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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8 회


58. 김응서와 계월향


암문으로 나가는 계월향모녀의 뒤에는 왜장수의 졸개 4~5명이 따랐다.

계월향은 영명사문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이제 김응서첨사가 나타나면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꾸며야 할가 하는 생각에 뒤따라오는 졸개들을 다시금 돌아보지 않을수 없었다. 놈들이 보는데서는 물론 같이 시식을 지내러 온 오라버니로 대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천연스럽게 될가 하는것이 걱정이였다.

산문안에 들어서자 전부터 낯을 아는 늙은 중 몇이가 나와서 합장하고 굽신거릴뿐 속인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시식을 지낼 차비가 다 갖추어있는 법당안에도 역시 그랬다. 어느 중에게 물어본다는것도 서투른 일이다. 그저 어머니와 함께 들어갔다. 모든 차비가 다 훌륭히 갖추어진품이 제 글발 하나만으로는 그렇게 될수 없는 일이다. 어데선가 뉘 손이 뻗쳐있다는것을 곧 알수 있었다. 재가 시작되였다. 로전승이 달랐다. 역시 늙기는 했으나 본시의 그 먹석이같이 비둔한 로전승보다는 퍽 정정한 사람이였다.

따라온 졸개들은 법당문밖에 서서 들여다보고있었다. 더 지켜보아도 별것이 없고 또 그만하면 구경도 더 할것이 없을만 한 때 소반에 고기와 술을 받쳐든 한 중이 그자들을 문간방으로 청했다. 일본군졸들은 우선 그 풍부한 술, 고기에 눈이 휘둥그래졌고 다음에는 입안의 침을 삼키면서 어떻게 할것인가 서로 의논하는 눈으로 마주보았다. 그중의 한자가 나서서 중에게 손짓으로 《만일 계월향이네 모녀가 없어지는 경우에는 이 절의 중들을 다 죽여도 좋으냐?》 하는 뜻을 물었다. 중은 쾌히 《그러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일본군졸들은 게걸스러운 주연을 시작했다.

법당문이 닫혔다. 그러자 불상뒤에 드리워있던 색채진한 비단장막이 들리며 탕건에 백립을 받쳐쓰고 흰 수목두루마기를 입은 름름한 남자 하나가 나섰다. 김응서였다. 비록 상주의 복색이나 역시 무장답게 영채가 도는 김응서의 눈과 마주친 계월향은 일변 놀라우면서도 반가왔다. 로전승이 목청을 돋구어가며 외우는 진언과 두드리는 목탁소리중에 두사람의 말은 시작되였다. 오래간만에 또 이렇게 만나게 된 인사말은 제하고 《어제 밤 보통벌접전때에 우리 사람 몇이가 성내로 붙들려간 모양인데 자네가 혹시 그걸 모르나?》 하고 김응서는 우선 이렇게 물었다. 계월향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보패라는 처녀 하나가 자기 집에 붙들려와있다고 했다.

《그 처자가 바루 자네네 집에 있단 말인가?》

김응서의 눈은 한번 번쩍이였다.

《그 처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루 고충경이의 누이동생일세. 자네두 고충경이는 알겠지.》

《그렇든가요?》

계월향이도 놀랐다.

《자네한테는 그런 말을 안하든가?… 하기는 려염집규수로서는 그렇기두 했을거네.》

고개를 끄덕이며 준수한 코밑의 팔자로 뻗친 검은 수염을 더욱 갈라붙이듯이 손질을 하는 김응서는 또 물었다.

《그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나? 어제말고도 성안에는 붙들려있는 우리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는데…》

《모르겠는걸요. 장경문근처 어느 집에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 혼란통에 누가 어떻게 되였는지는… 저는 대문밖의 일은 통 모르고 사니까요.》

《그럴걸세. 우리는 자네가 왜적에게 잡혀있다는것을 고생원한테서 듣구 알았네. 고생원이 애련당 김감역의 아들 김순량이란자를 어느 장에선가 만나서 자네 말을 들었다네.》

《참, 그 김순량이는 어떻게 된지 모르세요?》

《지금 그런 이야기까지는 다할수 없고…》

그러던 김응서는 고쳐 생각한듯이 《뭐, 자네한테 숨기잘것두 없겠지. 그자는 고생원의 살에 죽었네.》 하며 계월향의 얼굴빛을 살폈다.

