 엷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집들이다.

계월향은 웃음을 끊고 다시 귀를 기울였다. 뜰안은 역시 고요했다. 들어선 사람들은 지금 이편에서 내통이 있기만을 기다리는지 모른다. 꼭 그럴것 같이 생각되는 계월향은 지금도 술잔을 기울이고있는 놈의 그 등뒤의 방구석에 세워놓은 길고 짧은 두자루의 검을 보았다. 장판에 흘린 술을 훔치겠다는 시늉을 해보이고 새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갔다. 부엌문을 방싯 열고 내다보는 뜰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저편 옆집 처마밑에서 한사람이 나선다. 김응서였다. 기다렸던 일이지만 또 한번 가슴이 철렁하게 놀랜 계월향은 좀만 더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 문을 닫았다. 걸레를 들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온 계월향은 놈의 앞으로 나앉아 상귀에서 흐르는 술을 훔치면서 은근한 웃음을 담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몽롱한 취안으로 기생의 교태를 굽어보던 놈은 마시려던 잔을 든채 다박솔포기같은 구레나룻을 거슬리고 호탕히 웃으면서 기생의 허리를 끌어안으려 했다. 이때 치마폭에 감추고있던 계월향의 이편 손이 놈의 눈자위를 덮었다. 그와 동시에 목청을 돋구어 노래가락을 부르기 시작한 계월향은 담모퉁이로 달려가서 두자루 검을 걷어들자 쌍창문을 열고 퇴마루로 뛰여 나왔다. 마치 상한 짐승이 울부짖는듯 한 신음소리와 함께 잔을 떨어뜨리고 얼굴을 움켜쥐였던 왜놈은 후추가루로 범벅진 눈을 부릅뜨고 쫓아나오자 막 뜰아래로 내려서려는 계월향의 잔허리를 걷어찼다.

계월향의 노래가락은 짧은 신음소리로 끝났다. 그와 같은 순간이였다. 계월향의 노래소리에 눌리면서도 역시 크게 울부짖던 놈의 모가지가 떨어져서 뜰아래 굴렀다. 계월향이가 나오는것을 보고 퇴마루로 뛰여올라섰던 김응서가 한칼에 베인것이다.

짧은 몇순간의 소동은 꿈이던양 뜰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김응서가 붙들어일으킨 계월향은 정신은 차렸으나 몸을 가누지 못했다. 김응서의 무릎에 어깨를 기대고 반만치 누운 계월향은 건넌방을 가리키면서 힘없는 소리로 보패를 불렀다. 차돌이가 그 방문을 열었다. 문설주에 붙어앉아있던 보패는 실신하다싶이 떨고있었다.

《이제는 어서들 나가셔요. 속히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계월향이가 재촉했다.

《무슨 소린가, 같이 가야지.》

김응서는 계월향이를 다시 일으켜 앉히려 했다. 그러자 그의 가냘픈 몸은 잔허리에서부터는 딴 동강이 난것 같았다.

《전들 나으리와 저 처자랑을 따라가서 살게 되면 좀 좋으리까만 그러나 이제는 틀린것 같습니다.》

그는 기진해서 잠시 말을 끊었다.

《하기야 본시 천한 계집인데다 또 응당 죽어야 할 처지에서도 깨끗이 죽지 못하고 살아온 이 더러운 목숨이 여러분과 함께 섞일순들 있으며 또 아무리 제가 렴치가 없다기루 차마 같이 살겠어요. 잘됐습니다. 천도가 무심할리 있습니까.》

흐느낌에 또 잠시 말을 끊었던 계월향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나으리, 제 어미만은 왜적에게 참혹한 죽음을 안 당하도록 데려가주세요. 저는 먼저 빠져나갔다구 하시구 데려가주세요.》

김응서에게 이런 말을 한 계월향은 옆에 와서 앉은 보패의 손을 잡았다.

《내 어머니를 좀 거두어줄테요? 부탁이요.》

보패는 계월향의 손을 붙들고 울었다.

《저를 저 방에 갖다 뉘여주시구 어서들 떠나세요.》

계월향은 보패가 있던 방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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