《그랬는가요? 참, 그자가…》

계월향은 촉박한 지금이라 당장 지난 일을 다 말하지는 못하나 김순량에 대해서는 실로 절치부심하는바가 있었다. 김순량이는 한동네서 살아서 잘 아는 처지였다. 사람으로 믿었던만치 그자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신수불길해서 일본군에 붙들려 이 성안으로 끌려들어와있을망정 기회만 있으면 여기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있으리라 믿었던것이다. 그래서 간혹 만나게 되는 때마다 은근히 그런 의사를 비치여보기도 했었다. 처음 몇번 숭늉대답으로나마 그래보자고 하더니 그후에는 그런 말을 듣기만도 겁이 나고 따라서 귀찮아졌던지 계월향이를 만나는것까지도 꺼리는 눈치였다. 어찌다가 만나게 되는 때 계월향이가 성밖의 우리 사람들의 정형을 물으면 그자는 손부터 내저으며 《철없는 소리, 지금 우리 사람이 다 뭔가. 없네, 없어.》 할뿐이였다.

희망을 붙이고 묻는 자기에게 그자는 오히려 절망을 주려는 심술이 뻔한 수작만을 했다. 자기의 처자까지 이 성내로 끌어들이게 되는것을 안 후부터는 계월향은 그자를 더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계월향이가 한순간 이런 회상에 잠겼을 때였다.

《내 자네를 믿어두 좋은가?》

이러한 김응서의 말이 귀전을 울렸다. 계월향은 금시 뼈가 저려오는것을 느꼈다. 야속했다. 그러나 (김응서로서는 당연한 말이다. 또 나는 그런 말을 들어 싼 년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계월향은 눈물이 맺힌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깨물었을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우리 사람이기만 하면 그가 누구든 이 나는 할 말이 없으리라!

김응서가 말을 이었다.

《미상불 이번 길이 어려웠을텐데 이렇게 나와준것만으로도 나는 믿네마는…》

《나으리! 저를 이 자리에서 죽여주세요. 지금 그런 말씀을 저는 백번 들어두 싼 년이올시다. 이 더러운 목숨을 벌써 끊지 못한것이 저는 한입니다. 이렇게 나으리앞에 서기조차…》

《알겠네.》

김응서는 치마끈을 눈에 대고 흐느끼는 계월향의 등을 잠시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우리 다같이 이 땅의 혜택을 입고 살아온 사람이 아니겠나! 그런 박절한 말을 한 내가 도리여 면구헐세. 용서허게.》

그의 음성도 약간 떨렸다.

《피차 믿구서 물어볼것도 있고 또 긴한 부탁도 있네.》

김응서는 팔자로 뻗친 수염속에 금시 빙그레한 웃음을 띠우며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일변 밖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여가며 한층 더 소란스럽게 목탁을 두드리고 요령을 흔들고 진언을 외우는 소음중에서 두사람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보패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대강 들은 김응서는 곧 말끝을 돌려서 현재 성내에 있는 왜군의 정형을 깐깐히 묻기 시작했다. 일왈 적의 수효가 얼마나 되며 소서행장의 다음가는 적장들은 어떤자들이며 또 그놈들이 거처하는데가 어데며 또 전날 밤에 우리가 닭과 비둘기들로 일으킨 화재가 어디까지 범했는가 그리고 적의 군량은 아직도 얼마나 남아있는가 등등을 알려고 했다. 그러나 계월향은 그런 물음에 만족한 대답을 줄수가 없었다. 바로 어제 밤에 있은 화재까지도 오늘 이리로 나오면서야 그것이 어디까지 범한것을 알았을뿐이다. 하나의 잡힌 몸으로 좁은 뜰안에 갇혀만 있었던것이다. 오직 자기가 알고있는 왜장을 찾아다니는 몇몇 적장들의 이름과 그 생김생김을 말할수 있을뿐이였다.

《그럼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우선 자네랑 이 적중에서 빠져나오는것이 급선무일세.》

이야기가 대강 끝났을 때 김응서는 두루마기자락을 들치고 은장식한 대모(바다거부기인데 그 등껍데기는 귀중한 장식품을 만드는데 쓰인다.)장도 하나를 꺼냈다. 그의 겉옷밑에는 쇠사슬로 결은 내갑(속갑옷)과 허리띠에 지른 자그마한 환도가 뵈였다.

《이 장도는 고충경이가 자기 누이에게 전해달라는것이네. 그러나 막부득한 경우고 애여 경홀한 일이 없도록 자네가 보살펴줘야겠네.》

이들의 이야기가 끝나는것으로써 재도, 시식도 끝났다. 계월향에게 한가지 남은 일은 자기 어머니를 여기 남겨두고 가는 일이였다. 즉 여기 남아있다가 종적을 감추도록 하려는것이였다.

계월향의 늙은 어머니는 딸이 김응서가 보냈다는 쪽지를 받고 이 거짓제사를 꾸밀 때부터 일이 심상치 않은것을 짐작했다. 하늘같이 믿고 살아오는 딸이 하는 일이라 캐물으려고는 안했다. 딸 월향이가 하는 일이면, 더우기 딸에게 리로울 일이라면 무엇이든 못하랴 하는 로파는 벌써 한 옛적이라고도 할만치 오래전에 죽은 남편의 제사를 차리고 꾸미는것쯤 어려울것이 없었다. 로파는 울기까지도 했다. 청상과부로 하나 기른 딸자식을 기생에 넣어 세상사람들에게 《기생에미》라는 뒤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온 설음이 새롭기도 했다. 또 그보다도 무서운 불길한 예감이 앞섰다. 묻지 않아도 월향이는 지금 왜적의 손에서 빠져나갈 계책을 꾸미는것이다. 그것은 위태위태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렇더라도 못한다고 할수는 없는 일이다.

놈들에게 잡혀서 다시 평양으로 들어왔을 때 식음을 전페하고 죽으려는 월향이를 붙들고 《제발 죽지만은 말아다고, 죽지 말고 살아서 후날을 기다려보자.》고 울며 애원한것은 이 에미였다. 기다려보자던 그 후날이 지금 왔는데 위태하다고 어찌 막으랴 하는 계월향의 어머니는 딸과 김첨사가 하는 말은 들으려고도 않고 오직 눈물어린 눈으로 부처를 쳐다보며 두손을 모아 딸의 소원성취만을 빌뿐이였다.

계월향은 어머니에게 왜장수의 졸개들에게 말해서 어머니는 제사 뒤치닥거리를 한다는 구실로 여기 잠시 남아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럴수는 있을게다. 하나 만약에 내가 없어진것을 알게 되면 네 일은 틀릴게다.》

어머니는 앞장서나서며 또 말했다.

《내 무슨 일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때문에 조금이라두 네 일이 틀린다면 내가 사는것이 죄다.》

계월향이가 돌아왔을 때는 보패가 집에 없었다. 빈집에는 왜졸 몇놈이 퇴마루에 걸터앉아서 담배질을 하고있었다. 계월향이가 들어오는것을 보자 졸개들은 곰방대를 뒤로 돌리고 정갱이를 가두고 꿇어앉아 꾸벅거렸다. 저의 대장의 낯을 보아서 하노라는 인사성이였다.

계월향은 그것들에게서 보패가 좀전에 련광정으로 끌려갔다는것을 알았다. 왜장수가 많은 군졸들을 보내서 붙들어갔다는것이다.

계월향은 곧 련광정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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